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던 성수기이다. 전국의 교회 청년부들이 여름 수련회를 하는 8월 15일 어간에는 강의 요청이 쏟아지곤 했다. 한참 전 약속된 첫 번째 강의 이후 오는 초대는 모두 거절하게 된다. 성수기 강사료 규정을 만들어 볼까, 성수기 해수욕장의 바가지요금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그런 농담을 했던 적도 있었지. 아득한 기억이다. 코로나 이전, 3년 전의 일이니까.

마스크를 써야 하고, 알아서 거리 두고 격리해야 할 것 같은 시절이지만 조심스러운 대면 수련회가 열리고 있다. 모처럼 8월 15일 성수기 강의를 했다. 뻔한 강의 주제, 뻔한 레퍼토리이지만 듣는 사람이 바뀌니 같은 얘기를 새로운 것처럼 하고 다닌다. 강사의 운명이다. 같은 얘기를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아서 나름대로 이렇게 저렇게 순간 마음이 이끄는 대로 떠들어 보지만, 결국 비슷하다. 뻔한 내 존재 안에서 나오는 말이니까.

희한한 것은 같은 강의안을 가지고 같은 사람이 같은 얘길 하는데 청중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이다. 강의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 내 마음 역시 극과 극으로 다른 경우가 있다. 마음과 영혼까지 풍성해져 콧노래 부르며 운전하게 되는가 하면, "이제 정말 마이크 꺾어버릴 거야! 이 나이에 무슨 아들 딸 같은 아이들에게 강의야, 오늘로 끝이야." 온갖 지옥의 시나리오를 써가며 집에 돌아오는 날도 있다. 자아 팽창과 자기혐오의 극단을 오가는 병증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강의 후 만족감이나 성취감은 청중에게서 온다. 청중이 나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한다.

언제던가, 생각지도 않았는데 강사로 막 불려 다니기 시작할 때, 말하자면 초심일 때가 있었다. 초심은 엄청난 자의식이었다. 강의 한 번으로 청년들을, 여성들을,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또는 환상. 나름대로 지난한 체험의 고백을 강의에 담기 때문에, 내 경험을 비추어 당신들도 이렇게 해보면 자아가 막막 바뀔 것이다! 과장하자면 이런 열정과 환상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강사는 상수이고, 변수는 청중이다. 강의 듣는 개개인이기도 하고 청중이라 불리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억지 수치를 내볼까? 상수인 강사 30%, 변수의 청중 40%, 알 수 없는 힘 30%. 이 정도로 해보자.

여하튼 하고자 하는 말은 같은 강의 내용의 강의를 며칠 차이로 하는데도 그 끝이 다르더라는 것이다. 한 번은 폭망 한 느낌으로 메마른 마음이 되고, 한 번은 기쁨으로 가득 채워져 돌아오게 되고. 그러니 큰 틀에서는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강의를 잘해서가 아니라 준비되어 은혜받는 것이라 여기고. 또 내가 강의를 못했다기보다는 그 순간 청중과의 주파수가 잘 맞지 못했다 여기고. 강사로서 나는 뻔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나의 이야기는 "The way" 아닌 "A way"일 뿐이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가 닿을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갔다 반사되어 올 것이겠고. 강의 한 번으로 사람이 바뀌면 세상 무엇이 어렵겠는가.

그럼에도 어쨌든 기분 좋은 날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생명의 에너지가 넘친다. 강의 마치고 사진을 찍는데 "몰아주기"가 아니라 "받쳐주기" 콘셉트이다. 자기를 망가트려 몰아주는 방식이 아니라 키 작은 강사보다 키를 더 낮추고 받쳐주기. 이것 참 마음에 든다. 강의도, 모든 관계도 서로 받쳐줌으로 서로에게서 선함을 끌어낼 때 최상이 되는 것 아닐까 싶다. 내 앞에 있는 존재를 받쳐주어서 그가 가진 선함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그런 강사, 상담가, 사람이고 싶네. 받쳐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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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인 미사 나음터 벽에는 '치유의 실'이라는 작품이 걸려 있다. 개소식 전에는 흰 캔버스에 금빛 못이 번쩍번쩍 박혀 있었다. 지금은 붉은 계열의 실이 못과 못 사이를 이어 멋진 작품이 되어 (가고) 있다. 고립된 한 사람, 물론 그 시작은 나다. 고립되어 외롭던 나. 그런 나들을 연결하는 치유의 실이 되고자(그러고 보면 실도 나네. 아니다, 실은 성령이신가? 성령과 나의 합작인가?) 하는 뜻을 담았다. 연구소를 통해 사람들이 연결되는 것, 이보다 큰 보람이 없다. 나와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고, 참가하신 분들끼리 읽고 쓰는 모임을 이어가다, 나를 빼고 더욱 친해지고 연결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 한없이 기쁘다. 자랑하고 싶어서 연구소 페북에 있는 후기를 가져왔다.  

 

 

모니터 안에서만 만나온 여말몸글(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 치유 글쓰기 모임) 벗들을 실물영접한 날의 기록입니다. 두번째 책나눔을 마치면서 '우리 한 번 만나요!' 누군가 당긴 불에 대동단결하여 활활 타올랐어요. 1박 엠티까지로 번질뻔 한 불을 하루 소풍으로 워워~ 자제했고요. 얼마전 이사한 들꽃의 초대로,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춘천으로 출동. 기차 한시간 타고 갔는데 글쎄 거기서 산토리니와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게 될줄이야! : ) 게다가 오랜 비로 어둡던 하늘이 그날 하루 내내 얼마나 파랗던지요. 삼사오십대 여성 네 명의 찐한 수다가 해질녁까지 이어졌네요. 이른 아침부터 깜깜한 밤까지의 오랜 외출이 몇년만인가 하는 육아맘 바람에게 특히 선물 같은 날이었구요. 플로리다에 사는 솔직이는 아쉽지만 영상통화로 합체했어요. 들꽃의 완벽한 가이드가 빛났고, 살짝 서먹할뻔 한 첫만남부터 웃음을 불러일으켜준 편지는 아래와 같은 후기를 남겨주었어요. 글과 책으로 연결된 우리의 내적여정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왕언니인 그대로는 그저 두근두근할 뿐입니다. 더 할 말이 많아서 입이 근질근질한데 요정도로 맺습니다. 다음 책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마칠 때 다시 소식 전할게요.

우리는 약 1년 동안 수치심, 영적가면을 벗어라 등 책으로 내면을 탈탈 털어서 성찰하고 자기를 만나가는 그런 이야기를 나눈 찐 친구이기 때문에 줌으로 만났어도 속앓이도 다 아는 사이라서 직접 처음 만난 사이지만 참 친밀감이 있었다. 어제의 여운이 정말 정말 오래 남는다. 오늘도 그 기운으로 하루가 가득 행복해질테다. 내안에 깊은 어두움에 침잠해서 나를 깍아내리고 뭐라고 나무라는 내 안의 소리가 작아졌다._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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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다녀와 바로 두 권의 책을 주문했다. 여러 모로 이례적인 일이다.

'좋은 강사'들과의 만남을 코스타의 유익으로 꼽는 강사들 얘길 많이 들었는데, 나는 별로 누려보지 못한 유익이다. 올해는 전체 집회 메시지를 맡은 탓에 첫날 둘째 날 시간을 텅 비웠다. 덕분에 잠시나마 강사들과 대화할 여백이 있었다. 두 분 강사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려서 돌아와서 바로 책을 주문하여 읽었다. 코스탄 아닌 강사에게 끌린 것이 이례적인 것이고, 두 강사 모두 남성이라는 것이 이례적인 것이다. 코스타와 상관없이 개신교인 남성 저자의 책을 읽어본 지가 언제던가.

