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애기를 키우느라 꼼짝 못 하는 동생네가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갔다.

엄마 애기를 돌보러 동생 집에 와서 하룻밤을 지낸다.

이런 일로 동생이 부탁해오면,

'싫어. 얼마 줄겨?' '뭐 해줄겨?' 이런 식으로 대답하지만 피차에 오케이로 통한다.

할 일이 태산이고, 현승이 중학교 가서 보는 첫 시험의 첫날 전야지만.

No라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놈만 골라 패는 엄마는 과일은 포도에 집착하는데 망원시장에 갔더니

씨도 없는 거봉이 겁나 달고 맛있는 게 있다.

한 박스 사서 엄마 집으로 가 1층 엄마 집 바로 앞에 주차했다.

밖에서 보이는 주방 쪽이 캄캄하다.

어렸을 적부터 1000번은 들었을 엄마 나이 다섯 살(세상에나!) 적 무용담이 떠오른다.

거의 90여 년 전, 다섯 살 엄마가 결혼식에 간 식구들을 기다리며 캄캄한 집에서 들창문에 머리를 내밀고 울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얘기이다.


나를 보고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엄마가 걸음마 차를 밀고 졸졸졸 따라다닌다.

내 방이는(에는) 냄새나지? 밖이 쇼파 가서 앉을래? 앉어서 나랑 얘기 좀 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엄마, 내가 밖에서 보니까 집이 캄캄하대. 엄마 다섯 살 때 혼자 집 본 얘기 생각나네'

라고 안전핀을 뽑았더니.

이옥금 권사님 구십 일대기 읊기 시작되었다.

'그려서 내가 안 되겄다. 서울로 가야겄다. 딱 마음을 먹은 거여..... 시상이(세상에), 그때 니 나이가 열시 살(열세 살), 운형이가 열한 살이었어. 애기지, 애기 (울먹)'


엄마, 나중에 천국 가서 아부지 만나면 제일 먼저 뭐라고 할 거야?

나 헐 말 다 생각이 있지. 당신 씨가 착헌 씨여유. 신실이 운형이가 당신 씨라 얼매나 착허게 나한티 잘 허는지 몰라유.'

착한 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네버 앤딩 엄마의 일대기)

$#ㅏㅏㅏㅐㅐㅓㅠㅏㅣㅠㅠㅒㅒㅖㅓ#*&%^$@@ㅓㅓㅜㅗ........

다~아 하나님 은혜여.

(끝날 분위기)

참말로 지금 생각허믄 오뜨케 그르케 혔나 싶어.

(분위기 전환하여 2절 시작)

그릉게 성전 건축허고 반대허던 자들 다 입이 딱 붙어 버린 거여. 이옥금 집사, 이옥금 집사.... 칭찬이 떴지. (자뻑, 먼산)

3절, 4절, 5절......10절........ 

(현승이가 적절한 타이밍에 전화를 걸어줌. 그리하여 쉬는 시간)

(엄마는 아직 눈빛이 아련. 여전히 이옥금 집사 칭찬 비행기 탑승 중)


엄마, 현승이 내일 시험이야. 중학교 첫 시험이야. 기도해.

얼라, 그려? 그르믄 너 빨리 지금 집이 가라~ 가서 봐줘야 할 거 아녀

.(마음에 없는 소리)

현승이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

미국 가서 할 강의 준비해야 한다니까. 이따 엄마 자면 나는 강의 준비 해야 돼.

그려? 야, 나 잠온다. 나는 들어가서 잘팅게 빨리 강의 준비혀.

(빛의 속도로 사라지심)





강의 준비는 무슨! 사진도 많이 건졌는데 블로그질이나 해야지.

몇 줄 쓰고 있는데 스윽스윽, 엄마의 네발 걸음마 차 등장하는 소리.

'미국 가는디 그려도.... 좀 줘야지.....'

만 원짜리 다섯 장 들고 나오셔서 노트북 위에 놓는다.

'얼라, 자꾸 미끄러진댜. 왜 안 받고 핸다폰만 들고 있댜. 얼른 지갑이다(에다) 느(넣어)'





이렇게 글을 마치려는데 다시 스윽스윽 자가 걸음마 차 오는 소리.

왜, 또오?

(네발 걸음마 차 앞에 이불 하나 척 걸치고 등장)

이불 갖다 줄라고. 이 이불이 빨고 한 번도 안 덮은 거여. 냄새 안 날 거여.

이불 꺼내 왔어. 얇은 거 덮을 거야.

그려? 춥잖여. 알었어.





쉽게 포기하고 유유히 엄마는 사라졌지만.

금세 또 뭘 들고 나올지 몰라서 글을 마무리할 수가 없다.

.

.

.

.

.

많이 기다렸다.

이제 잠이 드셨나보다.

나도 맘 편히 완료 버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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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항상 행복해보여. 그런 너가 참 부러

이 말이 어쩐지 잊히질 않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에게 받은 쪽지에 적혀 있었지요. 당시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아버지를 잃은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사춘기 여자아이였거든요. 친구들 앞에서 찧고 까불며 지었던 웃음은 슬프고 누추한 나를 감추는 위장술이었을 텐데. 친구는 제대로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실은 밤마다 아버지가 그리워 울었습니다. 아버지라는 비빌 언덕이 없어지자 하루아침에 돌변한 세상은 낮도 밤처럼 어두웠고요. 친구가 본 제 모습이 진실이었으면 싶었습니다. 여전히 아버지가 계시고, 가난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항상 행복한나였다면요.

 

항상 행복해 보이는 나와 이른 나이에 생의 무게를 알아버린 실제의 나사이 불화를 중재한 것은 밤마다 쓰는 일기였습니다. 삶의 짐을 글로 옮기고 나면 묘하게도 무게감이 달라집니다. 이 희한한 경험은 저로 하여금 일상쓰기를 멈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경험에 세월이 더해지니 순환 고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루의 번뇌는 글이 되고, 써놓은 글은 하루를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이 되는 것입니다. 나선형 선순환의 고리는 어느 한 지점을 향하는 것 같더군요. 어머나, 그 지점은 영원에 잇댄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로 빛이 들어올 틈 없는 일상의 숲에서 만나는 빈터였습니다. 거기로 갑자기 들이치는 천상의 빛이었습니다. 내 일상보다 더 큰 실재를 향해 눈이 열리고 사유의 지평이 열리는 공간이었습니다. 설거지감이 쌓인 싱크대 앞에서도 순간이동으로 다다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직업을 가지고 아내이며 엄마로 사는 것, 딸이며 며느리이며 동시에 이 시대 부끄러운 이름 목회자의 아내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나날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입니다. 그 짐 모두 사라지고 항상 행복한날이 있으려나요. 다행히도 저의 선생님, 상담자, 구세주 그분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저를 부르셨어요. 쉬운 멍에, 가벼운 짐을 함께 메고 같이 지고 가자고요. 수고하고 무거운 제 일상의 짐들, 그분께 나아갈 필요충분조건이 된다니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길 바랄 게 아니더군요. , 이제 저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보따리 일상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겠습니다. 무거운 짐이 쉽고 가벼워지는 신공을 보실 수도 있어요. 비밀인데요. 제게는 오랜 시간 갈고 닦은 기예가 있답니다. 일단 저의 성소(聖所) 싱크대 앞으로 오세요. 거기서 뵈어요!



----

그래서 책은 언제 나오냐는 문의가 쇄도하지는 않지만,
굳이 알려드립니다.

제가 오는 주일에 미주 코스타 참석 차 출국하게 됩니다.
코스타에서는 컨퍼런스 기간 내내 서점을 운영하는데요.
그곳에 뜨끈뜨끈한 이 책 깔아 놓으려고요.
저의 편집사님께서 마지막 일정에 박차를 가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30일 쯤 인쇄가 되고, 저는 '앗 뜨... 앗 뜨거' 하면서 들고 갈 것입니다.
어쩌면 여기보다 미쿡에서 먼저 출시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나란 저자! 뭐 이렇게 글로벌한 거야? ㅍㅎㅎㅎㅎㅎㅎㅎ)

서문입니다.
역시 블로그에만 공개합니다.
비밀입니다.
비밀은 새어 나가라고 있는 것이니께요.
막 발설하고, SNS에 퍼나르시고.... 그러시면 제가 뭐 막을 방도가 있어야 말이죠.
(소근소근) 이거 너한테만 보여주는 건데 아직 나오지도 않는 책의 서문이래.
너만 딱 알고 있어.' 이러고 소근소근 공유하시면 제가 알 도리가 있남유?


뽐뿌질은 계속 됩니다.
가진 건 블로그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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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친구들은 어른들을 만난다.


예를 들면,

G&M글로벌문화재단 문애란 대표, 서울대 우종학 교수님 같은 분들.
두분 다 검색해서 기사 몇 개만 읽어봐도 어마어마한 분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카피를 만든 카피라이터였던 문 대표님.

또 내 지식으론 소개하기도 어려운, 음... 유신론적 진화론의 우종학 교수님.

다양한 만남을 통한 배움이 주는 유익이 풍성하다.


라고 믿고 싶다.


령 채윤이 입을 빌자면 이런 배움을 얻고 있다.

문 대표님 만나고 온 날.

"엄마, 대박! 여의도의 진짜 높은 빌딩인데 주변이 다 보여. 대박.

문 대표님 완전 멋있고..... 나는 진짜 나중에 나이 들면 그렇게 하고 다닐 거야"

우 교수님 만나고 온 날.

