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참 전에 베란다에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도통 시위에도 나가지 못하고 마음만 저릿하다.
사람들 눈에 띄는 곳에 내 마음을 내걸면 미안함이 가실까?
순전히 내 마음 편하자고 내걸었는데, 젠장! 4층이라서 보이지도 않는다.
바람이 불면 수시로 풀어지는 끈을 다시 묶어줘야 한다.
4월 16일 이후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유족들의 억울한 궁금증과 정당한 요구가
이제는 그냥 낫지 않을 상처처럼 아프기만 하다.
여전히 그분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대로는 돌아갈 수 없으나,
이젠 돌아갈 명분조차 찾을 수 없는 것 같아 나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

 



깊은 빡침과 좌절의 늪에서 난 내 지병으로 돌아가고야 만다.
행동하지 않고 읽어서 해결하려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적 슬픔 앞에서, 상식적 물음 앞에서 어쩌면  이렇게들 무심해질 수 있을까?
자신의 안위가 직결된 정치가도 아는데,
유가족들을 향해서 어쩌면 이렇게 날조된 유언비어를 여과없이 받아들일까?
그 유언비어가 보상금 운운하는 '돈'과 직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이것은 악!'이라고 밖에 다른 말로 정리할 수 없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며 게으른,
진실을 보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고 악마에게 영혼을 판,
'거짓'과 '악'에 관련된 책들을 다시 꺼내 읽는다.
결국 내 지병으로 돌아온 나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읽으면서 행동하지 않는 것도 게으름이니까.


투사로 살고 싶지 않다.
투사로 살지는 않을 것이다.
편 가르는 것에 지칠대로 지치고 상처받을 만큼 받았는데
삼팔선을 긋고 싸우는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를 적으로 규정하고,
조금 다르다고 제외시키는  진영 싸움은 현기증이 난다. ,
당장 세월호 유가족의 편을 들며 무조건 좋은 사람이라 박수치며 어깨동무 하는,
일부러 식별하지 않고 눈감아 버리는 게으름 또한 동조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 해도 '나만이 옳다'면서 내 편 만들기 위해 선동하는 것도 사람을 수단 삼는 일이다.
지상에서 가장 편협하고 까칠한 인간이라는 오명을 스스로 달도록 하겠다.
우짜든지, 욕이 나오면 욕을 할지언정 싸움꾼이 아닌 치유자로 살겠다.
그럴 깜냥이 되지 못하는 것 알지만, 그래도지향하는 바이다.

언제까지 일까?
악이 성하고 약자들이 끝없지 짓밟히는 삶은 언제까지 일까?
나는 도대체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유난히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다 
페이스북에서 정혜신 박사의 글을 보고 크게 위로가 되었다.
정혜신 박사의 글을  페북 담벼락에 공유하면서 아래 파란 글씨를 덧붙였다.
딱 이 마음이다.


울어야 할 사람 아무 걱정 없이 울게 해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 치유란 이런 것이다. 치유의 힘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 듯' 거침없이 흘러가 이웃을 치유하고 심지어 치유자를 치유한다. 이 시대의 치유자, 정혜신 박사님, 고맙습니다.

(주님, 울어야 할 엄마들, 더 이상 광장에서 싸우지 않고 그냥 울게해주세요. 슬픔 밖엔 없는 엄마들이 악에 받친 투쟁으로 말라 비틀어져가지 않도록 여기 대한민국 서울의 광화문을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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