결론은 사람 못지 않게 두 책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책으로 감동받고 실물영접한 저자에게 실망하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그리고 사람 만나서 좋았으면 그만이지, 사석에서 만난 사람의 책이 궁금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 헌데 사석에서 만나 인간적으로 끌린 사람의 책이 궁금했고, 읽고 나니 사람이 더 좋아 보이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기꺼이 불편한 예배>의 저자 김재우 선교사님은 코스타 준비하며 전체 집회 강사 모임에서 처음 봤다. 아, 그전에 페이스북에 <슬픔을 쓰는 일> 리뷰를 올리신 것을 친구가 공유해줘서 본 적이 있다. "진짜 괜찮은 분"이라는 소개를 들었다. 전제 집회 강사 모임에서 잠시 만났는데 친구의 말이 뭔 말인지 알겠는 첫인상이었다. 코스타에서 실물 영접하고 보니, 더욱 그러했다. 곡절 많았던 코스타였는데, 함께 참석했던 채윤이와 연구소의 다슬 샘이 "시카고 천사"라고 부르는 분이다. 내게는 물론 다슬 샘과 채윤에게도 천사였다. 저자를 알기 전 <기꺼이 불편한 예배>라는 책 표지를 여러 번 보았었다. 제목이 "예배"라서 '기꺼이' 패스했었다. 남성 저자라니 더욱 '불편하여 기꺼이' 패스할 이유였고... 읽어보니 예배가 아니라 환대, 사역이 아니라 사랑을 사는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괜히 "시카고 천사"가 아니었구나 싶었고. 편견과 오만을 회개한다.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의 저자 최종원 교수님은 몇 년 전에 성서한국 강사실에서 마주한 일이 있다. 이후 근거리 남성 목회자들이 하도 책에 대해 왈가왈부 하고, 요란스러워서 진즉에 패스했었다. 남성 신학자의 책은 거르고 보는 나만의 루틴도 있었고. 이번에 만나고 알았다. 신학자가 아니라 역사학자라는 것을. 진심으로 미안했다. 프로필 한 번 제대로 읽지 않고 신학자로 낙인(?) 찍었다니! 짧은 대화를 나눴는데 인간적으로 끌려 책을 봐야지 싶었다. 페이지마다 공감하며 읽었다. 코스타 세미나 강의 파일을 받아 들다 끌린 이유를 깨달았다. 자기 한계를 알고 인정하는 학자의 글과 태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신이 쓴 책을 구매한 독자층을 분석하며 2,30대 여성 독자를 품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인식할 뿐 아니라 인정까지! 역사학자를 신학자로 오해했던 무지, 남성 신학자라 낙인찍고 패스한  편견, 그리고 오만을 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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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에서 “사랑하면 보입니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들었다. 요한1서 4:7-21 본문이다. 설교에서 인용된 도종환 님의 시 “배롱나무” 한 구절이 작은 사랑의 불꽃이 되었다. 설교에서 그 시를 마주한 이후로 온 세상이 배롱나무다. 무슨 마법 같다. 배롱나무가 이렇게 흔한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 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론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중략)
늘 다니던 길에 오래 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사랑의 신비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하셨고, 당신의 모습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으니, 사람 영혼의 재료가 사랑일진대. 내 영혼에는 사랑의 기본값이 있지. 그렇지! 오랜만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설교 후에 찬송가 314장을 불렀다. 2절 가사가 목에 걸려서 넘어가질 않았다. 이전에도 부를 때마다 늘 조금씩 불편했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 위에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내 비록 주 믿는 성도 중 하나이지만, 이런 차별적 사랑을 받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불편해졌다. 이런 찬송 가사가 얼마나 많은가. 나 아닌 누군가를 ‘죄인’이라 이름 붙이고 타자화하는 이런 식의 찬송 가사며 텍스트가 얼마나 흔한가? 구원받은 나와 구원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 배제와 혐오에 닿는 자칭 선한 뜻 중 하나가 ‘구원받은 자아’ 특권의식이다. 그런 의미로 ‘주 믿는 성도’에게 주시는 ‘큰 사랑’은 거절하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자꾸 삐뚤어졌다. 설교로 받은 은혜를 찬송으로 다 쏟는 형국이었다.

예배 후 오후에는 젊은 부부들과 ‘육아 세미나’가 있었다. 육아 얘기를 하는데, 대화가 자꾸 자기 부모님과의 관계로 흘러간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당신들의 최선이었겠지만, 부모님께 “미안해.”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한다. 흔히 듣는 말이다. 크고 작은, 물리적이거나 정서적인 부모 폭력으로 내상을 입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그저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들으면 살겠다고 한다. 그러면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할 수 있는태도가 필요한 것 아니냐 하는 데 다다랗다. 한 자매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자각이 아이들에게 온전히 사과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어머니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낸 분이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미안해”라는 말은 끝내 듣지 못했고, 나름의 처절한 기도의 몸부림으로 비신자 어머니를 용서한 체험의 고백임을 알고 있다. 존재를 향한 ‘미안함’이 존재적 죄인에 대한 자기 자각 없이 불가능하다는 고백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자기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키우지만, 죄인인 자기 현주소를 잊지 않겠다는 말이다.

죄와 죄인을 타자화하지 않고 자기를 돌아보는 기도와 성찰이 사랑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314장 2절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이유를 안다. 구원받은 자신, 구원받은 데다가 그 누구보다 구원의 은총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아팽창에 허덕이는 사람을 안다. 그리하여 자기는 ‘큰 사랑’ 받기 합당한 성도라는 자의식이 충만하다. 구원의 강 건너편에 있는 죄인이라 이름하는 이들을 가엾게 여기며 구원자 역할을 자처한다. 가엾게 여기는 것이 겸손에 뿌리내린 연민이면 좋을 텐데, 교만과 자아팽창이니 종착지가 사랑일 리 없다. 그 사람을 잘 안다. 너무 익숙하고 잘 아는 사람이라 모른 척하고 싶을 뿐이다. 모른 척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비슷한 사람 찾아내어 손가락질하는 것이니 손가락질과 남 탓의 명수이기도 하고. 이런 찬송을 부르며 안도감을 느끼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던(는) 나다.

마침 읽은 아빌라의 데레사 <영혼의 성>에서는 이런 구절을 만났다. 기도 여정의 맨 마지막 단계, 일곱 번째 마음의 방에 관해서이다. 죄인에 대한 인식의 방향이 사랑과 혐오의 갈림길에 선 우리에게 이정표 되는 것임을 알겠다.

“이 불행한 영혼들은 캄캄한 감옥 속에서 수족이 묶인 채 공이 될 선이라고는 아무것도 못할 지경으로... (중략) 정말이지 이런 영혼들은 동정할 만하고, 한때 우리도 그런 처지에 있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서, 주께서는 이들에게도 인자를 베푸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매들이여,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각별히 마음을 써 기도하고 태만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사랑하면 보인다.
배롱나무가 보이고,
배롱나무 당신이 보이고,
내가 보이고,
죄가 보이고,
사랑이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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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더스 양념 고기들은 가격이 싸고 맛도 저렴하다. 저렴한 양념 고기를 가져다 고유하고 특별한 요리로 만드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 놀이가 작은 기쁨이다. 양념 고기 중 가장 싼 목살 양념으로 일명 "갈릭 포크 덮밥"을 만들었다. 현승이를 감동시켰다,라고 생각하지만. 현승이는 엄마에게 길들여져 맛이 있든 없든(대부분 음식이 약간의 맛은 있다!) 자동 반응을 장착하고 있다. "우와, 엄마 대박인데! 마늘향이 강하니까 정말 좋다." 현승이는 고기를 참 좋아하고, 덮밥도 좋아하기 때문에 자동 반사 반응이긴 하지만, 진심이 컸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양념 목살도 목살이지만, 갈릭을 처리해야 했다. 통마늘 사두고 미국 갔다 왔더니 꽤 많이 남아 있는데 미끌미끌 상하고 있는 것 아닌가. 더 두면 못 먹지 싶고, 깨끗하게 씻어서 약간 말려서는 굴소스 등의 양념으로 고기와 함께 구웠다. 고기 반, 마늘 반. 안 맛있을 수가 없지!