"엄마, 우종학 교수님 알아? 완전 완전 완전 대박 멋있어. 잘 생기고, 말하시는데 너무 멋있어. 아흐. 헐, 그분도 코스타 강사였어? 얘기 해봤어? 완전 멋있어"

(멋있게 말하시는 그 '내용'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었던 듯)


그리고 어제는 게임회사 Nexon 탐방을 하고 왔다.

물론 여느 날 못지 않게 (자기 식의) 감동을 받고 왔다.
"그래서 나는 이제 결심했어! 게임을 할 거야. 그동안 나는 게임을 너무 안 했던 것 같애. 이제 컴퓨터 게임에 입문할 거야. 카트라이더를 해야겠어 (주먹 불끈불끈)"


티브이도 없는 집에서 순결하게 자란 채윤이,

이렇게 게임의 세계로 가는 건가?

그리고 채윤이는 나이 들어서 문애란 대표님처럼 염색하지 않고

짧은 은발을 할 것이고,

우종학 교수님 같이 잘생긴데다 지적이기까지 한 남자를 이상형으로 꿈꿀 것 같다.

꽃친 프로그램의 효과, 또는 역효과 대박이다. 꽃친은 대박이다.








넷째 출산이 아니고 네 번째 책 출간입니다.

아기의 이름 아니고 책의 제목은 <나의 성소 싱크대 앞>입니다.

편집장님과 톡을 주고받다가 '저를 가장 많이 닮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 같아요'

라고 했습니다.

앞의 세 책이 저의 '어떤 면'을 재료로 하여 쓴 글이라면,

이번 책은 저라는 사람의 거의 모든 면을 다 취합하여 엮은 글이기 때문에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일상'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성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저만의 답이기도 합니다.

주어진 오늘을 착한 마음으로, 가장 가까이 만나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상이 영성입니다.

그리 살고 싶으나 마음 같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백이며 성찰이며 기도입니다. 


그런 의미로 '싱크대 앞'은 영성이 현현하는 중요한 장소.

싱크대 앞 영성이라고 해서 주부들만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이 글을 보시는 누구라도 주 독차층에서 피해갈 수 없으니 한 권씩 사주실 생각,

단단히 하고 계셔야 합니다. 케케.


저는 책 제목을 조금 더 선정적으로 가자고 제안했는데요.

<모태 바리새인의 회심 일상> 요런 거요.

편집장님의 선택이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이었답니다.

(물론 둘 다 글의 제목입니다.) 정하고 보니 참으로 마음에 드는 책 제목이네요.

당분간 뽐뿌질이 이어질 예정이옵니다.

아, 아직 서점에 나오진 않았구요. 여기서만 살짝 공개입니다.  


본문의 일부 인용하는 것으로 오늘의 뽐뿌질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엄마, 강의 끝났어? 잘 했어? 어디야? 그런데 우리 저녁 뭐 먹을 거야?" '우리 저녁 뭐 먹을 거야?' 이것은 강사님, 강사님, 강의 너무 좋았습니다.’에 취해서 비행기 타고 있던 나를 현실의 나락으로 뚝 떨어지게 하는 주문이다.


(중략)


하이힐과 정장을 벗어 던지고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싱크대 앞에 서니 손바닥만 한 다육이 화분이 나를 반긴다. 그리고는 존재 깊은 곳까지 닿을 듯한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몸은 피곤한데 몸 너머의 또 다른 내가 새로운 에너지를 주입받는 느낌이었다. 이 편안한 자리에 서서 무슨 음식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그 어떤 찬사도, 깍듯한 의전도 없고 끝도 시작도 없는 이 솥뚜껑 운전수의 자리. 사실 나는 이 자리를 사랑한다. 공들여 준비해도 한 번 먹어 치우면 끝이어서 오래 공로'를 붙들고 있을 수 없는 자리, 그래서 억울하다고 징징거리고 화내는 날도 많지만 실은 내가 이 하찮은 자리를 깊이 사랑한다. 강사님도 선생님도 아닌, 그저 밥 하는 아줌마로 돌아올 싱크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노동 또는 노력이 '공로'가 될 수 없는 곳일수록 본래의 나와 더 가까운 자리라고 생각한다. '주부' 역시 페르조나이지만 말과 글로만 평가받고, 칭찬받고, 돈을 받는 ''보다는 훨씬 더 가벼운 사회적 가면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서기만 해도 업적과 공로로 박수 받는 나로부터 물러서서 보잘 것 없지만 사랑받는 존재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싱크대 앞은 나의 성소(聖所)이다. 투덜거림과 피곤함으로 서는 날이 많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곳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복음성가 하나가 개사가 되어 입가에 맴돈다. ‘다시 싱크대 앞에 내 영혼 서네.’ 평생 부엌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현존을 구하고 경험했던 로렌스 형제를 내 감히 떠올린다.


(중략)


그리하여, 내게 가사노동은 ', 여자만?'하며 한 없이 툴툴거리면서도 그 앞에 서면 주님의 현존을 가까이 마주하는 자리이다. 툴툴대며 서는 거룩한 자리이다. 아침에 식구들을 내보내고나면 '빨리 설거지와 청소를 해치우고 커피 한 잔 내려서 메시지 묵상에 들어가야지.' 조바심을 치는 때도 있었다. 요즘은 가장 느릿느릿 하는 일이 아침 설거지이다. 아침부터 일이 있어서 이 여유로운 시간을 놓치면 오히려 아쉽다. 손으로 느껴지는 차거운 수돗물의 느낌, 물에 불은 밥그릇이 수세미에 닿으며 후루룩 씻겨나갈 때의 느낌, 뽀드득뽀드득 헹굼질 할 때 나는 소리, 이 모든 것을 그 분의 현존으로 들어오라는 초대로 알아듣는다. 그러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아침 묵상은 이미 시작되었으니까. 고급스런 컬러에 얼음 나오는 냉장고와 반짝거리는 싱크대는 없어도, 풀 메이크업에 드레스 입은 세련된 주부가 아니라도 누구 못지않게 느낌 살려서 이 대사를 읊조릴 수 있다. ‘여자라서 행복해요.’


- 나의 성소 싱크대 앞 中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어린이 성가대 지휘 하던 젊은 날이 있었다. 주일 아침 6시 30분에 집에서 나가곤 했다. 심지어 전날 토요일에는 하루 종일 청년부 주보를 만들고 저녁에 청년부 예배 드리고 귀가 시간은 밤 11시 이후. 현승이 서너 살 즈음엔 1부 성가대 지휘를 했는데 기저귀 가방 챙겨 두 아이 데리고 아침 7시에 출근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시절에 대한 보상인지, 반대급부인지 한 동안 이보다 여유로울 수 없는 주일 오전을 보냈다. 강의가 있는 주일이 아니라면 바쁠 것 없는, 할 일 없는 안식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대한 반대급부인지, 올해는 주일 아침이 다시 분주해졌다. 7시 전에 일어나 성경공부 교안을 점검을 하고 기타 메고 핸드드립 세트 들고 8시 넘으면 출근 한다. 구역모임이다. 나 구역장이다. 다들 한 믿음, 한 신념, 한 영빨 하시는 목회자 부인들의 구역모임이다.

 

내가 구역장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일단 사모님들 중에 나는 바쁜 축에 드는 사람이었고, 주일에는 다른 교회 청년부 강의 가는 날이 많았으니까. 어쩌다 자원해서 구역장을 하게 되었다. 이냐시오 성인은 마음의 움직임을 황폐함(desolation)/위안(consolation)으로 구별하며 자신의 마음 상태를 깨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황폐함의 상태는 그 자체로 합당할 수 있지만(불의를 보고 분노하거나, 개인적인 실패로 낙담하거나....) 그런 상태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삼가도록 권한다. 구역장을 하겠다고 거의 충동적으로 결정하고 발설했을 때 내 마음은 황폐함이었다. 이냐시오 님의 말씀을 기억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한 결정으로 엄청난 심적 후폭풍을 맞았다. 다행히 폭풍 속에서 살아남았다.

 

폭풍이 지나고 고요해지자 꿈이 말을 걸어왔다. 내 안에 계신 '사랑'이라 이름하는 그분이 꿈으로 톡을 보내오셨다고 하자. 교회 밖에서 강의하고 상담할 때 사모님들을 만나면 일단 손부터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는 이런 저런 그럴 듯한 이유를 (나 자신에게) 대면서 '사모'로 만나는 만남을 피해왔다. 그렇다고 개인적 만남조차 피하지는 않았다. 사모 페르소나가 유연한 사모님들과는 나이 불문하고 마음 통하는 참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하였다. 주중에 있는 구역모임에는 시간이 안 되어 나갈 수도 없었지만 일단 마음을 내보내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100개는 있었고, 그 이유는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꿈이 말했다. 시간이 지나며 문제의 핵심은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 하고 싶었는 나의 높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내 말을 왜곡하고 내 진정성을 몰라주는 '그들'이 아니라 '나'의 진정성 그 자체를 점검해봐야 한다고.

 

올해 한 번 두 번 구역모임을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조금씩 믿음이 있고, 조금씩 상처를 받았고, 조금씩 두려워 자기도 모르게 방어벽을 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부끄러웠다. '나는 타교회 목사님 사모님들 대상으로 강의하는 여자'라는 자의식으로 내 곁의 동료들보다 우월한 존재라 여겼던 것이 많이 부끄럽다. 함께 구역모임을 하고, 주방봉사를 하고, 양파 까며 눈물을 흘리고, 지쳐 소진한 몸으로 마지막 국솥을 닦으며 알게 되었다. 우리는 사람! 나도 사람, 당신도 사람! 우리는 다르지 않은 그러나 고유한 어떤 소중한 각각의 존재라는 것을. 

