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까지는 아니라도 아주 많은 부분이 다르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각자 책을 사랑하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니 함께 다니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함께 다니되 각자 읽고, 또 나란히 걷되 각자 걸을 수 있기에 독립적이지만 외롭지는 않은 시간이 된달까.

여행지에 가면 독립서점 찾는 일도 즐겁다. 내 알라딘의 알고리즘으로는 만날 수 없는 책을 만나는 기쁨이 있다. 작은 서점들은 흔히 주인의 취향이 꽉꽉 채워져 있는데, 목포에서 만난 책방 주인은 미술에 조예가 있는 분인가 싶다. 고흐, 에곤 쉴레에 마음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살 책이 있지는 않겠다 싶었는데. 웬걸.  내 알리딘 알고리즘 밖의 좋은 책들이 한둘이 아니고. 에릭 프롬의 미발간 작품집을 만나서 여행 내내 맛있게 읽었다. 취향이 뚜렷한, 취향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참 좋아 보인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과 교차할 때 예기치 못한 책을 만나고 기쁨을 만난다. 자기로 사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다.  

아침에 서점에 들러 산 책을 가방에 넣고 하루 종일 걷는데, 등 뒤 가방에서 아우성이 들렸다. 읽어줘, 읽어줘, 나 좀 읽어줘. 춥고 어스름한 저녁 시간에 들어간 카페도 꾸민 이의 정체성을 바로 알겠는 멋진 곳이었다. 구석구석 테이블과 의자 배치며 장식들이 정성스러워서 앉고 싶은 자리가 한둘이 아니었다. 읽고 읽고 또 읽을 삶을 돕고 격려하는, 자기로 사는 이들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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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둘이 하는 기차여행이다. 아이들 어릴 적에 정선 가는 무궁화호를 함께 타본 적이 있고. 둘이서 타는 기차는 처음이라니! SRT 역은 이른 아침 막막한 기분으로 혼자 다니던 곳이다. 먼 곳에 강의하러 갈 때 혼자 타곤 했던 ktx를 JP와 함께, 그것도 훌훌 떠나는 여행이라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낯선 경험은 선뜻 이름이 붙여지지 않는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출발했다.

 

작년 목포 여행의 아쉬움 때문이다. 작년 1월, 아이들과 함께 갔던 목포에서 말이다. 유달산을 걷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바람이 심했다. 아이들은 안 그래도 걷는 건 힘든 일인데 바람까지 부니 "차에 있으면 안 돼?" 이게 버튼 누르면 나오는 말이었다. "그래, 차에 가 있어." 하고는 바람을 맞으면 몇 걸음 올라보는 유달산, 바위산 유달산의 매력이란! "다음에 따뜻한 날에 둘이서 꼭 오자." 약속을 하고 내려왔던 기억이다. 1년 묵은 아쉬움으로 다시 찾은 유달산이다. 

원 없이 걸었다. 일등봉, 이등봉을 정복했고, 그것도 아쉬워 둘레길을 걸었다. 바위를 타고 올랐고, 오솔길을 걸었다. JP는 정말 든든한 가이드이다. 안 가본 길을 더듬어 행로를 정하는 데 탁월하고, 거기가 산이라면 그 탁월함에 더욱 빛을 발한다. 평지를 걷는 일은 나 혼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구글 지도만 있으면 낯선 곳 어디든 걷다 집을 찾을 수 있다. 산에는 취약하다. 오르고 기고 걸을 수는 있지만 도통 길이 가늠되지 않는다. JP가 잘 이끈다. JP 안내하는 길을 따라 유달산 일등봉, 이등봉을 정복했다.

MBTI로 정반대 유형, 에니어그램으로도 그렇다. 누가 봐도 성격이 다른데, 몇 가지가 참 잘 맞아 다행이다. 그 중 갈수록 좋은 것은 '걷기' 사랑이다. 언제든, 어디든 걸을 수 있는 곳은 그냥 걷기! 첫날은 유달산을, 이튿날은 케이블카를 타고 고하도로 들어가 해안 데크길을 걸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섬 안쪽의 산길도 꾹꾹 밟아주고.

 

난생처음 차를 놓고 ktx를 선택했더니 새로운 기쁨과 만족감을 만났다.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8

 

 

선생님께서는 지하주차장에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여러 일이 몰려 있는 날이라 몸도 마음도 분주하다. 함께 확인하고 보낼 선생님의 원고 마감날이기도 하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아침에 원고를 가져다드리고 확인하시는 사이 다른 일을 보기로 했다. 아이를 태워 현장학습 장소에 데려다주는 일이다. 복잡한 일정으로 아이도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라 잠깐이지만 낯선 어른 마주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내려오시기 전에 엄마가 빨리 올라가라며 압박하고 투덜거렸다. 나도 그게 편한데, 굳이 내려오시겠다니 말이다. 벌써 내려오셔서 엘리베이터 현관 앞에 환하게 웃으며 서 계셨다. “어이구, 잘 생긴 아들이구만. 모르는 할머니가 나타나서 주책이지? 만나보고 싶었어. 악수 한 번 할까.” 벌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모르는 아들 녀석 인상을 보니 이제 타박 들을 일만 남았구나! 바쁜 척 서둘러 인사 의례를 마무리하고 다시 출발했다. 사춘기 막바지 낯가림 최강자 아들의 불평불만 세례를 각오하고.

 

그런데 교수님인데 왜 그냥 할머니 같애?” 의외의 순순한 말투로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며 아이가 하는 말이다. “그래? 교수님이라도 할머니는 할머니시지. 연세가 있으신데.” “아니, 뭐 교수님 같지가 않고 그냥 착한 할머니 같애. 할머니들은 둘 중 하나거든. 착한 할머니이거나 진짜 싫은 할머니이거나. 엄마가 왜 교수님을 좋아하는지 알겠어.” 사람에 관심이 많고 직관적인 아이이긴 하지만, 자식! 별 걸 다 알아채는군! 아이에게 최 선생님에 관한 얘기를 별로 한 적이 없는데. 차라리 최 선생님께는 아이들 얘기를 하는 편이다. 워낙 이런저런 걸 많이 물어보시고 한 번 들었던 얘기는 잊지 않고 다시 물어주시니. 사춘기 막바지에 있는 아이에 대한 걱정을 많이 늘어놓았던 것 같다. “엄마, 그리고... 아까 교수님이 악수할 때 돈 주셨어.” 아이 손에 지폐가 들려져 있다. , 용돈 주시려고 부러 내려오셨구나! , 그래서 니 마음이 녹았구나! 어쨌든 부드러워진 아이 목소리에 나도 한결 편한 마음으로 다시 선생님께 갔다.

 

나눠줄 줄 아는 호감 노인

 

아이가 정 선생을 꼭 닮았네. 사람 바라보는 눈빛이 꼭 정 선생이야. 시 쓰고 철학 한다는 그 아들이죠? 그러게 생겼네.

