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밀도 있게 시간을 썼던 적이 없고, 요즘처럼 주어진 오늘의 일에 집중하며 살아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연구소 강의와 연구소 외의 강의, 대학원 공부와 사람을 만나 마음을 나누는 일. 어느 것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살아내고 있습니다. 학기말이라 과제가 몰려 있고, 어느 과제 하나 허투루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완벽주의 같은 건 아니고, 과제마다 연구하고 써내는 일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과장하면 죽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데드라인에 맞춰 하나 씩 미션 클리어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7월 코스타 강의만 없다면 “바쁘다" 정도로 이즈음의 나날을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이 모든 일을 잘 끝낸다 해도 '자유'가 먼 곳에 있습니다. 코스타 준비에 비하면 하나만으로도 죽겠다고 설레발쳤을 학교 과제는 껌입니다. 껌 씹으며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리는 미주 코스타에 갈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D-7, D-19, D-22는 코스타 관련 각각 의미 있게 부담되는 카운팅입니다. 아래와 같은 사연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그대로입니다. 블로그 친구들께 기도 부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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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회자, 여성”
코스타 간사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올해 코스타는 대면으로 시카고에서 열린다고요. 이어서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미주 코스타 사상 처음으로 전체집회 강사에 ‘비목회자, 여성’이 서게 되었다고요.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감탄사 말고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잘 하셨네요! 정말 좋은 결정이에요!” 37번째 코스타라니 37년 만의 일이네요. 이게 37년 걸릴 일이었군요! 지구의 반이 여자이고, 목회자와 비목회자의 비율은 헤아려지지도 않는데. 이제야 비목회자, 여성 주강사라니요! 너무 늦은 일이라 더 놀랍고, 용기 있는 아름다운 선택입니다. 기립박수에 엄지 척. 감동이 쉬 가시지 않아 심장박동이 채 정상으로 회귀하기 전…
'그 자리에 올 수 있겠냐’' 하셨습니다.
"네? 누가요?"
세미나 강사로 초대를 받을 때마다 '나 같은 무지랭이 강사를…' 하는 심정인데 전체집회 강사라니요? 가당치 않은 일이라 마음으로 당장에 거절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 갑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첫 번째 비목회자 여성 주강사’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지랭이가 그 자리에 적합한지 확신은 없지만, 코스타 간사님들이 강사 인선을 어떻게 하는지 잘 알거든요. (또 솔까말, 무지랭이 강사지만 결국 가서 하고 나면 인기 강사 되고 말더라고요오.... 흠, 내가 코스타 간사님들과 페친이던가 아니던가…)
당연한 거절의 이유 중 중요한 것은 주제였습니다. 주제가 무려 ‘잔치’입니다. 벌써 올해 주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잔치라니, 올해는 온라인으로 코스타를 한다 해도 세미나 강의도 할 수 없겠구나! 잔치, 파티, 축제…는 나와는 얼마나 동떨어진 일인가 싶거든요. ‘신앙 사춘기’를 빌미로 무기력과 냉소를 표방하며 살아왔고, <슬픔을 쓰는 일>의 저자로 죽음, 상실, 슬픔의 페르소나로 글 쓰고 강의하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제 안에 잔치에 합당한 감정이 있나 싶습니다.
시간, 아니 시간 속에서 들리는 어떤 목소리에 스스로 설득되었습니다. 초대장을 들고도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는 마음을 전하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갑니다. 알리고 싶었습니다.
안 하겠다, 안 한다 하다 하고 나서는 참 좋은 MBTI 강의를 했다. 주제를 막론하고 청소년 대상 강의는 거절하고 있다. 거절하고 거절하다 왠지 해야 할 것 같은, 하고 싶은 강의가 생기기도 한다. 나음터 벗님 중 한 분의 요청인데, 대상이고 내용이고 할 것 없이 요청하는 분이 좋아서 수락하고 만 청소년 대상 MBTI 강의였다. 이미 작년에 한 번 했고. 암과 싸우고 있거나 싸워 이긴 청소년들이다. 만나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러나 깊이 마음을 들여다보면 고유한 아픔을 간직한 청소년들이다. 3주간 아이들을 만났고, 마지막 주에는 어머니들과 함께 했다. 연구소 꿈나무 샘과 그림 작업도 함께 해서 더 풍성했다.
MBTI 열풍으로 너도 나도 MBTI 전문가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남들 다 하는 것 하기 싫어하는 까칠한 인격의 소유자로서 이젠 강의도 하기 싫지만. 막상 만나서 MBTI가 아니라 '사람'에 방점 찍고 강의하다 보면 다시 그 진가를 확인하게 된다. MBTI를 가르치겠다는 태도보다 참여한 사람들에 비추어 내가 아는 MBTI를 새롭게 하겠단 마음으로 간다. 기실 모든 성격유형 도구는 사람에 관한 것이라,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것, 누구보다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것이 배움의 왕도이다. MBTI 자체가 아니라 수강자들이 보여주는 눈빛, 질문, 나눔이 강의의 메인이 되는 것이다.
