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께 누군가 질문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온유한 성품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에 대한 답으로 교황님은 '꿈'을 얘기하셨단다. 내용은 이렇다. 교황님은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침대 옆에 있는 '꿈꾸는 요셉상' 앞에 편지를 써놓고 잠든다고 한다. 꿈으로 답을 주십사 하는 기도이다. 요셉은 가톨릭에서 꿈을 수호하는 성인이다. 약혼녀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 '가만히 파혼하려' 했으나 꿈에서 천사의 메시지를 받고 일어나 결혼을 추진하였다. 교황님의 영상과 메시지를 자주 찾아본다. 다양하고 살아 있는 표정에 주목하게 된다. 진지하게 강론하는 중에 강단 위에 난입하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눈빛,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 트럼프 같은 이들과 마주할 때 화난 듯 굳은 얼굴을 본다. 감정을 느끼지 않고 전혀 영향받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투명하게 느끼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다. 교황 님은 그 좋은 예다. 꿈을 기다리는 태도는 자는 동안 하나님을 기다리는 겸손한 기도인데, 역시나! 싶다.
가을 꿈모임에 가톨릭 신자 한 분이 오셨다. S선생님이다. 늘 시간이 조금씩 늦는데 미사 반주를 하고 달려오면 그 시간이라고. 드물게 이렇게 가톨릭 신자 분이 연구소 여정에 함께 하시곤 한다. 경계를 넘나들며 가톨릭 영성을 배운(배우고 있는) 경험이 있어 마음이 많이 쓰인다. 고맙기도 하고. 첫 시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 얘기를 해드렸다. 꿈꾸는 요셉상을 곁에 두고 꿈 편지를 쓰신다는 얘기. 두 번째 모임이었다. 지난 모임 마치고 성당 교우에게 선물을 받았단다. 신기하다며 모니터 카메라에 가까이 대는데 꿈꾸는 요셉상이다. 편지도 함께. 뜬금없는 선물이 내 삶의 다른 부분과 하이파이브하면 '짝' 소리 낼 때면 그분이 조용히 열일하고 계시다 들킨 거라고 믿는 게 좋다. 꿈 여정을 시작한 선생님을 응원하시는 그분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시간엔 두 분의 꿈을 나눴는데, S선생님과 또 한 분. 일찍 수녀 서원을 하였으나 결혼한 여자로 살아온 세월, 결혼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여겨 다가오는 만남조차 거절하고 살아온 세월. 전혀 다른 두 세월이 담긴 꿈을 나눴는데, 어쩐지 마음에 남은 진실은 하나의 이야기 같았다. 꿈 여정을 하며 배우게 되는 것도 비슷하다. 사람 사람이 이토록 고유하구나! 누구의 인생도 누구의 고통도 남의 것과 견줄 수가 없구나! 하는 것. 다른 사람의 고통과 치유 여정에 섣부른 조언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나는 그 어리석은 업보를 얼마나 쌓고 살아온 것인가. 그러나 그 고유한 빛깔의 고통과 치유의 어느 길목은 꼭 나와 교차한다. 내 얘기가 아닌데, 나는 저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데, 나는 수녀가 되려 한 적이 없고, 결혼을 피하지도 않았는데. 존재 깊은 곳에서 공명하고 울리는 것을 느끼게 되니 그것이 신기한 일이다.
꿈 모임 마치고 며칠 지나 꿈꾸는 요셉상 하나가 우리 집으로 왔다. S선생님이 보낸 것이다. 침대 옆 협탁을 깨끗이 정리하고 모셨다. 꿈을 기다리는 잠은 주술이 아니다.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시는 주님께 내 영혼을 맡기는 시간이다. 낮의 곤한 삶을 위로하고 보상하심으로 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리신다.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에 연연하여 소진한 내 영혼을 다시 그분께 맡기는 시간이다. 겹겹이 썼던 가면, 사회적 얼굴들 뒤에 숨은 두려움, 슬픔을 가차 없이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악몽이어도 좋다. 악몽은 악몽대로 진실한 나로부터 도망치는 나를 보여주니 말이다. 악몽을 꾸는 것도 내게 유익이다. 꿈은 밤마다 받는 예기치 않은 선물이다. S선생님을 비롯, 자신의 인생을 끌고 나음터로 모여드는 사람 사람이 모두 예기치 않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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