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님께.

이제나저제나 기약 없는 끝을 기다리며 한 해를 보냈습니다. 이 무기력한 시절에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주님, 어서 이 어려운 시기가 끝나게 해주세요.” 코로나 시기 내내 이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날 문득 시편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시 94:12) 아, 그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기꺼이 징벌받아야 할 때이구나, 싶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생태계 질서의 파괴에서 기인한다고 하죠.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음터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인데요. 사람과 사람의 연결 너머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 생명들과의 연결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생태계 질서를 파괴하고 기후위기를 초래한 무분별한 욕망이 그 누구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것이었음을 아프게 인정하고 회개하고, 기꺼이 징벌받을 때이구나 싶습니다. 더불어 모든 일에서 기꺼이 징벌받고, 책임지는 나음터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지난 한 해도 열심히 사랑으로 상담하고 강의했습니다. 그러나 고백컨대, 항상 잘하지 못했습니다. 연결을 기대하고 찾아오셨다 실망을 안고 돌아가신 분도 있을 것이고, 크고 작은 미숙한 행보들이 있었습니다. 아프게 돌아보고 있습니다. 내적 여정과 영성 상담을 통해 저희가 말하고 가르치는 바, “빛으로 가는 길은 그림자”에 있습니다. 어쩌다 이룬 작은 성공이 아니라 죄 된 본성으로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일을 더욱 살피겠습니다. 가르치는 바대로 살기 위해 더욱 돌아보는 나음터가 되려고 합니다. 저희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신선한 소식도 있답니다. 어쩌다 보니 나음터가 ‘금남의 집’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 세미나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진실한 자기를 만나고, 그 여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여남 차이가 없다는 것을 기쁘게 확인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도자과정 여섯 분 중에 두 분이 남성이었고요.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 조직도 생겼습니다. ^^ 글쓰기 모임 이후 여러 후속 모임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여기서 오히려 더 깊은 배움과 나눔이 일어나고 있어서 여간 보람이 되지 않습니다.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한 분 한 분 떠올리면 감사한 일들이 많습니다.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입니다.

나음터가 그러하듯 후원자님의 한 해도 그분의 은총이 맑은 날과 흐린 날로 얼굴을 바꾸며 다가오셨을 줄로 믿습니다. 다가오시는 그분의 얼굴을 알아보는 마음의 눈이 더욱 맑아지시길 기도드립니다.

올 한해 가장 감사한 이름, 후원자님의 몸과 마음이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도드리며...

2021년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의 시간에,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드림

* 후원 계좌 : 농협 301-0240-4119-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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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말 과제를 제출하고, 후련함 대신 뭉글한 뭉클함의 하루를 보낸다. 다시 석사를 시작했다. 스물아홉에 학부 전공 버리고 대학원을 시작했을 때, 신생 학과 '음악치료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가 떠오른다. 이게 공부구나! 하고 싶은 공부는 이렇게 재미있구나! 했었는데. 쉰셋에 학부 전공, 대학원 전공 버리고 또 새로운 전공에 들어서서 한 학기를 보냈다. 이게 공부구나! 공부는 늙어서 하는 거구나! 하면서 한 학기를 마쳤다. 급하게 진행된 진학의 과정이지만, 실은 10여 년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정말 공부하고 싶었는데, 학위 과정을 하고 싶었는데 갈 학교가 없었다.

가을학기 전형에 응시하여 석사과정에 편입했다. 물 흐르듯, 그러나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이루어진 일이다. 입시요강 페이지 열어놓고 고민하는 엄마를 발견한 채윤이 질문에, 저간의 상황을 말했다. "응시해, 응시해, 당장! 내가 해줄까?" 그 말 끝에 온라인으로 응시, 필요한 서류 준비까지 다 해줬다. 편입이 불가하면 안 가야지, 했는데 편입 허락이 되고. 면접을 보면서는 "내가 가서 공부할 만한지 교수들 면접 좀 보고 올게."하고 갔는데 마음이 스르르 녹아서 끌렸고.

네, 저는 그렇게 쉰셋에 다시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영성 공부합니다. 전통적 영성에 관심이 많아서, 특히 중세 영성에 관심이 많아서 가톨릭 대학입니다.