 

아유, 선생님. 그건 옛날 어릴 적 얘기예요. 지금은 외제 차, 명품 운동화에나 관심 있는 그냥 그런 애예요. 어떻게 해야 돈 많이 벌어서 그런 걸 살 수 있는지, 최대 관심사라니까요. 에휴, 정말 꼴 보기 싫고... 걱정이에요. 아참, 선생님 무슨 용돈을 그렇게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일부러 내려오셨군요.

 

돈 좋아하는 친구에게 어필이 됐겠네. 하하. 명품 운동화는 얼마를 줘야 사는 거야? 명품 운동화 하나 사주면 잘생긴 아들내미한테 인기를 얻겠구만.

 

그놈의 운동화 소리 듣기도 싫어요. 아닌 게 아니라 용돈 덕인지 선생님 아주 점수를 제대로 따셨어요. 아이 어릴 적에 제가 풀타임으로 일했잖아요. 시부모님이 육아 도와주셨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커서 남다른 마음이 있어요. 노인들을 좀 친근하게 느낀달까, 따스하게 바라보거든요. 그런데 사춘기 되면서 교회나 밖에서 만나는 어떤 노인들 모습을 지나치게 싫어하더라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무례한 노인들을 보면 견딜 수가 없대요. 저는 그게 애정과 연민이라는 것을 알겠어요. 제 할머니, 특히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거든요. 아무튼, 그 과한 감정이 늘 걱정이긴 한데, 잠깐 뵈었는데도 선생님이 참 좋은가 봐요. 선생님 앞에 두고 이런 말씀 드리니까 오글거린다. 용돈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요. 히히. 어이구, 죄송합니다.

 

죄송은? 기분 좋구먼. 사람 마음 얻기가 쉬운 일인가? 돈 몇만 원으로 청소년 마음을 얻었으면 보통 이문을 본 게 아닌데! 역시나 노인네가 할 일은 돈 내놓는 일이야. 하하.

 

처음 만남이 생각났다. 종강 날 식사 자리에서 들었던 선생님의 혼잣말. 그날 식사를 선생님께서 사겠다고 하셨다. 어느 발 빠른 사람이 나서서 계산을 하자 이 사람들, 노인 배려 없네. 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밥 사는 거밖에 없는데. 그걸 빼앗네.” 무력한 받아들임으로 들렸고, 진심으로 섭섭해하시는 것이 느껴졌었다. 그 말에 이끌렸고 오늘의 이런 관계가 된 것이다. 선생님은 부자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부자 같다. 이런 집에 사시는 것만 봐도. 돈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꼭 노인이 아니라도 남을 위해 기꺼이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이제 나도 마냥 받아먹을 나이가 아니다. 배움도 삶도 먹을 것도 말이다. 나눠줘야 하는 중년, 중견 사람이다. 후배들 만나면 후하게 밥을 사고 싶고, 넉넉하게 나누고 싶지만, 현실 재정이 늘 발목을 잡는다. 지인들의 장례식이나 결혼식은 마음을 같이 하여 위로하고 축하할 일이 아닌가. 그것을 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조의금과 축의금이고. 마음은 넉넉한데 현실 재정으로 손이 떨릴 때 조금 비참한 심정이 된다. 가족들 몸 어디가 아프면 몸 걱정이 아니라 병원비 걱정으로 먼저 마음이 무거울 때도 그렇다. 선생님처럼 넉넉히 내놓을 수 있는 돈이 있다면 나도 멋진 노인, 호감 노인이 될 수 있을까? 돈 걱정 없는 노년이 가능할까? 내 생각을 읽기라고 하셨나?

 

재산이 갈수록 적어지면 좋겠어

 

, 나 이사해요. 주인이 집을 팔았다고 나가라네. 시간은 넉넉히 준다니 알아봐야지.  

 

어머, 선생님 댁이 아니었어요? 전세였었나요?

 

, 나 집 없어. 허허. 전세예요. 남의 집 살이야.

 

아휴, 이사가 보통 일이 아닌데. 힘드셔서 어떡해요?

 

내가 크게 힘든 것은 없어요. 아들이 알아서 해주는데... 아들한테 미안하죠. 선생님은 이사를 많이 해봤어?

 

저요? 저는 정말 평균 2년에 한 번 이사예요. 전세를 살아도 한 집에 오래 살기도 하던데요. 저는 유난히 그게 잘 안 맞아요. 워낙 또 전세가 따라잡을 수 없이 오르기도 하니까요. 저 2년을 주기로 계속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어요. 선생님.

     

아유, 그렇구나! 고생이지 그거. 암튼 여기서 멀리 가진 않을 거니까 이사 가도 자주 와야 해.

 

그럼요! 선생님, 원고 교정한 것 좀 보셨어요?

 

전세니 자가 소유 주택이니, 아파트 평수가 어떻고 시세가 어떠니 하는 것에 어두운 편이다. 어두운 편이지만 신경이 안 쓰이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친구들 모임 같은 데 가면 대부분 자기 집은 가지고 있고, 집도 한 채가 아닌 경우도 많으니까. “나 이번에 또 이사해.” “, 나 거기 안 살아. 이사했는데. 전세가 너무 올라서.”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경우 뭐랄까 조금 위축된달까.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헌데 선생님은 왜 전세를 사실까? 쓸데없는 궁금증이 생기는데, 그야말로 쓸데없는 궁금증이니 차라리 말을 돌려버렸다. 말을 돌렸더니 선생님이 다시 유턴을 시키시네.

 

, 교정이야 어련히 알아서 잘 봐줬겠어. 그나저나 지금 집에서 계약은 얼마 남았길래? 전세가 또 올랐을 것 아니유? 아들이 집을 알아보는데 이 아파트도 그새 어마어마하게 올랐다고 하더라고. 집 없는 사람들 서러워서 어떻게 살아? 선생님도 남편도 공부하고 애 키우고 하느라 집 장만하는데 신경을 못 썼구나.

 

네, 선생님. 사실 재주도 없어요. 주택 청약을 해라, 뭘 어떻게 해라. 주변에 또 부동산 전문가가 한둘인가요? 훈수들 두고 걱정도 하는데, 도통 그쪽으론 몰라요. 관심도 없고요. 그러려니 하며 살아요. 이사할 때가 되면 또 상황에 맞는 적당한 집 찾아 이사하고, 새로운 동네에 좋은 점 발견하며 살고... 이제 뭐 익숙한데요. 아이들 크고 저도 나이를 먹으니 조금씩 더 걱정이 되긴 하더라고요. 이 나이에 뭘 하고 산 건가 싶기도 하고요.

