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과정 2기 개강 날에 찍은(찍힌) 사진을 보고 남편도 채윤이도 좋아했다. 나도 좋다. 거울 앞에 한 분 한 분 이름을 새겨 달아 놓은 가랜드가 예뻐서 '거울 셀카' 찍는 중이다. 두 글자 이름 여섯이 말로 할 수 없이 소중하다. 벌써부터 마음에 담고 있었다. 작년 커리큘럼에 덧붙여 새로운 강의안을 만들고 있다. 신나게 만들고 있다. 이 신나는 기분은 감각적 즐거움보다는 차라리 기도에 가깝다.

 

아래 붙인 개강 날 후기를 연구소 SNS에 써서 걸었다. 다시 만감이 교차한다. 내 나이 서른여덟, 서른아홉. 신앙 사춘기의 정점에서 만난 에니어그램이다. 십 년을 훌쩍 넘기고 여기까지 왔다. 애써 불러 모으지도 않아도, 어디에선가 신앙하고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여든다. 애써 모으지 않을수록 꼭 모여야 할 사람이 모이는 신비라니. '상처, 상처 입은 치유자' 같은 취약한 말로 그물을 쳤는데 걸려든 이들이니 흔하게 만나지는 사람들은 아니다. 첫날 강의에서 했던 말 중 '상처는 존재의 무늬'라는 말을 유난히 마음에 새기는 것 또한 내게 큰 힘이 된다. 힘이 되는 만큼 거룩한 책임감을 느낀다. 책임감이 무겁지만, 그 무게를 힘겹게 견뎌야겠지만, 이 역시 감각적인 고통이 아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표현을 감히 빌자면 '감미로운 괴로움'이다. 깊은 기도로 이끌기 때문이다.

 

올 한 해, 이 여섯 분과 함께 살게 될 것이다. 목요일, 매주 목요일에 나눌 강의가 마음과 일상의 축이 될 것이다. 이것을 중심으로 독서하고, 또 책을 사고, 시도 때도 없이 메모하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나의 일용할 양식이 될 것이다. 내게 그러하듯 이 분들에게도 하루 분량의 양식으로 나눌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돌아보면 서른여덟,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기적이라곤 없었다. 하루 분량의 공부와, 하루 분량의 아픔으로 여기까지 왔다. 꽤 멀리 온 것도 사실이다. "상처는 존재의 무늬예요. 나의 이야기, 나의 지질한 이야기로부터 그분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영적 존재인 나를 만나는 것은 나의 인간적 경험에서 시작합니다. 이 취약한 과정을 그대로 이웃에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상처 입은 치유자입니다." 라고 한 마디 한 마디에 체험을 실어 말할 수 있으니. 서른여덟, 서른아홉 그때를 생각하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네. 어찌 되었든 문제는 일용할 양식이다. 하루 분량의 빵은 읽고 쓰기였다. 아무도 답해주지 못하는 것을 먼저 고민한 저자를 만나 읽고, 읽고 깨달아지는대로 아니 읽을수록 더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썼다. 저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줄기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쪽 저쪽의 줄기를 따라 올라갔는데 결국 만나는 곳은 고전이라는 것이 신기할 뿐.

 

읽고, 쓰고, 기도하는 것을 일용할 양식 삼는 사람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연구소 모든 과정에 담긴 사심인데 말이다.

    

어디를 보나 연둣빛, 말랑말랑한 생명의 향연입니다. 지도자과정, 말랑한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전날 밤, 한 선생님이 격리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작년 한 해 지내며 돌발 상황이 기회가 되는 것을 경험한 우리. 당황하지 않고, 줌을 통한 대면 비대면 강의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성공적!

미사 나음터까지 먼 거리지만 살짝 기대도 되었다는 선생님은 음악을 크게 틀고 강변북로를 달리며 일주일간의 스트레스를 날려보리라는 상상을 하셨답니다. 그러나 막상 꽉 막힌 길,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셨고, “아, 스트레스는 이렇게 날리는 게 아니구나.” 하셨답니다.

계획은 늘 있지만, 계획처럼 되는 일이 없습니다. 계획처럼 되지 않아 새로운 길에 접어들고, 마음같이 되지 않는 인생길 살다 여기까지 왔으니... 교육과정이며 매일 과제, 빡빡하게 채운 계획표로 시작하지만 여섯 분 고유의 여정이 되겠지요. 말하고, 듣고, 쓰고, 읽고, 상징을 담아 만들고, 기도하는 것으로 첫 모임 시작했습니다. 내내 이렇게 말하고 듣고 쓰고 읽고 기도하고 상징을 담아 나만의 의례를 만들어 가는 일 년의 여정이 될 것입니다. 모임 후기 일부와 사진 나눠봅니다.

❝교회에서 떠난 것, 그것은 배반이었고, 저는 잔뜩 움츠러들었습니다. 이제야 슬픔의 중심에 가봅니다. 슬픔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배웁니다. 외로웠는데, 이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이들을 만났네요.❞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외면한 채 살아갔던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새로운 여정 가운데 버릴 것은 버리고 담을 것은 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무기, 능력은 수많은 상처들 뿐입니다. 정신과 치료, 심리상담을 수년간 다니며 지우고만 싶었던 그 상처들이 나를 이곳까지 안내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처는 존재의 무늬다’라는 어제 말씀이 가슴 깊이 위로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춤에 꽂혔습니다. 손끝과 발끝까지 짜릿해지는 기쁨. 생각만해도 참 행복했습니다. 모든 벽을 허물고, 가면을 벗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함께 춤출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나 다워지자! 있어야 할 자리로 원위치!!'를 마음속에서 외치곤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성숙한 나다움을 지닌 나를 만나게 되길 소원해봅니다. '나'스러워지는 시작의 하나로 어제 모임 후 그동안 방치해둔 머리 스타일을 오랜만 단발로 컷트해 보았습니다.❞

❝나는 작년 6월, '상처가 문제'라고 말하는 목사를 떠났다. 그리고 올해 4월, '상처가 무늬'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 작가였다가, 이제는 소장님, 신실쌤이 된 사람. 그리고 그녀가 알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 내가 그 연결망 속으로 들어간 날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남편과 아들이 마중을 나왔다. 남편이 "살아서 돌아왔네."라며 웃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살아서 돌아왔지.' 이제 정말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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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 맛있다. 짜지 않아서 좋네.
어어어... 그런데 맛이... 전에 안 먹어본 맛인데... 새로운 맛이야.
뭔가 바다의 맛과 땅의 맛이 함께 있어.
바다 맛은
멸치고... 뭐지? 이 맛은? 
식당에서 강된장 먹으면 일단 짜고... 짜고, 그냥 다 같은 맛인데...
색다르고 맛있어.
아, 뭐지 뭐지?... 이 땅 맛...

