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줌 강의를 마치고 혼자 유유자적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어떤 소리를 들었다. "대추 맛집, 대추 맛집, 여기가 대추 맛집." 영혼으로 들었다. 눈에 보이는 아이패드를 들고 튀어 나갔다. 베란다 밖, 어느 새들이 앉아 대추 흡입 중인 것이었다. 와, 아침에 포스팅했는데, 댓글 달러 온 거야 뭐야. 얘네들 진짜 신통방통 하네!
아침에 포스팅한 '어느 새'는 비공개로 올려 놓은지 한참 된 글이다. 블로그 놀이 본능이 꿈틀대는 "써야만 하는" 글이 산적한 그런 시즌이다. 본능에 충실하여 밀린 글들 하나 씩 올리는 중이었고, 그러다 오늘 아침 당첨 글이 '어느 새'였던 것. 포스팅하고 나가보니 대추가 더 줄었다. "언제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먹고 가는 거야?" 투덜거렸는데... 바로 이렇게 찾아주실 줄이야.
모든 새는 어떤 새다. 산책길마다 깜빡이 없이 난입하여 내 정신을 높은 곳으로 끌고 갔다 사라지는 새가 있는데. 오늘 그 새는 며칠 전 그 새가 아니고, 며칠 전 나를 만나줬던 그 새는 도대체 지금 어느 하늘을 날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당연히 이름을 알 수도 없다. '어느 새'가 어느새 앞에 나타나 내 시선을 높은 곳으로 끌고 가는 그 순간. 우리의 만남은 순간이다. 순간을 누리는 것 외에는 없다.
이렇게 저렇게 생긴 대추를 먹다 시들해진 애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말리기로 했다. 베란다 창문 밖 화분대에 체망에 담아 내놓았다. 가을 볕을 받으며 쪼글쪼글 잘 말라갔다. 어느 날! 증거가 그대로 남은 범죄 현장을 발견했다. 분명 '어느 새'의 소행이렷다. 부리로 쪼아 먹었을 테니 국과수에 의뢰하여 유전자 검사를 하면 잡아낼 수 있을 텐데. 잡을 수가 없는 게 함정이다. 하하, 맹랑한 '어느 새' 녀석 가트니라구.
하루 이틀 지나 확인하니, 먹던 그 대추가 없어졌다! 아, 그럼 그 녀석이 또 왔다간 것인가? 겁도 없이 범죄현장에 다시 나타나 다 먹지 못했던 걸 마저 먹고 갔다고? 와아, 씨!… 도 안 남겼네. 이 놈들 봐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내 이 손으로 꼭 잡고.... 싶지만. 잡는 것은 고사하고 현장 목격만 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며칠 후. 진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어느 새'들을 내 눈으로 보았다. 거실 내 자리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데, 소리도 요란하게 나타나서는 간식 타임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카메라 들고 우당탕 일어나 나갔는데 어느새 다시 날아가버린 나의 '어느 새'들.
삼계탕에 넣을 대추는 냉동실에도 있다. 너네 먹어라. 베란다 밖에 말리던 대추는 '어느 새'들의 간식으로 봉헌하기로 했다. 소리소문 없이 조금씩 갯수가 줄어간다. 녀석들이 뒷처리가 깔끔하다. 씨를 남기는 법이 없고, 먹다 두고간 것은 결국 언젠가 와서 먹어 치우고 분리수거까지 말끔히 하고 사라진다. 어느새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고 있다. 산책 길마다 만나서 반갑고 고마웠던 '어느 새'들에게 간식 타임 선사할 수 있었던 내 생애 잊지 못할 가을이 가고 어떤 겨울이 오고 있다.
연구소 개소 3주년을 맞았다. 3이라는 숫자가 담은 무겁고 풍성한 것을 그대로 느낀다. 고요하게 느낀다. 벼르고 벼르던 신소희 수녀님의 '베긴(Beguine) 특강'을 3주년에 맞출 수 있었다. 팬데믹 상황, 수녀님의 건강 등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결국 성사된 것 역시 '3'이라는 숫자에 부합하는 신비이다. 수녀님을 다시 만나 수녀님께 배우고, 무엇보다 '베긴 영성'을 만나지 않았다면 연구소 3년은 무겁기만 하고 아프기만 한, 향방 없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몇 백 년 전 여성들의 선택과 삶, 삶과 신앙, 그렇게 일군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여성들의 공동체가 가슴을 뛰게 했다. 혼자 뛸 수 없어서 연구원들에게 소개하고, 우리끼리만 알고 누릴 수 없어서 특강을 마련했고 2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했다. 가족처럼 친밀한 사람, 모르는 사람, 심지어 가톨릭 신자도 세 분이 참석하였다. 어떻게 듣고 가셨든, 각자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안다.