 

뭘 하긴? 정말 중요한 것을 하며 잘 산 것 같은데. 불안하긴 하죠. 괜히 의식주가 아니라 인간이 사는 일에 바탕인데. 하이고, 이번 집에서는 이사 안 가고 더 살면 좋겠다. 그래도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아드님이 알아서 해준다고 해도, 신경을 안 쓰실 수 없잖아요. 변화를 좋아하시니까 괜찮으신가요?

     

왜 신경이 안 쓰여? 일단 아들한테 미안하지. 나도 젊어서부터 선생님처럼 집 사고 재산 불리고, 이런 것에 젬병이었어요. 남편이 좀 알아서 하긴 했는데, 남편 떠나고는 뭐 그저 일하면서 근근이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벅찼지. 그래도 낙천적인 성격이라 크게 걱정은 안 해요.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쓴다는 생각이니까. 살던 집은 하나 있었는데, 상담실과 주거 공간을 합치면서 팔았어요. 저쪽에서 상담하고 건너와 살림하는 이런 집이 딱 좋더라고. 전세로 들어와서 이러고 살고 있어요. 그때 아들이 사는 게 좋다고 했는데 그러고 싶질 않더라고. 내 이름으로 된 재산이 갈수록 적어졌으면 좋겠다 싶었거든. 죽은 다음에 뭐든 남지 않았으면 싶고.

 

어머, 선생님. 재산이 적어졌으면 좋으시겠다고요?

 

아니 아니이, 욕심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배부른 소리로 들리겠다. 그냥 나이 들어 가볍게 살고 싶단 말이유. 이상이지, 이상! 실수였어. 그때 샀어야 했대. 이번에 이사하려고 보니까 상황이 어렵대. 내가 척척 해결할 수 있으면 괜찮은데 아들 고생 시키게 되어 미안하지.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거야.

 

후후, 대략 알겠어요. 어떤 마음이실지. 그런데 선생님은 친구분들과 비교하거나 그렇게는 안 되세요? 연세 드시면 그런 마음도 없어지실까요?

 

아이고, 연세 드셔도 사람 마음 다 똑같습니다. 평생 하던 비교심이 어디로 가? 노인네들이 하찮은 것으로 비교하고 자랑질하고 더 그러지. 내 친구들이 다 잘 살아요. 잘 살아도 보통 잘 사는 부인네들이 아니지. 한참 때만큼은 아니지만 부동산이고 뭐고 아직도 다 통이야.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돈으로 감을 놔라 배를 놔라들 하지. 내가 안 들어먹으니까 별종 친구로 내놨어요. 한때 젊을 때는 관심사가 달라서 불편하기도 했었고, 마음으로 밀어내기도 했었는데... 돈이 좋은 건 사실이잖우. 안 그래? 돈 많으면 좋지 뭐. ? 잘 사는 친구들 부러워요? 은근히 자랑하고 그러나?

 

그런 친구들은 없어요. 제가 없으니까 자격지심이죠. 혼자 비교하고 꿀꿀하고 그렇죠, 뭐. 사실 그렇게 부럽진 않거든요. 돈이 많다고 행복해 보이진 않으니까요. 그런데 어쩌지 못하는 위축감이 있어요. 집도 그렇고 저는 특히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지점으로 가면 많이 우울하더라고요. 아까 보신 아들놈만 해도 어릴 적엔 제가 가장 행복한 줄 알더니만요. 경제력으로 충분히 지원받는 친구들하고 비교를 하는 거예요. 왜 아니겠어요? 저도 눈이 있어서 다 보이는데... 벌써 돈에 민감하더라고요. 제가 준 결핍감으로 아이를 망치는 것 아닌가 싶고. 실질적으로 요즘은 성적도 비싼 학원 값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저와 남편은 정말 무능한 부모거든요. 마음이 좀 아프죠.

 

그래, 부모 마음이 그렇지. 어이구, 정 선생도 엄마구나! 그렇지, 엄마지. (따뜻하게 등을 쓰다듬어 주신다.) 돈이 참 그래. 내 친구들 말이유. 돈이 많은 건 좋아. 대부분 신자들이거든. 다들 기도하며 부동산하고, 기도하며 아이들 좋은 학원 보내서 일류대 보내고 유학 보내고 그랬어. 그런 거 잘 되는 게 다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하거든. 그럼, 하나님이 주셨겠지 뭐. 그런데 돈이 많은 것까진 좋은데, 그게 참 희한하단 말이지. 가만 보면 돈을 지키려고 사는 것 같아요. 정치고 뭐고 결국 모든 일의 판단 근거가 부동산이야. 아파트값 떨어지냐 마냐가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 같거든. 그것도 좋다 쳐. 그러다 보니까 정말 없이 사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어요. 나는 그게 희한하단 말이지. 나는 신앙이 나이롱이긴 하지만.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온통 마음 쓰신 것 같거든. 이 친구들 나보다 믿음도 뜨겁고 내가 따라가질 못한 신자들이에요. 돈이 많은 건 문제가 아닌데, 돈이 많은데 마음을 맑게 비우고 사는 일이 어렵구나 싶은 거야. 나도 사실 거기서 크게 다른 족속은 아닙니다만.

 

선생님은 혹시 어릴 때나 젊을 때 어렵게 사신 적이 있으세요?

 

? 대단한 부자는 아니었지만, 고생 없이 컸어요. 부모님 잘 만나서 하고 싶은 공부 다 했고, 결혼하고도 큰 부를 누린 적은 없지만 크게 고생한 것도 없지. 그래서 내가 교만했고, 그러다 큰코 다친 거예요. 그게 다 내 잘난 탓인 줄 알았지. 그런 게 다 자랑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아요.

 

선생님의 회심 지점인 것 같다. 50대에 겪으신 상실의 경험, 남편과 부모님을 비슷한 시기에 잃으셨던 그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남다른 통찰과 지혜, 깊이는 늘 그 경험과 닿곤 한다. 고난을 겪는 모든 사람이 성찰의 길로 들어서진 않을 텐데, 다시금 머리가 조아려진다.

 

돈 없이 사는 게 내 십자가인가

 

선생님, 저는 넉넉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요. 공부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 잘하고 그러면 언젠가 한 번 복을 받겠지, 했어요. 보상을 해주시겠지... 하하. 그게 안 되나 봐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봐요. 돈 없이 사는 게 내 십자가인가? 그런 생각도 해보거든요. 돈 걱정 없는 사람들은 도대체 평소 무슨 걱정을 하고 살까, 쓸데없는 남의 걱정을 해요. 공부할 때 특히 그랬거든요. 저는 장학금 받아야 한다는 생각, 그러니까 학비 걱정 아니었으면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었을까 싶어요. 헤헤, 해보는 소리예요. 제가 안 살아본 삶이니까요.

