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만들어 내는 영상과 이미지를 통해 내 글을 다시 본다. 책 전문가들의 눈과 손길을 거친 내 글이 낯선 익숙함으로 다가온다. “그랬구나, 내가 이래서 썼지. 이런 시간을 보내며 썼어...” 책 홍보 글인데, 꼭 저자 한 사람을 위한 ‘치유 글쓰기 가이드’ 같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살아 숨쉬는 한 계속 쓰게 될 나를 위해 고이 모셔와 간직한다.
내 첫 차 티코의 사물함엔 보물처럼, 유물처럼 카세트 테이프가 한가득이었다. 김성호의 앨범은 베스트 탑 5 안에 들었다. 그 차, 사물함의 카세트 테이프에 젊은 날의 꿈과 사랑과 고민과 외로움이 다 담겨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거기 담겼던 곡들을 이제 다시 들어도 살아오는 것들이 있다. 전주가 시작되는 순간 그 시절의 장소, 시간, 사람, 감정이 그대로 떠오른다. 티코가 가고, 여러 차들이 가고, 테이프와 CD가 지나갔다. 육아와 시가 살이 시간 동안 서서히 잊히기도 하였다. 벅스를 알고부터 잃어버린 음악이 살아 돌아왔다. 벅스에 없으면 유튜브를 뒤졌고, 웬만한 곡을 다 찾아졌다. 그런 방법으로 아무리 뒤져도 전곡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쉬운 김성호였다. 아쉬움에 사람 검색으로 뒤져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좋은, 아껴서 듣는 곡이다. 그냥 회상이 아니라 '김성호의 회상'이라니. 김성호의 회상을 회상하는 정신실의 회상이다.
남편이 유투브 영상을 하나 보내왔는데, 지금의 김성호가 부르는 '김성호의 회상'이었다. 찾아보니 출연한 방송이 그대로 올라와 있었다. 목소리도 얼굴도 '그대로'라 할 수는 없지만... 참 좋았다. 아니 좋았단 말 대신 고맙다 하고 싶다. 무엇보다 얼굴이 참 좋았다. 오스카 와일드가 했다는 "나이 마흔이면 누구나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는데. 단지 얼굴이 아니라 내면이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같은 친절한 표정이라도, 같은 무뚝뚝한 표정이라도 내면의 얼굴과 괴리가 크지 않아야 편안하다. 드러나는 표정이 어떻든 머물러 바라보고 싶은 얼굴은 그런 얼굴이다. 김성호의 얼굴이 그랬다. 목소리도 물론 아직(?) 팽팽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세월과는 조금 달랐다. 가만 서서 노래하는 걸 여러 번 돌려보니, 느슨해진 성대의 긴장을 어떻게든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팔로우잉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페친 한 분이 김성호에 대해 쓴 글을 보았다. 짧은 글이 생각과 감성을 함께 자극했다. 공감하며 읽다보니 김성호가 좋았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기독교인인 것 같은데, 그래서 가스펠도 꽤 작곡했다. 신앙이 뜨거워져 가스펠을 만들었어도 가사가 적나라한 게토 언어가 아니었음이 좋았었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시인과 촌장 노래의 이런 가사가 있다.
당신의 눈썹처럼 여윈 초승달 숲 사이로 지고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밑둥아리애 붙어서 밤새워 새벽
시인이 믿음 뜨거워져 집사님으로 많이 불리면서 이런 노래를 만들었다. "GNP가 오르고 당신의 아이들이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이 거리를 달려도... 당신의 마음속에 사랑이 없다면 허무할 거예요" 믿고 싶지 않을 만큼 아쉽고 아까웠다. 저 '새벽' 노래를 함께 좋아하던 친구에게 뭔가 부끄러웠다. 기독교인인 것이 부끄러워졌었다. 전도지에 인쇄된 글귀처럼 보이는 가사를 보면서 좋아하던 가수를 잃을 상실감에 슬펐던 기억. 김성호가 좋았던 건, (몇 곡 알지도 못하지만) 가스펠도 시처럼 다가와서였다.
이 모든 것, 내 취향에 불과한 것을 알지만 소중히 여기고 싶다. 나를 존중하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 사소한 취향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래서 김성호의 회상을 좋아하는 나를 새롭게 회상해보는 중이다. 방송을 다 보고나니, 내 사소한 취향들이 멋지게 느껴진다. 그렇게 느끼게 해준 김성호 님에게 고맙다. 한때 좋아하고, 존경했던 내 취향들이 부끄럽게 되는 일이, 심지어 혐오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마음 편히 이런 말 할 나이는 아니다만. 누군가의 취향의 대상이 되어 실망시킬 일이 더 많은 나이가 되어 앉아 있으니) 여하튼 마흔이 훨씬 넘은 김성호 님의 얼굴, 목소리가 좋아서 고마운 요즘이다.