지난 달이던가, 'MBTI 현상'을 주제로 CBS 토론에 나간 적이 있다. 방송된 지 조금 지났는데, 뒤늦게 링크 걸어본다. 편하게 공유할 수 없었던 몇 가지 이유들이 있었는데. 외적인 이유야 어쩔 수 없고, 내적인 부대낌은 시간이 지나며 잘 흘려 보내게 되어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공유한다. 너도 나도 전문가로 착각하고 있는 MBTI 과열 현상,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잘 안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가장 문제다. "안다"는 것은 더는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통하니, '안다'는 그 대상의 좋음을 더는 발견하거나 누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고, 자꾸 마음에 새기게 되는 것이다.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내 얼굴 자체도, 화장도, 골라 입은 옷도 전반적으로 마음에 드는 날. 그런 날이었다. 주일 아침이었고. 아침 루틴, 눈 뜨자마자 기타를 껴안고 띵가딩가 하는 현승이 방 앞에 섰다. "엄마 갈게!"라고 했다. "엄마, 엠마 스톤 같애. 라라랜드." 와, 그대로 노란 원피스 ‘미아’가 되어 날아올랐다. 현승이에게 라라랜드는 '세상의 모든 영화'이고, 라라랜드가 세상의 모든 영화인 이유는 거기 나오는 엠마 스톤 때문이니까.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도서관에서 늦게 돌아온 현승이가 또 밤의 루틴 중이었다. 기타를 껴안고 띠디딩 딩딩 하고 있었는데 그 앞에 얼굴을 쑥 내밀고 "안녕? 엠마 스톤이라고 해." 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몸서리 치듯 흔들었다. "아니야, 엠마 스톤 아니야. 내가 아침에 엠마 스톤이라고 했어? 아니야. 가." 종일 하늘을 날던 마음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안방으로 가 거울을 봤다. 아침 그 사람이 아니다. 절레절레 절로 고개가 흔들어졌다. "엠마 스톤 아니네. 아니야, 엠마 스톤."
찬란한 5월이었다. 2022년 5월의 하루하루는 새롭게 푸르르고 새롭게 찬란했다. 나무가 그랬고 풀이 그랬다. 큰 나무 사이를 오가며 울고 웃는 새소리가 그랬다. 그 좋았던 순간을 마음과 몸에 담아두고 싶었다. 공기, 바람, 나무 냄새, 새소리의 기억은 금세 사라지고 '좋음'만 남을 것이다.
그 5월 어느 날, 사람들과 공원에 앉아 나눈 가벼운 수다와 웃음을 마음과 몸에 담아두고 싶다. 신록 사이 홍일점 같은 붉은 단풍나무도, 와하하하 터지는 웃음도, "내가 맞혔어!" 환호성도, 샌드위치도... 이런 기억은 머지않아 사라지고 '좋음'만 남을 것이다 만남과 치유와 성장이 무르익어가고 있는 '상처 입은 치유자' 지도자과정의소풍 날이다.
to do list가 즐비하다. 강의하는 사람, 강의 듣는 사람, 글 쓰는 사람, 읽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소장님, 작가님, 엄마, 고3 엄마, 아내, 사모님... 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일의 성격이 달라서, 가끔 너무나 이질적인 일들을 해야 해서 포스트잇에 적어 코 앞에 붙이고 있어야 한다. 그런 5월이기도 하다.
to do list의 중심에는 목요일이 있다. 목요일을 중심으로 일주일이, 5월 한 달이 돌고 돌다 지나갔다. 어색한 긴장으로 만난 낯선 사람 사이가 시간과 함께 무르익어 가는 것은 참 신비한 일이다. 사람들 사이 강이 흐른다. 어떤 살아 있는 강이 흐른다. 지도자 과정뿐 아니다. 연구소 하면서 빠지고 또 빠지고 헤엄치는 사람들 사이의 강이다.
꿈 모임을 과정 하나를 마치며 단톡에 올라온 톡이 이렇다. "저 이 그룹 나가기 넘나 아깝고 다른 사람에게 자리 안 내주고싶을 만큼 욕심납니다...이런 치유의 공동체 자체가 정말 희망인것 같습니다. 이런 공동체 만들어주신 나리 정말정말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저희 또 다른 여정에서 만나요! " 만들어 놓으면, 모아 놓으면 서로 내놓고 받아주고, 또 내놓으면서 자라는 사람들의 모임이 참 신비롭다.
저녁 먹고 zoom 모임 전까지 걸을 시간이 있었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걷기로 했다. 식탁에 앉아 노닥거리다 창밖을 보니 하늘이 붉다. "어, 지금이야. 지금 나가야 돼." 하고 일어났다. "아, 지금? 개와 늑대의 시간! 빨리 나가." 아침 설거지도 했다며 저녁 설거지는 아빠가 하라던 채윤이가 말했다. 투덜투덜, 기꺼이 저녁 설거지 당번을 맡아 주면서.
해가 지는 시간, 해지고 어두워지며 개와 늑대가 구분이 안 가는 시간이라고 한다. 노을이 물드는 시간이기도, 밤으로 가는 시간이기도. 참 좋아하는 때이다. 단지를 빠져나가는데, 저 녀석! 개도 아니고 늑대도 아닌 고양이가 길 한복판에 드러누워 있다. 성원, 금호, LG 아파트의 귀여움을 관활하는 놈이다. 번듯한 집을 짓고, 오가는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살이 디룩디룩이다. 팬서비스도 수준급이라 사진 포즈 기가 막히게 잡아준다. 개와 늑대와 고양이의 시간.
탄천에는 아무렇게 피어있는 개망초가 한창이다. 오늘은 개망초가 참 예뻐 보인다. 어스름한 빛이라 흰색이 도드라져서 인 듯하고. 무더기 무더기 피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참 예쁘다. 개와 늑대와 개망초의 시간이다. 두툼하고 뭉툭한 JP의 손을 잡고 개망초 옆을 걷는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우리라서 좋다. 개와 늑대와 JP&SS의 시간이다.
어떤 카드를 받았다. 정성 담긴 고운 필체로 뭐라뭐라 쓰여 있는데, 미래 문자라서 해독이 어렵다. 천국 문자다. 읽어낼 재주가 없다. ♥ ♥ ♥ ♥ ♥ ♥ ♥ ♥ ♥ ♥ ♥ ♥ ♥ ♥ ♥ ♥ 다행히 번역이 붙어 있다.
스승의 날 카드다. 동윤아, 섭섭하다! 우리 친구 사이인 줄 알았는데... 동윤이랑, 나랑, 브라키오랑 친구잖아. 내가 선생이면 네 엄마 선생이지... 네 엄마랑도 요즘은 거의 친구 먹는다. (아, 며칠 전에 네 엄마 문자를 씹었다. 나중에 답신 해야지, 하고 잊었네. 괜찮겠지?) 네 엄마가 스승의 날 선물에 너를 끼워 넣은 거구나. 취향 저격이네!
