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닭껍질 좋아한다고!"

 

채윤이가 닭껍질 좋아하는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후라이드 치킨, 백숙 가리지 않고 닭껍질은 다 좋아한다. 돼지고기 살코기 없이는 먹을 수 있지만 비계 없이 먹을 수 없다. 엄마지만, 어른이지만 진심 존경한다. 정말 나는 아직도 돼지고기 먹을 때 몰래 비계 떼어내고, 백숙 닭껍질은 먹을 생각도 못한다. 튀긴 닭 껍질의 고소한 맛을 겨우 좀 안다. 그것도 정말 채윤이 덕이다. 하도 어릴 적부터 "나 껍질만 먹으면 어때? 안 돼?" 했쌌길래 경쟁심에 먹어보다 맛을 들였다. 

 

얼마 전 닭 백숙을 먹다 현승이가 내지른 말이다. "나도 껍질 좋아한다고!" 누가? 누가? 현승이가? 니가 무슨 닭껍질을 좋아하냐고, 조금만 입에 껄끄러워도, 조금만 느끼해도 다 뱉어내는 놈이, 일찍이 "배트맨"이란 불렸던 놈이 무슨 닭껍질을? 했더니. 후라이드 치킨의 껍질은 싫어하지만 백숙은 아니란다. 백숙 닭껍질을 좋아한다며 뺏어가지 말라고 하는 말이었다. 와아~씨. 백숙 닭껍질이라니! 그걸 가지고 싸운다니!

 

현승이는 태어나서 며칠을, 아니 몇 달을 그렇게 울어댔다. 산후조리원부터, 집에 와서까지 조그만 자극에도 그렇게 울어댔다. 그때는 그저 막막하기만 했고, 얘가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런가 두렵기만 했었는데. 현승인 낯선 모든 것이 힘든 아이였다. 태어나본 넓고 환한 세상이 낯설어서, 어쩔 줄 모르고, 벌쭘해서 그랬나 보다. 한 20년 가까이 키우면서 영혼의 생긴 모양을 보니 그렇다. 음식도 그랬다. 낯선 음식은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뱉고 봤다. 배트맨이었다.

 

그런 현승이가 회를 좋아하고, 육회에 환장하더니 흐물흐물 닭껍질까지 접수하는 것은 순전히 누나 효과이다. 누나 채윤이는 태어나본 세상이 만만했고, 맞서볼 만했다. 뭐든 오기만 와라 부딪혀 이겨줄 테니! 하며 다가가는 영혼이었다. 그런 누나를 앞잡이 삼아 놀고, 또 놀다 보니, 그런 누나의 살아 있는 장난감으로 생애 초기를 살다 생긴 감각이 있다. 닭껍질을 즐기는 감각이랄까. 그런 감각들.    

 

누나 효과 뿐이랴. 엄마 효과도 있고, 아빠 효과도, 어릴 적 키워주신 할아버지 효과도... 자라서는 친구 효과도 있었겠지. 닭껍질 먹는 열아홉 현승이 되기까지. 현승이 뿐이랴. 나도, (그리고 당신도) 인생길 걸어오면 만난 수많은 사람들 효과로 오늘 이 모양을 살고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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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일 늦잠 자.
나 내일 학교 가는 날인데, 알아서 아침 먹고 나갈게.
미역국 데워서 밥 말아먹으면 되잖아.
일찍 일어날게.
엄마, 신경 쓰지 말고 늦잠 자. 알았지?”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왔는데 마스크도 벗기 전 내
눈만 보고 (가슴형) 현승이가 말했다. 나도 모르는 내 맘 알아줘 눈물이 난다.

“엄마, 손 씻었어? 빨리 손 씻어. 엄마 손 잡게…
아우, 그냥 씻어! 나갔다 왔으면 손을 먼저 씻어야지.”

마스크 벗고 뭘 좀 먹겠다고 식탁에 앉았는데
(장형, 본능형) 몸으로 사는 채윤이가 말했다.
뽀독뽀독 손을 씻자니 딸내미 사랑이 벌써 몸으로 느껴진다.

