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아침이다.

삼십 여명의 친척들이 모이고,

7남매 맏이신 수줍은 아버님께서 안 수줍은 척 더욱 무뚝뚝한 말투로 

'다같이 묵도하심으로 추석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하신다.

가끔 헷갈리셔서 '묵도'가 '묵념'이 되기도 한다.

막내 아들이 작성한 기도와 설교를 줄줄줄 읽으시고,

찬송은 막내 아들 가족과 어머니가 대표로 부르는 분위기로 부르다

어색한 예배가 끝난다.

전날부터 준비한 추석음식이 차려지고 남자들이 식사를 하고,

그 상을 보완하여 어머니, 작은 어머니, 사촌 아가씨들, 며느리들이 식사한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한다.


추석 아침이다.

아버님도, 그 많던 친척들도 사라지고

어머니와 두 아들의 가족, 가끔은 딸이 함께 모인다.

막내 아들인 김 목사가 조카 아이에게 어색한 농담을 던지며 아이스를 브레이킹한다.

설교 같지 않은, 추석 설교 같지 않은 어떤 이야기를 짧게 전해준다.

찬송은 어머니와 막내 며느리가 대표로 부르는 분위기이다.

어색한 예배가 끝난다.

며느리들이 준비해 온 음식과 어머니표 기본 메뉴로 상을 차린다.

먹는둥 마는둥 다함께 아침을 먹는다.

예전의 설거지에 비하면 라면 먹은 냄비 닦는 기분이라는 식으로

후다닥 마친다.


추석 아침이다.

계란과 빵, 사과 등으로 네 식구의 평소같은 아침이다.

김 목사인 아빠가 한결 여유있게 아재 개그를 던진다.

영화표를 예매한다. 영화시간까지 각자 보내기로 한다.

현승이는 추석 아침을 달리러 자전거를 끌고 강으로 나간다.

채윤이는 내일 레슨이라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김 목사인 남편은 나의 서재인 거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나는 기꺼이 내어주고 식탁에 앉는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을 읽는다.


추석 아침의 풍경은 이렇게 달라진다.

명절을 두통과 함께 보내시던 어머니의 추석은 허브 마사지와 함께 하는 휴양.

내게는 매번 새롭게 복잡하고 어려웠던 추석이었다.

그 중 한 번은 치명적인 모멸감의 추억을 남겼기에 추석의 바람이 볼을 스치기만해도

잠시 고통이 밀려온다.

여느 날처럼 지내는 오늘같은 추석이라니. 격세지감이다. 

좋은 것도 힘든 것도 마치 영원할 것처럼 설레발칠 일이 아니다.


열아홉에 시집 오셔서 수십 년 '장손 며느리 여자'로 살아오신 어머니.

서른 하나에 시집 와서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 여자'로 살아온 나.

여자 사람으로 사느라 누르고 억압하고 외면했던 또 다른 나를 살려낼 일이다.

창조적, 능동적, 직관적인 야성을 찾고 살아낼 일이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의 추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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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좋은데 비도덕적인 행동을 일삼는 목사님.
믿음은 좋은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다 틀어져 고립된 채로 살아가는 신앙인.

이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이론적, 신학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신앙과 인격이 겉도는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울 야경에서 십자가를 찾는 것만큼 쉬운 일이지요. 그 괴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밖으로 드러나는 내 모습에는 관심이 지대하지만 보이지 않는 속사람을 돌아보는 데는 취약한 현대 사회, 그 속의 교회문화, 신앙교육 때문일 것입니다.

‘성찰 없는 신앙’은 우리 자신과 한국교회의 영적인 위기의 현주소입니다. 우리의 기도만 봐도 그렇습니다. 내 바람을 쏟아내는 통성기도는 쉽지만 침묵 속에 그분의 음성을 듣는 기도는 10분을 채우기도 어렵습니다. 단지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일상에서 물러나 고독에 거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목사님은 설교만 잘 하면 되고, 성도들은 주일 성수나 십일조 등을 통해 믿음을 입증하는 외면적 삶에만 치우쳐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을까요. 우리는 자기 성찰을 위해 골방으로 들어가는 방법,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길을 완전히 잃은 것 같습니다.