예상된 결말이란 생각이 든다. 이 결말을 빠르게 끌어낸 것은 엄마 상실이다. 엄마 돌아가시고 뭐랄까 뱃심이 생겼달까. 하고 싶은 거 하고, 하기 싫은 거 안 하는 삶을 사는데 더욱 두려움이 없어졌다. 미움받을 용기는 물론이고, 왕따 당하는 것도 그리 무섭지 않다, 라는 것은 지금 막 쓰면서 알았다. <슬픔을 쓰는 일>에는 '허무의 강'에 떠오르는 것들을 뜰채로 떠서 갖다 버린다는 표현을 썼는데. 오랜만에 책을 들춰 보면서 아, 내가 이런 말도 했구나! 심지어 이것이 책의 결론이었구나! 놀랐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6개월 전 떠나신 엄마가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도 이것 아닐까. 삶을 살아라, 네 삶을 살아라. 내 딸아, 이제 죽음에의 두려움을 벗어나 상복을 벗고 '현재'라는 선물을 살아라. 반드시 죽을 너의 운명을 기억하되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아라!


그렇게 알아들었다. 나는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돈은 되지만 하기 싫은 일은 접었고, 코 앞의 이익은 주지만 내 영혼을 피폐하게 하는 일들은 피하며 산다. 성장에 도움도 안 되고, 힘만 드는 관계는 애써 붙들지 않는다. 부러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모두 엄마가 떠나고 남긴 선물이다. 그 선물이 나를 다시 공부로 이끌었다. 엄마가 그렇게 싫어하던 공부. "책 그만 읽어. 시집 못 가. 여자가 공부 많이 허믄 마음만 높아져서 안 되는 거여. 아이구, 시집 못 가." 엄마가 진심을 담아 하던 말이다. 엄마의 진심을 보란 듯이 팽개치고 대학원에 갔었지. 오직 결혼에 목숨 걸고 있던 엄마는 하늘이 무너졌었다. 진짜 시집은 다 갔구나!

엄마가 죽음으로 전해준 사랑의 메시지에 힘입어 엄마의 뜻을 거스른다. 천국에 있는 엄마가 잔소리 할까? "니가 지금 니 공부 헐 때여? 현승이가 고3이여. 채윤이도 아직 뒷바라지 헐 일이 많은디... 에미라는 년이 지 공부헌다고 돈을 쓰고 시간을 들여? 너어, 그르케 교만허믄 안 뒤어. 배울 만큼 배운 거 감사허고, 애들 잘 돌보고, 김서방 목회 위혀서 기도허고 그러야지. 예이, 이년아!" 이런 잔소리도 이젠 기분 좋게 듣겠지만. 낡은 정신과 몸을 다 벗은 빛나는 엄마의 영혼이 저리 말할 리가 없다. "잘혔다, 우리 딸! 우리 딸 공부 좋아허는 딸인디, 진즉 그르케 공부혀서 유학도 가고 그렸어야 허는디... 장허다. 평생 포기하지 않고 배우고 또 배우는 거 장혀. 허세로 공부허지 말고, 진실헌 공부를 혀. 우리 신실이 장허다."라고 말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첫 학기 강의들이 의도한 바가 하나도 없는데 고대 철학, 그리스 비극에서 만났다. 한 학기 동안 그리스 철학, 그리스 비극에 머물렀다. 그리고 기말 과제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들이며 '비극'에 머물렀다. 그리스 비극을 읽고 에세이를 쓰며 필멸의 존재로 불멸의 환상을 꿈꾸는 지점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비극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또 마주했다. 마지막 과제는아우구스티누스의 <교사론>을 읽고 쓰는 것이었다. 거기 나오는 '내면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이었다. 이 역시 참 신기한 것이 <슬픔을 쓰는 일> 마지막을 또 이렇게 썼기 때문이다.

삶의 비극성은 내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희망이 생기면 마음 깊은 곳에서 먼저 절망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버림받을 걱정이 앞섰다. (중략) 엄마 떠나고 시작한 애도 일기는 다시금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을 있는대로 세우고 머무는 시간이었다. 내 인생 가장 치명적인 두 슬픔, 두 죽음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새로운 죽음에 이끌린다. 저항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죽음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비로소 든다. (중략) 나는 이제 이 신비 앞에서 상복이 필요 없는 죽음을 생각한다. 나의 죽음이다. 언젠가 마주할 나의 죽음을 가슴으로 안으려고 한다. 결국 다다를 비극 또는 신비인 나의 죽음을 부드럽게 사귀어 보겠다.