수녀님께서 커다란 꽃다발을 해오셨다. 어쩐지 수녀님께 어울리지 않는 선물이다. 아니나 다를까 민망하신 듯 말씀하셨다. "제가 커다란 꽃다발 못 사요. 그런데 어제 집 앞에 꽃집에서 이걸 사는데 같은 돈을 받고 두 배로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꽃다발이 꼭 연구소 선생님들 같죠? 제 돈은 반 밖에 안 들어갔어요. 반은 하느님이 내신 거예요. 그분이 연구소를 정말 축하해주고 싶으시구나, 했어요. 제가. 허허허." 수녀님의 존재가 꽃다발이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일깨우는 매개자라는 것을 아실까? 베긴 영성가 '하데위히'를 연구한 수녀님의 박사 논문을 읽으며 연구자로 수도자로 살아오신 수녀님 인생을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그 고독한 연구와 수도의 삶이 오늘 내게 어떤 선물이 되고 있을지, 수녀님을 아실까?
베긴 영성을 오늘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궁금증으로 특강에 참여 하셨는데, 다 듣고 나니 "어떻게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 사랑을 살까"라는 질문이 남았다는 후기로 가슴이 뜨겁다. 연구소 3년, 아니 여성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공부도 강의며 자주 좌절하고 분노한다. 앤 윌슨이 말하는 '중독 사회'의 벽 앞에서다. 교회고 사회고 가릴 것 없이 '중독 사회'이다. 세상 모든 일은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고, 정답이 있고, 그 정답은 최종 권력자에게 있고, 파이는 정해져 있어서 누군가 누리는 만큼 나는 누릴 수 없으니 투쟁해야 하고 경쟁해야 하는 사회이다. 반드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하고, being 하지 않으며 끝없이 doing 해야 한다. '백인 남성 시스템'이며 다른 말로 '중독 사회'라 부른다. 절절하게 공감한다. 이 피라미드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견고하게 지탱하는 시스템이다. 그 맞은편에는 중독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동반 의존으로서의 여성 시스템'이 있고, 대안은 따로 있다고 앤 윌슨은 말한다. 그가 말하는 대안은 '과정으로서의 공동체'이다. 연구소 3년, 이걸 한 번 해보자고 다짐하였다.
쉬운 일은 아니다. 중독 사회에서, 나 역시 이미 중독된 존재인데 제 3의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은. 연구소를 아니, 과정으로서의 인생 살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새로운 힘을 준 영성이 '베긴 영성'이다. 특강 마지막에 들려주신 무명의 베긴 여성이 쓴 시가 있다. 급진적으로 아름다운 이 공동체가 기존의 신학과 잣대로 규명되지 않자, 사제들과 남성 신학자들은 탄압하기 시작했다.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 당한 지도자도 있다. 그들의 탄압에 반응한 어느 베긴의 시라고 한다. 시 자체가 가르침이다. 최근에 공저로 내신 책 <이 시대에 다시 만난 여성 신비가들>과, 책 안쪽에 남겨주신 메모 또한 3주년에 받는 소중한 선물이다. 아래 시는 도미니크 수사에 의해서 편집된 글이라고 하는데, 수녀님이 번역하여 나눠주신 것에도 두 단어(배우고 -> 분석하고, 검사하고 -> 검열하고)를 내가 바꾸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여 행동하기로, 분석하는 대신 고요히 응시하고 머물기로, 흘러오는 일상의 강물에 몸을 맡기고 춤추기로... 다시 새로운 마음을 가져본다.
당신은 말을 하고, 우리는 행동한다.
당신은 분석하고, 우리는 응시한다.
당신은 검열하고, 우리는 선택한다.
당신은 씹고, 우리는 삼킨다.
당신은 노래하고, 우리는 춤을 춘다.
당신은 꽃을 피우고, 우리는 열매를 맺는다.
당신은 맛을 보고, 우리는 향기를 맡는다.
유치부 설교를 했다. 한 20여 년 만이다. 한때 유치부 설교자였던 적이 있었다. 유치원 유치부 아이들의 성샘미, 어린이 성가대 선생님이었던 때는 순간순간 꿈틀대는 생명을 살았던 때다. 장애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 했던 젊을 날이 없었다면 내적 여정 안내자로 사는 오늘 또한 없었을 것이다. 하늘 나라 같은 아이들의 세계를 맛보아 알기에 내적 여정에서 'Wonderful child'과 '상처 받은 내면 아이' 강의를 뜨겁게 전할 수 있다.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은 리처드 로어 신부님 말씀처럼 "사랑 안의 성장에 관한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사랑의 안의 성장'을 가장 생생하게 체험하는 '체험, 사랑의 현장'이다.
돌아보면 20여 년 전 유치부는 '기-승-전-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셔'였다. 울고 짜증내고 장난치는 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는 선물을 안 줄지 몰라도 하나님은 다르단다. 이번에도 내가 하고픈 얘기는 그거였다. 설교 준비는 다이소에서 했다. 다이소 돌아다니며 하트 모양 스티커를 , 하트로 된 장난감을 전수조사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하트 반지를 발견! 이건 뭐, 다이소에서 주운 다이아 반지. 내일 설교는 끝났네! 끝났어! 내가 이겼어!
은재야, 사모님은 은재 사랑하는데 은재는 어때? (당연히) 나도 사모님 사랑해요! 그러면 은재는 누구를 제일로 사랑해? 은재를 제일 사랑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야? 와아, 진짜? 엄마가 언제 은재를 사랑해? 어... 말 잘 들을 때. (걸려 들었쓰!)
