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이 나온다면 사시겠어요?


일단 저자는 이래요.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비장애 아이들을, 음악치료를 전공하고 장애 아이들을 교육하고 치료하며 젊은 날을 보냈다. 아이들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유난한 성격으로 중학생 때부터 교회 주일학교 교사를 했고, 어린이 성가대 지휘자였던 시절을 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간직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가 되리라 다짐하고 자신했으나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코가 납작해졌다. 아이의 행복은 부모와 교사의 심리적, 영적 건강에 달렸다고 믿어 마음과 영성에 관해 다양하게 배우고 연구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심리학과 기독교 영성 사이 다리 놓는 자가 되고자 공부하며 강의하고, 강의하며 배우는 중이다.

 

'신의 피리'라 불리는 김종필의 아내 됨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긴다. 두 아이 채윤이와 현승이에겐 웃기고도 무서운 엄마이다. 말에서 마음을 듣는 귀, 일상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눈을 선망하며 커피 마시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공부하며 글 쓰는 오늘을 산다.

  

서문은 이렇구요.


[부모와]

 

하다못해 자동차 운전을 위해서도 자격시험을 쳐야하는데, 너무 쉽게 부모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한 인간의 인생행로를 좌지우지할 엄마, 아빠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낳아보면 알고, 키워보면 깨달아집니다. 이것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구나! 어마어마하구나! 자격증이나 인증된 매뉴얼은 없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부모 노릇하게 됩니다. 밤잠을 설치고, 우아한 일상 따위 내려놓고 전에 해보지 않은 자기포기의 삶을 삽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썩 잘하고 있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아이가 다치거나 병에 걸려 아픈 것도, 어린이집 친구와 부딪히는 모난 성격도 부모노릇 제대로 하지 못한 내 책임 같습니다. , 역시 운전면허증 보다 더 냉혹한 기준의 부모 면허증자격시험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아이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것을 기대하고 세상에 온 아이 입장도 있습니다. 세상을 대표하는 엄마 아빠가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은 아이를 가질 때가 아니라고, 아들이 아니라고, 딸이 아니라고, 기대하던 얼굴이나 성격이 아니라고, 하필 누구누구를 닮았다고, 직장 스트레스 때문에 여유가 없다고, 산후 우울증이라고...... 내가 기대하던 사랑을 주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가 좋은데, 엄마 아빠도 분명 나를 좋아할 것 같은데 어른의 삶이란 사랑에만 집중할 수 없는 무엇이 있는가 보죠. 이것이 세상이려니, 적응하며 자라갑니다.

 

[여무는 시간]

 

손톱만 한 도토리 알이 커다란 참나무가 된다니 두 존재의 연관성이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어 꽃피운다는 것은 그렇듯 신비로운 일입니다. 부모는 도토리 한 알 같은 아이가 참나무가 되도록 자라는 과정을 함께 합니다. 실은 부모 또한 여전히 자라고 있는 여린 참나무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도 부모도 자기다운 모습으로 꽃피우기 위해 여전히 여물어가는 존재입니다. 존재의 발아기를 지내는 아이는 아이대로, 지켜보며 보듬고 먹이고 입히는 부모 역시 자기 몫의 여무는 시간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어린 자녀의 버팀목이 될 만큼 품 넓은 나무로 단단해지기 위해 육아전쟁의 비바람을 맞습니다.

 

[토닥토닥]

 

육아지침과 조언이 난무합니다. 웃는 엄마가 아이의 발달을 어떻게 자극하고 돕는지 코끝이 찡하도록 감동을 주는 영상을 봅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더 열심히 웃어주자. 잠시 잠깐 힘이 되지만 금세 자기비난의 손가락질로 다가옵니다. ‘나는 우리 아이를 향해 하루에 몇 분이나 웃어주는가? 우리 아이 성격이 까칠한 이유는 바로 나야.’ 자기계발식의 육아 지침이 주는 도전과 자책감, 득과 실을 계산하면 어떻게 될까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항상 웃는 엄마는 세상에 없습니다. 모든 엄마에겐 하염없이 퍼주는 사랑이 장착되어 있다는 모성신화에 의문을 품어야 합니다. 애를 쓴다고 쓰지만 부족한 엄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사람은 나 자신 뿐입니다. 나 스스로를 인정해주고 토닥토닥 위로할 힘이 있는 엄마가 건강한 엄마입니다.

 

[성장일기]

 

밀과 보리가 자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아기의 몸이 여물어가며 목을 가누고, 뒤집고, 기고, 걷습니다. 누구나 다 압니다. 4개월 된 내 아이가 끙끙거리다 결국 뒤집기에 성공하는 것을 지켜본 엄마의 앎은 다릅니다. 경이로움 가득한 진정한 앎입니다. 엄마가 쓰는 육아일기는 유일한 한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의 기록입니다. 이 책은 10여 년 세월이 담긴 성장일기입니다. 밀과 보리가 자라는 흔한 이야기를 마치 제 아이들만 자라는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댄 흔적입니다. 이 사적인 이야기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목적은 호들갑 엄마 동지들을 모으기 위함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아이의 일상에서 생명의 신비를 건져 올리고 기록하자고, 내일로 미루지 말자고 옆구리 찌르는 선동입니다.

 

부모와 아이가 여무는 시간, 토닥토닥 성장일기

 

10여 년, 두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개인 블로그에 남긴 글 조각이 족히 700개는 되었습니다. 인내심과 정성으로 글을 골라내고 다듬어주신 이성민 편집장님이 아니면 이 책은 없습니다. 한 자루에 담긴 밀과 보리를 일일이 골라내 분류하신 노고로 성장일기가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이제 두 돌이 되는 딸을 키우며 부모로 여물어가는 시간에 하신 작업이라 더욱 감사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저를 키운 두 아이 채윤이와 현승이, 엄마의 빈 구멍을 묵묵히 채워주는 채윤이 아빠의 공도 말할 수 없습니다. 함께 여물어 가는 시간이 고마울 뿐입니다.




아이들 발달과 육아, 부모 자녀 관계에 대해서 전문가 연(然) 하자면 할 말은 많다고 해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 아니 사람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 전문가는 없다고 믿고 있어요. 주옥 같은 육아 십계명, 아이와의 대화 십계명...... 은 SNS 검색하면 널렸으니까요.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와 함께 엄마 마음이 어떻게 자라야 했는지 육아 일기와 에세이를 모은 책이라면요. 둘째 아이가 태어난 시점부터 큰 아이가 중학교 1학년 사춘기 아이가 된 10여 년의 이야기를 종단적 스토리 텔링으로 책 한 권에 담겼다면요. 이래라 저래라 하는 육아 책이 아니라 '나는 뻘짓하며 고군분투했다' 이런 얘기라면요. 아, SNS에서 '좋아요' 많이 받는 포스팅 하는 법, 같은 팁도 있어요.  


한 권 사보실 마음이 드세효? ☞☜ 





    








(월요일 아침 베이글과 매실차 한 잔 놓고 아들과 겸상. 그 짧은 시간의 통하는 대화)


현승아, 밖에 있는 자전거 지금 탈 수 있지?


왜? 오늘 자전거 타게? 안 돼, 오늘 타면 안 돼. 바람 빠졌을 거야.


저번에 너가 넣어 놨잖아. 괜찮을 거야.


아니라고, 확인해봐야 한다고. 지난번에 바람 넣어 놨는데 엄마가 안 탔잖아. 그새 바람이 빠져 있을 거야.


아니야, 얼마 안 됐잖아.


그래도 안 돼. 오늘은 타지 마. 이렇게 갑자기 얘기하지 말고 타기 전날에 꼭 얘기하라고. 내가 학교 갔다 와서 바람 넣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이상 없는지 확인해볼게. 그다음에 타. 내일 타.


(어머, 오빠! 현승이, 넘나 멋진 남자. 으흐흐흐..... 감동)


알았지? 이따 학교 갔다 와서 해줄게. (감동하여 녹아내리는 엄마를 알아챔) 그러면 그 다음에....... 수고했다고 용돈 좀 두둑이 챙겨줘. 킥킥. 엄마, 내가 좀 계산적이지? 엄마한테 빌려준 돈도 꼭꼭 받아내고, 돈 계산이 정확하지?

'계산적'이란 말 배웠는데 그 설명이 딱 내 얘기 같애.


아냐, 니가 무슨 계산적이야. 오히려 그 반대지. 너는 이 얘기 하면 싫어하지만 너 친구한테 되게 비싼 선물 사주고 니 생일엔 결국 선물 못 받았잖아. 그래도 괜찮다고 했잖아. 예를 들면, 니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뭘 사주거나 선물할 때 아낌없이 쓰잖아. 계산적이지 않아.