 

이럴 땐 정말 "귀신같은...." (년!까지 붙이면 딱인데! 참자.) 밖에 다른 말이 안 떠오른다. 우렁이 강된장을 했는데, 멸치를 손질하여 잘게 찢어 듬뿍 넣었다. 재료가 부실하다 싶어 냉장고를 뒤지다 저 안쪽에서 표고버섯 분말을 찾았다. 어, 좋은데! 흥분해서 넣다가 어어어... 과다 투입. 그렇다. 땅의 맛, 대지의 맛! "귀신같은...."(년)이 감지한 것은 바로 그 표고버섯의 향이었다. 들짐승 같은 본능적 감각을 장착한 딸, 내겐 과분하도록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이 딸. 주님, 과연 내가 낳았단 말입니까. 이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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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일 년 전에 남편이 잡아끌어 다녀왔던 통영이다. 거절할 힘은 없고, 무력하게 따라가긴 싫었던지 '도다리 쑥국'을 명분으로 내세웠었다. "그래, 어디서 통영 도다리 쑥국 봤는데 먹고 싶더라" 뭘 먹고 '싶다'는 말이 낯설고 생소한 시간이었으니 그럴듯한 이유가 되는 것 같았다. 오직 도다리 쑥국만 생각하고 간 통영에서 운명처럼 만난 것은 동백꽃이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들어선 공원에 동백꽃이 한창 피고, 한창 지고 있었다. 툭, 꽃봉오리 째 떨어져 뒹구는 붉은 동백꽃이 훅 가슴으로 들어왔다. 눈물이 쏟아졌다. 그즈음은 우는 게 일상이었으니 언제 어디서 울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찬란한 슬픔'이라 이름 붙인 그 동백꽃을 다시 만나러 간 것이다. 일 년 전 그 통영에서 올라오면서 남편과 약속했었다. "내년 이맘때 또 오자!" 믿을 수 없는 시간, 1년이 지났고 남편 대신 채윤이와 다녀왔다. 올해는 오직 떨어져 누운 동백꽃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1년 전 그 통영은 없었다. 작년 바로 그날인데 동백꽃은 죄 지고 벚꽃이 만발해 있었다. 응달에 선 키 작은 동백나무가 뒤늦게 피어난 한두 송이 꽃을 지나친 푸르름으로 안고 있는 정도였다. 내 가슴에 파고들었던 그 찬란한 슬픔, 붉은 그리움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도다리 쑥국도 맛이 없었다. 여기에 더해 바닷가를 하염없이 걷기로 했던 여행 이튿 날엔 최악의 미세먼지로 실내를 벗어날 엄두가 나지 않은 정도였다.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아름다운 기억을, 경험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면 그게 차라리 기적이고, 그걸 기대하는 것이 환상일 테니까.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공간, 물리적 조건을 완벽하게 복사해놓았다 해도 내가 달라졌으니 말이다. 작년 남편 손에 이끌려 통영에 갔을 때는 세상이 그저  흑백이었는데, 올봄 나는 이 연둣빛 세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선 감동에 하루하루 보내고 있지 않은가. 매일 산책하며 하루 분량의 짙어지는 생명의 빛에 감탄하고 있다. 작년 오늘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지금 오늘의 나다. 

 

엄마 1주기를 기념한 통영 행이었지만 어째 엄마의 자리는 크지 않았다. 동백꽃도 없었고. 차라리 그 1년을 버티고 살아온 나, 오롯이 나를 위한 이기적인 시간이었다고 고백하는 편이 낫겠다. 딸 채윤이가 든든한 조수로 함께 했다. 조수석에 앉아서 장거리 운전에 피곤하진 않은지 살피고. ("엄마, 피곤해? 졸리지 않아?" 살피고 살피다 갑자기 제가 곯아떨어지긴 했지만) 미세먼지로 해변 산책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특유의 지리 감각을 발휘하여 지도 검색을 하더니 멋진 드라이브 코스로 안내하기도 했다. 나가사키의 소토메 마을 같았다.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 파랗습니다." '침묵의 비'가 있는 엔도 슈사쿠의 그 마을 말이다. 슬프고 슬픈 인간의 실존도, 푸르를 뿐인 바다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인간의 슬픔의 늪을 헤매고 있는데 아랑곳없이 푸르른 바다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내 슬픔이 어떠하든 무덤덤하게이 제 생긴 모양을 지키는 바다나 자연은 고맙기도 하다.

 

채윤이가 가보고 싶다는 독립서점을 찾아 갔다. 주소 찍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갔는데, 어머! 작년 남편과 함께 와서 걸었던 벚꽃 길이다. 꼭 다시 가보고 싶었지만, 일부러 찾으려 했어도 어려웠을 텐데. 동백꽃 대신 화사한 벚꽃이 맞아주는 것 같았다. 곳곳에서 벚꽃이 반겨주었다. 통영에 갈 때마다 관광 안내지에서만 봤던 '윤이상 기념관'에 들렀다. 미세먼지 몰려오기 전이었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햇살 좋은 야외 공원을 걸었다. 한 아이가 눈 앞에서 통통 뛰어다니더니 갑자기 내게 다가와 벚꽃 몇 송이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아 들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는 통통 뛰어 벌써 저쪽으로 사라지고 있다. 내 손에는 작은 벚꽃 다발이 들려져 있고.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아이 같았다. 작년 어느 공원에서 눈 앞에 펼쳐진 붉은 동백꽃의 향연만큼이나 갑작스러웠다.  

 

1년 만에 같은 자리에 서보니 지나온 1년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 흑백의 시간을 어떻게 헤쳐왔단 말인가. 어떻게 헤쳐나와 오늘 이렇듯 흩날리는 벚꽃에 감탄하고 있는가. 어쩌면 이렇게도 아무 걱정 없이 채윤이와 달착지근한 수다로 시간을 보내고 있단 말인가. 슬픔이 아니라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 할 일이다. 일 년 전 통영과 오늘의 통영. 뚝 떼어놓고 보니 또렷한 변화이지만, 어디 하루아침의 일인가. 작년에 집으로 돌아가기 전, 한산도를 바라보며 남편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이제 돌아가야 하는데... 우리 집 거실과 안방 침대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게 두려워. 거기서 견뎌야 할 시간이 막막하기만 해". 거실과 안방 침대에서, 다시 꼼짝하지 않고 지낸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이 있어서 다시 만난 통영의 봄이 새로운 것이다. 일 년의 '오늘'을 견디고 얻은 오늘이다. 엄마와 함께 했던 52년보다 엄마 생각을 더 많이 하면 지낸 일 년이다. 엄마의 몸이 사라진 자리에서 엄마의 존재는 더 커졌고, 투명해졌다. 거실과 안방 침대를 피하지 않고, 아니 피할 곳이 없어서 그 자리에서 울고, 그리워하고, 잠든 날이 쌓였다. 엄마가 남긴 것들을 또렷하게 느끼고 있으니 몸은 떠났지만 빛나는 영혼으로 존재하는 엄마와의 연결이다.

 

통영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중이었다. 주유원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었다. 자동차 뒷 창에 붙인 세월호 노란리본에 딴지를 걸었다. "저걸 아직도 달고 다녀요? 언제 적 세월호야? (쯧쯧)" 익숙한 상황이다. 짧은 순간 여러 생각과 말이 스치지만 무반응으로 지나치곤 한다. 표정까지 무반응일 수는 없었나 보다. 내 표정을 살피더니 '아, 고객님이지!' 싶었는지 힘이 쫙 빠져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아니, 이제 잊어야지 뭐...." 했다. 안전핀이 뽑혔다. 뭔가 치밀어 올랐다.  잊으라니, 이제 그만 잊으라니. 분노, 설움, 슬픔... 한꺼번에 폭발할 것 같았다. 저 입 다물게 할 말이 무얼까. "내 아이예요. 내가 세월호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라고요!"라고 할까? 아무 말 못 하고 차에 올랐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잊으라니, 잊으라니... 잊을 수 없겠구나, 결코 잊을 수 없겠구나, 잊은 게 아니었구나! 멀쩡하고 즐겁게 통영 다녀온 것은 엄마를 잊었기 때문이 아니다. 텅 빈 마음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기에 그저 그대로 끌어안고 사는 것이지. 잊어서는 아니다. 잊지 못할 것이다. '애도에 완성이나 종결은 없으며, 애도는 실패해야 그것도 ‘잘 실패해야 성공한 것'이라는 데리다(Jacques Derrida)의 말을 알아듣는다. 동백꽃이 벚꽃이 되고, 봄이 여름이 되고, 1주기가 2주기, 10주기가 되어도 애도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침표 없는 애도, 잊지 못함은 엄마와 나를 새로운 끈으로 연결한다. 새롭게 잊지못할 때 새로운 만남으로 엄마를 다시 만난다. 엄마의 빛나는 영혼을 만난다. 나 또한 이 작은 몸을 떠나 영혼으로 남을 때, 영혼과 영혼으로 엄마를 만말 그때까지 애도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잊지 못할 것이다.