엄마 아빠는 우리를 제일 많이 사랑하는데, 하나님은 더 많이 사랑한대. 하나님은 그리고 우리가 말 안 들을 때도 사랑해. 아무 때나 다 사랑해. 오빠랑 싸울 때도 사랑하고, 치카치카할 때도 사랑하고, 치카치카 안 할 때도 사랑하고, 똥 쌀 때도 사랑하고... 말 한마디 할 때마다 하트 스티커를 손에, 옷에, 얼굴에 막막 붙여준다. 이러다 보면 유치부 아이들 전체가 설교자가 된다. 애들이 정답을 너무 빠르게 파악! 피아노 칠 때 사랑하신대~애. (맞아, 그리고 피아노 안 칠 때도 사랑하신대.) 치과 가서 울 때도 사랑하신대~애. 온갖 고백과 간증이 터져 나온다.
그러다 7세 은준이의 총각 같은 한 마디. "죄 지을 때도 사랑하신대" 이 말에 맞장구치며 하트 스티커 붙여주다 울컥하고 말았다. "맞아, 죄 지을 때도 사랑하신다. 그런데 죄 지을 때는 더 많이 사랑하신대. 하나님이 너무 슬퍼서 막막 울면서 사랑하신대." 그리고 그 말이 내게 다시 돌아와 내내 가슴 한 구석을 건드리고 있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던 찬송 '예수 사랑하심은' 3절 가사가 살아온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하트 스티커의 향연이 끝나고, 약속의 반지를 끼워주었다. 잊어버리지 마. 하나님이 매일매일 아무 때나 사랑하셔. 잊어버리면 안 돼. 다이아... 아니 다이소 반지를 소중하게 끼워주었다. 예배 마치고 "은재야, 사모님이 뭐 잊어버리지 말라고 했어?" "어... 음, 반지! 반지 잊어버리면 안 돼!" 아... 반지... 그래, 반지라도 잃어버리지 마...
국에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하고... 먹는 것에 그리 큰 열정은 없는 내가 가끔 간절히 먹고 싶은 것은 잘 끓인 국이다. 요리를 내 먹고 싶은 것 위주로 하다보니 국을 자주 끓이게 된다. 어느 밤, 사골 된장국과 쇠고기 미역국을 동시에 끓이는 국 집착녀 같은 행태를 보이고 말았다. 그것도 사골 된장국은 집에서 제일 큰 남비에. 연구소 지도자 과정 피정에 가져갈 국이었다. 뭐 국까지 끓여 가냐며 말리는 소리도 있었지만, 바비큐 먹는데 따뜻한 된장국 없다는 게... 그건 정말 아쉬운 거다. 고기를 고기 되지 못하게 함이며, 파티를 파티 되지 못하게 함이고, 환대의 식탁에 따스함이 결여되는 것이다. 국에 집착하는 것 맞네. 국守주의자 가트니라구! 그렇다, 누구를 위한다기 보다는 내 만족이다. 피정 가는 다음 날은 채윤이 생일이었다. 생일 당일 엄마가 집에 없고 아무것도 못해주는데 미역국이라도 끓여야지 싶었던 것. 그 밤 온 집안 된장국과 미역국 냄새의 향연이었다. 나, 국守주의자!
채윤이 피아노, 현승이 기타에 맞춰 노래하는 일이 있었다. 집에서는 가끔 있는 일이다. 둘이서 피아노와 기타로 노는 일이 흔하고, 가끔 거기 끼어 노래를 한다. 전문가 채윤이, 나름대로 실력 있는 현승이가 많은 걸 포기하고 옛날 스타일에 맞춰주는 방식으로. 교회 추수감사 주일 행사에 가족이 함께 노래를 했다. 종필, 나의 기타 맨 종필이 기타를 매는 게 가장 익숙한 그림인데. 아이들이 반주를 하고 우리 둘은 에그 셰이커를 흔들었다. 같이 노래한다 해도 어차피 목소리 크기나 기운으로나 내가 솔로 하는 느낌이 된다.
20년도 더 된 어느 감사주일 전날 밤, 그리고 그 감사주일이 생각난다. 그때도 교회에서 찬양제가 있었고 청년부도 한 팀으로 무대에 서야 했다. 청년부는 토요일에 평택에 있는 집사님 별장에 가서 고기 먹고 놀고 찬양 연습을 하며 거의 밤을 지새웠다. 모닥불 앞에 모여 하염없이 노래하고 수다 떨며 시간 보냈을 텐데. 기타 맨은 김종필이었다. 우리는 사귀는 중이었고, 거의 헤어지는 중이었다. 한 공간에 마주 앉아 있는데 마음의 거리는 천 리 만 리. 그 쓸쓸하고 아픈 공기는 여전히 어렴풋 살아온다. 그 감사주일 행사에서 불렀던 찬양은 지금 불러도 그 느낌을 소환해낸다.
헤어진 후 가장 아프게 남은 이미지는 평택의 그 밤 기타 맨 그의 모습이었다. 무슨 노래를 시작해도 척척 반주해내는 실력. 오직 기타 소리로 드리우는 무거운 존재감. 과묵한 겸손함이 참 아름다웠는데, 그 사람이 더는 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이었고 슬픔이었다. 곡절 끝에 다시 만나 결혼했으니 "놓치지 않을 거예요!" 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다. 남편과 결혼식 축가에 많이 불려 다녔다. 그게 아니라도 마음 울적한 날에 둘이 앉아 기타 치고 노래하는 날이 많았다. '금영 노래방, 아리랑 반주 기계'라 불리는 기타 맨 김종필이 내 인생의 반주자라 참 좋았다.