“당신 내일 늦잠 자. 울려는 거야, 참는 거야?
에고… 힘든 거다. 힘든 거야... 내일 늦잠 자.”

수요 예배 마치고 늦게 들어온 (머리형) 남편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내 넋두리 들어주곤,
이해한다는 말 대신 늦잠 자라고 한다.

 

----------


내가 너무 갖추고 산다.
이보다 더 갖추고 살 수가 없다.
뭐 부족하다 불평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참으로 갖추고 산다.

주님, 감사합니다!
불평과 자기 연민은 거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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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엄마.
몇 시에 올 거야?
왜? 아직 몰라.
저녁 같이 먹을 건지 어쩐지 해서.
몰라. 아직. 메뉴 뭔데?
바지락 감자 수제비.
지금 갈게.
(전화 뚝)

"캬아, 캬아, 국물...."
첫 입에 삼구 동성으로 같은 감탄사를 내놓으니
멸치 육수 진하게 내놓은 보람이 있네.

저녁엔 또 뭘 먹지? 하다
날씨가 정해주는 대로 따름.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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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사춘기. 내가 '신앙 사춘기'에 대한 글이나 강의에서 자주 쓰는 표현인데. 진짜 사춘기가 그렇다. "엄마, 나랑 산책 한 번 할까? 오늘 한 번도 안 나갔잖아?" "오늘 친구랑 미금역에서 죽전역까지 걸었어. 얘기하면서 걸었지." 현승이가 이런 말을 할 때, '녀석 사춘기가 완전히 끝났네'라고 생각한다. 사춘기를 알리는 여러 지표가 있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걷기 싫어하기'로 그 신호탄을 터트렸다. 채윤이 5학년 때, 영월 하루 여행 갔다가 '걷기 싫어하기' 증상이 발현하여 '한반도 지형'을 코앞에 두고 보지 못하고 돌아온 일은 유명한 일화다. 그 어간 설악산에 가서 흔들바위까지 걷고 돌아오는데, 어르고 달래고 혼내면서 울산바위 올랐다 내려온 에너지를 썼다고나 할까. 여행 가서 '기분 잡치기'의 시작은 생각해보면 '걷기'에 있다. 여하튼 두 아이 다 사춘기가 끝나고 집에서나 밖에서나 크게 문제가 없다. 성향이 다른 성인 넷이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느낌. 여름휴가에서 모처럼 속 뒤집어지는 걸 경험했다. 날씨도 선선하여 걷기 딱 좋은 날씨, 양떼목장을 걷는 느낌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쓰레빠 신고 마스크로 가린 입이 댓 발 나온 한 녀석만 아니었으면 완벽했는데. 속은 뒤집어지지만 기분까지 잡치지 않기 위해 피차 조심하다 조용히 타협했다. "나는 저 아래 가서 기다리고 있을래. 셋이 갔다 와." 하이고, 바로 내가 하려던 말이었다. 셋이 마음 편히 신나게 걷고 사진 찍고 돌아 내려오니 나무 아래 저러고 먼 산 보고 앉아 계시는 분. 사춘기는 지나갈 듯 지나갈 듯, 쉽게 끝나지 않는다.

엄마빠 사이에서 '우웃짜' 하면 걷는 것 좋아하는 유아기.
엄마빠랑 어딜 가도 좋아서 뛰고 날고 하는 아동기.
엄마빠랑 어디 가는 게 귀찮고 싫고, 특히 걸어가는 건 더 싫은 사춘기.
엄마빠랑 어디 갈 때마다 맥락없는 지랄 떨었던 사춘기 시절에 대한 성찰과 함께 미안함으로 애써 함께 잘 놀아주는 성인 초기.
(여기까지 키워봤다. 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 중략)
.
.
.
(그러다 어쩌다)
걷는 게 무조건 좋은 중년기.