식물 중에 스파트필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애가 성격이 담백하기 때문이다. 물을 많이 먹어야 하는 아이인데, 물이 떨어졌다 싶으면 온몸으로 말해준다. 어깨고 뭐고 축 처져서는 "야, 집사! 이럴래? 나 안 돌볼래?" 한다. 얼른 물을 주면 몇 시간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난다. 덜렁거리고 게으른 나 같은 집사가 키우기에는 딱이다. 꾹 참고 있다가 갑자기 말라죽어버리는 화초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란... 수많은 화분이 죽어나가고, 그래서 베란다 풍경이 바뀌고 또 바뀌지만 늘 하나씩은 키우고 있는 것이 스파트필름이다. 네가 네 몫의 생명을 살아내는 것처럼 나도 그럴게. 너 거기 베란다에 있고, 나 여기 거실 테이블에 있고. 각자 되어야 할 자신이 되어 생명을 누리자. 화이팅!
지방으로 내려가시는 집사님께서 작년 여름에 커피나무를 하나 남겨 주셨다. 전에 한참 커피 공부할 때 이 녀석 키우는 조건이 까다롭단 얘길 들었었다. 공들여 키우셨는데 내가 데려가 죽이면 어떡하지, 죽을 수도 있겠다, 했는데. 의외로 잘 자라서 드디어 커피 체리라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되었다. 키워보니 스파트필름 못지 않게 투명한 친구다. 사랑이 필요하다고 정직하게, 온몸으로 말한다. "어머, 미안해!" 하고 돌봄을 주면 다시 살아난다. 얼마 전에는 꽃을 피웠다. 커피 체리에 이어 커피 꽃까지 실물 영접하게 된 것이다. 10여 년 전 커피에 꽂혀서 세상의 모든 커피 책을 다 읽는 심정으로 글로 배운 커피. 그즈음 책 속 사진으로만 보던 커피나무, 커피체리, 커피꽃이다. 그 시절이었다면 엄청난 감동과 흥분이었을 텐데 덤덤하게 속 깊은 행복감으로 마주했다. 꽃보다 더 반가운 건, 저 연한 새 잎. 예수님을 빗댄 여러 비유들이 있지만 유난히 좋아하는 이사야 말씀인데. '연한 순' 같은 예수님이 나는 참 좋다. 사실 커피나무나 스파트필름이나, 모양이 그리 예쁘지는 않다. 흔하디 흔한 식물이고. 눈에 띄는 특별한 아름다움도 없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대학원 수업에서 반장을 하고 있다.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보니 수업마다 일종의 조교가 필요하고, 반장이 그 역할이다. 뭘 시킨다고 하는 성격이 아닌데 좋아하는 교수님이라 덥석 하겠다고 했다. 좋은 수업의 반장으로 즐겁게 한 학기 보내고 있다. 학비 비싸다 비싸다 노래를 하지만, 이번 학기 세 과목 수업이 모두 좋아서 아깝지가 않다. 자본주의적 사고를 거두고 마음 가는대로 계산한다면, 한 학기 수업료 분을 한 과목 당 낼 만큼의 가치가 있다. 물론, 다른 학생들도 그리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반장 일이라는 게 이런 것이다. 사이버 캠퍼스에 올라온 줌 수업 주소 단톡에 퍼 나르기. 교수님께 사소한 민원 접수하기. 반장으로서 가장 뿌듯한 일은 그거였다. 교수님의 사이버 캠퍼스 계정에 문제가 생겨서 강의 줌 주소를 이미지 파일로 카톡방에 올려주시는 거다. 반장으로서 학우들을 위하여 이 한 몸 불태우리!!! 돋보기 끼고 이미지 확대해 놓고는 한 땀 한 땀 쳐서 텍스트로 만들어 올려 바로 링크 접속이 되도록 하였다. 내가 연구소에선 소장이라. 연구소 샘들이 최고의 조교로 알아서 줌 열어, 줌 주소 올려, 중간에 문제 생기면 일일이 개인 톡 하고 통화해서 문제 해결해. 이런 대접받는 소장인데. 돋보기 끼고 "흠... 대문자 N, 그다음 소문자 q... 이건 뭐야? 대문자 I야? 소문자 l이야?...." 이런 봉사를 하였다. 너무나 즐거웠다. 사소한 민원처리 또한 즐거웠다.
바쁘고 분주한 스승의 날을 보냈다. 각 수업에서 반장 주도로 스승의 날을 챙겨달라는 원우회의 부탁. 이런 거 또 아무렇게나 하고 싶지 않은 태생적 이벤트주의자로서 아드레날린 방출이다. 줌 수업 상황에 맞춘 여러 아이디어들이 오가곤 했다. 손편지 써서 ppt로 띄우기... 등. 손편지는 다른 과목에서 이미 썼고. <음악과 영성> 수업이라 음악을 활용해보려 했으나, 일천한 콘텐츠로 교수님 앞에서 뭘 하기도 그렇고. 채윤에게 하나 연주해 줄래? 했다가 오버하지 말라고 까이고.