내 개인사의 비극을 넘어 실존적 비극에 머물고, 거기서 내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만나는 한 학기 공부였다. 이런 공부를 하는데... 예수님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시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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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찜은 언제든 할 수 있는 쉬운 음식인데.

아이들은 무슨 꽃등심 구이가 나온 것처럼 좋아한다.

희한하지.

아이들이 환호하는 수준에 맞춰서 특별하게 만들어봤다.

먹다 남은 문어를 잔뜩 넣어 문어 계란찜을 했다.

채윤이를 감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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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앞 거대한 십자가가 씬 스틸러다.

어스름한 새벽 하늘의 신비감도,

파란 하늘 뭉개구름의 청명함도,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고 달려드는 아이 같은 마음도...

십자가, 오직 십자가로 향하게 하는...

아무 날씨 아무 풍경을 담아도 십자가, 오직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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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때문이야! 종끼아빠!

윤채김!

으, 종끼아빠!

윤채김!

 

아빠와 딸이 사랑과 신뢰와 애정을 확인하는 소리. 하루에 열 번은 맥락 없이 하는 소리. 저녁 안 먹고 늦게 들어온 아빠와 딸이 야식을 두고 마주 앉았다. "윤채김! 너는 왜 니 꺼만 가져와. 아빠도 챙겨줘." "으으... 종끼 아빠...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그리고 뭔가 조화로운 듯 아닌 듯 이어지는 저들의 대화.

 

아빠가 달라스 윌라드 다시 읽거든. 이번이 세 번째야. 아, 아빠는 영어를 못하는 게 너무 한이 돼.

왜애?

유튜브에 달라스 윌라드, 유진 피터슨 영상이 많거든... 잘 들렸으면 좋겠어.

아빠는 우리말도 잘 못 알아듣잖아. 

맞아... ㅠㅠ 그렇지. 그래도 영어 잘하고 싶다.

(엄마 난입) 내가 그 마음 알지. 나 코스타에서 마르바 던이 바로 앞에 계신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고, 심장 뛰고 그러는데...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그 심정 내가 잘 알지.

당신은 표정으로 다 말하잖아. 표정으로 하지 그랬어? 암튼 난 그래서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

뭐라고? 아빠! 영어를 못해서 빨리 죽고 싶다고?????? 

 

 

언어로 막힌 담이 허물어져 모든 영혼과 프리 토킹 하는 천국에 가고 싶다는 뜻인데...

일단 거기 가면 아빠와 딸의 소통부터 막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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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입의 어느 월요일.
이틀 전 토요일에 심방 다녀온 횡성에 가자고 했다.
꼭 걸어보고 싶은 길이 있다고.
무엇을 선택하기가 제일 귀찮은 요즘, 누가 나를 어디든 데리고 갔으면 좋겠는 요즘,
기대도 저항도 없이 따라나섰다.

막국수나 두부냐. 점심을 놓고 고민하다 막국수로 정했다.
JP이 토요일 심방 갔다 먹은 점심은 두부였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고.
아무리 맛있어도 토요일에 먹은 걸 월요일에 또 먹게 하기는 그래서 막국수로 정했다가.
또 먹을 수 있어, 또 먹을 수 있어, 라는 말에 힘입어

과감히 두부로 전향하여 정말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먹고 싶어' 아니고 '먹을 수 있어'가 영 찜찜하긴 했지만)

걷고 싶은 길, 횡성호수길에 도착했는데...
걷고 싶은데,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걸을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비가 쏟아질 것 같았고, 바람은 무지 불었고, 추웠고...
일단 들어가 보자는 말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50m 정도만 걷고
"추워서 못 걷겠어"하고 나올 생각이었다.
당당하게 걸을 것 같은 표정으로 사진은 찍어주었다.