 

미안하다! 줄 수 있는 것은 커피와 음악 밖에 읎다! ^^ 매주일 구역모임에 핸드드립 커피를 준비하고 찬양 한 곡을 위해 기타를 싸들고 간다. 초딩 몸매에 주렁주렁 달린 짐이 자연스럽지는 않아서 괜시리 민망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모임이 거듭되며 마음을 알아주는 이들이 생긴다. '아, 커피향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네' 이런 반응 참 좋아한다. 좋은 내색은 못하고 콧구멍만 벌렁벌렁. 지난 주일 모임에서는 첫 찬양을 부른 후 '아, 나 이 찬양 좋아하는데' 이런 말로 시작해서 떠오르는 찬양이 한 곡 씩 나오고, 악보 검색해서 바로 단톡에 올리고. 한 곡이 두 곡 되고, 복음성가가 어린이 찬양되고, 어린이 찬양이 찬송가 되어 한 시간 내내 찬양을 했다. 구역 성경공부 패스. 즉석 찬양 집회!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내 또래 음악 좋아하는 교회 오빠 언니들 모아서 모닥불 피워놓고 둘러앉아 끝없이 찬양하는 그런 꿈 말이다. 그 꿈이 비슷하게 실현되었다. 한 가지 아쉽운 것이 있다면 기타를 김종필이 잡았어야 하는데 기타 반주가 느무 촌스러웠다는 것.

 

그렇게 급조된 찬양집회를 마치고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 말씀 중 '신앙인이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라 하신다. 르완다 내전의 대학살을 추모하는 어느 성당에 써 있다는 글귀를 읽어주셨다. '네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알면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다' 당신이 나와 같은 사람이란 걸 안다면, 무엇보다 내가 얼마나 허튼 우월감과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존재임을 안다면. 우리가 서로 눈에 보이는 그 이상의 존재임을 안다면 나는 너를 죽일 수 없다. 그걸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살을 부대껴야 하고, 아프고 두려운 속내를 드러내야 하고, 손을 맞잡아야 한다. 너와 내가 동일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은 마음을 열고 몸을 부대끼며 소통할 때이다. 이번 주에도 주방봉사가 있다. 처음엔 막막하고 피하고 싶었던 일로 다가왔는데 어느 새 그 어떤 일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똑같은 장화를 신고, 같은 앞치마를 하고 척척 일을 해내는 우.리.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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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고등부 교사를 할 때 학생이었던 E1,

남편이 청년부 담당 교역자를 할 때는 E1이가 목자(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초등부 교사도 하던 E1는 우리 채윤이의 담임 샘, 또 찬양팀 샘이었다.

남편이 매우 아끼는 후배이며 동료인 J강도사님과 E1이가 결혼했다.

E1이는 E2, E3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그 어마어마한 세월과 사건들이 이렇게 짧게 정리되다니!

속절 없다.

 

**

E1네 가족이 집에 왔다.

배터리 충전 따로 안 해도 에너지 무한 발산인 E2, E3 자매가 쿵쾅쿵쾅.

두 사내 아이를 키우는 아랫집으로 인해층간소음의 피해자로 사는 우리집이다.

쿵쾅쿵쾅 다다다다, 오늘은 제대로 복수해주었다.

꽃친 다녀와 피곤한 채윤이가 조용히 한 잠 하시고, 그새 눈이 부어 나오더니

층간소음을 잡아주었다.

실바니안 패밀리를 가지고 E2와 소꿉놀이를 해주니 조용해졌다.

 

***

채윤이 아빠가 고등부에서 가르친 E1이 자라서 채윤이의 선생님이 되었었다.

채윤이가 고등부가 되어 E1의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모습을 본다.

이것이 세월이다.

지난 세월과 앞으로 올 날들을 오가며 목회자와 신학자와 설교자로 사는 이야기.

성대모사, 추억 꺼내기..... 로 데굴데굴 뒹굴며 웃기.

 

****

그래서 오늘의 메뉴는 '세월 찜닭'이다.

세월은 속일 수가 없다.

두 시간이면 웬만한 손님 식사 준비가 뚝딱뚝딱이었는데,

닭 두 마리 찜하고, 도토리묵 무침, 해물파전 만드는데 하루 종일 걸린 느낌이다.

실제 하루 종일 걸리진 않았다.

E1이가 목자하던 시절. 목자모임을 할 때 매번 12명 목자의 식사를 뚝딱 만들곤 했는데.

세월이 가면서 돌이켜 회복할 수 없는 것들이 쌓인다.

그리워하고 추억할 뿐이다.

E2, E3처럼 귀여운 아기였던 채윤이를 추억하고,

E1과 목자라 불리던 다른 청년들과 울고 웃던 시절을 추억하고.

지금보다 훨씬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던 내 몸을 추억한다.

 

질 수 없다. 결심했어.

 

내일이면 다시 어제가 되고 말,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 찜닭 졸였던 짭짤한 냄새가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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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31

 

 

젊은 시절 여성학자 오한숙희 선생의 글을 읽다 충격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책 어느 페이지에 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아내는 더 이상 섹시하지 않다이 한 문장입니다. 남편의 일기장에 적힌 글을 보고 잠이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저자 못지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사랑과 행복으로의 초대, 결혼’을 그리는 꿈 많은 크리스천 청년이었고, 오한숙희 선생은 나름대로 평등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결혼했는데 배우자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마침 그때 새로운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면? 이런 상상을 해보곤 했는데, 설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믿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더 이상 섹시하지 않다이 말은 결혼 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걱정을 해보죠? 이제는 제가 경험자로서 말해줄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내는(남편은) 더 섹시하지 않습니다. 여친처럼, 남친처럼 섹시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고장 난 브레이크처럼 멈출 수 없는 격정적인 스킨십 질주? 이런 것 거의 없습니다. ‘네 살이 내 살, 내 살이 네 살수준입니다. 그러나 속단하지는 마십시오. 스쳐 닿는 살결이 더 이상 짜릿하지 않다고 하여 사랑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아내가(남편이) 섹시하지 않으면 불행할 거라는 선입견도 넣어두시고요. 케미의 끝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닙니다.

 

케미를 일으키는 사랑을 말하는 에로스는 인간 안의 본능적인 욕망이고 강력한 에너지입니다. 프로이트(Freud)는 에로스(eros)를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와 대비되는 삶의 본능으로 말합니다. 이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부정적인 사례들이 많습니다. 옛 애인을 찾아가 사랑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심지어 살인을 저지르는 일, 거절당한 사랑의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습니다. ‘첫사랑이란 말에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도) 너나 할 것 없이 눈빛이 아득해지는 것은 미완의 에로스 에너지의 긴 여운일 것입니다. 수많은 노래의 주제가 사랑, 이루지 못한 사랑인 것도 같은 이유겠지요. 확실히 우리 문화는 짧게 끝나고 마는 에로스에 지나치게 집착합니다. 알면서도 또는 정말 몰라서 품는 로맨스에 대한 환상도 어마어마하지요. 나자연을 열심히 읽으신 독자라면 케미의 끝이 진짜 사랑의 시작이란 것 정도는 아시겠지요? 영화든 소설이든 내로라하는 러브스토리는 모두 진짜 사랑이 시작되기 직전에 끝난다는 것도 알죠? 사실을 말하자면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가 살아 돌아온 해피엔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둘이 사는 일이 진짜 이야기죠. 드라마 종영이후, 2년 지속되는 일상 속에서 서로 더 이상 섹시하지 않을 때, 그때가 진짜 사랑의 시작이지 말입니다.

 

그래서 드라마는 망상일 뿐이고, 에로스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에로스를 저급한 인간의 사랑으로, 아가페만이 신적인 사랑이라며 떼어낼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두 가지 외로움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되고 싶은데 그렇지 않은 현실에서 오는 첫 번째 외로움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보다 근원적인 목마름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외로움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에로스적 갈망과 신적인 사랑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사랑의 성패를 좌우한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더 이상 섹시하지 않다는 말을 케미가 끝났다, 에로스 사랑이 끝났다라고 읽는다면 이제 새로운 사랑이 등장할 때라는 뜻입니다. 에로스라는 꽃이 졌다고 슬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열매를 위한 자연의 순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혼 후 아내가(남편이) 더 이상 섹시하지 않을 때 사랑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의 지질한 연애일상 역시 더 큰 사랑과 연결되어 있음을 환기시키기 때문입니다. 연애에 관련된 좌절, 슬픔 같은 것들을 어디로 가져갈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소개팅으로 털린 영혼은 스타벅스 앉아서 네 친구에게나 털어놓으렴. 내가 너의 지질한 연애사까지 신경 쓸 수는 없지 않니아니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단기선교 말고 네가 가장 아파하는, 상실감을 느끼는 그 얘기를 먼저 해보자꾸나. 너의 온 삶의 에너지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내가 안단다.’ 그분은 우리 영혼 안에 물처럼 오시는 분이라 상처받아 손상된, 우리 영혼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오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의 로맨스(또는 로맨스가 부재하는 현실조차) 이미 거룩하여 그분과 닿을 끈임을 잊지 말고 일평생 사랑을 배우며 살기로 합시다. 아내가, 남편이, 애인이 더 이상 섹시하지 않을 때, 그 좋던 친구의 결점이 크게 보여 부담스러워질 때는 전에 몰랐던 다른 사랑의 차원으로 들어갈 때입니다. 몰랐던 곳입니다. 막막하지만 한 걸음 내디뎌보는 모험심이 필요하고 용기도 필요하지요. 그렇게 우리는 아가페 사랑을 향해 나아갑니다.

