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베이글 샌드위치'는 우리 집 조식의 시그니처 메뉴다. 아이들 친구가 집에 와서 자는 날, 손님 접대용으로 해주는 아침 특별 메뉴다. 현승이 친구가 와서 자는 덕분으로 특식 아침이 되었다. “도시락으로 싸갈까, 아침으로 먹을까" 고민하던 채윤이가 결국 우적우적 먹으며 혼잣말을 했다. "이걸로 저녁까지 버텨야지." 양재동 작업실로 연습 가는 첫날이다.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제 피아노를 사고, 오래 알아보고 발품을 팔아 작업실을 계약했다. 어제는 아빠와 함께 피아노를 들이러 다녀왔다. 복도가 좁아 들어가려나 어쩌려나, 방이 좁아서 피아노와 키보드가 함께 들어가려나 어쩌려나 걱정이 많았다. 결국 자리를 잡은 피아노 앞에 앉은 채윤이 영상이 가족 단톡방에 올라왔다. 연주하는 채윤이가 아니라 우는 채윤이다. 나는 식사 약속이 있었고, 만난 분이 화장실 간 사이 영상을 확인했는데 덩달아 눈물이 나 수습하느라 혼났다.
연어가 듬뿍 든 럭셔리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채윤이는 궁상맞은 소리를 한다. "이걸로 저녁까지 버텨야지!" 그러라고 한 적이 없는데, 채윤이는 학기 중에도 용돈 아끼기 위해 삼각김밥으로 떼우거나 쫄쫄 굶고 집에 와서 먹기도 한다. 양재동 작업실까지 신분당선을 타면 교통비가 어마어마하다며 분당선을 타고 조금 돌아서 다녀야겠단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용돈을 넉넉하게 책정해본 일이 없긴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인상 협상'을 각오하고 있다. 또래에 비해 용돈이 턱도 없이 적다는 걸 알기에 요구만 하면 올려줄 텐데 그런 일이 없다. 삼각김밥을 먹네 어쩌네 하는 말 듣기 싫어서 용돈을 올려줄게, 해도 "알았으니 일단 한 번 이번 달 더 살아보고 얘기하겠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돈도 잘 모은다. 없는 중에도 돈을 잘 모으는 건 날 닮았다. 암튼, 저렇게까지 굶어가며 용돈을 아끼는 채윤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실은 그런 채윤이가 몹시 대견하면서 동시에 안쓰럽고 가슴이 저릿하니 아프다.
피아노만 해도 그렇다. 제 음악을 하기 위해 제 악기를 가질 때가 되었고, 요구하면 어떻게든 마련해주었을 것이다. 헌데 당연히 제가 사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어렸을 적 세뱃돈부터 시작하여 최근 아르바이트비까지 모은 통장을 털어 중고 야마하 피아노를 샀다. 난생처음 제 피아노를 가지고, 제 연습실을 가진 채윤이가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보다 울음이 터져 나온 것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역시 너무나 대견하고, 대견한 만큼 아프다. 어릴 적부터 워낙 독립적인 아이였다. 내가 그렇게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타고난 아이였다.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겠다는 뜻으로 내가 했던 일은 주로 채윤이에게 상처와 결핍이 되었고, 제 가진 존재의 힘으로 상상보다 더 독립적인 어른이 되었다.
나 대학 들어가던 해 엄마가 사준 영창 피아노가 있었다. 말하자면 대학 입학 선물이었다. 내가 음대를 간 것도 아닌데... 엄마 딴에는 아버지 대신 준 선물이었을 것이다. 중학교 1학년 그 겨울, 서울 가시는 아버지의 중요한 계획은 피아노 구입이었다. 목사관을 새로 지어 내 방이 생겼다. "요번에 서울가믄 신실이 피아노 알아보고 오갔다우" 하셨었다. 그러고는 젠장, 피아노가 아니라 아버지 몸이 피아노처럼 나무 상자에 담겨 돌아왔다. 대학 입학 선물로 엄마가 피아노를 사준 건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내 마음은 1도 몰라주고 아버지 생각만 했던 엄마. 그 비싼 피아노를 안방에 떡하니 들여놓고 대학생 된 딸에게 구두 한 켤레 사주지 않았다. 그 피아노는 결과적으로 채윤이 것이 되었다. 소리 나지 않는 피아노로 바꾸는 기계를 달아 예중 입시 연습용으로 제대로 잘 썼다. 그다음부턴 채윤이 격에 맞지 않는 애물단지가 되어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채윤이가 새로 피아노를 사기로 했으니 저 피아노를 처분해야겠는데 엄마 괜찮겠냐고 물었다. 괜찮고 말고,라고 했지만 피아노 치우는 모든 과정을 내내 모른 척했던 건 괜찮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일이 자꾸 떠오르는 건 감정이 고여 있는 탓이다. 대학원 준비하며 과외 알바를 하던 시절이었다. 중고생 과외로 돈이 쑥쑥 모아졌다. 그때 집에 오래 쓰던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고치는 비용이면 새 것 사는 게 낫다는 엄마 말에 모은 돈을 내놓았다. 순순히 내놓았다. 순순히 내놓았으면 기억에서도 지울 일이지, 그 시절 나를 생각하면 안쓰럽기 그지 없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피아노를 팔아 냉장고를 살 걸 그랬다. 제가 모은 돈으로 제 피아노를 사는 채윤이와는 전혀 다른 상황인데 왜 이 시점에 그 일이 떠오르는 걸까. 피아노 앞에 앉아 우는 채윤이가 채윤이로만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너는 엄마 아빠가 있는데 왜 사달란 말을 안 해? 나야 아버지는 아예 없고 엄마는 힘이 없어서 내 살 길 내가 찾아야 했으니 그렇지. 넌 엄마도 아빠도 있잖아. 이런 지점에서 맴도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택도 없는 견줌이다. 제게 꼭 필요한 것을 위해 제 손으로 장만하는 일은 안쓰러운 것이 아니다. 채윤이의 독립성은 어쩔 수 없었던 나의 독립성과 다르다. 하지만 오늘 채윤이의 피아노는 내 피아노와 닿아있다. 내 것이었지만 채윤이 것이 되었다가 처분한 그 피아노와 닿아 있다. 채윤이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그 피아노를 두들겼고, 이제 이 피아노를 두들겨댈 것이다. 아버지가 내게 사주려 했던 피아노, 그때 아버지가 사줬으면 참 좋았을 피아노, 아버지 대신 엄마가 사준 피아노, 엄마가 사줘서 결코 선물이 되지 못했던 피아노. 그 피아노를 내 마음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쉬운 일인데, 내게 남은 부모님의 흔적과 그것이 채윤이에게 흘러간 것들은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것 나쁜 것 따질 수 없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님도 안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느껴진다.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부분은 좋은 것으로,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좀 나쁘게 느껴진다. 그냥 가슴이 좀 띵하게 아프다.
내남이 알아주는 떡볶이 러버로서 다양한 신메뉴 개발을 해왔다. 핸드드립 커피 사랑하지만 맥심 모카골드도 마다하지 않듯 인스턴트 떡볶이도 애용하고 있다. 다만 만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 그런데 어제 최강자를 찾았다. 홍대 미미네 국물 떡볶이는 합정동 살 때 자주 먹었는데. (아, 그쪽은 정말... 조폭 떡볶이, 미미네 떡볶이, 망원시장 순이네 고릴라까지. 떡볶이의 천국이었다! ) 트레이더스에서 미미네 떡볶이 인스턴트 제품을 사 왔는데 거의 비슷하다. 김말이 튀김만 있으면 완벽 재현될 것 같은 느낌. 물론 기본양념에 파 마늘 듬뿍 넣어서 채윤네 떡볶이화 한 것은 당연하고. 살짝 아쉬운 건 인스턴트 떡볶이들이 공통적인 약점인 단맛이었다. 너무 달아서 죄 망쳐 버리는 거다. 이것도 조금 덜 달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식구들도 모두 입을 모아 극찬, 어제 먹고 오늘 또 먹기로 했다. 물론 채윤네 떡볶이로 변신해야지. 모두 좋아하는 당면 사리를 듬뿍 넣었고, 당연히 간을 더 해야 하는데 유난히 칼칼한 고춧가루가 있어서 넣었고, 맛간장으로 간을 더 했다. 파 마늘 추가는 기본. 완전 성공이다. 살짝 넘치는 단맛을 잡았고 칼칼한 국물에 넉넉히 넣은 당면 건져 먹는 맛도 최고. 현승이 주문으로 급히 반숙 삶은 계란도 만들어 국물 남은 것에 적셔 먹었다. 내일도 먹을 수 있을 듯.
예정대로라면 기도 피정 첫날 밤을 지내고 있을 시간이다. 예정대로라면 어제 그제는 연구소 지도자 과정 종강 피정을 진행했어야 했다. 글에 파묻혀 살던 11월을 연이은 피정으로 마치고 다음 월요일 쯤 두 다리 쭉 뻗을 예정이었다.