하긴, 내가 특히 엄마한테 선물할 때는 돈을 팍팍 쓰지. 엄마, 나는 돈 모아서 선물하는 게 그렇게 싫어. 


그래, 누나랑 돈 합쳐서 엄마 아빠 선물하고 해도 결코 말 안 듣지?


뭐, 돈 모아서 선물해주면 고맙다고 받지만 그 선물에 여러 사람이 다 들어 있는 거잖아. 그냥 모두 고맙다 이렇게 생각하겠지. 혼자 선물 해야 진짜 내가 준 선물이고, 나 하나가 되는 거지. (나 하나가 되는 거지?!ㅎㅎㅎ)


글쿠나, 무슨 느낌인지 알겠다.



(이러고 나서 빛의 속도로 교복 입고 튀어 나갔는데.

이 아이 존재의 향기가 쉬 가시질 않아서 식탁의 텅 빈 앞 자리를 한참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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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주일 아침이었다. 이른 아침에 구역모임을 위해 커피 도구와 기타를 챙겨 일찍 집을 나섰다. 같은 자리를 오래 지키다 보면 '감'이 생긴다. 오늘은 결석과 지각이 많을 예정이야, 라고 감이 말했다. 구역모임 장소가 제대로 지하실, 컴컴한 지하 1층이다. 모임 공간이 부족하여 교회 주변의 여러 공간을 주일마다 대여하는데, 우리들의 둥지는 가톨릭 관련 건물이다. 깜깜한 지하 1층의 벙커 같은, 성모님(상)이 계신 곳이다. 약간 으스스하고 습한​ 기운을 커피 향으로 맞서보려 한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네, 할렐루야 아~아멘. 노래를 불러서 계단 위쪽까지 커피 향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다. 요새 예수 향기는 커피 향기 아니던가? 커피를 내리고 사람들을 기다리는 시간, 참 좋았다. 성모님상 때문인지, 성화 때문인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공간의 을씨년스러움이 내 안의 충만함을 이기지 못했다고 하자. 구역원 단톡에 저 사진을 띄우며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썼다. 오는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오지 않는 사람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려는 뜻은 없었다. 진심을 담아 커피 한 잔 내려놓고 '당신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내 마음으로 이미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난 주일, 남편은 교회에 사임 인사를 했다. 벌써 5년이다. 먹고 살 일이 아니라, 믿고 살 일이 캄캄했던 5년 전의 나날이 떠오른다. 먹고 살 걱정보다 믿고 살 걱정에 영혼이 바싹 말라서 슬쩍 밟아도 부서져버릴 것 같은 시간이었다. 목회 하지 마라, 당신도 죽고 나도 죽는다. 이런 말을 했었다. 아무 대책없이 하남시에 집만 떡허니 구해놓은 상태로 20여 년 다닌 교회를 떠나기로 했다. 농담처럼 '*** 목사님 교회에 부교역자로 간다면 나는 동의함!' 했던 얘기가 씨가 되었는지 *** 목사님의 교회에 극적으로 오게 되었다. 부임하여 들은 충격적인 몇 마디는 아직도 내 마음에 살아있다. '우리 교회에서는 결혼식, 장례식을 집도하고 목사님이 따로 감사 사례를 받지 않습니다. 받을 경우 바로 사임입니다'라고 신임 교역자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었다는 얘기. 또 하나는 목회자 부부 송년회에서 담임 목사님의 말씀. '부인들 수요예배 나오려고 애쓰지 마세요. 아이들 저녁 챙겨주고 가정을 잘 돌보는 것이 당신들의 역할입니다.' 설교 중 고난주간 특새에 대해 하신 말씀. '교회로부터 20분 이상 걸리는 곳에서 특새 나오려 하지 마십시오. 새벽에 먼 길 운전하며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믿음을 보여주는 척도가 아닙니다. 있는 곳에서 기도하면 됩니다.'  그 전 한두 해, 죽네 사네 하면서 바싹바싹 말라갔던 내 마음의 숙제를 다 해결해주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한 해 두 해가 흘러 다섯 해가 되었다. 그사이 내 주님과 나 사이 오간 수많은 밀어를 공개할 수는 없다. 그분이 얼마나 디테일하게 나를 위로하셨고, 선하고 아름다우며 아픈 길로 이끄셨는지 차마 말할 수 없다. 그 디테일함은 여러분들의 귀에는 유치함일 테니 말이다. 위로도 감동도 배움도, 반면 배움도 '많이 무웃따 아이가' 하는 순간이 왔다. 그 시점, 잠시의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자원하고 나서서 구역장을 맡게 되었다.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잔이어서 아버지의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 잔을 마시던 올해는 지난 5년, 아니 남편이 사역자가 되면서 패키지로 묶여 살아야했던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상처 받았고 고난 당했다며 괜스레 당당했었다. 그 '근당감(근거 없는 당당한 자신감?)'이 어느 새 근월감(근거 없는 우월감)이 되었다는 것을 직면해야 했다. 아팠고, 부끄러웠지만 1년의 시간을 지내며 알 수 없는 훈기가 마음을 채우고 있다. 상대에게 알아달라고 우기는 진정성이란 이미 진정성이 아님을, 진정한 진정성은 이미 상대에게 가 닿아있는 것임을 배웠다.





소중한 것을 배우는 교실은 주방이었다. 자발적인 시작이 아니었으나 이미 주어진 일, 타발이고 자발이고 할 수 없다. 일단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한 주 한 주 미션 클리어 하면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게 되었다. 분열되었던 마음,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생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적어도 내 마음은 그랬다. 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만드는 일이기에 말이다. 현학적 사변 같은 것들이 아니라 눈물 흘리며 양파를 썰고,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고기를 볶고, 내 몸집보다 큰 국솥을 씻으면서 서로의 몸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저 풍성하고 아름다운 음식들! 맛있게 먹고 진심으로 서로 감사하고.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고 단톡에 올려 낄낄거리고, 많은 짐 진 자에게 특별히 감사하고, 간을 본다는 명목으로 음식을 마구 줏어 먹고, 농담하고 놀리고 낄낄거리고. 이런 시간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꿈꾼다 한들, 운명 같은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한다 한들, 어떤 경우에도 나와 같은 너를 가질 수는 없다. 내 맘 같은 당신은 없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도 내가 될 수 없어서 서로에게 고통이다. 바로 그것이 인간 실존인 것 같으나,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한 도마 위에서 같은 칼질로 만날 때, 우리 사이 많은 차이가 지워지고 잠시 하나가 된다. 놀라운 발견이고 경험이었다. 주방에서 배웠다. 구역 주방봉사에서 나이가 나보다 많고 적은 사모님들에게 배웠다.  





오늘 마지막 주방봉사를 했다. 지난 주일 남편이 이미 사임인사를 했기 때문에 봉사하러 나가는 게 조금 민망스럽기도했다. 하지만 어쩐지 나가고 싶었다. 5년의 마무리를 주방에서 하고 싶었다. 남모르는 먹먹함으로 양파를 까기 시작했다. 정말 맛있는 오징어볶음과 감자조림 간을 보다 기분이 좋아졌고 맛있게 만들어내고 맛있게 먹고 으쌰으쌰 설거지를 하고 잘 마쳤다. 다시 마음이 먹먹해졌지만.....

5년 전 가을. 스물 여섯 때부터 다녔던, 남편을 만났고 두 아이를 낳았던, 평신도에서 목회자가 되었던, 고향이라는 말도 가벼운 교회를 사임하고 무턱대고 하남 서해 아파트 계약을 했던 날이 있었다. 그날 집을 보러 다니는 동안 뺨을 스쳤던 가을 바람이 기억날 듯 하다. 그때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시간, 나를 기다리던 5년은 이러하였다.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나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상상을 넘어선다. 상상보다 아름답고, 상상치 못한 아픔이 있기에 나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나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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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도 떠벌떠벌 했던 필름포럼 아카데미 소식입니다.

포스터 하나가 새로 나왔는데 맨 아래 '수강생 특전'이 눈에 띄네요.

강사도 몰랐던 수강생 특전입니다.

수강기간 동안 영화관람과 카페 음료 20% 할인!!

필름포럼은 이 강의로 인연을 맺기 전에도 가끔 찾던 영화관입니다.

좋은 영화를 잘 골라 상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티켓박스 자체를 바로 카페공간으로 만들어 더욱 좋더군요.