걷기로 보는 생애 발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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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자의 <슬픔을 쓰는 일> 리뷰입니다. '탐독의 시간'이라는 꼭지 제목이 무색하지 않습니다. 글을 쓸 때는 그렇습니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감춰야 하는 것들이 많죠. 감춘다고 완전히 감춰지진 않는다는 것을 구권효 기자의 이 글이 증명합니다. 감추며 발견해주길 바라는 저자의 어떤 마음을 이렇듯 울림있는 글로 드러내주었습니다. 아래는 페이스북에 기사를 공유하며 붙인 저의 글이고, 기사는 링크를 클릭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작년 6월, 강남의 어느 카페에서 구권효 기자를 만났다. 엄마 돌아가시고 연구소 일 외에 집 밖으로 나가지 않던 시절이었다. 취재원으로 만났는데 무슨 기사에 대한 취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기자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은 기억만 있다. 아래 글에서 당시 ‘위로의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고 썼지만, 실은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한 위로였다. 이 글도 그렇다. ‘그랬구나, 참 힘들었겠네’보다 더 좋은 공감은 어렵게 얘기를 꺼내놓은 이야기로 건드려진 자신의 이야기를 내놓는 일이라 생각한다. 구 기자가 만나자마자 들려준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는 그렇게 느껴졌다. 당시는 애도 일기가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을 때다.

글 쓰는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슬픔을 쓰는 일>을 내놓기로 작정했을 때 나 역시 상상하는 독자가 있었다. 일찍 부모를 잃고 ‘고아 의식’으로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은 물론, 언젠가 부모 잃‘을’ 사람도 상정했다. ‘엄마 돌아가시니 후회 많이 되더라, 그러니 살아 계실 때 잘해.’ 같은 하나 마나 한 말을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구 기자가 읽어낸 바로 그 지점인 듯하다. 이 책 <슬픔을 쓰는>일은 단지 엄마 잃은 슬픔이 아니라 엄마와의 오랜 화해의 여정이다. 조심스런 이런 제안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돌아가셨거나, 살아계시거나 부모와의 화해 여정을 시작해보자고.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내가 나로 살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이 책 <슬픔을 쓰는 일>은 <포스트 신앙 사춘기>이다. 오늘의 나로 살기 위해서 심정적으로 ‘모’ 교회를 떠나왔다. 엄마의 신앙을 두고 던질 수 있는 모든 비난의 돌을 다 던진 끝에 쓴 글이 <신앙 사춘기>이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입에 달고 살던 엄마에게 ‘종교 중독자’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분노를 쏟아부었다. 이제 와 고백컨대, 만만한 엄마는 투사의 대상이었다. 구 기자의 말처럼 ‘모교회’는 ‘엄마-교회’였으니까. 한국 교회에 대한 절망, 젊은 날 한때 존경했던 교회 지도자들에게 느낀 실망과 배신감을 다 투사하여 엄마를 내 앞에 세웠다. 실은 엄마는 힘이 없는 사람이었다. 영적 학대를 할 수 있을 만큼 권력자가 아니었다. 엄마가 내 앞에 계실 때나, 돌아가신 지금이나 마음 한구석 가장 쓰리고 아픈 것은 신앙 사춘기를 겪으며 엄마를 세워두고 했던 ‘지랄’이다. 언젠가 제대로 사과하고 싶었는데... 이놈의 사춘기는 지나갈 듯, 지나갈 듯 끝나지 않았고. 엄마와 엄마로 대변되는 옛날 신앙(어쩌면 예전의 ‘나’)과 온전히 화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슬픔을 쓰는 일>은 어쩌면 참회록이다. 처절하게 미워했던 엄마에게 미안하단 말을 건네지 못한 것. 엄마를 처절하게 미워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 것. 참회록이다. 구권효 기자의 이 글 덕에 뒤늦게 엄마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말할 용기가 생겼다. 여러 번 울컥하며 글을 읽었다. 다 읽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니, 무슨 기자가 이런 글도 잘 써”하고 혼잣말을 했다. 이런 글이 무슨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도 엄마와 내 이야기를 써 봐야겠다.’는 마지막 문장에 꽂혔다. 언젠가 뉴스앤조이에서 구권효 기자의 어머니 이야기 읽을 날을 기대해본다. 화해란 게 쌍방 간의 일인데 온전한 화해가 있을까. 부모님이, 부끄러운 한국 교회가 우리에게 사과할 일은 없을 테니. 사과하지 않는 존재들과 화해하는 좋은 방법이 ‘글쓰기’인 것 같다. ‘이런 글’도 잘 쓰는 구 기자의 ‘엄마-교회’와의 화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엄마의 신앙'과 화해하지 못한 이들에게