 

 

[QTzine] 2016년 7월호




나.는 오.늘. 내 생애 가장 늙은 몸을 살았다.

(오늘 내 몸은 내 생애 가장 늙은 몸이라고 꽃친의 J아빠가 알려주셨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오늘 내 생애 가장 늙은 몸, 노구를 하고 스펙타클한 하루를 보냈다.


한때 존경했을 뿐 아니라 젊은 날의 내게 푯대가 되었던 어느 분, 

그러나 이제 존경 대신 연민이며 푯대 대신 반면교사가 되어가는 분의

짧은 글을 읽고 마음이 헤집어진 날이다.

(그분도 생애 가장 연로하신 날 하루를 사시며 고생이 많으신 것이지)

인천의 어느 교회에서 진행하는 3주간의 부모교육 강의 첫날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살짝 너덜거리는 상태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행사 진행을 맡으신 S(멋지게도 여성) 목사님께서 환하게 맞아주셨다.

내 책을 정말 잘 읽으셨으며, 주변에 많이 소개했노라 하셨다.

진심이 전해져왔고, 짧은 인사를 나누고 앉았는데 속에서 불끈 힘이 솟아났다.

너덜너덜해진 마음 예쁘게 박음질 되는 느낌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 중간 잠시 쉬는 시간.

한 분이 앞으로 바람같이 나오셔서 코팅된 하트 하나와 쵸콜릿을 두고 가신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보고 그렸는데 실물이 더 예쁘다' 하시며

주황색 하트에 그려진 내 얼굴을 건네 주셨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어떻게 미리 이런 준비를 다?

가슴이 콩닥거리도록 고마웠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위로라든가 격려 같은 것들은 가끔 이렇듯 기습적으로 몰려온다.


강의 마치고 S 목사님의 전도로 내 책을 읽으신 후 

에니어그램 세미나까지 오셨던 사모님과,

그 사모님의 베프 사모님들과 함께 '사모들의 수다수다'에 점심을 곁들였다.

(여기까지도 하루 일기 분량으로 충분)


(여기서부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같은 날 저녁 이야기)

꽃친 부모모임이 있는 날이었고,

참 좋아하던 꽃치너 H네가 미국으로 가게 되어 송별모임이 되는 날이었다.

핸드드립 커피를 준비하겠노라고 큰소리 떵떵 쳐놓았었다.

(딴에는) 능수능란하게 핸드드립 세트를 챙기고 커피도 고이 갈아 준비했다.

보람차게도 대표님을 도와 저녁식사를 테이크아웃하고 모임 장소로 갔다.

자자, 이제 저의 핸드드립 커피를 기대하시라구요!

그렇지, 그래야 정신실이지.

드리퍼, 드립서버, 포트, 예쁘게 간 원두...... 어...... 어....... 여....... 여.......

여과지가 없다. 마지막에 챙긴 여과지는 아직 우리집 식탁에 계신 것인가.

여과지는 두고 온 주제에 오전에 했던 강의안 든 파일은 왜 또 가방에 넣어 왔냐고.

그러길래 정신실이라지. 나가서 구해보자!

을지로 입구역. 일단 편의점을 뒤졌다. 여과지를 파는 곳은 없다.

카페에 가서 구걸을 하자. 구걸할 태세를 갖췄으나 핸드드립 카페가 없다.

가까운 다이소를 검색했다. 명동이다. 다녀올 만 하다.

티맵을 켜고 을지로입구 사거리 한복판에서 입 헤 벌리고 서 있기 15분.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이 감각 설정하는데 최소 15분 소요. 

뉴욕도 아니고 파리도 아닌데. ㅠㅠ 아, 저, 저쪽이다.

중국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명동 거리에서 중국 관광객보다 더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스마트폰 지도 들여다보며 헤맨다. 겨우 겨우 도착이다! 없다. 다이소가 없다.

지도에 보니 근처에 하모니 마트. 여기라면 있을 거다. 가 보자.

헐, 영성강의 들으러 뻔질나게 다니던 길의 익숙한 마트이다.

부모모임 장소에서 곧장 왔으면 벌써 와서 사고 돌아가서 커피를 내렸을 시간이다.

샀다. 그래도 샀다. 모임 시작 40분이 지났으나 여과지를손에 넣었다.

성취감에 취해 꼭 끌어안고 밖으로 나왔다.

툭툭 차거운게 볼을 때린다. 기쁨의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와 내 볼을 치는구나,

가 아니라 이것은 비. 한 방울 두 방울 굵어진다.

이 상태로 비까지 쫄딱 맞으면 더 극적이겠으나 드라마에는 취미가 없으니.

뛰자! 명동에서 시청 쪽 모임 장소까지 뛴다. 짧은 치마가 말려 올라간다.

숨이 자꾸 멎는다. 레이레이레이레이.... 으르렁으르렁 으르렁 대. 

지나가던 중국인 1, 중국인 2, 중국인 3과 계속 부딪히고 난리다.

(오전에 정장 쫙 빼입고 강의하던 나는 잊자고, 잊어버리자고)

땀인지, 빈지, 눈물인지. 그러나 도오착! 컴백 꽃친 부모모임.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듯, 명동 거리 중국인들은 본 적도 없다는 듯

의연한 태도로 커피를 내렸다. 


여과지 대신 강의안을 들고 간 나를 탓하지 않는다.

5분 거리를 25분 돌아가며 명동 바닥을 헤맨 거 속상하지도 않다.

이런 일 한 두 번도 아니고. 

게다가 오늘은 내 생애 가장 늙은 몸과 정신으로 산 날 아닌가.

내 생애 가장 늙은 몸과 정신으로 이 정도면 잘 살았다.


그나저나 주황색 내 얼굴, 적당히 낯설고도 친근하여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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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 아빠의 카톡 상태 메시지가 '느린 사람에게만 보인다'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책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연상되어 별 다섯 개 상메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거기 담긴 그의 깊은 마음은 느낄 수 있다. 느리게 살지 못하는 현실에의 아쉬움, 자신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그나마 느린 일상을 사는 채윤이로 인한 대리만족 같은 것이지 싶다. 느리게 사는 채윤이는 그간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는 것 같다. 엄마 아빠, 현승이를 보고, 한강변 여유로운 산책길을 보고, 평일 낮 지하철의 풍경을 보고, 꽃친 친구들의 말과 그 이면을 보고, 교회 친구의 속마음을 보고, 머리 컬러링의 디테일을 보고, 영화를 보고, 책을 보고, 현승이 얼굴의 여드름을 보고, 씽크대에 쌓인 설거지감을 본다. 무엇보다 채윤이는 이웃을 본다. 강도 만나 피 흘려 쓰러진 이웃을 본다. 느린 삶을 사는 채윤이에게 꽃친의 다양한 놀이는(궁금하면 파란 글씨 클릭!) 울고 있는 이웃에게 가는 길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놀이'란 인간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극대화시킨 모든 활동을 말한다.) 세월호의 미수습 언니, 다윤이 언니의 엄마를 만나고 피케팅을 하고 쓴 글이다. 허락을 받고 공개한다.  

 

벌써 세월호 2주기가 지났다. 2년이라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길고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일텐데 나한테는 꽤 긴 시간이었다. 2년 적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오래 전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세월호는 마치 한 달 전 같이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세월호에 대해 나는 덤덤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있고, 노란 리본은 누군가의 시선을 바라며 달고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 다윤이 언니 어머니를 만나고 피케팅을 하면서 세월호와 그 가족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간 거 같다. 그저 관심을 가지는 거 그 이상으로 세월호가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2주기인 만큼 독서모임에서도 세월호 관련된 책인 <다시 봄이 올 거예요>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세월호에 탔던 한 사람 한사람의 이야기와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그저 세월호 생존자와 희생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로 다가와서 더 마음이 아팠다.

나는 이번 2주기 때 페이스북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이럴 때만 되면 세월호와 관련된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온다. 근데 그 게시물들이 추모하고 애도하는 거보다 비판적인 것들이 많아서 보는 거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이럴 때만 세월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닌데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들어갈 때마다 올라오는 세월호 영상들 때문에 마음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누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세월호 너무 마음 아프고 화가 나지만 그렇게 피케팅 하고 해봐야 달라지는 거는 없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가면서 쳐다봐주고 리본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그 순간 만큼은 세월호를 기억하듯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일 년 안식년을 하며 가졌던 소박한 바램이란 채윤이가 채윤이 다워지는 것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것이었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채윤이가 자기다움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자 '자기'가 제 혼자만의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표현해내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채윤이의 '자기'가 확장되고 있다. '나'가 되는 '너'가 생겼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너'들이 이 시대 울고 있는 '너'들이다. 채윤이가 세월호에서 잃은 언니 오빠들, 그들의 가족이라는 타자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아니라 나의 일부로 느끼는 감각이 생긴 것 같다는. 이것은 내가 정말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최선의 가치이다. 굳이 하나님 사랑, 예수님 희생이라며 설교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랑을 살아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타인의 고통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 말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실 수 없는 고통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채윤이가 거창한 것을 깨달았다는 뜻은 아니다. 종교적으로 100번을 듣고 입으로 줄줄줄 말할 수 있는 이웃사랑이 아니라, 이웃을 더욱 확장된 나로 보는 그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채윤이 방은 피아노와 키보드 한 대로 꽉 차있다. 그대로 채윤이의 오늘이며 꿈이다. 채윤이 책상과 피아노 위에는 보물찾기 쉽게 숨겨놓은 형국으로 노란리본과 노란리본 뱃지가 흔하다. 이 역시 채윤이의 마음인 것 같아서 뭉클하고 뿌듯하다. 내가 키워내고 싶었던 아이는 이런 아이이고,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이런 아이들이 많아져서 결국 이런 어른이 많아지는 세상이다. 세월호 관련 (공개)일기 다음 글인 난민 이야기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꽃친을 통해 한 박자 쉬면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을 말해준다.   