 

 

 

 

 

통영에서 찍은 사진을 가지고 채윤이가 그림을 그렸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하고 보니 엄마 품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아 쿵, 하고 좋았다. 

 

 

 

 

 

좋은 걸 혼자 두고 못 보는 은경 샘, 연구소의 연구원이다. 좋은 걸 혼자 먹지 못하시고 한아름 들고 와서 나눠주었는데. 설명이 구구절절한 청도 출신 미나리다. 와, 설명이 구구절절 길만도 하다. 무슨 미나리가 이리 깔끔하고 달착지근하다냐! 모처럼 집에 혼자 있는 날. 혼밥이라니 눈물 난다. (행복해서 나는 눈물) 삼겹살 구워 된장에 찍어 함께 먹으면 최고라는데. 혼자 먹자고 삼겹살 사러 갈 수는 없고. 냉장고 문 열고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아무리 뒤져봐도 삼겹살 비슷하게 생긴 게 없다. 그렇다면 떡볶이지. 만만한 건 떡볶이다. 먹다 남은 로제 파스타 소스에 청양고추 때려 넣어 떡볶이를 만들고 청양 고추와 라임도 맞는 청도 미나리 썰어서 함께 먹었다. 청양고추 효과로 혀에 불이 나는 걸 청도 미나리로 껐다. 아사삭 씹히는 게 향까지 살아 있어서... 맛있어 돌아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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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에 붙이는 사족)

 

블로그 고갱님 중에 페친이시며 동시에 연구소 페이지 '상처 입은 치유자들' 팔로우어이신 분, 게다가 연구소 카페 회원이기까지 하신 분은 넌덜머리 나시겠지만 이게 찐입니다. 연구소 후원자들께 보낸 편지 공유 포스팅 말입니다. (아, 여기에 후원자이신 분들은 정말 지겨우시겠네요! 편지 받고 충분히 감동했는데 시간 차 공격으로 계속 널어놓으니!) 이번이 마지막이고 찐입니다. 후원자 요청이 자칫 '인맥에 호소하여 거절 못하게 하는 보험 가입'의 폭력이 될까 하여 조심스러웠습니다. 후원이든 상담이든, 잠깐 만나서 커피 마시고 노는 것조차도 '자발성'이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거든요. 마음을 다해서 연구소 꾸리고 있습니다. 상담 지원이든 세미나 지원이든 혜택 받는 분들과 후원자들, 중재하는 저 자신 모두 동등한 위치에 놓으려 하고요. 후원을 통해 상담 받는 사람이나, 후원하는 사람이나, 상담하는 사람이나 '연결'이 필요한 존재이니까요. 후원금은 연결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블로그 고갱님께서도 마음이 움직이시면 연결되어 주세요. 후원자가 수혜자 되고, 수혜자가 후원자 되는 후원의 영성입니다. 

 

*****

 

(페이스북에 붙인 사족)


편지, 사적인 글로 생각하기 때문에 늘 조금 은밀하게 간직하고 보내곤 했습니다. 비록 삼십여 명에게 동시에 같은 내용을 발송하지만, 일대일의 관계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후원금의 영성을 생각해봅니다. 구걸하거나 빼앗는 태도로 후원금 요청을 하게 되면 남는 것은 분노와 질투, 교만뿐이겠구나! 언젠가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글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후원금, ‘돈’이라는 물질을 ‘치유와 성장의 에너지’로 바꾸어 영적인 일을 도모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번씩 후원자 명단을 들여다보며 한 분 한 분의 얼굴로 마주합니다. 그러다 쓰는 후원 감사편지는 조금 설레고, 조금 사적으로 느껴집니다. 사적으로 쓴 공적 편지를 용기 내어 공유하며 또 다른 연결을 기다려봅니다.

 


후원자님께.

“나는 은혜는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언젠가 후배의 글에서 본 문장인데 유난히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제 안에도 같은 뜻이 있었나 봅니다. 저도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매달 연구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후원자님은 제가 늘 기억하고 있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한 번 책갈피에 새겨 보았더니, 참 아름답네요.

상처 입은 치유자들의 후원자로 연결되어 주심에 새삼스레 감사드립니다. COVID-19로 일상의 많은 것들이 멈추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시끄러워진 듯합니다. 거리 두고, 격리되는 고립의 시간을 지나며 ‘진정한 연결’에의 갈망이 절실해지네요. 후원자님의 마음은 지금 어떠실까요? 후원자님의 일상에 호흡처럼 현존하시는 그분을 향유하실 수 있길 기도드립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후원자님의 통장에서 매달 성실하게 이체되는 후원금에 담긴 마음을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개인 상담부터, 여러 집단 여정, 지도자과정까지 마음은 원이로되 ‘돈’이 걸림돌이 되어 주저하는 분에게 최대한 지원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곤 하는데, 그 인사는 후원자님의 몫임을 잊지 않습니다.

작년 하반기에는 한 교회에서 ‘이 시대 정신적 빈곤층’인 청년들을 위해 써달라며 적지 않은 금액의 후원을 해오셨습니다. 덕분에 여러 청년, 특히 한 기독교 기관의 활동가들에게 개인 상담과 집단 상담 지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십일조 모은 것을 후원금으로 전해오신 집사님이 계셨는데. 마음이 묵직해졌습니다. 정해진 교회 없이 방황 중이신데 ‘십일조’를 따로 모으신 마음이 아프고도 거룩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듯 그저 흘려 보내주시는 돈을 치유와 성장의 에너지로 바꾸어 유통하는 것이 저희의 소명임을 알고 거룩한 부담감으로 일하겠습니다.

‘수선이 필요한 손상된 자아’가 아니라 ‘하나님과 또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통해 생명을 찾을 수 있는 소외된 영혼’인 우리임을 늘 기억합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결되었음을 잊지 않고 또한 은혜를 잊지 않으며 나음터의 길을 가겠습니다. 후원자님 일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2021년 3월 25일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드림

후원 신청 https://bit.ly/2KKFogF

 

 

 

 

 

 

 

작년 이 즈음, 엄마를 떠나보내고 현실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한 내담자를 만났다. 내담자. 내담자였다. 연구소에서 개인 상담받으실 분인데, 시작 전에 나를 한 번 만나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나는 개인 상담은 하지 않고 있고, 당시는 제정신도 아니었는데 왜 수락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만나야죠!"하고 나갔다. 암흑의 봄, 유일한 공적 외출이었던 것 같다. 한 번 만나고 보니 '내담자'가 아니라 H라는 이름으로 마음에 새겨졌다. H님이 마주한 일상은 막막했다. 나도 그때는 막막했으니 유유상종의 미덕이 오갔으려나. 그날(아니 그즈음 모든 것)의 기억이 희미하다. "(막막한)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H님이 달라질 수는 있고,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에요." 이런 말씀을 드렸던 것도 같고. 