A코스 1시간 30분, B코스 1시간 30분 걸린단다.
바람은 장난 아닌 찬바람이었다.
그 바람을 맞으며 걷자니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얼얼했다.
적당히 뒷걸음질 치려고 했는데,
얼른 도망가서 호수 바라뵈는 카페에 앉아 책 보고 놀 생각에 설렜는데..
뚜벅뚜벅 전진하며 JP가 말했다.
한 시간 삼십 분 알 걸려! A코스 금방 끝날 거야.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었다.
JP의 말이 아니라 눈앞의 풍경들 말이다.
잠바에 달린 모자를 꽉 졸라매 쓰고 나도 전진했다.

돌아갔으면 어쩔 뻔!
이런 식상한 표현은 하고 싶지 않은데...
정말 놓치면 안 되었을 멋진 풍경들이 구비구비 펼쳐졌다.
좌江우山.
이렇듯 신비로운 풍경이라니!

도망갈 마음이 싹 달아난 내 마음을 알아채고 비로소 앉아서 쉴 수도 있게 된 JP.
A코스를 다 걸었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세찬 바람에 적응도 되었다.
가즈아~ B코스.

B코스에서는 더 멋진 장면을 눈에 담았고.
마지막에 빛을 만나고야 말았다.
JP은 빛을 이렇게 담고 저렇게 담으면서 오래도록 서 있었다.

A, B 코스 다 도는데 두 시간쯤 걸렸을까?
우리가 생각보다 잘 걷는 중년이었다.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생각보다 즐겁게, 더 멀리 걸었다.
후유증은 있었다.
찬바람을 직통으로 맞은 탓인지 JP은 이석증이 재발했고, 감기도 걸렸다.
그래도, 그러나 즐겁게 멀리 걸었으니까.

그 주간에는 연구소 지도자과정 마침 피정이 있었다.
남편이 와서 마침 예배 성찬식을 이끌어 주었다.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자기 안에 고인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누어 주었다.
진심으로 고맙다.
목사인 김종필이 아니라 김종필인 목사라서 고맙고 자랑스럽다.
목회의 찬바람을 맞으며 후유증도 있지만,
후유증에 지지 않고 선善으로 후유증을 이겨나가는 JP라 고맙다.
성찬식 사진처럼 딱 저 정도의 거리를 두고 함께 걷는 인생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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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선생님이 이끄는 송년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한 해를 돌아보며 2021년에 이름을 붙여보니 "사선(死線)을 넘어"였다. 죽을 고생 했다는 뜻은 아니다. 돌아보니 올해의 키워드도 '엄마'였다. 은근하게, 더 진득하게 엄마였다. "아직도 더 울고 싶구나!" 알게 되었다. 1월부터 차근차근 돌아보는데, 6월 말 <슬픔을 쓰는 일> 출간을 기점으로 희한하게 눈물이 잦아들었다. '사선을 넘었다'는 표현은 어떤 경계를 넘어 죽음에 한 발 다가갔다는 뜻일 수도 있고, 비로소 한 발 떨어져 죽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출간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 그리고 출간 이후의 시간은 엄마의 죽음, 아니 죽음 자체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과도한 두려움으로 차마 정신 똑바로 차리고는 마주하지 못할 것이 죽음이었다. 다시 '죽음을 짊어진 삶'이란 언표를 꺼내야 하나보다. 등 뒤에 죽음의 흔적을 딱 붙이고 평생 살면서, 심지어 잘도 살아내면서 죽을 만큼 죽음을 두려워 하며 살았다. 엄마를 보내 드리고, 흑백의 나날을 살며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면서 이제 조금 죽음과 친숙해졌다.

내가 준비되자 부르는 곳이 생겨났다. 가을에는 죽음에 대한 의미있는 강의도 했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치유와 소망의 말이 되었다. '진실한 나'에게서 나오는 말이라, 그저 전한 것으로 족했다. 누구에게 어떻게 들리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는 느낌의 강의는 흔치 않다. 쓸 수 있어서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말하고 나니 다시 내 안에 새로운 것이 일렁이고, 그것들을 다시 써 내려갔다. 그러면서 사선을 넘었다.