가을 서늘한 바람이 텅 빈 마음 한 구석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시라면,

김현승 님의 시 <가을의 기도> 한 구절처럼 '호올'로 있어야 할 시간에의 초대인지 모르겠습니다.

6주의 시간은 자연의 계절 가을이 깊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네요.

오전에 강의 들으시고, 이대 후문 맛집에서 점심식사 하시고,오후에 좋은 영화 한 편 감상하시고.

호올로 있는 풍성한 시간 누리실 수 있겠네요.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가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OO 이름 대기' 놀이는 오래도 간다.

언제적 '아이엠그라운드 OO 이름 대기'인가.

한 10년 전부터 했던 놀이 같으다.

질적으로는 조금 진보한 것인가?

'아이엠그라운드 아이스크림 이름 대기'에서

외국 남자 영화배우 이름 대기, 영화 제목 대기로 바뀌었으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어제는 그렇게 박박거리고 싸우더니,

(저러다 쟤네 나중에 크면 명절에 서로 얼굴도 안 보겠다 싶을 정도로)

어느 새 저러고 앉아 낄낄거리며 조니뎁, 그게 누구지? 아아, 맞다.

아이언맨에 나온...... 아우씨, 내가 먼저 할려고 했는데.....

그러고도 하염없이 수다수다를 하니까 말이다.


'아, 됐따고~오' '나도 됐따고오~' '나도 너 싫거든' '완전 짜증 난다고~오'

남매끼리 저래도 되나 싶게 노골적 혐오발언을 퍼붓다가,

어느 새 둘이 키보드 앞에 앉아 딩가딩가 노래를하며

현승아, 너 참 음악성 있다!

아, 진짜? 낄낄낄낄. 깔깔깔깔.

세븐코드, 무슨 무슨 리듬에 관해 진지하게 논하고 그러니까 말이다.


종잡을 수 없는 남매의 아이엠그라운드를 시청하다 아빠가 조용히 혼잣말 했다.


동지인가, 적인가?!












3학기 째 듣고 있는 '영성과 철학상담'이라는 강의 중 있었던 일이다. 강의와 집단상담으로 진행되는데 집단상담 첫날이었다. '한계상황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K. 야스퍼스의 실존철학으로 배우고 나누는데 내게는 정말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집단상담에서 어느 분이 자신이 경험한 한계상황을 얘기했다. 믿고 존경했던 성직자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 금액은 본인이 30년을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란다. 그분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희망이 있을 때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는 내용이었다. 그 성직자가 마음을 돌이켜 나타나줄 것이다, 법이 나를 보호해줄 것이다, 이런 희망이 온전히 무너진 순간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는 얘기. 


분위기가 술렁술렁했다. 어머, 어머, 세상에! 내 옆에 옆에 앉은 나이든 여자분이 내 옆에 앉은 분에게 뭐라뭐라 끊임없이 속삭였다. 속삭임인지 투덜거림인지. 내 자리에선 그분의 눈썹이 보였는데 기본적으로 3단 정도 꺾여 있는, 짙고 강한 눈썹이었다. 얼핏 '신부, 목사, 목사, 신부' 하는 것으로 들렸다. 아, 이 그룹의 멤버는 주로 가톨릭 신자들이다. 강사가 철학과 교수이며 예수회 신부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삼단 눈썹이 자꾸 거슬렸다. 자신의 한계 상황을 고백했던 분의 말이 끝나고 '한계상황과 실존'에 대해 한 말씀을 기다리며 인도하는 신부님을 고양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부님 말씀 '아니, 당사자를 찾아가든지, 도망가서 없으면 주교님 찾아가야죠. 가서 신부 못하게 만들어야죠.' 라고 말했다. 한계 상황녀께서 주저주저 말씀하셨다. '아..... 그..... 저는 개신교 신자라..... 신부님이 아니라 모.... 목사님이.....'  그러자 바로 삼단 눈썹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신부님은 그럴 리가 없어. 신부님이 무슨 돈이 필요하다고 사기를 쳐' 짙은 삼단 눈썹이 씰룩씰룩 요동을 쳤다. 건너편에 앉은 남자분은 '나는 딱 듣자마자 목산줄 알았는데요' 한다. 여기저기 그럴 줄 알았다, 그럴 리 없다, 가 릴레이로 터져 나왔다. 


나는 혼자 얼굴이 벌개지고,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부여잡고 소외감도 아닌 분노도 아닌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삼단 눈썹녀가 눈썹으로 말하는 그 소리들이 견딜 수 없었다. 엄마, 아니 남편이 보고싶고 집에 가고 싶었다.


그 이후 시간은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쿵쾅쿵쾅 내 심장이 뛰는 소리만 들렸다. 마지막 발언자는 예수회 수사님이었다.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한계상황은 역시 예수회 입회 직전이었지요'라는 말로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컴퓨터를 좋아했단다. 운이 좋게도(라고 표현했다) 관련 전공으로 대학엘 가고, 쉽게 취업을 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돈 받고 하게 되다니, 행복할 줄 알았단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열 시까지 하는데 하나도 행복하지가 않더란다. 오히려 공허함이 차올랐다고 했다. 가장 공허했던 순간은 첫월급을 받던 날이었다고. 이게 뭐지, 이게 뭐지 하면서 지냈는데. 어느 날 퇴근하려고 일어서다 건너편에 앉아 일하는 부장님인지 팀장님인지의 뒷모습을 주시하게 되었단다. 그 모습이 10년, 20년 뒤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확들었다고 했다. 


아, 이 공허함을 어디서 채움받을 수 있을까? 하느님께 가면 될까? 피정을 다니곤 했단다. 곡절 끝에 '다행히 아직 결혼도 안했으니 하느님께로 가자' 하고 예수회에 입회를 하고 사제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그런데 이것은 끝이 아니라 진정한 시작이었다며, 여기에도 행복은 없다며, 한계상황은 늘 새로움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이끌어 가신다는 희망 때문에 행복하다고 훈훈하게 마무리 하였다. 몰입해서 듣다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비약적 희망에 살짝 당혹스러웠다. 그 찰나, 강사 신부님께서 '희망에 대한 회의'라는 말로 뼈 있는 코멘트 하셔서 좋았다.


2주가 다 되어가는 일이다. 내내 이 일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몰래 파견된) 개신교 대표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낯이 뜨겁도록 (몰래 혼자서) 모욕감을 느껴다. 내가 목사도 아니고, 사기 친 목사는 더더욱 아닌데 말이다. 동일시 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목사와 신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마지막 발언했던 수사님의 얘기를 들으며 '소명 확인, 실존적 고민' 이런 단어가 떠올랐다. '하나님께서 나를 목회자로 부르셨다. 기도해보니 확신이 들었다!' 이런 게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 진리를 찾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구도자의 몸부림 말이다. 


나도 사기꾼 목사들이 무지 싫다. 내가 몸담은 개신교, 개신교의 목회자들에 대한 환멸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목회자의 아내이며, 목회자의 딸이고 목회자의 누나이다. 목회자와 나를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목사들을 보며 최전선에 서서 돌을 던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실은 추락하는 그들은 나의 교회이며 나 자신이다. 돌을 던지는 측이 아니라 돌을 맞는 자리가 내 자리인 것 같아 혼란스럽다. 이것이 나의 고통스런 실존이다.


남의 집 밥이고 김치라 색다르게 보일 뿐, 우리집 밥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다. 개신교나 가톨릭이나 좋은 목사님은 좋고 이상한 목사님은 이상하고, 신부님들도 그럴 것이다. 다만 그날 그 순간 조용조용 와글와글 '신부님이 그럴 리 없다'는 이견 없는 여론은 참 부러웠다. 그나마 신부님들은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음일까. 구도자로서 두렵고 떨림으로 여전히 찾고 구하는 태도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길이며 진리이고 생명이신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열심히 전하다 자신이 예수님인 줄 착각하여 '아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어! 암만. 암만. 그렇고 말고!' 자아팽창과 어리석은 자기확신에 빠진 목회자와 성도들과 교회가 함께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신부든 목사든 길을 잃은 자가 길을 안내할 수는 없다. 높고 높으신 하나님, God을 찬양하기 전에 god의 이 노래를 함께 불러볼 일이다. 진리를 찾고 따르는 길은 두려움과 떨림, 역설로 가득찬 것 아닌가. 길찾기의 시작은 현위치 설정이니 지오디의 노래 <길>, 이 가사 만큼만이라도 정직하게 우리의 실존을 마주하려 한다면....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 명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오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우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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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은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내륙교통의 중심지' 이런 내용으로 배웠던 교과서 속 도시였다. 민이네가 사역지 따라 제천에 내려간 지 벌써 14년. 교과서 속 제천은 모르겠고, 일 년에 한 번씩은 찾는 정겨운 곳에 되었다. 여름에 수영복이랑 튜브 챙겨서 채윤이, 현승이, 의진이까지 한 차 가득 타고 내려갔던 시절도 있었다. 민이, 챈, 현승이가 계곡에서 물총 쏘면서 놀 때 의진이는 유모차에 앉아서 쮸쮸를 먹었다. 의진맘에게 '언제 키우냐, 언제 키우냐' 했는데 그 녀석 의진이가 내 키만큼 컸다. 오십도 안 됐는데 자꾸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얘기를 하게 된다. 암튼, 요 몇 년은 애들 다 떼놓고 의진맘과 둘이 홀가분하게 제천행이다.