 

그때로부터 H님은 조용히 개인 상담, 내적 여정, 치유 글쓰기에 참여하셨다. 그리고 지금은 '꿈과 영성생활' 집단 여정에 함께 하신다. 한 주에 한 번씩 돌아가며 꿈을 나누는데, 이번 주 H님의 순서였다. 아름다운 꿈이었다. 꿈은 진실이다. 논리도 없고, 이치에 닿지 않아 개꿈이라 치부할지라도, 아무리 시덥지 않아도,  꿈은 내 안에서 나온 진실이다. 게다가 분명 내 안에서 나오지만 꿈을 통제할 방법은 없다. 꿈의 자율성이라고 한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 간절히 그리는 그 사람이 내 맘대로 꿈에 나타나진 않는다. 꿈에서조차 떠올리고 싶은 치를 떨리는 일이 밤마다 꿈에 나와 나를 괴롭히는 것도 막을 길이 없다. 즉, 아름다운 꿈을 꾸고 싶다고 꾸어지는 것이 아니다. 꿈 작업을 하고 이 여정에 들어선 지 13년 정도 된 것 같다. 그간 수많은 꿈을 만났지만, 이렇듯 고요하여 침잠하게 하는, 요란스럽지 않게 아름다운 꿈은 처음인 것 같다. 이번 주 H님의 꿈을 떠올리기만 해도 다시 설렌다.

 

사람 참 변하지 않는데 말이다. 드물게 몇 개월이나 일이 년 사이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변하고 성장하는 이들이 있다. 정말 궁금하다. 치유와 성장을 돕는 일에 올인하여 살지만, 진정한 관심은 나 자신에 있다. 정말 궁금한 이유는 그들을 본받아 나도 성장하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관찰하게 된다. 면밀히 관찰하게 된다. 그런 이들이 쓰는 글, 하는 말, 꾸었던 꿈을 마음에 새기고 글로 남겨 다시 들여다 보곤 한다.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벼랑 끝에 선" 그들이다. 역시 인간의 마음을 꿰뚫는 예수님의 눈이다. 팔복의 첫 번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이 말씀을 유진 피터슨은 이렇게 번역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 작년 이 즈음 H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벼랑 끝에 서 있었다. 텅 비어 있었고 마음은 한없이 가난했다. 그 무엇도 내세우지 못했다. 언뜻 봐도 착하고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아왔건만, 그것을 내세우질 못했다. 그에게 들이닥친 상황이 그러했다. 벼랑 끝에서, 가난해져 텅 빈 마음으로, 스스로 지켜낼 아무것이 없는 그 자리게 복된 자리였다니.

 

복된 그 자리 반대편에서 울리는 소리도 안다. 꽤 옳고, 상당히 괜찮고, 나름 착하며, 많이 희생했고 이타적으로 살았다는 소리들. "이만하면 됐지! 나만큼만 하라고 해!" 상황이 막막해질수록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빽빽해 숨 쉴 공간 없어지는 것이다. 죄가 없(다 여겨서)어서 은혜가 들어설 자리 없는 자아의 풍경을 안다. 오래 봐서 익숙하고, 많이 해봐서 잘 안다. 넌덜머리 날 정도로 익숙하다. 익숙한 자리에서 변화란 없고, 성장이나 치유가 들어설 틈이 없다는 것도. 그 완고한 자아의 장벽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꿈을 나눈 H님이 했던 마지막 말을 내 방식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1년 전, 이 즈음 두려움과 불안의 극한이었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한 순간의 내 행동으로 인해) 남편에게 일어난 안 좋은 일, 그것이 최악의 결과가 될 것이 두려웠다. 아니,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생각한다. 바로 그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에게 그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다. 심지어 버림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변함없지만, 나는 어쩌면 견딜 힘이 생겼다." 그의 꿈이 아름다운 건, 그의 의식상태가 이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의식이 이렇듯 넓고 깊어진 것은 꿈이 준 힘일 것이다. 둘 다이다. 벌어진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다면 책임지겠다는 태도. 옥색 빛의 영롱하고 맑은 물이 반짝이며 흐르는 고요한 강물 같은 마음이다. H님의 꿈에 나온 그대로. 

 

누가 성장하는가?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놀랍게도, 산상수훈의 이어지는 말씀들이 더욱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실존의 민낯을 그대로 마주하는 이들, 상처 입고 쓰라린 감정 사이를 묵묵히 걷는 이들이 결국에 누리는 복, 그것을 본다. H님의 꿈과 글에서처럼. 그것이 이 막막한 세상을 견디는 힘이다. '상처 입은 치유자들'이란 이름으로 살며 누리는 복이다. 그저 지켜 보고 감동으로 그칠 일인가. 내가 살고 거머쥐어야 할 복이 아닌가.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에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만족하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모든 것의 당당한 주인이 된다.

하나님께 입맛 당기는 너희는 복이 이다.
그분은 너희 평생에 맛볼 최고의 음식이요 음료이다.

남을 돌보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렇게 정성 들여 돌보는 순간 너희도 돌봄을 받는다.

내면 세계, 곧 마음과 생각이 올바를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에야 너희는 바깥세상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진정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의 집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

하나님께 헌신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 박해로 인해 너희는 하나님 나라에 깊이 들어가게 된다.

그뿐 아니다. 사람들이 내 평판을 떨어뜨리려고 너희를 깔보거나 내쫓거나 너희에 대해 거짓을 말할 때마다, 너희는 복을 받은 줄로 알아라.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진리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들이 불편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너희는 기뻐해도 좋다. 아예 만세를 불러도 좋다! 그들은 싫어하겠지만, 나는 좋아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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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값이 어마어마하다. 얼마 전 남편 퇴근길에 파를 사 오라 부탁하고 영수증을 보니 육천 원이었던가? 이 남자 또, 또, 또! 계란을 사 오라 하면 유정란을 사 오고, 야채를 부탁하면 덥석 유기농 코너에서 들고 와서 내가 장보는 가격의 몇 배를 탕진하고 온다. 또, 또!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파 값이 정말 그런 것! 와, 후달린다. 그래서 파테크가 유행이란다. 집에서 파 길러 먹기. 어! 우리 엄마, 시어머니 두 분 다 원조 파테크er인데. 큰 화분에 파를 심어 놓고 그때그때 잘라서 쓰시던 모습 눈에 선하다. 익숙하긴 한데, 나는 못해.

 

대파와 마늘은 정말 많이 쓰는 양념이다. 안 살 수는 거라 상대적으로 싼 쪽파를 사봤다. 나름의 파테크다. 양이 많아서 여기저기 막 뿌리게 된다. 현승이 먹는 스테이크에 파를 듬뿍 올리고 소스 조금 뿌려 구웠다. 아, 이거 괜찮다! 맛있다고 엄지척 하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길래, 사정 얘길 해줬다. 딱 알아듣고 한 술 더 떴다.

 

아아, 그거 알지. 어떤 식재료가 저녁에 먹는 음식에도 듬뿍 들어가고, 아침에 먹는 전혀 다른 음식에 또 들어가고, 모양만 살짝 바꾸면서 계속 등장할 때가 있지. 아, 지금 엄마한테 물량이 많구나! 이렇게 생각해. 당분간 쪽파가 많이 등장하겠네.