오늘은 아버지 추도식이다. 30주기야, 30주기야. 했는데 동생과 통화하다 40주기라는 것을 알았다. 30 년이 아니고 40년이라고? 어떻게 난 아직도 40년 된 죽음에 매여 있을까? 라고 말했더니 동생도 그렇단다. "나도 그래" 내 현재 생각과 감정의 습관의 많은 것들이 아버지 죽음에 가 닿는다.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며(극복일까?) 사느라 생긴 어떤 것들이다. 상처는 존재의 무늬다,라고 한다면. 내 존재의 가장 선명한 무늬니까.

엄마의 죽음이 아버지 죽음까지 치유하고 있다. 모든 죽음을 치유하고 있다. 겨울(아버지 돌아가신 12월 16일이 있는 겨울)이 다가오면 괜히 두렵고, 더 슬펐던 그런 느낌도 흐릿해졌다. 슬프고 아파서 가지만 앙상한 겨울 나무를 쳐다보지도 못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텅 빈 가지 사이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그 여백의 아름다움에 충분히 머무를 수 있다. 40년이다. 죽을 때까지 아버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안다. 내 존재의 가장 큰 무늬니까. 이제는 조금 그 무늬가 사랑스럽다. 아버지 있는 아이인 척, 아무리 잘 연기를 해내더라고 나는 아버지 없는 아이였는 걸... <슬픔을 쓰는 일> 후반부에서 '고아 의식'이라 이름 붙이고 충분히 머무르며 할 만큼 했더니 생긴 힘이다.

아버지 없는 아이(이제는 아이도 아니지!)로 산 40년. 괜찮았다. 이렇게 말하면 그리움과 슬픔이 바짝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건 또 다른 마음의 길인 듯한데. 슬프고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괜찮았다. 엄마 아버지가 슬프고 그리울수록 죽음이 친밀하게 다가오고, 삶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니 말이다.

박미라 선생님의 송년 글쓰기에 참여한 것은 내 나름의 12월 리추얼이다. 해마다 12월이 다가오면 "피정 갈 때가 됐네"하는 소리가 마음에서 들렸다. 일상에서 물러나 침묵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왔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 역시 12월, 아버지 떠난 자리의 흔적이었다. 알 수 없는 슬픔, 외로움이 밀려와 기도하러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했던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갈 수 있는 피정이 없었다. 영혼은 메말라 울부짖는데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송년 글쓰기'이다. 피정 대신 선택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사선을 넘어 온 1년이다. 40년 전의 죽음, 1년 몇 개월 된 치명적인 죽음을 마주하고 어떻게 이렇게 잘 살아왔는지 내가 대견하다. 잘 살아오느라 참은 눈물이 많아서 아직도 한참 더 울어야 한다는 것도 알겠다. 평생 울어야 할지도. 아버지 추도식에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 사진에서 눈만 편집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니 "엄마야?" 했다. "그래, 엄마야. 우리 엄마야." 내가 봐도 내 눈 같으니... 내 눈 같은 엄마 눈과 눈을 맞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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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저녁을 못 먹겠다는 말에 죽을 주문해주고...

저녁을 준비하는데...

고기 좋아하는 현승이 약올리기 메뉴가 생각이 나서...

차돌박이 숙주볶음을 했다.

약올릴 생각을 하니 에너지가 뿜뿜.

 

으헉... 맛있겠다. 나 정말 고기에 진심인데...

 

고기에 진심이고, 통증도 진심인 현승이가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했다.

정말 아프고, 진심 먹고 싶구나. 미, 미안...

그제야 내가 뭔짓을 한 거지... 싶은데.

놀리는 거, 재밌는 거... 이 본능을 참을 수가 없다. 

현승아, 진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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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한마리 국수  (0) 2021.11.12

고3.

고3은 고등학교 3학년이란 뜻인데, 고등학교보다는 대학에 딱 달라붙은 시간이다. 현승이가 이제 고3이 된다. 일반학교에서는 진학상담, 현승이 학교에서는 '연합 멘토링'이란 이름으로 상담을 했다. 연합 멘토링이 있던 날, 일찍 학교 앞으로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지상에서 가장 맛없는 돈가스를 먹고 울렁거려서, 지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찾아 카페에 들어갔다. 돈가스가 맛이 없었던 것인지, 마음에 음식 받아낼 공간이 없었던 것인지... 돈가스는 맛이 없고, 마음엔 여백이 없었나 보다.