더운 여름밤, 옥수수를 삶았다. 옆 단지 사는 이웃사촌이 옥수수를 보내왔다. 깨끗하게 다듬어서 '오늘 바로 쪄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더운 여름밤, 받자마자 삶았다. 열기와 함께 퍼지는 냄새. 이거 뭐지? 뭐지? 아하, 수련회 저녁집회 마친 냄새다. 눈물 콧물 저녁집회 마치고 일종의 카타르시스 충만한 시간에 광주리에 담겨 나오던 방금 찐 옥수수, 그 옥수수 냄새. 정겨운 권사님들, 집사님들... 그때 마이크에서 울리는 소리 "조장들 와서 간식받아 가세요!" 그땐 그랬지. 바로 그 냄새.
채윤이 첫 음반이다. 내게는 그저 좋은데, 어떻게 좋다고 말할 수가 없다.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서다. 이 한 곡에 담긴 시간과 고민 뿐 아니다. 첫 음반을 내기까지 걸어온 채윤이 음악의 길 구비구비의 이야기들까지. 채윤이 자신조차 모르는 것을 알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만난 비와 바람과 들꽃 한 송이... 아니 어쩌면 채윤이의 길이 아니라 나의 길이겠다. 채윤이를 바라보면서 걸어온 나의 길. 아, 자기 몰입 쩐다. 딸의 첫 음반 소개를 하다 내 얘기로 깔때기를 대네. 다시 주인공 얘기로! 채윤이는 나도 닮고 제 아빠도 닮아 신기한 생명체다. 제가 좋아하는 일만 하려는 것은 나를 닮았고, 웬만해서는 내놓지 않고 끝까지 고치고 연습하고 또 고치고 연습하는 건 아빠를 닮았다. 세상 어렵게 살 스타일이고, 마음 고생 많을 타입니다. 곡 하나 만들고 내놓는 과정을 지켜보니 더욱 그렇다. 곡은 참 좋다. 음악과 제목이, 제목과 곡 소개가, 곡 소개와 음악이, 음악과 앨범 자켓이 하나처럼 어우러진다. 남편이 페이스북에 소개 글을 올렸는데, 진심 어린 축하와 격려가 쏟아졌다. 초보 음악가의 음악이 뭐 그리 대단하랴. 한 존재가 자기로 꽃 피워가는 것을 알아봐 주고 기뻐해 주는 마음들일 것이다. humane!! 제목 참 잘 지었다. 우리 채윤이.
기고글 마감 기일이 다가오는데 마음이 잡히지 않아 불안이 높아졌다. 이유를 알기에 더 불안했고, 이유도 알면서 바보같이 손 놓고 있을 수 없어서 힘을 냈다. 내 어깨를 눌렀다. 앉아, 앉아서 써! 책의 추천사 써주신 세 분께 감사의 메일을 보냈다. 추천사를 받은 그 순간부터 마음으로 쓰고 있던 감사 인사였다. 어쩌자고 메일창을 열고 앉으면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너무나 감사한데, 감사하다고 말하면 그 감사가 사소해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몇 번을 쓰고 지웠다. 너무 감정적인 것 같아 지우고 다시 쓰자니 지나치게 사무적인 것 같아 고민하다 에라, 창을 닫고 말았다. 각각 다른 빛깔로 세 편의 추천사에 위로와 힘을 얻었다. 진심의 감사를 전하려니 글이 통 써지질 않았다. 세 통의 메일, 발송을 완료했다. 추천평을 한 글자 한 글자 쳐본다. 이렇게 한 번 더 탈고를 한다. 성공한 애도란 끝이 없는 것처럼, 이 책에 관한 한 탈고가 탈고일 수 없겠다는 느낌이다. 세 분 추천인 선정 이야기와 편집 과정 이야기가 남아 있고, 어쩌면 이것이 탈고의 정점일 테다.
한 사람의 애도 일기를 읽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가이며, 또한 슬픔으로 인해 깊은 곳으로 내던져진 한 영혼의 신음이요 통곡입니다. 저자는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옛 기억들, 묻어 두었던 상처와 아픔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에서 오는 혼란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쏟아 놓습니다. 때로는 욥기를 읽는 듯하고, 때로는 시편을 읽는 듯하고, 또 때로는 전도서를 읽는 듯합니다. '날것'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쏟아 놓았기에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읽는 동안에는 나의 아픔과 상실의 기억이 소환되어 공감을 느끼고, 다 읽고 나니 심하게 깨어져 울고 난 후처럼, 아픈 마음이 말갛게 씻겨 있음을 느낍니다. 책을 읽는 내내 누군가가 눈물 고인 눈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도 그랬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다른 사람들의 애도 일기를 읽으며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것처럼, 저자의 애도 일기인 『슬픔을 쓰는 일』도 많은 이들에게 상실의 어두운 숲을 지나도록 도와줄 책입니다.