저녁 먹고 들어온 JP가 "와, 나도 덮밥 좋아하는데..." 하며 소심하게 부러움과 '먹고 싶음'을 표현. 다음 날 도시락으로 싸줬다. 마침 마늘도 딱 필요한 만큼 남아 있었고. 내색은 안 하지만 좋아서 콧구멍이 벌렁벌렁. 고기와 마늘은 어떻게 따로 데워야 하는지, 먹는 방법 자세히 설명하고 제대로 먹었는지 인증샷 보내라고 했다. 오, 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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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즐거움은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설렘인데, 새로운 것은 낯선 것이기도 하다. 늘 걷던 길을 벗어나는 것이다. 늘 걷는 길은 대체로 예측 가능하다. 저만큼 가면 大자로 누워 있는 고양이가 있고, 오른쪽 탄천엔 사람들이 많을 거고, 왼쪽으로 가서 올라가면 조용하겠지만 그늘이 없어 더울 거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도 나름의 '예측'을 장착하지만 그 예측이 모두 머리로 하는 것이다.  검색하고, 그려보고, 충분히 예측하고 떠난다. 직접 몸으로 걸어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여행은 체험이다. 인공위성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것과 직접 가서 거기 서보는 것의 차이는 얼마나 큰 것이다.

 

 

예기치 못한 즐거움과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사이를 오가는 것이 여행이다. 그 사이를 오가며 며칠 코스타 일정과, 시카고 뉴욕 여행을 마치는 마지막 날에 뉴저지에 있는 켈리 님을 만났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코로나 검사 음성 결과 확인이 필요하다. 48 시간 이내의. 손쉽게 무료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검색'을 통해 했던 예측이었는데, 그새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검사절차도 절차지만 1인당 200불의 검사 비용이 든다니! 여행 중 예측 못하는 많은 것 중에 타격감이 가장 큰 것은 사실 비용이다. 뉴욕 여행 중에 만나기로 한 켈리 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현지인 메리트에 타고난 정보 수집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해버렸다. 최소 비용으로, 자가검사 키트를 이용해 비대면 검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 검사로 얻은 결과지를 인정해주는지, 한국 당국에 메일까지 보내어 확인까지! 그리고 뉴욕 출발 당일 호텔로 와 검사 진행까지 깔끔하게 해 주셨다.

 

적지 않은 예측 불가의 사고를 경험한 여행이었다. 정말 사고였다. 출발 전날에는 일행 중 연구소 D 쌤이 공원에서 사고를 당했다. 천만다행으로 최소한의 상처를 입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사고였다. 외적인 사고만이 아니다. 내적 전쟁도 만만치 않았다. 여행의 즐거움이 적지 않았지만, 예측 못한 어려움으로 겪은 고충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코로나 검사 문제가 해결되고도 여전히 남아 있는 걱정은 "우리 양성 나오면 어떡하지?"였다. 비행기는 어떡하고, 10여 일의 체류를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설마 하나님께서 그것까지 하시겠어? 그럼 너무 하지. 겪을 고난은 다 겪었지!" 셋이서 쓸데없는 예측 수다를 주고받곤 했는데, 다행히 모두 음성! 안도의 한숨!

 

켈리는 그렇게 우리에게 선물이었다. 두 딸(채윤이와 D쌤)은 켈리 님이 뉴욕 천사라고 했다. 존재 자체가 선물이었는데, 직접 만든 카드에 세 사람 따로따로 선물을 준비해 오셨다. 이메일 한 통으로 시작된 인연이다.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을 읽고 받은 감동으로, 그 밤에 바로 보냈다는 그 이 메일이 만남의 시작이었다. 책이 나올 때마다 멀리 미국에서 구매를 하고, 응원을 보내오고. 이러다 이 분 만나는 거 아냐! 싶었는데, 정말 한국에서 만나는 역사가 생겼다. 연구소 '일일 글쓰기 강좌'를 했던 2019년 가을. 20년 만에 한국에 나가는 언니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글쓰기 강좌에 등록을 하시겠다는 거였다. 어머, 이 분은 받아줘야지! 그리고 그날 글쓰기 모임은 두 분의 글로 더욱 풍성해진 기억. 그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내가 데이트 신청을 했고, 두 분과 함께 남한산성에서 보낸 시간의 기억이 아련하다.

 

'

코로나 음성 확인까지 하고, 안도하며 체크아웃하고, 점심 대접까지 받았다. 여행객 또는 이방인으로서는 검색해서 찾을 수도 없고, 엄두도 내지 않을 식당에서 근사한 점심식사를 했다. 센트럴파크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서! 이 표현을 하자니 다시 눈가가 뜨거워진다. 2주간의 일정을 잘 지냈다고, 안팎의 사고를 잘 견뎌냈다고 베풀어 주시는 잔치상 같았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You treat me to a feast, while my enemies watch. You honor me as your guest, and you fill my cup until it overflows.)" 이번 코스타의 주제는 'Let us feast'였다. 이 아름다운 오찬으로 이방인 셋은 환대를 경험했다. 내 영혼의 잔이 넘쳤다. 켈리 님, 천사 맞다. 그분이 보내신 천사였다.

 

 

 

 

좋은 사람

Carl Jung은 '동시성'이라 하고 우리 동네에너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한다. 도모한 일이 흘러가다 누군가의 도모를 만나 내 통제 밖의 일이 되는 것. 그리고 일을 도모한 각각의 사람에겐 계획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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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쑥불쑥 엄마 생각이 나고,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고, 전화하면 받을 것 같고, 딸이여?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엄마에게 전화 걸어 한없이 울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드는가 했더니. 휴가 주간이다. 7말8초, 동생네 휴가 기간. 엄마랑 함께 보내던 시간. 밥을 차리다 깨달았다. 내가 저걸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애호박 새우젓 국. 내가 나 먹자고 저걸 만들 줄이야! 정말 엄마 음식이었는데... 나는 입에도 대기 싫은 반찬이었는데... 블로그에 있는 엄마 관련 글은 대부분 매년 7말8초에 쓴 것들이다. 다시 엄마의 계절이다. 전화 걸어서 딱 한 번만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삶의 모든 무게와 아픔이 씻겨 내려갈 것만 같다. "정신실이여?" 이 소리 한 번 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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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하룻밤_실시간 중계

'엄마'라는 애기를 키우느라 꼼짝 못 하는 동생네가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갔다. 엄마 애기를 돌보러 동생 집에 와서 하룻밤을 지낸다. 이런 일로 동생이 부탁해오면, '싫어. 얼마 줄겨?' '뭐 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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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또는 출간입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벌써 나왔는데 이제야 출생 신고하네요. 쓰고 보니 ‘벌써’가 한참 전 ‘벌써’이기도 합니다. 수년 전 나왔던 『토닥토닥 성장일기』가 『우아육아:우아한 육아는 없다』라는 새 옷을 입고 나온 개정판입니다.

『토닥토닥 성장일기』는 둘째가 태어나 네 식구가 된 때 시작하여 큰 아이를 사춘기 기차에 태워 보내며 끝났었습니다. 개정판에 몇 개의 글이 더 추가되면서 작은 아이가 성인이 된 시점까지 담게 되었습니다.

