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인 미사 나음터 벽에는 '치유의 실'이라는 작품이 걸려 있다. 개소식 전에는 흰 캔버스에 금빛 못이 번쩍번쩍 박혀 있었다. 지금은 붉은 계열의 실이 못과 못 사이를 이어 멋진 작품이 되어 (가고) 있다. 고립된 한 사람, 물론 그 시작은 나다. 고립되어 외롭던 나. 그런 나들을 연결하는 치유의 실이 되고자(그러고 보면 실도 나네. 아니다, 실은 성령이신가? 성령과 나의 합작인가?) 하는 뜻을 담았다. 연구소를 통해 사람들이 연결되는 것, 이보다 큰 보람이 없다. 나와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고, 참가하신 분들끼리 읽고 쓰는 모임을 이어가다, 나를 빼고 더욱 친해지고 연결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 한없이 기쁘다. 자랑하고 싶어서 연구소 페북에 있는 후기를 가져왔다.  

 

 

모니터 안에서만 만나온 여말몸글(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 치유 글쓰기 모임) 벗들을 실물영접한 날의 기록입니다. 두번째 책나눔을 마치면서 '우리 한 번 만나요!' 누군가 당긴 불에 대동단결하여 활활 타올랐어요. 1박 엠티까지로 번질뻔 한 불을 하루 소풍으로 워워~ 자제했고요. 얼마전 이사한 들꽃의 초대로,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춘천으로 출동. 기차 한시간 타고 갔는데 글쎄 거기서 산토리니와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게 될줄이야! : ) 게다가 오랜 비로 어둡던 하늘이 그날 하루 내내 얼마나 파랗던지요. 삼사오십대 여성 네 명의 찐한 수다가 해질녁까지 이어졌네요. 이른 아침부터 깜깜한 밤까지의 오랜 외출이 몇년만인가 하는 육아맘 바람에게 특히 선물 같은 날이었구요. 플로리다에 사는 솔직이는 아쉽지만 영상통화로 합체했어요. 들꽃의 완벽한 가이드가 빛났고, 살짝 서먹할뻔 한 첫만남부터 웃음을 불러일으켜준 편지는 아래와 같은 후기를 남겨주었어요. 글과 책으로 연결된 우리의 내적여정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왕언니인 그대로는 그저 두근두근할 뿐입니다. 더 할 말이 많아서 입이 근질근질한데 요정도로 맺습니다. 다음 책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마칠 때 다시 소식 전할게요.

우리는 약 1년 동안 수치심, 영적가면을 벗어라 등 책으로 내면을 탈탈 털어서 성찰하고 자기를 만나가는 그런 이야기를 나눈 찐 친구이기 때문에 줌으로 만났어도 속앓이도 다 아는 사이라서 직접 처음 만난 사이지만 참 친밀감이 있었다. 어제의 여운이 정말 정말 오래 남는다. 오늘도 그 기운으로 하루가 가득 행복해질테다. 내안에 깊은 어두움에 침잠해서 나를 깍아내리고 뭐라고 나무라는 내 안의 소리가 작아졌다._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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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다녀와 바로 두 권의 책을 주문했다. 여러 모로 이례적인 일이다.

'좋은 강사'들과의 만남을 코스타의 유익으로 꼽는 강사들 얘길 많이 들었는데, 나는 별로 누려보지 못한 유익이다. 올해는 전체 집회 메시지를 맡은 탓에 첫날 둘째 날 시간을 텅 비웠다. 덕분에 잠시나마 강사들과 대화할 여백이 있었다. 두 분 강사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려서 돌아와서 바로 책을 주문하여 읽었다. 코스탄 아닌 강사에게 끌린 것이 이례적인 것이고, 두 강사 모두 남성이라는 것이 이례적인 것이다. 코스타와 상관없이 개신교인 남성 저자의 책을 읽어본 지가 언제던가.

