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이와 함께 1인 시위(2인 시위)를 나갔다. 한 번 나가야지 나가야지 하고 있던 차에 현승이가 "엄마, 나도 거기 광화문에 엄마가 시위하러 가는 데 한 번 갈게" 했다. '왓? 시위하러 나간다구? 사람 많은 곳에 서 있는 건데? 설마 김현승이?' 싶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정말? 좋은 생각이네. 엄마랑 같이 피켓 만들어 나가자" 했다.

현승이가 누군가?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싶지만 칭찬받으면 친구들이 다 쳐다보게 되니까 차라리 칭찬받지 않는 편이 낫다고 하는 아이이다. 그저 칭찬도 받지 않고 혼나지도 않고 주목만 받지 않으면 좋겠다는 아이이다. 1,2 학년 운동회에서 선두로 달리다 1등 할까봐 결승선에 멈춰 선 적도, 계주 대표로 뽑힐까봐 결승선 다 가서 천천히 달린 적도 있었다. 정말 현승이에겐 튀는 것, 튀어서 시선을 받는 것이 못 견디게 싫은 일이다. 심지어 가족 아닌 어느 한 사람이 잠시만 자기를 응시해도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른다. 어쩔 줄 모르겠는데 표현할 수도 없으니 어색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나 좀 살려줘'하는 눈 신호만 조용히 보낼 뿐이다.

이런 현승이가 광화문 네거리에 서겠다고 하니 엄마가 당황스러울 밖에. 엄마가 시위 나가 서있던 사진도 봤고, 아빠랑 한 번 나가서 시위현장을 보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최근 단식을 하시며 하루하루 야위어 가는 유민이 아버지 근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긴 했다. 무슨 마음으로 나가겠다는 건지 재차 물으면 분명히 짜증을 내거나 '나 안 나가' 할까봐 최대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말을 내놓은 이후 순탄하지는 않았다. 마음이 오락가락 하면서 나가네 안 나가네 했고, 손피켓을 만들면서도 사이즈가 맘에 안 들어서 불평, 글씨가 안 써져서 짜증. 여러 번 판을 엎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다 만들어 놓으니 아빠가 '어, 글씨가 귀엽다. 아우 귀여워' 했다. 무엇보다 피아노 연습하고 늦게 온 중2 누나가 진심어린 감탄을 쏟아낸 것이다. "김현승, 너 정말 대단하다. 너는 내 동생이지만.... 넌 정말 괜찮은 애야" 입만 열면 '나가. 빨리 안 나가? 어우, 진짜 짜증나. 김현승 넌 정말 짜증나는 애야. 엄마, 얘 좀 어디다 갖다 버려' 이러던 누나의 칭찬이라니. 현승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중간에 꺾일 뻔한 마음을 붙잡아 준 것은 함께 하는 형아들과 동생이었다. 좋아하는 지언이 형아, 귀여워하는 의진이가 함께 하기로 약속이 되고 기분좋게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형국이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서있으며 힘이 되었다. 아이들이 저러고 서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 더 쳐다볼 뿐 아니라 사진도 많이 찍었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 먼저 묻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시라고 하면 옆에 있던 현승이 조용히 발을 구르고 눈을 부라리고 침묵 시위를 했다. '왜 엄마 마음대로 허락을 하냐? 나도 싫고, 무엇보다 형아랑 의진이도 싫을 수 있는데 왜 묻지도 않고 대답을 하냐?' 조용히 따졌다. 헌데 옆에 있던 의진이가 사진이 찍힐 때마다 '어, 또 찍었다. 히히' 하면서 좋아하는 걸? 시간이 갈수록 '와, 디게 많이 찍혔다' 하면서 더 좋아하는 걸? 지언이 형아도 물어보니 사진 찍히는 것 좋다고 한다. '아이고, 민망하여라' 김현승~ ㅎㅎ

 


현승이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광화문 광장에는 카메라에 '용기'을 장전하고 기다리고 계신 분이 있었다. 전에도, 어렸을 적에도 자주 현승이에게  용기, 자유 이런 것들을  쏴주시곤 하시던 털보 아저씨. 이날 양평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일부러 현승일 응원하기 위해 광화문에 나오신 것이다. 덕분에 이렇게 사진을 남길 수 있었고, 털보 아저씨와 광화문에서 양평까지 전철여행을 함께 하며 즐거웠다. 매주 한결같이 광화문의 한 구석을 지키며 1인 시위 하고 있는 두 이모, 그리고 또 하나의 이모. 형아 둘, 동생 하나. 이렇게 함께 따로 또 같이 하는 시간이었다.   


다녀와서 쓴 일기의 마지막 부분이 뭉클하다.'나는 그곳을 가서 가장 많이 본 것은 노란 리본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세월호 유가족들에 비하면 손피켓 들고 서 있는 건 힘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승이와 이런 자리에 함께 하는 것이 단순히 '교육적 차원'은 아니다. 이것을 통해 무엇을 가르친다기보다 그저 지금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을 함께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저러는 것이 보상금을 바라기 때문이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언론과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현승이가 어어없어 하며 그랬다. '세상에, 자기 자식을 돈으로 바꾸려는 부모가 어딨어.' 현승이는 자신이 속한 대한민국이라는 큰 집단 안에서 마음이 가는 곳에 몸도 함께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굳이 현승이에게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성경 말씀을 들이대지 않아도 정직하게 듣고 정직하게 의문을 품는 이 아이는 자신의 눈길과 마음과 몸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오늘을 이렇게 살고 있는 것으로 족하다. 그래서 현승이에게 고맙다. 더도 덜도 아닌 현승이의 진실한 마음이 피켓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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