김영봉 외상톤사귐의교회 담임목사,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저자
저자가 밝힌 대로 이 책은 '미친년 넋두리'를 글로 옮긴 책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를 떠나보내는 일이 맨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50여 년의 긴 세월을 엄마로서 존재했던 이가 죽음의 문을 열고 떠나갈 때 자식이, 그리고 같은 여성인 딸이 어떤 심리적 과정을 겪게 되는지 저자는 진심을 다해 보여줍니다. 부모의 죽음이 어떻게 원초적 상처를 건드리는지, 과거에 해결하지 못했던 아픔을 어떻게 직면시키는지, 그리고 상처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인간을 성장시키는지 지켜보면서 저도 못하 한 부모 상실의 애도를 다시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아마 이 책이 원하는 바일 것입니다. 살아 있는 우리가 부모의 죽음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것, 상실로 아파할 세상의 모든 고독한 자식들의 손을 잡아 주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아프지만 참 깊고 따뜻한 책입니다.
박미라 치유하는글쓰기 연구소 대표, 『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슬픔에는 찬연한 아름다움과 깊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슬픔에는 우리 삶을 맑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깃들여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야기했지요. '슬픔에게 목소리를 주라'고요. 저자는 홀어머니를 여읜 슬픔을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그의 글 한 줄 한 줄에는 기억들이, 그리고 그때는 못다 알아챈 어머니의 사랑과 깊은 신앙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슬픔은 갑자기 내 집에 뛰어든 나그네처럼 낯설고 또 어색합니다. 그리고 내 삶의 저 깊은 밑동을 사정없이 흔들어 댑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생이 커다란 부분이 상실과 슬픔임을 인정하면서도, 내게 다가온 슬픔 앞에서는 늘 어설프고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슬픔은 익숙해져 버린 일상 속에서 생의 진실과 핵심을 바라보게 하는 진정성 있는 초대일 겁니다. 상실과 슬픔이라는 카드를 조심스레 펼쳐 보면, 거기에는 놀랍게도 우리가 당연히 알고 누렸던 행복과 사랑이 우리에게 인사합니다. 저자는 슬픔과 상실을 만나고 친해지는 과정을 글쓰기를 통해 풀어냈습니다. 영혼의 춤을 추듯 애도의 글쓰기를 해 나갔습니다. 이 글은 너무나 절절하여, 쓴 글이 아니라 써진 글, 숨 쉬기 위해 적어 나간 글이라고 저자는 고백합니다.
그동안 마음 아픈 사람들과 함께 치유 작업들을 해 왔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람이 사람을 깊이 만나게 해 주는 슬픔의 연대성에 대해 관심하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의 마음, 엄마 잃은 딸의 마음을 내보여 같으 사실을 경험한 이들과 연결되고 싶어 졌다. 이제라도 내 글을 읽으며 뒤늦은 슬픔을 느끼고, 애도의 공간으로 들어갈 누군가를 상정하니 힘이 났다." 그렇게 저자는 끝나지 않는, 혹은 갑작스레 다가오는 생의 상실들을 경험하고 보내 주는 일에 대해, 서로 물길이 되는 동행을 이야기합니다. 이 애도 일기는 적절한 애도를 거치지 못해 늘 마음 아픈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상실을 깊이 살아 낼 위로가 될 것입니다. 너무나 정직해서 서럽게 아름다운 이 고백들은 읽는 이의 마음에 길을 내어 자신의 상실을 마주할 용기를 북돋우어 줄 것입니다.
줌으로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날이다. 새 만남을 준비하는데 마음이 구닥다리라... 어쩌지. 시간이 없어도 산책 한 바퀴 하고 올까, 싶은데 시간이 없으니 안 되겠다. 하늘이 어둑어둑, 비가 쏟아질 기세다. 비가 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나갈 텐데... 일기 예보를 보니 비가 곧 온단다. 우산을 들고나갔다. 바로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더, 더, 더... 더 와라, 더 와라 했는데. 오란다고 더 온다. 쏟아붓는다. 우산 버리고 맨몸으로 맞고 싶다. 흠뻑 젖고 수습할 시간이 없으니 조금 옷이 젖는 것으로 만족해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때 막지 말라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사람들을 격려하는데. 정작 틀어막고 있는 나를 본다. 나중에, 일 다 처리하고, 책임을 다하고 울어야지. 그렇게 나중을 기약하고 집어넣은 눈물이 뭐가 아쉬워 내 말을 듣겠냐고. 이제 옆에 아무도 없고, 망가져도 괜찮은 때가 됐으니 지금이라고. 이제 울자고. 내가 눈물이라도 다시 안 나오겠다. 복수의 칼을 갈겠지. "아~따, 있을 때 잘했어야지"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돌아오겠지. 내가 준비되지 않은 때,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비를 맞고 싶었던 건 틀어막은 눈물을 달래서 꺼내보려는 마음이었는지... 우산 살을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 둘이 꼭 주르르 흐르는 눈물 같다.