이승우 작가 신작 소설 『사랑이 한 일』은 두 다리 쭉 뻗을 다음 주 쯤 받아 읽으려 했었다. 읽고 싶어 안달이 났었는데 연이은 피정들이 취소되고, 책이 배송되었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세상에 무려 선생님의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모은 책이다. 실은 나도 이번 주에 에필로그를 써서 송고했다.책 한 권 낼 때마다 가장 어려운 글이 프롤로그 또는 에필로그이다. 어려운 이유는 하나. 멋지게 쓰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초고를 써놓고 하루 이틀 지나 다시 들여다 보면 '허세'가 그득하다. 못마땅하고 부끄러운데 쓰는 방법 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쓰고 만다. 글이 안 풀릴 때 하는 딴짓 중 하나가 책 검색 놀이이다. 그 놀이를 하다 발견한 박완서 선생님 책이다. 이걸 읽고 나면 내 에필로그는 한 자도 쓸 수 없을 것 같아 일단 보관함에 담아 두었었다. 붙들고 읽자면 내가 쓴 에필로그가 떠올라 조금 괴롭겠지만 그 괴로움보다 읽는 행복이 더 클 것.
꼼짝없이 다시 집콕의 시간이다. 때마침 두 권의 책이 도착했다. 때는 사실 내가 맞췄다. 바이러스가 침범해 망가진 시간표는 어쩔 수 없지만, 이미 망쳐진 내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나는 늘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은 때에 맞춰 수정하면 되니까. 천만 시민 멈춤에 동참하여(서울 시민은 아니지만) 모든 일정 취소(당)하고 기분이 좋은 이유!
시도할 것이라면 끝까지 가라 이것은 여자 친구와 아내와 친척들과 직장과 어쩌면 너의 마음까지 잃어버릴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3~4일 동안 먹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추위에 떨 수도 있고 감옥에 갇힐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당하고 고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고립은 선물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네가 얼마나 진정으로 그것을 하길 원하는가에 대한 인내력 시험이다 그리고 너는 거절과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것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네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좋을 것이다
시도할 것이라면 끝까지 가라 그것만 한 기분은 없다 너는 혼자이지만 신과 함께할 것이고, 밤은 불꽃으로 타오를 것이다
그것을 하라, 그것을 하라 하고 또 하라 끝까지 끝까지 가라
너는 너의 인생에 올라타 완벽한 웃음을 웃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훌륭한 싸움이다
- 찰스 부코스키 <끝까지 가라> (류시화 옮김)
포기해라. 여기서 포기해라. 더는 못 갈 길이다. 네 깜냥에 여기만큼 온 것이 기적이지.
늘 내 안에 울리는 소리이다. 작아졌다 커졌다, 들렸다 안 들렸다, 하지만 아예 사라지진 않는다. 이 목소리로부터 나를 떼어낸 것은 얼마나 위대한 진보인가. 목소리가 나인 줄 알았고, 심지어 목소리가 하나님인 줄 알았지만 이제 나는 거리 두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들을 수 있지만 잘 대처하진 못한다. 크게 들리든, 작게 들리든 그 소리는 나를 통째로 쥐어 흔들고, 나는 뿌리부터 흔들린다. 하지만 그 소리가 나도 하나님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인내할 수 있다. 멱살을 내어주고 흔들 만큼 흔들다 제 자리에만 갖다 놓기를. 아니 결국 제 풀에 지쳐 놓아 주고야 말 것임을 안다. 흔들리는 그 순간 영혼의 울렁거림, 토할 것 같은 느낌, 항복하고 싶은 고통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이길 것임을 알기에 견딜 수 있다. 내 멱살을 놓아준 목소리는 말간 얼굴을 하고 "아윌 비 백" 하며 웃는다.
바이러스를 닮은 이 목소리는 변종을 마다하지 않는다. 내 가장 취약한 구석을 재빨리 파악하여 가장 달콤한 목소리로 돌아온다. 진심으로 나를 위하는 모습을 하고. 포기해, 포기해, 포기해. 나는 천사이고, 네 편이고, 너를 도우려는 것임을 알지? 내 소리가 듣기 싫다면 너 어쩌면 악마 일지 몰라. 천사이고 싶다면 내 말을 들어. 포기해, 포기해, 포기해.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어 진다. 끝까지 갈 필요 없다! 갈 수도 없다! 그만 두자! 그러면 그렇지! 내가 이렇지. 이런 꼬락서니로 여기까지 온 것이 기적이지! 천사의 말이잖아. 천사의 목소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내 무릎을 꺾어 놓을 셈이다. 까만 하늘, 별 하나를 의지해 기약 없는 여행을 하는 동방박사로 살고 싶은 마음은 어리석음이 된다. 별 따위를 이정표 삼는 것은 이상주의일 뿐이니, 실용적이 되라고 부드럽고 달콤하게 나를 흔든다. 부드러운 흔들림은 또 새로운 울렁거림으로, 악마인 나를 토해내고 나를 혐오하는 고통으로 끌고간다.
착한 사람들에게 멱살을 내어주고 두들겨 맞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나는 한 문단의 글을 썼는데, '고립과 고독'에 관한 내용이었다. 얼마나 위안이 되고 마음에 드는지 꼭 기억했다 꿈에서 깨어나면 그대로 옮겨 적어야지 했는데, 눈을 뜨자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열었는데 저 시를 듣게 되었다. 언제든 도망가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것은 내 고질병이다. 그것을 부추기는 목소리를 분별해야 한다고, 분별하기 위해선 고독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꿈이 말해주는 것 같다. 시가 말해준 것인가? 내 안의 다른 세미한 목소리가 들려주시는 지혜의 말씀인가.
‘자발적 거리 두기’라는 낯선 말이 익숙해지더니 일상이 된 한 해를 살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물러나 홀로 있다고 해서 내가 나와 함께 있어 줬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올해 마지막 글쓰기 모임을 알려드립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송년회 모임도 조심스러운 연말이 될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함께 하는 송년의 시간 보내고 싶은 분을 초대합니다. 발설의 치유력은 강합니다. 말하고 쓰는 것은 가장 주체적인 행위이기에 그 자체로 치유이고 성장입니다.
온라인 모임이니 계신 지역에 관계없이 연결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전국 어디든 막론하고, 해외에 계신 분들도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11월 23일(월) ~ 12월 28일 (월) + 시간 : 오후 8시~10시 30분(6주간) + 인원 : 6명(선착순) + 수강료 : 15만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2771-4445 + 신청 링크 : https://bit.ly/3eNlJar
✔ 강의와 나눔 내용 :
1강. 나는 쓰고 말하는 나다 : 치유하는 글쓰기의 힘 2강. 나는 나의 기억이다 : 기억으로 쓰기 3강. 나는 나의 감정이다 : 얼어붙은 감정 글로 흘려보내기 4강.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 수치심 떠나보내기 5강. 나는 나의 몸이다 : 여자의 몸, 글로 드러내기 6강.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 여자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습니다. 모임 시간마다 바로 쓰고 나누는 글 있습니다. Zoom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 필독서 : <헝거> 록산 게이, 사이행성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에스테스, 이루
가보지 않은 길을 안내할 수 없다는 상담과 영적 지도의 원칙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가본 길로 안내하는 것이 됩니다. 연구소의 모든 여정이 글쓰기로 흘러가고 있네요. 연구원, 지도자 과정 벗님들, 내적 여정을 깊이 가려는 분들이 결국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습니다. 오늘 연구소 SNS에 쓴 글, 그대로 옮겨 붙여봅니다.
나음터에는 글이 넘쳐납니다. 지도자과정 방에는 의식 성찰 일기가, 글쓰기 그룹에는 자기를 찾아가는 형형색색의 이야기가, 연구원 방에는 스터디 교재 독후감이, 카페에는 구슬 서 말을 꿰는 고유한 이야기들이.
이번 한주는 글 쓰는 에너지로 더욱 충만합니다. 이제 와 얘기지만 <중년,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모임은 연구원을 위한 글쓰기 모임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연구원 셋이 먼저 신청하고, 남은 자리에 새로운 글벗님들을 초대했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 되기는 언제든 현재 진행형이기에, 연구원들 역시 부단히 성찰하고 기도하며 자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만나는 글쓰기에 오롯이 머무르는 연구원들이 성장통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아픔 속에서 치유와 성장의 에너지는 더욱 충만합니다.
종강을 두어 주 앞둔 지도자 과정 벗님들도 가장 어렵고 중요한 숙제를 안고 글쓰기에 머물고 계실 겁니다. 에니어그램과 영성을 잇대어 더 깊고 넓게 배우는 것이 지도자 과정의 중요한 목표이지만, ‘상처 입은 치유자’ 되기 위한 성찰과 기도 훈련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을 안내할 수 없기에 좋은 상담가, 여성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제껏 닦은 눈으로 자신의 인생 여정을 새롭게 쓰는 가장 소중하고 어려운 글쓰기를 하고 계실 텐데, 고뇌와 고생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조각난 나의 기억을 이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자아 감각을 되찾는 과정입니다. 하찮아 보였던 나의 이야기가 그분의 이야기에 가닿는 것을 깨달을 때, 고립에서 빠져나와 연결의 충만을 누리게 되겠지요.
어제, 중년 글쓰기 두 번째 시간에 한 벗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그저 나의 이야기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쓴다 생각하니 글을 써야 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설렘 같은 것도 있었다고요. 지난 회기 때 한 벗님께서는 하루 한 시간 글 쓰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분주한 낮 시간을 보내면서 문득 “얼른 가서 글을 써야지” 하게 되셨다고요. 나를 만나는 시간이 설레고 기다려진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두 분의 말씀은 뭉클한 도전입니다.