학우들 부담되지 않고, 교수님 너무 민망하지 않게 조촐한 서프라이즈를 도모했다. 교수님 강의 시작하는데 마이크 켜고 난입하여 "저, 신부님 드릴 말씀 있는데요..."를 신호로 학우들은 A4 용지에 감사 메시지를 써서 카메라에 비추기! 몇 초 안 되는 이벤트였는데 화면 캡쳐 하랴, 상황 살피랴, 심쫄이었다. 부끄러워하시는 교수님 얼굴을 제대로 감상도 못하고. 이 와중에 나는 팬심 가득 담아 교수님 성함으로 삼행지를 지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없는 시간 쪼개서 발품 팔아 선물을 준비하고, 연이은 강의와 원고 부담을 뒤로 하고 직접 전달하러 나섰다. 또 하나의 반장 임무였다. 가톨릭 신학교 교정을 걸어보고 좋은 시간이었다. 그냥 좋은 시간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땅에 서는 행운을 얻었다.(그 땅에 대해선 언젠가 공개하리!) "학생이 준비되면 선생이 온다." 중국 속담이란다. 나이 들어, 경계를 넘어가서 배우는 용기 내길 잘했다 싶은 것은 좋은 선생님들과의 만남이다. 감사한 선생님들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몸으로 뛸 수 있어서 더 의미 있는 스승의 날이었다. 꽃집이 없어서 버스 한 정거장을 다시 거슬러 걸어가 꽃을 사고, 골목을 헤집어 문방구를 찾아 카드를 사고... 중고생이 된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해마다 스승의 날 마음 한 구석 슬픔이 일렁였다. 오늘의 내가 혼자 된 게 아닌데. 감사할 선생님이 한둘 아닌데. 정작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선생님이 없다. 가지각색의 이유로 그렇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게 된 예전 어느 날의 배움이 더는 싫지 않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선생님들이 더는 밉지 않다. 그렇다고 기쁘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게 아니라도 고마운 선생님들이 너무 멀리 계시다. 마음의 감사를 그저 혼자 여러 번 드린다.
오랜만에 반장 완장을 차고 지난날 모든 스승님들께 하듯 선물과 이벤트와 꽃과 카드를 준비하니 그냥 좋았다.
스승의 날인 5월15일은 주일이었다. 어느 교회 청년부 예배에 강의를 갔는데, 광고하던 청년이 담당 목사님을 호명하더니 스승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여기도 또 서프라이즈 당하신 스승님! 꽃다발 안은 목사님이 놀라고 민망하여 스승의 노래를 듣고 계시는데, 내 마음이 울컥했다. 얼마 만의 스승의 노래인가. 아, 목사도 스승이었지. 목사도 언젠가는 스승이었다. 남편이 도사님으로 불리던 강도사 시절, 친구네와 휴양림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스승의 날 지난 스승의 주일이었는데, 주일예배 마치고 늦게 합류한 남편이 커다란 꽃다발에 커다란 케이크를 들고 와 바비큐장이 환해졌던 기억이 아련하다.
흥부네 아이들이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흰쌀밥에 소고기 미역국이다. "와아, 흰쌀밥이다!" 흥부네 아이들처럼 우리 집 아이들도 좋아한다. 현미, 귀리, 보리, 흑미... 시커멓고 거칠거칠한 밥만 먹다 이렇듯 흰쌀밥이면.
아빠 생일 덕에 얻어먹는다. 생일엔 흰쌀밥에 미역국이지!
대학원 수업 마치고 10시 넘어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더니 깊은 밤 온 집안에 미역과 참기름과 소고기 육수가 어우러진 향으로 가득이다. 흥부네, 아니고 종필네 두 아이는... 한 녀석은 잠을 설친다. "아, 먹고 싶다! 지금 먹고 싶다!" 또 한 녀석은 "잠을 푹 잘 수 있겠다. 내일 아침 미역국 먹을 생각하고 잠들면 행복하게 금방 잠들어."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열흘 연두연두 하는 나뭇잎이 없다. 나는 안다. 좋은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물론 고통 또한!) 그렇다고 허무주의자는 아니다. 꽃이 붉어봐야 열흘이니, 붉은 꽃의 아름다움을 누릴 시간은 지금 뿐임을 안다. 오늘, 지금 누릴 뿐이다. (물론 고통 또한! 지금 여기의 고통 밖에는 없다. 머물러 충분히 고통 당하면 된다.)
좋은 것? 남는 건 허무와 상실감이라고. 금세 사라진다고.
상처 받지 않는 길은 좋은 걸 좋아하지 않는 거야.
좋은 것이 생기면 얼른 도망가. 좋을 것 같은 다른 어떤 것으로 말이야!
이러며 지금 여기 아닌 저~어기 어디를 살아온 세월이 50년 세월이다. 이젠 어리석은 환상에 붙들리지 않는다. 지금 여기의 좋음을 놓치지 않는다. 써야 할 글도 있고, 읽을 책이 쌓여 있지만 일단은 걷기 위해 나서고 본다. 토요일,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미금역 쪽을 향했다. 연습실에 있는 채윤에게 연락했다. "엄마 지금 미금역으로 가는 탄천인데. 니 연습실 가까운 것 같은데." 그리고 채윤이는 튀어 나왔다. 목마르니 음료수 사오라는 말에, 자몽쥬스와 오렌지쥬스를 사들고.
봄은 따스한 바람으로 오고, 노랑에 가까운 연둣빛 생명으로 온다. 바람은 촉각을 겨냥하고 연두 빛깔은 시각을 저격한다. 그리고... 이 좋은 봄날 토요일, 아카시아꽃은 향기로 난입한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소올~솔" 불어와 후각을 간지르지. 채윤이 만나러 가는 길에 아카시아꽃이 향기로 말을 걸어왔다. 어디, 어딘데? 향기를 좇아 고개를 들었더니 바로 그 아카시아다. "하얀꽃 잎사귀 눈송이처럼 날리..." 하며 보니까, 눈송이가 아니라 구름이 되어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다. 진짜다. 자세히 보면 보인다.
열흘 붉은 꽃이 없으니, 그 꽃 붉은 열흘을 누려야 한다. 어린이날 다음 날, 햇볕이 유순해지는 오후에 산책을 나섰다. 현관 앞에서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잠시 고민하다 왼쪽. 그러면 탄천 버리고 옆 동네 아파트 둘레길을 거쳐 마북공원으로 가는 것이다. 같은 산책길이라도 늘 새로운 이유가 열 개는 되지만, 으뜸은 새와 아기이다.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는 이름 모르는 새들과, 이름 모르는 아기들. 한 아기를 만났다. 눈이 맞았다. 웃는 나를 따라 웃는다. 엄마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우리 둘이 눈 맞은 걸 그때야 알아챈다. 아기에게 손을 흔든다. 아기도 따라서 빠이빠이 한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 뒤돌아보니, 아기는 계속 손을 흔들고, 엄마가 "감사합니다." 하고 내게 인사를 한다. 감사하다니! 제가 감사하죠. ^^ 아기들은 낯선 사람의 웃음을 외면하는 일이 없다. 웃어주거나, 뚱한 얼굴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뚫어져라 바라보거나. 웃어줘도 좋고, 뚱하게 바라봐줘도 좋다. 외면하는 일이 없다. 어린이날 다음 날의 산책이었다. 전날 학교 "음악과 영성" 수업에서 슈만의 <어린이 정경>을 들었다. 저 아가와 눈 맞추고 집에 오는 길 내내 <어린이 정경>을 들었다.
