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연구소 지도자 과정이 있다. 내 기도와 공부와 열정의 에너지는 이 시간을 중심으로 돈다. 일주일은 목요일을 중심으로 돌고, 2021년은 '상처 입은 치유자 2기'로 기억될 것이다. 연구소는 늘 공간 문제가 숙제이다. 미사 나음터가 베이스캠프인데, 많은 사람 모을 수가 없다. 사람이 와도 대기시켜야 하고, 돌려보내야 하는 형국이지만. 큰 문제라고 보진 않는다. 꼭 필요한 사람은 결국 어떻게든 찾아오고, 연결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도자 과정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고민이 깊어졌다. 고민 끝에 우리 교회 예배당에서 모이는 것으로 극적 해결점이 찾아졌다. 마침 우리 교회는 장소를 옮겼는데 공간 구획이며, 창밖의 뷰며, 무엇보다 교회당 구석구석에 닿은 교우들의 손길로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다. 잠시라도 비워두기 아까운 곳인데, 모임 장소로 확정되었다. 수도권 전역에서 오는 길들이 멀어서 그렇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곳이다.

 

지난 모임이었다. 제일 먼저 도착하여 모임방 문을 열었는데, 이 무슨 손길! 테이블마다 꽃이 놓여 있는 것이다. 청년부 시절 설교에서 예화로 들은 것이 잊히지 않는다. 어느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누군가 청소하고 정리한 흔적이 느껴졌고, 긴 설명 필요 없이 공간이 그 사람의 마음을 드러낸다, 이런 얘기였다. 그리고 아마 아래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나오는 말이 인용되었을 것이다. 그때 이후로 이 문구를 가슴에 새겼다. 집 책상에 앞에, 직장 책상 유리에 끼워두고 늘 읽었다. 인정과 칭찬에의 집착이 강하고, 보이는 모습에 연연하는 나를 한 번씩 멈춰 세우는 말씀이었다. 테이블에 꽂힌 꽃을 보고 그 시절 설교와 저 문구가 생각났다. 도대체 누가?라는 질문과 함께 한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알지도 못하는 이들을 위해, 누가 알아주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조용히 이래 놓으실 분. 별 거 아니에요. 마침 꽃이 있고, 시간도 있어서 그랬어요. 하실 분.

정말 마음이 환해졌나보다. 사진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카메라를 보며 지은 설정 웃음이긴 하지만, 설정된 웃음도 마음이 좋을 때와 아닐 때가 다르다. 사진을 본 남편, 채윤이가 좋아했다. 심지어 연구소의 그림 집단 여정인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에 참가한 벗이며 친척인 혜경이 그림을 그려 보내왔다. 사진에서 기쁨이 보였다고. 꽃을 가져다 놓은 집사님은 "별일 아닌데" 하실 것이다. 별일 아닌 것이 사랑으로 흘러가는 일이 흔하다. 하고, 그냥 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작은 일들, 미처 '나(ego)'가 담길 새 없이 흩어지는 일들이 좋고 소중하다. 사랑은 준 사람이 아니라 받은 사람의 것이다. "내가 해준 게 얼만데!" '줌'에 방점이 찍힌 것들은 사랑에서 가장 먼 것, 심지어 폭력이 되기 십상이다.

사랑이 없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아무 값어치도 없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그것이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풍성한 열매를 맺게 마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이루어놓은 성과보다 그 사람이 얼마만 한 사랑으로 그 일을 했는가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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