응급실 다녀온 다음 날, 일을 손에 놓고 누워 있었더니 채윤이가 좋아했다. "엄마가 아프니까 좋다. 이렇게 여유도 있고" 아파트 한 바퀴 돌자고 나간 길에 어린애처럼 팔랑팔랑 걸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집에 함께 있어도 함께 있는 게 아니었다. 노트북 열지 않고 침대와 소파 정도 왔다갔다 하면서 그냥 쉬었더니 채윤이는 엄마가 진정으로 집에 있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나도 모처럼 집에 있는 느낌이었다. 밥 차려 놓고는 바로 노트북에 앉아서 이 일, 저 일을 하고,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는 게 일상이니까. 밥 차리고 바로 출근. 다시 잠깐 퇴근해서 밥 차리고 또 출근. 그런 일상이었구나!
한 주 지나고 병원 예약 잡힌 월요일. 채윤이까지 따라 나섰다. 점심으로 맛있는 막국수를 먹고 서현역에 차를 세우고 차병원까지 걸었다. 탄천을 걸었다. 걷기 딱 좋은 날씨에 예약 시간까지 넉넉히 남아 있어서 참으로 여유로운 걸음이 되었다. 아장아장 하던 채윤이와 한강변을 걷던 때가 엊그제 같다. 빨간색 원피스 입고 삑삑삑 샌들 소리 내면서 우리 앞을 걷던 채윤이가 눈에 선한데 언제 이렇게 컸다냐. 아침에 일어나 "엄마~아" 하고 나오면 "우리 채윤이 잘 잤어?" 하고 품에 폭 안아주던 느낌이 팔과 가슴과 배에 남아 있는데. 이즈음엔 "엄마~아" 하고 나와 안으면 내가 채윤이 품에 폭 안기는 형국이다.
엄마 아빠 사이에서 양손 치켜 잡은 채윤이를 "우웃~짜!" 하며 하늘로 날리던 기억도 있다. 아빠와 내가 번갈아가며 채윤이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이제 반대가 되었다. 엄마 아빠 앞, 뒤, 옆모습을 채윤이가 찍고 있다. 카메라에 담긴 우리는 저렇게 다 큰 딸을 둔 부모답게 충분히 늙었고. 아파서 뭘 할 수 없으니, 아픈 몸이 손발을 묶어 일을 못하게 하니 어릴 적 느낌으로 채윤이 손, 남편 손 다시 잡은 기분이다.
시리게 푸른 하늘과 시시각각 달라지는 구름, 살살 부는 바람. 가을날이 이렇게나 좋았던가요? 길었던 여름의 장마 탓인지.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낯설도록 좋아 자꾸 올려다보게 됩니다. 그때마다 마음의 수면에 오르락내리락하는 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탁 잡아 올리니 이 말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푸르기만 합니다.” 나가사키의 엔도슈사쿠 문학관 근처 ‘침묵의 비’에서 본 말입니다. 제 마음에는 내내 이렇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막막한데, 주여, 하늘은 푸르기만 합니다.”
올 3월,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낯선 일상이 시작되고, 약속되었던 강의며 일이 하나둘 취소되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세상을 살게 되었지요. 놀라움과 두려움에 “세상에 이런 일이!” “난생처음 겪어보는 일이다.” “평범하게 하던 악수, 일상이 그립다.” 말들이 무성했습니다. 비대면 예배도 충격이었습니다. 이제 그조차 평범한 일상이 된 듯, 묵묵히 살아내고 있습니다. 마스크 쓴 얼굴이 낯설지 않고, 갑갑하다느니 어쩌니 하는 불평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어른은 어떻게 견디겠지만 아기들이 그 갑갑한 마스크를 어떻게 쓰나 싶었는데. 웬 걸요! 요즘 아이들은 샤워하고 나와 속옷도 입기 전에 알몸으로 마스크 먼저 쓴다는군요.
그날그날 확진자 수를 확인하며, 마스크로 입을 막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경제적 타격이 견딜 만해서가 아니라, 이전 일상이 그립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실이 슬프지 않아서는 아닙니다. 나만 겪는 것 아니고, 나보다 더 아픈 이들이 있으니 그저 견디며 속울음을 삼킵니다. 끝을 예측할 수 없으니 무력할 뿐이고요. 저 고운 가을 하늘이 슬프게 보이는 것은 우울과 무력감이 깔린 일상 때문입니다. 저 투명한 푸르름과 대비되는 블루, 코로나 블루가 우리의 현실이니까요. 고운 하늘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땅의 일상은 이렇게 우울한데, 주님, 하늘은 청명하기만 합니다.”
가을 초입에 ‘희망’을 주제로 한 강의나 기고 요청을 연거푸 받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까칠함을 타고난 편입니다. 사람이든 환경이든 일단 삐딱하게 보게 됩니다. 불편한 것을 빠르게 감지하고, 불편한 것은 결국 말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재밌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긍정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허튼 희망을 말하고 부추기는 자기계발 심리학이나 긍정 신학을 혐오하는 편이고요. 희망을 말하기에 부적절한 성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코로나 19로 하던 일들이 끊어졌고, 경제적 타격도 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던 3월, 어머니를 천국에 보내드렸습니다. 격리조치로 면회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어머니는 홀로 땅의 마지막 호흡을 내쉬셨습니다. 아쉬움과 상실감으로 가슴이 조여드는 듯하고, 아직도 울지 않고 지나는 날이 없습니다. 이런 제가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요?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 Marcel)이라는 프랑스의 실존철학자가 있습니다. 철학자들의 관심은 인간 실존의 부조리함 아닌가요. 가브리엘 마르셀은 드물게 희망을 탐색한 철학자입니다. Homo Viator(여행하는 인간) 이란 말을 만들기도 했답니다. 길 위에 있고, 어디론가 가는 중인 인간이죠. 계속 움직여 가고 있지만, 그 끝을 정할 수도 만들어 낼 수도 없습니다. 끝을 정하고 창조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고 철학자는 말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바이러스 세상을 그저 입 닫고 살아내는 지금,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우선 희망을 욕구나 염원과 구분합니다. 희망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소원하거나 욕구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욕구나 염원은 내 존재 밖에서 있는 것으로,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인데 희망은 그럴 수 없다고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며 대상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손에 잡을 수도, 쉽게 찾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코로나바이러스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기다리지만, 그것을 손에 넣는 것 자체가 희망이 아닙니다. 철학자에 의하면 ‘염원’이 이루어졌다고 해야겠지요. 또 희망이란 단순한 감정도 혹은 이성도 아니랍니다. 그러면 희망은 도대체 무엇이고, 어디에서 찾아야 한답니까. 철학자는 말합니다. 희망은 인간 실존의 한계 속에서, 인간의 존재에 응답하는 것이라고요. 아, 그렇군요. 희망이 필요할 때만큼 절망적인 상황이 있겠습니까. 실존의 한계, 즉 절망의 극한에서 희망을 떠올리게 되지요. 희망은 희망 없는 곳에서 찾지는 것이겠군요. 그렇다면 저는 누구보다 희망 가까이에 있는 사람입니다.
철학자는 말합니다. “나는 희망한다. 그리고 존재한다.” 희망하는 가운데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이성도 감정도 아니고, 존재와 함께 하는 것이라면 희망은 신앙의 영역이 아닐까요.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나마 살아내는 것, 막막한 하루를 그저 길을 걷듯 살아내는 것은 이미 희망과 더불어 있음이고요. 인간 존재에 응답하는 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을 찾아 밖을 헤맬 것이 아니라 안으로, 나의 존재로, 내면으로 눈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함께 드리던 예배가 끊어지고, 기도회와 성경공부, 구역모임이 불가능한 지금입니다. 존재와 신앙을 지탱하던 활동들, 외적인 활동이 모두 멈추었습니다. 밖이 아니라 안을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희망의 위기가 아니라 희망을 찾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교회 공동체에 묻어가던 믿음에서 홀로 있음의 영성을 일구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내몰렸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내몰렸지만 새로운 영성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함께 뜨겁게 드리던 통성기도에서 침묵의 기도로, 모여서 나누고 섬기던 봉사에서 내면을 돌보는 성찰로 옮겨가야 합니다. 희망이 외적 조건에 있지 않다면 필연 그 전제 조건은 믿음입니다. 지난여름 긴 장마 속 하늘을 떠올립니다. 자고 깨어 바라보는 하늘은 늘 먹색이었습니다. 50여 일 그런 하늘이 이어지니 푸른 하늘이 있었던가, 싶기까지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먹구름 너머 하늘은 거기 있었음을 압니다. 그리고 이즈음엔 그 말갛고 투명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 번도 사라진 적 없이 거기 있는 하늘. 저는 거기 하늘이 있음을 ‘아는 것’ 너머 ‘믿습니다’.