채윤이야 이제 전문 음악인이고, 현승이 기타 소리도 꽤 들을 만하다. 세련된 주법과 기술로는 아빠를 능가한지 오래다. 그런데 둘 다 방구석 음악인이라 교회고 어디고 무대에 서는 것엔 질색 팔색이다. 언젠가 둘이 건반과 기타로 놀고 있기에 "엄마빠 추억 담긴 노래다"하고 던져줬다. 며칠 지났는데 현승이가 기타 소리를 똑같이 카피해서 연주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다 추수감사절 가족 찬양까지 하게 되었다. 아빠도 기타를 치네 마네 했는데, 프로듀싱 감각 탁월한 채윤이 지도에 따랐다. 엄마 아빤 에그 셰이커 챡챡!
기타 맨 김종필만으로도 내 인생의 반주자는 충분하고 과분했는데. 반주자가 셋이다. 게다가 셋 모두 실력파. 내가 이렇게나 복이 많다. 2021년 감사주일의 감사. 주님, 제 인생에 반주자를 셋이나 주셨어요. 다시 태어난다면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일상을 뮤지컬로 살게 해주셨네요! 사실 노래 반주만 해주는 게 아니다. 나이 탓인지, 부실한 몸 때문인지 집안의 사건사고가 거의 나로부터 시작된다. 약약약 강! 약약약 강! 이런 식으로 한 번씩 강력사고도 저지른다. 그 구구절절한 사고의 디테일은 차마 글로 내놓을 수가 없다. 반주자 셋이 바로 캐릭터 바꿔 사고처리 요원이 되기도 한다. 내 인생 반주자가 셋, 사고처리 요원이 셋. 고마움도 세 개, 미안함도 세 개.
‘나음터’라 불리는 연구소가 벌써 3주년을 맞았습니다. 누가 누굴 가르치거나, 상담가의 이름으로 내담자를 고치려 하지 않고, 후원자들을 향한 감사 기도로 연결된 공동체를 일궈보자 애를 써봤습니다. 그 열매는 주님이 허락하시는 몫만큼이겠지요.
중세에 ‘베긴(Beguine)회’ 라는 여성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분처럼 살고 싶은 여인들이었습니다. 당시 여성들 앞에 놓인 두 선택지, 결혼이나 수도원이 아닌 세상 한복판 가장 낮은 곳으로 모여 특별한 봉헌의 삶을 살았던 분들입니다.
공동체이긴 하지만 창립자도 없고, 예규도 없고, 수도원 공간도 없는 자발적 공동체였다고 합니다. 이충범 교수는 <중세 신비주의와 영성>에서 베긴 공동체의 특이성을 말하면서 계급과 젠더 차이를 해소하고, 제도적 종교를 뛰어넘었으며, 관상적 삶과 사도적 삶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신비주의 영성을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우리 시대와 먼 것 같지만 또 멀지도 않은, 다다를 수 없는 삶과 영성인 것 같지만 어쩐지 가슴을 뛰게 하는 살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연구소는 베긴 영성을 만나고 공동체, 여성 공동체를 향해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베긴회 신비가인 ‘안트베르펜의 하데위히(Hadewijch von Antwerpen)’ 연구로 박사논문을 쓰신 신소희 수녀님 모시고 특강 듣는 자리 마련했습니다.
여남 소노, 비신자, 신자, 가톨릭 신자, 개신교 신자…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여성, 영성, 공동체 : 베긴 영성 특강
+ 강사 : 신소희 수녀(성심수녀회 예수마음배움터,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전공) + 일시 : 2021년 12월 3일(금) 오후 1:30 ~ 3:30 + 인원 : 25명 (선착순) + 장소 :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 바실리오홀(마포구 월드컵북로 2길 49 / 홍대입구역 2번 출구 86M) + 참가비 : 이만 원 + 코로나19 방역단계 변화에 따라 온라인 강의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신청 링크 :https://bit.ly/3kDbLf
학교 간다고 나서던 채윤이가 돌아서며 말했다. "아우, 귀여워. 귀여운 엄마를 두고 나가는 게 싫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이게 무슨 '하룻강아지 범 귀여워하는' 소리냐. (어쩔 수 없는 것이 하룻강아지 사이즈가 범을 압도하여! 엑스라지 사이즈 하룻강아지가 아침에 일어나 스몰 에스 범에게 "엄마아~"하고 달려들어 안기면, 안기는 게 아니라 '엄마아~'를 폭 안아주는 형국이니까.) 다른 건 몰라도 귀여운 아이 두고 출근하는 심정은 엄마가 안다. 니 어릴 적에, 증말 귀여워 미칠 것 같은 니를 두고 출근하는 엄마 마음이 그랬느니라,라고 말했더니. 으으...(닭살) 나는 그 정도는 아니야, 하고 나갔다. 아, 자기 두고 출근하는 게 뭐가 그리 아쉬웠냐고 엑스라지 사이즈 하룻강아지가 물었다. "니가 하루 종일 순간순간 귀여울 텐데, 그 순간을 놓치는 게 아쉬웠어."라고 나오는 대로 답을 했더니. 아, 그게 아쉬웠던 거구나 깨달아졌다.
