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 된 큰 아이, 고등학교 1학년 된 작은 아이. 둘 다 중학교 마치고 1년을 집에서 쉬었습니다. 말 그대로 1년짜리 방학을 가진 것이지요. 질풍노도의 사춘기 끝에 마냥 놀고 자고 쉬는 시간을 가지기를 참 잘했습니다.

큰 아이는 예술중학교 다니며 피아노를 하고 있었는데, 1년 쉬는 동안 재즈로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검정고시를 보고, 2년 만에 대입을 봐 또래와 함께 대학에 진학했지요. 이 아이는 정말 쉼이 필요했습니다. 오직 대입을 위한 음악에 매진하는 예술중학교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3년 동안 포기해야 하고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았지요. 그 많은 것 중에 가장 안타까운 것 ‘자기다움’. 그것도 멈춰 쉬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멈춰 1년 쉬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자기답게 음악하고, 자기답게 살아가기 위해 고뇌하며 성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아이는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동안 학업을 위한 사교육을 하지도 않았고,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도 거의 없었지요. (엄마가 보기엔 그런데... 본인은 다르려나?) 중학교 마치고 고등학교 가기 전 누나처럼 1년 쉬는 게 어떤가? 제안했을 때 고민이 깊었습니다. 그 고민은 누나와 달리, 긴 쉼을 가질 만큼 열심히 달려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결국 1년의 쉼을 선택했습니다. 이 역시 얼마나 잘한 일인지! 소심하고 자기 안으로 숨어들던 아이가 친구들과 깊은 정서적 스킨십으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고, 다양한 만남으로 시각이, 품이 넓어졌습니다. 1년 쉬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최근에 복싱을 시작했습니다. 복싱을 하겠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제 성품과 가장 거리가 먼 운동처럼 보였거든요. 바로 그 때문에 복싱을 하고 싶다고요. 용기 있게 1년 쉼을 선택한 경험의 힘이다 싶습니다.

두 아이의 1년 쉼은 특별합니다. 대학 다니다 휴학하는 1년, 취업 준비 위해 멈추는 1년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청소년기, 많이 자야 키가 크고, 질풍노도의 고민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청소년기죠. 그 시절에 쉰 1년은 그 어떤 쉼의 가치와 다를 것 같습니다. 혼자라면 용기 내기 어려웠을 텐데, 함께 쉬는 친구들, 쉼의 동반 샘이 계시는 꽃친( 꽃다운친구들 - 청소년 갭이어 )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꽃다운 친구들 6기 설명회가 있습니다. 추천, 강력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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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이 있는 청소년 갭이어 (Gap Year)
꽃다운친구들 2021년 6기 모집 설명회❞

꽃다운친구들은 자기다운 걸음으로 걷고 싶은 16-18세 청소년들의 신나는 1년 짜리 방학 공동체 입니다.
갭이어를 알고 싶은 청소년과 부모님, 선생님을 설명회에 초대합니다!

📆 일시
10/17(토) 2~4시, 10/24(토) 7~9시, 10/29(목) 7~9시

🖥 장소
온라인 ZOOM 미팅

✏️ 자세한 내용
https://kochin.tistory.com/262


🙋🏻‍♀️ 참가 신청하기
https://bit.ly/꽃친6기설명회

 

 

홍옥의 계절이다. 매년 이 즈음 프로필 사진은 한 번씩 홍옥이었다.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홍옥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나곤 한다. 뭘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기억'과 관련이 있다. 내게 홍옥은 엄마다. 홍옥을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함께 있어도 벌써 그리운 야릇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그리움, 또는 두려움. 엄마 돌아가신 후 홍옥을 보면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그리울까. 가불 하여 미리 그리워했던 탓일까, 홍옥 한 입 베어 물며 눈물 뚝뚝 흘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홍옥이 아니어도 자주 운다. 길을 걷다 울고, 운전하다 울고, 자려고 누워서 울고, 책을 읽다 운다. 이런 가을을 한 번, 두 번, 세 번...... 홍옥의 계절을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일지 알 수 없지만 보내고 보내다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알아서 사다주겠지, 하는 생각을 버리니 나이스 한 가을이 되었다. 결혼 초부터 마음으로 바라고 때로 말하고 가끔 삐치던 것은 '알아서 소국 한 다발 사 오는 게 그렇게 어렵냐?"였다. 소국 화분 많이 나왔더라, 하나 사야지. 이런 식으로도 말고. 소국 사 와,라고 하면 "어? 어! 어, 어, 소국! 사다 줄게" 이렇게 되는 것. 차를 타고 과일 가게 앞을 지나다 눈 좋은 채윤이가 홍로와 홍옥을 구별해냈다. 차를 세우긴 늦어 지나쳤는데, 남편에게 주문했다. "사우나 건너편 과일 가게에 홍옥 있어. 홍.옥. 사.와. 소국 철이야. 소.국.도 사.와" 