글쓰기 영성 모임 여러 그룹을 이끌고 있습니다.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서 아빠이며 남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분이 글을 쓰셨습니다. 바쁘게 회사 생활하던 분이었어요. 재택근무한 지 벌써 수개월. 어린 세 아이가 있는 집에서 일하는 중이라고요. 수시로 침범해 들어오는 아이들로 일의 능률은 떨어지고, 혼자 시간이라곤 없는 나날이 이어지며 점점 지쳐간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바쁜 회상 생활로 아침저녁 잠시 얼굴을 마주했던 아이들, 아이들을 돌보는 아내의 일상, 그 일상의 실상을 비로소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아내가 이렇게 지냈구나, 싶으니 그간 이해하기 어려웠던 아내의 처지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제는 일상이 된 코로나의 우울, 코로나 블루 속에서도 다른 빛깔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을 발견하신 거고요. 글쓰기는 성찰로 이어지고, 깨달음으로 끝났습니다. 희망은 존재와 함께 있지만 발견되어야 합니다. 어디서요?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자리, 일상에서요.
존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 안에 매몰되는 것을 성찰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참된 성찰은 자기 안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건강한 영성은 구심력뿐 아니라 원심력의 균형으로 필연 다시 밖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밖의 저기 먼 곳이 아니라 24시간 붙어 있어야 하는 남편과 아내, 아이들이 있는 곳이요. 위 세 아빠처럼 코로나의 현실에 우리 모두 지쳐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세 아빠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쳐가고, 슬픔과 그리움이 몸을 훑고 지나면 우울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쩐지 제게 희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희망, 희망, 하다 보니 희망의 환영이 보이는 걸까요? 아닙니다. 제게 희망은 또렷하고 분명합니다. 제게 희망은 한 사람의 얼굴입니다. 상담과 영성 집단에서 마주하는 한 사람의 얼굴에서 살아갈 의미, 희망을 발견합니다. 치명적 폭력의 흔적을 안고, 살아남기 위해 글을 쓰는 한 사람 때문에 힘을 얻습니다. 부족함 속에서 아프게 성장하고 있는 저의 두 아이가, 무의미한 '소명의 숲'에서 의미를 찾아 몸부림치는 목회자 남편이, 자기도 아프면서 더 아픈 이에게 어깨를 내주고 싶다는 직장 동료가 희망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얼굴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막막한데, 주여, 하늘이 저렇게 푸르릅니다. 땅도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 땅의 우울에 하늘의 푸른 희망을 담겠습니다. 제 곁의 한 사람, 그의 눈동자에 비친 푸른 희망으로 오늘을 살겠습니다.”
“기도해보고 결정할게요.” 청년부 시절 한 사람이 가끔 난다. 크고 작은 결정사항 앞에서 늘 이렇게 대답했다. 주보에 실을 수련회 후기를 써달라 부탁한 적이 있었다. “음, 기도해보고 결정할게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이걸 두고 뭐라 할 수도 없는 것이 부모님 계신 고향에 갈 때도 버스를 탈지, 기차를 탈지 기도하고 결정하는 친구였으니. 그저 그의 하나님께서 글을 쓰라는 결재를 내려보내시길 기도(아, 기도!) 할 수밖에. 그의 말에 자주 거부감을 느꼈다. 실은 이 친구가 싫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집사님이 계셨다. 친절하게 손잡아주고 위로해주시는 따뜻한 분이기도 했다. 가끔 교회 복도에서 마주쳐서 이런 말씀만 하지 않으시면 참 좋았는데. “정 선생님, 요즘 힘들어요? 내가 기도해보니까 정 선생님이 힘든 것 같던데…… 하여튼 힘내요. 내가 늘 기도하고 있으니까.” 위로로 다가와 순간적으로 울컥하려는 감정을 확 밀어 넣게 되었다. (인생 힘들지 않은 순간이 얼마나 있다고!) “하나님도 참. 제가 힘든 걸 아시면 저한테 직접 말씀하시든지, 해결을 해주시든지. 왜 집사님께 뒷담화를 하시죠?” 속으론 그렇지만, 대충 훈훈한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돌아서는 마음은 한없이 갑갑했던 기억.
기도하면 뭐가 그렇게 잘 보이고, 하나님 음성이 잘도 들리기론 우리 엄마가 1등이었다. “엄마가 기도해보니까 이번 일 잘 되겠더라. 기도 끝에 니가 활짝 웃더라고.” 엄마가 기도해보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시험도 잘 볼 거고, 면접 결과도 좋을 거고, 맡은 행사 잘 진행할 거고, 아픈 데는 큰 문제 아닐 거고. 어쨌든 엄마의 기도는 힘이 되었다. 시험 기간에는 내 시간표에 맞춰 꼼짝하지 않고 내내 기도를 하셨다. 공부는 안 했어도 엄마 기도 때문에 든든했다. 문제는 이랬던 엄마가 “엄마가 기도해보니 너 그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이런 점괘, 아니 응답을 받아올 때였다. 가령 엄마 마음에 차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고 다닌다든지 할 때.
기도라는 이름의 욕망의 투사, 기도로 위장된 간섭과 통제, 기도라는 이름 뒤에 숨은 회피를 드러내는 예는 신앙생활 일상에 허다하다. 이런 행태를 간파하고 비판할 신학적 지식과 판단력이 내게 없지도 않다. 기도에 관해 읽은 무수한 책들이 내 편인 듯한데 무언가 찜찜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자고 저 기억들은 30여 년, 10여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무엇보다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그 청년, 그 집사님, 엄마 앞에 섰을 때의 ‘벽’이었다. 막힌 느낌,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느낌. 그 벽의 이름이 인간의 가장 성스러운 행위인 ‘기도’라는 것이 무엇보다 큰 좌절이다.
닫힌 종교와 종교 중독
독실한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나 조부모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그 전통 안에서 진리를 찾고자 애썼던, 이후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가톨릭 신자가 된 쉴라 파브리칸트 린(Sheila Fabricant Linn)의 영적 여정에 공감되는 바가 크다. 유대교 전통 안에서 만물 안에 현존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가톨릭 신학교에서 만난 교수들의 열린 태도와 사랑에 안내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 종교를 넘나들며 그가 고민한 것은 ‘열림과 닫힘, 그리고 자유’였다. “(종교 안에) 닫혀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도달했단다. 그렇게 기독교 신자가 된 쉴라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다시 이런 질문 앞에 섰다고 한다. “왜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어떤 사람들은 자유롭게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전보다 더 닫혀 있게 하는가?” 유대교 공동체에서 만났던 벽을 자유를 찾아 안착한 기독교 안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중독과 회복’에 대한 이해에서 찾게 되었다고 한다.
쉴라와 그의 동료들이 정의하는 중독은 ‘우리의 삶에서 오는 고통스러운 현실 특히,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피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실체 또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중독의 목적은 한마디로 ‘자신과 대면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발견은 종교나 종교 행위들이 약물이나 알코올처럼 내면 안에 있는 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종교 중독’을 정의한다. 종교 중독은 ‘엄격한 믿음의 체계를 통해서 고통스러운 내면의 실재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엄격한 믿음 체계 안에 갇혀 모든 문제를 종교적 행위로 환원시키는, 그렇게 함으로 마주해야 할 내면의 진실로부터 끝없이 멀어지는 것이 중독 행동의 양태이다. 이 같은 중독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야기가 『어린 왕자』에 나온다.
“거기서 뭘 하고 계시죠?” 빈 병 한 무더기와 술이 가득 차 있는 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 술꾼을 보고 어린 왕자는 물었다. “마시고 있다.” 술꾼은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 마셔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잊으려고.” 술꾼이 대답했다. “무엇을 잊어요?” 어린 왕자는 벌써 그를 불쌍하게 여기며 캐물었다. “내가 부끄러운 놈이란 걸 잊기 위해서.” 술꾼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털어놓았다. “뭐가 부끄러운데요?” 어린 왕자는 그를 도와주고 싶어 자세히 물었다. “마신다는 게 부끄러워!” 주정뱅이 말을 끝내고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어린왕자』 열린책들 (52쪽)
위의 세 사람, 기도에 특별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 내게 벽으로 느껴진 이유는, 모든 대화가 ‘기도’나 ‘하나님’으로 환원되는 것이었다. 도통 대화의 주제, 문제의 핵심에 다다를 수가 없었다. 배우자나 아이의 신앙 성장을 위해 기도하는데, 열심히 기도하는데 그들의 신앙이 성장하기는커녕, 관계만 더 나빠진다면, 종교 중독 증상을 의심해봐야 한다. 기도할수록, 신앙에 열심을 낼수록 배제하고 배척할 대상이 많아진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종교적 행위를 강박적으로 지키고, 그것만이 옳다는 확신 속에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닦달하고 통제하고 있다면 거의 확실하다. 여타의 중독과 달리 종교 중독이 가진 치명적 해악이 여기에 있다.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누가 봐도 나쁜 것에 중독된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이 있다. 책상 밑에, 장롱 안에, 술병을 숨겨두거나 ‘난 그 정도는 아니야’하며 자신의 중독 행동을 깎아내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종교 중독의 행위들은 곧바로 종교적 자부심이 된다.
새벽기도, 십일조, 주일성수 등의 행위가 진실한 자기 대면을 대체할수록, 즉 중독 증상이 심화 될수록 흔히 믿음 좋은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 중독 권하는 교회에서의 현실이다. 청년부 시절 그 친구, 교회 복도에서 만나는 집사님, 엄마가 “내가 기도해보니까”라며 치고 들어오면 반격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너는 저들만큼 기도하냐?”는 목소리가 내 안에 울린다. 기도와 말씀 생활에 할애하는 절대 시간을 비교하면 나는 작아지고 만다. “기도도 안 하는 것들이” “주일성수도 안 하는 것들이” 중독 행동으로 공격한다면 방어할 도리가 없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들 기도 중독자를 어떻게 당해낼 것인가. 부끄러움 없는, 거침없는 중독 행동에의 몰입은 필연 ‘나만 옳다’는 자아 중독으로 귀결된다. 자아 중독의 몹쓸 폐해, 다른 모든 사람이 자기와 같은 방식으로 믿어야 한다고 확신하며 통제하고 억압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자기와 다른 방식으로 신앙하는 사람을 배제하고 심지어 혐오하기에 십상인 것이다.