‘육아일기’라고 분류될 수 있겠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이들 자라는 얘기와 함께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엄마의 마음, 아동치료 전문가의 정체성과 제 아이 키우는 엄마 사이 분열적 고뇌를 담은 에세이도 들어가 있습니다. 저의 저작이 그러하듯 애초 출간을 목적한 글이 아니었습니다. 아이 키우는 일이 쉽지 않은데, 아이가 자라는 건 너무나 쉬우며 빠르고,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를 관찰하는 재미는 세상 무엇에 비할 수 없어서 “쓰자! 남기자! 기록하자!” 했던 것들이 책이 된 것입니다. 엉성하고 거친 수백 개의 글을 고르고 다듬어 『토닥토닥 성장일기』라는 옷을 입혀주신 (당시 죠이선교회출판부) 이성민 편집장님의 장인정신이 아니었으면 책이 될 수 없었던 흩어진 구슬 서 말이었습니다.

‘과정’으로서의 인생, ‘여정’으로서의 신앙생활을 생각합니다. 한 아이가 태어나 말 없는 존재로 누워 있었습니다. “얘는 어떤 목소리를 낼까?” 저는 사실 그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목소리로 대변되는 존재의 색깔이 궁금했습니다. 하나하나 드러나던 존재의 빛깔을 보며 느꼈던 경이로움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대가는 가혹했고요. 결국, 자라고 마는 아이인데, 키워내기 위해서 감수하고 빼앗겨야 하는 것들이 허다했습니다. 우아한 밥상까진 아니어도, 세 끼 제대로 앉아서 먹는 것은 물론 자야 할 시간에 자는 것, 그리고 꿈과 희망까지, 고귀한 소명의 삶까지 엉망이 되었으니까요. 그 모든 아픔과 기쁨을 흘려보낼 수 없어서 “일단 쓰고 보자!” 했던 것의 결과물입니다. 과정, 한 존재가 태어나 성인이 되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첫 책 서문에 썼듯 “존재가 여물어간 과정”이지요. 아이의 존재가 여물어가며 부모의 존재는 단단해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과정, 아이 하나 키우며 내 존재의 지하실 바닥을 처절하게 확인하던 여정이기도 하고요. 결국, 인생 여정이었습니다.

새로운 감각의 “죠이북스”에서 중생의 은혜를 입혀주셨습니다. 『오우연애: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연애를 주옵시고』, 『와우결혼: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두 권의 책과 라임도 맞추고 책 사이즈도 맞추어 『우아육아:우아한 육아는 없다』로요. 대단한 책은 아니지만, ‘과정’으로서의 육아, 한 존재가 여물어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라는 자부심은 생기네요. 과정, 길, 여정 위에 있는 분들, ‘호모 비아토르’들과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 학기말과 코스타 준비로 분주한 중에 책이 나왔습니다. 개정판이라 저자가 해야 할 일은 크게 없었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책입니다. 교정 보며 다 큰 아이들과 함께 읽으니 감회가 새롭대요. 그 어떤 책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차차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토닥토닥 성장일기』를 편집하신 간사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이 키우는 분에게 선물하기 딱 좋은 책입니다.  위의 글은 페이스북(2022. 7. 22)에 올린 글 그대로 입니다.

 

 

우아 육아

2016년 「토닥토닥 성장 일기」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정신실 작가의 육아 일기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솔직 담백한 화법으로 전하는 에피소드들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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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하반기 내적 여정 세미나를 전면 온라인 과정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대면 세미나 계획하며 포스트 펜데믹의 새로운 시간을 상상하며 설렜지만, 상황은 다른 말을 건네 오네요. 대면 세미나를 개설할 최소 인원이 모여지지 않는 반면, 온라인 세미나는 벌써 마감되었는데 대기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획했던 대면 강의도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몇 차례 온라인 세미나 진행하면서 열 명 남짓의 zoom 세미나가 생각보다 깊고 따스한 연결의 장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 분들이 참여하는 분들로 특별한 만남의 기쁨과 자극을 맛보기도 하고요.

“나는 누구인가, 내게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는 질문을 품고 느슨하지만 깊은 배움과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벗님들 환영합니다. 한 달에 두 번 금요일 오전에 온라인 zoom에서 만납니다.

* 토요반은 마감되었으나, 금요반 개설로 변동의 여지가 있으니 궁금하거나 도움이 필요하신 점은 문자 메시지로 문의해주세요.

평일(금요일) 과정 일정과 신청

기본 1 : 8월 19일, 26일(금) 10:00-13:00
신청 http://bit.ly/3ajDfkQ

기본 2 : 9월 16일, 23일(금) 10:00-13:00
신청 http://bit.ly/36BEA5E

심화1단계 : 10월 21일, 28일(금) 10:00-13:00
신청 http://bit.ly/3pLqqpT

심화2단계 : 11월 18일, 25일(금) 10:00-13:00
신청 http://bit.ly/39Gh7BT

영성단계 : 12월 9일, 16일(금) 10:00-13:00
신청 https://bit.ly/3rm7qib

주말(토요일) 과정 일정과 신청

기본 1 : 8월 20일, 27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36BEoTi

기본 2 : 9월 17일, 24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3amjgSC

심화 1 : 10월 22일, 29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2YAzYbe

심화 2 : 11월 19일, 26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2NMwOz2

영성 : 12월 10일, 17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3q8GogE 

 

✔ 일정 : 단계별 3시간 * 2회기

✔ 장소 : 온라인 줌(zoom)

✔ 인원 : 12명 (재수강은 단계별로 2명)

✔ 비용 : 12만 원(재수강 6만 원) / 단계별

✔ 문의 : 010-4235-8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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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주 집을 떠났다 돌아와 일상 회복 중인데, 일상 회복의 마침표는 저 녀석이 찍어주었다.

 

잠 습관이 회복되어 아침 그 시간에 일어나고, 아빌라 데레사의 <영혼의 성>을 묵상한 후 연구소 카페에 글을 올리고, 메시지 성경으로 누가복음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하고, 하나 씩 일어나는 식구들의 아침의 챙기고... 아침 루틴과 함께 일상 회복이다. 선선한 시간을 골라 탄천으로, 옆 아파트 산책로로, 주택가 골목으로 걷고 또 걸으며 익숙한 풍경을 마주하고 그새 달라진 자란 풀과 들꽃들을 마주하니 일상 회복이다. 

 

장 보러 내려가는데 저 멀리 길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저, 저 팔자 늘어진 고양이 녀석을 보니 "와, 진짜 집에 돌아왔구나!" 싶다. 쟤는 지나가는 모든 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고, 말 그대로 만인의 연인이다. 이름도 모르겠다. 연인들이 제각각 지어 부르는 듯하여 딱히 뭐라 부를 수가 없다. 나도 연인이라면 연인이니 이름 하나 지어 부르면 되겠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지가 않아서 어정쩡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름을 부를 수 없으니 대화가 쉽게 되질 않는다. "이리 인기가 좋은데 나 같은 연인 거들떠나 보겠어" 하는 심정도 있고. 

 

여하튼 제가 사랑받는 줄은 알아서 낮잠도 꼭 저렇게 길 한복판 가장 눈에 띄는 곳에서 잔다. 제가 예쁜 줄 아는 녀석. 카메라 셔터 소리에 눈도 안 뜨고 자세만 바꿔 눕는다. 자면서도 팬서비스 되는 우리 동네 셀럽. 진짜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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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 여긴 어디.

깨어서 삶을 살고 있다면 이 두 질문에 명료한 답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순간이 허다하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담긴 공간은 어디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주어진 일을 해결하는데 급급한 것이 인생이다. 중요하고 막중한 일일수록 깨어서 감당해야 하건만,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중요한 일을 존재를 망각한 채로 해치우려 한다. 막중한 일이라며 기도는 하지만, 기도하며 그분의 현존을 구하지만, 정작 내가 현존하지 못하니 그분이 곁에 바짝 붙어 계셔도 알아차려질 리가 있나.