[탐독의 시간] 정신실 <슬픔을 쓰는 일>(IVP)

www.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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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광장> 출연 방송분이다. <슬픔을 쓰는 일>이 대화의 주제였지만, 결국 '감정을 대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연구소 페이지에 방송 다시듣기 링크를 공유하면 올린 글이다. 

 

슬픔에 오롯이 머무를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한 체험적 고백입니다. 내적 여정의 시작은 외적인 성취와 성취로 인한 만족감과 인정에만 초점을 맞추던 눈길의 방향을 바꾸어 안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나음터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자주 인용하는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말씀처럼 “감정은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고요. 즉, 감정에 머무는 것은 내면과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방송에서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감정에 머문다’고 했습니다. 감정을 책으로 배우거나 심리학이나 상담 공부를 시작하는 때 범하는 오류가 있습니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건강하게 감정을 대하는 방식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겠다! 중2 아이들에게서 본 흔한 태도입니다.

물론 표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표현보다 선행해야 할 것은 ‘인식’입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감지’하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이 지점에서 취약합니다. 단지 화를 내지 않기 때문에 감정 조절을 잘하는 성숙한 사람이라고 자부한다거나, 슬픔 따위는 단 하루 느끼는 것으로 족하다고 자신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장례식 다음 날부터 아무렇지 않게 일상 회복이 가능할 수 있지만, 경험상 감정을 성숙하게 대하는 태도라 볼 수는 없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감정에 대해서 성숙한 사람은 지금 자신의 ‘진짜 감정’을 느낄 줄 아는 것입니다. 진짜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은 표현의 방식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감정에 충분히 머물고, 흘려보내면 그것은 더는 없는 것이 됩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고, 화내야 할 때 피해버리면, 어디로 가지 않고 내 몸 어딘가를 얼려버려 긴장을 유발하고, 궁극적으로 기쁨을 앗아갑니다.

 

“기독교인이 죽음과 슬픔을 마주하는 슬기로운 방식은?” - CBS 레인보우 팟캐스트

“기독교인이 죽음과 슬픔을 마주하는 슬기로운 방식은?” <2021.08.08>(출연 : 마음성장연구소 정신실 소장)상담자이면서 목회자의 아내인 정신실 작가는 지난 해 3월, 코로나 펜데믹의 상황에서

web.rainbow.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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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맡에 놓인 두 권의 책 제목에서 '기쁨'이 교차한다. 기쁘다. 모처럼 남편과 같은 주제의 책을 읽는다. 독서에 관한 한 서로 취향 존중, 개성 인정, 상호 불간섭이라서 더 기쁘다. 나는 박정은 수녀님의 신간 <생의 기쁨>이고, 남편은 짐 와일더의 <기쁨은 여기서 시작된다>이다. 서로 꽂힌 주제라 다 읽고 난 후에 바꿔 읽을 가능성도 높다. 저 두 책 사이에 달라스 윌라드의 <마음의 혁신>을 끼워 넣으면 나름 그와 나의 독서 여정에 맥락이 통한다. 내가 동시에 읽고 있는 책이 짐 와일더의 <달라스 윌라드와의 마지막 영성 수업>이기 때문이다. 지도자 과정에서 여름 방학에 <마음의 혁신> 함께 읽기 중인이라 자연스레 닿은 책이다. 저자인 짐 와일더가 교집합이지만, 결국 달라스 윌라드 슨상님의 가르침에 대한 관심이다. 영성 수련의 종착역 내지는 동력이 '기쁨'이라는 것을 이제 와 새롭게 알아듣게 된다. 거창하게 영성 수련이라기보다는 "마음은 어떻게 변화되나?"라는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이랄까.