차 뒷좌석을 트렁크 삼아 꽉꽉 채워서 챙겨왔다. 과수원에서 직접 산 사과박스, 김치 한 통, 호박잎, 호박, 고추, 밤, 파, 방울토마토(이렇게나 많았나?ㅎㅎㅎ). 의진맘과 이구동성으로 '친정집 왔다 가네. 친정집이네' 했다. 20여 년 전에 자주색 가죽 자켓에 부츠컷 청바지에 (앵클부츠를 신었던가? 아닌가?) 긴 생머리 휘날리며 스타일 나던 민맘의 모습이 기억 속에 또렷하다. 우리 셋 중에 제일 스타일리시 했었지. 아마. ㅎㅎ 그 민맘이 오늘은 우리의 친정엄마가 되었다. 오가는 시간이 얼굴 마주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지만, 그래서 늘 아쉽지만.... 민맘 의진맘 둘 다 오래 운전하는 나를 걱정하지만.... 아닌게 아니라 막히는 강변북로 혼자 돌아오는 길, 무지하게 피곤하고 졸음도 살살 오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뒷좌석에 떡 버티고 있는 저 맛있는 김치 한 통을 생각하면 힘이 불끈이다.


친정집에 다녀오는 느낌. 그 느낌 아니까. 헌데 '친정집 왔다 가는 것 같다' 라고 말할 때의 그 '친정'집을 진정으로 가진 여자가 있을까? 몇이나 있을까? 나도 친정이 있다. 그 친정은 생의 마지막날을 기다리는 아슬아슬한 엄마, 아기가 된 엄마가 계신 곳이라 늘 뭘 가져가야 하는 곳이다. '야이, 가루분이 떨어졌다' 하면 가루분을 사가야 하고, '요좀이는 호박죽 밲이는 못 먹어' 하면 호박죽을 사가야 하고. 친정집은 가서 속을 풀고 오거나, 바리바리 싸오는 곳이 아니다. 나는 엄마가 너무 늙어서 그렇다 치자. 어떤 친정집에는 부모님 사이가 안 좋아서,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부모님의 성격 때문에.... 가서 맘 편히 쉴 곳이 아니다. 무엇을 풍성히 싸보낼 만큼의 친정은 흔하지 않다. '친정집 왔다 가는 것 같다'의 '친정'은 현실의 친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 속 친정, 원형적 친정이다. 모두 고향을 그리지만 정작 현실의 고향이란, 가봐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 또는 가족간 갈등으로 생각하기도 싫은 곳인 경우처럼 말이다.


민맘도 의진맘도 나도 그런 의미의 친정은 없다. 아무 걱정 없이, 아픔 없이 친정을 떠올리며 천진난만하게 엄마의 창고를 털어올 수 있는 그런 친정.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약간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렇게 서로 서로 친정이 되어주는 거지, 생각하니 눈물이 한 방울이 똑 떨어진다. 20대, 이름 붙이기도 어려운 방황의 시절 답십리의 (당시) 민맘의 자취방 생각이 문득 났다. 토스터기를 새로 사서 거기에 식빵을 구워 먹었던 생각도 툭 튀어 올랐다. 그 시절에도 뭔가 고향이 없는 느낌으로 쓸쓸하고 그랬었던 것 같다. 썩 잘 풀리지 않는 결혼 같은 문제를 놓고 막막한 마음을 막연하게 나누었던 기억도. 어디 내놓을 수 없는 지질한 내 속을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때는 그때대로 우리들의 친정이었다.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고 제천 사과를 까먹으며 채윤이와 수다를 떨었는데 어느 새 채윤이 키보드 앞에 가서 딩가딩가 연주를 하였다. 듣자하니 흘러간 CCM을 쳐댄다. '엄마, 와서 노래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선곡 리스트를 보니 영락없는 콜링이다. 채윤이 옆에 가 한 곡 두 곡 넘기다, 어쩌다 '주님을 따르리'를 부르게 되었다.  20여 년 전, 어느 추수감사절에 교회 찬양제에서 청년부가 불렀던 곡이다. 민맘도 의진맘도 채윤이 아빠도 함께 했던 찬양이다. '주님을 따르리 내 십자가 지고 주 따르리' 뭣도 모르고 잘도 불렀다. 돌아보면 지난 20여 년, 셋 다 각자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왔다. 그 길이 주님을 따른 길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기만의 십자가를 지고 고군분투 해온 것은 분명하다.  


각자의 십자가를 서로 안타깝게 바라보고, 기도해주고, 마음을 나누기도 했는데. 딱히 우리의 기도가 응답된 것도 없다. 여전히 각자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했고,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보니 능력도 크신 분이 참말로 사소한 것 하나를 안 들어주시고.... 하나님, 참 섭섭하다. 그래도 먹을대로 먹은 나이 때문인지 반항할 힘도 없고, 내 소견이 코딱지만 한 것도 알만큼 아는 터라, 본의 아닌 '내려놓음'이다. 각자 몫에 태인 십자가, 뉘게나 있는 십자가, 이렇듯 지고 끝가지 가는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들이 되는 건가? 여하튼, 딱히 비빌 언덕이 없는 흙수저 셋이 5년 후에는 스페인 여행을 가겠노라 꿈을 꾼다. 모든 사람에겐 고향이 필요하다. 모든 여자에겐 친정이 필요하다. 비빌 친정이 없는 친구끼리 서로 친정이 되어주고, 마음의 고향이 되어야 한다. 오늘 내 친구가 나의 친정이 되어준 것처럼, 나도 때로 친구의 친정이 되고, 세상 곳곳에 더 많은 친정과 고향이 생겨야 한다. 그리하여 결론은.... 넘나 맛있는 김치 한 통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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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필름포럼에서는 [필름포럼 아카데미]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여기서 '인생의 오후 살기'라는 제목으로 중년기 영성과 에니어그램 강의를 하게되었습니다. 필름포럼 홈페이지에 올라온 내용 중 '강좌 소개' 부분을 '강좌로의 초대'로 조금 길게 써서 여기에도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맨 아래에 홈페이지 링크주소도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 함께 해요.



강좌로의 초대

 

 

중년

 

중년의 ()’은 가운데입니다. 인생이라는 등반에서 올라선 정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내려가는 삶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생의 오전을 마치고 오후로 가는 길목에는 생각지 못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같지 않은 몸, 알 수 없이 밀려오는 공허감, 100세 인생이라는 노령화 사회에서 살아갈 기나긴 날들에 대한 불안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하여 중년의 ()’은 무거움이기도 합니다.

 

중년과 영성

 

중년의 공허감이나 우울감을 탈피하기 위해 새로운 취미를 계발하고, 건강의 위해 더욱 운동에 매진하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타보고, 스포츠댄스를 춰보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봅니다. 그런데 어쩐지 자꾸만 텅 비어가는 것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중년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중년기에 겪는 어려움들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를 단순하게 대처하는 방법들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수많은 중년의 내담자를 상담하고 분석할 결과 중년의 문제는 심리적인 차원을 넘어선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영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활로를 찾을 수 없답니다.

 

방향의 전환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보다 가까이에서 경험합니다. 삶과 죽음이 함께 질문을 던져옵니다. 생의 전반기에 쌓아온 경험과 성과가 전부일까, 엄마/가장/직장인/신앙인으로서 역할에 충실하게 살아왔는데 이것이 전부일까? 이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영성적 질문과 맞닿습니다. 이것은 위기이며 동시에 초대입니다. 인생의 오전을 살던 프로그램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인생 프로그램으로 진입하라는 초대입니다.