야외 마스크 해제 후 첫 산책. 날씨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연둣빛 나뭇잎들의 명도와 채도는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니 순간의 아름다움이다. 화무십일홍이라... 열흘 붉은 꽃이 없다 하니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며 보낼 일이 아니라 열흘의 붉음을 누리자는 주의이다. 걷는 일이야 언제든 좋지만, 이런 봄날 같으랴. 야외 마스크 해제라니 마스크 벗고 오늘 분량의 붉음, 아니 연둣빛을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꿈모임 벗님의 별칭 중 하나가 '꽃마리'이다. 아기 손톱보다 작은 꽃이라고, 아주 흔한데 가만히 찾아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하곤 한다. "오늘의 미션! 아기 손톱보다 작은 꽃마리를 만나는 것이다." 하며 집을 나섰다. 작은 들풀에 눈을 맞추자면 한 발 한 발 주저 않는 발걸음으로 걷는 즐거움은 포기해야 한다. 주저앉아 들여다보며 찾고 찾아야 한다. 과연 다음 꽃 검색도 인식을 못할 정도로 작은 꽃이었다. 사진을 찍어 단톡에 올리니 '꽃마리'님이 꽃마리가 맞다고 하셨다. 어쩌면 그렇게 조그만 녀석이, 어쩌면 그렇게도 의연하게 제 모양대로 피어있다. 누가 봐주든 말든 제 모양대로 제 자신을 뿜뿜 하고 있다. 애쓰지 않으며 제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야외 마스크 해제라는데, 마스크 안 쓴 사람이 나밖에 없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다. 이러다 마스크 안 썼다고 테러 당하는 건 아니겠지, 잠시 걱정이 될 정도였다. 마스크 쓰는 게 편하단 얘길 많이 듣는다. 가리는 게 좋다고. 우리 아이들이 그렇다. 마스크 벗을 자신이 없다고. 딱히 자랑스럽지 않은 얼굴, 반쯤 가리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적당히 가리고 살며 느끼는 안전함이 있지. 그렇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동시에 착용하는 게 몹시 불편하다. 눈이 부셔도 그렇다. 마스크 벗는 대신 선글라스를 쓰고 셀카를 찍어봤더니 정말 그렇다. 내 얼굴도 그렇다. 하관을 가리고 눈을 드러내는 게 그나마 낫다.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 꽃마리는 아무 걱정 없이 창조주께서 만들고 꾸며주신 그대로 제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딱 열흘을 피었다 지더라도 그러할 것이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마 6:30)" 하시는데, 우리는 가리고 숨길 것투성이다.
지난 주일 교회 아기들이 모두 과자 백팩을 메고 돌아다녔다. 어린이주일 선물로 선생님들이 준비하신 것인데,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백팩이라니! 아니다. 백팩 자체는 그냥 막 신박한데, 백팩 매시는 분들의 귀여움이다. 쟤가 보기보다 무거운 백팩이다. 사이드에 뽀로로 음료수가 한 병씩 달려 있으니, 저 쪼그만 등이 감당할 무게가 아니다. 사진의 저분도 수월 치는 않을 텐데 나름 그 무게를 이기고 의연함을 잃지 않으시지만(아오, 저 조그만 나이키 운동화는 또 어쩔!). 직립 보행한 지 얼만 안 된, 휘청휘청 걸음마하는 아기가 저도 가지겠다고 달려들었다. 백팩 메다 뒤로 넘어갈 뻔했다. 그렇지, 쌀가마니 수준 아닌가! 쌀가마니 등에 지는 수준 아닌가 말이다.
최 선생님과 함께 여행, 그것도 제주여행이다. 일이 되려면 이렇게 또 쉽다. 하루게 다르게 쇠약해지시는 선생님 모시고 햇살 좋은 날 드라이브 한 번 해야지 벼르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걷기도 전처럼 누리질 못하시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함께 공부하던 선생님 한 분이 제주 한 달 살이 중이라며 보낸 풍광 사진에 감탄하다 된 일이다. K 선생님은 모임에서 마음이 통하던 큰 언니 같은 분이다. “와, 부럽네요!” “부러우면 와요.” 이런 말을 주고받다 전격 성사되었다. 썩 건강하지도 않은 노인을 모시고 하는 여행에 이렇게 설레다니. 나답지 않은 일. 못 말리는 나의 최 선생님 사랑이다. 비행기 좌석에 나란히 앉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하아, 이런 날도 있네요. 선생님과 비행기 여행이라니요. 언젠가 해주신 비행기 착륙 활강 얘기가 생각나요.
무슨 얘기지? 내가 비행기에 대해 뭘 안다고, 무슨 얘기를 떠들어댔을까?
아유, 선생님. 저 건망증 상담해주셨잖아요. 제가 왜 선생님 댁에 가기로 한 약속을 잊어버렸을 때요. 비행기가 이륙 때 고도를 높일 때와 달리 활강 시간은 길다고 하셨잖아요. 창밖은 아직 대서양 위인데 왜 이리 빨리 내려가는 거야 싶다면서요.
그런 얘길 했어? 내가?
네에. 제 나이가 그런 때라고 하셨잖아요. 막 활강을 시작하는 때요. 고도가 거의 낮아지지도 않았는데 불쾌감은 가장 크다고요. 건망증에 대해 너무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죠. 중년을 거쳐 노년으로 가는 긴 활강이고 낯선 시작이어서 그렇다고요. 정말 위안이 됐는데요.