누가 종교 중독자인가?
『중독과 은혜』를 통해 제럴드 메이(Gerald G. May)가 우리에게 준 충격적인 통찰은, 우리 모두 중독자라는 것이다. 출간된 지 한참 된 그 책이 아직도(아니, 이제야) 사람들 사이 회자 되는 것은, 개인의 삶에서 경험적 증거가 쌓여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알코올이나 마약 등, 약물 중독을 넘어 비물질적인 것들에의 중독 증상이 당신과 나의 일상에 흔하다. 어느 의사 선생님에게 들었다.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 열 명이 있다면 그중 7명은 알코올 중독이라고. 누가 종교 중독자인가? 신자 10명이 있다면 그중 7명은 종교 중독자 아닐까?
종교 중독은 여타 물질 중독과 달리 명확한 진단 기준이 없다. 스티븐 아터번(Stephen Arterburn)과 잭 펠톤(Jack Felton)의 『해로운 신앙』에서는 종교 중독자를 진단하는 다양한 지표들이 나와 있다. 그 지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이 많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 특히 동기를 더듬는 일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체크리스트 몇 항목으로 단정 지을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행위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어떤 사람의 열정적 행위가 사랑의 발로인지, 자기과시이거나 현실도피인지를 누가 판단할 수 있겠는가. 오직 동기를 달아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All a man's ways seem innocent to him, but motives are weighed by the LORD. 잠 16:2, NIV)
‘무의식’의 지도로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을 그려낸 프로이트(Freud)의 업적을 이은 신 프로이트 학파의 분석가 카렌 호나이(Karen Horney)가 열어준 마음의 세계는 더 깊고 영성적이다. 정신 병리적 관점으로 환자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치유할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의 이 말이 특히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건강한 성격발달과 성격장애 사이 어디 즈음에 있다.” 종교 중독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영성발달과 종교 중독 사이 어디 즈음에 있다.”
위의 기도 중독자 세 사람을 대놓고 비난할 수 없었던 것은, 단지 내가 그들만큼 기도하지 못해서만은 아니었다. 종교 중독의 개념을 처음 배웠을 때, 그런 종류의 신앙인에게 붙일 언표를 얻고, 속이 시원했다. 주변의 불편한 신앙인들, 하나님을 믿는지 산신령님을 믿는지 알 수 없는 기복신앙을 비추는 만능 거울을 손에 넣은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거울에서 낯익은 얼굴이 어른거리니, 그것은 엄마의 얼굴이 아니라 엄마를 닮은 내 얼굴이었다. 누가 종교 중독자인가? 나다. 내가 종교 중독자이다. 나는 한때 지독한 종교 중독자였다. 아니 지금도 회복 중인 중독자이다. 이 부끄러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중독과 은혜』의 저자 제럴드 메이가 먼저 길을 열어주었고, 그의 진실한 고백과 연구로 가만히 나를 진단해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고백이다.
“나는 니코틴, 카페인, 설탕, 초콜릿, 등 다양한 물질들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물리적 중독’일까 혹은 단지 ‘심리적 의존’이었을까?…… 결국, 나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물질에만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끝없이 나열할 수 있는 다른 수많은 행위에도 중독되어 있었다.…… 또한, 모든 사람이 중독자이며, 알코올이나 다른 약물들에 대한 중독은 다른 종류의 중독들에 비해 그저 좀 더 명백하고 비참한 중독일 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살아 있다는 것은 중독되어 있다는 것이므로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하다.” 『중독과 은혜』 IVP (21, 23쪽)
종교 중독, 유발자는 누구인가
종교 중독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성적 학대 분야의 권위자인 패트릭 칸스(Patrick Carnes) 박사가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우리의 연구는 아동 학대가 중독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 …… 그리고 아동기에 학대를 많이 받을수록, 성인기에 중독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독과 학대 경험은 떼어 설명하기 어렵다. 아동기 학대 경험이 중독으로 이어진다면, 종교 중독은 영적 학대와 맞물려 있다고 하겠다. 폭력적인 부모에 의해 아동 학대가 발생한다면, 폭력적인 영적 지도자에 의해 종교 집단의 영적 학대가 일어난다. 아동이든 종교 생활을 하는 성인이든 학대의 피해자는 치명적인 약자이다. 학대 가해자가 가진 힘과 권력에 대한 피해자의 두려움은, 학대를 지속시키는 동력이 되어 악의 고리를 더 강화하게 되어 있다.
앞의 쉴라 파브리칸트 린(Sheila Fabricant Linn)과 한 팀인 마태오 린(Matthew Linn, S.J)신부는 정서적 학대를 이렇게 정의한다. ‘두 살 아이에게 열 살 아이처럼 행동하도록 기대하거나, 열 살 아이에게 두 살 아이처럼 계속 의존하도록 하는 것’. 그대로 영적 학대에 빗댄다면 아직 믿음의 초보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성숙한 신자의 종교 행위를 강요하고, 충분히 성숙한 사람을 유치한 신앙과 신학으로 통제해 목회자에게 의존하도록 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하나님 이미지의 투사 대상이다. 아동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한 인간의 신적인 연결을 위해서는 ‘매개자로서의 다른 인간’과의 연결이 필요하다고 했다. 바로 그 매개자 역할을 공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목회자, 종교지도자이다. 종교 중독 유발자는 일차적으로 이런 목회자들이다. 신도들의 영적 갈망, 세속적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에 그들이 가진 수치심(하나님 앞에서 뭔가 늘 부족하다는 느낌, 존재 자체에 흠이 있다는 느낌)과 (징벌에 대한) 두려움을 연료로 삼아 종교 행위를 활활 불태우도록 하는 목사들 말이다. “집사님, 이렇게 기도를 안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아이 앞에 시온의 대로를 열어주시겠습니까?”
모든 중독의 핵심적인 감정은 ‘수치심’이다. 학대 피해자로 자란 아이들은 수치심을 내면화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항상 울리는 메시지가 있다. “믿지 마, 느끼지 마, 생각하지 마.”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고, 혹 느끼거나 생각하더라도 자신의 그것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독으로 이어지는 학대의 메커니즘이다. 신앙의 여정에서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의문을 품지 못하도록, 자신의 느낌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목회자들이 영적 학대자들이다.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다른 사람의 영적 여정을 통제하려고 하는 모든 것을 학대라고 하였다. 종교 중독을 유발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목회자는 학대자이다. 역할로 부여받은 목회적 권위를 권력 삼아 휘두르고, 하나님과 자신을 동급으로 여기는 과대망상에 빠진 목사를 추종하는 교인들이 심각한 종교 중독 증상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중독에 빠진 책임과 거기서 벗어나야 할 의무가 당사자에게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아동 학대 피해자와 달리 우리는 힘을 가진 성인이고, 무엇보다 직접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이다. 성인 학대 피해자의 힘의 부족은 ‘학습된 무력감’이라고 한다. 그 무력감이 ‘학습’되었다면 새로운 ‘학습’이 필요하다. 참된 앎으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에서 오는 고통스러운 현실 특히,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피하고 통제하기 위한 빠른 해결책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을 대면하지 않기 위해 의존하는 종교적 행위들이 중독의 실체임을 알고, 술을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다시 술을 마시는 순환을 멈추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중독 치료로 알려진 A.A(Alcoholics Anonymous,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를 창설하고 12단계 회복프로그램을 만든 빌 윌슨(Bill Wilson)은 중독자를 일컬어 “통증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두통이 있는 사람”과 같다고 했다. 느끼지 않기 위해 기도하고, 교회 봉사를 하고, 헌신하고, 하고, 하고, 하는…· 망치질을 일단 멈춰봐야 한다. 두렵더라도 두통의 실체를 맞서고 드러내야 한다. 망치질 권하는 학대자의 목소리를 분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학대자와 함께 중독 유발자가 되는 것이고, 그 피해는 오롯이 망치질에 부서지는 자기 머리통이다.
