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탄핵정국 때 채윤이는 네 살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손잡고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갔지요. 목소리! 하면 또 채윤이라 화통 삶아 먹은 소리로 '타낵꾸요! 민쥬수호!' 외쳐댔지요. 돌아오는 길, 시위하면서 은혜를 충만히 받았는지 길거리 찬양집회를 하더라지요. 아빠 어깨에 걸터앉아 종로길을 걸으면서 (역시 고래고래) '갓써 제에자 사므라. 셋쌍 마는 사람드를 셋쌍 모든 영호니 네게 달련나니이~'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걸 싫어해서 웃는 소리도 크게 안 내는 아빠는 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를 목마에 태우고는 지옥의 맛이었겠지요. 채윤이와의 참 가슴 설레고 아름다운 추억의 날입니다. (당시 쓰던 2G 폰 사진이라 화질이 저리 구리지만 제 눈엔 얼마나 이쁜지 모르겠어요.)

 

싸이 미니홈피가 한창이던 때였는데 저 사진과 함께 다녀온 후기를 올렸더랍니다. 그때 댓글로 누군가 이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직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정치적 입장을 그대로 주입하는 건 쫌 아니지 않나?'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집회에 데려가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 중립적인 부모일 수는 없습니다. 집에서 뉴스를 보면서 '저런 빨갱이 놈들 다 북한으로 보내버렷' 하는 부모 역시 (적극적이진 않더라도) 아이에게 나름의 관점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도 아이들은 자기 부모의 절대 영향권 안에 있는 것이지요.

 

정치적인 문제든 신앙의 문제든 심지어 엄마 아빠가 하는 고민에 대해서도 (이해할 만 한 내용이라면) 아이들에게 설명하곤 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했습니다. 또한, 피아노를 배우거나 태권도장에 다니는 것 등의 아이들에 관한 결정은 충분히 얘기하고 의논했습니다. 수영 같은 건 엄마가 먼저 제안했고, 채윤이 피아노나 현승이가 잠깐 했던 태권도는 아이들이 먼저 하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누가 제안했든 충분히 생각하고 의논한 후에 일정 기간을 쭉 하는 걸로 약속합니다. 중간에 재미없어졌다고 '끊어줘!' 이런 거 없기로 말이지요. 이 부분은 어릴 적에 우리 엄마가 내게 좀 길러줬으면 좋았을 걸 하는 덕목이기도 해서 단호하게 지켜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아이들 교육뿐 아니라 저 자신의 삶에서, 또 제가 하는 연애 강의 등을 통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선택과 책임'입니다. 성숙한 사람의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고요. 무슨 주제든 아이들과 대화하지 못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자신에 관련된 일에선 특히 충분히 얘기하고 최종 선택은 스스로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입니다. 글로 이렇게 써놓으면 굉장히 있어 보이는 교육철학이지만 철학이 엄마 머리에만 있다는 게 문제죠. 이 미덕을 가르치려면 실패가 뻔한 시도를 허용해야 하는데, 이느무 엄마가 그렇게 성숙하질 못해서요. 말처럼 되지 않습니다. 통제본능이 매우 강한 엄마로서의 저 자신을 (늘 아프게) 돌아보게 됩니다. 아무튼, 애는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 면에 관에서 성공경험이라면 채윤이의 예중 생활 3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힘겨운 3년을 보내면서 깊은 좌절을 경험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기도 했지만 '자기 결정'이었다는 의식이 채윤이를 지키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연습을 체크하거나 성적 가지고 쪼거나 하지 않는(못하는) 불량 엄마 탓에 스스로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채윤이는 예중 가는 선택을 '선생님의 설득으로 하게 되었다'는 표현을 몹시 싫어합니다. 선생님이 제안하셨고 자신이 선택했다고 늘 힘주어 강조하지요. 그 과정은 엄마를 졸라 허락 받아내는 일도 포함입니다. 아무튼, 이런 채윤이를 지켜보며 '자기 결정'의 힘을 확인하게 됩니다.