우산과 풍경이, 아니 우산에 새겨진 '진실을 인양하라'와 풍경이 묘하게 조화롭다. 걸으며 마구 찍어 보았다. 진실을 인양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진실은커녕, 힘도 없는 주제에 뭘 끌어올리는 것이 쉬운 일인가 말이다. 진실이라고 낑낑거리며 끌어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뭐 해? 미친 사람 같애." 한 마디 들으면 "그러게, 나 뭐 하지? 나 지금 뭐해?" 헛갈리면서 총체적으로 스텝이 꼬이게 되고. 사력을 다해 끌어올리던 것이 진실인지, 버려진 신발 짝인지, 플라스틱 쓰레기인지 분간도 못하게 된다. 꼬여라, 꼬여라, 꼬여서 넘어져라 하던 내 안의 구닥다리 목소리가 승전가를 부르며 웃는다. 인양 따위! 진실 따위! 대충 살아아아아.... 어차피 진실 따윈 없어어어...
그래도 한바탕 울고, 아니 한바퀴 돌고 나니 구닥다리 마음이 조금 밀려 나갔다. 목욕재계하고 카메라 각도 맞추고 강의안 한 번 읽으려 앉았는데 창 밖이 환하다. 어느새 구름 걷히고 하늘이 하늘색이다. 새로운 시간, 새로운 진실을 인양하자.
함께 일하는 연구소 선생님들에게 어마어마한 출간 축하를 당.했.다. 모임 마치고 백화점으로 끌고 가더니 옷을 고르라고 했다. 출간 행사에 입을 옷을 사줘야겠단다. 평생 입어보지 못한 비싼 블라우스를 구매당했다.
그리고 그다음 모임. 예쁜 케이크 세리머니와 함께 축하 파티였다. 한지로 포장된 뭔가를 또 안겨 주었다. 내가 최근 어느 숲을 걷다 찍은 사진에 엄마 사진을 합성하여 액자로 만든 것이다. 놀랐다는 표현도 감동했단 말도 적절하지 않다. 폭풍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내 뒤에, 내가 사드린 가방 메고 엄마가 서 있다. 이런 축하와 위로를 당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슬픔에 머물러 슬픔을 쓸 수 있는 힘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_정신실 페이스북에서
'감사'를 표현하는 일은 참 어렵다. 感謝 아니고 感思라면. 느낄 감, 생각 사, 감사. 고마운 느낌과 생각을 '감사합니다' 말로 내놓으면 느낌과 생각이 박제되는 느낌이 들고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연구소의 선생님들을 많이 '느끼고 생각’한다. 연구소가 잘 돌아가는데, 그냥 잘 돌아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잘 돌아가는데 내가 하는 일이 많지 않다. 하는 일이 많지 않은데 잘 돌아가는 것은 나 모르게 일을 하는 사람들 덕이다. 큰 일 작은 일, 중요한 일 하찮은 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한다. 하나하나 공을 들여서 한다. 어려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내적 외적 갈등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어려움이 있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좋은 더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것 역시 다섯 사람이 각자 알아서 자기 어려움을 피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연구소 식구들이 주는 감동은 서로를 향해 늘 품고 있는 감사, 느낌과 생각의 작은 표현인 것을 안다. 저 사진, 말로 설명할 길 없는 느낌과 생각의 결정체다.
<슬픔을 쓰는 일>.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써서 내 책, 나만의 책인 듯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쓰기만 해서는 책이 될 수 없다.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데, 感思는 많고 나올 길은 협소하니 약간 체한 느낌이다. 어찌 됐든 '감사'를 충만히 머금고 있는 요즘이다.
토요일, 강의 준비하다 혼자 먹는 점심. 먹고 싶은 것이 한 둘이 아니나 가능한 것이 몇 개 없다. 라면, 그래 괜찮겠네. 나이를 먹고 라면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전에 나이를 조금만 먹었을 때는 라면을 먹어도 속이 편안했는데. 라면 반쪽에 콩나물을 듬뿍 넣어 라면 콩나물국을 끓였다. 묵은지 몇 조각과 대파까지 듬뿍 넣었다. 시원하고 칼칼한 것이 새로운 장르의 국물이다. 매운맛 진라면 신분 세탁.
