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중에 스파트필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애가 성격이 담백하기 때문이다. 물을 많이 먹어야 하는 아이인데, 물이 떨어졌다 싶으면 온몸으로 말해준다. 어깨고 뭐고 축 처져서는 "야, 집사! 이럴래? 나 안 돌볼래?" 한다. 얼른 물을 주면 몇 시간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난다. 덜렁거리고 게으른 나 같은 집사가 키우기에는 딱이다. 꾹 참고 있다가 갑자기 말라죽어버리는 화초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란... 수많은 화분이 죽어나가고, 그래서 베란다 풍경이 바뀌고 또 바뀌지만 늘 하나씩은 키우고 있는 것이 스파트필름이다. 네가 네 몫의 생명을 살아내는 것처럼 나도 그럴게. 너 거기 베란다에 있고, 나 여기 거실 테이블에 있고. 각자 되어야 할 자신이 되어 생명을 누리자. 화이팅!

지방으로 내려가시는 집사님께서 작년 여름에 커피나무를 하나 남겨 주셨다. 전에 한참 커피 공부할 때 이 녀석 키우는 조건이 까다롭단 얘길 들었었다. 공들여 키우셨는데 내가 데려가 죽이면 어떡하지, 죽을 수도 있겠다, 했는데. 의외로 잘 자라서 드디어 커피 체리라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되었다. 키워보니 스파트필름 못지 않게 투명한 친구다. 사랑이 필요하다고 정직하게, 온몸으로 말한다. "어머, 미안해!" 하고 돌봄을 주면 다시 살아난다. 얼마 전에는 꽃을 피웠다. 커피 체리에 이어 커피 꽃까지 실물 영접하게 된 것이다. 10여 년 전 커피에 꽂혀서 세상의 모든 커피 책을 다 읽는 심정으로 글로 배운 커피. 그즈음 책 속 사진으로만 보던 커피나무, 커피체리, 커피꽃이다. 그 시절이었다면 엄청난 감동과 흥분이었을 텐데 덤덤하게 속 깊은 행복감으로 마주했다. 꽃보다 더 반가운 건, 저 연한 새 잎. 예수님을 빗댄 여러 비유들이 있지만 유난히 좋아하는 이사야 말씀인데. '연한 순' 같은 예수님이 나는 참 좋다. 사실 커피나무나 스파트필름이나, 모양이 그리 예쁘지는 않다. 흔하디 흔한 식물이고. 눈에 띄는 특별한 아름다움도 없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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