 

내적여정으로의 초대

 

<에니어그램과 함께 하는 중년기 영성> 강좌는 생의 오전에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 일군 나의 꼴, 성격의 빛과 그림자를 짚어보며 통합된 나를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나에 대한 통합된 인식은 유연하고 건강한 인간관계의 초석이기도 합니다. 위로는 연로하신 부모님, 아래로 장성한 자녀들, 나란히 걷는 이웃을 더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오후 살이 여정에 초대합니다.

 



ㅣ커리큘럼




1주차  중년의 위기, 위기속의 은총 / 중년기 몸과 마음의 변화 직면하기


2주차  새로 태어나는 시간 중년 / 내 안의 낯선 나를 만나기


3주차  나의 외적인격은 어떻게 형성 되었나 / 에니어그램과 3중심


4주차  장중심의 사람들 / 에니어그램 8, 9, 1 유형


5주차  머리 중심, 가슴 중심의 사람들 / 에니어그램 2~7유형


6주차  꽃보다 중년 / 중년을 넘어 행복한 황혼을 향하여





ㅣ강의 대상


- 생의 후반기를 보다 어른답게, 의미 있는 삶으로 지내길 원하시는 분.

- 나다운 삶을 찾는 여정을 떠나고 싶은 분.

- 오랜 신앙생활에도 변화의 열매가 없어서 삶이 메마르다고 느끼시는 분.

- 내적인 변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ㅣ강의 방식


- 강의와 자신을 돌아보는 워크숍을 포함한 집단상담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ㅣ강의 장소


- 필름포럼 세미나실 A



ㅣ강의 일정


2016년 10월 25일 - 11월 29일(6주)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30분 - 12시 30분)




ㅣ수강료


100,000원(총 6회)



ㅣ강사소개


정신실 작가


음악치료와 영성심리를 공부하였다. 마음과 영적인 성숙의 문제에 천착하여 심리와 영성을 오가고, 가톨릭과 개신교 영성 사이를 오가며 배우고 연구하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여전히 걷고 있는 일상 순례자이다. 말에서 마음을 듣는 귀, 일상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눈을 선망하며 커피 마시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공부하며 글 쓰는 오늘을 산다.


저서

<오우연애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연애를 주옵시고>

<와우결혼 :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

<나의 성소 싱크대 앞>





[필름포럼] 홈페이지 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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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아주 많은 일을 했다. 밤 10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려고 종로 5가를 걷다 문득 깨달았다. 불금이구나! 인도를 걷는 사람 중에 제정상(채윤이적 표현. 제정신과 정상을 콜라보하여 의미 그 이상의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반지성적 언어표현 말이다. )인 분이 거의 없었고, 동문회를 마쳤는지 인도에 동그랗게 서서 비틀비틀 교가를 불러대는 아저씨들을 보고 확신했다. 불금이야. 불금! 종로와 광화문, 신촌과 홍대를 지나는 동안 막히는 도로, 비틀거리는 차창 밖 풍경을 보며 확신은 광신이 되었다. 불금, 불금입니다. 제게도 화끈한 불금을 내려 주~우쒸옵소서! 같은 시간 10시 쯤, 용인에서 차로 출발한 남편이 서강대교를 지날 즈음 나는 합정동에서 하차했다. 도착 시간이 딱 맞아 골목에서 남편 차에 픽업당했다. 오빠, 달려! 이대로 달리자구! 나도 이 남자와 함께 불금을 보내고 싶...... 지만 하루 종일 심방을 하고 들어온 남편은 빨리 자고 내일 새벽기도 나가야 하는 것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은 것 같다. 그래, 더 이상 이런 걸로 삐치진 않기로 했다. 남편도, 꼬치너 채윤이도, 정신줄을 놨다 잡았다 하는 사춘기 현승이도 잠든 밤. 사실 내가 바라던 불금이다. 나는 오늘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방식의 불금을 보낼 것이다.


그러자 나는 오늘 갑자기 풀타임 근무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 금요일 밤에는 '앗싸, 내일 늦잠!' 하는 마음으로 자정을 넘기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싸이 클럽에 밀린 글도 쓰고, 댓글 놀이도 하고, 좋은 글도 읽고..... 아, 컴퓨터 책상과 옷걸이 하나로 꽉 찼던, 하남 그 좁은 빌라의 벙커 같았던 방! 그것이 나의 불타는 금요일이었다. (아, 물론 잠탱이 남편은 토요일의 늦잠을 기대하며..... 이미 잠들어 있었다) 채윤이는 아기였고 우리 셋은 행복했고, 행복했던 어느 날 기쁨이라는 현승이가 생겼고, 우리 넷은 행복했다. 풀타임의 직장맘 생활이 어렵지 않았던 것은 초기에는 우리 엄마가, 엄마의 허리가 무너져내린 후에는 (시)아버님께서 채윤이를 돌봐주셨기 때문이었고, 나는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음악치료사라는 직업도 생소했던 시절, 풀타임 음악치료사로 일하던 나는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며 남몰래 눈물을 훔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니! 이게 가능하다니! 그 감동의 회사 식당을 떠올리다..... 나는 오늘 (급기야) 내가 좋아하는 일과 돈에 관한 개인신화적인 고찰을 하기에 이르른다.


이번 한 주는 조금 유난한 일주일이었다. 나는 오늘 이 시간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지난 며칠을 돌아본다. 일단 어제 목요일에 구몬 선생님들에게 미취학 아동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했다.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적은 있지만 이렇듯 명확하게 주제를 전달받은 일은 없었다. 말하자면 아이들과 말이 안 통하고, 돌발행동에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으니, 또 학부모 상담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으니,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는 것이었다. 강의에 참고하라며 보내온 수업 동영상을 보다가는, 돕고 싶은 오지랖 에너지가 충천했다. 그리하여 몹시 힘들었지만 행복한 힘듦을 통해 강의를 준비했고, 아..... 쫌 (자랑인데) 강의를 잘한 것 같다. 마치고 오후에 담당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강하신 선생님들의 뜨거운(!!^^) 반응을 전하시며 오히려 본인이 많이 배우고 감동 받았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나 뭐라나. (먼산) 중간에서 나를 소개한 친구에게도 또 전화가 왔다. "신실아, 너 오늘 히트였다며? 바로 전화 왔더라.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고. 한 시간을 너무 알차게 준비했는데 강사료가 적다고 너무 미안하대. 그래서 내가 괜찮다고 했어. 내 친구가 나한테 빚진 것이 있으니 괜찮다고. 너는 이런 일이 맞나봐. 그치? 호호호"


이 친구가 말하는 빚이란 이것이다. 한 2년 쯤 전의 일이다. 대학 동창인 이 친구는 전공을 가장 잘 살린 친구 중 하나이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딸 수 있는 어린이집 원장 자격이 난무하는 보육 생태계에서 전공자의 자부심으로 제대로 어린이집을 운영하여 성공했고, 정치력이 아니라 실력을 인정받아 어린이집 연합회 회장을 했고, 나중엔 어린이집 평가인증(이라는 국가 차원의 인증 시스템)을 맡아 평가하는 엄청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이다. 가끔 대학 보육과에서 겸임교수 뽑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내게 연결시켜주고 싶어 했었다. 한 2년 전 쯤에는 정말 괜찮은 시립 어린이집 원장 자리가 났는데 대학 위탁 운영이라서 더 메리트가 있었다. 이 친구가 그 자리에 나를 추천했고, 친구의 덕망 덕에 내가 오케이 하면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알고 보니 그 자리는 그 바닥에선 치열한 자리, 쉽게 얻을 수 없는 왕좌였다. 그런 사정은 몰랐지만 일단 오케이를 했었다. 드디어 경제적 안정이란 걸 누릴 수 있게 되었구나! 이제 나 혼자서 찾은 이 시대 교회의 답이라 여겼던 목회자의 자비량 목회, 남편에게 그 기회를 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결국 한 여름 밤의 꿈!이 되었다. 밥이 다 된 그 자리에 셀프로 재를 뿌리고 도망쳐 나왔다. '저, 이거 못하겠어요' 하고 나와버린 것이다. 진짜, 아주 많이 부끄러웠다. 바보같은 나를 확인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다른 선택은 없었으나.... 진실을 고백하자면 이렇다. 그 자리로 가야할 명확한 이유가 백 개인데 내키지 않는 이유 서너 개. 그 서너 개조차도 다 허접했다. 그 중 더욱 설득력 없는 이유는 이런 것. 오래 준비했던 에니어그램 2단계 강의를 론칭하는 날과 어린이집 원장이 되는 중요한 절차가 딱 맞물려 있었다. 수강 인원이 몇 명이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폐강이 될 수도 있었던 그 2단계 첫 강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직원이 30여 명인 공립 어린이집 원장 자리를 거절한 이유치고는 허접한 줄 안다. 당시 여기저기서 '미쳤다'는 논평은 들을 만큼 들었으니 이제 이 얘긴 패쓰.