결론은 사람 못지 않게 두 책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책으로 감동받고 실물영접한 저자에게 실망하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그리고 사람 만나서 좋았으면 그만이지, 사석에서 만난 사람의 책이 궁금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 헌데 사석에서 만나 인간적으로 끌린 사람의 책이 궁금했고, 읽고 나니 사람이 더 좋아 보이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기꺼이 불편한 예배>의 저자 김재우 선교사님은 코스타 준비하며 전체 집회 강사 모임에서 처음 봤다. 아, 그전에 페이스북에 <슬픔을 쓰는 일> 리뷰를 올리신 것을 친구가 공유해줘서 본 적이 있다. "진짜 괜찮은 분"이라는 소개를 들었다. 전제 집회 강사 모임에서 잠시 만났는데 친구의 말이 뭔 말인지 알겠는 첫인상이었다. 코스타에서 실물 영접하고 보니, 더욱 그러했다. 곡절 많았던 코스타였는데, 함께 참석했던 채윤이와 연구소의 다슬 샘이 "시카고 천사"라고 부르는 분이다. 내게는 물론 다슬 샘과 채윤에게도 천사였다. 저자를 알기 전 <기꺼이 불편한 예배>라는 책 표지를 여러 번 보았었다. 제목이 "예배"라서 '기꺼이' 패스했었다. 남성 저자라니 더욱 '불편하여 기꺼이' 패스할 이유였고... 읽어보니 예배가 아니라 환대, 사역이 아니라 사랑을 사는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괜히 "시카고 천사"가 아니었구나 싶었고. 편견과 오만을 회개한다.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의 저자 최종원 교수님은 몇 년 전에 성서한국 강사실에서 마주한 일이 있다. 이후 근거리 남성 목회자들이 하도 책에 대해 왈가왈부 하고, 요란스러워서 진즉에 패스했었다. 남성 신학자의 책은 거르고 보는 나만의 루틴도 있었고. 이번에 만나고 알았다. 신학자가 아니라 역사학자라는 것을. 진심으로 미안했다. 프로필 한 번 제대로 읽지 않고 신학자로 낙인(?) 찍었다니! 짧은 대화를 나눴는데 인간적으로 끌려 책을 봐야지 싶었다. 페이지마다 공감하며 읽었다. 코스타 세미나 강의 파일을 받아 들다 끌린 이유를 깨달았다. 자기 한계를 알고 인정하는 학자의 글과 태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신이 쓴 책을 구매한 독자층을 분석하며 2,30대 여성 독자를 품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인식할 뿐 아니라 인정까지! 역사학자를 신학자로 오해했던 무지, 남성 신학자라 낙인찍고 패스한  편견, 그리고 오만을 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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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에서 “사랑하면 보입니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들었다. 요한1서 4:7-21 본문이다. 설교에서 인용된 도종환 님의 시 “배롱나무” 한 구절이 작은 사랑의 불꽃이 되었다. 설교에서 그 시를 마주한 이후로 온 세상이 배롱나무다. 무슨 마법 같다. 배롱나무가 이렇게 흔한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 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론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중략)
늘 다니던 길에 오래 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사랑의 신비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하셨고, 당신의 모습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으니, 사람 영혼의 재료가 사랑일진대. 내 영혼에는 사랑의 기본값이 있지. 그렇지! 오랜만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설교 후에 찬송가 314장을 불렀다. 2절 가사가 목에 걸려서 넘어가질 않았다. 이전에도 부를 때마다 늘 조금씩 불편했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 위에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내 비록 주 믿는 성도 중 하나이지만, 이런 차별적 사랑을 받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불편해졌다. 이런 찬송 가사가 얼마나 많은가. 나 아닌 누군가를 ‘죄인’이라 이름 붙이고 타자화하는 이런 식의 찬송 가사며 텍스트가 얼마나 흔한가? 구원받은 나와 구원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 배제와 혐오에 닿는 자칭 선한 뜻 중 하나가 ‘구원받은 자아’ 특권의식이다. 그런 의미로 ‘주 믿는 성도’에게 주시는 ‘큰 사랑’은 거절하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자꾸 삐뚤어졌다. 설교로 받은 은혜를 찬송으로 다 쏟는 형국이었다.

예배 후 오후에는 젊은 부부들과 ‘육아 세미나’가 있었다. 육아 얘기를 하는데, 대화가 자꾸 자기 부모님과의 관계로 흘러간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당신들의 최선이었겠지만, 부모님께 “미안해.”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한다. 흔히 듣는 말이다. 크고 작은, 물리적이거나 정서적인 부모 폭력으로 내상을 입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그저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들으면 살겠다고 한다. 그러면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할 수 있는태도가 필요한 것 아니냐 하는 데 다다랗다. 한 자매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자각이 아이들에게 온전히 사과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어머니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낸 분이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미안해”라는 말은 끝내 듣지 못했고, 나름의 처절한 기도의 몸부림으로 비신자 어머니를 용서한 체험의 고백임을 알고 있다. 존재를 향한 ‘미안함’이 존재적 죄인에 대한 자기 자각 없이 불가능하다는 고백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자기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키우지만, 죄인인 자기 현주소를 잊지 않겠다는 말이다.