두어 시간 줌 강의 하고 다시 강의 준비(실은 무려 '설교' 준비였다.)로 앉았다 보니 어느새 식구, 그렇다, 食口! 밥 달라는 입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역시나 먹고 싶어 하는 것은 따로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고. 비빔면에다 낮에 쓰고 남은 콩나물을 다시 때려 넣어 같이 끓였다. 냉장고 뒤져 나온 상추 몇 장, 오이 반 개를 썰었다. 땡땡 언 차돌박이를 부드럽게 구워 얹고 삶은 계란까지. 이건 뭐, 흙수저 비빔면이 금수저로 신분 세탁이다.
쓰고 나면 알게 되는 내 마음이 있다. 써서 내놓고 나면 더 알아지는 마음도 있고. '책'이라는 물성을 입혀 세상에 내보내며 또 새로운 나의 이야기가 된다. 책을 내놓고 보니 '감정'이 보인다. 단지 '슬픔'을 쓴 것이 아니었다. 슬픔과 함께 분노, 그리움, 죄책감, 그리고 무엇보다 수치심. '부끄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느낌이다. 출간 이후 실상 책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블로그에 올린 몇 편의 글에 부끄럽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마음으로는 달고 살았나 보다.
이번 주 치유 글쓰기 주제는 '수치심'이었다. '수치심'은 성장과 치유에 목말라 연구소로 모여든 이들이 결국 다다르는 지점이다. 인식하든 못 하든, 인정하든 안 하든 많은 것들이 수치심에 걸려있다. 같은 강의를 하더라도 매번 강의안을 수정하는 편이지만, 중요한 책들을 다시 꺼내놓고 읽고 매만지며 시간을 많이 보냈다. 결국 할 얘기는 뻔하지만, 수치심을 말하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웬만큼 힘이 있지 않고는, 웬만큼 안전한 자리가 아니라면 수치심은 인식되자마자 자동으로 숨거나 위장하는 독자적 생명체 같은 것이라고 느껴진다. 글로 수치심을 쓰는 일은 내놓는 일이 되는데, 발견 즉시 숨는 녀석을 쓰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치유력 또한 강력하다. 내놓기만 한다면.
책에 대한 반응이 많지 않은데, 책을 소개하는 짧은 글을 올려주신 분이 있다. 평소 존경하는 분이다. 두어 문장 짧은 글에 '재치'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애도와 재치라니! 내가 잘못 읽었겠지, 설마. 재치 있게 애도할 수 있거나, 애도하며 재치를 부릴 수 있다면 그것이 애도일까. 한 이틀 정도 마음이 쓰렸는데 흘려보냈다. 아마도 책은 읽지 않으시고 평소 가지고 계신 내 글에 대한 인상으로 쓰셨지 싶다. 책을 보낸 출판사의 뜻을 읽고 빠르게 소개글을 올려주시는 의무를 하셨을지도. 심지어 출판사에 내가 요청했는데, 그분께 보내달라고. 그만큼 존경하고 신뢰하는 분이라 기대가 컸던 탓이다.
이 책은 '수치심을 쓰는 일'이었다. 알고 보니. 내 인생의 치명적 수치, 그 뿌리가 닿은 엄마의 수치를 쓴 것이다. 수치심이 올라올 때마다 꺼내 쓰는 가면 여럿 있는데 그 하나가 재치였다. 재치와 유머 뒤에 숨었다. 그래서 재치는 내게 수치의 다른 말이다. 물론 재치 있는 나를 좋아한다. 젊을 적에 그랬다. 예쁘다는 말보다, 똑똑하단 말보다 웃기다는 말이 제일 좋다고. 재미없는 사람 될까 두려웠다. 대학에서 '음악치료 개론' 강의를 하면서도 학생들을 웃기지 못한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재치 있는 내가 되려고 했던 건 누추한 나를 지우고 싶어서였다.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지운 게 아니라 감췄을 뿐이란 것도 잘 안다.
재치와 수치 두 말은 한 구멍에서 나온다. 어쩌면 그렇게 치명적인 단어를 고르셨을까? 위에는 흘려보냈다고 썼는데 다시 마음이 아프다. 이런 위안도 있으니 다행이다. 위안의 크기가 훨씬 더 크니 다행이다. 제이언니 김용주 님이 책 후기를 보았다. 정확하게 어디를 겨냥하고 있었다. 재치와 수치가 나오는 그 구멍이다. 평생 써오던 가면 '재치'를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나는 또 얼마나 두려웠던가. 재치, 수치, 두려움, 심지어 이번 '재치 책 소개' 글로 상한 마음까지 저격당한 느낌이다. 물론 위로와 격려의 저격이다. 위로, 감동 그 이상의 무엇을 받은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글쓴이가 부담스럽겠지만, 하나님께서 이분을 통해 위로하신다고 느껴졌다.