아아, 맞다. 맞다. 어느 책에서 읽은 얘기를 해줬지? 정신 좋네. 내가 한 말도 기억이 안 나. 긴 활강의 끝에 다 와서 그래. 나는 곧 착륙하는 비행기외다. 어…. 출발한다.
네, 선생님 지금 착륙 아니고 이륙 중이십니다. 하하.
그러네. 뭐. 이제 막 이륙하다 치자. 내 인생 지금 막 시작이다. 하하. 아이고, 정 선생과 제주도를 다 가네.
그러니까요, 선생님. 너무 좋아요. 아으, 신나! K 선생님 덕분이에요. 너무 부러워요. 한 달 제주 살이라니. 요즘 제 친구들 로망인데, K 샘은 그걸 하시네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용기가 참 대단하세요. 용기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한 일인데, 남편분도 대단하시고요. 에고, 부러워라.
정 선생, 어차피 알게 될 거고 K 선생도 허락한 것이니 말할게요. K 선생 일종의 별거예요. K 선생 쪽에서는 별거고, 남편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아무튼, 그런 상황이에요. 이혼 결심한 지 좀 됐는데, 남편은 완강하게 반대하고…. 좀 어려운 시간 보냈어요.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나 봐요.
네에? 상상도 못 했어요. 늘 밝고 평온해 보이셔서요. 그런 일이 있으실 줄이야. 남편분도 좋은 분 같았는데요. 성실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시지 않나요? 자녀들도 다 잘 되고, 부족할 것 없어 보였는데. 정말 뵐 때마다 늘 행복해 보이셨는데. 우리 모임에서도 그야말로 피스 메이커셨잖아요.
그러게. 남편도 그래서 당황스럽대요. 그게 문제였는지 모르지. 속은 썩어가고 있는데 꾹 참고 내색하지 않은 것.
어, 선생님. 남편분도 만나보셨어요?
실은 남편이 상담받을 수 있냐고 연락이 왔었어요. K 선생과 내 관계가 있으니, 다른 데를 소개했고. 그래서 겸사겸사 제주에 가는 거예요.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냐만, K 선생 얘기를 좀 들어주기라도 하려고. 마침 정 선생도 결혼에 관한 책도 쓰고, 그 분야 전문가잖아. 놀러 가는 줄만 알았지? 이제 비행기 탔으니 빠꾸 시키지도 못할 테니 알려줘야지. 에헴.
네에? 그런 거였어요? 저만 혼자 엄청 들떴네요. 민망해라. 아, 그리고 저 전문가 아녜요, 선생님. 어쩌다 보니 책 쓰고, 책 쓰고 나니 한두 번 강의하고 그러는 거지. 제 코가 석 자예요. 아, 진짜…. 여러모로 부담되네. 비행기 돌릴 힘도 없고. 땅콩이라도 던져야 하나.
허허, 놀러 가는 마음으로 가면 돼. 나도 그런 가벼운 마음이에요. 이 좋은 봄날에 내 친구 정 선생과 제주 여행 가는 거지. 가면 재워줄 친구가 기다리고 있고. 공항으로 나와 있겠다고 했어요. 이런 상태로 혼자 지내는 게 좋기만 하겠소? 같이 좀 놀아주고 옵시다. 얘기도 들어주고.
네, 그나저나 그런 뜻이면 선생님만 가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제가 있어서 편하게 상담하실 수 있겠어요?
내가 미리 얘기해뒀어. 이제는 말하고 싶대요. 그리고 상담은 무슨! 걱정하지 말고 정 선생 평소대로 해요.
그렇다면 저도 가볍고 묵직하게, 편하게 마음먹겠습니다.
참, 말도 재밌게도 한다. 가볍고 묵직하게, 편하게…. 좋네. 사실 나는 K 선생 이런 행보가 그리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아.
네? 이혼에 찬성하신다는 말씀이세요?
아니, 내가 뭐라고 남의 이혼에 찬성하고 말고 하겠소! K 선생 부부가 평생 부부싸움 한 번 해본 적이 없다면 믿겠어요? 부부싸움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겠지만. 큰 소리로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대요. 평생 바쁘게 일하던 남편이 은퇴하고 집에 들어앉은 지가 1년쯤 됐나. 더 됐나? 같이 그렇게 오래 붙어 있어 본 적이 없는데 죽을 듯이 힘들었대요. 혼자 끙끙거리다 정신과에도 가고 약도 먹고 그랬나 봐.
아아…. 혼자서요? 그러면 남편분에게 암 말씀도 안 하시고요?
그렇지.
병원에 가실 정도면…. 말을 안 한다고 남편은 모르셨나요?
모르긴 해도 그 지점이 문제라면 문제겠지. 평생 싸우지 않았다는 말이, 평생 서로 좋기만 했다는 뜻이 아니잖아요. 두 사람 다 그런 성격이 그런 데다, 신앙심도 작용했겠죠. 갈등은 무조건 죄다, 이렇게들 여기잖아요.
그건 그래요. 선생님. 드러내고 함께 해결하기보다 일단 은혜로 어떤 문제든 덮고 보려는 것이 참 안타까워요. 신앙의 이름으로 문제를 더 키우는 것 같기도 하고요.
부부 사이든, 친구 관계든, 교회 교우들 간에든 갈등을 드러내고 마주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 그래서 일단은 피하고 싶은 거죠. 그럴 때 발동하는 게 심리학적으로 방어기제라는 거 아니겠어. 나는 상담하면서 제일 어려운 사람들이 ‘신앙’을 방어기제로 쓰는 사람들이에요. 하나님, 은혜, 감사…. 이렇게 초월해 버리면 더는 뭐 말을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K 선생의 도발이 꼭 부정적이진 않다는 거예요.