"꽃친 하기 전에는 나한테만 신경 쓰느라 이웃에게 관심 갖지 못했는데....."






(다짜고짜) 정신실의 에니어그램 세미나는 퀄리티가 남다르다. 강의를 위한 강의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자부한다) 수강자들 또한 단지 (에니어그램이 뭐지?) 지식이 아니라 (환경이 달라지지 않을지라도 더 행복하게, 깊은 충족감을 느끼며 살 수 없을까? 성령의 열매 같은 것 말이다)내적인 변화에 대한 갈망을 따라 모인 분들이라는 점도 고퀄리티의 단면이다. 조교들의 퀄리티는 조금 심하게 고급인력이다. 조교들 직함이 강사 직함보다 훨씬 높아서 (나도 쎈 직함을 하나 딸까?) 고민 중. 


이번 1, 2, 심화과정의 조교였던 HA는 먹을거리에 관한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 간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교동에 있는 떡집의 '초코라떼설기'라는 걸 수배해왔다. 핸드드립 커피와 함께 하는 세미나이니만큼 초코라떼설기가 제격이다 싶었다. 파리바게뜨 빵에 비하면 가격도 세고 강의 당일에 일찍 찾으러 가야 하는 것도 그렇고 부담은 됐지만 1단계 때 주문하여 먹어봤다. 대~애박. 핸드드립 커피하고 딱 어울리고, 고급스럽고 완전 자체 감동이었다. 역시 HA조교의 품격! 헌데 수강자들은 덜익은 감도 아닌데 뭐 떨떠름한 표정으로 먹는 것 같다. 에이, 별론가보다. 좋긴한데 팬들의 반응이 심드렁하니 그렇게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겠네 싶어서 2단계에선 빠바 마드렌으로 바꿨다. '오늘은 초코설기가 없네요? 그거 먹겠다 하고 왔는데' 아뿔사. 떨떠름은 순전 나의 일반화였군. 다음엔 꼭 준비할게요요요요.


심화과정 전날에 주문을 하고 아침 일찍 떡을 찾으러 나섰다. 다 좋은데 강의 전에 떡 찾으러 가는 일에 심적으로 부담이 많이 된다. 최대한 일찍 강의실에 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고파서 그렇다. 요즘은 그러지 않는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어떤 강의든 강의 전에는 밥도 먹지 않았다.(미친 거죠) 심화과정 당일에는 새벽부터 교안 프린트 때문에 해프닝도 있어서 떡 찾으러 가는 길,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푹 가라앉았다. 얼른 찾아서 강의장소로 가서 기도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목소리 하나가 스쳐 지나간다. "이것은 기도가 아니란 말인가!" 


이것은 기도가 아니란 말인가!


라니. 그렇군. 이것은 어찌하여 기도가 아니란 말인가. 떡 찾으러 가는 일이, 교재 프린트하는 일이, 강의안을 타이핑하는 일이, ppt 만드는 일이, 강의하는 일이, 수강자들과 식사하는 일이, 식당에 가면 합정동 길을 걷는 일이, 이름표를 끼우는 일이. 기도가 아닌 것이 있단 말인가! 잔잔하고 담담하지만 영혼을 울리는 소리였다. 이것은 기도였다. 떡집에서 금방한 맛 좋은 떡을 잔뜩 덤으로 얹어주셨다. 교재 프린트 때문에 불편한 심사를 마구 발사했던 남편에게 들러 덤으로 받은 떡들을 주고 강의실에 도착했다. 교재화일 위에 초코라데설기를 하나씩 올려놓으며 부흥회에서 통성기도 하고 나온 느낌으로 마음이 풍성해졌다. 내 영혼의 초코라떼설기를 배부르게 먹은 느낌이다.


에니어그램과 함께 하는 내적여정은 결국 일상을 잘 살기 위한 공부이며 수행이다. 일상의 순간순간 그분의 현존을 더 잘 감지하는 힘을 키우는 훈련이다. 그분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 생명의 떡을 매일 받아먹기 위한 훈련의 여정이다. 쉬지말고 기도하라, 고 하신 명령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게 되는 공부이다. 그러니 그 무엇이 기도가 아니란 말인가! oㅏ, ㅇㅏ, 이 고퀄의 만남들. 









요즘 가끔 혈압이 떨어진다. 두통을 잘 모르고 사는데 이유 없이 두통이 오다 속이 메스껍고 어깨부터 목이 뭉치다 시야가 살짝 흐려지기도 한다. 저혈압 증상이다. 얼른 눕는 게 제일이다. 채윤이 데리고 외출하고 돌아와 이런 증상이 와 바로 소파에 누웠다. 무기력하다. 마흔다섯에 나를 낳은 엄마가 나를 설명하는데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몸이 약혀서'이다. 어렸을 적엔 그런 줄 알았는 데 살다 보니 사이즈가 작고 운동은 못 해서 그렇지 약하진 않다. 살면서 몸의 한계를 잘 느껴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요즘 저혈압 증상이 오면 몸의 한계와 바로 따라오는 두려움을 제대로 느낀다. 누워서 살짝 잠이 들었나보다. 골목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여자 목소리에 잠이 깼다. 아이를 혼내는 소리이다. 박박 거리고 악을 쓴다. 당연히 아이는 운다. 갑자기 온 신경이 일어선다. 잠이 확 깬다. 몹시 기분이 나쁘다. 가슴이 답답하다. 막막하다.


2008년쯤일 것이다. '우리 신실이 몸이 약혀서....' 주문에 딱 맞는 시절이었다. 그때도 일하고 돌아오면 바로 침대에 누워야 했다. 오늘처럼 무기력하게 누워야 했다. 당시 남편은 신대원 기숙사 생활 중이었고, 주말부부였다. 까막눈 채윤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지옥의 나날이었다. 몸은 그렇게 남편은 없고, 받아쓰기며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채윤이를 닦달하다 분노폭발 하기 일쑤였다. 골목에 쩌렁쩌렁 울리던 어느 엄마의 목소리에 신경이 곤두선 것은 그때의 내가 살아와서이다. 내 소리도 저렇게 들렸겠다. 윗집에서 뭐라고 했을까? 거의 미친 여자구나. 아이들도 그때를 회상한다. 그리고 그 시절을 치유하는 클릭←이런 대화를 한 적도 있다. 위의 사진은 그 즈음 어느 월요일. 천안에 내려간 남편과 통화하던 나를 채윤이가 찍어놓은 것이다. 디카 가지고 놀다 우연히 셔터를 눌렀을 텐데 우리 집 퓰리쳐상 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즈음 몸과 마음이 그렇듯 총체적으로 무너진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 즉, 신앙적, 영적인 문제였고. 알고 보면 정말 사소한 일과 관련한 것이었다. 그 몇 년 전 다니던 교회에서 영적인 목마름이 극에 달한 우리 부부는 교회를 옮길 생각이었다. 가정교회라는 것을 도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목말랐던 것은 공동체였으니까. 눌러앉아서 가정교회의 시작을 열렬히 환영하고 신나는 가정교회 생활을 누렸다. (그때 첫 목짠님이 이 블로그 무플방지 위원 중 수석이신 iami 님과 mary 님!) 세월이 흘러 우리도 목자가 되었다. 신혼부부들과 함께. 힘들었지만 정말 행복했었다. 평신도였던 남편이 신대원에 들어갔다. 목자를 그만해야할 시점이 되었다. 초등부를 맡아 사역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쩐 일인지 목자들의 목자이신 목사님이 차일피일 미루며 전도사와 목자를 겸하도록 하였다. 당시 나는 1부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어서 남편이 천안에서 올라오는 금요일부터 주일 저녁까지 제대로 둘이 눈 한 번 맞춰보지 못한 날도 허다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면 짐을 싸서 천안으로 내려가는 남편. 월요일은 온종일 눈물바람이었다.


가정교회 사역과 관련된 많은 분들이 우리 부부가 목자를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을 하시며 목사님께 제안하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전임이 될 때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그때 그 목장 식구들은 내 인생,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그걸 계속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교회는 '가정교회의 성공적인 케이스'로 주목받았고 내부에서는 부작용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파트타임  전도사 따위의 일상을 고려하여 목장을 줄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금요일 오후부터 장을 봐서 10 명 이상의 식구들과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밤 12가 넘어야 정리가 끝나곤 했다. 바로 그 즈음 몸도 최악이어서 결국 성대수술도 하고 그랬다. 바로 그때 목사님이 가장 힘없는 파트타임 사역자의 인권을 말없이 짓밟 듯, 나는 가장 연약한 우리 아이들에게 온갖 분노를 쏟아부었다.