 

안 살아본 삶이라... 그렇지. 살아보지 않은 삶은 모르는 거야 정말. 내가 은퇴하고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평생 교수 이름값으로 비싼 상담 했거든. 받을 만큼 받았고 누릴 만큼 누렸으니 다르게 살아야겠다 마음을 먹었어요. 지금은 내가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되돌려준다는 마음으로 상담해요.

 

선생님, 그러면 상담비를 도대체 얼마 받으세요? 전부터 궁금했는데... 무료 상담은 아니시잖아요.

 

그렇지. 무료는 아니지.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며? 돈 가는 곳에 마음 가는 것이니 마음을 가져와서 상담받으려면 돈을 내야 해. 주님께서 딱 간파하신 것 같아요. 상담비는 천차만별이야. 내가 정하지 않고 내담자가 정해요. 낼 수 있는 만큼 정하게 해. 물론 기준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와, 그럴 수가 있군요. 멋져요, 선생님.

 

멋진 일이 아니고. 내가 그러면서 안 살아본 삶을 배운다니까. 현직에 있으며 상담할 때는 아무래도 비싼 상담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만나지 않았겠어요? 지금같이 하다 보니 알음알음 오는 사람들이 다른 거예요. 정말 상담 개입이 필요한데 돈 때문에 접근이 불가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는 거야. 평생 상담하고 살았지만, 사람을 새로 배운다는 느낌이에요. 돈이 절대적으로 없어서 어려운 삶을 나는 모르는구나, 싶은 거예요. 그런데 분명한 건, 그래요. 돈이 없어서 오히려 행복을 아는 사람은 있는데, 돈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못 찾겠습디다. 이런 일이 있었다우. 재산을 많이 남기고 남편이 먼저 간 친구가 있어. 갑자기 돌아가셔서 재산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지. 자녀들이 유산 문제로 싸우기 시작하는데, 깊어지는 골을 어떻게 할 수가 없겠더라고. 친구는 남편 잃은 슬픔보다 살아있는 자녀들 잃는 고통이 더 컸을 것 같아. 문제는 그걸 지켜본 다른 친구들이 우리는 저러지 말자, 돈 다 쓰고 죽자, 사회 환원을 하자, 하며 반면교사 삼는가 싶더니 금세 잊어요. 돈 지키느라 또 전전긍긍이에요. 돈 많다고 돈 걱정 없는 노년을 사는 건 아니야. 하긴 돈이 좋지. 내가 그 어렵다는 사춘기 아들내미 마음도 샀잖아. 조금 전에. 하하.

 

그러네요, 선생님. 돈의 위력이 장난 아니네요. 그놈 아주 까칠하고 사람 보는 눈이 높은 앤데. 그 애 마음을 사셨네요.

 

그러니까 말야. 얘기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에고, 선생님. 이 연세에 집도 없으시고... 방 빼야 하시고... 어쩌신대요? 헤헤헤. 저랑 처지가 비슷하세요.

 

그러게나 말이오! 하하하. (웃음을 멈추고 한참을 말없이 나를 바라보신다.) 정 선생, 사는 게 힘들지? 그래도 난 정 선생이 행복해 보여. 살아보니 인생에서 끝까지 해결 안 되는 문제가 다들 하나씩 있더라. 정 선생은 자기 십자가라고 했나? 그 십자가 지고도 잘 사는 것 같아 나는 부러워요. 빈말 아니야. 내가 간간이 듣는 정 선생 가정 얘기, 일하고 신앙생활 하는 얘기 들으면 나도 젊어서부터 좀 저렇게 살 걸 싶거든. 속에 있는 말 하는 거예요. 그렇게 살면 됐지. 돈 걱정 없이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

 

얘기가 정말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 왔을까. 내가 솔직한 편이고 약점을 내 입으로 까발리는 그런 성격이지만 돈에 관한 한 수치심이 크다. 불쌍해 보일까, 취약해 보일까 돈에 연연하지 않은 척을 잘한다. 가난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선 더더욱 괜찮은 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어쩌다 선생님께 이런 얘기를 다 하게 되었을까. 털어놓고 보니 부끄러울 것도 없는 것 같고. 가난하면 얼마나 가난한가. 내 십자가니 뭐니 하는 말도 결국 자기 연민이며 욕망의 다른 표현일 때가 많다. 마음이 복잡하다. 복잡한데 가볍고, 뭔가 위안이 넘실대는 것 같기도 하다. 밥 잘 사주는 예쁜 할머니, 용돈 잘 주는 착한 할머니. 나도 그런 거 하고 싶다. 그게 못할 게 뭐야? 밥 한 끼 사주고, 용돈 몇만 원 쥐어 줄 돈이 내게 없냐고? 있네. 하면 되겠네.

 

오지 않은 노년의 돈 걱정이 아니라, 오늘 여기서 돈 걱정 없이 사는 삶을 고민해야 할 일이다. 돈 걱정이 돈의 많고 적음에서 오는 것 같지가 않으니 말이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오늘 분량의 기쁨과 행복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돈 걱정 없는 인생이겠구나. 홍순관의 노래 한 소절이 마음에서 툭 올라온다. “죽음이 나를 털려 할 때에 빈주머니 내놓고 돌아가자 아버지 계신 그 집으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에 공명하는 노래이다. “내 이름으로 된 재산이 갈수록 적어졌으면 좋겠다 싶었거든. 죽은 다음에 뭐든 남지 않았으면 싶고.” 돈 걱정으로 자주 위축되고 자주 믿음이 흔들리는 내 마음에 심긴 한 말씀이다.

 

<시니어 매일성경> 3,4월 호 

여가 사랑하는

여행의 추억은 책 한 권의 추억이다. 여행 며칠 입을 옷을 구색 맞춰 챙기는 것은 조금 귀찮지만 설레는 일이다. 귀찮지도 않으면서 그보다 더 설레는 것은 여행 중 읽을 책 한 권을 고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보다 짜릿한 것은 여행지 어느 서점에 불쑥 들어가 충동적으로 고른 책과의 만남. 1월 경주 여행 중 황리단길의 작은 책방에서 <오즈의 마법사>를 샀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는 마음속 책 리스트는 날이 갈수록 길어지는데. 그중 하나다. 모든 만남이 그러하듯, 책 한 권을 만나는 일도 여사로 여길 일이 아니다. 마음에 찰랑거리는 그 주제가 어떤 책을 불러들이는 것 아닌가 싶다.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던 이유는 주인공의 넷의 심경을 자주 떠올리기 때문이겠고. 오즈를 향하는 네 개의 절실함을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도로시, 두뇌를 가지고 싶은 허수아비, 심장을 원하는 양철나무꾼과 용기가 필요한 사자는 오즈로 가는 노란 길에 오르지 않을 수 없는 절실한 갈망의 소유자들이다.