친구가 말하는 빚이란 이것이다. 결정이 다된 상태에서 갑자기 뒤집어진 탓에 난처해진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중간에 끼인 친구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친구는 그 때문에 내가 (강사료도 적은 이) 강의를 수락한 줄 알고 생각하나? 그건 아니다. 내가 강의를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내가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고, 말하기 좋아하는 주제인가' 이에 부합하는가. 부합한다면 새로이 강의안을 만들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도 감수할 수 있다.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강의로 얻어질 유익이 커도 (속으로 피를 흘릴지언정) 단칼에 거절하려고 한다. 헌데 소통, 그것도 유아들과의 소통이라니 내 전공에 부합할 뿐 아니라 (감히)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고, 관심 주제이다. 때문에 강의 준비에 정말 많은 에너지를 쏟았지만, 강사료가 적은 줄도 알고 있었지만, 화상으로 영어수업하는 선생님들이라는 특수한 대상이라 다시 써먹을 곳도 없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많은 시간을 들여 고심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결과도 크게는 상관없다, 고 생각했는데 좋았다는 피드백에 급 기분이 업되었다. 내가 좋았고, 들은 사람이 좋았다니 더 바랄 것이 없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나다움' 관한 이야기이다.

공교롭게도 이 강의를 마친 날, 나는 이번 가을 에니어그램 세미나 1단계, 2단계, 심화과정을 모두 폐강하기로 했다. 수강인원 모집이 잘 되지 않았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더욱 애를 쓸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에니어그램 강의는 애써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강의이지만 평안한 마음으로 폐강을 결정했다. 신청 링크를 막자마자 문의 전화 두 통이 와서 '이건 뭐지?' 싶었지만 그래도 폐강이다. 전 같으면 '페강'은 곧 강사가 '폐인'이라는 뜻이야! 하면서 실패감에 빠졌을텐데. 겉으로는 쿨하게 폐강하되 내 탓은 아니라는 핑계를 백만 개 짜냈을 텐데. 기쁘게 폐강한다. (셀프 토닥토닥) 강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외적인 무엇을 이루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이 관건이기까.

라고 간지나게 글을 맺고 싶었지만. 나는 사실 이번 주에 늘 짓는 죄를 반복해서 지었다. 죄목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이다. 강의 준비가 힘들지만 깊은 차원에서 즐겁고. 즐겁지만 또 인생 쉽게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는 지점에서 줄타기 하는 중에 채윤이의 어텍이 들어왔다. 청소년 백수 채윤이가 제 방에서 처벅처벅 걸어 나와서는 '엄마, 오늘 뭐해?' 이러면 바로 뚜껑이 열렸다. '엄마 강의 준비 하는 거 안 보여? @%$$&^#@#$!@#%#^$' 그런 몇 번의 질문과 열폭이 반복되다 급기야 '뷀에에엑!!!!!! 엄마가 집에 있다고 노는 걸로 보여? 출근했다고 생각해. 엄마는 집에 있다고 노는 게 아니야. 강의 준비도 해야하고, 써야할 글도 있어. (확인사살의 의미로 다시 한 번) 뷀~~~~~~에에엑!' 청소년 백수생활 9개월에 정말 정말 심심해진 채윤이와 여유있게 수다를 떨거나 놀아줄 틈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교회 주방봉사를 마치고 저녁 강의 들으러 가기 전에 채윤이와 데이트를 했다. 다음 주 꽃친 제주 여행을 위한 쇼핑을 하고 맛있는 것도 잔뜩, 만천 원어치나 사가지고 집에 와서 수다 떨며 먹었다. 며칠 우울했던 채윤이가 급 '조증' 증상을 보인다. 내 죄다. 내 죄다. 내 죄값이다! 나답게 살기는 개뿔, 엄마 노릇이나 제대로 하시지. 라며 나는 오늘 불금의 기나긴 일기를 쌩뚱맞은 결론으로 맺으려고 했는데.

아, 마지막으로 나는 오늘 내 블로그 일일 방문자 수가 1000이 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 달 <나자연> 칼럼을 꽃친의 예지 쌤 결혼식을 모티브로 썼는데. 그른데.... 어제 올렸던 그 글을 예지 쌤이 페북으로 공유하자 오늘(그러니까 사실 어제 23일) 블로그 일일 방문자 수가 1000을 넘었다. 블로그 오픈 이후 최다 방문자 수가 아닐까싶다. 숫자의 크기가 대수는 아니지만(아, 1000은 大數구나. 그렇구나) 암튼, 놀라운 일이다. 나는 오늘 이렇듯 참말로 뜨거운 불타는 금요일을 혼자 보내고 있다. 나는 오늘 참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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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34

 

 

바야흐로 결혼의 계절, 축가의 계절입니다. 저도 소싯적에 축가깨나 불렀습니다. 나도 저런 결혼 해야지, 부러움과 설렘으로 선배 결혼식 축가를 불렀는데 어느새 친구를 위한 축가, 금세 후배 결혼식 축가 부르는 날이 오더군요. 축가의 역사는 오랜 싱글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축가의 노랫말들은 신혼집 인테리어 못지않게 샤방샤방합니다. 그대, 행복, 선물, 사랑, 운명, 영원, 하나 되어.... 이런 단어가 겹치기로 출연하지요. 저는 어쩐지 결혼식 축가용으로 만들어진 노래에 마음이 가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랑 신부의 인생 스토리와 잘 맞는 CCM이나 찬송가가 더 의미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친한 친구일수록 축가스럽지 않은 축가를 불러주곤 했습니다. 목사님과 결혼하는 친구의 결혼식에 찬송가 <내 평생에 가는 길> 한 절을 부르고 끼워 부르기도 했습니다. 결혼 20주년을 바라보는 친구의 남편 목사님께서 농담하십니다. ‘그때 우리 결혼식에 내 평생에 가는 길 불러줬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큰 풍파로 어려웠어요. 허허

 

얼마 전 인상적인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결혼식 전체가 감동적이었는데 제겐 특히 축가가 그러했습니다. 찬송가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 데서>였습니다. 유독 4절 가사가 귀에 들어오더군요.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이건 뭐 제가 불렀던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려운 것과 비교가 안 되지 뭡니까. 사랑과 행복의 바다를 향해 막 출항하는 사람을 세워두고 참된 평화는 없다라니요! 시작하는 부부에게 초를 치는 축가로 치면 저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에서 회심의 미소로 듣기 시작했지만 뒤로 갈수록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결혼과 인생의 본질을 꿰뚫는 진리를 담은 지혜이며, 그 지혜가 오롯이 담긴 축복인듯 싶었습니다.

 

실은 이 결혼식 전반에 담긴 신랑신부의 지혜는 보기 드문 것이었습니다. 결혼식장 인테리어며 신부의 드레스, 피로연 식사까지 친환경으로 준비한 것도 남달랐구요. 주례를 목사님이나 교수님 한 분이 아니라 신부 직장 상사 부부가 맡은 것입니다. 가만 듣고 보니 단지 특별한 결혼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혼이 무엇인지를 아는 선택이었습니다. 결혼식 중 단 한 번의 주례사가 아니라 평생 함께 갈 주례자를 모신 것 같았거든요. 결혼 전에 두 부부가 여러 번 만나서 맞춤형 결혼예비학교를 했답니다. 심지어 함께 공부한 텍스트는 스콧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이었습니다. 상대를 받아들이고, ()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를 확장하는 것이 사랑이라 정의하는 그 스캇 펙 말입니다. 사랑과 성장을 위한 길은 마침이 없으며,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고도 했지요. 이 사람들은 화려한 결혼식 후에 펼쳐질 일상의 결혼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았습니다. 솔로의 땅에 남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그 환상의 시간이 끝나면 자기 확장이라는 사랑의 불 연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요. 사실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연단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느냐(이렇게 되면 배우자와의 행복은 저절로 따라오게 됩니다), 좌절과 무기력과 은근한 분노의 결혼생활 어쩔 수 없이 이어 가느냐입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성장하거나 불행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모두 행복하려고 결혼하는데 정작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을 모릅니다. 모를수록 모호하고 허황한 이상을 부여잡게 되지요. 갈등을 겪는 신혼부부를 각각 만나보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내가 생각한 결혼이 아니다입니다. 그들이 꿈꾸던 결혼이란 따스한 배려, 퇴근하고 돌아가면 그저 맘 편히 쉴 수 있는 홈 스위트 홈, 더는 외롭지 않음..... 그럴듯하지만 모호한 표현들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 모호한 표현을 늘어놓는다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혹은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식 축가 속에 담긴 행복, 사랑, 축복, 하나 됨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환상이 아니듯 참된 사랑 역시 낭만적 사랑의 환상과 같지 않습니다.

