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라고 하기엔 아이들도 크고 저도 많이 늙었으니 '자녀교육'이라고 해야겠네요.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유별나다'는 주변의 평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보통과 다르다'는 의미라면 몰라도 특별히 애를 쓴다거나 '에너지를 쏟는다'는 뉘앙스일 때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신경함의 유별남'이라면 인정하겠습니다. 사실 채윤이는 우리나라 공교육에는 좀 맞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채윤이가 서너 살일 때부터 엄마로서 촉이 왔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홈스쿨링을 고려하거나 대안교육 같은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쓸 에너지가 없어서(귀찮아서?)였고, 채윤이가 살아갈 세상은 어차피 그러하다 생각했습니다. 개성이 강하고, 자기 생각이 분명한데 한글 따위는 배우지도 않은 채윤이의 학교생활이 어떨지 안 봐도 비디오였지만 주저 없이 학교에 보냈습니다.

 

나름 아기 적부터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려 했던 부모입니다. 무슨 일이든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대화했으며 부당하게 강압하지 않았습니다. 아이 앞에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다면 분노가 가라앉은 후에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리얼리? 이렇게 좋은 부모라니!!) 비록 우리는 이렇게 키우지만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우리 아이를 그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그 모든 것을 막아줄 수도 없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선생님께 부당하게(아이 입장에서야 늘 부당하겠고, 가만 들어보면 정말 부당한 것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야단을 맞고 왔다 해도 그걸 크게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속에서는 천불이 날 지언정. 아, 물론 아이가 구구단을 빨리 못 외운다고 수학책으로 머리를 때렸던 2학년 때 담임, 하남 천현 초등학교 *** 선생님은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아빠까지 대동해 찾아갔습니다. 이 일 외에는 그저 채윤이든 현승이든 학교에서 받는 칭찬과 상처를 스스로 견디도록 했습니다. 다만 엄마 아빠 품에 돌아왔을 때 기댈 언덕이 되어주고 충분히 사랑해주고 위로해주고자 했습니다.(만 그저 생각일 뿐 상처받고 온 아이 더 상처 주는 일이 많았지요.ㅠㅠ) 알고보면 저, 꽤나 체제 순응적인 부모랍니다. 케케. 심지어 영양사가 짠 식단으로 점심 한 끼를 먹고 올 수 있다는 것, 그것에 엄마의 영혼이라도 팔 기세로 열심히 학교 보내는 엄마입니다. 5대 영양소 골고루 챙겨 멕여주는 게 어디냐며. (강의와 원고가 몰릴 때는 며칠이고 우리 집 싱크대에서 쌀뜨물 흘러가는 일이 없다지요.)

 

결론부터 까놓고 시작한 글입니다. 채윤이는 예고에 합격했지만 예고에 가진 않습니다. 예고에 가지 않겠다는 선택이 대단히 유별난, 비장하고 진지한 선택은 아니랍니다. 딱 사람을 낚기 좋은 선정적인 제목이라서 던져봤을 뿐이고요. 사실 이 연재의 핵심은 '예고에 가지 않습니다'가 아니라 '1년을 쉽니다'입니다. 그리고 1년을 쉰다는 선택도 딱히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는, 그저 채윤이와 채윤이 엄마의 삶의 여정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3년 전 예중 입시를 선택했던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청년 시절 <많은 물소리>라는 찬양집을 애용했습니다. 당시 청년부에 도는 안경 낀 철학 전공 남자애가 하나 들어왔는데 어쩌다 찬양인도를 맡더니 찬양집을 바꾸더군요. 그것이 <많은 물소리>였습니다. 아, 그 도는 안경의 이름은 김종필입니다. 그 찬양집을 만든 황병구 님을 김종필과 함께 오래도록 흠모했습니다. 그가 만든 찬양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그댄 솔잎이어라'는 한영교회 청년부를 섬기던 시절 목자들과 부른 18 번 곡이었지요. 물 흐르듯 흐르는 우리 일상의 시간 속에 황병구, 이수진 부부가 곁에 왔고 오래된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집 딸내미 은율이의 안식년 소식에 마음이 움직였지만 (지난 글에서처럼) 채윤이에겐 예중-예고 프로필이 중요했구요. 그런데 갑자기 이 부부가 딸내미 안식년 경험을 더 많은 아이들에게 나눌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 결정의 중요한 장면들을 제가 자꾸 목격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맥도날드 앞에서 눈물로 결심한 대로 채윤이는 열심히 피아노를 쳐댔고, 저는 열심히 레슨비며 돈을 댔습니다. 이것과 상관없이 '꽃다운 친구들 '이라는 이름을 달고 황&이 부부님은 열심히 새날을 준비하더군요. 9월이 되어 채윤이는 입시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꽃친은 개봉박두, 설명회를 하기에 이릅니다. 잠시 짬을 내어 설명회에 다녀 온 채윤이는 카톡 상태 메시지를 '꽃친'이라고 바꿔 놓더군요. 그러나 정말 꽃친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해서는 말도 못 꺼내게 했습니다. 지금은 입시만 생각하겠다며, 입시 끝나고 얘기하자며. 그 와중에 꽃친에 어플라이 하기 위해 급조해서 자기소개서도 쓰고, 인터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11월이 왔고 드디어 입시를 치렀지요.

 

시험을 마치고 발표까지 며칠. 당락에 상관없이 진로를 정하기로 했었기에 얘기를 좀 해보려 했더니 채윤이는 역시나 입도 뻥끗 못하게 합니다. 합격 발표 보고 얘기하자면서요. 합격하고 나니 마음이 무지 복잡해지더군요. 채윤이나 엄마나 심지어 차거운 머리를 가진 아빠까지도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이걸 포기해? 미친 짓 아닐까? 대학입시 따위 개똥으로 취급하는 척, 쿨한 척 하던 것이 그저 '척'이었음을 알겠더군요. 짧고 굵은 갈등, 그리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이런 저런 대화, 무엇보다 채윤이와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결론은 자명해졌습니다. 때마침 접한 이 기사 (입시전쟁 최고봉. 서울대? 아니 예술중!)는 아주 그냥 시의 적절합니다. 잠시 우리를 흔들었던 욕망, 그리고 자명한 결론과 필연의 선택을 다 담고 있네요.

 

꽃친이 아니었다면 이런 선택을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믿음이 부족하여 '꽃친'이 채윤이만을 위해 예비된 하나님의 뜻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씸다. 그저 채윤이와 채윤이를 키운 불량 엄마가 여기 있고, 3년 전 은율이의 선택이 있었고, 은율이를 그렇게 키운 은율이 엄마 아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남이라는 신비가 이 모든 것을 연결시켜주었지요. 우리 모두의 시간이 흐르는 강물과 같고, 어느 여울목에서 교차하여 만난 것입니다.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아, 그러니까 왜 예고를 안 가냐고? 여기서도 의문이 안 풀리셨다면 다음 편 예고 겸, 의문에 대한 힌트 겸 황병구 님의 노래 한 곡조 들려드리며 마치겠습니다.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작은 시작은 그 소리조차 없구나

소리없는 삶을 몰라하는 이들

그들도 삶의 시작은 작구나

 

지금도 우리 시작은 작구나

작은 외침을 듣는 이들도 적구나

적은 무리됨은 기뻐하는 이들

그들과 우리 시작은 작구나

 

높이 떴을 때 더욱 작아지는 해처럼

깊이 잠길 때 더욱 소리없는 바다처럼

높게 살자 깊게 사랑하자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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