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게장을 담궜다지요.
아직 살아 움직이는 알이 가득찬 암게를 누가 주셨어요.
워낙 비싼 놈이니깐(암게니까 놈이 아니구나....) 가끔 엄마생신 때나 몇 마리 사서 꽃게찜을 해봤지 우리 먹자고 사보질 않았었지요. 이런 기회에 나도 꿈에 그리던 간장게장 한 번 담아보자 했습니다.
안 해 본 요리를 할 때는 네이버님께 물어보는 것이 제일 빠르고 정확하지만 웬지 이럴 때는 꼭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지요. '엄마! 간장게장 어떻게 담궈?' 이렇게 물어볼 때 확인되는 엄마의 존재감이란... 결혼한 딸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이지요. 엄마 역시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아, 우리 딸이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하시며 내심 좋아하시고 의욕에 넘쳐 설명하시는 걸 느낄 수 있지요.
'그거, 솔로 게를 깨끗이 씻어서 진간장이다 푹 담궈. 그리고 며칠 있다가 그 간장 따라내고 끓여서 한 다시 담궈놔' 게장이 그렇게 쉬워? 하면서 디립다 진간장을 쏟아 부어놨지요.
그런데... '이거 너무 짠 거 아냐?' 아무래도 찝찝합니다. 아무래도 네이버 선생에게 확인해봐야겠다 싶어서 보니깐 그게 아니드라구요. 아, 순간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우리 엄마가 그래도 한 요리 하셨는데 이렇게 터무니 없이 가르쳐주시다니.... 엄마.....
마음을 추스리고 엄마한테 전화했습니다. '엄마 그렇게 하면 너무 짠거 아냐?' 했더니 '이~ 게가 딱딱혀서 갠찮여' 하십니다. 아! 엄마가 어렸을 적에 해준 간장게장은 꽃게가 아었어요. '독게'(충청도에서는 그렇게 불렀는데 '돌게'라는 뜻으로 추정됨)라는 아주 딱딱한 민물게 였습지요. 아주 딱딱한 게를 아주 짜게 게장 담가서 망치로 두드려 깨서 살을 발라서는 거기에 갖은 양념을 해주셨지요. 아! 맞다. 엄마는 꽃게로는 간장게장을 한 번도 안해보셨던 거예요. 꽃게로는 항상 양념게장을 하시고 독게로는 간장게장을 하셨지요. 그런거였어.
마음을 놓고 네이버 선생이 가르쳐준대로 간장에 물을 섞어 파, 마늘, 생강, 청양고추, 마른고추 넣어 팔팔 끓여서 부었습니다.
한참 요리 중에 엄마 전화가 다시 왔습니다. '야, 너 그 게가 싱싱허믄 찌게 끓여서 먹어. 된장좀 풀고 끓여서 너도 먹고 김서방도 줘라. 니가 어려서부터 게찌게를 좋아혔잖어. 알었지. 싱싱허믄 찌게를 끓여. 그리고 게는 딱쟁이가 위로 오게 넣어서 간장 부어야 헌다' '알았어. 엄마. 그런데...' 뚜우뚜우뚜.... 당신 말씀만 끝나면 바로 전화 끊으시는 거 주 특기. 그 뚜우.... 하는 소리의 여운에서 나는 들었습니다. 엄마의 침 넘어가는 소리를... 엄마가 지금 게찌게를 드시고 싶은 것입니다. 싱싱하고 알이 가득찬 놈으로 끓인 걸 말이죠. 담번에 엄마한테 갈 때는 게를 사갖고 가서 찌게를 끓여드릴 참입니다. 물론 제가 처음으로 담궈본 간장게장도 한 마리 가져다 드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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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흑. 저 노란알...선생님 넘 이러지마세용 ㅠㅠ 밤낮으로 이런 사진들을...
ㅋㅋㅋㅋ
저 지금 완전 씽크로율100% 공감중이에요.
우리 엄마도 저랑 저나하다 끊을 때 보면
이미 엄마말 끝마무리 쯤엔 목소리가 멀어져만 가고 있어여.
왼쪽 손은 이미 폴더 접을 준비하고 계실 뿐이고 귀에서 전화기는 이미 멀어져 있을 뿐이고~~~ㅋㅋㅋ -
yoom 2009.05.16 12:20
다행히 오늘은 낮에 사진을 봐서 다행입니다 ㅋㅋ
하하 우리 엄마두!! 할 말 하구 그냥 끊으셔요
가끔은 이미 끊으셨는데 주변에 사람들 있을 때는 너무 민망해서
끊어진 전화기 붙들고 혼잣말 한적도 있어요.
'응 엄마 이따 봐 끊을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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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런 알배기 꽃게장에까지 손을 대다니..
그냥 속이 꽉 찼구만.
나두 간장게장은 영~ 안 넘어가. 딱딱한 돌게라면 모를까..
다 드시구랴~ (나두 꿀~~ 꺽. 흰쌀밥에 비벼서.) -
hs 2009.05.18 23:15
야~~!저 위에 꺼 정말 맛있겠어요.
전 게등 손을 이용해서 먹는 것,잘 못 먹는데 저거는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어르신들께 여쭈어 보는 거 너무 중요하죠?
삶을 통해서 얻은 지혜가 있고 또 어떤 선물보다노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선물이 되거든요.^^ -
myjay 2009.05.21 00:44
처음 이 만행을 보고 침을 백만 리터를 흘렸다는...
이 포스팅을 계기로 배틀은 포기했습니다.ㅜㅜ
그냥 요리는 스승으로 모실까 싶기도하구요.ㅋㅋ
근데 간장게장 진짜 장난 아니게 맛있어 보이네요. 쩝~
밤마다 사진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캬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