힘을 낸다. 수치심 치유의 시작은 '드러냄'이다. 그놈의 필살기가 숨고, 고립되는 것이다. 고립되어 어둡고 축축한 동굴 안에서 저만의 세계를 꾸미고, 그럴듯한 가면을 만들어내는 일이 수치심이 하는 일이다. 그 일이 능숙해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때, 약함이 악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책을 내놓고 다시 내 수치심을 확인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읽히며 하찮게 여겨지거나, 조롱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 수치심을 들러리 세워 우월감 느끼는 사람은 없겠지? 이렇듯 다시 수치심의 향연이지만 괜찮다. 힘을 낸다. 취약함을 드러냄으로 고립의 동굴로 가는 길에 불 하나는 밝혀졌다. 다행히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진심의 감사로, 감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힘을 낸다.
과거에 정신실 언니와 교류하는 동안 그녀가 쓴 책을 읽으면서는, 책보다는 그녀의 '말'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뭐랄까, '공연'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한 것 같은데 메시지를 전달하는 목소리와 표정, 말투가 더 정감이 가서인지 같은 내용을 글로 읽을 때는 그런 게 축소되는 느낌이 아쉬울 때가 있었다. 아마도 밝게 보이려는 모습이 매번 글에 투영되어서였던 것 같다. 뉴조 연재를 묶어낸 <신앙 사춘기> 책에서는 약간 스타일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더이상 보이는 모습에 연연하지 않는, 조금 어둡더라도 숨김 없이 내적 음성을 섬세하고 명료하게 쓰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또한 반갑고도 감사하게 읽었다. _제이언니 김용주 님의 페이스북에서
바지락 칼국수로 점심이다. 손님 초대 후 남은 식재료 털어먹기 프로젝트다. 바지락 반, 면 반 '오대오 칼국수' 저리 가라! 채윤이와 둘이 먹는 점심인데, 목구멍에 넘어가질 않는다. 이 맛있는 것을, 이 시원한 국물을 우리끼리 먹어 끝이라니... 이럴 수는 없지, 이럴 수는 없어. 인증샷을 찍어서 남편에게 보냈다. 학교에 있는 현승이는 보내도 못 받는다. "우리 이런 거 멍는다, 메렁" 자랑샷을 보내고 나니 그제야 칼국수가 넘어간다. 답 메시지가 사진으로 왔다. 엇쭈! 밀리지 않겠다 이거지? 우어어어... 도시락 장난 아님! 어디서 많이 본 건데... 이러나 저러나 내가 이겼다.
소식 전해줘서 고마워요. 늘 궁금했는데 연락해 볼 생각은 못했네요. 건강해졌다는 말 들으니 안심이 돼요. 그리고 ‘아직도’ 교회에 다닌다니 애석하고도 기쁘군요!^^ 첫 만남이 떠오르네요. 글쓰기 모임, 정확히 말하면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글쓰기 모임’이었죠. 저물녘 호수 둘레를 걷는 K의 모습을 상상해 봐요. K의 글에 자주 등장했던 장면이죠? 걷다 보면 글쓰기 숙제에 관한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고 하셨어요. K가 썼던 진솔한 글, 그 글을 낭독하는 떨리는 목소리도 다시 살아오는 것 같아요.
“이런 이름의 모임에 있는 저 자신이 믿어지지 않아요. 제목(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글쓰기. 자조. 모임.) 중 어떤 단어에 끌렸냐고 하셨지만, 이런 단어를 나란히 놓고 읽어야 한다는 게 싫고요. 남의 일 같은 이 일이 제 일이라는 게 어렵기만 하네요.”
이렇게 말했지요. 그런 모임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우리예요. K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K뿐 아니라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자매들을 만나며 수도 없이 해본 상상이죠. 어떤 자매의 말이 떠오르네요. 그 고통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워주시길, 그 기억이 저장된 뇌세포를 도려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고요.