에니어그램은 내면을 돌아보고 마음으로 가는 길을 찾는 분들을 위한 지도입니다. 아홉 가지의 성격유형은 영적인 의미로 아홉 개의 ‘옛 자아’ 또는 ‘거짓자아’ (엡 4:22)입니다. 나의 습관적인 행동, 그 행동 아래의 동기, 나조차도 속고 있는 왜곡된 동기를 드러내며 내면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구원과 회개, 성화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자아성찰’은 나의 빛과 공로가 아니라 그림자와 연약함을 날것 그대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두렵고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두려워서 바라볼 수 없는 나의 어두운 내면을 비춰보는 거울이기도 한 것이 에니어그램입니다.

정신실의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은 어거스틴의 기도 '주를 알게 하소서, 나를 알게하소서'를 따르는 기도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2016년 하반기 준비된 1단계, 2단계, 심화과정 세미나 일정이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수강자가 2단계를, 1,2단계 수강하신 후에 심화과정 수강하실 수 있습니다.





[일시]

. 1단계 : 2016년 9월 28일(수) 오전 10시~오후 5시
. 2단계 : 2016년 10월 12일(수) 오전 10시~오루 5시
. 심화과정 : 2016년 11월 2일(수) 오전 10시~오후 5시
[
장소]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5층 세미나실(합정역 7번 출구에서 3분)

[인원] 각 강좌 선착순 15명  

[수강료] 각 강좌 12만 원
[문의] 010-4395-0501   larinari.tistory.com
[신청]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1 신청하러 가기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2 신청하러 가기

에니어그램 심화과정 신청하러 가기



각 과정의 강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강의 내용

1단계

  선물 또는 덫으로서의 성격 :

  에니어그램의 9 유형

 2단계

  적응 또는 방어로서의 성격 :

  에니어그램의 날개와 화살 / 공격, 의존, 움츠리는 유형들 

 심화단계

  습관이 된 정서, 패턴이 된 생각 :

  에니어그램 유형의 어린 시절

 영성단계

  성격 너머, 하나님 형상인 나 :

  에니어그램 유형의 왜곡된 하나님 상









3월부터 재즈 피아노 시작한 채윤이가 오늘 레슨에서 친 곡이랍니다.

선생님께서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리신 걸 보고 또 보자니.....

10여 년 전의 야곱의 축뽁, 다시 찾아서 보게 됩니다.

빈 노트 악보 삼아 펼쳐 들고

정확한 음정 내기 위해서 가성 쓰는 채윤이.

성가대 지휘자 본능으로 소리 꺾는 거 못 봐주는 엄마.

살아있네요.

꺾어 부르던 노래를 스윙 스윙, 피아노로 치기.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나 이 사람을 안다~아, 심지어 친하다아.


신종 SNS 심리 사기 중 '인맥 사기'라는 것이 있다.

(지금 방금 생겼다.)

(인맥 사기,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내 블로그에 와서 용어가 되었다)

사기이기에 물론 해악이 있다.

타인보다는 자신에게 지속적이고 치명적인 해를 입힌다는 것이 특징이다. 


일단 유명인과 SNS 친구맺기를 한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자꾸 댓글 말을 걸다보면 친근해진다.

어느 시점 형님, 언니, 친구로 호칭을 바꾸고 말을 놓는 게 어떠냐고 찌른다.

그 즈음 어떻게든 오프라인에서 만나 인증샷을 찍고 태그해서 올린다.

지나던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 유명인과 언니 오빠 하는 걸 보니 같은 급이구나.

이 방식으로 차곡차곡 인맥의 외연을 넓혀 나간다.

'이 사람 안다, 이 사람이랑 친하다'

이 메시지를 여기 저기 흘리면서 유명세 급이 올라가는 것이다.

비슷한 공법을 사용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형님-아우가 되면

그간 각각 쌓은 인맥탑이 합체하면서 한 번에 확 레벨 업 되기도 한다.


이 신종 사기를 어떻게 잡아냈냐고?

뭘 어떻게 잡았겠나, 내 속에 있으니까 알았지.

그런 유혹이 있다. 그리 나쁜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자아를 과대포장 하는 것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나 자신임을 알기에

애써 피하는 일이다.

그러고 싶은데 애써 피하다 보니 남들이 그러면 더 못봐주고 있는 현실이다.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막막 인맥 자랑 하나 하련다.