 

이번 코스타가 그랬다. 전체 집회 설교, 그것도 최초 여성 스피커라는 것에 과몰입했던 것 같기도 하고. 집회 설교 이후 겪어내야 할 여파도 있었다. '나는 누구/여긴 어디'를 인식하지 못하고 달렸다는 것을,  다시 말하면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또 다르게 말하면 의미를 묻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설교 다음 날에 깨달았다. 청년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만남을 요청해오는 그룹(조)와 함께 식사를 하고, 세미나를 진행하는 사이 길고 짧은 상담을 했다. 눈을 맞추고 청년들의 얘기를 듣자니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인지 깨달아졌다. 코스타지! 처음 참석했던 2013년(벌써 10년 전이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부터 코스타는 '사람'이었다. 가기 전까지는 강의 준비로 조바심치지만 결국 가서는 강의는 거들뿐, 목마른 이들과의 만남이었다. 늘 쉴 새 없이 청년들을 만났고, 어느 만남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었고, 그것이 의미였다. 얼굴도 상담 내용들도 기억나지 않지만 의미 기억은 그 사람들이었다. 마지막 날 오후, 몇 사람과 눈을 바라보고 얘기를 나누니 비로소 영혼이 살아나는 느낌, 현존의 감각이 살아났다. 내가 이 사람 만나려고 왔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다. 

 

"강사님, 마치고 바로 한국 가세요?" 하는 질문에 어디어디 여행한다 답을 하는데, "어머, 저 거기 살아요." 하는 청년들이 있다. 보통 반가움은 거기까진데, "오시면 연락 주세요." 하는 경우가 있다. 그 말에 다 연락할 수도 없고 호감을 표하는 인사로 알아듣지만 어쩐지 "그럽시다!" 하게 되기도 하고. 시카고에서 한 사람, 뉴욕에서 한 사람 만났다. 여행도 결국 '사람'이니까. 두 사람 다 앉아서 얘기 나눈 곳이 카페가 아니라 공원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한가. 인생에서 몇 번이나 갈지 모를, 머나먼 시카고 뉴욕 한복판에서 불과 며칠 전까지 알지도 못했던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이내 포장지 안쪽의 마음을 꺼내 보여준다. 이것이 신비가 아니고 무엇인가.

 

위의 독사진은 뉴욕에서 만난 자매가 브라이언트 공원에서 찍어준 것이다. 도심 빌딩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원의 멋진 밤이다. 진로를 고민하던 다른 자매는 그새 딱 일하고 싶은 곳에 취업을 했다는 톡을 보내왔다. 설교하러, 강의하러 코스타에 간 것이 아니고 사람을 만나러 갔다. 나는 누구, 거긴 어디였는가 하면 사람이 있는 곳이었다. 사람을 만나러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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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뉴욕에서 실시간으로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가져옴)

 

쌍둥이빌딩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인공분수 앞에 섰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물줄기가 그치지 않는 눈물로 보였고, 음각된 이름 하나하나를 읽자니 슬픔이 밀려왔다. 하나의 이름이 아니라 한 존재, 하나의 우주인 생명임을 느낄 수 있었다. 둘레를 따라 걷는데 어느 이름, 아니 생명 옆에 흰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다. 소중한 한 생명이었을 뿐 아니라 누군가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꽃을 꽂고 간 어느 분을 위해, 여기 새겨진 사랑을 잃은 분들을 위해 기도했다. 정방형 분수를 둘러싼 관광객들 역시 성별, 인종, 몸의 생김, 소속한 국가, 가진 이념…과 무관하게 아름다운 생명이어서 음각된 이름과 다름 없는 각각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코스타 기간에 교회 한 권사님께서 호스피스로 가셨단 소식을 들었다. 아직 권사님의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지나 남편이 허락되지 않는 면회를 다녀왔다는 얘길 전해왔다. 꼭 권사님을 뵈어야겠고, 권사님 역시 자신을 기다리고 계실 거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렇게 권사님을 뵙고 손잡아 드리고 왔다고. 의식은 없으시지만 발을 만져드릴 때 반응하셨다고, 분명히 아시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소천 소식을 전해왔다.

팔십여 년 권사님 생애 마지막 6년의 인연으로 만났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하셨단 얘기, 약한 몸으로 태어나 고생이 많으셨던 얘기, 교회 분쟁을 맞기 전 성가대 봉사가 그렇게 즐거우셨단 얘기를 반복해서 들었다.  그 외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는 잘 모른다. 생애 마지막 시간 목회자의 전횡으로 인한 교회 분쟁을 겪으시고 만난 목사가 남편이다. 남편이 권사님 생애 마지막 목사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편찮으시고 두려울 때 전화하셔서 “목사님, 기도해주세요.”라고 하셨다. 권사님께서 오래 섬겨오신 대형교회 당회장 목사가 가진 아우라나 영적 능력 같은 건 없는 목사이다.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들의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기도해 드리고 위로하는 남편을 볼 때 유일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목사하길 잘 했나 봐.”

그라운드 제로에 섰던 시간에 한국에선 권사님 발인예배를 드리는 시간이었다. 조용히 혼자 짧게 권사님 천국 환송 기도를 드렸다. 같은 시간 모마 미술관에 가 있던 벗이 사진을 보내왔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를 켜고 기도 드렸다는 메시지와 함께. 저 눈물같은 분수와 불 밝힌 초에 권사님의 생명과 사랑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담는다.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의 슬픔에 잇대는 기도를 담는다.

한혜숙 권사님, 감사했고 사랑합니다. 머지않은 날에 천국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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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미주 코스타 참석하고 얼마간 여행 일정을 마친 후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전체집회 말씀 전하던 화요일 밤(한국은 수요일 아침)에 여러분들이 함께 기도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도 덕분에 사명 완수했습니다. 사명이란,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명' 같은 거창한 단어는 떠올려보지도 못하고, 순간순간 감정의 파도에 떠밀려 다녔을 뿐입니다.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올린 글에 애정하고 존경하는 신소희 수녀님이 남기신 댓글로 관점이 전환된 것입니다.

"신실 샘, 사명 완수 후 NY에 계시다니 참 감사하고 기쁩니다!"

마음에 가득하여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을 하는 것. 그것이 사명의 전부입니다. 그로 인해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감동을 주는 것, 돌아오는 인정과 칭찬, 그 반대의 것들까지 '사명 완수'와 상관없는 것입니다. 블로그로 연결되어 기도해주신 벗님들께 깊은 감사드리고, 기도에 부응하여 사명 완수했음을 보고 드립니다.

 

그리고 아래는 코람데오닷컴에 실린 기사이고요.

 

2022 미주 코스타, 역사상 처음으로 평신도 여성을 저녁집회 강사로 - 코람데오닷컴

2022 미주 코스타가 \'오늘 여기 함께 Let Us Feast\'라는 주제로 7월 4일(월) - 7일(목) Wheaton College, IL에서 개최되었다.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수련회가 진행되었으나, 올해에는 상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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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참석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에 갑니다. 탑승하고 휴대폰 끄며 온라인 연결이 끊어진 이후 새벽 2시에 맞춰 포스팅되도록 예약 걸어두겠습니다. 이후 30 시간 쯤 후에는 가장 멀게 지구를 돌아 시카고에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살아 있을 게요.

전체집회에서 말씀을 전해야 하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출국 한 주를 앞두고 가장 어려운 시간, 남편이 코로나 확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미 앓고 지나왔지만, 재감염 우려 때문에 집에서 격리하지 않고 밖을 돌고 있습니다. 하필 이때 확진이라니! 좀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설교문을 완성해서 보냈는데. 징징거리고 싶은 입에 자물쇠 채우고 로봇처럼 글을 썼습니다. 몸이 근질거려서 보니 다리부터 발진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설교문을 보내고 난 다음 날에는 발진이 얼굴까지 올라왔습니다.