 

요리사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고기에만 올인하는 것 같아서 민들레 나물 무친 거랑, 오이 몇 조각이라도 먹이려고 어렸을 적처럼 한 접시에 죄 담아주었다. 구운 마늘에 발사믹 크림을 뿌리는 척, 접시 중앙에 하트 그리려고 폼 딱 잡고 있는데, "엄마, 하지 마! 하트 그릴려고 하지?" 한다. 손에 힘이 풀려서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남기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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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 본 김에 콩나물밥 함. 달래, 냉이, 쑥... 이런 걸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어릴 적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산책하다 만나는 쑥이나 냉이를 그냥 두고 오는 게 그렇게 아깝다. 마트에서 만나면 일단은 카트에 담고 본다. 초록 잎이 있는 '달래'와 흰색 대가리만 있는 '은달래'가 나란히 있었다. 차이는 모르겠지만, 비싼 놈이 뭔가 낫겠지 싶어 천 원 더 비싼 은달래를 골랐다. 집에 와 검색해 보니, 예감대로 은달래는 노지 달래라 향이 더 진하단다. 콩나물밥 해서 비벼 먹고, 도토리묵에 끼얹어 먹고, 찐 양배추 찍어 먹고 있다.

 

현승이가 맛있다고 자꾸 달랜다. 점심에도 콩나물밥 달래, 저녁에도 콩나물밥 달래. 자꾸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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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편력은 곧 나의 나다움의 산물, 또는 근거이며 동시에 외로움의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사람들과 이런 책을 얘기할 수 있고, 또 다른 이들과 저런 책을 공감할 수 있는데. 이런 책과 저런 책을 동시에 펴들고 만날 사람이 없다. 이건 '내 맘 같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어느 때 무슨 책을 읽었는지는 그대로 나의 인생 역정이다. 신앙 역정이기도 하고. 눈물 없이 떠올릴 수 없는 어느 시기 어떤 독서도 있다. 진짜로. 주변 사람 아무도 모르는 책을 금서인 양, 숨어 읽던 시절도 있었다. 누가 친절히 소개한 책이면, 길이면 그렇게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더듬어 만난 낯선 저자들이 내 영혼을 뒤흔드는데, 어디다 말할 곳이 있어야지! 10여 년이 훌쩍 지나고, 그때의 나처럼 무엇인가 찾는 이들을 만나 함께 읽고 쓰는 오늘이다. 연구소의 상처 입은 입은 치유자 과정 2기의 필독서를 선정하며 심장이 벌렁거린다. 달라스 윌라드와 리처드 로어를, 아빌라의 테레사와 제랄드 메이를, 이런 책과 저런 책을 동시에 펴들고 만날 사람들이 있다니! 

(아래는 연구소 SNS에 올린 글이다.)

 


2기 상처 입은 치유자 과정이 곧 시작됩니다.

새 술만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사람 역시 새집에 모셔야겠습니다. 1기 때와 같은 커리큘럼이지만 담기는 것은 새로워질 예감입니다. 함께 하게 될 2기 수강자 대부분이 신학을 전공하고, 목회 또는 선교 현장에 계시면서 특유의 영성적 목마름을 갖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제도권 교회 내에서 내적 여정의 영성을 일구는 것에 사명감을 느끼고 계시고요. 2기 여정은 보다 깊은 기독교 영성에 천착해 볼 예정입니다. 1기 때 함께 읽었던 필독서가 딱 알맞았다는 자체 평가를 하고 만족하고 있었는데. 2기의 필요는 새로운 교재를 고민하게 하였습니다. 2기 만의 필독서 네 권이 선정되었습니다.

신학자이자 인문학자인 달라스 윌라드의 <마음의 혁신>으로 복음주의 신학 안에서 내적 변화에 대해 정리해 볼 것이고요. 내적 여정 세미나에서 자주 언급되는 아빌라의 테레사 <영혼의 성>을 통해 중세 신비주의 영성에 에니어그램을 비춰보겠습니다. 이 시대의 영성가 제랄드 메이의 <영혼의 어두운 밤>은 아빌라의 테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두 분의 영성을 오늘의 언어로 안내해 줍니다. 남성 목사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남성과 영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리처드 로어 신부님이 쓴 남성성과 영성에 관한 책 <야생에서 아름다운 어른으로(Wild Man to Wise Man)>입니다.

필독서를 미리 공개하는 것은 2기 수강자들께 이미 시작된 우리의 여정을 기대와 기도로 기다려 주십사 하는 것이고요. 한 자리 정도 비어 있습니다. (장소가 협소하여 현재 인원으로 족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지만) 2기 만의 이러한 여정에 마음이 움직이시는 분을 초대하기 위함입니다.

| ‘상처 입은 치유자 : 내적 여정 지도자’ 과정

✔ 2020년 4월8일(목) ~ 11월25(목) 오후1시~4시
11월 25일(목) ~ 26일(금) 1박2일 마침 피정
✔ 인원 : 5 ~ 7명
✔ 장소 : 미사 나음터(5호선 미사역 5분, 주차 가능)
✔ 대상 : 내적 여정 1단계부터 영성과정까지 수강하신 분
(지도자 과정 중에 전 과정 재수강 필수)
✔ 문의, 접수 : 전화로만 받습니다. (010-7242-8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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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에 두 개의 집단 여정이 시작될 예정이었는데, 둘 모두 취소되어...

룰루랄라!

원고 마감 주간이기도 한데,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시간 부자, 에너지 부자가 되었다.

 

 

쓰던 원고 잠시 덮고 탄천으로 나갔다. 

그새 봄이 와있었구나!

 

 

오고 가고, 가고 오는 계절의 어느 때인들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있더냐만은.

이 계절의 움트는 생명력은 독보적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일깨우는 계절이다.

 

 

발길 닫는 어느 곳에서든 마주하는 연둣빛, 너 참 오랜만이다! 싶었더니.

작년 봄이 없다. 4월까지도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 생각만 난다. 작년엔 봄이 없었다. 

이 동네엔 이질적인 여러 산책길이 공존한다.

그리 잘 다듬어지지 않은 탄천이 있고, 꽤나 잘 조성된 아파트 산책길도 있고, 경부고속도로를 건너가면 시골길 느낌을 걸을 수도 있고, 조금 더 가면 얕은 산을 탈 수도 있다. 중요한 것! 몇 번 다니며 익숙해지자 새들의 아고라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파트 숲 사이, 시골길 덤불 아래에 상시로 열리는 새들의 토론장이 있다. 그곳엔 늘 그 친구들이 모여 떠들고 있다. 휴대폰 들고 영상 촬영 해봐야 새 한 마리 제대로 담을 수 없지만. 아, 실은 이게 얘네들의 매력이다. 찰나의 만남만 허락하는 친구. 

 

 

봄의 간지럽힘을 견딜 수 없어서 저녁엔 쑥국을 끓였다. 엄마가 없는 두번 째 봄, 몸의 감각이 다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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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란 게, 한 시라도 머물러 있어야 말이지. 한 나절 사이 마음은 수십 번 바뀌고 뒤집어진다. 이른 아침의 마음은 무거웠다. 새로 시작하는 일(일이 단지 일인가? 일은 항상 사람이지!)이 잘 되려나 싶고, 그만두고 싶고. 그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니까!)과 관련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무게가 줄어들고 걱정은 기도로 바뀌었다. 포스트잇에 몇 마디 끄적여 노트북에 붙이고 기도했다. 걱정이 기도로 바뀐 것이지 그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일의 실행을 위해 단톡에서 말을 주고받다가 번쩍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거기에 맞장구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오, 마음의 날씨가 급 설렘으로 바뀌었다. 설렘은 생기가 되고 에너지가 되었다. 