성공한 교회, 성공한 목회, 성공한 선교에서 '성공한'의 함의가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안다.

모두들 목을 매는 그 '성공' 말이다.

바로 그 성공을 차곡차곡 쌓아갈 기회가 하나씩 앞으로 오는데.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멈추고 재고하고 기다리다

흔한 성공의 길과 반대되는 선택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젊은 선교사 부부이다.


한참 젊은 이 부부에게 만날 때마다 한 수 배우는 느낌이다.

한 번씩 만나 이들이 걷는 길과 교차하는 우리의 길을 점검한다.

태훈이 맑은 눈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그 뒤에 윤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윤선이가 예쁜 네팔 노트를 선물로 가져왔다.

마침 일기장이 몇 장 남지 않아서 찾고 있는 중이었다.

고급진 노트에 나의 시시콜콜한 마음을 끄적이는 것이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이 가을, 윤선을 위한 기도로 기쁘게 첫장을 채우며 시작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선교 일상을 살아내면 늘 크고 작은 걱정들이 있겠지만

여전히 선택과 선택의 연속이지만 그 긴장을 잘 살아내주길 기도한다.

볼 때마다 몸과 마음이 쑥 커진 이안이와 현이가 믿음의 증거이고 열매이다.

큰 틀에서 좋은 엄마로, 좋은 아내로, 좋은 사역자로 잘 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크게 믿어주는 믿음을 위해서 기도한다.   


나의 인맥 자랑이 되는 사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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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무지 좋다. 매우 싫다. 이런 것들이 나, 보이지 않는 나를 드러낸다.  Carl Jung의 말대로라면 내 안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투사 드라마'이다. 내가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 아니 그녀에게 빠진 의외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의 어떤 것과 맞닿음. 즉 투사의 일종인 것이다. 내 마음의 결핍과 맞닿았을 때 나는 강하게 끌리는 것이다. 그림이 나를 매혹시킨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림에 관해서 '문외한'이라는 말도 과찬인 여자다. 헌데 어떤 음악이나 책에 빠져들 듯 오키프의 그림에 빠져있다. 그림이 이렇게 많은 말을 걸어오다니! 그런데 알고 보면 오키프에 빠진 이유는 다른 데 있을지도. Jung의 개성화에 대한 강의를 듣다 처음 오키프와 면을 텄는데, 이 천재적 여성 화가가 66세 되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했다는 얘기가 귀를 잡아당겼었다. 저 그림 <구름위 하늘>은 분명 비행기 안에서 본 장면의 확장이렷다.





늦은 휴가, 또는 우리 끼리 말하기는 '아주 늦은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조지아 오키프와 그녀 그림에 관한 얇은 책 한 권을 끼고. 돌아오는 날 새벽하늘을 비행기에서 보고 아하! 했다. 이번 여행이 왜 굳이 오키프였는지, 내 마음의 무엇과 닿아있는지를 알았다. 저 그림처럼 수평선 같은 하늘 끝을 보면서 '아, 이렇게 또 하나의 결핍이 결핍 아닌 것으로 흘러가는구나' 생각했다. 몇 년 전 처음 코스타에 가면서 나이 40이 훨씬 넘도록 나라 국제선 비행기 못 타봤다고 엄청 징징거리고 떠들어 댔었다. 올해는 채윤이를 대동하고 가 며칠 자유여행까지 하는 쾌거(쾌거 맞다!)를 이루었다. 떠날 때마다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출국장을 나섰는데 '언제나 우리 함께 떠나보나' 싶었다. 사실 해외여행 콤플렉스는 신혼여행에서 비롯한 것. '정직 검소 절제'의 정신을 결혼에 담겠다고 작정했으며 '당신이 가진 두 벌의 외투 중 하나는 지금 거리에서 떨고 있는 그 사람의 것이다'에 붙잡힌 젊은 시절이었다. IMF로 형편이 어려우시단 부모님 사정을 알아서 헤아려 이것도 안하고 저것도 안하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해외로 신혼여행 가는 것이었다. 제주도로 간 신혼여행이 보통만 되었어도 좋았을 걸. 둘 다 어리바리 했으니! 여행 첫날 숙소에 도착하여 기겁으로 시작, 빗속의 수습, 밤새 눈물로 지새우는 트라우마를 간직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트라우마에 붙들려 주위를 둘어보니 비교할 것 투성이. 몇 년 앞서 결혼한 형과 비교하고 친구들과 비교하고. 흔한 바보놀이를 상당시간 했었다. 