엄마 뱃속부터 인상 쓰고 있었을 것 같은 남편은 물론 프로 불편러인 내게 '기쁨'은 가까운 감정이 아니다. 물론 나는 재밌는 것을 무조건 좋아하는, 농담 따먹기를 목숨 걸고 하는, 웃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다. 이런 이유로 '기쁨'에 대해서 좀 안다고 자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진짜 기쁨을 몰라서 '웃기는 것'에 집착했다는 것을 조금 깨달아간다. 그러나 여전히 웃기고 재밌는 것은 아름답고 좋은 일이다! 남은 생애 기쁨을 더 많이 발견하며 살아야겠다. 남편과 함께 늙어가며 마음을 맞춰, 힘을 모아 발굴해가면 더 좋겠다. 마침, 오늘 아침 연구소 카페에 나누는 읽는 기도는 이현주 목사님의 <하루 기도> 중 이런 내용이다. 이현주 목사님은 또 누구인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남편과 나를 이어준 중매쟁이 아닌가. 기쁨에 꽂힌 8월 어느 날, 그분께로부터 오는 응답으로 듣는다. 관광 비자로 살아야지!

 

어떤 사람이 꿈에 천당엘 갔는데
보는 것마다 신기하고 재미있고 즐거웠답니다.
그런데 그가 죽어 진짜 천당엘 와서 보니
지난번 꿈에 본 천당과 너무도 다른 거예요.
재미도 없고 신기할 것도 없고 별로 즐겁지도 않은 겁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물었지요.
"지난번 꿈에 본 천당과 너무나 다릅니다.
왜 이렇게 달라졌나요?"
천사가 대답하기를,
"여기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이 모두 그대로다.
그런데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지난번에는 관광 비자로 왔던 네가
지금은 이민 비자로 왔기 때문이다."

아, 주님, 이제부터라도 이 세상을
관광객으로다녀가는 비결을 배워야겠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고 즐거울 테니까요.

이현주 <하루 기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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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가지, 감자가 풍성한 철이다.

 

감자 역시 제철이라 싸고 흔해서 많이 사랑해주고 있다. 감자 샐러드, 그냥 찐 감자, 감자 버터구이, 감자 피자... 그리고 이번엔 감자밥을 해봤다. 압력솥 뚜껑을 열고 "이게 뭐야?" 하는 남편에게 "감자밥!" 했더니 "애들이 이걸 먹겠어?" 한다. 비관이 일상인 남자 가트니라구! "(속닥속닥) 나만 믿어." 하고 밥상을 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우웻, 이게 모야? 밥이 왜 이래?" 한다. "감자밥이야. 야, 이수근이 나홀로 이식당에서 했던 그 감자밥이야. 일단 한 번 잡솨봐!" 했더니 일단 한 입 씩들 뜨셨는데. 사실 한 입 넣으면 끝이다. 맛있으니까. 다만 색 조절 실패는 인정한다. 흰 밥에 노란 감자가 딱인데, 건강한 탄수화물을 포기하지 못하여 밥 색깔이 저 모양이다. 

 

증말 아이들 키우면서 예능 프로에 큰 감사드린다. 수년 전, 아이들 어릴 때 겨울 제주 여행 갔을 때다. 어리다고 하지만 약간 말 안 듣기 시작한 3.5춘기 때였다. '말 안 듣기'와 '걷기 싫어하기'는 비슷하게 같이 온다. 여행 중에 어디를 가지고 해도 시큰둥. 어디 명소에 가서도 차에 있겠다고 나자빠지는데 아주 꼴 비기 싫어서 죽을 뻔했던 기억. 그런 시절이었는데... 그 겨울 제주 여행은 활기차고 행복했다. 당시 초딩들 최애 예능이었던 '런닝맨' 촬영지를 골라 다녔더니 아주 그냥 뛰고 날고 했었다.