 

 

노오~란 소국이 소담하게 담긴 노오란 화분, 빠알~간 홍옥을 들고 들어왔다. 거기에 초오~록 바질 화분도 하나. 조화롭도다, 조화롭도다! "이 바질은 화원에서 그냥 준 거야. 사모님 갖다 드리래" 여기서 사모님은 '사장님 사모님'이다. 단골 화원이 있는데, 교회에서도 거래하는 곳이다. 당연히 남편이 목사인 걸 아는데, 종교에 관심 없는 주인이 남편에게 "사장님, 사장님" 한다. 소국과 함께 온 바질만큼이나 신선하다. 그러고 보니 떠오른 기억 하나. 전에 수업 나가던 어린이 집에서 냠냠 선생님(아, 주방 선생님 아니고 냠냠 선생님!)과의 일화다. 함께 점심 먹으며 맛있다 칭찬도 많이 해드리고(실제로 맛있었다) 요리 팁도 얻곤 했다. 어린이집 냠냠 선생님보다는 괄괄한 식당 주인이 더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아, 그래서 아이들 용 국에다 고춧가루 풀어서 얼큰하게 만들어 준다든지 이런 걸 잘하셨던 것 같다. 아니다 다를까, 어린이집 그만두고 식당을 하신다고 마지막 날 인사를 했다. 정이 많이 들었던 터라 아쉬웠는데, 커다란 덩치의 푹신한 가슴으로 나를 퍽 안아주면서 "아놔, 음악 선생님 좋아했는데. 섭섭하네" 하더니. "식당이 이 동네니까 한 번 들러요. 남편 목사 아저씨하고 한 잔 하러 와요." 사장님, 목사 아저씨, 한 잔. 울타리 밖 언어들이 너무나 신선하고 좋다. 


올 가을 삼원색. 소국, 홍옥, 바질. 바질이 금메달!

 

 

긴급 고용안정 지원금을 주겠다고, 지난번에 줬는데 또 주겠다고, 가급적 추석 전에 주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태어나서 일도 안 했는데 돈을 받긴 처음이다. 아니다. 두 번째구나. 아니, 세 번짼가. 전에 살아보지 않았던 세상, 코로나 세상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첫 번째는 지난 3월이었다. 이런 세상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올해 초, 몇 개월 앞의 강의들이 약속되어 있었다. 코로나 세상이 오고, 대면 예배가 불가능해지면서 모든 강의 약속은 잠정적으로 취소되었다. 강의 취소 또는 무기한 연기를 논의하던 교회로부터 갑자기 강사비 입금 문자가 왔다. 이미 시간을 빼놓으셨고 강의 준비도 하셨을 테니 강사비를 드리는 게 맞다, 는 취지였다. 아이구, 아닙니다! 강의도 안 했는데요! 이런 문자를 보내고 다시 답신이 오가다 선지급된 것으로 정리되었다. 자유로운 대면 예배가 가능해지면 제일 먼저 달려가야 할, 하고 싶은 곳이다. 모든 강의가 취소되고, 수입원이 끊어진 난생처음 겪어보는 상황에서 돈이 아니라 마음 때문에 크게 위로를 받았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자본주의를 거스르며 이렇게 살아야지, 결심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는 재난지원금을 네 식구 몫으로 받았는데,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는 용도로 썼다. 이런 걸 두고 돈이 스쳐지나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돈이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어느새 잔고가 없다는 말에 여러 장으로 나눠 받은 카드를 바꾸고, 금세 또 바꾸고. 그렇게 스쳐갔지만 고마운 지원금이었다. 특고·프리랜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을 뒤늦게 알고, 설마 또 주겠나 싶어 관심 없다가 마지막 날 부랴부랴 신청을 했었다. 서류는 역시 공기관 발행 서류. 어린이집 여러 곳보다 학교에서 했던 치료가 도움이 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부랴부랴 필요한 서류를 보내준 제자 뮨진의 도움이었다. 재난지원금과 달리 현금 입금이 되어 '지원' 받은 느낌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추석 얼마 전 2차 긴급 고용안전 지원금을 준다는 문자가 오더니, 추석 전에 따악! 입금이 된 것이다. 코로나 세상 아닐 때도 명절 보너스 받는 삶은 아닌데. 명절 앞두고 입금된 지원금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동방에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 태극기 휘날리며 벅차게 노래 불러 자유 대한 나의 조국 길이 빛내리라" 