 

갈망은 결핍감에서 비롯한다. 이 여행은 내적 결핍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여행, 일종의 성배 신화일 지 모르겠다. 무언가 치명적으로 결핍되었다 느끼는 '결핍감'의 존재들의 찾고자 하는 갈망의 여정이다. 지혜와 좋은 생각의 소유자로 여행에서 만나는 문제마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허수아비가 없는 것이 '뇌'라니. 심장을 잃어버렸다는 양철나무꾼은 사랑과 연민의 존재이다. 기쁨과 슬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느낄 줄 아는 인물이다. 사자 역시 '없다는 느낌'에 매여 있을 뿐 필요할 때 빛을 발하는 용기 이미 가진 것이다. 여행단의 리더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란 길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여정이다. 내가 그러하듯, 영적 여정을 걷는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집을 향한 그리움이 이끄는 여행이다. 집을 잃었다는 느낌, 그 결핍감.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사자는 도로시 안의 결핍감의 총체 인지 모르겠다. 힘(용기), 사랑, 지성은 에니어그램 3 중심(장, 가슴, 머리)의 결핍과 그대로 포개진다. 결핍감으로 고착되어 그것만 발달시키게 되어 장형, 가슴형, 머리형으로만 사는 인간이다.

 

<오즈의 마법사>를 만난 경주 여행은 결핍감의 소산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가지 않아서 생긴 구멍을 메우려 가고 또 가고 또 가게 되는 것 같다. 주일 끼어서 가는 수학여행 일정이라 '주일 성수' 하겠다고 않았다. <신앙 사춘기>에서 썼고, 그 이후 강의에서 (지난주 금요일 중쇄 기념 강연에서도) 여러 번 떠들었으니 구구절절 내용은 생략하기로 하고. 여하튼 이번이 세 번째다. 불국사 앞에서 찍은 반 친구들 사진에 내가 없다는 느낌 그 결핍감으로 갈 때마다 찍어서 얻게 된 '세월 담은 가족사진'이다. 결핍, 결핍감에 대해 생각한다. 자기 결핍감을 인식하고 마주하는 태도가 한 존재를 어디로 이끌어 가는지 많이 생각한다. 어떤 결핍은 파괴적인 중독에 닿고, 어떤 결핍은 자기 안에 이미 존재하는 힘과 사랑과 지혜를 발견하여 자기 자신이 되게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노란 길로 이끌게 되는지. 결핍, 결핍감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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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식사. 샌드위치 하려고 재료 준비해놨는데. 아, 재료 준비시켜놨는데. 계란이 없는 것이다. '장보기' 기능이 너무나 안 되는 종필 덕분이다. 찌개용 돼지고기, 호박 한 개, 계란 한 판. 분명 내 주문은 그거였는데. 계란 없는 샌드위치가 불가능한 건 아닌데. 현승이가 계란 맛에 빵 먹는 애라. 어떡하지? 어떡할까? 하다 파니니가 창조되었다. 귀여운 와플 기계를 사서 냉동 크로와상 생지 쟁여놓고 크로플 꽤 만들어 먹었다. 함께 들어있는 파니니용 팬은 꿀호떡 구워 먹는 데만 썼고. 오, 파니를 할 수도 있잖아! 해봤다. 성공이다. 계란이 없어서 처음으로 파니니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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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어렸을 적, 아마도 현승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당시 교회 가정교회 카페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을 부러움 가득 안고 바라본 기억이 있다. 안갯속에 싸인 미시령의 어느 길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와하, 나는 언제쯤? 우리는 언제쯤?"이 내가 붙인 사진 제목이었다. 그 당시 가정교회 목짠님이셨던 서쉐석 목짠님이 가족 여행 중 올려주신 사진이었고. 둘째 출산으로 다시 시작한 밤중 수유로 인간답게 사는 날이 아득하게 여겨졌던 시절이니. 아이들 데리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다다를 수 없는 행복처럼 느껴졌다. 그랬었다. 서목짠님 부부와 미사 강변을 걸었다. 살짝 비가 뿌리는 날씨였지만, 비 따위가 우리의 '걷기 사랑'을 막을 수 없지! 우산을 쓰고 이 얘기 저 얘기 천천히 걷는 길에 만난 안개 싸인 예봉산 풍경이다. 여기서 그때 그 미시령 사진이 생각났다. 꼽아보니 벌써 20년 전이다. 

 

서목짠님 부부는 20년 넘게 우리 부부 앞에서 서너 걸음을 사이에 두고 걸어주셨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리도 제 발로 걷는 두 아이 데리고 미시령을 넘어 가족 여행을 갔고. 졸졸졸 뒤를 따라 생의 고개들을 넘었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고, 대학을 준비하고, 성인이 되어 자기 길을 찾아가는 것을 딱 서너 걸음 뒤에서 지켜보았다. 자라는 아이들이 부모와 겪는 갈등을, 중년에 오는 마음의 어려움을, 연로한 부모님을 돌보는 일의 지난함을, 그러다 떠나보내드리는 것을... 딱 서너 걸음 뒤에서 지켜보며, 딱 그 길을 따라 살고 있다. 강변을 걷고 댁으로 가 함께 식사를 하는데, 모처럼 g와 g의 동생 G(쥐쥐쥐지 베이베...) 두 아이(가 아니라 성인인데...)가 다 집에 있었다. 아직 내게는 초등학생 중학생 같기도, 대학생 같기도 한 g와 G 남매가 새삼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각각 자기 빛깔로 자기다움을 살아내는 것이 부럽고 자랑스러웠다.  

 

수영을 배우면서 돌파되지 않는 지점을 뚫어주는 가르침은 코치가 아니라 늘 한 레인 위의 형님이 주셨다. 그저 자기 수영을 열심히 하시는 어느 형님. 인생길 수많은 만남으로 배우고 사랑받으며 걷고 있다. 서너 걸음 앞의 서목짠님 부부는 묵묵히 자기 수영을 하시는, 그러다 가끔 만나 우리 이야기를 하염없이 들어주시는, 그러다 다시 우리 앞에서 서너 걸음 앞의 삶을 살며 가르침 주는 윗 레인 형님같은 분들이다. 갈수록 더 감사한 만남이다. 성인 초입에 들어선 채윤이와 현승이를 키우는 일은(이젠 키워지지도 않지만) 밤중 수유 때와는 또 다른 막막함이다. g와 G 남매가 나란히 서서 설거지하는 뒷모습을 참 좋아 보였는데, 우리 집에서도 익숙한 남매의 뒤태였다. 채윤과 현승의 서너 걸음 앞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g와 G를 보고 와서 어떤 좋은 마음이 무르익고 있다. 그 좋은 마음이 조금씩 염려를 먹어 치우고 있다. 이날 먹은 g가 제주에서 산지 직배송으로 주문한 대방어는 최고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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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일을 하고 있지만, 나를 나되게 하는 의미 있는 일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새롭게 확인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꿈과 영성생활을 6주에 12주로 늘리고, 새로운 강의안을 만들며 겨울을 보냈다. 고되고 했지만 강의의 첫 번째 수강자가 나였고, 누구보다 나를 붙들어줘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강의가 나를 지켜준 것이 아니라 함께 한 사람들의 자발적 내놓음이 서로를 지켜주는 것 같다.