지금 이 순간,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것처럼 아쉬운 것이 없지. 치명적인 손해지.
나가야지, 나가야지 하다 어느 새 보면 날이 어두워져 있다. 요기까지만 쓰고 나가야지, 몇 페이지까지만 읽고 나가야지, 하다 보면 결국 나가지 못한다. 이 좋은 날들, 지금 이 순간을 자꾸 놓친다. 며칠 전에도 나가야지, 나가야지... 하고 뭉기적대고 있는데 귀는 아니고 마음인지 어딘지에서 막 이 가사가 막 울렸다.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 받고 못 들은 체하려나" 고개 돌려 베란다 밖 하늘을 보니 거기서 나는 소리였나 싶기도 하고... "이런 날에 집구석에 처박혀서 책이나 파고 이겠다고? 미쳤어, 미쳤어." 하는 소리로도 들렸다. 그렇게 끌려 나간다. 이 소중한 순간을 놓칠 거야? 하는 소리에.
이 동네 참 희한하다. 탄천을 따라 산책 하는데, 그 옆길로 살짝 올라가면 농로다. 논이 있으니까 농로겠지? 논을 지나 보이는 차들은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이다. 깜짝 놀랐다. 한동안 안 찾았더니 그새 겨울 논이 되어버린 것이다. 불과 한 달 전에는 채 황금물결도 되기 전이었다. 곧 황금물결이겠네. 꼭 와서 봐야지. 결심했었는데, 놓치고 말았다. 어느새 추수 끝난 텅 빈 겨울 논이 되고 말았다. 소중한 순간은 이렇게 놓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의 은혜'는 늘 지금 여기의 은혜이다. 주님의 은혜를 아니 받고 못 들은 체하면 이렇게 된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게 된다. 놓치고 나서는 아쉬워해도 소용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 겨울 논을 즐기는 수밖에 없다. 엑스라지 사이즈가 된 하룻강아지 딸의 품에 안겨 즐기는 수밖에 없다.
백신 부스터 샷을 맞은 남편이 집에서 쉬어야 했고 나는 마감 앞둔 원고를 써야 했다. 이런 날은 피차 잘 챙겨 먹어야지. 나는 원고에 집중해야 하니까 시간은 없고. 그래, 시간도 없고... 요리하기 딱 좋은 날이네! 세 팩에 만 원 하는 닭을 사서 두 팩은 닭치찜 해 먹고 한 팩이 남아 있었다. 시간도 없는데 닭한마리 칼국수나 만들어 볼까? 딱히 재료는 없지만, 딱 닭 한 마리가 있으니 운명이네! 재료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와! 냉장고 털었더니 한 줌씩 남은 것들 모으니 무슨 밀키트 배달 온 것 같다. 심지어 전에 해놓은 양념소스도 있고, 부추도 딱 한 줌 남아 있어서 소스에 비벼 고기 발라 제대로 싸 먹었다. 칼국수 대신 있는 소면 넣어서 국수까지 잘 먹었다. 백신 접종자 제대로 뜨근하게 챙겨 먹였다. 와, 무슨 요리가 이렇게 술술 풀리냐. 원고도 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누군가 질문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온유한 성품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에 대한 답으로 교황님은 '꿈'을 얘기하셨단다. 내용은 이렇다. 교황님은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침대 옆에 있는 '꿈꾸는 요셉상' 앞에 편지를 써놓고 잠든다고 한다. 꿈으로 답을 주십사 하는 기도이다. 요셉은 가톨릭에서 꿈을 수호하는 성인이다. 약혼녀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 '가만히 파혼하려' 했으나 꿈에서 천사의 메시지를 받고 일어나 결혼을 추진하였다. 교황님의 영상과 메시지를 자주 찾아본다. 다양하고 살아 있는 표정에 주목하게 된다. 진지하게 강론하는 중에 강단 위에 난입하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눈빛,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 트럼프 같은 이들과 마주할 때 화난 듯 굳은 얼굴을 본다. 감정을 느끼지 않고 전혀 영향받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투명하게 느끼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다. 교황 님은 그 좋은 예다. 꿈을 기다리는 태도는 자는 동안 하나님을 기다리는 겸손한 기도인데, 역시나! 싶다.