친구들이 발리, 세부, 푸켓 신혼여행 얘기할 때 '그건 먹는 건가? 쩝쩝' 하고 살다보니 이제 동유럽, 이태리, 크로와티아..... 이러는 날도 왔다. 더 이상 발리, 세부, 푸켓 얘기들은 안 해서 좋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 생애 따라갈 수 없는 진도가 되었기에 다시 '크로와티아는 먹는 건가? 쩝쩝'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왔다. 여름마다 바쁘지만 이번 여름 남편의 바쁨이 유독 짠하게 다가왔다. 수련회 느헤미야 강해를 마치고, 일주일 후 주일예배 설교를 했는데 참 무거운 자리였다. 설교 마치고 바로 여름 피정주간이었다. 난생 처음 둘이 휴양지로 떠나는 여행이 별 논의없이 추진되었다. 남편 딴에는 결혼 17년 만에 신혼여행 빚을 갚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터. 나로서는 짧게는 이번 여름의 노고, 이 교회 와서 '새벽별 보기 운동, 천 삽 뜨기 운동'식으로 일한 5년, 길게는 신대원 입학 후 한 번도 제대로 쉬지 않고 10년을 달려온 남편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당신이 가진 두 벌의 외투' 신드롬에 사로잡힌 터라 좋은 걸 누리는 것에 과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남편과 마누라 아닌가. 그것마저도 내려놓고 짧은 시간 결정하고 별 준비도 없이 그냥 막막 다녀왔다.




남편과 사귀기 시작했을 때,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 '얘들아, 드디어 나도!' 공개하던 날이었다. 어머, 어머 어떤 남자야? 그 남자 어디가 좋아? '음.... 가난하게 사는 게 생의 목표래. (아득한 눈빛... 아, 나의 김종필! )' 난 정말 멋진 소개라고 생각했는데 친구 한 두 명이 빵터지고 뒤집어졌다. 물론 그 다음엔 '신실아, 결혼은 현실이야'로 시작하는 설교와 간증시간. 친구들의 걱정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끼니를 걱정하며 살진 않았지만 불편하고 힘든 것이 많았다. 또래 사람들과 다르거나 또는 뒤떨어지는 삶이라는 자의식. 그에 대한 아쉬움? 부끄러움? 위축감?에 의연하기도 쉽지 않았다. '불쌍한 정신실' 가끔 남편 입에서 툭 튀어나오는 말이다. '정신실이 누구누구랑 결혼했으면 뭣도 하고, 뭣도 하고, 박사과정도 하고 그랬을텐데.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됐냐.' 남편이 이렇게 말할 땐 아주 불쌍한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눈물을 툭 떨어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먼산을 바라봐줘야 한다. 분위기상 그래주는 게 맞고, 이런 기조를 유지하며 득템의 기회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게.... 참, 내가 나를 생각해도 참.... 아, 여보 강의할 때 입을 옷이 마땅치 않은데. 봐둔 원피스가 하나 있어. 살까?' (이거 일급 영업기밀이지만 공개하기로 한다. 남편이 보면 속았다! 하겠지만 그는 금방 또 까먹을 거야.)




실은 오키프 여사까지 대동하여 결핍 운운한 것이 아주 큰 이슈는 아니었다. 우리 부부 사끼리는 신혼여행 원죄라 부르는 그 일조차도 결핍감이 아닌 건 아니지만 내가 다룰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가 채워준 마음의 구멍, 사랑받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으로 밑빠진 독같은 마음의 구멍을 생각하면 작은 구멍이다. 실은 내가 선택한 것도 크다. 풀타임으로 3년 일하고, 그때부턴 정말 가만히 하던 일을 하고 있으면 연차와 함께 월급만 착착 오를 시점. 아줌마들 다니기 딱 좋은 직장이라 10년, 20년 근속이 허다한 직장을 그만둔 것은 내 선택이었다. 프리랜서로서 감각이 딱 익혀지고 최소 시간에 최대 수익을 내는 방식을 알게 된 시점, 내적여정 공부와 강의, 글쓰기 같은 것들로 스르르 방향을 선회한 것도 나. 남편은 넉넉하지 못함의 죄를 혼자 다 뒤집어 쓰고 스스로 죄인 되었다. 나는 남편에게 원죄의 목줄을 매놓고는 원망과 불평으로 끌고 다니곤 했다. 그걸 묵묵히 받아내는 남편 때문에 더 큰 결핍의 웅덩이를 볼 있게 되었고, 조금씩 자라게 되었다. 이 여행 한 번만으로 족하고 또 족하며 행복하다.