작년 대림절과 함께 시작하여 사순을 코앞에 두고 마쳐다. 12주, 6명, 11개의 꿈과 일상 안에 생명과 죽음의 신비, 변화와 연결의 체험이 묘하게 교차하였다. 어렵게 생명을 품은 엄마, 시어머니를 천국에 보내드린 며느리, 그리고 젊은 날의 영적 권위자들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떠나보낸 이야기... 그 모든 이야기는 그대로 내 마음과 일상이었고.

오늘 아침, 함께 했던 시간을 돌아보고자 12주 동안 단체 톡방을 처음부터 쭉 읽어보았다. 할 일이 많은 날인데, 이걸 만들며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하고픈 말이 많은데, 이 자발적 이야기들로 충분한 것 같다. 꿈작업을 그렇다. 누군가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취약함을 내어 놓는다. 잘 차려 입은 사람들 앞에서 혼자 발가벗는 느낌이다. 그럴 때 "괜찮아, 나도 그래" 같을 말보다 더 강력한 일이 일어난다. 한 사람 씩 따라서 옷을 벗는다. 모두 민낯이고, 모두 발가벗었기에 누구의 취약함이 더 취약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벗는 한 사람에 중에 내가 있다. 여기가 공동체고, 교회다.

될 수 있는 내가 있고 되어야 할 내가 있다. 카를 융은 우리가 되어야 할 내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했다. 나리는 나리가 되고 참나무는 참나무로 존재를 온전히 꽃피워야 한다는 영성적 의미이다. 될 수 있는 내가 되는 일은 넓고 쉬운 길에 있다. 되어야 할 내가 되는 일은 그 반대이다. 모르는 길을 더듬에 내가 선택해야 하며 그 결과를 책임지며 가는 길이다.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 그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이 함께 하니, 늘 배우게 되고,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어디서들 이렇게 찾아와 연결되는 분들이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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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거절을 연이어 두 번을 했다. 때늦은 거절이라 민폐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니, 약속을 어긴 것이라고 하자. 쓰기로 약속한 글을 기한이 다 되어 포기했다. (거절, 어긴 약속, 포기, 실패... 어떤 표현이든 달게 받겠다.) 하나는 엄마 잃은 딸이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어 돌아가신 엄마를 새롭게 만나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 딸을 잃은 아빠의 애가이다. 하나는 서평이고 하나는 추천평이었다. <슬픔을 쓰는 일>이 연결시킨 일이 분명하여 거절할 수 없었다. 부담은 됐지만 두 분 저자에게 위로든 무엇이든 건네고 싶었다. 마감이 다 되도록 끙끙거리다 둘을 다 포기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못 쓰겠어요."하는데, 몸이 말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거절한 원고는 있었지만, 약속하고 쓰지 못한 글은 없었던 것 같은데. 

 

**

MBTI로 P가 높지만 강의 약속에 늦는 일은 거의 없다. 30분 전 도착을 목표로 하지만 15분 전, 10분 전에 도착하는 경우는 있지만. 1월 초, 강의 시간에 30분을 늦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내가 유발했다.) 지하 서부간선도로에서 밖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그걸 한 번 놓치고. 성산대교까지 가서 돌아와야 하는데, 도통 네비가 해독이 되지 않아 근처 한강공원, 양평동을 몇 바퀴 돌았는지 모른다. 강의하는 교회까지 가서는 건너편에 두고 막히는 길 유턴하러 갔다가 또 몇 바퀴. 딱 무엇에 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온갖 감정이 식은땀과 함께 지나가고. "나는 늦었다. 늦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지는 것 외에는 없다." 받아들였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온몸으로 견뎠다.

 

***

무의식의 힘이 세다. 정말 가기 싫은 강의였다. 늘 말하던 주제였지만, 입을 떼면 줄줄 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마음의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30분 전에 도착하려 했는데 30분 지각을 했으니 1시간을 늦은 셈이다. 마음이 한 일이다. 무의식이 작정하고 뺑뺑이 돌린 것이었다. 무의식을 탓할 일은 아니다. 강의에 지각한 것도, 약속한 원고를 쓰지 못한 것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한계를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할 수 없는 것을 빠르게 바르게 분별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분별에 앞서는 것은 '인정'이어야 하겠고. 한계를 가진 나, 한계를 가지고 사는 삶의 구멍들과 구멍에 빠지는 날들의 아픔을.

 

****

지난 학기 내내 붙들고 씨름하던 주제가 '비극'이었다. 그리스 비극부터 오늘 여기 일상의 비극까지. 슬픔은 '애도'를 통해서만 치유된다고 마르고 닳도록 말하고 써왔다. <슬픔을 쓰는 일>이 그 결정판이다.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지혜를 가져와 좌절의 기술을 가르치는 어느 철학자의 책이다. 슬픔과 애도에 대해 쓰고 강의하면서 역시나 마르고 닳도록 인용하는 퀴블로 로스의 애도 단계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다. 

 

❝스토아주의자들에게 퀴블러 로스가 제시한 슬픔의 다섯 단계 목록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처음 네 단계, 즉 부정, 분노, 타협, 우울을 건너뛰어서 곧장 다섯 번째 단계인 수용으로 갈 것이다. 그들은 죽은 자들을 되살려내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일이므로 그들의 죽음을 과도하게 슬퍼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덧붙일 것이다. 가능한 한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그저 받아들여야 하며 그렇게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

 

<슬픔을 쓰는 일> 한 권을 통째로 반론으로 들이밀 수 있지만, 어떤 의미로는 인정한다. 삶에 널린 수많은 좌절, 어떤 좌절, 내가 유발한 어떤 위기들은 곧장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건너뛰고 수용! 어떤 날, 어떤 일은. 수용하고 겪어내야 한다. 결국 같은 일인지 모르겠다. 퀴블로 로스 여사의 5단계는 기계적 순서가 아니라 결국 잘 겪어내야 한다는 것이고. 더 나은 날까지는 아니어도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삶 외에 다른 선택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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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마시기 시작하면서 커피랑 소원해졌다. 생각해보니 엄마 돌아가시고 지낸 몇 개월이 결정적이다. 4, 5월이 되도록 몸에 한기가 느껴져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따뜻한 차를 마셨다. 한 잔 마시고 나며 몸이 좀 따뜻해졌고. 그렇게 핸드드립 커피와 멀어지던 즈음, 교회에 캡슐커피 메이커가 생겼는데. 편리하고 커피 맛 좋고, 라떼까지! 이제 좀 편히 살자, 편하게 살 때가 됐어, 하고 남편의 알바비를 갈취하여 한 대 들였다. 채윤이가 제일 좋아했다. 카페 부럽지 않은 라떼를 마실 수 있으니. 그런데! 무릇 망대를 세우려는 자는 미리 비용을 계산했어야 하는데. 그런 것에 너무나 취약하여, 기계 사는 초기 비용만 들이면 커피는 싸게 마실 줄 알았으니... 커피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캡슐 주문을 자꾸 미루게 된다. 집에 커피 없는 날이 허다하다.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 저자...