 

'예고에 가지 않기로 한 결정을 채윤이도 동의했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습니다. 동의라니요. 자기 결정입니다. 한참 전에 '중학교 마치고 1년 쉬는 방법도 있으니 생각해보자'는 제안을 엄마가 했고. '꽃친'이라는 게 있다, 해보면 좋겠다는 제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맨 처음 예고를 가지 말아야겠다는 말은 채윤이가 했습니다. 일단 입시준비를 열심히 하고 합격을 한 다음 멋지게 그만두자!는 말은 엄마의 꼼수였습니다. 합격을 한 후에는 엄마, 아빠, 모두 (아까워서) 흔들렸습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펼쳐놓고 고민하고 대화했습니다.자연스레 '괜찮겠다. 예고 포기하는 게 맞네'라고 채윤이와 엄마 아빠는 물론 마음 터놓고 의논할 수 있었던 친구들도 한결같이 동의해주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최종적인 자기 결정! 토요일 밤에 채윤이와 최종적인 대화를 마치면서 말했습니다. "그래, 채윤아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과 결정을 다 했어. 내일 예배드리고 찬양하면서 기도하며 최종 결정해. 예배와 기도로 하나님께 말씀드려. 그러면 이 결정은 하나님 손에 맡겨 드리게 되는 거야" 채윤이가 갑자기 살짝 울컥하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그런데 나는 어른들이 하나님의 뜻... 이런 얘길 하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다, 이런 말을 할 때 좀 이해가 안 돼. 하나님이 이래라저래라 목소리로 말을 해주시는 것도 아닌데... 사실 예고를 안 간다고 하는 것도 내가 정한 건데 하나님 뜻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잖아." (표정은 수심 반 서러움 반)

 

"맞아. 채윤아! 니 말이 맞아. 엄마도 이 나이 되도록 살면서 많이 기도해왔지만 사실 하나님의 뜻이 이거다!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어. 그냥 기도하면서 그때그때 엄마가 좋은 걸 선택한 거지. 하나님과 함께 결정한다는 건 이런 거 같애. 너 엄마 아빠가 널 사랑하는 걸 알지? 사랑하니까 니 일을 막 정해주고 그래? 글치. 엄마빠가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거 알지? 엄마 아빠가 널 사랑하니까 널 믿어주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기회를 주려고해.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채윤이한테 뭘 바랄 것 같아? 그렇지. 잘 되는 거. 잘 돼서 어떻게 하라고? 맞아. 행복하라고. 엄마는 하나님이 채윤이한테 바라시는 건 채윤이 자신이 되어 행복한 거, 그걸 바라실 것 같아. 엄마가 널 사랑하니까 니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주잖아. 그렇다고 니 선택했으니 니가 알아서 해. 이렇게 해? 아니지. 엄마가 해야하는 것, 할 수 있는 걸로 다 도와주려고해. 그거야. 니가 가장 좋은 길, 또 선할 길을 선택하고 '하나님, 같이 걸어가 주세요. 혼자서는 못 가요' 하고 가는 거야. 하나님 손잡으면 엄마랑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랑으로, 힘으로 너랑 함께 가주셔. 니가 최종 결정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것처럼 말야"

 

부모로서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네 살 채윤이 목마에 태워 촛불집회에 데려갈 수 있었지만 열여섯 채윤이를 엄마 마음대로 아무 데나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네 살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열여섯은 그렇게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엄마로서 여전히 아이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내가 온전하지 않음을 알기에 아이의 행복에 대해서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다고 아직은 열여섯인 채윤이 혼자 알아서 결정하도록 무책임하지도 않습니다. 열여섯 채윤이가 할 수 있는 분량을 믿어주고, 도와주고, 스스로 가장 선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거절할 자유까지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무력하여 어마어마한 그 역설적인 사랑을 늘 많이 생각합니다.

 

꽃친 가족 인터뷰를 마치고 채윤이가 한 말입니다.

"엄마, 내가 아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그걸 못했어. 나는 꽃친을 해도 예고를 가도 어차피 아쉬울 거라는 걸 알아. 꽃친을 하다 예고 교복 입은 친구들을 보면 부럽고 예고 갈 걸... 하겠지. 예고 가서 힘들 때는 에이, 꽃친 할 걸... 하겠고. 어차피 아쉽지 않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아쉬운 건 그냥 아쉬워야지. 그리고 내가 선택한 걸 열심히 해야지."

채윤이의 '자기 결정'입니다.  

 

 

 

 

 

* 이 사진은 입학 실기시험 치러 들어간 채윤이를 기다리며 찍은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때 읽고 있던 책이 <자기 결정>이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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