 

재난지원금을 받고 얼마 안 되어 친구들을 만났다. 지원금 얘기가 나왔다. 나는 입도 떼기 전에 대화의 흐름이 정해져서, 끝내 나는 입을 떼지 못한 대화지만. 초긍정 마인드를 가진 친구 얘기에 입이 딱 달라붙었다. "야야, 나라가 돈을 주니까 받기는 하는데. 나는 걱정이야. 이렇게 세금 다 퍼 쓰다가 우리 애들 때는 어떻게 되는 거냐? 이렇게 선심 쓰다가 나중은 어쩌려고 그러지?" 했다. 이쯤에서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끼어들질 못했다. "그래도 좋긴 좋더라. 공돈 들어와서 뭘 할까 하다가, 이번에 그걸로 선글라스 바꿨어. 애들도 같이" 여기서도 한 번 틈을 봤는데 바로 이어지는 "핫핫핫핫...." 하는 웃음소리에 포기하고 말았다. 상당히 구차하게 느껴지는 내 얘기를 먼저 해야 내 주장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기는 자존심이 상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는 게 어떠냐고 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 생각도 나고. 핫핫핫핫, 초긍정 웃음소리에 묻혀 같이 웃고 말았다.  

 

집주인에게 정색하고 다시 물어 확인했다. 정말 주인의 부모님이 들어오시는 게 맞냐. 그게 아니라 임대차3법 피해서 전세금 올리려는 거라면, 원하는 만큼 올려주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담판 지을 생각이었는데. 주인이 들어오겠단다. 집을 알아보는데 이 동네, 저 동네 전세라곤 없다. 이유는 거의 한 가지! 주인이 들어온다. 핫핫핫핫.... 이럴 때 웃어야지. 있지도 않은 전셋집인데 전세가 상승은 말로 할 수가 없다. 1억이 웬 말이냐! 1억 5천이 웬 말이냐! 이런 우리 형편을 듣는 주변 분들이(주변 분들이 전세 사는 분이 없다ㅠㅠ) 우리보다 더 화를 낸다. 전셋값 잡는다더니 탁상공론으로 전세 사는 사람들 더 힘들게 만들었다고. 정부를 향해 욕을 욕을 해대는데. 듣고 있자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법망을 피해 "주인이 들어간다"며 뻔한 거짓말을 하고, 세를 올리는 사람들은 집주인인데. 보아하니 향후 몇 달 전세도 놓지 않고, 주인이 들어오지도 않아 빈집이 허다할 텐데. 그 집에서 나온 사람들은 몇 천씩 대출을 받고도 들어갈 집을 못 구해 전전긍긍일 텐데 말이다. 2년 만에 전셋값 올리지 못하게 하는 법, 4년 후 올릴 때도 상한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법이 탁상공론이 된 것은 집으로 돈 버는 사람들 '욕망'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그 정도로 법 만들면 세입자들 보호가 된다고 여긴 것은 집주인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탁상공론 아닌가. '법 사이로 막 가는' 부동산 놀이에 하루 이틀 단련된 분들이 아닌데 말이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 있다. 가족이 어디 아프면, 아픈 몸이 걱정이 아니라 병원비 걱정으로 마음이 내려앉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그들이 사는 세상도 있다. 잘은 모르겠다. 2년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집이 1억 씩 벌어주는 세상? 핫핫핫핫...... 언젠가 우리 모두 돌아갈 나라가 있다. 몸의 한계를 벗어나 그분과 함께, 그분처럼 살아갈 세상이 있다. 그 세상을 여기서 미리 사는 것이 내 꿈이다. 강의도 안 했는데 들어온 강사비, 일도 안 했는데 들어온 생계 지원비와 명절 전 입금된 현금 50만 원. 이런 일들은 언젠가 돌아갈 그 나라가 있음을 믿으라는 표식처럼 내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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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엔 여유가 있고, 냉장고엔 재료가 없고, 집에는 여자만 있고, 두 여자의 욕구는 항상 뚜렷하며 충만하다. 그런 날 둘이 먹는 점심은 이렇듯 만족스럽다. 최근 먹은 음식을 짚어보고, 그와 비슷한 메뉴는 싹 지우고, 두 사람의 욕구는 양보할 것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켜내며 조정한 끝에 메뉴를 정했다.

 

 

떡볶이 좋은데, 한 사람 매워야 하고 다른 사람은 케첩 떡볶이 같은 것은 어떻겠냐 하고. 단호박에 치즈를 올리고 싶기도 하고. 결론은 반조리 짜장 떡볶이에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소라 한 줌, 곤약 조금, 깻잎 몇 장을 넣어 우리만의 취향저격 떡볶이다. 매운 걸 먹고 싶은 엄마는 청양고추를 다져 따로 섞어 먹는 걸로.  

