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이 <수선화에게> 하는 말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릴 일이 아니다. 가끔 하느님도 이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며 수선화를 위로한다. 수선화에게랴. 사람에게, 우리에게, 사람인 시인 자신에게 하는 말이려니. “너만 그런 것 아니야, 모두 외로워." 위안 또는 약간 안도는 된다. 그렇다고  외로움의 크기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나는 외로워서 책을 읽었고, 어떤 좋은 책을 혼자 읽을 수밖에 없어서 외로웠다. 포스트잇을 더덕더덕 붙이고 책꽂이에 꽂힌 책들은 외로운 시간과 마음의 흔적이다. 읽은 덕에 쓸 수 있었고, 쓰는 사람인 내가 참 좋으니 외로움은 또 얼마나 고마운 감정이었나. 그럼에도 늘 꿈꾼다. 어떤 좋은 책을 놓고 하염없이 얘기 나눌 사람과 시간을. 꿈만 꿨지 언제 그런 날 오겠나 싶어 다시 외롭다. 그러면 또 깊은 밤, 이른 새벽 혼자 읽는다.

 

지도자 과정의 H선생님이 첫 시간에 그런 말을 했다.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은 책을 안 읽고, 책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교회를 안 다니고..." 그 아쉬움을 지도자 과정에서 채울 수 있다는 기대로 좋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나는 또 얼마나 좋았는지!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IVP. 1000 페이지 넘는 저 책 열 권을 쌓아두고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4월, 지도자 과정 개강 이후 출간되었는데, 필독서와 과제를 바꿀까 싶도록 마음이 흔들렸다. '자아'로 씨름하고, 그리스도 안의 자아를 체험적으로 만남으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는 과정이 아닌가. 42인의 자기를 찾는 여정 이야기라니. "하나님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살아낸 42 가지 이야기라니. 아브라함, 클레르보의 베르나르, 노르위치의 줄리언, 장 칼뱅, 아빌라의 테레사, 잔느 귀용 부인에 심지어 C. S., 플래너리 오코너를 포한한 42인이라니!

 

이미 정해놓은 커리큘럼을 바꾸지는 못하고, 책을 소개했다. 어쨌든 함께 사두기로 하고 단체로 구입하여 내년을 기약한다. 과정 마치고 후속 모임으로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다. 한 분 한 분의 내적 여정 선배님 42인을 만나는 지도자 과정 후속 모임, 생각만 해도 좋다.

두어 주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시간을 보냈다. 드라마를 보고, 봤던 드라마를 또 보고, 우주를 나는 스마트폰 게임을 다운로드하여 '피융 피융' 하며 놀았다. 오늘에야 다시 정좌다. 마음이 자리를 찾아 앉으니 책이 손에 잡힌다. 마음 잡고 다시 손에 잡은 책이다. 함께 읽기를 꿈꾼다면 혼자 잘 읽어야 한다. 혼자 읽기로 행복해야 함께 읽기가 풍성해진다.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에는 외로움조차 얼씬거리지 않았다.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외로운 덕에 사람 꼴 하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마음 푹 놓고 외롭기로 한다. 외로운 독서를 누리기로 한다. 실은 외롭지 않다. 42인 선생님들께서 나 좀 만나 달라,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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