돌이켜보면 상식이 아니라는 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내게, 자발적으로 무엇이든 하고 싶은 내게 비상식의 굴레를 씌운다는 느낌이었다. 관련하여 다 발설하기도 어려운 무수한 비상식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거룩하고 은혜로운 허울 뒤에 비상식으로 피눈물 흘리는 부교역자 사례야 어디 한둘이겠는가. 전임사역 3년 후에 남편은 목회를 접기로 했다. 접기로 했으나 우연 같은 필연이 위로처럼 들이닥쳐 지금 여기서 또 목사로 살고 있다. 부임하고 첫 새교우 환영회에서 담임 목사님께서 교회 소개를 하시는데 눈물이 났다. 너무 상식적이어서 눈물이 났다. 첫 교역자 부부 모임에서는 '목회자 부인들 수요예배 나오려고 애쓰지 마라. 아이들 저녁 챙기고 잘 돌보는 것이 사역을 돕는 일이다. 목회자의 가정이 쇼윈도처럼 들여다볼 수 있는, 모델링이 되어야 한다.' 라고 하셨다. 이런 상식 말이다. 물론 아쉬운 것도 많다. 아쉬움이 커져 마음이 힘들 때면 '상식이 통하는 게 어디냐'며 상시적인 감사를 연습한다.


지난 3월 목회멘토링 컨퍼런스에서 강의한 이후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온 사모님들이 있다. 블로그나 책이 인연이 되어 만나는 사모님들도 있다. 모두 힘든 삶을 살고 있는데 알고 보면 다 상식에 해당하는 문제이다. 상식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교회, 하나님, 공동체,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좋은 것들을 표방하고 거기에 도취되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을 하는 듯 사는 분들에게 치명적으로 결여된 상식이라니! 사모님들의 고통은 그 분열적인 환경에서 늘 이중적이다. 그 고상한 가치 앞에서 개인의 고통쯤이야 당연한 것이 되어야 할 것 같고, 그러다 결국 여전히 아픈 자신을 탓하기에 이른다. 그러다 몸이 아파 버리고, 마음이 고장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모님들에게 당장 벗어나라 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오늘 여기를 살아야 한다. 살면서, 오늘의 아픔을 다루는 것과 더불어 앞으로 더는 상처받지 않을 마음의 힘을 기르는 연습을 동시에 해야 한다. 


갑자기 찾아온 육신의 연약함에 어디선가 들리는 애기 엄마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몇 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꺼내서 다시 바라보니 상식보다 못한 신앙의 허울들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한쪽 눈 가리고 온갖 비상식을 저지르면서도 복음에 합당한 듯 착각하며 살기란 얼마나 쉬운지. 어쩌다 우리들의 교회는 고작 상식이라는 그릇에 복음을 담아 감동을 전하는 수준이 되었나. 어찌됐든 나의 내적여정은 거기로부터 제대로 시작되었다. 찾아도 찾아도 답도 길도 보이지 않아 인간의 내면, 마음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실은 그 풍랑인하여 더 빨리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죽을 것 같이 힘든 사투였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아이들이 더 커서 어른 대 어른으로 얘기할 날이 오면 정식으로 사과할 생각이다. 그때 짐승같이 굴던 엄마를 용서해달라고. 그렇게 너희들 앞에서 짐승인 줄 확인하고 늘 사람이 되길 꿈꾸고 노력하며 살게 되었다고. 이 고백을 할 때는 조금 더 사람에 가까워지고, 더욱 상식인이 되어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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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후 엔돌핀+아드레날린 칵테일 장애

(PLAD : Post Lecture Endorphin and Adrenalin Disorder)

 

<만남, 대화 그리고 치유>라는책에서 존 A. 샌포드는 '의사소통'을 캐치볼 게임에 비유한다. 그러니까 소통이란 캐치볼을 하듯 주거니 받거니가 기본이라는 것. 그런 맥락에서 강의는 강의를 듣는 사람을 향해 강사가 일방적으로 여러 개의 공을 던지는 것이라고 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끄덕이다 말고 순간적으로 목이 깁스 상태가 되었다가 천천히 도리도리다. 내 강의는 좀 다른데. 듣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가와 상관없이 하는 나로서는 공 하나 던지고 열다섯 개의 공을 순간적으로 받는데. (수강자 15) 라고 생각한다. 수강자 100? 앞에 앉은 사람 20 명 정도의 공은 충분히 받음!

 

그리하여 강의 후에는 강의를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순간 마음의 몰카로 찍은 수강자들의 표정을 곱씹으며 기쁨과 안타까움 사이를 오가곤 한다. 또 하나, 이런 식으로 멀티 플레이가 되는 강사로서 내 강의를 나도 듣고 감동을 받거나 비판을 한다. 물론 비판 따위는 일단 좀 넣어두고, 오래도록 곱씹으며 다음 강의 준비에 주재료로 쓰기로 하고. 감동은 조금 부풀리는 것이 제맛이지. 강의안을 꼼꼼하게 준비하지만 늘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말에 주목한다. 대체로 그것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지난 수요일의 에니어그램 심화과정 강의는 '내면아이''신성한 아이'가 키워드였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각자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붙들고 씨름한다. 그 일그러짐의 시작은 내 인생 초기 3년이었다. 지금 먹고 살기도 힘들고 눈 앞에 산적한 문제해결도 바쁜디 어린 시절은 무슨 어린 시절.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라고 하실지 모르겠으나. 먹고 사는 문제, 코앞의 산적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당신의 내면아이와 관련이 있다.

 

블로그 독자들에게 다시 강의 볼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강의 마지막에 '오늘 긴 시간 엄청난 정보가 쏟아졌는데 당신의 가슴에 남은 한 문장은 무엇인가' 묻곤 한다. 내게 남은 한 문장은 '어린아이 같음'이었다. 정서적, 신앙적, 영적인 성숙에 대한 목마름으로 발을 들여놓은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도대체 거듭난 게 뭐야? 거듭났으면 성화되어야 하는데 왜 사람은 변하지 않고, 믿음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가시 옷을 입고 사람을 찔러대는 이유는 뭔데? 이 질문의 답으로서 '성숙한 사람, 거듭난 인격, 예수님 닮은 인격'의 요체는 무엇인가? 아이다움이다. 존 브레드 쇼가 'Wonderful Child'라고 정리하한 그 놀라운 아이의 아이다움 말이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란 대단히 진지하고, 위엄이 있고, 도사 같고, 영험한 분이 아니라. 경이(Wonder), 낙천주의(Optimism), 순진함(Naivete), 의존성(Dependence) 감정(Emotions), 쾌활함(Resilience), 자유로운 활동(Free play), 독특성(Uniqueness), 사랑(Love)이 충만한 아이다움을 회복한 사람이다. 내 입으로 발설하고, 내 귀가 듣는 순간, 나의 마음이 반응하였다. 강의 마친 후에도 '그렇다! 이것다! 옳다!' 아하, 아하, 아하 하며 꿈까지 꾸었다. 성숙이 별 건가.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8:16)

 


으막션샘미라서 햄볶아요

 

하루 종일 심화강의를 한 수요일. 그 다음 날 목요일은 오전에 음악치료 하나, 오후에 아가들 음악 수업이 하나 있는 날이다. 긴장 풀린 그 상태를 그대로 두고 하루 종일 책이나 끼고 뒹굴고 싶다, 가 20% 정도였다. 20%의 잡아 땡기는 손을 거슬러 치료를 하러 갔다. 경력이 화려하고 많은 것이 덫이 되어 음악치료를 더는 할 수 없는 지경인데. 한영교회 시절 뮨진이가 임용고시를 합격하고 특수유아교사가 되었다. 목자 엠티 끝나고 빨간 가방 매고 노량진 가던 뮨진이가 말이다. 뮨진이 아가들이라니! 거리, 시간, 페이, 경력 다 내려놓고 달려갈 명분을 주어 고마울 뿐.  '엄마가 섬그늘에 후우~' 노래의 프레이즈마다 티슈를 부는 재밌고 재미없는 활동 중이었다. 이느무시키. 스킨십을 부르는 볼을 가진 이 녀석. 그렇게 사랑하고 예뻐해줘도 눈빛으로라도 한 번 아는 척도 안 해주는 이 녀석. 무엇이든 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그저 내 노래에 표정이 조금 밝아지고, 뜬금없는 시점에 '응응응응응' 하면서 '곰 세 마리'를 불러줘도 고마운! 노래가 두 번 쯤 되었을 때, 아무 언어적 설명없어 '엄마가 섬그늘에' 하자마자 입술을 닭똥집 모양으로 만든다. 아악!!!!! 너, 지금 후~ 할 생각이야? '굴 따러 가면' 또 입모양을 만든다. '아기가 혼자 남아' 드디어 후~우 하고 불어 티슈가 흔들린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날 뻔했다. 어느 별에서 왔니? 하트하트하트하트. 1년을 치료하며 노래해도 딴청을 하는 아이라도 분명 듣고 있다는 것을 안다. 따라 부를 수도 없고 적절하게 눈맞춤해주지도 않지만 내 영혼을 느낀다. 이 아이가 내 노래를 듣고 있다는 것을. 그것을 행동주의 음악치료에서 배운 데이터로 그래프를 그려낼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대학원 시절 공부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혐호한다.) '엄마가 섬그늘에' (소리없이) '오' 입모양. 지금 생각해도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세상에서 단 하나인 이 아이의 음악반응에 내 존재가 공명하고, '아이다움'의 쾌활함, 순진함, 낙천성, 의존성, 사랑.... 이런 것들을 확인한다. 치료를 마치고 차에서 점심을 때우며 음악수업에 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우막션샘미, 우막션샘미!!!! 옷을 잡아 빼고 잡고 늘어지고 기타를 끌어내리고 난리도 아니다. 그중에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말은 하나도 안 하면서 몸으로 다 표현하는, 세젤귀 강아지 같은 녀석이 하나 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온 체육실을 다다다다다다 뛰어다니다 내 앞으로 와 얼굴 한 번 올려다 보고 다시 다다다다다다 뛰어간다. 아우, 저걸 깨물어버려!



