고난주간을 지내고 부활주일을 지내면,
오락가락 하던 봄이 제대로 완연해지며 푸르름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때면
한솔이의 계절입니다.
어느덧 2주기를 맞이하며 한솔이 나무가 있는 정읍을 다녀옵니다.




작년 태풍에 한솔이를 닮은 잘 생긴 소나무가 쓰러졌습니다.
한솔이가 쓰러져 떠난 것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장로님과 권사님 걱정에 
철렁 마음이 내려 앉았었습니다.

한솔이가 거기로 가야할 이유가 그 나무였을텐데 그 나무가 쓰러졌다니....
정읍의 그 곳이 상상이 되질 않았습니다.
헌데, 한솔이가 웃고 있는 사진이 담긴 비석이 세워져 반겨주니 생각지 못한 반가움이었습니다.




한솔이와는 한 치 건너 두 치의 사이로 그리 많은 것을 나눈 기억이 없습니다.
아파서 힘들 때도 가까이 다가가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했었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절절해지는 것 같습니다.
조금 휑했던 웃는 한솔이 얼굴 앞에 꽃을 둘러 심습니다.




실은 한솔이가 누구도 아닌 내 마음에 남긴 흔적이 있습니다.
오랜 영적 방황으로 흔들리던 내게,
기도에 길을 잃고 헤매던 때 나를 내려놓고 기도하게 했었고,
인간이 한계 지어놓은 '기도의 응답'의 실체를 보게 했고,
기도 너머의 신비, 삶을 넘어선 죽음에 대한 새로운 눈을 열어주고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것들에 대한 묵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남보다 늦은 나이에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그의 사역은  한솔이를 아프게 품고 시작하였습니다.
한솔이의 마지막 3년을 함께 하며, 사랑과 복음을 다시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 무력하게 한솔이를 떠나보낼 즈음 아버님 또한 죽음에 빼앗겼습니다.
또 그 즈음 존경하던 이정석목사님께서 끝까지 암에 항거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며 천국을 향해 가신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압니다.
그의 인생에, 그의 목회에 '죽음을 짊어진 삶' 에 대한 트라우마가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를요.
그 트라우마는 끝이 아니라 복음을 든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숙제라는 것을 또한 압니다.





오고 가는 긴 시간 동안 뒷좌석에 앉아 계속 돌직구 날려주는 영애 덕에 즐거웠습니다.
영애, 하면 착한 애로 통하고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로 알려져 있지만
알고보면 돌직구 여왕인 이 아이를 나는 많이 좋아합니다.
야곱의 축복, 이삭의 축복, 야베스의 축복.... 모두 다 동원해서 축복하고 싶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이런 제자 하나를 남겼다는 것은 내게 참 축복입니다.
지금 여기에 함께 하고 있는 이 사람들, 이 사랑들이 삶의 이유입니다.





'생명의 샘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가운데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죽음을 짊어진 삶, 하루하루 죽음에 더 가까이 가는 '작은 죽음'을 등에 지고 사는 우리들이지만
생명의 샘이 주께 있기에 가장 큰 절망 속에서도 빛을 향한 지향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함께 만나 저렇게 환하게 웃을 날일 있을 것을 알기에.



 

1년이 또 다시 금방 지났고,
그 사이 한솔이 나무가 쓰러졌지만
정말 소중한 것들은 의미없이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고 쓰러져 말라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지나가고 스러지는 것들이 여전히 많겠지만
그 빛은, 그 생명의 샘물은 영원에 가 닿아 있음을 압니다.
다시 1년 후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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