막막한 마음으로 아침 기도 하는 중 누가복음 2장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기도가 영혼 깊은 곳에 들어와 메시지성경 버전의 본문을 써서 책상 옆 창에 붙이고 기도합니다. 인간 이성으로 1도 이해되지 않는 일에 순종하는 마리아의 수동성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어느 신부님께서는 ‘창조적 수동성'이라고 하셨습니다. 무력하거나 게으른 수동성이 아니라 ‘창조적’ 수동성, 구원을 잉태하는 수동성입니다.

머리는 준비하지만 몸과 마음으로는 계속 도망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서 나를 믿어주시는데 나는 나를 믿지 못하고 비천한 나만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 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제 마음에 하나님 외 누구도 '갑'으로 세우지 않겠습니다. 지난 코스타에서 만났던 청년들의 눈만 생각하겠습니다. 저의 이 작고 비천한 존재 안에서 그분이 길어 올리실 것이 있으면 길어 올리시라고. 주의 여종이오니 마음대로 쓰시라고 드리고. 제 영혼 하나님 앞에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마리아의 찬가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목요일에는 지도자과정 종강이 있었습니다. 포트락 파티로 먹을 것이 풍성하고, 먹을 것만큼이나 한 학기 지나온 선생님들의 나눔이 아프고 기쁘고 고맙고 자랑스럽게 풍성하고요. 마치고는 연구원들이 깔아준 "환송의 수다" 멍석에서 온몸 열꽃이 피었어도 다 빠져나가지 못한 것들을 말로 내놓았습니다. 연구원들, 나음터에 연결된 벗들, 동생들, 교회 집사님들이 보내오는 따스한 격려, "기도하겠다"라고 굳게 다짐해주는 마음들로 힘을 얻습니다. 어제 아침엔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었습니다. 좋은 날씨에 사야 할 것들을 사러 다닐 수 있었습니다. 밤에 채윤이랑 올리브영에 다녀오는데, 하늘 빛깔 하며 눈썹 같은 달이 조화롭습니다. 사진 찍고 나중에 보니 하늘에는 달, 땅에는 그린라이트 이것도 조화롭고요.

************

탑승 직전입니다. 오늘 아침 예상치 못한 일로 안팎의 조화가 깨져버렸습니다. 미리 써둔 이 글 다시 읽으니 사람 마음 하룻밤 사이 이렇게 멀리 올 수 있는 건가 싶습니다. 막막함의 끝입니다. 아직도 끝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도망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몫을 하겠습니다. 기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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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뷰  (0) 2022.04.01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0

 

 

여행의 묘미가 있다.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풍경을 만나는 기쁨의 순간이 있다. 여행뿐이랴, 삶에도 가끔 들이닥치는 그런 순간이 있다. 반면 고난 또한 늘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것이 인생이고 여행 역시 그러하다. 34, 최 선생님과의 제주여행도 그 단순한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상상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었고 동시에 생각보다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긴 시간 함께 지내다 보니 선생님도 노인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었다. 우리 엄마나 시어머니께 느껴지는 살아온 날이 만들어낸 고착이랄까, 그런 것 말이다. 가끔 한 번씩 뵐 때는 몰랐던 점이다. 어쩌면 모르고 싶었는지도. 내 마음속 최 선생님을 좋은 노인의 표상으로 만들어 놓고 지나치게 긍정적으로만 보려는 면이 없지 않았었다. 선생님 역시 그 부분을 불편해하셨었고. 사나흘 함께 지내며 먹는 것, 움직이는 것 등으로 자잘한 갈등이 있었다. 그 정도는 괜찮았다. 마냥 긍정적으로 보는 환상 속 헛헛한 만남보다는 불편한 진실을 품는 것이 진짜 친밀함이니까.

 

신앙으로 도망가지 말아야

 

생각은 대략 정리되었는데, 감정이 생각의 속도를 따라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K 선생님과 마지막 식사 후 공항 주차장에서 헤어졌다. 비행기 탈 때까지 함께 있겠다는 걸, 나도 최 선생님도 이심전심으로 만류했다. 충분히 함께 시간을 보냈고, 모르긴 해도 며칠 지극정성으로 우리를 접대하느라 애쓰셨는데 어서 돌아가서 쉬시면 싶었다. 한 손 흔들며 환하게 웃는 모습은 잠깐, 스르르 멀어지는 자동차 꽁무니의 여운이 길다. 최 선생님과 단둘이 남아 수속을 마치고 카페에 앉았다. 뭔지 모를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어쩐지 마음의 거리가 한참 멀어진 느낌이다. 나만의 느낌일까, 선생님도 그러실까? K 선생님과 더 있을 걸 그랬나.

 

선생님, 피곤하지 않으세요? 어제 바로 잠이 드셨어요? 이따 비행기 안에서 좀 주무세요. K 선생님 혼자 돌아가시는 모습이 영 마음이 안 좋네요. 복잡한 마음으로 혼자 계실 생각하니 제 마음이 다 막막해요. 며칠 전에 제주 도착해서 봤던 그 밝은 얼굴이 아니시니 마음이 그러네요.

어허, 그으래? , 자기 마음에 있는 대로 보인다더니. 그렇구나. 나는 한결 가벼워 보이는데. 운전하고 나가는 게 힘이 있어 보이고.

어머, 선생님. 저는 주차장 빠져나가는 K 선생님 뒷모습에서 슬픔을 봤는데요. 선생님은 힘을 보셨군요. , 재밌어요.

그러게. 제 안에 있는 것만 보이고, 있는 대로 보인다더니. 그나저나 정 선생 수고 많았어요. 노인네 맞추랴 K 선생 배려하랴, 막내 노릇 하느라 힘들었지?

? . , 아니 뭐. 힘들긴요. 저야 뭐 한 게 있나요. 맛있는 거 먹고 조.... 좋았죠.

허허, 그런데 왜 말이 이렇게 떠듬떠듬이야? 정말 힘들었구나!

 

, 진짜 최 선생님 귀신! 무슨 마음을 도통 속일 수가 없다. 선생님도 모르진 않으셨구나. 마음을 알아주셔서 그런가? 눌러뒀던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다. 다름 아니다. K 선생님이 가볍고 편안해 보인다는 말씀에 어떤 버튼이 눌린 것 같다. 나와 생각이 달라서는 아니다. 아니, 솔직히 그 다름이 힘들다. 생각해보니 내내 쌓이던 미세한 스트레스가 어젯밤 대화에서 극에 달한 것 같다. 셋의 대화 중 최 선생님과 다른 내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 아니, 나와 다른 최 선생님의 생각이 불편했다. 두 분 얘기에 일일이 끼어들기도 뭐하고 해서 참은 말이 많다. 참나, 그렇게 K 선생님을 몰아세우실 때는 언제고. 사람 속을 다 휘저어 놓으시고는 편해 보인다니, 불편감의 봉인이 풀렸다.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에잇, 나 못 담아둬.

 

선생님, 저는 어젯밤 그렇게 대화를 마친 것이 불편해요. 제 마음이 그래서 제 눈엔 그렇게 보이나 봐요. 위로하고 도우러 왔는데 마음만 헤집어 놓고 올라가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선생님은 K 선생님이 정말 괜찮아 보이세요?

허허, 글쎄. 어젯밤 대화라. 어느 지점이 불편했을까? 어떻게 대화를 마쳤더라?

아니에요. 선생님이 괜찮으시다면 괜찮은 거죠. 제가 과도하게 감정이입 해서 오버하는 것 같아요.