 

 

최초 욕구가 볶음밥이었던 딸의 욕구를 감안하여 낙찰을 본 것은 날치알 주먹밥. 이 역시 추석에 마끼를 해먹고 한 줌 남은 날치알을 활용하는 것으로! 다진 야채와 김, 마요네즈까지 넣어 만든 주먹밥이다.

 

 

그리고 딸 최애 소스인 새우젓!으로 간을 해 간단하게 끓인 계란국. 분식집 점심 장사는 이렇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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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떡볶이다.

종속과목강문계를 묻는다면, 기름 떡볶이 과에 속한다.

삼겹살을 구워 거기서 나온 기름을 베이스로 한 것이다.

삼겹살 기름에 편으로 썬 마늘 듬뿍, 태국 고추 등을 넣었고

굴소스와 우스타소스 등 비슷한 색의 소스를 섞어 맛을 냈다.

굴소스 있는 곳에 청경채는 웬만하면 따라붙는 것이 좋다.

 

우리 가족은 맛을 느낄 줄 모른다.

늘 내가 답이 정해진 요리를 하기 때문이다.

“맛있다. 대박이다”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요리사로서 강요한 적은 없다.

그저 나는 기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어때?”라고 물었을 뿐이다.

가끔 “아이, 왜 이렇게 짜지? 실패네 실패. 완전 맛 없을 거야.”

설레발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면 자동 반응이 나온다.

“대박, 완전 맛있어, 최고야 최고!” 같은 것들.

이렇듯 정해진 답을 가지고 먹기 때문에 맛을 느끼진 못할 것이다.

가엾은 사람들.

 

이 블로그 요리 카테고리에서 흔한 게 떡볶이고,

저런 비주얼 정말 많이 보셨다 해도,

속단하지 마시라.

신상 맞다.

나는 단 한 번도 삼겹살을 떡볶이에 넣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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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에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추석, 설 명절에 흔하디 흔했던 장면들,
꿈만 같다.


생후 10개월 증손자와 95세 할머니가 눈을 맞췄다. 한 세기 가까운 나이 차이다. 사람을 알게 되면 이름부터 물어보고, 그 이름을 성경 안쪽에 적고 굳이 ‘이름’ 불러 기도하던 할머니.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외우니 적을 필요도 없다. 할머니가 그렇게 사랑하는 손녀 ‘지영이’가 낳은 ‘준우’의 이름은 듣자마자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할머니는 귀도 눈도 어두워 정확히 들을 수 없고 글자를 읽을 수 없으니 새로운 단어가 입력되지 않는다. 준! 우! 준우! 주누! 고래고래 알려드려도 입력불가. 자꾸만 ‘아가, 아가~아’ 손을 내밀어 보는데 아가는 엉덩이를 뺀다. 아가는 아가대로 10개월 뇌로는 백발이 규명되지 않는다. 마주하면 무조건 좋은 우리 엄마랑 뭔가 비슷한데, 결정적으로 하얀 저건 뭐지? 못 보던 생물첸데. 아가, 아가, 손! 슬금슬금 엉덩이 빼기. 내내 그런 줄 알았는데 제 엄마 지영이 카메라에 이런 장면이 담겼다. 하얀 할머니 머리, 헤~ 바라보는 준우 눈빛. 백발 할머니의 표정은 안보여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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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일이다.

명절이라고 명절 음식 먹은 게 1도 없는데,

명절 저녁에 기름기 없는 깔끔한 음식을 먹고 싶으니.

52년 몸에 쌓인 명절 음식이 때맞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냐.

명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추석 저녁에

며칠 기름진 음식 먹은 느낌으로 풀밭 밥상을 차렸다.

 

희한한 일이다.

명절에만 엄마를 보던 것도 아닌데,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만 들어도 엄마 생각이 난다.

탄천을 걸으며 아무 자극 없는데도 엄마가 보고파 눈물이 난다.

목까지 슬픔이 가득 찬 것이, 다시 3월이 온 것만 같다.

엄마가 보고 싶다. 너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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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저랬던 애들이 이렇게 자랐다. 한 아이는 깊은 아픔 헤아리는 마음 따뜻한 청소년이 되었고, 한 아이는 거침없이 돌파하며 자기 한계에 맞서는 성인이 되었다.)