 

이 땅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결혼만 하면 외로움 끝, 행복 시작. 사랑하여 결혼만 하면 행복해질 거라는 환상을 깨는 한 마디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부부에게 절망적인 얘기 같지만 알고 보면 참 평화의 문을 여는 진실의 열쇠입니다.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이 지혜로운 부부는 예수님을 선생님, 친구로 삼듯 좋은 선배 부부를 꼭 붙들었습니다. 주례자로 모셨을 뿐 아니라 20여 년 결혼생활 노하우를 밀착 전수하며, 무엇보다 결혼의 증인이며 안내자로 삼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든든한 안전장치입니까. 이들의 청첩장 문구는 사람들은 왜 손을 잡을까’, 질문으로 시작하더군요. 질문을 던지면 시작하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둘만 좋아라 맞잡는 손이 아니라 좋은 선배와 연약한 이웃의 손까지 꼭 붙든 이 결혼은 살아 있고 풍성한 답으로 채워질 것이 분명합니다.








야야, 이리 와봐라. 너 이거 한 번 입어봐.

느이 대전 언니가 사왔는디 너머(너무) 이쁜디 나는 옷이 많잖어.

낼 모리믄(모레면) 죽을 사람이 무신 새옷을 입겄어.

지금 있는 옷두 다 못 입고 죽어.

이거 니가 입어라. 한 번 입어라봐. 나는 옷이 많여.


90대 여자사람의 너머너머 이쁜 옷을 아직 40대인 내게 자꾸 입히려고 한다.

한두 번이 아니다.

당하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엄마, 나도 옷이 많어. 채윤이 입으라고 해.


10대 채윤이 당황하신다.


그려? 그럼 울애기 한 번 입어봐. 대전 외숙모가 이쁜 옷을 잘 골라.

이봐, 이뿌잖여. 채윤아, 니가 한 번 입어봐.

할머니는 옷이 많여. 지금 있는 옷도 다 못 입고 죽어.


10대 채윤이가 40대 엄마에게 눈빛 레이저를 쏘고.

눈으로 묻는다. 진짜 입어?

눈으로 대답한다. 당연하지! 하하.

할머니 마음 저버릴 수 없는 채윤이가 90대 할머니의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는다.


엄마, 삼촌, 외숙모.

다같이  폭발적인 반응.

와~ 채윤이 잘 어울린다. 꽃친 갈 때 입어.

(아빠는 한 걸음 뒤에서 소리 없이 콧구멍만 벌렁벌렁)


얼라, 우리 채윤이한티 딱 맞네. 니가 갖다 입어라

거봐. 이뿐잖여. 우리 채윤이가 기드락진혀서(길어서) 역시 이쁘구만.

야야, 이건 신실이가 입어라. 이건 니가 입어.


결국 40대 신실이도 90대의 옷 인심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리고 천진난폭 돌직구도 피하지 못했다.


이~이(아~), 우리 채윤이가 기드락진혀서 이뿌지.

너는 짤뚱혀서 벼랑( 별로) 안 이쁘구만.


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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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가 공인하는 필기의 여왕이다. 정직하게 돌아보니 '여왕'이 다 뭐야. 여왕 그 이상, 거의 필기 중독에 가깝다. 이번 학기에는 두 개의 강의를 듣고 있는데(어디서? 무림에서) 노트북은 머스트해브아이템이다. 강의 한 자도 빼놓지 않고 받아 쳐와서는 제목 달고, 글자 색깔 바꿔서 강조하고, 나중에 글이나 강의에 써먹을 것 따로 카피해서 모으는 게 일이다. 강박적으로 필기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여름 초입에 들었던 어느 강의에서는 뒤에 앉아셨던 수녀님이 몇 주를 지켜보다 어렵게 말씀하셨다. '저..... 정말 죄송한데..... 필기하시는 거 이메일로 좀 주실 수 없어요. 나도 너무 너무 좋아서 다 받아적고 싶은데 그게 어려워요' 얼씨구나 좋다고 보내드렸다. (내 중독 아시는 당신께 내 모든 노트 드려요~)


이번 주에는 유아들에게 영어 가르치는 구몬 선생님들에게 강의하는 일이 있다. 강의 주제는 '수업 중 아이들의 돌발행동에 대처하는 방법' 캬캬. 유아들이 수업 중에 하는 돌발행동이 너무 많단다. 문제행동에 대처하는 방법을 강의해달라고 하였다. (유아들의 행동 중 돌발행동이 아닌 것이 어딨어요?그 맛에 유아교사 하는 건데.ㅎㅎㅎㅎ) 아무튼 이 강의 준비하려고 행동주의에 대해 정리하다 대학원 시절 노트를 꺼내 보았다. 완전 셀프감탄! 감동! 이렇게 깔끔하고 정성스러운 노트정리라니. (노출본능 발동. 사진 찍어, 찍어, 찍어. 만방에 알리지 않을 수 없따!) 강의 시간에는 연습장에 거의 속기수준으로 받아 적고 집에 와서 다시 저렇게 노트에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그 자체가 복습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렇게 늘 우수한 성적이었군요) 대학원 시절 응용행동분석, 즉 행동주의에 관한 한 달달 외우고 섭렵했었다. 내가 배운 음악치료가 행동주의를 이론적 바탕으로 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내 몸에 착착 붙는 이론이었다.


인간을 자극에 반응하는 기계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 행동주의의 인간관이다. 가장 고전적인 실험이 파블로프의 개 실험 아닌가. (개실험! ㅎㅎ)  쉽게 말하면 원하는 행동을 했을 때 우쭈쭈쭈로 강화시키고, 원치 않는 행동을 감소시키는 전략을 찾는 것이다. 대학원 시절이나 음악치료사 초년병 시절, 회의 없이 잘 활용하였다. 장애 비장애 할 것 없이 어린 아이들에게는 아주 잘 먹히는 상담 전략이기도 하다. 헌데, 임상이 쌓여갈수록 기본적인 철학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자극과 행동, 그 이상의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인식이 마음에 커지면서 행동주의식 접근의 음악치료가 재미 없어진 것이 사실이다. 기술로 쓸지언정 철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세 살 어린 아이라도, 중한 장애를 가진 아이라도 나와 다를 것 없는 무엇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경험 자체로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학습된 것이고 후속 자극의 체계적인 조작을 통해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게 되었다. 음악치료에 대한 애정이 식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 강의요청을 받고 시간을 두고 숙고하면서 어린 아이들에게는 행동주의식 강화, 즉각적인 강화가 필요하고 효과적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대학원 시절 치료 혹독하리만큼  훈련받은 것이 지금 내게 얼마나 큰 자산이 되고 있는가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이들의 일상 자체인 돌발행동에 즉각적으로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도 역시 그 시절 실습 때마다 받은 수퍼바이저의 지적질 덕분이다. 강의에서 해야할 얘기가 이것이구나 싶어 그 시절 노트를 꺼냈다가 '추억은 방울방울' 놀이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필기 중독자인 나를 다시 발견하고, 정말 하고싶은 공부를 만나서 난생 처음 공부의 맛을 알았던 순간들, 내 인생 가장 잊지 못할 대학원 합격을 확인해주던 전화 통화. '이것이 사는 것의 전부일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정말 좋아하는 일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그 간절함을 포기하지 않을 때 전에 없던 학과가 생기고, 상상하지 못했던 길에 들어선다는 것을 확인했던 시절.


그러고 보니 버릴 것이 없다. 깨알같이 필기하고 외우고 발표하고 치료에 적용했던 것이지만 이제는 다 지나가버린 것이라 여겼던 것들. 저급한 인간관이라 하찮게 여겼던 행동주의 심리학이 새롭게 다가오고 당장 이번 주 강의의 뼈대를 잡아주니 말이다. 그나저나 추억은 방울방울 놀이에 블로그 놀이까지, 오전을 다 보냈으니 강의 준비는 언제 하나? 에잇, 괜찮다. 노는 시간이 꼭 버리는 시간은 아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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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아침 식사는 어차피 시간차 공격이려니,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일어나는 대로, 식탁에 앉는 대로 각자 먹게 하는 것으로.