종교 중독의 치유, 다시 잇기
A.A 12단계의 1단계는 이렇다. “우리는 알코올에 무력했으며, 우리의 삶을 수습할 수 없게 되었음을 시인했다.” 즉,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만큼 중독에서 벗어나는데 명확한 첫걸음은 없다. 우리 모두 종교 중독과 건강한 영성발달 단계 사이 어디쯤엔가 있다면, 건강의 지표는 중독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실존적으로 인정하는 정도가 아닐까. 다시 말하면, 회복과 성장을 위한 희망은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나는 결코 종교 중독자일 수 없다,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인이다” 자부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철저하게 타자화하고, 거침없이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타자화한 그 존재와 유사한 경우가 많다.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자기 안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저 사람 사기꾼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내면에 사기꾼의 개념도 있어야 하고, 그 개념을 형성한 직간접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 타인의 종교 중독이 알아 차려지고 유난히 잘 보이는 것은 거기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인상 깊은 내용이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던 곳에서 일군의 노인들이 서명대 집기를 부수고 유가족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소동 후에 행패를 부리던 노인 한 명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정혜신 박사는 소란에 대해 말하지 않고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물었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시작했다. 노인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자신을 돌보지 않는 아들과 며느리 얘기 등,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한참 만에 노인이 불쑥 꺼낸 말이 “내가 아까 그 아이 엄마(세월호 유가족)들한테 욕한 건 좀 부끄럽지.”였다. 나는 광화문에서 세월호에 욕설을 퍼붓는 노인을 떠올리면 지독한 종교와 이념에 복합적으로 중독된 구제 불능의 중독자가 연상된다. 종교 중독의 그러데이션에서 가장 진한 부분, 저쪽 끝 어디에 두게 된다.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 자기 성찰을 끌어낸 정혜신 박사의 내적인 힘이 놀랍기만 하다. 그 책에서 내내 말하는바, 존재에 주목하면 이어진다는 것이다.
종교(religion)의 어원 re-ligio는 “다시 묶는다, 다시 띠를 두른다”라는 뜻이다. 나와 타자, 나의 실존과 일상의 고통, 지금의 나와 미성숙했던 나를 분리하는 한, 중독의 회복도 영적인 성장도 불가능하다. 분열된 것들을 다시 잇는 참된 종교의 회복이 종교 중독으로부터의 치유이고,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회심인지 모르겠다. 잠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우리에게 ‘연결되자’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인지 모르겠다.
* 출처 : 월간 <복음과 상황> 356호(2020년 7월호) 커버 스토리 “중독과 열정 사이”
미련하게 병을 키웠다. 며칠 피로가 쌓이기도 했고. 어젯밤 난생처음 응급실엘 가봤다. ('실려'간 것은 아님. 큰 병은 아님)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을 찾는데, 장례식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픈 몸에 반사적 저항이 왔다. '장례식장'이란 팻말을 보기도 싫었다. 모든 검사 마치고 주삿바늘 꽂고 가만히 누워 있자니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와 마지막 얘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낸 곳이 응급실이었다. 가슴 미어지는 슬픔이 밀려왔다. 엄마는 장례식 없이 떠난 분이다.
장례식장이 불편한 이유는 엄마 생각 때문이 아니다. '죽음'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주사 맞는 긴 시간 남편과 이 얘기 저 얘기하는 중에 남편이 물었다. "당신은 죽는 게 두려워? 어때?" 글쎄, 나는 죽는 것이 두려운가? 죽음 자체가 두려운가? 나는 고통이 두렵다고 했다. 응급실을 찾을 만큼 아픈 몸을 끌어안고 마주한 장례식장 팻말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죽음을 가까이 느끼게 한다. 나는 고통이 두렵다. 고통에 대해 과장하는 버릇도 있다. "아파서 죽을 것 같아"라고 한다. 아픔의 극한은 죽음이다. "죽도록 밉다"라고 말한다. 미움의 고통 또한 극한의 단절, 죽음과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온종일 일을 손에서 놓고 가만히 누워 있으니 며칠 나를 스쳐간 고통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모 교단 총회를 보고 절망감과 분노로 고통스러웠다. 양복 빼 입고 앉은 '성직자 然' 하는 사람들이 이단을 심의하고 판정하는 것을 보자니 어이없어서 아프다. 그 뉴스를 접한 날엔 마침 이런 글을 읽고 있었다.
"처형된 이단자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위반한 것은 보통 권위, 사제직, 성사(성례전) 문제, 그리고 '누가 힘이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과부와 고아를 돌보지 않은 것 때문에 화형에 당한 사람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가? (중략) 어느 교황이나 사제, 신자도 너무 부요한 생활방식 때문에 출교를 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너무 탐욕적이거나 야망을 채우거나 교만한 것 때문에 이단으로 판결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 목사님 가정의 권고사직 소식을 들었다. "죽도록" 화가 나서 고통스러운 것은 사직을 권고한 담임 목사님의 행태이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그 목사님은 모르긴 해도 교단들의 차별과 혐오 가득한 폭력적 총회를 신랄하게 비판했을 것이다. SNS에 분노의 포스팅을 하셨을 분이다. 목사님 같은 분만 있다면 한국교회가 이렇게 부패하지 않을 거라며 지지와 공감을 받을 것이다. 권고사직 통고받은 목사님과 가족을 두 번 울게 하는 표리부동이다. 며칠 새 비슷한 소식을 듣고 또 듣는다. 답이 안 보이는 고통의 시간을 사는 이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죽음보다 고통이 두렵다. 정직하게 마주한 현실에 비일비재한 고통이 두렵다. 죽음보다 삶이 두렵다.
오후의 볕이 다 사라지기 전에 산책을 나갔다. 채윤이와 함께 단지를 한 바퀴 도는데, 울긋불긋 물든 산과 하늘과 오후의 빛이 만든 풍경이 아름답다. 몸이 아픈 것도 현실, 부조리한 현실도 현실, 저 고운 풍경도 현실. 죽음도 현실 삶도 현실이다. 둘 중 하나만이 실재라 우길 수 없다.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것을 회피하고 싶지는 않다. 그 고통에 압도되어 몸이 아플 수도 있고, 마음에 병이 날 수도 있겠지만. 그 고통 오롯이 마주하고 싶다. 마침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 읽던 책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 자신과 모든 현실에 대한 정직성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 방식이라고. 우리는 모든 고통, 부정적인 것을 피할 수 없으며 급기야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그저 일상을 살라는 저자의 말이 크게 들린다. 고통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비극의 운명이지만, 현실을 정직하게 마주하며 아픈 오늘을 사는 방법 외에 없다. 살되, 살아가되, 리지외의 테레사 성인의 말을 따라 "작은 일들을 큰 사랑으로" 하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자신과 모든 현실에 대한 정직성이 하느님께서 은총을 전적으로 거저 주시는 것이며 누구나 보편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만드신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결국 반대, 문제들, "부정적이 것들"(죄, 실패, 배반, 험단, 공포, 상처, 질병 등)로 끌려들어 가며 특히 궁극적인 부정인 죽음 자체로 끌려들어가기 때문이다. 훌륭한 영성은 우리에게 고차원적 부정이나 겉치레를 가르치는 대신, 그 모든 삶의 현실들에 대해 완전히 준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오직 사랑으로』, 리처드 로어
이 아름다운 베란다 앞 풍경을 두고 가야 한다니. 봄이 오는 아침, 깊어지는 가을날의 아침을 경탄으로 시작한 2년이었다. 주인이 갑자기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주인 마음을 바꿔주시지 않을까? 허튼 희망도 가져봤었다. 허튼 희망이었구나! 받아들인 다음 날부터 아침에 눈뜨고 바라보는 저 풍경이 그렇게나 슬플 수가 없었다.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벌써부터 몰려왔다. 얼마나 더 잃어버리고 또 잃어버려야 이 슬픈 생이 끝날까?
어느 아침, "이렇게 남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싶었다. 주어진 시간만큼 최대한 누리고 떠나자! 내 생애 가장 좋았던 집, 집이 아니라 집 앞의 산에게 아침마다 고마움을 표 하겠다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이틀 지나서 이사할 집이 정해졌다. 하도 귀해서 전셋집이 하나 나오면 몇 사람이 달려들어 줄을 서서 집을 보고, 제비를 뽑아 계약을 한다는데. 집이 구해졌으니 다행이다.
목회자라고 다 이렇듯 자주 이사 다니는 것 아닌데, 남편을 원망해볼까 싶기도 했었다. 마음 고쳐 먹으니 아침 저 풍경이 새롭게 보인다. 아직은 여기 있지 않은가. 오늘 아침은 저 풍경을 보고, 신선한 산 공기을 마실 수 있지 않은가. 지긋지긋한 이사도 또 어떻게 되겠지.
아침마다 달라지는 빛깔이다. 변하고, 변하고 또 변한다. 마침 연구소에서 아침마다 '읽는 기도'로 나누고 있는 앤서니 드 맬로 신부님의 책에는 이런 글귀가 있어 크게 위로받는다.
삶이란 언제나 흐르고 있는 것, 항상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기를 원한다면 영주처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머리 둘 곳이 있어서는 안 돼요. 삶과 더불어 흘러야 합니다. 위대한 공자가 “항상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주 변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흐르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잖아요?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것들에 매여 있습니다. “쟁기를 손에 얹고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됩니다.” 선율을 즐기고 싶습니까? 교향곡을 즐기고 싶습니까? 곡의 몇 대목에, 한두 음절에 매이지 마십시오. 지나가고 흘러가게 하십시오. 음들을 흘려보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교향곡을 온전히 즐기게 됩니다. 특정한 대목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교향악단에게 “그 대목을 계속 연주해요. 계속, 계속”하고 외친다면 그 연주는 교향곡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신앙 사춘기』 출간한 지 1년 하고도 몇 개월 지났다. 개인적, 국가적, 전 지구적인 위기를 통과하는 시간이 끼어서인지 한 10년은 된 일 같다. 아직 좀 살아 있어야 하는 책인데...... 소도시에서 목회하며 6,7년 꾸준히 책모임 해오시는 목사님들과 '저자와의 만남'이란 거창한 이름의 소소한 '만남'을 가졌다. 만남은 좋은 것이다. 만남이 좋다고 말해서는 소용이 없다. 만나봐야 만남이 좋음을 알게 되는 것. 어쨌든 만나보니, 만남은 좋은 것이다. 덕분에 내게도 희미해진 책 『신앙 사춘기』를 다시 떠올렸고, 무엇보다 그 아픈 글을 써낸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독서 모임에서 읽으셨다는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과 , 『신앙 사춘기』 두 권 모두 보통의 목사님들에겐 불편한 책이다. 어떻게들 읽으셨을까. 보수적인 도시에서 목회하시는 분들께 특히 『신앙 사춘기』가 어떻게 다가갈까. 상상되는 바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저자를 만나고자 하시니 긍정적으로 보셨던 걸까? 도둑 제 발 저리는 느낌으로 "책이 불편하진 않으셨냐?"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흔들리는 동공과 주고받는 눈빛으로 답해주셨다. "불편했죠." 그래서 '불편'을 기본값으로 깔고 시작했다.