하늘나라 어린이 나라


저 돌고래는 '엄마가 섬그늘에 후~우' 이녀석이 만든 것이다. 아이클레이로 저렇게나 정교하게 돌고래를 만들고 또 만든다. 만들다 제가 부수고 신경질 부리며 운단다. 으흐흐흐흐. 뮨진 샘이 여러 마리 말려놓은 것을 하나 가져왔다. 차에 뒀는데 눈이 마주칠때마다 심쿵이다. 유아교육과 음악치료 공부하길 참 잘했다. 몸으로 부대끼며 하늘나라를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전에 어린이 성가대 지휘할 적에 아끼던 노래이다. 어린이 주일에 장년 성가대에서 각 파트 네 분을 초정하여 부르곤 했다. 아이들이 먼저 유니송으로 부르면 어른 네 분이 코러스로 답한다. 나도 그 나라에 가고싶다. 오늘 여기서 그 나라를 살고 싶다.


(어린이 유니송) 어린이를 양이라 부르시고 축복해주신 말씀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 계시던 거기 함께 있고 싶어요

예수께서 내 어깨 안으시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어린이들 내게 오게 하라 하시면 얼마나 그 기쁨 넘칠까


(어른 코러스)주님께서 저들을 안으시고 머리를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어린이들 내게 오게 하라시....... 하늘나라 어린이 나라



* (PLAD : Post Lecture Endorphin and Adrenalin Disorder) : 이런 거 세상에 없음. 급조해봄.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30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을 장착한 이후 자가운전 강사로서 기동력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수련회 장소에도 두려움 없이, 헤매지 않고 찾아갑니다. 소위 길치라 불리는 제가 메모 쪽지 들고 강의 장소를 찾아가던 시절,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에피소드의 향연이었습니다. 어디든 주소만 찍으면 찾아갈 수 있는 이 기술의 진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맙다니까요. ‘주소 좀 보내줘!’ 길 떠나기 앞서 우리의 관심은 온통 목적지 정보에 있습니다. 하지만 충성스런 네비게이션이 알아서 설정해 놓은 현 위치가 있기에 길 찾기가 가능한 것입니다. 현 위치 설정이 먼저입니다. 구글지도를 열면 내가 있는 곳에 빨간 압정이 따악 꽂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인생여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한 연애와 결혼이 목적지라면 현재라는 정확한 위치에 빨간 압정 꽂는 일이 중요합니다. 헌데 인생 네비게이션에선 목적지 설정은 물론 현위치 입력도 내가 해야 한다는 것! 연애와 결혼 길찾기 미션에서 빨간 압정 하나를 꽂아보자면 외롭지 않을 방법이 없다입니다. 싱글이든 커플이든 기혼자든 외로움은 기본설정입니다.

 

그런데 외로움도 외로움 나름이라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외로움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싱글인 여러분이 뼈저리게 느끼는 그 외로움 즉,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오는 외로움입니다. 이 외로움은 육체적으로도 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하고 싶고, 살을 부대끼고 싶은 욕구 말입니다. 단지 육체적 욕망이 아니라 더 깊은 정서적 갈망에서 오는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외로움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실존적인 외로움이라 합시다. 첫 번째 외로움은 남친 여친이 생기면 일단은 사라져요. 모든 일정 마친 주일 저녁,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둘만의 데이트가 시작되는 시간이라면. ‘외로움이 뭐야?’ 언제 외로웠냐는 듯, 헬륨가스 빵빵하게 채워진 풍선처럼 마냥 하늘로 날아오를 것입니다. 첫 번째 외로움은 이렇듯 대체로 사람으로 채워집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잠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필연 풍선의 바람은 새어나가고 찌글찌글해진 마음에서 사랑에의 목마름은 다시 찾아옵니다.

 

오랜만에 연애를 하게 되어 하트하트하는 나날이던 제자가 보내온 메시지입니다. ‘선생님, 요즘 제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 오빠의 사소한 말투나 연락 오는 빈도수에 너무 집착하게 돼요. 그게 성에 안차면 혼자 서운해 울고..... 또 이런 제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고요. 두렵기도 해요. 이런 얘길 오빠한테 하고 싶지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할 수가 없잖아요. 실망하게 될까봐 두렵고요. 행복하려고 연애하는데 막상 연애를 하니 더 힘드네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에 폭풍우가 몰아쳐요. ㅠㅠ이렇듯 다시 찾아온 외로움은 더 깊고도 막막합니다. 매력이라고 느꼈던 점이 아픔의 원인이 되거나,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되지 않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확인하며 좌절하게 되지요. ‘나는 연애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가자기회의에 빠지기도, 때로 사랑 자체를 냉소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외로움입니다. 우리 안에는 아주 친밀한 사람이라도 결코 도달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합니다. 타자로 채울 수 없는 이 두 번째 외로움을 받아들을 때에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연애나 결혼이 텅 빈 마음을 다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무의식적인 기대가 출구 없는 갈등을 만듭니다. ‘당신의 친구나 남편이 하나님이 아닌 것을 용서해야한다헨리 나우웬(Henry Nouwen) 신부님 말씀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말하자면 두 번째 외로움의 텅 빈 자리는 하나님과의 연결을 통해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사람으로 온전히 채울 수 있고, 채워야만 한다는 망상이 만드는 증상이 있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여친(남친)을 찾아다니고, 잠시도 싱글일 수 없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사귀고 또 사귀며, 더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상대를 비난하는 이른 바 사랑이라는 이름의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 안에 있는 두 번째 외로움과 화해한 사람이야말로 누구라도 건강하게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두 번째 외로움과 화해하는 사람은 다른 말로 하면 나 자신으로 충분한 사람입니다. 혼자 걷고, 혼자 쇼핑하고, 혼자 카페에서 책을 읽고, 혼자 운동하고, 혼자 조용히 기도하러 가고..... 혼자만으로 충만한 사람 말입니다. 자기애적 충만함에 갇혀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나 자신이 되고, 자신으로 충분한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자기를 선물로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여 역설적입니다. 애인이 없으니 사랑의 대상이 없다며 마음에 잠금장치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향해 자기를 여는 것입니다. 힘든 후배 밥 한 끼 사주기. 육아에 지친 친구를 위해 휴가 내어 함께 놀아주기. 의미 있게 나를 내어줄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첫 번째 외로움이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내 안의 더 깊은 외로움, 더 큰 사랑으로 가는 이정표로서의 두 번째 외로움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강의안 A4용지 41 쪽. ppt 54 장. 수강자용 강의안 22 쪽.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년을 준비한 에니어그램 심화과정 강의 준비 완료.

위잉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가 '응애 응애'로 들립니다.

출산한 기분이네요.

미역국 한 사발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커피 한 잔 에니어그램> 출간하고 출판사와 함께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1단계 강의를 몇 차례 진행하고 2단계 강의에 대한 요청(외부와 저의 내부)에 부응하여 개설하였습니다.

작년부터는 '정신실의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진행해왔습니다.

함께 공부하며 내적여정을 동반하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저기, 그때그때 허락되는 장소를 찾아 옮겨다니는 메뚜기식 강의입니다. 


1,2 단계 수강하신 분들과 10년 가까이 내적여정을 지난하게 해 온 저 자신을 위해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2016년 스스로에게 내 준 숙제이기도 합니다.  

강의안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강의가 아닙니다.

가 본 만큼만 안내할 수 있는 그야말로 내적인 여행 안내이기 때문입니다.

심화과정은 특히나 어릴 적 경험 속으로 한 발 더 깊이 들어가는 여정이라서요.


10여 년 저의 여정과 공부를 담아 심화과정을 준비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만.

희한한 경험들을 했습니다.

알라딘 아이쇼핑을 하다 <에니어그램의 영적인 지혜>라는 따끈한 신간 발견.

가격이 너무 세서 지르까 말까 지를까 말까 망설이다 헛물만 들이키고 왔습니다.

다음 날. 메일이 하나 왔는데 <에니어그램의 영적인 지혜>를 낸 출판사였습니다.

블로그 검색을 하다 저를 발견했다며, 기증본을 보내주겠다는군요!

하하. 강의 준비 막판에 이 책을 손에 넣어 필요한 부분 속독.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주가 나서서 막 도와주는 것 아닌가 하는 심증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나갈 때 본 그 모습 그대로 저녁에 들어왔는데 거실에 노트북 뻗치고 앉았는 엄마, 아내를 보면서 식구들은 고맙게도 저를 포기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식구들은 잠들고 여전히 이 책 저 책 쌓아놓고 강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우주가 거실로 들어오더니 책꽂이에서 꼭 필요한 책을 광선 비춰 뽑아내고,

파라라라락 페이지를 넘겨 꼭 필요한 부분에 밑줄 그어주는 것입니다. 캬캬.

암튼 공부가 이렇게 재밌다니! 하고 오른쪽의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뙇! 

훤하게 날이 밝아오는 것입니다. 시간은 새벽 6시.

학교 다닐 때도 해보지 않은 밤샘을,

석사 논문 쓸 때도 맛보지 못한 '공부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지'를 맛 본 것입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 던게 아니고 하루 종일 노트북 끼고 앉았다가

밤 9시나 되어 수영하러 갔습니다.