요즘은 카누를 마신다. 어쩌다 한 잔 마셨는데 이거 괜찮네, 세상 좋아졌네, 인스턴트 커피, 장난 아닌데, 싶었고. 핸드드립 커피 마시듯 굳이 접시를 받쳐 격을 갖춰 마신다. 요 며칠 찻잔 픽은 [사람 사는 세상]이다. 몇 년 전에 봉하마을 노란 가게에서 사 온 것이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조국을 위한 기도가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나는 정치적 존재이다. 단 한순간도 정치적 존재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정치적 입장도 분명하다. 정치 참여는 우선 기도의 참여이다. 2002년 민주당 경선 때 현승이를 임신한 몸으로 하루 금식기도를 감행했던, 그런 열성 분자이다. 정치적 입장이든, 신학적 입장이든 ‘입장’은 깊이 넣어두는 편이다. 듣는 편이다. 사람 사람이 나 정도는 다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터라. 넣어둔 입장과 열성은 기도로 연소시키겠노라, 생각한다. 대선정국을 바라보면 어이는 없고 할 말은 많지만 그냥 기도한다. 카누 한 잔 마시며 정치적인 기도로 시작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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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와서 더 놀고 가고 싶은데, 어른들 모시는 기사 노릇해야 해서 아쉬워하던 조카가 다시 놀러 왔다. 좋아하는 형, 오빠가 온다니 애들도 들떴다. 노는 월요일, 남편과 영화 약속이 있어서 장보는 시간이 애매했다. 큰 기대 없이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말하고 나갔다. 마트에서 돼지갈비 사다 핏물 빼는 것 해주면 좋을 텐데... 영화 보고 부랴부랴 장 봐서 왔더니, 오메 애들이 정확히 돼지갈비를 사다 찬물에 담가놓고 있네. 장은 심부름 달인 현승이가 보고, 핏물 빼는 건 유튜브 검색해서 채윤이가 했다고. 덕분에 김치찜 맛있게 해서 먹고 돼지갈비 한 팩이 고스란히 남았다.

갈비찜 양념 재우고 나가려고 심부름 로봇 현승일 편의점에 보냈다. 갈비양념 사오라 했더니 '돼지불고기 양념' 밖에 없다며 뻘건 걸 사 왔네. 그러면 매운 갈비 한 번 해보지. 시판 불고기 양념장에 시든 사과, 양파 갈아 넣고, 마늘 때려 넣어 양념해두고 연구소에 다녀왔다. 저녁에 와 압력밥솥에 찜을 했는데... 우와, 매운 갈비찜 좋네! "나, 아무래도 요천인가 봐." 했더니 남편이 "요천? 요리 천사? 맞아. 요리 천사야!" 해서 현승이가 뿜었다. 요리 천재지. 어떻게 거기 천사가 붙어?

잘했는데 뭔가가 틀어진 두 번의 심부름이 낳은 '포상 요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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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왜 요즘 블로그에 글은 안 쓰고 요리만 올라와?
엄마 실은 요리 블로거야... 음, 글이 안 써져. 쓰고 싶은 글은 많은데, 뭔가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글 같아. 글 쓰는 게 다 의미 없어. 먹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애.
그럴 거면 레시피도 같이 올려. 나중에 엄마 음식 먹고 싶을 때 내가 보고 만들게.
응, 그건 못해. 정해진 레시피가 없어.

이런 상황이다.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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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여 모이지 못했던 시가의 명절 모임을 했다. 어머님만 모시고 와 하루 함께 식사하고 놀아드리려 했는데. 어쩌다 다 함께 모이게 되었다. 기꺼이 식사 준비하려고 마음먹었다. 메뉴 조합을 고민하는 중, "어차피 식구들이 많이 먹지도 않아. 대충 하면 돼."라는 남편의 말이 명절 스트레스 버튼을 눌렀다. 스트레스보다 더 강한 말이어야 하는데... 오늘 싸움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나는, "신경 많이 쓰지 말라는 뜻인 거 알지만, 요리하는 사람에겐 많이 먹지 않는 게 더 어려운 것이고, 양의 문제가 아니라 종류 결정의 문제다." 했고. 늘 그렇듯 말에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이 먼저 전달되어, 역시 되돌려 받은 것도 감정이었다. '나는 당신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돕고 싶은 마음뿐이다'라는 말에 담기긴 했지만.

며칠 이런저런 대화로 아픈 감정 흘러보내고 말에 담긴 '좋은 뜻'만 남겨 싸움이 일단락된 시점. 어머님의 통화에서 같은 말로 다시 한번 버튼이 눌렸다. "에미 힘들어서 어쩌냐, 식구들이 많이 먹지도 않으니까 조금만 해." 어머니가 누르시니 23년 명절에 얽힌 온갖 감정에 다 불이 들어왔다. 그 감정을 쏟아놓을 곳은 남편이라 "어머님이 고맙고 미안해서 하시는 말씀인 것은 알지만..." 다시 시작했다. 덕분에 대충 덮어둔 것들을 더 솔직하게 말하고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대화 끝에 남편이 말했다. "어휴, 명절이 문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런 말이 툭 나왔다.

명절은 잘못이 없어. 명절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문제라면 문제야. 정확히 사람 관계가 문제겠네.


명절 풍경이 상상 못할 정도로 바뀌었다. 송편 한 말, 전 열 종류를 종일 하던 명절로 시작했는데. 명절 아침 식사 인원은 제대로 헤아려지지도 않았고, 한 번에 한 상에서 먹지도 못했었다. 그때 생각하면 참으로 단출한 명절상이다. 고사리나물 대신 고사리 파스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결혼하고 첫 명절 때 소주잔 설거지를 하면서 심장이 쿵쿵 뛰던 기억도 새롭다. 집에서 술을 마시다니. 내가 소주잔을 닦다니. 우리 엄마가 알면 기절을 하겠네, 했었다. 시누이 좋아하는 카스 대용량을 사다 떡하니 상에 올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이렇듯 변하는 명절이 무슨 잘못이겠어. 그때그때 해결하지 못해서 내 몸에 쌓인 것들을 알아봐 줄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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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저녁, 내가 정확히 6시 7분에 집에 돌아왔고.