남편은 새벽회의 마치고 밖에서 먹을 테고,

꽃다운 채윤이 산발을 하고 나와 앉아 한술 뜨고 들어가고,

나는 친정에서 올케가 준 얼갈이배추 겉절이에 여유로운 혼밥이었다.

변성기 초입 현승이가 머리에 제비집 짓고 나온다.

실실 웃으며 나온다.


아놔, 엄마 내가 지금 어떻게 깼는줄 알아? 엄마 김치 씹는 소리에 깼어.

촥촥촥촥, 아주 그냥 리듬이 딱딱 맞아요.


아, 진짜?(부끄부끄. 무슨 생각이었던가? 암튼 밥이고 김치고 꼭꼭 씹으며 뭔가에 골똘했던 것 같다)


그런데 좋았어. 흐흐흐. 아, 우리 엄마가 참, 사람답게 사는구나!

뭐 이런 생각? 큭큭큭. 이런 생각이 들었어.

김치를 촥촥촥촥 씹는 소리가 뭔가 인간적인 어떤 느낌, 뭐랄까 그렇게 좋았다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큭큭큭.


그러더니 저녁 준비하는데 옆에 와서 다시.

큭큭큭. 엄마 아까 아침에 김치 씹는 소리..... 큭큭큭.

인생을 씹는 소리랄까?

참, 사람다운 소리였어. 큭큭큭큭.


(무식하게 쫙쫙 겉절이 씹는 소리에서 인생을 발견하는 너란 중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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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수건 없어~어"


워우워우워, 빨래 돌려야 하는데 비가 온다. 실내에서 빨래 건조하는 것이 갈수록 견딜 수가 없다. 특히 수건을 실내에서 말려 쓰는 기분은 (가족들이 뭐라든) 내가 용서가 안 된다. 맑은 날에 옥상에 말리는 것을 노려야 하고, 기본적으로 거실에 빨래를 널어야 하니 손님 오는 날 또한 피해서 빨래를 돌려야 한다. 그러다보니 빨래가 밀리고 세탁기 돌리는 날이 자꾸 뒤로 밀리곤 한다. 아무튼 오늘은 비가 오고 하늘이 흐리다. 오전에 일보러 나가는데 저쪽 하늘이 맑게 개이기 시작.  아, 빨래 돌려놓고 나올 걸. 날이 쨍 개이면 오후에 한나절 말려도 될텐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랴부랴 수건만 먼져 돌려 옥상에 널었다. 비 오고 난 후의 공기며 햇볕은 한층 더 말갛다. 저 선명한 빨래 그림자만 봐도 마음이 뽀송뽀송하다. 살 것 같다.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른쪽에 비까번쩍한 강변의 아파트를 끼고 달리는 강북강변 도로 위였다.)

"저런 집에 누가 살까? 여보, 나는 이 땅에 살면서 집 걱정 한 번 안 해 본 사람과 내가 천국 가서 같은 대우 받고 같은 집에 산다는 건 좀 불공평한 것 같아. 2 년마다 오르는 전세금 걱정 한 번 안 해본 사람, 품위 유지를 위한 아파트 평수 늘리기가 아니라 거실에 해 들어오는 집에 살고 싶은 소박한 소망 한 번 못 이룬 사람들 말이야. 집안에 있으면서 낮인지 밤인지, 지금 날씨가 어떤지 알 수 있는 정도, 낮에도 불을 안 켜고 사는 집이 최대의 소망인 그런 사람들은 적어도 천국의 집에선 특별대우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감?"


첫 신혼집은 부모님이 세 놓으시는 오래된 집이었다. 한 10개월 살고는 남편 직장, 내 직장 핑계로 사당동의 작은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했다. 비로소 우리 둘만의 세상이 된 것 같았고 그 작은 집이 정말 좋았다. 문제는 바로 채윤이를 갖게 되고, 어마무시한 입덧에 돌입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3, 4월이라 황사가 심했고 내 속은 더더욱 황사로 뿌연 나날이었다. 먹었다 하면 바로 먹은 걸 확인해 보여주는 나날. 이 속이 뻥 뚫리는 순간이 있을까? 저 황사가 걷히면? 하던 시절이었다. 창문을 딱 열면 옆집 벽이 떡허니 막고 있었다. 입덧이 아니라도 '나무'를 참 좋아하는데. 저녁이면 옆에 있는 아파트 단지의 큰 나무 밑에 앉아 속을 달래고 들어오곤 했다. 그땐 입덧 탓만 했는데 지나고 나니 집 영향도 컸구나 싶다. 아기들 키우는 젊은 엄마가 볕 안 드는 집에 사는 걸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런 경우 대부분 우울감에 많이 시달리는데 그것조차 자기 탓으로 돌리며 죄책감까지 지고 이중으로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아니야, 집에 햇볕이 안 들어서 그래.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달리는 강변북로에서 남편이 말했다.

"천국은 지금 여기와 비교할 수 없는 곳이라서 그 차이가 상대적으로 아주 작게 느껴질 거야. 굳이 그 차이를 다시 떠올지 않을 만큼의 좋음이 있을 거야"

마음이 조금 뜨거워졌고 민망하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주일학교 교사할 때 아이들과 부르며 참 좋아했던 찬양이 생각났다. '햇빛보다 더 밝은 곳 내 집 있네' 언젠가 그 맨 처음엔 공평했겠으나 이제는 맘몬으로 인해 불공평해진 일조권. 햇볕을 쬐고 누릴 권리조차 불평등한 부조리한 이곳과 다른 차원의 세상, 천국이라니. 그런 천국을 믿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쨌든 오늘 같은 하늘, 오늘 같은 가을볕을 누릴 권리를 마음껏 누려야 하리. 얼른 빨래를 돌려 빌라 옥상으로 뛰어 올라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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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가 '꽃다운 친구들'이란 이름의 청소년 백수로 아주 잘 늘어져 쉬고 있습니다.

벌써 9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꽃친은 2기 모집을 위한 설명회를 마쳤습니다.

꽃친의 열혈 지지자로서, 꽃친의 최대 수혜자인 채윤이 엄마로서 설명회에서

간증 같은 보고, 보고 같은 강의, 강의 같은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채윤이와 나란히 앉아 짧은 인터뷰도 했습니다.

( 꽃친 2기 설명회 오마이뉴스 기사 <- 클릭!)


어린 시절의 채윤이는 어떤 아이였는지,

일찍이 진로를 정하고 그로 인해 얻고 잃은 것이 무엇인지,

예고를 포기하고 꽃친을 선택하는 과정,

결국 선택한 꽃친 9개월을 통해서 얻은 것들을 나누었습니다.

여기 연재한 '방학이 일 년이라서' 시리즈와 그에 앞선 몇 개의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푸름이 이야기' 카테고리에 기나긴 글로 남겼으니 간증의 내용은 생략하고요.

결론만 말하자면, 꽃친을 한 채윤이는 꽃같이 예뻐졌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애가 예뻐져 나오는 걸 아침마다 경험했습니다.

아빠 엄마 두 사람의 증언이 동일하니 믿어주십쇼!

그런데 이게 엄마 아빠의 고슴도치 증후군만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설명회를 마치고 또 다른 인생학교인 꿈틀리학교 정승관 교장선생님 부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짧지만 배움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두 분 선생님이 입을 모아 말씀하셨습니다.

꿈틀리학교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집에 다녀왔는데(기숙학교입니다) 애들이 다들 예뻐졌다는 것입니다. '야, 너 왜 이렇게 예뻐졌니? 왜 이리 멋있어졌어?'

맞지요. 일 년을 통째로 쉰 아이들이 예뻐지는 것 맞습니다.

저는 김성호의 노래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왜 그런지 나는 몰라. 웃는 여잔 다 예뻐'

일 년 쉬는 마음이 늘 행복하거나 편한 건 아니지만 자기 자신이 될 여유가 주어진 것은 분명하고, 자신의 삶에 주인된 사람의 자유로움은 표정으로 나오게 됩니다.

(꽃친들의 일상 소개 영상 <- 클릭!)


설명회에서 나눌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이 좋은 걸 선택하는데 뭐 그리 머리를 싸매야 했었나?

무조건 좋은 선택이었는데!

빠르게 돌아가는 뇌가 쉴 때 비로소 창의성의 뇌, 성찰하는 뇌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정말 그러하다는 것을 실감한 9개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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