이번 여행, 얼마나 즐겁고 풍성하게 보냈는지 모른다. 빗속에서 수영하고 한밤중에도 수영했다. 밥 먹는 것도 마다하고 바닷속 탐험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내가 우리 팀 중에 제일 재밌게 노는 거 같지 않아?' '아니, 당신이 지금 이 해변에서 제일 잘 놀아.' 히히, 정말 그랬다. 처음엔 둘 다 아이들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에고, 채윤이 현승이한테 미안하네. 채윤이가 좋아하겠네, 현승이가 여기 오면 얼마나 잘 놀까' 에잇, 신혼여행에 애들 걱정이 웬말! 미안함과 죄책감까지 다 떨쳐내고 그 바다, 그 풍경 안에 있었다. 17년 기다린 신혼여행인데 말이다 


(인생샷 무지 많이 건졌으나 부러움 끝에 미움이 되실까 하여 B급으로 몇 장만 공개하기로. 이 멋진 사진들 자랑할 곳이 없어 큰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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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예뻐하시는 할머니들 있잖아.

재활용 쓰레기 정리하시는 할머니랑 저기 빌라 주차장에 앉아 계시는 분들.

나만 보면 (성대모사 돌입) '에이구, 이뿌게 생겼어. 참 이뿌게 생겼어'

이러셔.

자꾸 그러시는데 내가 가만히 지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고.

매일 민망해 죽겠어.


안 봐도 훤하지.

'헤~' 하면서 지나가겠지.


아냐. 엄마가 몰라서 그래. 나 옛날처럼 그렇게 헤.... 말 못하고 그러지 않아.

나 요즘에는 어른들한테 싸가지 없게 많이 해.

엄마가 생각하는 거랑 많이 달라.


아, 싸..... 싸가지?!

글치. 그건 좀 니가 많이 상실했지.

내가 알지. 

하하하하 엉엉엉엉.


밤에 배고프다며 베이글에 크림치즈, 참치, 양상치 있는대로 다 넣고 

우적우적 먹더니.

먹다가말고 또 뇌가 급 뒤집어지더니 엄마랑 싸우자고 달려들더니.

그러니까 왜 엄마 아빠 결정에 내가 따라야 하냐고오~!!!!!!

내 감정이나 의견은 결국 다 무시되는 거잖아아~!!!!!!

흥분을 하더니. 흥분한 중에.....

다 먹고 나더니 휴지로 식탁에 떨어진 부스러기 줍고.

물티슈로 다시 식탁 닦으면서 입으로는 '네가지' 없는 말을 막 쏟아내더라.


사춘기에는 뇌가 뒤집어진다고.

확실이 티슈남 현승이의 뇌가 아닌 것 같긴 한데.

아무리 뒤집어져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있지, 싶기도 하고.....ㅎㅎㅎㅎ


그래서 찾아본 오래 전 그날 사진과 에피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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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33

  


