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진리'를 묻고 들었던 빌라도, 그가 어떤 예수님을 만났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한 마디가 제 마음을 울립니다. "이 사람을 보시오!" 죄 없으신 사람, 하나님이신 이 사람이 수난을 향해 한 걸음씩 가시는 것을 봅니다. 사랑으로 내어주신 주님의 몸을 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얼마나 우리를 끌어당기는 말입니까. 정말 그러고 싶습니다. 자유롭게 되는 것... 궁극적으로 영적인 자유이겠으나, 어쩌면 영적 자유의 한 부분일, 어쩌면 영적 자유로 가는 길에서 아주 중요한 경유지일 '정서적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로어 신부님의 정의는 간단하네요. 다른 누구에게 나를 증명할 것이 없고, 다른 누구로부터 지켜 낼(얻어 낼) 것이 없는 상태.

물론 마음을 닫고 있으면, 연결을 딱 끊으면 저런 상태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바라는 것 없다. 나도 바라지 않을 거다! 이런 마음은 자유가 아니라 차라리 감옥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요. 영향받지 않겠다는 심장은 자유라는 착각의 고립 상태입니다.

리처드 로어 신부님이 말하는 '정서적 자유' 공간이란... 충분히 작아지고, 충분히 벌거벗고, 충분히 수치당할 수 있는 자리인데요. 벗님들은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십자가가 떠오릅니다. 누명을 뒤집어쓰고, 맞고, 모욕당하고, 벌거벗겨져 누구라도 볼 수 있는 곳에 매달려 수치의 극한에 있되,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 자신이 지금 어떻게 보이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자기답게 생의 마지막 숨을 내뱉는... 정서적 자유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그 뒤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거두게 하여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의 제자인데,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
"또 전에 예수를 밤중에 찾아갔던 니고데모도 몰약게 침향을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왔다."

잃어봐야 그 존재의 소중함을 비로소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 사랑하는 이들을 천국에 보내고 나서야 그분이 제대로 보였던 여러 경험이 있습니다. 상실의 공간은 얼마나 투명한 공간인지요. 예수님을 잃은 자리에서 두려워 숨어 있던 제자들이 커밍아웃 하여 그분의 시신을 수습합니다.

 

적막한 토요일. 예수님이 무덤에 내려가 계신 시간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의 손에서 장례가 치뤄지는 중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난 제자들은 얼마나 처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상실감과 슬픔, 죄책감으로 견딜 수 없는 시간일 것 같습니다. 가장 캄캄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제 상상도 못 했던 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것이고, 가장 부끄러운 이 시간으로 인해 남은 인생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더욱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 주님 버리고 떠나 홀로 계시게 했던(하는) 많은 시간들이 부끄럽고 슬픕니다. 이런 저를 위해 기꺼이 죄값을 "대신 지불하신" 당신을 더욱 사랑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
고난주간 한 주 간의 묵상 조각글이다. 하나는 학교 수업에서 렉시오디비나를 심플하게 가르쳐 주시는 신부님의 안내에 따른 것이고, 하나는 연구소 카페 아침 묵상으로 올린 것이고, 하나는 교회 큐티 나눔방에 댓글로 남긴 것이다. 세 공간이 어쩌면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표현의 방식이 다르고, 표현하는 태도도 조금씩 다르다. 각각 다른 방식으로 조심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내 마음은 하나다. 각각 다른 공간에서 거기 적절한 옷을 입고 그 자리에 부합하는 언어를 고르는 일을 분열적으로 하고 있지만, 내 마음이 하나인 것을 나의 그분께서 알아주신다.  Behold the man! 고난을 향해 한 걸음 씩 걸어들어 가시는 예수님과 그 어느 해보다 길게 눈 맞추고 보낸 사순기간이다. 비 오는 날 산책길에서 만난 떨어진 벚꽃은 예수님의 심장에서 쏟아진 피 같았다. 흐르는 빗물이 그렇게 보이게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면...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이 찬양에서 십자가에서 쏟으신 사랑은 콸콸 흐르는 피의 이미지로 떠올랐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인 예수님과 그 몸으로 겪어내신 고난이 감당 못할 사랑으로 나를 향해 흐른다. 

 

 

'정신실의 내적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후의 빛 학교  (1) 2023.04.23
작고 작은 이 세상  (2) 2023.04.22
『마음의 혁신』 강독 모임  (3) 2023.03.30
두 세계  (1) 2023.03.28
더 나아지기 위해 가만히 있기  (0) 2023.03.1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