마침 우리 아버지가 속하셨던 교단의 목사님들이다. 『신앙 사춘기』 쓴 배경 설명을 아버지 얘기로 시작했다. "아버지가 저를 58세에 낳으셨어요." "네~에?" 여기서 다들 놀라시지만 총알이 하나 더 있다. "더 놀라운 얘기 해드려요? 저한테 동생도 있어요. 동생은 환갑 둥이예요."(기본값 '불편감' 20% 제거 : "세상에 이런 일이!") "아버지는 평안도 철산 출신인데, 1.4 후퇴 때 월남하셨어요. 평양신학교를 다니던 신학생이었고, 월남해서는 부산으로 이전한 '평양신학교'를 다니셨습니다. (불편감 10% 또 제거 : "우리 대선배님이시네!") 홀로 목회하시다 늦은 나이에 교회 집사와 목사로 엄마를 만나셔 결혼하셨고, 그렇게 늦게 저희를 낳으셨어요. 저는 목사의 딸로 태어나서 교회의 딸로 자랐어요. 고등학교 때 주일 끼어서 가는 수학여행 당연히 가지 않았고요. 청년 시절, 토요일 주일은 밥도 못 먹으며 봉사했어요. 청년부 주보 편집, 성가대 지휘에. 직장 생활하는데 주일 출근하란 말에 사표 내고 나왔고요. (불편 값 20% 제거 : "태생이 삐딱한 건 아니구먼. 청년 시절로 치면 나하고 비슷하네!") 한 교회에서 만난 남편이 결혼하고 한 6년 후에 신학을 했어요. 모교회에서 부교역자로 봉사하면서 신앙 여정에서 지진이 났지요. 내 인생 가장 존경하던 목사님이 저런 분이었어? 교인들 대하는 얼굴과 부교역자 앞에서 얼굴이 이렇게 다르다고?!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신앙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로부터 한 10여 년 그야말로 신앙의 사춘기를 겪었고, 그 시절을 통과하고 나서 쓴 글이지요."
이런 얘기를 하는 동안 불편감이 조금씩 제거 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무장해제 되었고, 긴장이 사라졌다. 첫 질문하신 목사님께서 "사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불편했는데, 지금 말씀해주신 것으로 이미 다 이해가 되었다"라고 하셨다. 오랜 시간 독서 모임을 이끄셨고, 내 책을 모임에 추천하셨고, 저자와의 만남을 주선하신 목사님께서도 솔직한 말씀을 하셨다. '책을 추천하고 나눔을 하면서 당황했다. 책을 추천하고 나눔을 준비하며 좋은 반응을 기대했다. 내 기대와 달랐다. 나는 저자를 아니까,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한데 책만 읽은 목사님들의 반응이 달라서 당황했고, 나눔을 진행하다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안다는 것은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나눈 대화는 책 너머의 진실을 전하고 듣는 시간이 되었다. 나도 안다. 의식하고 썼다. 『신앙 사춘기』는 치우친 책이다. 부러 목사를 몰아세웠다. 목사에게 상처받은 사람이 많아서 그랬다고, 서문에 썼지만 더 아픈 뜻도 있다. 내 아버지, 내 남편이 목산데 목사가 욕먹는 현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내가 던지는 낫겠다 싶어 선택한 '위치'인지 모르겠다. 내가 먼저 던지자. 내가 먼저 큰 돌을 던지자. 실은 내 마음은 목사님들, 교회 개혁 따위 모르는 착한 교인들에게 가 있다. 『신앙 사춘기』를 써내놓고, 여기 담긴 글들이 교회를 조롱하고 목사들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소비되는 것이 가슴 아팠다.
여하튼 불편감이 많이 해소 되었다. 책이 아니라, 글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 나누니 불편한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함께 하신 목사님들의 불편감을 얘기가 아니라 내 것을 말하는 것이다. 쓸 때도 알았고, 출간하고도 알았지만 "아, 나 그때 일부러 치우치기로 작정하고 썼던 거구나! 맞아, 그랬지. 그래서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울지 않을 수 없었어." 치우치기로 작정했기에 더 멀어진 반대쪽을 바라보며 울 수밖에 없었음을 다시 알겠다. 그 반대쪽에는 우리 부모님이 있고,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내가 있고, 목사로 살아야 하는 내 남편이 있으니까. 불편한 곳에 머무르는 것은 얼마나 값진 일인가. 불편한 곳에 머물러 내가 쓴 글의 이면을, 나의 이면을, 내 마음의 이면을 새롭게 만났다.
인사말로 50% 정도의 불편감은 해소되었다. 대화가 무르익어 가면서 나머지 50%가 해소된 것은 물론이고 200%의 공감으로 연대감이 형성되었다. 그 이야기... To be continued!
중년의 ‘중(中)’은 가운데입니다. 인생 등반 한가운데, 내려가는 삶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생의 오후로 가는 길목에는 생각지 못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 같지 않은 몸, 알 수 없이 밀려오는 공허감, 100세 인생이라는 노령화 사회에서 아직도 살아가야 할 기나긴 날들에 대한 불안 같은 것들입니다.
중년의 ‘중(重)’은 무거움이기도 합니다. 중년의 위기는 도전이며 기회입니다. Carl Jung은 자신이 상담에서 만난 중년 이후 내담자의 문제는 모두 ‘영적’인 문제였다고 합니다. 중년의 숲을 지나는 여성들이 함께 모여 쓰고, 읽고, 나눕니다. 글은 잘 못 쓰셔도 됩니다. 나다운 나로 생의 오후를 살고 싶은 ‘중년’을 느끼는 여성(나이 크게 괘념치 않음),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11월 3일(화) ~ 12월 10일(화) 오전 9시30분 ~ 12시(6주간) + 인원 : 7명(선착순) + 수강료 : 15만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2771-4445 + 신청 링크 : https://bit.ly/3k9xolP
✔ 강의와 나눔 내용 :
1강. 생의 오후 시간 : 글로 길어 올리는 영성의 샘물 2강. 나는 나의 기억이다 : 기억으로 쓰기 3강. 나는 나의 감정이다 : 얼어붙은 감정 글로 흘려보내기 4강.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 수치심 떠나 보내기 5강. 나는 나의 몸이다 : 여자의 몸, 글로 드러내기 6강.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 어머니 하나님을 찾아
✔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습니다. 모임 시간마다 바로 쓰고 나누는 글 있습니다. Zoom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 참고도서 : <내 나이 마흔>, 안셀름 그륀, 성서와 함께 <위쪽으로 떨어지다>, 리처드 로어, 국민북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에스테스, 이루
화성의 우음도 갈대밭 사이를 걸었다. 월요일, 말은 적고, 걸음 수는 많아지는 우리만의 안식일이다. 거의 모든 월요일마다 길든 짧든 시간을 내어 함께 걸었고, 길든 짧든 어딘가를 걸었다. 그런데 어쩐지 아주 오랜만에 ‘안식’을 누리는 느낌이다. 언제 적 Sabbath diary더냐! 얼마 만이더냐! 안팎으로 찍힌 마침표 덕인 것 같다.
밖에 찍힌 마침표는 집이다. 몇 주, 약간의 불안 또는 분노로 붙들고 있던 집 문제가 해결된 후 월요일이다.
안으로 찍힌 마침표는...... 뭐지? 7개월, 아니 6개월, 아니 한 달이 걸렸는데.
지난 2월 어느 월요일의 Sabbath diary(나쁜 딸이 드리는 사랑의 기도)에서 시작한 마음에 마침표를 찍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글’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작은 글이 아니었다. 골절상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했지만 면회가 되지 않는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한 달 지나 믿어지지 않는 엄마와의 이별, 그리고 살자고 시작한 글. 살자고 썼고, 그렇게 시작했지만, 서서히 이성 돌아오자 쓰기 위해 살게 되었다. 계속 쓰기만 할 수 없으니 글을 마쳐야 했다. 9월 16일, 적어도 글로는 탈상을 했다. (탈상(脫喪) 아니, 글로 하는 탈상이 끝나지 않았다. 썼던 모든 글을 다시 읽었고, 그렇게 한 번 더 마침표. 다시 읽었던 모든 글을 다시 또 읽고, 오늘 아침 9시에 ‘최종본’이란 이름으로 다시 떠나보냈다. 또 마침표.