 

다 컸다고 하지만 초딩 관성 분명히 남아 있고, 거기 힘 입어 감자밥을 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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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사진도 평소 하던 걸 설정하고 찍어야 설정스럽지 않은 것 같다. 설정 사진의 영업 전략은 설정인 게 최대한 티 나지 않아야 하는 건데. 몸에 익숙하지 않은 걸 설정하다 보면 어색할 수 밖에 없다. 설정한 ‘독서’ 영상이다. 그런데 일단 독서가 먼저였다. 주일 오후,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책을 보다 시원한 바람에 베란다로 나갔다. 홍순관의 노래처럼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무에 불면 녹색 바람이다. 베란다에 부는 바람이 춤이 되어 흩날리는 것이 예뻐서 보던 책 들고 그대로 나갔다. 아, 이거 그림 된다! 싶었다. 소파에 뒹굴며 '독서' 중이던 채윤에게 사진을 찍어 달랬다. "아, 나도 독서 중이라고요~! 조금 옆으로 가서 앉아 봐. 아니, 아니 창 쪽으로..." 그렇게 설정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설정 티 많이 안 나게 잘 찍은 것 같다.

며칠 전 뉴스에서 본 '독서 설정 샷' 보고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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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누워 있는 인큐 호박 보는 게 늘 좀 그렇더라고.
꼭 끼는 비닐 옷을 입고, 숨도 쉬어지지 않을 갑갑한 옷에 갇혀 누워 있는 게 어쩐지.
호박으로 태어나 호박답게 제 모양으로 자라지 못한 녀석들 보는 게 민망하달까.
말이 애호박이지 갑옷 같은 비닐 옷 벗겨서 썰어보면 또 얼마나 딱딱하게.
애호박이 아니라 애어른호박이지.

요즘은 진짜 애호박 철.
농사를 짓지도 않는데 풍성하게 나누는 손들이 있어서,
밭에서 딴 애호박이 끊이질 않고 있지.
진짜 애호박은 힘주어 누르기도 조심스럽게 말랑하고 나긋나긋 하지.

애호박 철도 한 철이라, 지금 아니면 언제랴, 하고 많이 사랑해주고 있어.
제 모양대로 자란 녀석을 다시 틀에 가두지 않으려고.
여러 요리로 부활시키고 있지.
애호박 고추장찌개, 티피컬 한 호박전, 애호박 새우젓 볶음, 파스타 재료 등으로.

호박전 좋아하는 딸내미가 전을 먹고 싶다니,
레시피 리서치를 했지.
백종원을 좋아하고 호박전을 좋아하는 딸내미 취향저격 백종원표 호박 부침개로.
마른 새우 갈아서 넣고, 밀가루 대신 전분, 물은 따로 넣지 않고.
애호박이 저세상 맛으로 재탄생!

나는 제 모양대로 생긴, 말랑하고 폭신한 애호박이 좋더라고.




내일, 8월 8일(주일) 오전 8시, CBS광장(98.1/CBS표준FM)에 나옵니다.

질문의 힘, 좋은 질문의 힘을 느낍니다. 북토크나 방송 출연하며 만나는 좋은 질문으로 새로운 말을 꺼내 놓게 되는 요즘입니다. <슬픔을 쓰는 일>이 더는 개인적인 일이 아닌 게 되고 있습니다. 죽음, 애도, 감정과 친해지는 일, 그리스도인의 위로... 제 안에 있었고, 어쩌면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질문에 힘입어 비로소 나온달까요. CBS 광장은 팟캐스트로 다시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http://cbs.kr/wdze7u


"내 방만 업쒀~어!
여긴 내 공간이야아~!
이거 치우라고!
여기 앉아 있찌 말라고~오!"
라고 강짜를 놓으며 살고 있는데, 올여름은 좀 진심 미안하게 되고 있다.