남편은 7시에 줌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집에 밥이고 국이고 반찬이고 먹을 것이라곤 없었고...

6시 20분과 25분 사이에 짜장 떡볶이를 식탁에 올리고 넷이 마주 앉았다.

그러니까 옷 갈아입고, 손씻고,

냉동된 떡을 녹이는 시간까지 합해서 한 15분 걸렸다는 거.

 

이럴 때, 나 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현승이가 "뚝딱 만들었네!" 했다.

신이 아니라 도깨비 방망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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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리조또를 만들어봤다.
전복 내장을 가장 맛있게 활용하는 요리가 아닌가 싶다.
때때로 말없이 완도산 전복을 보내주시는 집사님 덕이다.
전복회, 전복찜, 전복버터구이, 전복죽까지 해봤는데.
리조또를 개척했다.

전복 보내주신 집사님을 향한
여러 마음의 기도를 담은 요리이다.
주님께서 집사님 마음에 큰 위로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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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고 싸매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연재했던 글이 묶여 단행본 『신앙 사춘기』가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왜곡된 신앙을 잘 찌르면서 상처 또한 잘 싸맸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출간 이후 있었던 소소한 강연과 만남에서 ‘신앙 사춘기’의 이면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글이 아닌 얼굴을 대하는 만남에서 그 높고 높던 자부심에 금이 많이 갔습니다.  

소도시의 목사님들과 ‘저자와의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독서 모임을 지속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리더 격인 목사님께서 자신 있게 저의 책 『신앙 사춘기』를 소개하고 나눔을 진행하는 동안 적잖이 당황하셨다고 합니다. 대부분 목사님들이 불편해하셨다고요. 그런 사전 정보를 가지고 ‘저자와의 만남’에 응했습니다. 제 책을 읽고 불편하셨다는 분들과의 만남이라니...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자리이지였만, 주선하신 목사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그 자리를 찾았습니다.

모임 장소에서 주차를 하며 진귀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똑같은 은색 스타렉스가 여러 대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비슷한 위치에 교회 이름만 다른 ‘교회 차’들. ‘저자와의 만남’ 수강자와 엇비슷한 수의 차량이었습니다.

강연 아닌 강연, 저자로서 뭔가 말해야 하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책이 불편하진 않으셨나요?” 질문으로 시작했는데, 흔들리는 동공으로 답해주셨습니다. ‘불편하셨겠죠.’ 저도 마음으로 답했습니다. 강의 내내 어색할 수도 있었겠는데, 마침 저의 아버지가 속하셨던 교단의 목사님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연세 58세에 저를 낳으셨죠. (더 놀라운 건, 제게 두 살 아래 동생이 있다는 것.) 평안북도 철산 출신 아버지는 총신의 전신인 평양신학교를 다니던 신학생이었고, 1.4 후퇴 때 월남하여 부산으로 이전한 ‘평양신학교’를 다니셨습니다. 합동과 통합이 갈리기 전 총신 1회 졸업생이었습니다. 신학교 대선배님 이야기로 아이스 브레이킹이 되었습니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서 교회의 딸로 자랐고, 고등학교 때 주일 끼어서 가는 수학여행에 당연히 불참했고, 청년 시절엔 토요일 주일은 밥도 못 먹으며 봉사했다는 이야기. 청년부 주보 편집, 성가대 지휘로 토요일 주일을 교회에 갈아 넣었던 경험. 직장 생활하는데 주일 출근하란 말에 사표 내고 나왔다는 얘기들을 나누며 우리의 신앙 정서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청년부에서 만난 남편이 결혼 6년 만에 신학교에 가고 모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봉사하면서 신앙 사춘기가 시작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느낌이 맞다면, 이 지점에서 ‘신앙 사춘기’에 대한 불편함은 제로가 된 것 같습니다.

이후 책을 쓴 경위, 글의 행간에 담고 싶었던 마음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편안한 분위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목회하며 겪는 어려움을 나누었습니다. 목회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목사님과 사모님. 하지만 그것을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고충들... 오고 가는 대화의 주제가 자녀와의 갈등으로 모아졌습니다. 아버지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십니다. 목사가 아닌 아버지, 아니 목사인 아버지로서의 아이들의 삶, 특히 교회와 신앙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걱정하십니다.

주차장에서 본 스타렉스 행렬이 떠올랐습니다. 목사의 아들들이 가장 싫어하는 차종이 스타렉스입니다. 회색 스타렉스. 아빠 차인 듯 아빠 차 아닌 아빠 차 같은 교회 차. 당시 상담하고 있던 어느 목회자 가정, 무엇보다 저의 아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목사님들과 저는 너 나 없이 사춘기 목사의 아들로 하나 되었습니다. 신앙 사춘기나, 아들 사춘기나. 사춘기는 적나라한 감정을 날것으로 만나거나 때이죠. 아빠 차로 등교하는 것을 그렇게 마다한다는 사춘기 아들은 스타렉스가 부끄러워 싫었던 거라는, ‘아들 사춘기’의 이면을 조금 이해하면서요.

모임을 마치면서 ‘은색 스타렉스 목사님’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앙 사춘기 이후’의 글을 꼭 써달라고요. <신앙 사춘기>가 싸매기보다 찌르기에 치우쳤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 꼭지 한 꼭지 눈물로 쓴 글이라 제 나름 싸매기에 기울었다고 생각했는데요. 이제 와 돌아보면 그 누구도 아닌 저를 위한 눈물, 자기 연민의 눈물이었다 싶습니다. 사춘기는 어른으로 가는 길목의 모퉁이입니다. 사춘기 이후에도 삶이 있습니다.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 나날이 있습니다.

여러모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개정판을 내신 <뉴스앤조이>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말이 개정판이지 달라진 내용은 크게 없습니다. 환갑둥이로 태어나 아버지의 대를 이어 목사가 되었던 동생이 목사를 하다 그만두며 쓴 글 하나가 추가된 정도입니다. 다시 한 번 책에 관심 가져주시실 부탁드립니다. 후속 글을 쓰는 것은 일단 미뤄두고, ‘신앙 사춘기 너머’라는 제목의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신앙 사춘기든, 팬데믹이든, 끝없이 다가오는 인생의 상실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야 할 신앙과 일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3960&page=2&total=53252

 

'신앙 사춘기' 너머로 함께 발 내디딜 분들을 찾습니다

<신앙 사춘기> 개정판 출간 기념 저자 특강, 2월 25일(금) 저녁 7시 30분 카페바인 필동(온라인 참가 가능)

www.newsnjoy.or.kr

 

엘리베이터가 별 일을 다 한다.
엘베 광고 모니터에서 요리 제안까지 해주네.
스팸두부 짜글이를 거기서 보고 해봤다.

"엇, 나 이건 엘베에서 보고 먹고 싶었는데!"

이런 말 한 마디가 그렇게 보람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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