 

혼자 먹는 점심이고, 원고에 매진해야 할 시간이기도 해서 대충 때워야지 싶었는데. 에너지가 충천하니 식욕 또한 상승하고,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김치소 같은 걸 다져서 만든 김치전이 아니라 배추전처럼 통으로 깔아서 부치는 통김치전을 만들었다. 말이 필요 없지! 혼자라도, 혼자라서 더 맛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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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이제야 나는 하나님이신 그분이 몸을 입고 인간이 된 이유를 알았다. 죽음으로, 가장 극적인 죽음, 극형으로 '몸'을 버리신 이유를 알겠다. 아주 잠깐 인간으로 사시다 그 몸을 버리고 돌아가신 이유를 알겠다. 함께 먹고 자고, 몸으로 부대끼던 당신의 제자들 앞에서 무력하게 끌려가신 이유를,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유를 알겠다. 두려움과 호기로움 사이 좌충우돌하던 베드로의 인격이 변형되었다. 선생님의 죽음을 수치스럽게 통과한 베드로가 그 새벽 자기혐오 속에 헛 그물질을 하는 그 심정을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불을 피우고 아침을 준비하며 따뜻하게 맞아주신 선생님.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할 그 수치스러운 지점을 짚어내시더니 용서 너머 부탁을 하시는 선생님. 그리고 나서 떠나신 선생님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선생님의 부재 속에서 베드로는 비로소 가르침을 새록새록 알아듣고 그분의 못다한 삶을 대신 살 수 있게 되었다. 있다 없어진 몸, 그 물성이 사라진 공간은 얼마나 큰지! 있다 없어진 그 빈자리가 드러내는 존재는 얼마나 또렷한지. 그 가르침은 또한 얼마나 명료한지. 2021년 사순기간에 나는 몸과 영혼을 새롭게 알아듣는다. 

 

사라짐

 

바쁠 때는 한 달 정도는 엄마랑 통화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한 달이 뭐야. 김포 현대프라임빌 1층 그 방 그 침대에 엄마가 여전히 누워 졸고, 가끔 일어나 기도하고, 다시 졸고 있을 거라면 1년 동안 통화하지 않고 지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지냈다. 전화가 좀 뜸하면 바로 태클 들어오는 시어머니는 신경이 쓰였지만, 이제는 늙어서 섭섭해 하지도 않는 엄마다. 괜히 허하고 마음 둘 곳 없어 전화하면 "얼라, 우리 딸이네. 바쁜디 전화를 혔네." 하는 순진이 무궁한 엄마. 연세가 드셔서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이틀 사흘의 시간 개념이 모호해진 것도 무심한 딸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크게 죄책감이 들지도 않았다. 엄마 거기 있고, 나 여기 있고, 끊을 수 없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었을까. 

 

존재함

 

엄마와 함께 한 하늘 아래 살던 52년인데. 그냥 공기처럼 존재하던, 아니 공기처럼은 아니다. 가끔 좋고, 자주 성가신 그런 존재니까 공기나 하늘 같은 존재는 아니다. 어쨌든 엄마는 52년 동안 있었던 엄마다. 없는 엄마와 1년을 보냈는데, 52년보다 더 많이 엄마 생각하며 지냈다. 없어진 엄마 때문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없어져서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도 몰라. "있을 때 잘할 걸." 이런 말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엄마가 다시 살아와도 잘할 자신은 없다. 예수님이 딱 33년, 그것도 30년은 숨소리도 안 내고 계시다 3년 반짝하고 떠나셨다. 그래서 기독교가 잘 되는 거다. 몸을 너머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아들은 거다. 그분과 함께 했던 제자들이 알아들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분께 배운 걸 전했고, 그러다 그분처럼 조롱당하고 버려지고 죽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거다. 나도 엄마의 부재를 절절하게 느끼며 몸 너머의 존재를 상상하게 된다. 

 

무덤

 

엄마 무덤은 가난하다. 시립추모공원 안에 있고, 딱 한 줌으로 남은 몸을 담은 한 주먹의 땅을 차지한다. 엄마 떠난 지 1년이 된 날에 엄마 무덤에 갔다. 주말에 이미 추도예배를 드렸다. 2월부터 내내 동생과 통화하며 울고불고했던 터라 '당일'을 기념하는 것도 벌쭘하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아니 3월 11일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혼자 엄마 무덤에 다녀왔다. 혼.자. 라는 말에 왜 이리 에너지가 들끓는지. 남편이든 동생이든 함께 해주길 기대하면서도 혼자 가고 싶기도 했다. 아이들이 "엄마, 같이 갈까?" 하는 말에 솔깃하기도 했지만 혼자 가야 했다. 실컷 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하얀 꽃

 

엄마와 나 사이, 우리 둘만의 끈이 있다. 평생 엄마와 사이가 더 좋았던 건 동생이었고, 엄마는 나보다 동생을 더 착하게 생각하고 편하게 여기긴 했지만. 동생이 엄마를 헤아리는 마음이 나보다 깊고, 내가 넘볼 수 없는 동생과 엄마 사이 끈끈함이 있지만... 나와 엄마 사이 그 무엇이 있다. 엄마의 초라한 무덤가에 가만 혼자 앉아 있으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나와 엄마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내 몸과 영혼의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엄마 떠난 이후로 이렇듯 삶이 텅 빈 느낌인 것은 내가 엄마고, 엄마가 나라서, 내 삶이 엄마의 94년 삶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쩐지 엄마의 삶 그 이상을 살지 못할 것 같다. 엄마 만큼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생, 아니 한때 치우고 싶지만 치울 수 없는 내 인생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었다. 부끄러운 존재였다.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 45세 쯤 되었을 때, 깨달았다. 엄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엄마에 대한 부끄러움이 나를 성장시켰다는 것. 엄마는 걸림돌이 아니라 내 인생 디딤돌이었다는 것. "엄마, 내가 엄마야. 엄마가 살지 못한 삶을 잘 살게. 말끝마다 예수님을 달고 살았지? 말만 그렇게 하면서 삶은 그렇지 못하다고 내가 무시하고 조롱도 많이 했어. 엄마 정말 무시 당하기 딱 좋은, 푼수 같은 사람이야. 그래도 착한 마음 포기하지 않고 나름의 생을 감사하며 마지막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어. 엄마처럼 살래.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처럼 있는 그대로, 분수를 따라 살래. 엄마처럼." 

 

엄마 돌아가시고 익히 알던 '영혼'의 존재를 더욱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그 느낌을 믿기로 했다. 거부하지 않고 순간순간 감동하기로 했다. 몸과 말, 말과 행동, 행동과 생각 너머 사람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순간순간 빛나는지 더 적극적으로 발견하기로 했다. 아빌라의 테레사 말씀처럼 "영혼이 지니고 있는 좋은 것들이 무엇인지, 그 위대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말이다. 그건 엄마가 남긴 자리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 때문이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작년 2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엄마를 걸어두고 "빛나는 영혼"이란 상태 메시지를 적어 두었었다. 아, 그때도 알고 있었다. 망가진 몸 때문에 더욱 찬란하게 돋보이는 엄마의 영혼을. 

 

작년 장례식날엔 그렇게 추웠는데. 비석을 하러 갔던 날도 차겁고 거센 바람에 머리가 쪼여 두통이 올 정도였다. 추모공원 주변을 한 바퀴 도는데 쑥이며 냉이가 군데군데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날은 따뜻하고 메마른 잔디 사이 손톱만 한 초록이들은 보잘것 없이 예뻤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볼펜심 정도나 되는 하얀 꽃 한 무더기가 피어 있었다. 냉이 비슷한데, 이름을 알 수 없다. 우리 엄마 무덤가의 하얀 꽃. 이름 없는 하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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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지도자 과정을 1박 2일 마침 피정과 함께 마쳤다. 작년 11월 말의 계획이 방역 상황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더는 미룰 수 없어서 모두 하루 이틀 전에 무증상자 검사를 받고 코로나 바이러스 음성 확인을 받고 모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 번거로움과 불편함조차 기도라 여기며 실행했다. 딱 일주일 전 주말의 일이다. 그러고는 무기력하게 한 주를 보냈다. 안 자던 낮잠까지 자면서 나른하고 몽롱한 시간이었다. 약간의 우울감까지 있어서 몸과 마음이 바닥에 딱 붙어 있었던 것 같다. 