죄와 죄인을 타자화하지 않고 자기를 돌아보는 기도와 성찰이 사랑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314장 2절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이유를 안다. 구원받은 자신, 구원받은 데다가 그 누구보다 구원의 은총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아팽창에 허덕이는 사람을 안다. 그리하여 자기는 ‘큰 사랑’ 받기 합당한 성도라는 자의식이 충만하다. 구원의 강 건너편에 있는 죄인이라 이름하는 이들을 가엾게 여기며 구원자 역할을 자처한다. 가엾게 여기는 것이 겸손에 뿌리내린 연민이면 좋을 텐데, 교만과 자아팽창이니 종착지가 사랑일 리 없다. 그 사람을 잘 안다. 너무 익숙하고 잘 아는 사람이라 모른 척하고 싶을 뿐이다. 모른 척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비슷한 사람 찾아내어 손가락질하는 것이니 손가락질과 남 탓의 명수이기도 하고. 이런 찬송을 부르며 안도감을 느끼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던(는) 나다.

마침 읽은 아빌라의 데레사 <영혼의 성>에서는 이런 구절을 만났다. 기도 여정의 맨 마지막 단계, 일곱 번째 마음의 방에 관해서이다. 죄인에 대한 인식의 방향이 사랑과 혐오의 갈림길에 선 우리에게 이정표 되는 것임을 알겠다.

“이 불행한 영혼들은 캄캄한 감옥 속에서 수족이 묶인 채 공이 될 선이라고는 아무것도 못할 지경으로... (중략) 정말이지 이런 영혼들은 동정할 만하고, 한때 우리도 그런 처지에 있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서, 주께서는 이들에게도 인자를 베푸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매들이여,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각별히 마음을 써 기도하고 태만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사랑하면 보인다.
배롱나무가 보이고,
배롱나무 당신이 보이고,
내가 보이고,
죄가 보이고,
사랑이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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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더스 양념 고기들은 가격이 싸고 맛도 저렴하다. 저렴한 양념 고기를 가져다 고유하고 특별한 요리로 만드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 놀이가 작은 기쁨이다. 양념 고기 중 가장 싼 목살 양념으로 일명 "갈릭 포크 덮밥"을 만들었다. 현승이를 감동시켰다,라고 생각하지만. 현승이는 엄마에게 길들여져 맛이 있든 없든(대부분 음식이 약간의 맛은 있다!) 자동 반응을 장착하고 있다. "우와, 엄마 대박인데! 마늘향이 강하니까 정말 좋다." 현승이는 고기를 참 좋아하고, 덮밥도 좋아하기 때문에 자동 반사 반응이긴 하지만, 진심이 컸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양념 목살도 목살이지만, 갈릭을 처리해야 했다. 통마늘 사두고 미국 갔다 왔더니 꽤 많이 남아 있는데 미끌미끌 상하고 있는 것 아닌가. 더 두면 못 먹지 싶고, 깨끗하게 씻어서 약간 말려서는 굴소스 등의 양념으로 고기와 함께 구웠다. 고기 반, 마늘 반. 안 맛있을 수가 없지!


저녁 먹고 들어온 JP가 "와, 나도 덮밥 좋아하는데..." 하며 소심하게 부러움과 '먹고 싶음'을 표현. 다음 날 도시락으로 싸줬다. 마침 마늘도 딱 필요한 만큼 남아 있었고. 내색은 안 하지만 좋아서 콧구멍이 벌렁벌렁. 고기와 마늘은 어떻게 따로 데워야 하는지, 먹는 방법 자세히 설명하고 제대로 먹었는지 인증샷 보내라고 했다. 오, 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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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즐거움은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설렘인데, 새로운 것은 낯선 것이기도 하다. 늘 걷던 길을 벗어나는 것이다. 늘 걷는 길은 대체로 예측 가능하다. 저만큼 가면 大자로 누워 있는 고양이가 있고, 오른쪽 탄천엔 사람들이 많을 거고, 왼쪽으로 가서 올라가면 조용하겠지만 그늘이 없어 더울 거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도 나름의 '예측'을 장착하지만 그 예측이 모두 머리로 하는 것이다.  검색하고, 그려보고, 충분히 예측하고 떠난다. 직접 몸으로 걸어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여행은 체험이다. 인공위성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것과 직접 가서 거기 서보는 것의 차이는 얼마나 큰 것이다.