 


❝엄마~아! 누나가 마음으로 나한테 나쁜 말해.
아냐, 알 수 있어. 알 수 있단 말이야. 진짜로 마음속으로 나쁜 말 했단 말이야.
마음속으로 해도 내가 다 알아. 입도 이렇게 쪼금 했단 말이야.❞

❝엄마~아! 누나가 나를 모른 척 해.
누나 옆에 와도 나를 자꾸만 모른 척 해.
정말이야. 모른 척하는 거야.
아니야. 누나가 거짓말하는 거야.
아까 모른 척했어.❞

(두 사건 다 증거 불충분으로 처벌 불가!
현승아 고자질을 하려면 누나처럼 이렇게!)

❝엄마! 우리 반에 최석호가 나한테 나쁜 말은 아닌데 행동으로 나쁜 말을 해.
소리는 안 나지만 나쁜 말이야. 이렇게 손가락을 다 접고 오빠 손가락만 펴서
나한테 내밀어. 이거 나쁜 말이지? 그래서 내가 나쁜 말이라고 혼내줬어.

엄마도 다음에 학교에 와서 한 번 혼내줘.❞

 

 

 

고개를 떨군 줄도 모르고 걷고 걸었다. 어느새 단지 안에 들어섰다. 평소 같으면 하늘 올려다 보길 여러 번, 주저앉아서 '꽃 검색' 카메라로 들꽃 찍기도 한참 했을 것이다. 한낮에 걷는 것은 오랜만이니까. 그런데 하늘도 안 보고, 들꽃도 안 보고, 바람도 느낄 줄 모르고 땅만 보며 걸었다. 똑똑똑똑, 딱딱딱딱. 무슨 소리지? 작은 새 한 마리가 내는 소리라니! 내 마음에 노크하는 소리였다. 똑똑똑, 거기 사람 있나요? 사람 마음 있나요? 

 

세상에! 저 작은 부리로 저렇듯 우렁찬 소리를 낸다.

 

어이, 여기 좀 봐요. 고개를 들어 여기 좀 보라구요. 뭐 잃어버렸나요? 마음을요? 그렇군요. 어쩐지 발걸음이 헛헛하더라구요.

금세 휘릭 날아올라 푸르름 속으로 사라졌다. 내 시선을 낚아 하늘로, 구름으로, 바람으로 꽂아 놓고서. 덕분에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다시 장착하고 지금 여기로 돌아오게 되었다. 색의 향연이 눈에 들어온다. 저 예쁜 보랏빛이라니! 새소리 풀벌레 소리도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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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우울증 환자 맞나?

 

연구소 카페에 올라온 글의 마지막 문장, "나, 우울증 환자 맞나?" 마음인지 귓가인지 어딘가에서 맴돈다. 그러더니 오늘 저녁엔 "나, 우울증이 아닌 게 맞나?" 하는 이상한 말로 바뀌었다. 잠깐 일어났다 주저앉고, 잠시 힘이 들어갔다 금세 푹 가라앉는다. 아, 그러고 보니 며칠 '긍정'의 말들이 그렇게 거슬렸다. 잘해요, 좋아요, 훌륭해요, 멋져요. 긍정의 캐치볼이 오가는 걸 유난히 견딜 수 없었다. 잠시 혼자인 저녁 시간, 클래식 FM은 전기현의 세음이다. 무기력하게 앉았는데 들리는 기타 연주의 익숙한, 익숙하게 아픈 멜로디. 정태춘 박은옥의 <봉숭아>라니! 떨며 우는 소리 같은 하모니카 소리다. 하모니카 소리에서 가사가 들린다.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터인데
그리운 내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 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나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대학 1학년 1학기에 과대표를 했는데, 선거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선배들이 노래를 시켰다. 그때 부른 노래가 저 <봉숭아>. 앙코르곡으로 역시 정태춘 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를 불렀다. 그렇게 시작해서 총학 대의원 엠티에 가서 부르고, 도서관 앞 잔디밭에 앉아 짝사랑으로 힘든 친구가 불러달라면 불러주고, 정태춘 박은옥 노래 플레이어가 되었었다. 그 많은 노래 중 가슴에서 나오던 노래가 <봉숭아>였는데, 왜 그리 저 가사가 절절했을까. 친구들도 선배들도 사연 있는 여자의 노래로 들어주었다. 그 시절 나는 아직 실연의 경험도 없던 때였는데. 

 

하모니카 연주가 끝나고 전기현 아저씨의 목소리가 나오도록 꼼짝 않고 들었다. 그 끝에 "나, 우울증 아닌 게 맞아?"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 좀 우울하구나." 내 마음이 알아졌다. 요 며칠 마음이 한없이 협소해지고, 견딜 수 없는 말들이 많았던 건 우울이었구나. 이왕 플레이 버튼 누른 김에 더 서글픈 <봉숭아>도 들어보자. 송소희 노래보다 박은옥 님의 긴장되어 무표정한 표정, 정태춘 님의 깊은 주름이 더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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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황도는 말이지......