말하자면 거실 탁자가 작업실인데, 글이 안 써지고 강의 준비가 풀리지 않으면 옆에 알짱거리는 아무라도 붙들고 신경질을 낸다. 너 때문에 지금 정신 산란해서 글이 안 써지는 거야! 이러는데 내가 어떻게 집중을 할 수 있겠냐고! 그러고 보면 내 성질에 딱 맞는 작업실이다. 남 탓하기 좋아하는 내게, 어떻게든 사람과의 끈이 있어야 일을 하는 내게 말이다. 그런데 여름이고, 뜻밖의 줌 강의가 상시로 있는 요즘. 에어컨 있는 유일한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있으니 보통 미안한 일이 아니다. 가족들은 각자 자기 방에 갇혀 선풍기 하나 씩 끌어안고 더운 공기를 돌리며 버티고 있다. 찍소리도 못 내고... 강의 쉬는 시간이면 찜질방 가족들 숨 쉬는 시간. "하아, 쉬는 시간이야?" 하고 나와 물 마시고, 에어컨 쐬고 들어간다. 과연 현승이가 별명을 잘 지었지. '마키아신실', JP&SS는 종필과 신실의 사랑이 아니라 '조폭신실'. 올여름 가족들에게 진심 미안하게 생각함. "미안해, 내 방이 제일 좋아!"

온종일 밥하고 먹을 때 외에는 거실 탁자에 앉아 있다. 일찍 자러 들어갔다 아침에 나온 현승이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 나를 보면 "엄마, 설마 어젯밤 그 상태로 밤새고 앉아 있는 건 아니지?"라고 한다. 안 놀아주고 노트북과 책만 들여다보는 엄마의 주의를 끌기 위해 별 짓을 다 하기도 한다. 현승이 어떤 면에서 창의력이 뛰어난 아이인데, 방학이라 어디 발휘할 데도 없고, 그렇다고 전처럼 시를 쓰거나 하지도 않으니 쓸데없는 곳에 창의성을 과소비하고 있다. "현승아, 주방 가는 길에 냉장고에 있는 보이차 좀 갖다 줘." 주문하고 하던 일 하고 있으면, 괴이하고 귀여운 알바 복장으로 배달을 온다던가. 책상 위 아무거나를 걸치고 나와 노트북 너머에 가만 앉아 있는다든가, 호롱불 들고 베란다로 나가 유리창 사이에 두고 얼굴을 들이밀기도 한다. 적극적일 때는 남매가 같이 엽기춤을 만들어 말없이 추고 사라지기도.

쓸데없이 낭비하는 어떤 것들이 더운 격리 세상을 버티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 창의력이라는 것이 폭발하는 현승이 사진들 올렸다 심의에 걸려 바로 내렸습니다. 줌 강의 준비하며 카메라를 거울 삼아 단장하는 엄마와 엄마를 찍는 채윤이, 엽기 댄스 추는 남매 사진 정도 허락받아 걸어봅니다. 조폭신실, 마키아신실 다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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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울~어본 사람? 구응~금한 사람? 안물안궁...

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도 자기 이름 검색한다.

저레벨인 나는 엄청나게 해댄다.

알라딘에서 오전 7시마다 판매 순위 업데이트가 된다는 걸 이번에 알았고.

그래서 아침마다 확인하고 있다.

 

어제(2021년 8월 4일) 순위 확인하고 깜짝 놀람!

순위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던 책이 어디서 튀어나와 7위이다.

웃자고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착한 이웃들이 진심으로 "이건 안 될 일" 하시며 구매 열의를 보였다.

바로 구매하여 인증샷을 댓글로 달아주신 분도.

 

그러나

 

하루 만에 역전당하고 말았다!

