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데이트에 채윤이가 함께 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하루 가족여행에 현승이가 빠졌습니다.

'나는 집에 있으면 안 돼?' 사춘기 도래를 알리는 이 한 마디! 드디어 나왔습니다.

두 번 당하는 일이라 충격이 크지 않으니 다행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2년 여 전에 채윤이 빠진 하루 여행을 다녀와 당시 기고하던 <크로스로>에 

사춘기 사추기라는 글을 썼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아무튼 채윤이는 자동차 뒷좌석을 혼자 다 차지하고

현승이가 태어나기 전 29 개월 동안 누렸던 '독점의 기쁨' 다시 누리기였습니다.

'전주 한옥마을'보다는 '주전주리 마을'이 더 어울리는 이름 같은데, 거길 갔습니다.

식구 중에 가장 위대한 채윤이에게는 딱 좋은 곳이었습니다.

콩나물국밥 먹고 바로 간식을 끝없이 흡입할 수 있는 여자 사람은 흔치 않거든요.

엄마로서는 여러 가지 걱정이 되어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었지만

"또, 또 뭐 먹을래? 저거 사줄까? 뭐든지 먹고 뭐든지 사"

아빠 포스에 눌려 입 닫고 쭐래쭐래 따라만 다녔습니다.

(길쭉이들 한 걸음에 나 두 걸음. 바쁜 발걸음 속에.... 아, 뭔지 모를 소외감)

 

 

 

 

 

가족의 여행은 오가는 길 자동차 안의 대화와 음악이 의미 박스 입니다.

아빠랑 나랑 닮은 점이 뭐야? 채윤이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뭐가 닮았을까?  여러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오는 길에 다같이 꽂혀서 들은 신해철 2집 앨범 <myself>는 대박이었습니다.

장래희망이 '옛날 가수'인 현승이와는 음악적 정신세계가 많이 통하는데요.

세 식구가 김광석, 이적, 윤도현, 하동균, 김연우.... 이러고 있을 때

채윤이는 귀에 이어폰 꽂고 알 수 없는 음악에 흐느적거리곤 하거든요.

그런데 오랜만에 현승이 없이 셋이서 신해철 노래로 대통합을 이뤘습니다.

아빠가 대학 2학년 때 '이런 가수가 있나?' 하고 들었다는 2집 앨범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나에게 쓰는 편지>의 가사는 딱 자기가 쓴 것 같다며.

이 노래를 듣고 용기내서 군대에 갔답니다. 가사를 옮겨 적지 않을 수 없네요.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 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 얘기를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젠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이상 우리가 사랑했던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호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웬일인지 채윤이가 쏙 빠져서 노래를 듣습니다.

가사에 공감이 많이 되는가 봅니다.

운전하랴  입으로 DJ하랴, 바쁘신 아빠가 <길 위에서> 를 추천합니다.

이거 딱 채윤 노래야.

딱 채윤이 노래네요. 

 

 

차가워지는 겨울 바람 사이로
난 거리에 서있었네
크고 작은 길들이 만나는 곳
나의 길도 있으리라 여겼지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걸어가다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었지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첫 깨어남이었지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 주오

 

끝없이 뻗은 길의 저편을 보면
나를 감싸는 건 두려움
혼자 걷기에는 너무나 멀어
언제나 누군가를 찾고 있지
세상의 모든 것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고
삶의 끝 순간까지
숨가쁘게 사는 그런 삶은 싫어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 주오

 

 

 

 

 

고등학교 진학하지 않고 1년을 쉬겠다는, 그것도 예고 합격을 포기한 한다는 얘기에

애정과 걱정이 담긴,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애를 왜 바보로 만들려고 해"

바보.... 음..... 네..... 어......

벌써 다섯 번째 글인데 '그러니까 좋은 생각 다 알겠는데.... 왜 예고를 안 간다는 거?' 딱 부러지는 이유를 밝히지 않아 답답하신 분들도 있겠습니다.

위 두 곡의 노래에 예고 가지 않는 이유가 딱 나와 있는데, 딱 아시겠습니꽈? ㅎㅎㅎㅎ

 

아빠가 그런 얘기도 해줬습니다.

마왕의 또 다른 곡 <Here I Stand For You ....?>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독백입니다.

특유의 저음으로 읊조립니다.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영.원.히.

 

이 부분을 듣고 아빠의 친구의 친구가 울었다는 얘길요.

 

대학의 레벨을 일정 정도 보장받을 수 있는 예고를 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믿고 있는 영원한 것들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고, 믿는대로 산다는 것이 갈수록 '바보가 되는 길' 같아 보이지만요.

그것을 바보로 보는 세상을 향해서 설명을 해봐야 어차피 바보의 말이기 때문에 그 다음 말은 어렵습니다. 

채윤이 아빠는, 채윤이 엄마는

채윤이 안의 아빠와 엄마는 인류 최고의 바보를 알고 있습니다.

그분처럼 살고 싶지만 인간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고,

흉내를 내보지만 늘 한계에 부딪혀요.

사실 가장 정직하고 분명한 답인데

듣기에 따라서는 너무 거창하여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네요.

이번 채윤이 진로선택은 그분처럼 살기 코스프레입니다.

정답 없는 인생 여정, 신앙의 여정, 갈림길에 설 때마다

바보 그분의 가르침과 가까운 길을 고심해보고 이거다 싶으면 가보려고요.

그래봐야 결과는 바보의 삶이겠지요.

결과보다 이런 선택 한 번 한 번을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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