 

복숭아 먹다 세 번 중에 한 번은, 아빠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가 등장한다.

황도 통조림 있거든.

그거는 아플 때만 먹을 수 있었어.

아빠는 황도 백도 통조림을 너무 좋아했는데, 

그게 먹고 싶어서 아팠으면 좋겠다, 했어.

 

그래서 만들어봤다.

지인 집사님 찬스로 갑자기 복숭아 과수원 방문하게 되었다.  

싸게 한 보따리 사고도, 얻은 낙과가 더 큰 보따리.

한 시라도 빠르게 처치해주야 하는 시한부 복숭아들 골라 '옛날 황도 통조림' 만들었다.

맛도 모양도 성공적!

 

내겐 아직 청년 같은 남편이 애들에게 "아빠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야"

할 때는 정말 옛날 사람 같더라.

복숭아 다듬는 엄마 아빠 사진을 찍던 현승이가

"배경만 바뀌면 노년의 부부 같애. 시골집 마당이나 이런 곳이면 딱인데!"

 

황도 통조림 만드는 옛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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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5일 

내적 여정 세미나 1단계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요즘 SNS 흔한 게 온라인 강의 포스터지만, 이제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zoom 강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이 9월 5일은 '역사적'이란 진부한 표현이라도 갖다 붙여야 할 날이다. 지난 5월부터 zoom 강의를 경험하긴 했다. 언택트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연구소도 발을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었지만 내적 여정만큼은 아니지 싶었다. 설령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내적 여정 세미나는 멈추는 게 맞지, 어떻게 화면으로 보며 마음을 나누겠냐고, 혼자 생각했다. 결국 온라인 세미나를 진행하고 말았다.  

 

2020년 5월 

미주 코스타가 온라인으로 개최된다는 소식과 강사로 초대하는 메일을 받았다. 연거푸 몇 번 거절했던 터라 죄송한 마음, 온라인이니 집에서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안도감으로 덜컥 수락하고 말았다. Kosta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 하더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강의는 미리 찍어 보내야 하고, 사전 홍보 책 소개 영상 숙제도 덤으로 받았다. 휴대폰으로 대충 찍으면 되려니 싶었는데 Kosta가 호락호락해야 말이지.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겠는 웹캠과 탁상 마이크 같은 걸 검색하고, 남편은 또 어디서 얻어오고. 새로운 주제의 강의 준비도 부담 백배인데, 새로운 강의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5월 한 달을 보냈다.  알고 보면 그럴 일도 아니었는데, "모른다" "모르는 영역이다" 이 의식으로 내가 얼마나 두려움에 휩싸이는지 알게 되었다. 

 

2020년 7월

Fear To Faith Now, 드디어 온라인 코스타가 열렸다. 아,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전향해야 하는 지금! 새벽 5시, 강의를 위해 ktx 타러 나가보긴 했지만 강의를 할 시간은 아니다. 고요한 거실, 노트북 앞에 홀로 앉아 코스타 세미나 강의라니.  모든 것이 새롭다. (『모든 것을 새롭게』! 헨리 나우웬 신부님 책 제목 잘 지으셨네요.) 두 번의 강의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두 번째 강의를 마친 새벽, 멍하니 새벽산을 바라보며 감동을 머금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화상 강의로 메시지 전달이 제대로 되겠나, 마음의 소통이 일어나겠나,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만 빨리 끝내고 다리 뻗고 자는 게 목표다, 이것 뿐이었다. 30분도 되지 않는 질의응답 시간, 말로 글로 전해져 오는 질문과 반응에 마음 깊은 곳이 떨렸다. 상실, 애도, 고독, 영성. 3월 엄마 돌아가신 이후 붙들고 있던 것을 말로 꺼내놓을 때 어떻게 들려질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것도 경험과 상황이 다른 해외 유학생들에게 말이다. 적어도 내 안에 일어난 파장은 랜선을 타고 갔다 부딪쳐 다시 돌아온 메아리였는데,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아픔과 갈망이 다르지 않다는 것.

 

온라인 Kosta 덕에 COVID-19가 가져온 변화에 빨리 적응하게 되었다. 낯선 상황, 모르는 것에 대한 내 두려움이 낳는 완고함과 방어 또한 부끄럽도록 생생하게 마주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몸과 몸이 함께 하지 않는 만남'을 폄훼하며 과한 반응을 보였던 것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돼" 주먹 불끈 쥐고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쟁이 노인네 같았다. 신비로운 인연이다. 최근 몇 년은 참석도 못했고, 예전 그 만남의 기억을 간직할 뿐 이제 멀어진 인연이라 생각했는데. 처음 참석했던 그때처럼, Kosta는 나로 하여금 두려움에서 한 발 내디뎌 강사로서 다른 자리에 서도록 한다. 