 

연구소 단톡에 마음을 나누다 보니 괜한 무기력과 우울이 아니었다. 지도자 과정 1년을 위해서 전력질주 했던 것이다. 결승 테이프를 끊고 나서는 운동장 바닥에 드러누워 꼼짝 못 하는 시간 같은 것이었다. 집중하여 다 쏟아붓고 숨을 고르는 시간. 오늘 아침에야 몸과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지도자 과정 1년을 1박 2일 여정에 담아 나름대로 진한 시간을 보냈다. 본질을 생각하는 의미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했고, 재미와 즐거움 역시 포기하지 않으려 돈과 에너지를 아끼지 않았다.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인 것, 지금 하는 행위 그것 외에 목적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가 맞다면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연구소 2년은 공동체, 성장하는 공동체, 여성 공동체 가능성의 실험이다. 연구원 다섯 명은 5벤저스다, 어벤저스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어제의 생각이 헌 것이 되는 게 내 장점이자 병인데. 그 새로운 생각을 구현해내는 사람들이 네 명의 연구원이다. 연구소와 연결된 사람들을 물질이든 영적으로든 꼭 필요한 방법으로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아이디어가 샘솟고, 아이디어는 금세 프로그램이 되고 작품이 된다. 1박 2일 피정은 그 결정체였다. 그래서 누린 순간순간의 기쁨과 감동은 말로 풀어낼 수 없다. 그 순간 자체가 목적이었기에 충분히 누린 것으로 족하다. 

 

페미니스트 심리학자인 앤 윌슨 섀프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 이름 붙이기를 '중독 사회'라 하였다. 개별 알코올 중독자나 여타 중독 행위자가 드러내는 과정과 특성을 고스란히 지닌다는 뜻이다. 지금 이 시스템 속에서 권력이나 영향력이 주로 (백인) 남성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 '백인 남성 시스템'이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배워왔고, 동참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가부장적 시스템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규칙과 답을 정하는 더 높은 힘과 권력이 있다.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것은 가능하며 백인 남성 시스템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신화가 전제된다. 모든 중독이 동반 의존자라는 가동력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백인 남성 시스템도 '반동 여성 시스템'과 함께 간다. 앤의 제시하는 대안은 백인 남성 - 반동 여성이 아닌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이라는 제3의 길이다. 답이 있고, 설명하고 가르치는 자가 있으며, 통제가 가능한 개인과 사회가 아닌 '과정'을 사는 개인과 사회이다.

 

처음 책으로 읽으면서 아하, 참 좋구나! 했지만, 구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연구소와 지도자 과정 여정 속에서 가능성을 보게된 것이다. 백인 남성 시스템에 대항하는 방식이 아니다.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을 '신생 여성 시스템'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저 '전혀 새로운 접근'이라고 읽는다. 주류가 되지 못한 여성적인 것, 여성적인 방식 말이다. 옳고 그름, 맞고 틀림, 정통과 이단, 나와 너를 가르고, 잘하고 못함을 서열화하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니 얼마나 생소한가. 생소하여 설명 또한 불가능하지만, 가능성을 경험한 것만은 분명하다.

 

역설적이게도 가능성 만큼이나 불가능성도 체감했다. 경험해보지 않은 방식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믿고 싶지만 믿기 위해서도 최소한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프게 마주한다. 답을 정하는 사람이 있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통제 가능한 방식은 얼마나 편하고 경제적인가. 자본주의와 성과주의, 아니 그냥 백인 남성 시스템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자기 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나님 형상을 담은 나, 이미 수용되었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지도자 과정은 '상처 입은 치유자' 양성 과정이다. '상처 입은 치유자란, 자기 치유와 성장 여정을 이웃을 위해 내어 주는 사람입니다.'라고 정의하고 시작했었다. 결과가 아닌 과정, 즉 여정을 내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갈수록 새롭게 체험한다. 메이크업 끝낸 얼굴이 아니라 시작도 하기 전의 맨 얼굴을, 짝짝이 눈썹이 조화로와지는 것과 생기 없던 피부가 물광이 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 '과정' 말이다. 그래서 상처 입은 치유자는 상처 위에 또 새로운 상처를 더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시작할 사람이 누구랴.  

 

 

 

같은 재료로 같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것이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의 아름다움이다. 내가 내 마음에 심은 단 하나의 씨앗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옳고, 맞고, 선하고, 아름답다. 여섯 사람이 여섯 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상처 입은 치유자' 여섯이 여섯 개의 길을 냈다. 우리는 모두 과정 위에 있었다. 과정의 순간순간은 다른 것을 목적하지 않았다. 그러니 행복했다. 여섯 개의 마음에 심긴 씨앗은 전혀 다른 여섯 개의 나무나 꽃으로 자랄 것이다. 그것을 믿는다. 나도, 이분들과의 연결로 또 하나의 씨앗을 심었다. 이 역시 또 하나의 생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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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먹었다. 딸 채윤이가 전날 밤 11시가 넘어 끓이기 시작했다. 11시 넘어 줌 강의를 마치고 "그럼 엄마 먼저 잘게" 하고 누웠다. 딸이 끓이는 미역국, 참기름 냄새에 취해 잠이 들었다. 아침으로 먹는 고구마나 현미 떡 대신 심심한 미역국 한 그릇을 먹었다. 아이들은 자고 남편과 나란히 앉아 먹었다. 갑자기 울음이 복받쳤다. 눈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꺼이꺼이 울음이 터져 나와 국물 마시는 후루룩 소리로도 숨길 수가 없었다. 뜬금없는 울음이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어서 그냥 울었다. 

 

1년을 뛰어 넘은 작년 생일의 여운인가. 작년 생일, 응급실에 있던 엄마가 요양병원으로 옮기고 면회가 안 되던 시간이었다. 가족들과 생일 점심을 먹고, 선물을 사면서도 엄마를 향한 그리움, 슬픔으로 마음이 펴지질 않았다. 보다 못한 남편이 "김포 갈까? 면회가 안 되면 어머니 병원 앞이라도 갔다 오자." 하고 갔다가, 병원장 면회를 하며 울고불고 한 끝에 엄마를 보고 왔다. 호흡기와 콧줄을 끼고, 팔은 묶인 엄마 귀에 대고 "엄마, 오늘 내 생일이야. 낳아줘서 고마워." 하면서 또 울었다. "어머니, 채윤아 엄마 잘 키워줘서 감사해요. 제가 잘할게요.” 김서방이 말했다. 엄마도 울었다. 입도 코도 막힌 엄마는 눈물로 말했다. 

생일 아침 미역국에 터진 눈물은 2월 내내 고여있던 것이었다. 2월이 되고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동생과 통화하는데 "내일이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진 날이야." 했다. 2월 첫째 토요일,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져 응급실에 갔다. 그날의 기억이 쓸데없이 생생하다. 병원 가는 길 동생 집 엄마 방에 갔다. 동생이 엄마 방 청소 좀 해달라고, 응급실 가느라 경황없이 나왔다고, 조카들끼리 있는데 무서워한다고... 엄마 침대 밑으로 피가 고여 말라붙어 있었다. 아득한 정신으로 그걸 닦아냈다. 2월이 됐는데 그날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났다. 내 생일이 다가와서인지, 2월의 그날 때문인지 2월은 그렇게 남모르는 슬픔과 우울로 지냈다.