아닌데. 정 선생답지 않게스리. 얘기해봐요. 괜찮아. 어젯밤 대화에서 불편한 게 있었으면 얘기해봐. 여행 내내 노인네가 까다롭게 굴어서 힘들었나? 얘기해봐요. 우리 사이에 뭐 이래?

. 선생님. (울컥 눈물이 치밀어 오른다. 민망하게도) 그게. 제 생각엔 며칠 지내면서 각 잡고 얘기한 건 아니지만, 간간이 K 선생님이 살아오신 얘기하셨잖아요. 신혼 때 남편 공부하는 동안 시집살이하신 얘기, 큰 아이는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하고 시어머니가 끼고 키우셨던 얘기며... 완벽주의자 남편과 살아오신 소소한 얘기들요.

그랬지. 정 선생이 부담 안 주고 이렇게 저렇게 질문을 잘 하더구만. 그런데 그게 왜?

저는 어젯밤 K 선생님 말씀이 나름의 결단으로 들렸어요. 그간 혼자 지내며 생각해오신 것도 있겠고, 저희와 이런저런 얘기 끝에 마음의 갈피를 잡으신 것 같았거든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왜?

(왜 이리 마음이 떨리는지, 덩달아 목소리도 떨린다) ... 하나님의 뜻을 구하겠다, 주시는 마음에 순종하겠다는 말은 고민 끝에 내린 좋은 결정 아닌가요?

아하, 알았다. 내가 지나쳤지? 믿음이 뭐냐,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냐, 신앙으로 도망가지 말라고 했던 말? 그거구나!

(떨림의 정체는 분노였나. 불끈 얼굴과 마음이 달아오른다) , 좀 과하신 것 같았어요. K 선생님도 많이 당황하시는 것 같고요. 어렵게 그 마음까지 갔을 텐데, 뭔가 선생님께서 뒤흔들어 놓으시는 느낌이랄까, 선생님은 혹시 K 선생님께는 이혼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싶기도 하고요. 몰아붙이시는 거... 평소 선생님답지 않으셨어요.

 

어떤 당위 같은 환상-기도하면 남편이 변화될까

 

내 스타일은 아닌데. 정색하고 불편한 얘기 하는 거 정말 못하는데, 나 왜 이러지? 심장이 떨리긴 하는데 말이 술술 나온다. 말을 하다 보니 더욱 알아지는 내 마음이다. 신앙이 방어기제가 되면 위험하다는 말씀은 전에도 하셨지만, 어제 정말 불편했다. 자기감정을 진실하게 마주하는 것이 필요한 건 알겠지만, 그렇게 마주했는데 안 되는 걸 하나님께 맡기는 게 믿음 아닐까. 늘 스스로 나일론신자라 하시는 말씀이 농담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이성적이어서 이런 믿음의 경지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건 아닐까. , 그런데 좀 심했나? 선생님 표정이 영 안 좋으시다. 말없이 먼 곳을 바라보시다 한참 후 입을 떼신다.

 

그렇게 보였구나. 이혼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전에도 말했듯 내가 뭐라고 남의 결혼에 이혼이다 아니다 정답을 말하겠어요. 정 선생이 오해가 아닌가 싶어요. 나와 K 선생 사이에는 세월이 쌓은 신뢰가 있거든. 내가 몰아붙이긴 한 것 같아. 그렇게 보였을 수 있겠네. 하지만 내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부러 사람 마음 흔들어 놓겠어요? 그런 건 아니야.

, 선생님. 마음 상하셨어요? 말을 하다 보니. 일부러 그러셨다는 건 아니고요. , 그러니까... ... 제 말은... 선생님, 오해해서 죄송해요.

아니야. 그렇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아. 생각해보니 일부러 그런 것도 사실이네요. 하고자 하는 말은 이거였어. K 선생이 이혼 얘기를 꺼낸 건 보통 용기를 끌어모은 게 아니에요. 말했다시피 아이들 대학만 가면 이혼하겠노라며 젊어서부터 먹은 마음이고. 결국, 은퇴할 때까지 살았어요. 어찌어찌 견뎌오던 게 함께 붙어 있으면서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거지. 정말 큰 용기를 낸 거예요. 신앙도 뜨거운 K 선생 딴에는.

그러니까요, 선생님. 용기 냈고, 생각할 만큼 했고, 이제 신앙의 힘으로 결단하시겠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신앙의 결단을 하찮게 보는 게 아니야. 그거 정말 오해예요. K 선생이 뭐라고 했어요?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남편을 변화시켜 주실 거라고 했죠? 그렇게 말한 거 기억나요?

, 그럼요.

어렵사리 용기 내서 별거까지 불사한 마당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환상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남편분이 안 바뀔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내가 모르지. 이번 충격으로 바뀔 수도 있고, 해오던 관성이 있으니 충격이 가시고 다시 살만해지면 예전 같아질 수도 있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바뀌든 안 바뀌는 그건 K 선생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잖아. 기도야 할 수는 있지. 기도로 타인이 통제되면 세상살이 뭐가 어렵겠소. 하나님의 뜻이라 여겨 다시 살겠다면, 바뀌지 않을 남편을 전제하고 결단해야 한다고 봐요. 그러면 다시 살아도 희망이 있어요.

, 남편이 바뀔 거라는 환상 말씀이시군요.

물론 이번에 180도 다른 모습을 본 건 맞아요. K 선생 말마따나 천하의 구두쇠가 군말 없이 제주살이 비용 내놓는 거. 이런 거 처음이라잖아. K 선생은 이미 거기에 감동한 것 같고. 다 좋은 일이에요. 그렇게 해서 마음을 돌린다면 좋은 일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 알겠어요. 환상이라는 말씀요. 저도 대화 중에 어떤 당위 같은 환상이랄까, 그런 걸 느낀 것 같아요. 저희 부부가 함께 결혼 책을 썼다는 것만으로 절로 속내를 다 알아주고 통한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마땅히 부부가 이러이러해야 하는데 당신 부부만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좀 놀랐어요. 이 연세에도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싶었어요.

그래,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르겠네. 남편의 변화에 자기 행복이 달려 있다 여기는 순진한 마음, 그러니까 환상이죠. 이혼을 결심한 것은 자기 발로 서겠다는 뜻이었는데, 마음 돌려서 다시 살겠다고 해도 자기 발로 서겠다는 뜻마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거든. 그래, 다시 산다. 니가 변하든 안 변하든 나는 너에 연연하지 않고 나로 살겠다, 이랬으면 좋겠고, K 선생 사랑하는 내 진심이에요. 기도하면 변화시켜 주실 거라는 말은 다시 내 행복권을 남편에게 주겠다는 뜻으로 들려요. 그래서 안타까웠던 거예요. 화가 났어. 혼란스러워하기는 했지만, K 선생이 내 뜻을 알아들은 걸로 느껴졌어요. 알아들었기에 그렇게 무거웠던 거지. 제주살이로 스르르 풀린 마음에 기도하면 되겠지, 잘 되겠지, 하고 면피하려 했는데 자기 책임의 문제라고 알아들으니 무겁게 가져가는 거지요. 난 그렇게 이해해서 어젯밤 대화 마칠 때도, 지금도, K 선생 걱정이 안 돼요. 하하호호 끝나는 대화가 꼭 좋은 대화는 아니야. 진실을 말하고 듣는 것이 때로는 아픈 거예요.

, 선생님. 제가 확실히 오해했어요. 죄송해요. 말씀 듣고 보니 저도 어렴풋하게 느꼈던 점이네요. 어젯밤에 제가 피곤해서 대화를 띄엄띄엄 들었나 봐요.

그게 아니고 불편하게 듣기로 작정했던 건 아니고?

, 작정이라뇨?

노인네가 싫어서 노인네 하는 말이 띄엄띄엄 들렸던 건 아니냐고?