 

2020년 8월

올 여름은 그렇게 서서히 온라인 강의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8월에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연구소 식구들과 zoom으로 자주 만났다. 예정된 워크숍을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해 취소한 아쉬움에 zoom에서 모였다. 재미나게 모였다. 케이크를 준비한 생일 축하도 하고. 글쓰기 모임에선 글을 낭독하고 들으며 눈물 찍어내는 일이 잦았다. 랜선이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구나! 손가락만 하게 보이는 얼굴을 보면서도 울고 웃으며 연결될 수 있구나. 랜선이 아니라, 우리들이 신비한 존재구나! 비록 몸으로 마주칠 수 없지만 영혼으로 이렇듯 연결되고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로구나. 존재의 신비여!

 

2020년 9월

지도자과정 2학기도 온라인 강의가 되어야 했다. 정식 개강 전에 책 나눔으로, 가벼운 수다로 zoom모임을 했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 '낯선 것에의 두려움' 뽀개기 시도였다. 어렵지 않게 2학기 개강 첫날 모임을 마쳤고. 6주 글쓰기 과정도 마쳤다. 이게 웬일인가! 고집쟁이 장로님처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돼!" 했던 이유는 '몸'이었다. 몸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런데 zoom에 익숙해지다 보니 오프라인 모임보다 '몸'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비록 눈동자의 흔들림은 보이지 않지만(집단 여정에서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습기, 긴장은 빼도 박도 못하는 마음의 거울이다.) 몸이 그것을 대신한다. 화면으로 보이는 몸이 말보다, 글보다 크게 말한다.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이 연결과 소통의 신비란!

 

2020년 9월 6일

9월 5일 토요일 오전 10시. 역사적인 첫 온라인 내적 여정 세미나를 진행했고. 9월 6일 주일 0시 30분. Kosta 간사 수양회 강의를 했다. 식구들 잠든 한밤중에 거실에 앉아 찬양 하고, 간증을 듣고, 강의를 했다. 주제는 '희망'. 이토록 희망 없는 시절에 희망을 말하는 것은 너무 허망한 일 아닌가.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 현실이 아프거나 막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희망은 말해져야 하고, 발굴되어야 한다. 없지만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요즘 내 영성의 길잡이가 되고 있는 선생님은 14세기 여성 신비가 노르위치의 줄리안인데,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기를 살았던 영적 선배, 언니이다. 아침마다 아껴서 읽는 그의 저서로 영혼이 촉촉해진다. 14세기 살던 언니가 아침마다 내게 들려주는 말이 있다. "All shall be well!" 잘 될 거다. 모든 것이 잘 될 거다. 단단한 내 고집이 부서지는 한, 그래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한 잘 될 것이다.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 있고, 사람이 있지만 어제의 내가 깨지는 한 이 어려운 세계와 사람이 내게 흘러들 틈이 생길 것이다. All shall be well!  

 

 

하루 세 끼 집에서 먹는 나날이지만 스트레스는 크게 없다. 남편과는 정말 오랜 시간, 다 큰 아이들과는 최근에 더욱 가족의 일을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많이 얘기하고 싸우고 실행하고 있다. 먹고 치우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이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데에 네 식구가 생각으로 행동으로 더욱 합의해가고 있다. 그래서 계속 집밥, 집밥, 집밥의 연속이지만 한결 여유가 생겼다.  

 

 

현승이가 갑자기 "나 오늘부터 4시 이후에 밥을 안 먹으려고. 살이 빠지면 볼살이 제일 먼저 빠진대. 볼살 빠지게 할 거야. 엄마, 나 4시부터 밥 안 먹어." 한다. 무슨 갑작스러운 다이어트 선언인지, 그리고 또 4시는 무슨 뜬금없는 시간인지, 뱃살도 아니고 볼살을 빼는 다이어트는 또 뭐라는 건지. "그래!" 하고 웃고 말았는데, 나름대로 진지하고 비장한 듯하다. "나 진짜야 엄마, 이따 안 먹어도 뭐라고 하지 마." 이런 말 하면 지키는 아인데, 진짜인가 보다.