 

현승이 진로가 갑자기 걱정 덩어리로 다가온다. 대학은 안 가도 좋다. 가고 싶다면 어디든 가도 좋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차차 정해도 된다. 장래희망을 정하고 거기 맞는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른다고 '꿈이 없는 아이'로 볼 일도 아니다. 제 속도대로 자기 길을 찾아가면 된다...

 

라고 진심 생각하지만. 생각과 감정이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걷는 일이 드물어서 말이다. 고3을 코 앞에 두고, 대학을 가야겠다는 현승이를 보자니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파도를 친다. 카페에 앉아 체한 돈가스를, 아니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실은 무척 걱정이 되고 마음이 자꾸만 어두워진다고 말했다. 바로 '걱정근심주식회사'가 차려졌다. 걱정 하나가 걱정 둘을 끌어내고, 둘은 넷이 되고, 넷은 여덟이 되면서 현승이, 나, 남편, 내년... 이 회사의 경영방식이 문어발 식이라. 여기저기 숨어 있던 걱정이 다 커밍아웃이다. 

 

그때! 바로 그때!

 

감정 추스르고 맛있는 커피 한 모금 하려고 잔을 드는데... 이게 무엇인가! 천장 조명이 커피잔에 비쳤고, 요리조리 각도를 바꾸다 보니 노란 리본이 딱 뜬다. 메시지구나! 이건 메시지야! 기억하라고 한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그때 그 시간을 지내며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하며 했던 결심들을 떠올리라고 한다. 어떻게 살기로 했는지, 진도 앞바다에서 잃어버린 생명들이 살지 못한 삶과 세상을 어떻게 감당하기로 했는지 기억하라고 한다.

 

바로 멈추었다. 걱정과 불안의 말들을 마음에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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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글로, 송구영신]

송구영신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크로노스(Chronos)는 관성대로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입니다. 카이로스(Kairos)는 의미의 시간입니다. 멈춰 성찰하여 의미를 건져 올리는 시간, 그분의 시간일 것입니다.

송년회의 계절이기도 한데요. 좋은 사람들과 송년 파티, 선물교환, 맛있는 음식과 와인파티 같은 걸 그려보게 되네요. 나음터도 한 해 동안 연결되었던 분들과 송년회를 하면 좋겠다 싶지만 여러 한계가 있네요.

함께 카이로스를 누려보려고요. 시간의 주인이신 분과 함께요. 우주를 운행하는데 바빠서 도통 나같은 사람에겐 신경을 못 쓰다 송구영신 예배 말씀 뽑기 시간에 잠깐 오셔서 ‘내년의 말씀’ 하나를 점지하고 떠나시는 하나님(超越)일 수도 있지만, 단 한 번도 나와 떨어진 적 없으신 분(內住)이기도 합니다.

바쁘거나 귀찮아서 돌아보지 않았던 ‘나’에 고요히 머무르는 시간에 그분의 세미한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그분의 시간과 교차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온라인에서 만나 함께, 그러나 홀로, 글로 나를 돌아보는 송년회를 마련했습니다.

온라인 오프라인 내적 여정, 지도자과정, 꿈 영성모임, 글쓰기 모임, 개인상담, 특강 수강자, 후원자님, 그냥 놀러 오셨던 분... 2021년 나음터와 연결되었던 분들 모두 얼굴 뵙고 싶습니다. 연결되었던 모든 분들께는 50% 할인 혜택 드리려고요. “나는 연구소에서 올리는 글 열심히 읽었다, 나도 연결되어 있다!” 하시는 분들도 무조건 할인입니다. 녀남소노, 글을 잘 쓰는 사람 못 쓰는 사람 모두 환영입니다. 일 년이 가도록 일기 한 줄 안 쓰시는 분, 특별히 환영합니다. 그냥 막 쓰게 해드리겠습니다.