가을 꿈모임에 가톨릭 신자 한 분이 오셨다. S선생님이다. 늘 시간이 조금씩 늦는데 미사 반주를 하고 달려오면 그 시간이라고. 드물게 이렇게 가톨릭 신자 분이 연구소 여정에 함께 하시곤 한다. 경계를 넘나들며 가톨릭 영성을 배운(배우고 있는) 경험이 있어 마음이 많이 쓰인다. 고맙기도 하고. 첫 시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 얘기를 해드렸다. 꿈꾸는 요셉상을 곁에 두고 꿈 편지를 쓰신다는 얘기. 두 번째 모임이었다. 지난 모임 마치고 성당 교우에게 선물을 받았단다. 신기하다며 모니터 카메라에 가까이 대는데 꿈꾸는 요셉상이다. 편지도 함께. 뜬금없는 선물이 내 삶의 다른 부분과 하이파이브하면 '짝' 소리 낼 때면 그분이 조용히 열일하고 계시다 들킨 거라고 믿는 게 좋다. 꿈 여정을 시작한 선생님을 응원하시는 그분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시간엔 두 분의 꿈을 나눴는데, S선생님과 또 한 분. 일찍 수녀 서원을 하였으나 결혼한 여자로 살아온 세월, 결혼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여겨 다가오는 만남조차 거절하고 살아온 세월. 전혀 다른 두 세월이 담긴 꿈을 나눴는데, 어쩐지 마음에 남은 진실은 하나의 이야기 같았다. 꿈 여정을 하며 배우게 되는 것도 비슷하다. 사람 사람이 이토록 고유하구나! 누구의 인생도 누구의 고통도 남의 것과 견줄 수가 없구나! 하는 것. 다른 사람의 고통과 치유 여정에 섣부른 조언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나는 그 어리석은 업보를 얼마나 쌓고 살아온 것인가. 그러나 그 고유한 빛깔의 고통과 치유의 어느 길목은 꼭 나와 교차한다. 내 얘기가 아닌데, 나는 저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데, 나는 수녀가 되려 한 적이 없고, 결혼을 피하지도 않았는데. 존재 깊은 곳에서 공명하고 울리는 것을 느끼게 되니 그것이 신기한 일이다.
꿈 모임 마치고 며칠 지나 꿈꾸는 요셉상 하나가 우리 집으로 왔다. S선생님이 보낸 것이다. 침대 옆 협탁을 깨끗이 정리하고 모셨다. 꿈을 기다리는 잠은 주술이 아니다.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시는 주님께 내 영혼을 맡기는 시간이다. 낮의 곤한 삶을 위로하고 보상하심으로 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리신다.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에 연연하여 소진한 내 영혼을 다시 그분께 맡기는 시간이다. 겹겹이 썼던 가면, 사회적 얼굴들 뒤에 숨은 두려움, 슬픔을 가차 없이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악몽이어도 좋다. 악몽은 악몽대로 진실한 나로부터 도망치는 나를 보여주니 말이다. 악몽을 꾸는 것도 내게 유익이다. 꿈은 밤마다 받는 예기치 않은 선물이다. S선생님을 비롯, 자신의 인생을 끌고 나음터로 모여드는 사람 사람이 모두 예기치 않은 선물이다.
대면 예배는 이렇게 갑자기 조용히 다가왔다. 코로나로 인한 일상의 변화가 긴 과정이었든 회복 역시 과정일 것이다. 각 교회의 대표기도 내용 중 빠지지 않았던 기도가 이루어졌다. "어서 회복되어 교회당에 함께 모여 예배하고..." 인원 제한 없이 대면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우린 정말 대면 예배를 기다렸나?
주일학교 찬양팀 준비하는 현승이를 태워가느라 예배 시간보다 한참 일찍 도착했다. 교회 주변의 모든 길은 단풍과 낙엽으로 그냥 그림이다. 길가에 추차하고 운전석에 앉아 있어도, 나와서 걸어도 풍경화 속에 있는 것 같다. 조금 춥지만 골목 공원에 가 앉았다. 책을 펼쳐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우수수... 바람과 나무의 합작품이 눈앞에 펼쳐지니 말이다.
눈앞의 작품 멋짐에 밀리지 않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말레이시아 원주민들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빠져들었다 싶으면, 우수수수. 자꾸 우수수수... 하니까 신기하지도 않아서 외면했더니 나풀나풀 읽고 있는 페이지에 나뭇잎 한 장을 떨어뜨린다. 누가? 바람이. 바람 같은 그분이?
시간이 되어 교회로 향했다. 바삭바삭 쌓인 낙엽을 밟으며.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교회가 가까워지지 며칠 전 강의에서 내가 했던 말이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마음에 울렸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달라스 윌라드의 마지막 영성 수업>에 나오는 얘기다.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인 곳이나 사회적인 곳이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곳이니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란다. 교회는 기껏해야 병원과 같다고 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식이 작동하는 곳은 차라리 자연이다. 방금 전 앉았던 공원의 벤치.
큰 기대 없었지만 역시 함께 드리는 예배는 달랐다. 내 목소리 적당히 묻혀 편안한 함께 드리는 찬양, 거리를 두고 앉았으나 거리 넘어 전해오는 사람들의 몸, 몸과 숨.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에너지. 현장에서 듣는 설교도 달랐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자는 설교였다.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교회를 향한 여러 행위, 수고, 외형을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랑' 즉 '진심'은 사라진 세월이다.
설교 마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데 사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어릴 적부터 내가 사랑하던 하나님. 교회 말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 내 나이 비록 어려도 잘 알 수 있지요" 얼마나 좋아하던 찬양이었던가. 어릴 적부터, 중고등 학교 시절, 청년 시절.... 하나님을 사랑했다. 하나님 사랑이 교회 사랑이었고, 교회가 하나님 나라인 줄 알았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인 줄 알았던 때에도, 하나님 나라여야만 한다고 주먹 불끈 쥐고 목에 핏대를 세우던 때에도 나는 한결같이 하나님을 사랑했다.