 

 

정말 네가 다이어트를 한다면......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 장을 보러 나가고 싶었다. 현승이가 진짜 좋아하는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해야겠다는 뜨거운 열망에 사로잡혔다. "현승아, 저녁 메뉴는 차돌박이 된장찌개야. 식사 시간은 6시." 현승인 농담인 줄 알지만 나는 진짜였다. 현승이가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좋은데, 그냥 얘를 약 올릴 수 있다면, 아무리 귀찮아도 장을 보러 나갈 수 있고, 요리를 할 수 있다! 정말 나는 그렇다. 너무 신난다.

 

 

집 앞 마트에 나가 싸구려 냉동 우삼겹을 사다 된장찌개 끓였다. 약 올리는 재미로 끓였다. 오직, 약 올리기 위해서. 마음을 꿰뚫는 현승이가 말했다. "엄마, 나를 유혹하려고 끓인 거 아니지? 그냥 정말 웃기려고 끓인 거지? 엄마 신났지? 진짜 7번! 진짜!" 물론 6시 넘어서 식탁에 앉아 된장찌개에 밥을 두 공기 먹은 현승이는 통통한 볼로 맛있다 히죽거렸고. 옆에 있던 덕분에 맛있는 된장찌개 횡재한 채윤이는 "어이구, 익살녀 익살녀! 익살녀 엄마!"

 

 

냉동 우삼겹이 한 줌 남아 있었다. 줌 강의 준비로 노트북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자기 방 교실'에서 수업하다 점심시간이라고 나왔다. 알아서 챙겨 먹는다며 냉동해둔 밥 꺼내고, 냉장고 문 열고 섰던 현승이가 "엄마, 삼빔면이라고 알아? 비빔면에다......" "아, 엄마가 맞혀볼게. 비빔면 위에 삼겹살 올려서 먹는 거 아냐?" "오, 맞아! PC방 인기 메뉸데 맛있어." "현승아, 지금 편의점 가서 비빔면 사와." 노트북 뚜껑 덮고 바로 일어났다. "엄마가 우빔면 해줄게. 어제 남은 우삼겹 있거든." 바로 현승이는 튀어 나갔다 사들고 온 비빔면을 끓이고, 나는 우삼겹에 허브 여러 종류를 뿌려서 구웠다. 뚝딱 신메뉴 출시. 

 

 

재미로 먹고 맛으로 먹는 오리온 고래밥

재미로 하고 맛으로 먹는 오늘의 요리들

 

 



나의 몸, 나의 기억, 나의 이야기를 쓰고 나누는 온라인 우물가(Zoom)로 초대합니다.

발설의 치유력은 강합니다. 내가 쓴 글을 낭독할 때, 가장 먼저 내 귀가 듣습니다. 마주 앉은 여성들, 또 다른 ‘나’들이 판단하지 않는 태도로 들어줍니다. 발설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지만, 쓰고 읽고 나눠보면 알게 됩니다. 글로 흘러나온 은밀하고 사소한 나의 이야기가 의미가 됩니다. 나만의 의미가 되고 자유가 됩니다.

‘잠잠함’을 미덕으로 강요받은 교회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초월하는 하나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사는 나, 누구도 아닌 나를 쓰는 여정은 필연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분의 이야기에 닿을 것입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9월 22일(화) ~ 10월 27일(화) 오전 9시30분 ~ 12시(6주간)
+ 인원 : 6명(선착순)
+ 수강료 : 15만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2771-4445
+ 신청 링크 : https://bit.ly/2QSxUrc

✔ 강의와 나눔 내용 :

1강. 나는 쓰고 말하는 나다 : 치유하는 글쓰기의 힘
2강. 나는 나의 기억이다 : 기억으로 쓰기
3강. 나는 나의 감정이다 : 얼어붙은 감정 글로 흘려보내기
4강.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 수치심 떠나 보내기
5강. 나는 나의 몸이다 : 여자의 몸, 글로 드러내기
6강.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 하나님 어머니 만나기

✔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습니다.
모임 시간마다 바로 쓰고 나누는 글 있습니다.
필독서와 독후감 과제 있습니다.
Zoom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 필독서 : <헝거> 록산 게이, 사이행성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에스테스,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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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이렇듯 꾸물꾸물한 날엔 덩달아 같이 꾸물거리자.

늦잠 자고 일어나 아침은 대충 넘기며 꾸물거리자.

배가 고프기 시작하면 큰 냄비에 멸치를 이따만큼 때려 넣고 육수를 내자.

국물 떡볶이를 만들자.

앗, 꾸물거리지 말자. 온라인 수업 중인 아이의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떡, 소시지, 곤약, 어묵, 양배추, 당면.

냉장고에 있는 한 줌씩 남은 모든 걸 털어 넣어서 끓이자.

양이 많아 담을 그릇이 없다면 대야에 담자.

대야 떡볶이를 먹자.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으면 세수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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