선생님, , 무슨 말씀을요. 싫다니요.

싫을 수 있지. 나도 어떤 때 정 선생 말 안 하고 뾰로토옹 하고 있는 게 밉던데? 하하하. 놀래는 거 봐라. 어떻게 늘 좋기만 하겠수? 우리가 이렇게 다르게 생겨 먹었는데. 또 젊은 사람이 나이 든 두 사람 함께 다니려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게 당연해. 그래서 여행 한 번 하고 친구 사이 멀어지고 그러잖아요. 같이 오래 붙어 있으면 섭섭하고 그런 게 다 있는 거지. 그래도 돼. 그렇다고 멀어지지는 맙시다.

, 선생님. 진짜, 제 맘 다 들여다보고 계시는 거예요?

뭘 들여다봐? 자기 입으로 다 말해놓고. 당신이 불편하다고 말했잖아. 하하.

 

이혼하든 다시 살든 자신과의 화해가 먼저

 

심장박동이 정상치가 되고, 붉으락푸르락 오르락내리락하던 열도 떨어졌다. 후유, 이 깊은 안도감은 뭐지? 며칠 쌓였던 불평과 불만이, 어젯밤 대화 이후 최 선생님께 대한 반발심으로 시끄럽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선생님 말씀처럼 쌓아둔 스트레스로 어젯밤 대화가 있는 그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 모든 얘기를 솔직하게 하고, 솔직하게 받아주시니 마음의 짐이 사라지고 잔뜩 울고 난 것처럼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진다. 맞아, 갈등을 마주하고 넘어서는 친밀함이 이런 거지.

 

헤헤, 다 알아요, 선생님. 다 아시면서 제 입으로 털어놓게 만드신 거요. 감사해요, 선생님. 불편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고요. 별것도 아닌 것을 그걸 속으로 꾹꾹 누르고 있으면서 슬픈 소설을 써댔던 것 같아요. 그대로 집에 돌아갔으면 그 소설이 끝 간데없었겠어요. 선생님, 느무 좋아요. 헤헤, 실망도 많이 했는데요, 그래도 좋아요.

이런, 금방 전까지 화가 잔뜩 나서 목소리까지 떨더니!

것두 다 아셨어요? 헤헤. 아흐, 이 기분 뭐죠? 잔뜩 싸우고 화해한 기분요.

싸우고 화해한 것 맞지. 그래, 화해 말이야. 이혼하든 다시 살든 화해가 먼저라고.

에이, 선생님 화해가 되면 다시 사는 거죠. 화해하고 이혼하는 게 어딨어요?

내 말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신과 화해예요. 용서라고 해야 할까? 어렵게 들릴지 모르겠어요. 환상을 버리라고 하더니 이상주의를 말한다 할 수도 있겠네. K 선생의 평생 설움과 억울함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그 지독한 시집살이 중에 몰라라 했던 남편, 할머니 품에 자란 큰 아이와의 사춘기 갈등, 그 와중에 남처럼 굴고 냉담하고 인색하게 굴며 밖에서만 호인 소리 듣는 남편. 그 고통과 외로움 충분히 이해가 돼요. 그런데 흔하고도 아픈 말이지만 관계 문제는 쌍방과실이에요. 이혼에 이르기까지 K 선생의 역할은 없었냐는 거지.

그건 본인도 인정하셨잖아요.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다고요. 그런 시어머니 돌아가실 때 병수발까지 다 해내시고, 꾹꾹 참아온 자신이 어리석다는 걸 깨달으셨다고요. 싫은 소리 안 하고 부부싸움 없이 살아온 것이 큰 자랑인 줄 알았다고도 하셨잖아요. 쌍방과실이라면 자신의 과실을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화해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른 것 아닐까 싶어. 물론 K 선생이 알기도 하고 느끼기도 해요, 분명. 여기까지 용기 있게 잘 왔지. 그런데 꼭 필요한 게 있어. 그랬던 자신에 대해서 자기가 스스로 알아주는 것이 일단 필요해요. 누가 뭐래도 그 시집살이에도 나는 시어머니에게 끝까지 잘했다. 냉정하기만 한 남편을 참아내며 이 정도 부부생활 유지한 내가 대견하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게 일단 자기와의 화해지.

,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아무리 밖에서 알아줘도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소용없으니까요. 그건 차차 풀어가실 K 선생님의 숙제 아닐까요?

맞아. 차차 풀어가야 할 것이지. 거기에 더해서, 본인 말대로 꾹 참고 살아온 어리석은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분노하거나 슬퍼할 수도 있어야 해. 남편에게 분노가 가득 찬 것 같지만, 실은 그만큼의 자기를 향한 분노도 있는 거거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젊은 날의 자신을 돌아봐야 할 필요도 있어. 더 나아간다면 그런 남편을 선택한 건 자신이거든. 되돌릴 수 없지. 이 남자와 결혼을 선택한 것도 결혼 생활을 이어온 것도 내 선택이고 내 인생이야. 그런데 그게 이혼한다고 사라지나? 자기 역사인데. 내 탓이다, 내가 잘못한 탓이다, 피상적인 회개의 말이 아니라 진심의 아파함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걸 왜 애도라고 하지 않아요? 진심의 애도가 치유의 시작이고. 그 아픔이 자기와의 화해예요. 이혼이든, 진로든, 신앙 문제든 이런 지점에서 진심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은 치유와 성장으로 가요.

, 이 지점은 정말 자기와의 갈등이군요. 남편과의 문제가 아니군요.

그렇지. 하지만 자신과 이렇게 화해가 되면, 그러니까 자기와의 관계가 달라지면 타인에 대한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내 불행한 결혼이 온전히 남편 탓이거나, 어리석게 꾹꾹 참아온 내 탓이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면 상대에 대한 원망과 분노, 또는 자기 혐오로 끝나는 거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 남편의 한계도 조금은 달리 보이지 않을까?

화해한 상태로 이혼해야 한다는 말씀은 그거군요.

, 신앙으로 이혼을 극복하는 얘길 했었는데. 나는 이 지점에서 신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저 사람을 내가 원하는 대로 변화시킬 거야하는 건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고요. 우리는 단단한 것을 먹는 어른이잖소. 스스로 사유하고 마땅히 겪어야 할 갈등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야. 내가 신앙으로 참는다고 참았는데 그게 자기 의였네. 남편도 제 고집으로 저렇듯 나를 아프게 하네. 더는 어쩔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서 주님, 어떻게 해요? 최선을 다한 한계 앞에서 신앙이 필요한 것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한편의 설교를 들은 느낌이다. “이혼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이 이런 뜻이었구나. 엔도 슈사쿠의 인터뷰에서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여러 개의 인생을 살지 못해요. 단 한 번의 인생을 살죠.” 이혼하고 재혼을 하더라도, 단 한 번의 인생이구나. 내 인생 서사를 긴 안목에서 바라봐야지 싶다. 쇼펜하우어가 했다는 말씀도 생각난다. “인생이란, 처음 40년은 본문을 갖추고, 나머지 40년은 거기에 주석을 다는 거래요. 주석이 없다면, 본문에 담긴 의미를 올바르고 이해할 수 없지.” K 선생님의 결혼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고, 주석을 다시는 중이구나. 어쩌면 주석을 다는 이 시간이 더 중요한지 모르겠다. 이 결혼이 해피엔딩일지 그 반대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결혼도. 내 인생의 주석도.

 

정 선생, 아까 말 잘했어. 차차 풀어가야 할 숙제야. 어젯밤 K 선생의 무거운 표정은 그 숙제를 제대로 이해했다는 뜻이니 응원하며 지켜봅시다. 비행기 착륙 때 활강 시간이 길다니까. 인생도 결혼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허허허.

 

 

* <시니어 매일성경> 2022년 7,8월 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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