 

 

예기치 못한 즐거움과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사이를 오가는 것이 여행이다. 그 사이를 오가며 며칠 코스타 일정과, 시카고 뉴욕 여행을 마치는 마지막 날에 뉴저지에 있는 켈리 님을 만났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코로나 검사 음성 결과 확인이 필요하다. 48 시간 이내의. 손쉽게 무료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검색'을 통해 했던 예측이었는데, 그새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검사절차도 절차지만 1인당 200불의 검사 비용이 든다니! 여행 중 예측 못하는 많은 것 중에 타격감이 가장 큰 것은 사실 비용이다. 뉴욕 여행 중에 만나기로 한 켈리 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현지인 메리트에 타고난 정보 수집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해버렸다. 최소 비용으로, 자가검사 키트를 이용해 비대면 검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 검사로 얻은 결과지를 인정해주는지, 한국 당국에 메일까지 보내어 확인까지! 그리고 뉴욕 출발 당일 호텔로 와 검사 진행까지 깔끔하게 해 주셨다.

 

적지 않은 예측 불가의 사고를 경험한 여행이었다. 정말 사고였다. 출발 전날에는 일행 중 연구소 D 쌤이 공원에서 사고를 당했다. 천만다행으로 최소한의 상처를 입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사고였다. 외적인 사고만이 아니다. 내적 전쟁도 만만치 않았다. 여행의 즐거움이 적지 않았지만, 예측 못한 어려움으로 겪은 고충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코로나 검사 문제가 해결되고도 여전히 남아 있는 걱정은 "우리 양성 나오면 어떡하지?"였다. 비행기는 어떡하고, 10여 일의 체류를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설마 하나님께서 그것까지 하시겠어? 그럼 너무 하지. 겪을 고난은 다 겪었지!" 셋이서 쓸데없는 예측 수다를 주고받곤 했는데, 다행히 모두 음성! 안도의 한숨!

 

켈리는 그렇게 우리에게 선물이었다. 두 딸(채윤이와 D쌤)은 켈리 님이 뉴욕 천사라고 했다. 존재 자체가 선물이었는데, 직접 만든 카드에 세 사람 따로따로 선물을 준비해 오셨다. 이메일 한 통으로 시작된 인연이다.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을 읽고 받은 감동으로, 그 밤에 바로 보냈다는 그 이 메일이 만남의 시작이었다. 책이 나올 때마다 멀리 미국에서 구매를 하고, 응원을 보내오고. 이러다 이 분 만나는 거 아냐! 싶었는데, 정말 한국에서 만나는 역사가 생겼다. 연구소 '일일 글쓰기 강좌'를 했던 2019년 가을. 20년 만에 한국에 나가는 언니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글쓰기 강좌에 등록을 하시겠다는 거였다. 어머, 이 분은 받아줘야지! 그리고 그날 글쓰기 모임은 두 분의 글로 더욱 풍성해진 기억. 그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내가 데이트 신청을 했고, 두 분과 함께 남한산성에서 보낸 시간의 기억이 아련하다.

 

'

코로나 음성 확인까지 하고, 안도하며 체크아웃하고, 점심 대접까지 받았다. 여행객 또는 이방인으로서는 검색해서 찾을 수도 없고, 엄두도 내지 않을 식당에서 근사한 점심식사를 했다. 센트럴파크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서! 이 표현을 하자니 다시 눈가가 뜨거워진다. 2주간의 일정을 잘 지냈다고, 안팎의 사고를 잘 견뎌냈다고 베풀어 주시는 잔치상 같았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You treat me to a feast, while my enemies watch. You honor me as your guest, and you fill my cup until it overflows.)" 이번 코스타의 주제는 'Let us feast'였다. 이 아름다운 오찬으로 이방인 셋은 환대를 경험했다. 내 영혼의 잔이 넘쳤다. 켈리 님, 천사 맞다. 그분이 보내신 천사였다.

 

 

 

 

좋은 사람

Carl Jung은 '동시성'이라 하고 우리 동네에너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한다. 도모한 일이 흘러가다 누군가의 도모를 만나 내 통제 밖의 일이 되는 것. 그리고 일을 도모한 각각의 사람에겐 계획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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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쑥불쑥 엄마 생각이 나고,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고, 전화하면 받을 것 같고, 딸이여?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엄마에게 전화 걸어 한없이 울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드는가 했더니. 휴가 주간이다. 7말8초, 동생네 휴가 기간. 엄마랑 함께 보내던 시간. 밥을 차리다 깨달았다. 내가 저걸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애호박 새우젓 국. 내가 나 먹자고 저걸 만들 줄이야! 정말 엄마 음식이었는데... 나는 입에도 대기 싫은 반찬이었는데... 블로그에 있는 엄마 관련 글은 대부분 매년 7말8초에 쓴 것들이다. 다시 엄마의 계절이다. 전화 걸어서 딱 한 번만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삶의 모든 무게와 아픔이 씻겨 내려갈 것만 같다. "정신실이여?" 이 소리 한 번 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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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부터 시작해서 주일날 잠깐 열었다 닫는 나우웬 카페에서 선풍기(ㅋㅋㅋ 뭐래니?)같은 인기를 끌었던 '마약커피'를 팔십이 넘으신 엄마에게까지 팔아먹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3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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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가 오셨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걸 해드리고 싶어도 엄마 입에 맛있는 건 애호박 새우젓국 밖에는 없답니다. 그런 엄마 마음을 잘 알지요. '엄마는 생선살 싫어한다. 뼈만 좋아한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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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또는 출간입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벌써 나왔는데 이제야 출생 신고하네요. 쓰고 보니 ‘벌써’가 한참 전 ‘벌써’이기도 합니다. 수년 전 나왔던 『토닥토닥 성장일기』가 『우아육아:우아한 육아는 없다』라는 새 옷을 입고 나온 개정판입니다.

