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머리에 이고 걸을 수 있는 나날이다. 월요일로 치면 두 번 정도 될까. 여기저기 벚꽃 길 검색을 하다 동네 보정동으로 정했다. 산책하며 지나는 길이지만, 벚꽃 명소로 치고 가 보기로. 여러 아파트를 통과하고 작은 언덕 같은 산을 넘어 3,40 분 걸으면 보정동 카페 거리다. 인도 카레 좋아하고, 따뜻한 난을 특히 좋아하는데, 활짝 열어젖힌 창문을 좋아하고, 노천카페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것을 다 갖춘 식당에서 기분 좋게 식사했다. 날이 뜨거워서 해가 나는 쪽으론 걸을 수가 없다. 커피 한 잔 테이크 아웃해서 정자 벤치에 앉았다. 

 

월요일 밤에 나는 거실에서 대학원 수업하고, 남편은 안방에서 <마음의 혁신> 책모임을 한다. <마음의 혁신>은 내 인생의 카타콤 안에서 만난 인생 책 중 한 권이다. 신앙 사춘기의 숲이 아직 캄캄할 때, 카를 융과 안셀름 그륀, 아빌라의 데레사를 시각 장애인 수준으로 더듬던 때였다. 우레와 같은 깨달음을 주지만 너무나 낯선 저자들이라 정신이 혼미해지곤 했었다. 그 시절 유일하게 익숙한 세계 안의 저자가 달라스 윌라드였다. 이제 읽어보면 그렇듯 철학적이고 신학적이고 딱딱한 책인데, 그 책을 읽고 그렇게 마음이 뜨거워졌으니, 참 신비한 일이었다. 작년 에니어그램 지도자 과정 여름 방학 중에 <마음의 혁신>을 함께 읽었다. 감개무량했지. 나는 <마음의 혁신> 한 권이지만, 달라스 윌라드의 전작을 읽고 제대로 빠져 있는 남편이 최근 목사님 집사님 세 분과 월요일 저녁 책모임을 하고 있다. 달라스 윌라드의 인생은 물론 살았던 동네나 집(구글 지도로 다 찾아감)까지 꿰고 있는 김종필이다. 달라스& 종필, 어쩐지 성향과 기질이 비슷한 구석이 있다. 

 

나란히 앉아 벚꽃 흩날리는 장면을 바라보며 이 얘기 저 얘기 경유하다 '달라스 윌라드' 역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이 "머리를 감다가! 내 영혼을 느꼈어. 달라스 윌라드가 말하는 그 영혼, 내 영혼의 상태 같은 걸 느꼈어."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물론 알아들어진다. 관상기도나 침묵의 시간이 아니라 머리를 감다가인 것은 조금 의외이지만, 충분히 끄덕끄덕. 또 <무지의 구름>이나 <영혼의 성>이 아니라 그 철학적이고 딱딱한 <마음의 혁신>을 읽다가 자기 영혼을 '느꼈다'니! 그건 좀 갸우뚱... 이지만 김종필이니까! 아, 나도 오래 전에 그랬었었었었지!!! 

 

같은 걸 같이 읽고, 같은 생각을 하고, 모든 생각을 나누되 깊이 나누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불행을 달리던 때가 있었다. (있었다, 아니고... 지금 이 순간만 빼고 늘 그렇다.) 말하자면 영적 여정에서 내가 큰 덕을 보고 있는 신비신학이나 기도를 남편도 똑같이 알아야 한다는 조바심 같은 것이다. 내게 좋은 것은 좋고 옳은 것이니, 남편도 나와 같아져야 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페미니즘이고, 어떤 때는 심지어 수영이나 PT 같은 운동일 때도 있다.) 그의 길이 있는 걸. 그와 나의 다름을 평생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살면서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이다. 너의 길과 나의 길이 다름을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모처럼, 아니 난생처음인가? 네 길을 버리고 나의 길로 오르라고 얼마나 강요하고 압박을 주었던가. 동네 정자 벤치에 앉아 문득 깨달아지는 것이다. 내일이면 다시 설교 논평을 하고, 말투를 트집 잡으며 나의 길을 강요하고 말 것을 알지만, 피고 금세 지는 벚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잠깐 착한 마음을 가져보는 것으로! 잠깐 왔다 가는 마음이지만, 내게 있는 마음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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