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던 성수기이다. 전국의 교회 청년부들이 여름 수련회를 하는 8월 15일 어간에는 강의 요청이 쏟아지곤 했다. 한참 전 약속된 첫 번째 강의 이후 오는 초대는 모두 거절하게 된다. 성수기 강사료 규정을 만들어 볼까, 성수기 해수욕장의 바가지요금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그런 농담을 했던 적도 있었지. 아득한 기억이다. 코로나 이전, 3년 전의 일이니까.

마스크를 써야 하고, 알아서 거리 두고 격리해야 할 것 같은 시절이지만 조심스러운 대면 수련회가 열리고 있다. 모처럼 8월 15일 성수기 강의를 했다. 뻔한 강의 주제, 뻔한 레퍼토리이지만 듣는 사람이 바뀌니 같은 얘기를 새로운 것처럼 하고 다닌다. 강사의 운명이다. 같은 얘기를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아서 나름대로 이렇게 저렇게 순간 마음이 이끄는 대로 떠들어 보지만, 결국 비슷하다. 뻔한 내 존재 안에서 나오는 말이니까.

희한한 것은 같은 강의안을 가지고 같은 사람이 같은 얘길 하는데 청중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이다. 강의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 내 마음 역시 극과 극으로 다른 경우가 있다. 마음과 영혼까지 풍성해져 콧노래 부르며 운전하게 되는가 하면, "이제 정말 마이크 꺾어버릴 거야! 이 나이에 무슨 아들 딸 같은 아이들에게 강의야, 오늘로 끝이야." 온갖 지옥의 시나리오를 써가며 집에 돌아오는 날도 있다. 자아 팽창과 자기혐오의 극단을 오가는 병증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강의 후 만족감이나 성취감은 청중에게서 온다. 청중이 나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한다.

언제던가, 생각지도 않았는데 강사로 막 불려 다니기 시작할 때, 말하자면 초심일 때가 있었다. 초심은 엄청난 자의식이었다. 강의 한 번으로 청년들을, 여성들을,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또는 환상. 나름대로 지난한 체험의 고백을 강의에 담기 때문에, 내 경험을 비추어 당신들도 이렇게 해보면 자아가 막막 바뀔 것이다! 과장하자면 이런 열정과 환상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강사는 상수이고, 변수는 청중이다. 강의 듣는 개개인이기도 하고 청중이라 불리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억지 수치를 내볼까? 상수인 강사 30%, 변수의 청중 40%, 알 수 없는 힘 30%. 이 정도로 해보자.

여하튼 하고자 하는 말은 같은 강의 내용의 강의를 며칠 차이로 하는데도 그 끝이 다르더라는 것이다. 한 번은 폭망 한 느낌으로 메마른 마음이 되고, 한 번은 기쁨으로 가득 채워져 돌아오게 되고. 그러니 큰 틀에서는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강의를 잘해서가 아니라 준비되어 은혜받는 것이라 여기고. 또 내가 강의를 못했다기보다는 그 순간 청중과의 주파수가 잘 맞지 못했다 여기고. 강사로서 나는 뻔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나의 이야기는 "The way" 아닌 "A way"일 뿐이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가 닿을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갔다 반사되어 올 것이겠고. 강의 한 번으로 사람이 바뀌면 세상 무엇이 어렵겠는가.

그럼에도 어쨌든 기분 좋은 날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생명의 에너지가 넘친다. 강의 마치고 사진을 찍는데 "몰아주기"가 아니라 "받쳐주기" 콘셉트이다. 자기를 망가트려 몰아주는 방식이 아니라 키 작은 강사보다 키를 더 낮추고 받쳐주기. 이것 참 마음에 든다. 강의도, 모든 관계도 서로 받쳐줌으로 서로에게서 선함을 끌어낼 때 최상이 되는 것 아닐까 싶다. 내 앞에 있는 존재를 받쳐주어서 그가 가진 선함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그런 강사, 상담가, 사람이고 싶네. 받쳐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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