여러분의 구매와, 별점 주기, 100자 평 릴레이가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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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저녁, 밥솥 뚜껑을 열면 뜨거운 안개 같은 하얀 김, 뜨거움이 물러가고 안개가 걷힌 밥솥 위엔 힘 빠져 축 늘어진 가지가 몇 개가 누워있다. 가지 냉국은 그 뜨거움에서 비롯한다. 밥솥 옆엔 다진 파와 마늘이 깔린 양푼이 대기 타고 있다. 가지는 젓가락에 옆구리 찔려 파 마늘 위로 던져진다. 젓가락 대신 주걱을 들고 바쁘게 밥솥의 밥을 휘저은 엄마가 다시 다시 젓가락을 잡는다. 흐물흐물한 가지를 젓가락으로 쭉쭉 찢는다. 그리고 거기에 조선간장, 고춧가루... 그리고 시원한 물, 그리고 얼음. 양푼 째로 마당에 놓인 평상으로 가져가 밥상 옆에 놓인다. 땀 뻘뻘 엄마가 한 그릇 씩 퍼주던 여름 용 국물. 가지 냉국이다. 엄마가 해주던 가지 냉국 말고 먹어본 일이 없다. 가지 냉국 얘기를 하면 가지로 국을 만드냐며 놀라는 사람이 더 많다. 이번에도 아이들이 "이게 뭐야? 무슨 음식이야?" 했다. 몇 번 만든 적이 있는데, 처음 보는 음식이란 거다. 실은 나도 한참 잊고 있었다.

가지 냉국 생각이 간절했다. 음식이 아니라 엄마 생각인 것을 알지. <슬픔을 쓰는 일> 북토크 여파인지, 아니면 7말8초 휴가철의 기억 때문인지, 둘 다 인지. 북토크에선 '상실' 에 대한 강연을 하고 바로 글을 써보았다. 두 분의 글을 낭독하여 나눴는데, 같지만 다른 어머니 이야기이다. 두 분 다 남성이라 연구소 글쓰기 여정에서의 느낌과 또 달랐다. 글이 아니라 쓴 글을 낭독하는 목소리가 가진 힘과 여운이 있는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새로운 경험은 아들의 목소리로 부르는 '엄마'였고, 엄마를 그리는 '아들'의 마음이었다. 그 여운으로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새로운 얼굴로 왔다.

해마다 이 즈음, 동생네 휴가 기간이 되면 엄마랑 함께 지내곤 했다. 돌아보면 고마운 시간이다. 죽도록 미워하던 엄마, 그러나 죽도록 그리운 엄마를 곁에 두고 맛있는 것 만들어 드리던 날들. 폭염의 날들. 폭염이라 땀을 줄줄 흘리며 음식을 해야 했고, 어쩌면 그게 좋았다. 벌을 받는 느낌, 엄마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엄마를 부끄러워 하고 미워했던 나날을 보상하는 느낌으로 뜨거운 시간을 견디는 것이 좋았다. 몸이 기억하는 그 시간이라 그런가, 나도 모르게 가지 냉국을 만들고 있었다.

희한한 건, 이제껏 만든 가지 냉국 중 엄마가 내던 맛에 가장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비법이 하나 생각났다. 통깨가 아니라 깨가루를 써야 했다. 문득,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통깨를 부숴 깨소금을 만들어 넣었더니 달랐다. 아, 어떻게 해도 엄마 맛과 달랐던 건 통깨와 깨소금 차이에 있었어! 한 그릇 두 그릇 들이키다 보니 그 외 비법들이 함께 떠오르는 것이다. 밥솥 위에 가지를 쪘다. 가지를 처음부터 넣었을까? 언제 투입 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젓가락으로 꺼내던, 그래서 밥알을 몇 개 달고 나온 가지. 평상 위에 저녁 식사. 가지 냉국과 함께 빠지지 않던 감자볶음... 엄마가 가지 냉국을 만들고 연탄불 위에 감자볶음을 하는 사이 방에 모기기약을 뿌리고, 방문에 모기장을 꼼꼼하게 치던 아버지.

상실의 텅 빈 공간에서 바람이 분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그리움의 바람이 분다. 강연에서 말했다. 상실의 공간은 창조성의 공간이며 구원의 공간이라고. 내 말이 아니다. 헨리 나우웬, 제랄드 메이 같은 선생님들의 말이다. 부모 상실을 안고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 폴트루니에의 고백이다.

통깨 아닌 깨소금! 가지 냉국 비법은 그리움의 공간에 머무르다 얻은 오래된 참신한 아이디어! 창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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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단풍이 들었다.

 

인생 석양에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는 한 남자

뱃살 관리를 위해 달리러 간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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