혼자 자유수영 하다보면 심심해서 기도를 하게 됩니다.

문득 심화과정 오시는 분들이 마음에 떠올라 한 분 한 분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어푸어푸, 주여 주여...... 기도했습니다.

어푸어푸 하다말고 울컥했습니다.

1단계, 2단계, 심화과정까지 자발적으로 찾아와 들으시는 이분들이 내 여정의 동반자이구나, 싶었습니다. 자격증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런 꾸준함이라니.

제가 그랬던 것처럼 무언가(내적인 성장? 내면을 터치하지 못하는 허울 뿐인 종교에 대한 회의? 이름 붙일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감과 갑갑함? 그저 인간에 대한 탐구심? )에 대한 갈망이겠지요. 


얼마 전 슬그머니 우리 거실에 침입한 '우주'라 이름하는 그 도움의 빛은

그분들의 갈망과 저의 기쁨이 만나 만나 일으킨 화학반응이었나봅니다.

내일 새로 낳은 첫 강의를 앞두고 긴장도 해야겠지만

강의 망쳐도 후회 없겠다는 마음에 설레발설레발 괴발개발 끄적여봅니다.



소명이란 우리의 가장 큰 기쁨과 세상의 가장 큰 필요가 서로 만나는 자리를 말한다.'

                                                                                             - 프레드릭 뷰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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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 (김현승)

이사한 곳을 지나가면 뭔가 마음에 걸린다.
마치 무엇을 두고 온 것 같다.
수영장에 수영복을 두고 오듯
학교에 공책을 두고 오듯
이사한 곳에 마음을 두고 왔다. 



명일동을 떠나 이곳 합정동으로 이사와 1년이 지난 3학년 말에 쓴 현승의 시이다. 암사동 올림픽도로 근처를 지나며 전에 살던 아파트 쪽을 바라보면서 '엄마, 난 여기를 지나가려면 마음에 뭐가 걸리고 찌릿해' 하더니 이 시를 써냈다. 두고 온 곳을 그리는 마음, 그 마음이 지나쳐 병이 되는 것을 나도 안다. 현승이는 시를 썼지만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울며불면 엄마에게 쏟아부었다. '잘 자라고 있는 화초를 왜 옮겨 심었어! 옮겨 심은 곳이 영 맞질 않아서 잘 자라던 화초는 이제 시들어 죽어가고 있어. 옛날 친구들, 선생님들, 학교.... 다시 돌아가고 싶어.' 아버지 돌아가시고 서울로 전학와서 앓았던 향수병의 기억이다. 마음을 두고 와 내내 무엇이 걸려 있는 그 느낌을 현승이도 알고 현승이 엄마도 안다. 이곳에 이사온 지 벌써 5년 자. 합정 망원 죽돌이로 신나게 살면서도 현승인 여전히 그리워한다. 이젠 명일동이 아니라 '그 무엇'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몸에 붙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런 현승이를 느낄 때마다 내 마음이 심하게 울렁거리는 것을 보면 나 역시 '옮겨 심은 화초' 신드롬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한 것 아닌가.

영화 <브루클린> 홍보문구에서 '향수병'에 낚인 것도 이런 경험 때문일 것이다. 이 나이에 '운명적 사랑, 새로운 사랑'에 끌리랴. <브루클린>은 사랑 얘기가 아니다. 에일리스가 예쁘고 영화가 잔잔해서 그렇지 에일리스에게 아일랜드는 '헬'아일랜드이다. 사랑도 일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노력하면 잘 될 수 있을 거란 희망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가지고 있는 자원이 없는 '흙수저'라는 의미에서 '헬'아일랜드이다. 사무직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에일리스를 진심으로 아끼는 언니가 유일한 자원이다. 언니의 주선으로 새로운 땅 뉴욕 브루클린으로 떠난다. 꿈의 아메리카로. 난생 처음 타보는 미국행 배에서 멀미하며 고군분투하는 장면들은 흙수저로서, 하층민으로서, 노답 인생으로서 원초적 끝판이다. 누추한 긴장 속에 입국심사를 마치고 새로운 땅의 향해. 너무 환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문을 열고 나간다. 열리기 전까지는 벽일 뿐인 문, 어쩔 수 없이 그 문을 열어야 하는 운명들이 있다. 떠나온 곳에 수영복이든, 노트든, 마음이든 무엇을 두고 왔든지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자기를 찾는 모든 사람의 운명이다.  




다음 이야기는 당연히 어리버리 뿌빠빠, 흙수저 아일랜드 여자의 부적응과 그리움의 나날이다. 언니의 편지를 붙들고 우는 장면, 신부님에게 '제가 왜 아일랜드를 떠나 왔을까요?' 묻는 장면, 크리스마스에 모인 아일랜드 출신 노숙자들이 고향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는 장면. 어쩌면 이렇게도 내 마음을 후벼파는지. 그런데 잠깐이다. 신부님의 도움으로 야간 대학에 다니고, 댄스파티에서 사랑을 만나고, 그 사랑이 그리움을 치유한다. 머리가 좋고 착한 에일리스는 실력과 성품까지 갖춘 뉴요커로 빠르게 변해간다. 그렇지. 그런 거지. 떠나오길 잘했지. 그때 고향에서 날아든 소식. 언니가 죽었고 엄마가 홀로 남았다.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고 두려워하는 남자친구 토니와 둘만의 결혼식을 하고 혼인신고를 한다. 그렇게 사랑의 서약을 남겨두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언니가 없어서가 아니다. 에일리스의 위상이 달라졌다. 언니가 일하던 빈자리에 스카웃 제의를 받을 만큼 실력을 갖췄고, 선글라스 낀 뉴요커로서 매력 철철 넘치는 여자가 되었다. 일도 사랑도 소망이 없었던 흙수저 에일리스가 진주 달린 수저가 되어 고향에 서게 된 것이다. 훈남에다 부자, 게다가 부모님은 시골로 이사할 예정이라 넓은 저택에 혼자 살아야 해서 결혼이 급한 짐과 사랑에 빠진다. 뉴욕에 있는 남친(아니고 남편, 에고 어쩌자고 혼인신고를 했나고)과는 다른 매력이다. 브루클린에서 온 편지가 쌓여가고 답장 한 줄을 못 쓰고 갈등하는 사이 이러다 짐과의 결혼이 진행될 것만 같다. 돌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곳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떠오른다.

갈등해결, 또는 성장을 위해서는 악역이 필요한 법. 떠나기 전 일했던 베이커리의 못된 여주인이 크게 기여해준다. '너 짐과 결혼할 거야? 너가 미국에서 혼인신고 하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는데.....' '기, 기억이 안 나는데요. 무슨 얘긴지' 악랄하고 비열한 베이커리 주인과 잠시 마주앉아 있더니 에일리스가 말한다 '아, 잊고 있었어요!' (그렇지? 너는 유부녀야. 흙수저 주제에 여기서 잘 될 수 없지. 넌 이제 끝장이야!) 잠시 여주인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 미소 짓긴 일러요. 나쁜 아줌마야. 에일리스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라구. '여기가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의 에일리스, 망설임 없이 다음 날 배를 예약하고 거침없이 떠난다. 손 흔들어주는 언니는 없고 처음 이 배를 탔을 때와는 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으나 갑판 위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는 에일리스 멋지다. 뭔지 모르게 든든하고 멋지다. 이 배에는 또 다른 에일리스들이 있다. '브루클린에 아일랜드 사람들이 많다면서요? 고향 같다면서요?'라고 묻는 흙수저 에일리스에게 진주를 단 에일리스가 대답한다. '그래요' 그리고는 멀미 대처 방법, 화장실 사용 노하우, 입국심사 시의 팁 등을 담담히 가르쳐준다.

죽음과 이별에 대한 유난한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것, 새로운 환경에 대한 미리 좌절하고 긴장하는 현승이와 자주 이야기 한다. 명일동에서 이곳으로 와서 현승이가 얼마나 자랐는지, 좋은 친구들을 얼마나 많이 만났는지, 한강에서 노는 일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내 얘기도 들려준다. '왜 잘 자라고 있는 화초를 옮겨 심었냐며 울고불고했는데 그 화초 말라죽지 않았어, 그 때문에 큰 나무로 자라게 되어 여기 현승이 엄마가 되어 있단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래도 나는 싫어.'이다. 그렇지. 그 누가 익숙하고 편안한 곳을 떠나 그리움과 긴장을 살고 싶겠나. 하지만 알게 될 것이다. 참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늘 떠나야 한다는 것을. 생의 의미를 찾으며 산다는 것은 장소적 떠남 이전에 마음의 떠남, 사변적 떠남을 통한 순례자의 삶이라는 것을. 소망 없고 불행할 뿐인 곳에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로 머물러서는 참다운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성경의 아브라함도, 고기 잡던 베드로도 떠남으로 의미있는 삶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그 전날 밤에 고기가 잘 잡혔다면, 떠날 수 있었을까? 오늘  일상의 빈 그물질이 우리를 떠남으로 이끈다. 빵집에서 일하는 에일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떠남은 끝나지 않는다.
늘 떠나야 한다.
회귀할 수 없다.
찬란한 빛을 마주하며 문을 열고 나왔으나
어느새 발걸음은 벽에 다다르고,
그 벽을 더듬어 또 다른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진정한 집, 그 집에 도착할 때까지 늘 떠나야 한다.
떠난 자가 다시 탄 배는 지난 번 그 배라도 같은 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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