온몸으로 찍는 마침표라, 몸이 요동을 쳐 배가 뒤틀리고 토하고 쏟아내곤 했다. 나 같으면 벌써 도망갔을 텐데, 옆에서 온갖 발광을 견뎌준 월요일 안식일 친구, 고맙소.
몇 번 더 마침표가 찍혀야 우리 생의 진정한 마침표가 찍힐지. 그때까지 우리는(아니 나는) 또 얼마나 몸부림을 해댈지. 그러나 결국 찍히고 끝나는 마침표.
여기저기 흔하게 굴러다녀도 내겐 너무나 절실하고 소중해서 입에 올리지 않는 말이 있다. '영성'이 그렇다. 예를 들면 '일상 영성'은 내 글쓰기가 뿌리내린 곳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어쩐지 입에 올리기는 싫다. 영성 앞에는 어떤 단어를 갖다 붙여도 그럴듯하다. 연구소의 상담은 궁극적으로 영성 상담이고, 에니어그램 세미나는 영적 여정이고, 종강을 향해 가는 연구소 지도자 과정은 우리만의 '여성 영성'을 일궈가는 일이지만. 감히 '영성'이란 말을 표방할 수 없다. 이유는 단 하나, 소중해서 그렇다.
요즘 화요일 12시는 일주일 내 마음 가장 맑아지고, 겸손해지고, 경건해지는 시간이다. 연구소 글쓰기 강좌인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가 끝나는 시간이다. 오늘은 정말 가장 은혜로운 예배를 마치고 나온 느낌이었다. 정결하게 하는 샘에 내 영혼 씻겨 나온 느낌. 과장이 아니다. 오늘만 해도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는 9시 30분 어간. 출근하는 남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상해 있었다. 전 같으면 견적이 이틀은 나오는 '꼬인 마음'인데. 모임 마치고 미용실 갔다 나오니 발길이 절로 남편 사무실로 향했다. 아무 일 없는 듯(없는 척이 아니라 아무 일 없는 마음이 되었다) 마주하고. 잠시 산책을 하고 사이좋게 퇴근하여 들어왔다. 읽는 여러분 별로 안 놀라시겠지만, 이건 깜짝 놀랄 일이다.
이래저래 읽고 쓰는 모임을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해왔지만,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들과 함께 하는 글쓰기 모임이 전환점이 되었다. 듬성듬성 알았던 것을 벼락처럼 깨달았고, 순간순간 짧게 맛보던 것을 진하게 경험했다. 쓰기의 힘이 아니라 존재의 힘을 무한 신뢰하게 되었다. 고통 가운데 있는 한 존재가 쓴 진실한 글이 날카로운 칼처럼 어딘가를 찌르는 느낌, 그 느낌에 머물러 있는 것이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었는데, 그 머무름이 곧 치유라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다. 단지 글, 단지 말이 아니라 몸으로 배운 것이다. 이제 모든 글쓰기 모임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고통에 함께 머무름과 그 시간이 주는 놀라운 치유력은 내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늘 경이롭기는 하지만.
'나'를 주제로 두고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는 시간. 나에 대해 내가 가진 이미지, 나의 기억, 나의 감정과 몸, 내가 믿는 하나님. 나, 나, 나. 나에 대해 공부하고 쓰지만 심리학적 자기 분석은 아니다. 글쓰기 지도를 하는 시간은 더더욱 아니다. 영성 모임이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것이지만 앞의 나와 뒤의 나는 다르다. 그래서 영성 모임이다. 영적 존재인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지금 여기의 나에서 시작하여 더듬어 가는 시간. 지금 여기의 나에서 시작하자니, 지금 여기의 나는 맥락 없는 내가 아니라 내 경험의 산물이라. 그때그때 올라오는 내 인생 이야기들을 물 흐르듯 써간다. "물 흐르듯"은 글쓰기 영성 모임의 캐치 프레이즈로 삼아도 좋을 말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글이 이끄는 길을 따라". 모인 자리에서 바로 쓰는 10분, 15분 안에 쓰는 짧은 글이 주는 깊이와 울림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매시간 "내가 돈을 받으며 글을 배우고, 삶을 배운다"는 느낌이 든다.
쓰는 것은 참말로, 정말로, 진실로, 주체적인 행위이다. 그 주체성과 자발성, 그리고 투명함이 일궈내는 신비일 것이다. 주체적이고 자발적이고 투명한 태도. 이것을 가진 존재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심리적 존재? 아니다. 그 이상이다. 초월적이고 신비적이 존재. 한 사람 안에 있는 치유와 창조성의 힘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은 '영적 존재'의 증거이다.
화요일 오전 9시 30분, 나는 가장 거룩하고 영적인 시간을 마주한다. 일주일을 살게 하는 본 예배이다. 아, 심야 기도회도 있다. 토요일 자정, 맞다 밤 12시. 영적인 시간이 한 번 더 있다. 미주 서부 동부의 예배자들과 함께 심야의 글쓰기 예배가 있다. 이 즈음 내 영혼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시간들이다.
강의와 기고 글의 주제가 '희망'이 되었다. 타고난 까칠함에 '좋게 보는 눈'이 없는데.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불편한 것을 먼저 감지하는 편이고.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많고. 불편한 것은 결국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 재밌는 것 좋아하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허튼 희망을 말하고 부추기는 자기 계발식 심리학이니 긍정 신학을 혐오하는 편인데. 어쩌다 희망에 대해 강의하고 글을 하나 쓰고 있기도 하다. 그간 공부한 것을 정리한 그릇에 나의 이야기를 담아보니, 결국 희망은 발굴해내야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무엇보다 한 사람의 얼굴에서 찾을 찾아지는 것이더라. 코로나 19로, 망할 부동산 패닉으로, 현실은 막막하다. 슬픔과 그리움이 자주 몸을 훑고 지나가 울지 않는 날이 없다. 그래도 어쩐지 내게 희망이 있는 것 같다. 희망에 대해 자꾸 말하다 보니 착각하는 것인가? 아니다. 사람들의 얼굴 때문이다. 글쓰기, 내적 여정으로 만나는 한 사람의 얼굴이 내게 살아갈 의미를 준다. 고통 속에서, 치명적 상처 속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기 위해 쓰고 말하고 찾는 사람들의 얼굴이 희망이다. 많은 것의 부족함 속에서 아프게 성장하고 있는 채윤이 현승이가, 무의미한 '소명의 숲'에서 의미를 찾아 몸부림치는 남편이, 자기도 아프면서 더 아픈 이에게 어깨를 내주고 싶다는 동료가 내게 희망을 준다. 결국 한 사람의 얼굴이다. 연구소 후원자들에게 편지 보낼 때마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많이 쓴다. 편지글 한 문장, 같이 담아 보낼 사소한 것 하나도 고민과 고민 끝에 결정한다. 조용하게 요란을 떤다. 연구원 H가 내 마음을 딱 알고 나보다 더 머리 터지게 고민을 하더니 드립백 커피와 쿠키를 생각해냈다. 쿠키를? "커피 한 잔과 쿠키 먹는 그 순간에 멈춰 잠시 연결을 떠올리라고" 그러면서 맛있는 커피와 쿠키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 후원자 한 사람도 얼굴이다. 희망 없는 일상의 연속이지만, 매달 말없이 후원금을 보내주는 삼십여 명의 얼굴이 있지 않은가. 제대로 후원 모금 행사 한 번 한 적 없는데, 기꺼이 연결되어 준 얼굴들. 치명적인 절망도 치명적 희망도 결국 한 사람의 얼굴이다.
연구소 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드립백 하나, 조그만 쿠기 몇 개. 손가락 마비가 오도록 손글씨로 써낸 편지. 굳이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도, 함께 하는 연구원 벗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렇게 했습니다. 후원자님들께 1년에 한두 번 드리는 소식에 어떻게든 사람 냄새를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매달 따박따박 이체되는 후원금 1, 2만 원이 그냥 돈이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후원금 총액이 많은 건 아니지만, 덕분에 상담료도 수강료도 계산 없이 필요한 분께 지원해 드리고 있습니다. 몇만 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연결, 관심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릴 방법이 없어서요. 한 사람의 삶과 형편은 쉽게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니까요.
가장 가까운 날에 볶은 신선한 커피와 동네에서 꽤 맛있는 쿠키를 준비해 행여 깨질까 뾱뾱이 봉투에 담는 저희 손이 설렘으로 떨렸답니다. 오버다, 싶은 감정과 에너지는 오직 조용히 이체로 말씀하시는 후원자님들에 대한 감사 때문입니다. 감사 그 이상의 마음으로 한 분 한 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카드 받으시고 인증샷과 메시지 보내주신 것 모았습니다. 부부가 각각 후원을 하셔서 한 집에 두 봉투가 가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먼저 후원하셨다고 말씀드렸는데 굳이 따로 작정하셨거든요.
후원자든 내담자든 상담하는 저희든 알고 보면 모두 고립의 두려움 속에서 외롭습니다. 누구는 후원자로, 어떤 이는 내담자와 수강자로, 저희는 일을 맡은 자로 외로움과 고립에서 빠져나와 연결되려는 몸짓입니다. 무슨 구별이 있을까 싶네요. 그래서 더욱 마음이 따뜻합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 언제든 후원 신청 가능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분들께 연결되어주실 것을 청합니다. 아래 링크로 후원 신청하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