[함께, 그러나 홀로, 글로, 송구영신]의 자리에 초대합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2021년 12월 30일(목) 오후 8시~10시 30분
+ 인원 : 25명(선착순)     + 장소 : 온라인(zoom) 
+ 수강료 : 2만 원(연구소 프로그램 참가자 1만 원)  
+ 안내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4235-8020
+ 신청 링크 : https://bit.ly/2TAwI0C

 

홀로, 글로, 송구영신

2021년 나음터 글로 하는 송년회 신청 양식입니다.

docs.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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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필을 시작으로 채윤 현승까지 기침감기가 한 바퀴 돌았다. 

덕분에 허브티 마시기가 생활화 되고 있다.

꿀차는 한두 번이고, 부담없이 하염없이 마시게 되는 게 허브티니까.

티백으로 사놓으면 알아서들 마시니 간편하다.

 

레몬밤을 처음으로 마셔본 채윤이가

"어우, 이거... 어우, 토마토 상한 맛이야. 레몬 맛이 하나도 안 나."

레몬밤 티가 얼마나 좋은데! 무슨 토마토 상한 맛이야? 하고 말았는데.

다음 날, 혼자 있는 시간에 레몬밤 티를 마시는데...

와, 토마토 상한 맛! 레몬밤 허브향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다.

리스펙 김채윤! 

 

페퍼민트 마실까, 카모마일 마실까... 고민하던 채윤이가

"엄마, 사실은 나는 이게 제일 마시고 싶어. 여기다 물 부어서 마시고 싶어."

라고 했다.

멸치, 새우, 다시마... 잘 말린 복어가 들어가서 더욱 시원한 '복 다시팩'

맛을 아는 채윤이, 향도 아는 채윤이.

리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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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계속 바쁘지? 저녁에 뭐 먹어? 뭐 시킬까?

아니면 내가 나가서 뭘 사 올까?

엄마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뭐 없어? 아니면...

아니면, 뭐. 엄마가 된장찌개 해줄래?

 

어? 어... 그럴까? 과제도 해야 하고, 할 일이 태산이니까, 곧 강의도 시작하니까...

엄마가 직접 된장찌개를 끓이는 게 좋겠네. 끓이지 뭐.

 

진짜 바쁜 날이었는데, 상당히 배려받는 느낌을 받다 홀려서...

어느새 내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뭔가 부족한 듯하여 냉동실에 있던 박대와 고등어를 꺼내어 굽기까지 했다.

 

된장찌개에 생선구이는 덤.

찌개 끓이는 소리에 채윤이 수다 소리도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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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학교에서 쌤한테 전화 올 수도 있어.❞

 

기말고사 마지막 날, 시험 치고 온 현승이가 말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쓰는 에세이가 시험 문제였는데.

(일반 고등학교 아님)

답안을 쓰는데 분노의 볼펜질이 되었다고.

전투적으로 쓰고 있으니까 감독 쌤이 오셔서

"답안지 더 줘?" 먼저 물어보실 정도였다고.

결국 다 쓰고 마지막에 '전두환 개새끼'라고 써버렸단다.

그래서 쌤이 엄마한테 전화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쓰고 두 줄 그었으니까,

쌤이 뭐라고 하면 "아, 지웠는데 용케 보셨네요." 

하면 된단다.

어쩌면 쌤도 좋아하실 수도 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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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줌 강의를 마치고 혼자 유유자적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어떤 소리를 들었다. "대추 맛집, 대추 맛집, 여기가 대추 맛집." 영혼으로 들었다. 눈에 보이는 아이패드를 들고 튀어 나갔다. 베란다 밖, 어느 새들이 앉아 대추 흡입 중인 것이었다. 와, 아침에 포스팅했는데, 댓글 달러 온 거야 뭐야. 얘네들 진짜 신통방통 하네!

아침에 포스팅한 '어느 새'는 비공개로 올려 놓은지 한참 된 글이다. 블로그 놀이 본능이 꿈틀대는 "써야만 하는" 글이 산적한 그런 시즌이다. 본능에 충실하여 밀린 글들 하나 씩 올리는 중이었고, 그러다 오늘 아침 당첨 글이 '어느 새'였던 것. 포스팅하고 나가보니 대추가 더 줄었다. "언제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먹고 가는 거야?" 투덜거렸는데... 바로 이렇게 찾아주실 줄이야.

아, 올 때도 제 맘 갈 때도 제 맘.
애간장 태우는 저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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