 

생일이 다가오니 더욱 엄마 몸이 그리워졌다. 엄마의 포궁 안에 있었을 나, 45세 엄마의 늙은 포궁 안에서 만들어지고 자란 내 처음 몸은 어땠을까? 엄마의 몸이 미치도록 만지고 싶다. 생일 아침 미역국을 끓인 채윤이가 내 몸 속에서 자라다 나왔듯이, 나보다 더 크고 강한 존재가 되었듯이 나 역시 엄마 몸을 찢고 나와 더 큰 존재로 자랐다. 채윤이 출산하고 6주 만에 풀타임 음악치료사 자리가 생겨 어플라이 하고 입사했다. 아침마다 엄마가 우리 집으로 와 채윤이를 봐줬다.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채윤일 업고 골목 어귀에 나와 서있는 날이 있었다. 그러다 내가 나타나면 뚱한 채윤이보다 더 신이 나서 "하이고, 껍데기 왔네. 우리 채윤이 껍데기 왔다!" 했다.

 

채윤이가 제 껍데기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줬는데, 생일 미역국을 먹는 나는 껍데기를 잃었다. 내 껍데기, 엄마의 몸이 그립고 그립다. 놀란 토끼 같은 엄마의 눈, 함지박만 한 입, 광대뼈, 혈관이 툭툭 튀어나온 손... 어디에도 없는 엄마의 몸이  또렷하게 살아온다. 이렇듯 생생하게 살아있는 엄마 몸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생일인 수요일 밤에 교회 행사로 강의가 있었다. 북유럽 바로크 미술을 전공하신 교회 집사님이 렘브란트 그림을 읽어주시는 강의이다. 전에 한 번 교회에서 문화 강좌로  17세기 네델란드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주셨는데 참 좋았었다. "탕자와 시므온으로 그린 렘브란트의 고백"이란 제목의 강의라 연구소 벗들에게도 알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었다. 생일 선물 같았다. 익히 알던 렘브란트의 생애 이야기였는데 역시나 새롭게 들렸다. 어쩐지 렘브란트가 그린 노인들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탕자의 귀향>의 아버지, <시므온의 노래>, <야고보>, <기도하는 노인> 등. 강의는 손에 주목하도록 이끌었다. 아니, 렘브란트가 그렇게 그렸다. 나이 들어 눈이 흐릿해진 아버지는 손, 손으로 그 아들을 맞는다. 시므온 역시 손으로 아기 예수를 안는다. 기도하는 노인의 손엔 대놓고 조명이 비친다. 강의 그 부분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늙은 엄마의 손이 겹쳐져서다. 주책스럽고 부끄럽지만 이제 나는 나의 눈물을 탓하지 않는다. 화면을 끄고 그냥 울었다. 

 

 

 

엄마의 그 손을 한 번만 더 잡아볼 수 있다면. 천국에서 엄마의 빛나는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알겠는데, 엄마의 몸이 아닌 엄마를 만나는 것이 그렇게 기쁠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엄마와의 스킨십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엄마 돌아가신 이후 갈수록 나는 몸에 집착하게 된다. 생일을 지내며 내가 이 땅에 처음 왔던 때가 어땠을까 생각하다 보니 내 처음 집, 엄마의 포궁, 엄마 몸이 절절해진다.

 

 

내 생애 첫 사진이다. 태어난 지 5주. 이젠 기억에서도 흐릿해진 아버지는 이렇듯 나에 대한 기록을 남김으로 자신을 남겼다. 사진을 찍고, 사진 뒤에 메모를 남긴 아버지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데 어쩐지 본 듯이 생생하다. 엄마는 내게 남긴 것이 없다. 휴대폰에는 엄마가 담긴 영상이 많지만 엄마가 남긴 건 아니다. 엄마의 모든 것은 엄마의 몸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아, 엄마의 몸이 남긴 것은 나다. 그래서 내 생일이 이렇듯 서럽고 슬픈 것이다. 나는, 사라져 버린 엄마가 남긴 흔적이다. 내가.  

 

여러 차례의 여성 글쓰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생일 다음 날은 또 한 번의 모임이 끝나는 날이었다. 참가자 한 분의 글 한 문장이 가슴에 남아 있다. "나는 나의 생일을 가장 싫어해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궁굼해 지고 그리워지는 날이거든요." 어릴 적 돌아가신 아빠에게 쓴 편지이다. 나는 나의 생일을 가장 싫어해요. 이 문장을 보고 휘청, 존재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참가자들의 많은 글에서 나를 본다. 아니 모든 글에서 나를 본다. 그래서 힘겹고, 그래서 좋은 글쓰기 여정이다. 이 문장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나를 흔들었다. 예언같이 느껴졌다. 앞으로 사는 날 동안 나는 내 생일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평생 아버지 부재를 끌어안고 살았지만, 내 생일에 아버지를 떠올려본 적이 없다는 것도 신기하다. 글 쓰신 분에게 비춰본다면 더더욱. 그러고 보면 나는 아버지를 몸으로 느끼지 못했다. 관념으로 느끼고 그리워했다. 아버지의 글씨체를, 지성을 선망하며 그리워했다. 무엇보다 신앙으로 승화시켜 숭배하며 그리워했다. 엄마는 다르다. 엄마는 내 껍데기, 내 몸이다. 나다. 

 

아직 생일의 슬픔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리고 오늘은 엄마 떠난 지 일주일이 모자란 일 년이다. 

 

 

영동 지방 폭설로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됐단다.

3월2일, 학교 다녀본 이에게 새해처럼 다가오는 날을 앞두고 말이다.

바로 딸려나오는 기억이 있다.

2010년 3월1일, 3월2일로 이어지는 밤이었다.

이제 처음 학교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는 현승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날이었다.

남편이 맡고 있던 한영교회 TNT 청년부 목자(리더들) 수련회가 강릉에서 있었다.

2월 28일 - 3월 1일, 1박2일 일정이었다.

1박2일의 일정 내내 빵빵 터지는 즐거움이었지만, 

올라오는 길, 바로 어제처럼 폭설이 내려 꽉막힌 고속도로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우리 차에 탄 애들은 보기 드물게 나랑 개그코트가 맞는 애들이라, 숨을 쉴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고통 속 즐거움이었다.

우리 생애 저런 시원함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화장실 앞에서 찍은 '시원함' 컨셉의 사진이다.

아마 당시 폴더폰 사용 시절이고, 그걸로 찍었던 것 같다.
아침 뉴스를 보다 떠오른 기억, 그래서 뒤져본 기록.

이랬구나... 이렇게 재미난 세월이었구나.

함께 했던 목자들 진심 사랑했고, 너나 없이 뒹굴며 행복했었다.
그것이 교회였는데, 공동체였는데.

아이러니한 건, 신앙생활과 교회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해서 죽을 것 같은 마음이기도 했다.

그 분열을 어떻게 살았지? 진짜 행복했고, 진짜 죽을 것 같았는데......

조하문이 부릅니다. '눈 오는 밤'


그 시절의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얼 할까

우리들의 얘길 할까
누구를 만나든지 자랑하고 싶은
우리들의 친구 이야기들

 

 

 

 

노라조서 곰합따

삼일절 끼고 1박2일 목자 엠튀를 갔따왔따. 나는 특강이라는 명목으로 망아지 두 마리와 함께 따라 붙었따. 버버벅 특강 후에 대박 솔직한 나눔의 밤을 보냈따. 밤사이 눈 섞인 비가 내렸따. 그래

larinari.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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