예배 마치고 다시 차로 걸어가는 길에 다시 그 말이 울렸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맞아, 그렇다고 교회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기에 천진하게 사랑할 수는 없다. 그래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겠구나! 알게 되었다. 도적 같이 임한 대면 예배에서 은혜를 받았나보다.
"참 오래된 인연처럼 느껴지네요." 생각해보니 참 오래된 인연이 맞다. ⟪이프⟫ 초대 편집장으로 알게 된 박미라 선생이니 말이다. 확인해 보니 ⟪이프⟫는 1997년 창간이다. 그렇게 안면을 트게 된 페미니스트 박미라 선생을 <치유하는 글쓰기>의 저자로 다시 만났을 때 동명이인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어쨌든 그러니까 내 편에서는 독자로 오래된 인연인 것이 분명하다. 치유 글쓰기 모임을 만들면서 수십 권의 책을 참고했지만 실질적인 안내는 <치유하는 글쓰기>를 통해 얻었다. <슬픔을 쓰는 일>을 쓰고 편집자님과 추천인 논의를 하며 이구동성 게임처럼 '박미라 선생'이 나왔을 때 신기했지만, 결국 선생의 추천사를 싣게 된 것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출간 이후 감사 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받았다.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마음의 기록법>. 이번에 출간하신 두 권의 책을 직접 보내주셨다. (영광입니다!) 앞의 책은 <치유하는 글쓰기>의 개정판이고, 나머지 한 권은 글쓰기 매뉴얼이다. 서문에서 '내가 개발한, 나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피 같은 글쓰기 기법을 아무에게도 뺏기지 않을 거야'하면서 전전긍긍하셨단 얘기를 읽었다. 완전 공감이 되고, 책 받기 전 온라인 서점에서 책 소개를 보고 나도 생각했다. 찐득한 경험으로 짜낸 필살기를 이렇듯 공개하다니! 이어지는 글이 이렇다. '욕심으로 노심초사하던 마음에서 해방되려고, 지난 17년 간 모아둔 치유적 글쓰기 방식을 책으로 만들어 여러분과 나누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역시 알 것 같은 마음이다.
책을 보내는 정성, 특히 포장하고 우체국을 찾는 노고를 안다. 새삼 '오래된 인연처럼' 느껴지고 감동과 위로가 된다. 오래된 사이라도 마음의 길이 닿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굴 한 번 보지 않았는데 오랜 인연처럼 깊은 연결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외로운 인생길 예기치 않은 선물이다.
해 지기 직전의 빛을 받으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시간 딱딱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 일이 있을 때야 어쩔 수 없지만 집에 있는데도 그렇다. 박차고 일어나 나가면 되는 것을 이것만 하고, 이것만 하고.... 미적거리다 보면 해가 넘어간다. 역시나 골든 타임을 조금 놓친 후 집을 나섰다.
탄천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분당, 왼쪽으로 가면 동백이다. 오른쪽으로 걷고 걷다보면 넓고 깨끗하게 세련되게 정비된 길과 만난다. 같은 단풍도 예사롭지 않다. 이 길을 더 좋아하고 선망한다. 시간도 얼마 없고, 어쩐지 오늘은 왼쪽으로 발길을 하게 되었다. 좁은 탄천 건너편엔 농로도 있고 논도 밭도 있다. 그다음엔 경부고속도로. 잡초가 제멋대로 우거져 말라가는 길을 걷는다. 내 일상과 닮았지. 정비되지 않는 내 일상. 그래서 편안하기도 하다.
최근에 듣고 있는 꿈강의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말레이시아 세노이족의 꿈 얘기다. "나는 꿈에서 새를 보았어."라는 말을 가지고 꿈작업하는 얘기를 생각했다. 걷는 중 새소리를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참 생각에 빠져 있는데 머리 위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 고개를 들어보니 흰 새 한 마리. 푸드덕 날아서 나무 꼭대기에 앉았다. 순간 "나도 새를 보았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느 세노이의 꿈에 답하게 됨.
길 한쪽으로 물러나 고개를 빼고 올려다보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이 다 낚인다. 뭐지? 뭔데? 하고 서서 같이 고개를 빼올려 쳐다보는 것. 나처럼 오래 바라보지 않는다. "새네, 뭐 새야?" 폰카까지 꺼내 들고 고개를 쳐들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 2, 3... 연이어 한 번씩 멈췄다 사라진다. 뭐라도 보여줘, 하는 마음으로 카메라 초점 맞추고 있었더니 홰를 한 번 쳐주는 서비스 한 번 해주었다. 자리 털고 일어나 날아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고자 비디오 모드로 기다렸다. 꼭 그렇지.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자리에서 떴다. 자리 뜨는 바로 그 장면을 담고 싶었는데. 바로 그 순간은 놓쳤고 멀리 날아가는 뒷모습을 길게 잡았다.