아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선생님. 저번에 <디어 마이 프렌즈> 드라마 보실 때도 그런 얘기 하셨잖아요. 적당한 가면으로 포장하지 않고, 감정 다 드러내며 싸우고 화해하며 더 돈독해지는 것이 우정이라고요. 아, 그런데 그게 부부로 가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친구는 싸우고 절교했다가 다시 친해질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부부는 정말 이혼하면 남이잖아요. 그냥 남이라는 한 마디로 담을 수 없는 고통과 스트레스가 이혼의 과정이고요.
평생 상담하면서 나는 그런 결론을 내려요. 가톨릭 사제이자 심리학자인 마르틴 파도나이(Martin H. Padovani)라는 분도 똑같은 얘길 해서 반가운 적이 있었는데. 폭력보다 침묵 때문에 파경에 이르는 결혼 생활이 더 많아요. 가정불화나 이혼의 원인이 갈등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갈등 해결을 위한 갈등이 없거나, 그것을 피하려고 하다 결국 파국을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정 선생 말마따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행복한 부부로 보이는 K 선생이라서 나도 많이 놀랐어요.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싶은 거예요.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고통을 침묵으로 덮고 있다면 더더욱.
맞는 말씀인데, 나도 청년들에게 헤어짐을 두려워하는 한 좋은 연애할 수 없다고 말하긴 하는데 어려운 일이다. 갈등을 드러내고 갈등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모른 척 덮어두고, 느끼지 않아야 살아지는 것이 결혼 아닌가. 졸혼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소설가 이외수 선생 부부의 졸혼 뉴스가 나왔을 때, 친구들 분위기가 그랬다. 나도 하고 싶다, 졸혼. 그동안 맞춰 사느라 충분히 애썼으니 이제 좀 편하게 살고 싶다, 그런 얘기들이 오가곤 했다. 신앙이 있는 친구나 비신자 친구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때 입담 좋은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 이 말이 무서워서 이혼은 생각지도 못하지만, 졸혼은 어쩐지 좀 나은 것 같다나. 치명적인 죄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에 다들 웃고 동의했던 것 같다. 그때 결혼의 민낯을 새삼스레 확인했다. 이혼이 아니라 졸혼이라면, 그래서 종교적 죄의식이나 도덕적인 책임을 피할 수 있다면? 마지못해 유지하는 결혼보다는 졸혼? 그거 괜찮네. 휘청,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아, 그게 아니고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가 흔들리는 거였다.
어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해? 왜? 아무래도 잘못 따라나선 것 같애? 가볍게 묵직하게 편하게 놀고 오자니까.
그게 아니고요. 선생님 혹시 졸혼이란 말 들어보셨어요?
그럼, 이외수 씨가 공개적으로 졸혼을 했잖아요. 얼마 전에 그걸 다시 취소했다지 아마? 이외수 씨가 병으로 쓰러지면서 부인이 취소했다지요? 그게 왜? K 선생한테 이혼 말고 졸혼을 하라고 할까?
모든 갈등을 다 드러내고 살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 뉴스가 나왔을 때요, 친구 중 졸혼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할 수만 있다면 다 하고 싶다는 거예요. 좋아서 유지하는 결혼이 없는 것 같았어요. 저는 나름대로 결혼에 만족하는 상위 5% 부부라는 자부심이 있거든요. 아니, 음…. 있었었었거든요. 그런데 저도 그때 졸혼이란 말에 끌린 거예요. 남편이 싫은 건 아니지만, 편하게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인지 어쩐지. 문득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까요 제가, 저희 부부가 행복해서 행복한 것인가,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행복한 것인가 싶네요. 외적인 평화를 위해서 덮어두고 보지 않으려는 갈등이 있나 싶기도 하고요.
성찰 병!
네?
성찰 병이라고. 심리적 영적 결벽증! 하하. 사람 참! 결혼을 유지하는 것 어려운 일이죠. 맞아요. 혼자 사는 게 쉽지, 나와 다른 사람과 마음 맞춰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어렵고말고. 그래서 내적 외적 갈등이 있는 거고. 그걸 어떻게 다 일일이 표현하고 살겠어요? 매일 싸우다 볼 일 못 보겠네. 졸혼에 환호하는 친구들 마음, 충분히 이해되는데?
아…. 저도 뭔가 결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사실 요즘 남편에게 쌓인 게 하나둘이 아니거든요. 갈등을 덮어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요. 집에 가면 싸워야겠다, 제주살이 선언이라도 해야지, 생각이 오락가락하고 있었어요.
엄한 부부 사이를 쑤셔놓는 게 됐구만. K 선생 얘기하는 거예요. 착하게 신앙생활에 충실한 사람이잖아요. 분노나 섭섭함 같은 것을 표현할 줄 몰랐던 거예요. 아니, 표현 이전에 인식을 못 한 거지. 감정이라는 게 에너지거든. 특히 분노 같은 감정 말이에요. 참는다고 없어지면 참 좋은데, 그 왜 열역학 제1 법칙이라는 게 있잖소.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 에너지는 스스로 소멸하지 않아. 참고 인내하는 것은 미덕인데, 참아서 없어지면 참 좋겠는데,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지. 억압해서 압력받은 것은 언제 어디선가는 터지고 만다는 거예요. K 선생의 갑작스러운 이혼 선언이 그런 것 아니겠어?
그렇다면 에너지가 너무나 오랜 시간 고여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K 선생님의 상황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픈데 어쩐지 절망적으로 다가와요. 선생님께선 부정적으로만 보이진 않는다고 하시는데….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을까요? 느낌적 느낌으로는 K 선생님은 어쨌든 더는 남편과 함께하기가 싫으신 거잖아요. 한 공간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으신 거잖아요.
그러게. 현재로선 그런 것 같아요.