맞아요. 지우고 싶은 그 고통으로 연결된 만남에서 위로 그 이상의 것을 얻었던 것은 아이러니예요. 옆방 사무실에서 일하던 간사님들이 궁금해 기웃거릴 정도로 크게 웃는 일이 많았죠. 그러다 어느새 하염없이 울기도 했고요. 그야말로 울고 웃는 모임이었어요. 저도 그립네요. 첫 만남의 긴장감 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지만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녹으면서 감정의 강이 자연스럽게 흘렀던 것 같아요. 웃어야 할 때 거침없이 웃었고, 그러다 갑자기 우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어요. K만 해도 그래요. 첫날의 경직된 표정만큼이나 반달눈을 하고 웃는 모습도 생생하거든요. 성폭력 피해자 모임에서 깔깔 웃는 소리라니! 누군가는 ‘피해자다움’을 들이댈지 모르죠. 성폭력 피해자의 표정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누가 뭐라든 치유적이었어요. 울고, 웃고, 분노하고, 아파하던 그 자리요.
그 말을 기억하고 있군요! 그래요, 제가 여러 번 말했죠. 발설이 그대를 구원하리라!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이었어요. 고마워요, 좋은 기억으로 간직해줘서. 겪었던 일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구원의 첫발이 되었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오늘 메일로 만나는 K는 더 멋있어진 것 같아요. 변화의 시작이 쓰고 말했던 그때였다니 고마울 뿐! 함께 읽었던 김영서 작가의 책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기억나요? 목사인 친아버지에게 당한 성폭행의 기록이죠. 거기 나오는 말이에요.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여 버릴 거야”라던 그 사람의 말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사실을 말하면 죽게 될지도 모르는 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은, 내가 집에서 아빠에게 겪은 일을 한 사람 두 사람 외부인에게 말하게 된 때였다. 그 과정에서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아빠가 하는 짓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K의 메일을 읽자니 저자의 이 고백 못지않은 힘이 느껴졌어요.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가슴으로 알아듣고 있다니 뭉클하네요. 그렇죠?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달라요. 폭력을 당하고, 우리가 의식적으론 알아요. 잘못된 일을 ‘당했다’는 것을요.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내 잘못’으로 가져오죠. 많은 학대 피해자들이 그러하듯 가해자의 죄를 자신이 뒤집어쓰게 되는 거예요. 힘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학대가 남기는 치명적인 상처죠. 더욱이 가해자가 목회자라면 깊은 영적 상처가 될 거예요. “그 자리에 왜 갔느냐, 제 발로 간 것 아니야, 저항하지 않았잖아!” 같은 2차 가해의 목소리는 흔하고, 잔인하게 음해하는 소리까지 더해지면 피해자는 자기 비난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죠. 자아의 분열 속에서 몸과 마음은 얼어붙고, 주입된 감정이 작동하죠. “내 잘못이야.” 스스로 자기를 비난하고 혐오하는 상태에서는 누구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요. 발설이란 불가능하죠. 게다가 가해자가 존경받는 목회자인데요. 내 말을 믿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거잖아요. 우리 모임이 서로에게 제공한 것은 ‘안전함’이었을 거예요. 안전하다는 믿음 속에서 어렵게 입을 떼보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쓰고 말하는 연습을 했던 건데. 그 짧은 만남 이후로 혼자 보내는 시간 쉽지 않았을 텐데, ‘내 잘못이 아니었어!’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니요. 어떻게 치유의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이 돼요.
성폭력 피해자들이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죠. 분열된 몸과 영혼으로 입은 닫은 채로요.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고통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요. 없는 척 눌러둔 상처는 반드시 되돌아와요. K에게 일어난 일처럼, 조용히 무너지던 마음이 몸으로 신호를 보내죠. K 말대로 무너진 몸, 몸이 보낸 증상들이 결국 K를 살리는 일이 되었네요. 청년부 시절 담당 목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도 전과 다를 것 없이 신앙생활 했다고 했었죠.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도 무리 없이 했고요. 겉으로는! 네, 겉으로는요. 진실을 억압한 채 겉모양만 유지하는 괜찮은 삶은 오래 가지 못했어요. 잠들지 못하는 밤, 끝없는 무기력과 여러 증상 끝에 결국 몸이 무너졌죠. 그렇게 병원에 가게 되었고, 비로소 묻어두었던 그 일이 드러났어요. K 말대로 부서질 대로 부서진 상태가 되어 병원에 가게 된 거네요. 정신과의 약물이나 여타 치료로 효과를 보면서도 병원에 계속 가는 것이 두렵다고 했어요. 치료 과정 중 의사에게 들었다는 말, 제 마음에도 아프게 살아있네요. “목사에게 그런 일을 당하고도 아직 교회에 다녀요? 하나님 얘길 아직도 해요?” 그리고 건강해지려면 종교활동을 끊으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했죠. 그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더 큰 혼란에 빠졌고, 아마 그즈음 글쓰기 모임에 문을 두드린 것이었죠.