새가 좋다. 들풀이 좋고 나무도 좋지만 새가 참 좋은 건 이것이다. 찰나로 다가오는 만남. 제 멋대로 찾아와 잠깐 마음을 맞추고 이내 사라지는 기쁨. 영원한 것, 영원한 분은 유일하니 지금 여기의 찰나만 충분히 누리라 일깨우는 천상의 편지이다. 어제와 내일이라는 환상을 떨치고 지금 여기만 살라는 메시지이다. 나는 새를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 1, 2, 3...도 새를 보았다. 하지만 내가 본 그 새를 본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본 새를 보았다면 그렇게 지나치진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순간이다. 나와 새만의 시간이고 기쁨이다. 예기치 않은 기쁨이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더욱 요리에 진심을 다하게 되었다. 요리에 진심을 다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귀찮다. 그냥 진심을 다한다. 그냥 진심이다. 날이 추워졌고, 이불 밖 냉기 때문에 일어나기 싫을 때는 뜨근한 사골국이다. 사골 반, 잡뼈 반, 그리고 냉동 홍두깨살 한 덩이를 사서 밤새 핏물을 뺐다. 통 양파와 엄청난 양의 통마늘을 넣고 밤새 끓였다. 이틀 밤을 갈아 넣었으니 진심이 아닌가. 한 번 끓여 덜어내고 고기 한 덩이까지 넣어 끓인 두 번째 궁물은, 그렇다 궁물이다. 이건 국물이 아니다. 그야말로 끝내준다. 이제 굵은 사골들 물기 빼서 냉동실에 얼린다. 어느 추운 아침에 사골 우거짓국이 될 것이다. 요리에 진심이다.
국그릇에 뜨거운 국물 부었다 쏟아 먼저 그릇을 데운다. 건져서 따로 찢어 놓은 고기를 끓는 국물에 한 번 집어 넣었다 꺼내 그릇에 담고, 국물은 다시 펄펄 끓인 후에 뜬다. (이 모든 것은 온도를 위한 진심이다.) 그 위에 파를 한 주먹 넣는다. 그 상태로 간도 하지 않고 한 국물 떠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알았다. 엄마구나! 엄마를 느끼고 싶어서 사골을 끓였구나. 춥고 피곤해서 일어나기도 싫은 날, 겨울이 시작되는 그런 때였다. 학교, 아 학교 가기 싫은 날, 싫어도 너무 싫은 날. 겨울을 싫어하니 나만의 체감온도는 항상 더 낮다. 낮고 낮다. 춥고 추웠다. 그렇게 추운 날 아침 기름 동동 뜬 사골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낮고 낮았던 체온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아, 나는 파를 안 먹어서 일단 파를 듬뿍 넣고 향을 낸 다음 죄 건져내고 먹었다. 진심 담은 사골국은 엄마 맛이다. 학교 갈 힘이 났다.
엄마 돌아가시고 흑백 세상이었던 시절, 그런 터무니 없는 결심을 했었다. "아이들과 남편과 행복한 일을 만들지 말자. 나만이 할 수 있는 요리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말자." 함께 했던 시간의 행복을 그대로 고통으로 견디는 상실의 시간 속이었다. 엄마와 함께 했던 좋았던 기억이 하나하나의 고통이어서 그랬다.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지고 없을 때, 우리 아이들은 내가 한 음식과 나만의 유머와 나와 나눴던 대화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비합리적 판단과 결심은 슬픔의 강을 건너며 당연히 사라졌다. 대신 '진심'이 남았다. 요리에 진심이 되었다. 순간순간의 진심을 사는 일 밖에는 없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진심을 담아도 진심이 통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선 빨리 포기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포장 배달 음식도 많이 먹는다. 많은 날 냉장고가 비어 있고, 라면과 짜파게티도 많이 멕인다. 그것들도 진심이다. 그만큼의 진심이다. 그리고 진심의 전염성.
이런 진심1
사골 우리는 냄새가 집안에 진동. 엄마, 내일 아침에 사골국 먹을 수 있어? 오, 나 일찍 일어나야지! 했던 현승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나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나 사랑하는 잠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사골국이라니. 너 정말 먹는 것이 진심이구나. "캬아아아아...." 첫술에 내뱉는 아저씨 리액션, 이것이 이 아이의 진심이다.
이런 진심2
트레이더스 양념불고기를 그냥 먹기가 뭐해서 불고기 전골을 하려 했다. 조금 색다르게 해 볼까? 스끼야끼를 검색하니 그까이거 때충 야채 넣고 끓여서 계란 노른자에 찍어 먹으면 되는 것이네. 되는대로 담다가 남비를 툭 건드렸는데 빙그르르 돌아간다. 옆에 있던 채윤이의 "오!" 하는 탄성에 바로 카메라 꺼내 들었다. 이건 촬영각이지. 촬영을 도우며 알짱거리는 채윤이가 자꾸 "엄마, 고기가 너무 적은 거 아냐? 양이 좀 적은 것 같은데..."라고 했다. 나는 사실 요리도 요리지만 촬영에는 더 많이 진심이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대로 가스렌지에 올리고 불을 켜는데 냉장고에 넣으려던 양념 불고기 든 락앤락통을 들고 채윤이가 말했다. "엄마, 나 이건 그냥 식탁에 내 옆에 두고 스끼야끼 먹으면 안 돼?" 안심하고 먹고 싶다는 것이다. 모자라지 않다, 얼마든지 고기를 더 먹을 수 있다! 이런 안심. 아, 또 양으로 승부하는 이 아이의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