비행고도 때문일까. 가슴이 답답해 온다. 최 선생님께선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걸까? 이혼 선언이 부정적이지 않다면 K 선생님에겐 지금 이혼만이 답인가? 아니면 무슨 다른 대안이 있다는 걸까. 60을 코앞에 두고 수면 위로 떠오른 갈등이라니. 평생 묵은 갈등이라니. 너무 늦은 것 아닐까? K 선생님은 어떤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최 선생님의 달관한 듯한 말씀에 마음이 갑갑하다 못해 화가 나려는 것 같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인생에 대해 했다는 말이 있어. 인생이란, 처음 40년은 본문을 갖추고, 나머지 40년은 거기에 주석을 다는 거래요. 주석이 없다면, 본문에 담긴 의미를 올바르고 이해할 수 없다는 거야. 인생 후반에는 살아온 날에 대해 주석을 달아야 한대. K 선생을 비롯해서 대부분 부부 관계가 그렇지 않은가 싶어요. 분명 뭔가에 끌려 결혼했을 거예요. 살다 보면 사람의 이면이 보이고, 어떤 식으로든 충돌을 하죠. 처음엔 싸우기도 했겠지. 사람 안 바뀌니까, 포기하고 또 사는 거예요. 아이도 키워야 하고…. 그렇게 살다 중년을 맞고 은퇴의 시기가 돼요. 내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거야.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생의 후반기에는 살아온 날을 반추하며 성장하는 거예요.
반추라면요?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한 회개랄지, 그런 걸까요?
글쎄, 잘 하고 잘못하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잘못 살아왔다고 해서 그것을 지워버릴 수는 없는 거니까. 정 선생 말처럼 K 선생이 너무 늦게 자기감정을 만났다고 칩시다. 이혼하든 계속 살든 삶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을 위해 그렇게 참고 살아왔을까? 그렇게 살아서 이룬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또 무엇이고? 이런 질문을 해보는 거지. 중년 이후 노년으로 가는 삶의 과업이라고 생각해요. 이제껏 살아온 삶에 주석을 다는 거지.
아…. 이혼의 문제가 아니군요.
그래, 다행히 남편도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상담을 요청해오지 않았소. 참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두 사람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각각 돌아보는 거지. 정 선생, 사람 감정이 또 아주 재밌는 것이, 삼라만상이 그렇듯 고정된 게 아니라우. 우리가 같은 강물에 몸을 두 번 담글 수 없듯이 감정은 계속 변하고 흘러가거든. 정 선생, 제주도 여행 간다고 신나던 감정 어디 갔어요?
그러게요? 그 감정 다 지나갔죠. 지금은 답답하기만 하네요.
허허, 거 봐. 나는 이게 인간 소망이라고 봐. 우리가 힘주고 버티지만 않으면 변하고, 바뀌고, 흘러가거든. 그 사이에 하나님의 자비가 흘러드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지금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몰라요. K 선생 마음이, 그 부부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겠소. 그래서 우리 기도에 소망이 있는 것 아닐까?
아아…. 엇, 선생님 웃긴 생각이 났는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남편과 싸우잖아요. 싸움보다는 늘 저의 일방적 공격이긴 하지만요. 그런 날은 부러 말씀 묵상도 기도도 안 하는 거예요. 말씀 보고 기도하면 꼴 비기 싫은 마음이 사라질 걸 알거든요. 기도하나 봐라, 기도하나 봐라, 하면서 기도하는 자리 째려보면서 왔다 갔다 해요.
허허허, 그냥 다니지도 않고 째려보면서 다녀? 에고, 재밌다.
진짜 진리네요! 선생님. 감정은 끝없이 변하는군요.
그럼, 흘러가는 감정 붙들고 있는 게 몹쓸 고집이지. 내가 바뀌나 봐라! 너를 싫어하기로 한 내 생각도 바꾸지 않을 거야! 이렇게 힘주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어떻게 흘러 들어가겠어? K 선생은 지금 자기 결혼이 대단히 잘못됐고 이걸로 끝이라 여기는지 모르겠는데, 실망만큼 좋은 시작이 없어요.
아오, 선생님 그런데요. 좋은 시작은 좀 그래요. 너무 낭만적? 음…. 이상적인 말씀 같아요.
아까부터 불편해 죽겠지? 현실 모르는 혼자 사는 노인네의 허황한 희망 같아? 하하.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어요. 카를 융(Carl Jung)이 말하는 남성 안의 여성, 여성 안의 남성 기억 안 나요?
알죠. 여성의 무의식에는 남성성이 숨어 있고, 남성의 무의식 안에는 여성성이 있다고요. 그것을 잘 통합해내야 온전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요. 지금 두 분은 여성성 남성성 문제는 아니잖아요.
글쎄, 아닐까? 갱년기에 어때요? 남자들이 전에 없이 막 감상적이 되어 눈물 흘리고, 여자들이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따지는 태도 같은 거. 이전과 다른 모습 보인단 얘기 안 들어봐요?
아, 선생님. 안 들어보긴요. 일상이죠. 남편이 예전에 안 그랬는데 사소한 일에 삐지고 그러는 데 정말 당황스럽고 죽겠어요. 제 친구 남편은요, 마초 같은 남자거든요. 요즘 트로트 들으며 가사에 감동해 눈물을 그렇게 흘린대요. 친구가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고요. 너무 꼴 보기 싫다는 거예요.
하하하. 그래, 남성 호르몬이 줄면서 여성 호르몬이 더 발현하는 거지. 남자로 살아오느라 회피하거나 묻어두었던 여성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신호라고 해요. 여자도 마찬가지고. 카를 융이 말하는 중년 이후 통합과 성장이 또한 그런 의미야.
아, 갱년기에 그런 큰 의미가!
융은 그래서 이때의 위기를 영적인 삶으로의 초대라고도 해요. 이제 비로소 나로 온전히 살아가는 시작이 되는 거지. 이혼하고 안 하고보다 중요한 건, 평생 남편에게 기대하던 것을 거둬들이고 내 안에 있는 남성성을 어떻게 건강하게 살려낼 수 있는가 하는 거야. 내 인생 본문의 주석을 다시 쓰는 일이라 할 수도 있고. 장담컨대, 생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거에요. 이래도 좋은 기회가 아닌감? 야아아, 벌써 제주도다! 긴 활강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