『토닥토닥 성장일기』는 둘째가 태어나 네 식구가 된 때 시작하여 큰 아이를 사춘기 기차에 태워 보내며 끝났었습니다. 개정판에 몇 개의 글이 더 추가되면서 작은 아이가 성인이 된 시점까지 담게 되었습니다.

‘육아일기’라고 분류될 수 있겠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이들 자라는 얘기와 함께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엄마의 마음, 아동치료 전문가의 정체성과 제 아이 키우는 엄마 사이 분열적 고뇌를 담은 에세이도 들어가 있습니다. 저의 저작이 그러하듯 애초 출간을 목적한 글이 아니었습니다. 아이 키우는 일이 쉽지 않은데, 아이가 자라는 건 너무나 쉬우며 빠르고,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를 관찰하는 재미는 세상 무엇에 비할 수 없어서 “쓰자! 남기자! 기록하자!” 했던 것들이 책이 된 것입니다. 엉성하고 거친 수백 개의 글을 고르고 다듬어 『토닥토닥 성장일기』라는 옷을 입혀주신 (당시 죠이선교회출판부) 이성민 편집장님의 장인정신이 아니었으면 책이 될 수 없었던 흩어진 구슬 서 말이었습니다.

‘과정’으로서의 인생, ‘여정’으로서의 신앙생활을 생각합니다. 한 아이가 태어나 말 없는 존재로 누워 있었습니다. “얘는 어떤 목소리를 낼까?” 저는 사실 그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목소리로 대변되는 존재의 색깔이 궁금했습니다. 하나하나 드러나던 존재의 빛깔을 보며 느꼈던 경이로움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대가는 가혹했고요. 결국, 자라고 마는 아이인데, 키워내기 위해서 감수하고 빼앗겨야 하는 것들이 허다했습니다. 우아한 밥상까진 아니어도, 세 끼 제대로 앉아서 먹는 것은 물론 자야 할 시간에 자는 것, 그리고 꿈과 희망까지, 고귀한 소명의 삶까지 엉망이 되었으니까요. 그 모든 아픔과 기쁨을 흘려보낼 수 없어서 “일단 쓰고 보자!” 했던 것의 결과물입니다. 과정, 한 존재가 태어나 성인이 되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첫 책 서문에 썼듯 “존재가 여물어간 과정”이지요. 아이의 존재가 여물어가며 부모의 존재는 단단해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과정, 아이 하나 키우며 내 존재의 지하실 바닥을 처절하게 확인하던 여정이기도 하고요. 결국, 인생 여정이었습니다.

새로운 감각의 “죠이북스”에서 중생의 은혜를 입혀주셨습니다. 『오우연애: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연애를 주옵시고』, 『와우결혼: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두 권의 책과 라임도 맞추고 책 사이즈도 맞추어 『우아육아:우아한 육아는 없다』로요. 대단한 책은 아니지만, ‘과정’으로서의 육아, 한 존재가 여물어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라는 자부심은 생기네요. 과정, 길, 여정 위에 있는 분들, ‘호모 비아토르’들과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 학기말과 코스타 준비로 분주한 중에 책이 나왔습니다. 개정판이라 저자가 해야 할 일은 크게 없었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책입니다. 교정 보며 다 큰 아이들과 함께 읽으니 감회가 새롭대요. 그 어떤 책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차차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토닥토닥 성장일기』를 편집하신 간사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이 키우는 분에게 선물하기 딱 좋은 책입니다.  위의 글은 페이스북(2022. 7. 22)에 올린 글 그대로 입니다.

 

 

우아 육아

2016년 「토닥토닥 성장 일기」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정신실 작가의 육아 일기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솔직 담백한 화법으로 전하는 에피소드들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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