제가 K를 자주 떠올렸던 것은 바로 그 지점 때문인 것 같아요. K가 썼던 글, 했던 말 중 기억나는 것들이 있어요. 목사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은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었죠. “왜 아직도 교회를 다니냐”는 말을 듣고 광신적 행위로 비치는 것이 두려웠고, 무엇보다 이 트라우마에서 회복되려면 정말 신앙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혼란스럽다고 했었어요. 막상 교회로 와 같은 고민을 털어놓으면(털어놓을 곳도 없었겠지만) “용서해라, 은혜로 잊어라”라는 말에 증상이 더 악화되고요. K의 이런 이야기들을 정말 아프게 들었어요. 우리 생존자 모임에도 교회에 발을 끊은 지 오랜 분들이 많았어요. 무신론자를 표방하는 분도 있었고요. 성폭력 경험을 진실하게 마주할수록 목회자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커지는 것이 당연해요. 목사에 대한 분노가 쏟아져 나와 말이 거칠어질 때마다 혼란스러워 흔들리던 K의 눈동자를 기억해요.
교회와 멀어지고 떠나는 것은 아프지만 자연스러운 일인지 몰라요. 정신과 의사의 조언은 그런 맥락 안에 있겠지요. 이 딜레마는 여타 성폭력 피해와 다른, 성직자에 의한 폭력이 유발하는 영혼의 고통이에요. 정신-신체적, 심리적 처치를 통한 치유와 함께 깊은 영적인 치유가 필요한 것이지요. 성폭력 피해, 특히나 영적 권위자인 목회자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한 영혼을 어떻게 분열시키고 망가트리는지 피눈물이 나도록 생생하게 목도 했습니다. K는 바로 그 지점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고 있었던 것이고요.
오래전 상담했던 한 분이 떠올라요. 청소년 시절 열심히 따르고 배웠던 목사에게 성폭행당했지만, 회복의 여정을 잘 통과하셨어요. 어릴 적 경험을 다시 마주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증언하고 공론화하여 가해자 목사는 법적 처벌까지 받았죠. 그런데 모든 과정이 끝나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긴 싸움의 과정에서 자신을 돕던 기독교 활동가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으셨대요. 이분은 청소년 시절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그루밍 성폭력’이란 이름을 붙인 후 심정적으로 신앙에서 완전히 떠났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자신을 위해 거침없이 살았지요. 비슷한 또래의 활동가들을 보면서 떠오른 거예요. “나도 한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잊었던 어릴 적 꿈이 생각났지만 이제 자신은 결코 그런 삶을 살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런 좋은 삶에 대한 비전을 청소년 시절 내내 가해자 목사에게 배웠다는 거예요. 그렇게 사는 것은 결국 그 목사의 말을 듣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할 수 없대요. 이 말을 들은 날 밤, 저는 분노와 슬픔으로 잠을 잘 수 없었어요. 한 청소년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드리겠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뜨겁게 기도하며 키운 꿈, 이제는 망가지고 짓밟힌 이것을 어떻게 다시 이어붙이고, 누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요. 가해자 목사가 감옥에 가고, 목사직을 박탈당한다고 해서 되돌려질까요.
성폭력은 몸은 물론 존재 깊은 곳에 해로운 수치심을 심는, 영혼을 향한 폭력입니다. 수치심은 존재 자체에의 부끄러움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있는 온갖 선하고 아름다움까지도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미워하게 만듭니다. 참가자 어느 분이 썼던 표현이 생각나요. 반짝반짝 아름다운 분이었어요. 중등부 시절 목회자에 성폭력을 당했지요. 어느 글에서 이런 표현을 했어요. “나는 내가 반짝거린 게 부끄러웠어.”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 자신인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니, 이것은 출구 없는 자기 혐오의 덫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동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아이가 신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매개자, ‘중간대상’과의 연결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 상(像)’을 투사하는 중간대상이죠.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무의식적으로 영적 부모가 되는 것이고요. 때문에, 목회자에 의한 성폭력은 하나님 상에 치명적인 분열을 유발해요. 존경하던 목회자에게 배웠던 그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만나는 다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정신과 약으로, 심리치료로, 단순한 기도로 되지 않는 영혼의 치유입니다. 혐오스러운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야 하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 정체성을 새롭게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성직자의 이름으로 폭력을 저지른 한 목사의 얼굴을 넘어서야 하는 일이지요.
한때 영적 부모였던 사람이 동시에 치명적 범죄자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말이 반갑습니다. 섣불리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도요. 맹목적인 용서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해자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목사 중 한 사람이라고 여길 만큼 K가 강해진 것 같아요. 아픔과 혼란 속에서 아직 교회에 다니고, 아직 기도하고 있고, 여전히 하나님을 찾고 있는 K가 존경스럽습니다. 보고 싶네요. 얼굴 마주하고 차 한 잔 할 날을 그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