부모님이 축복하는 결혼을 해야 잘 사는 거야어딘가에서 듣고 마음에 새겨둔 말인지, ‘나는 꼭 우리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결혼을 할 거야단지 내 안에 있는 간절할 바램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이 바램이 지나쳐 일종의 강박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만족스러워하실 며느리, 사위를 턱하니 안겨드리는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도 아니라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갈등 속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바램을 배신하곤 하는 현실의 연애와 결혼입니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은 드라마의 단골소재이기도 합니다. 주로 막장 드라마가 그렇다고요? 이야기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서 막장이 되는 것이지 우리들 결혼에 흔한 갈등인 것은 분명합니다. 잘 만나던 커플이 부모님의 반대에 못 이겨 결혼으로 가는 길목에서 깨지고 마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주변의 부모님들을 곁눈질로 관찰해보면 아들이나 딸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말에 쌍수 들어 환영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 아들(), 혼기를 놓쳤다며 불안가득이신 부모님은 제외- 거기다 사귄다는 그 녀석(그 애)의 신상이나 가족사를 아시게 되었다? ‘내가 이러려고 너를 그렇게 공들여 키운 것이 아니다하실 것입니다. 극단적인 얘기로 막장 칼럼을 쓰려는 것은 아니고요. 평생 공들여 키운 자녀에 대한 기대랄까 환상이란 건 어쩔 수가 없을 것이란 뜻입니다. 아무리 객관적인 부모라도 자식에 대한 객관은 결국 엄청난 주관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코 쿨 해질 수 없는 관계 중 으뜸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태도인 것 같아요. 그렇게 보자면 부모님께 축복받는 결혼의 확률은 낮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부모님의 축복받는 결혼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제게 묻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이미 여러 번 말 했듯, 둘을 다 가지는 선택은 없습니다. 그런 경우 부모님을 만족시키며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는 왕도는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결혼을 위해서 일정 정도 부모님을 실망시키거나, 온전히 그분들을 따르기 위해서는 이 여자(남자)를 포기해야겠지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라! 말이 쉽지 두렵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 압니다. 착한 아들딸에게는 더 더욱이요.

 

성경적 결혼관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24)’ 창세기의 이 말씀을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다시 언급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가정을 상징하는 한 몸 이룸떠남에서 시작합니다. 단지 결혼뿐이 아닙니다. 영웅 신화, 아니 동화 속 주인공들조차도 하나같이 무언가를 찾아 집(부모)을 떠나며 성장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떠나야만 새로운 땅을 밟게 되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싱글에서 커플로, 나 혼자의 삶에서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으로, 청년에서 어른으로 가는 연애와 결혼의 여정에서도 첫발은 떠남, 부모로부터의 떠남입니다. 도통 떠나지 못하여 결혼을 성사시키는 것에, 결혼을 하고도 자기 가정 이루는 것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부모님의 축복, 부모님께 순종이라는 무거운 돌을 양쪽 발에 하나 씩 비끄러매고 도통 발을 떼지 못하는 것입니다. 잘 떠나려면 부모님과 나를 분리시킬 수 있는 눈과 힘을 부단히 닦고 키워야 합니다. 떠나지 못함과 더불어 떠나보내 않으려는 부모님의 힘도 만만치 않은 현실입니다. 엄밀히 따져 냉정하게 말하자면 자녀를 떠나보낸 후 빈 둥지를 돌보는 일은 중년 이후와 노년을 맞는 부모님 자신의 -정서적, 영적- 과업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부모님 사이에서 무조건 부모님의 뜻을 거슬러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반대 조건을 맑은 눈으로 바라보면 대부분 당신들의 욕망인 경우가 많습니다. 학벌, 경제적인 능력, 외모.... 이런 세속적 조건이 전부라면 멈춰 생각해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자녀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이해해드리되 혼재된 욕망에 대해서는 분별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부모에게 공경하라(6:1)’ 하셨는데 주 안에서라는 전제가 달려있습니다. 주님 나라의 법칙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혹여 하나님 나라의 법칙과 부모님의 기대가 다른 방향일 때는 아프지만 부모님의 축복을 내려놓는 것이 더 큰 축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어야겠지요. 그리고 바로 지금부터 떠남의 첫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스스로 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기서 먼저 떠나야할 것이고. 부모님에 대한 연민 때문에 과도한 책임감의 짐을 지고 있는 사람 역시 분별하고 분리할 일입니다. 이제껏 부모님 곳간으로부터 양식을 얻어 성장해왔다면 이젠 스스로의 곳간을 짓고 복을 지어내며 복을 유통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것이 장성한 자녀의 몫입니다. 주 안에서 스스로 복을 지어낼 수 있는 사람만이 축복의 결혼을 일궈내고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QTzine> 9월




Lake George 1922, Georgia O'keefe




세 개의 일기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3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손으로 쓰는 그야말로 일기장.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더듬어 찾는 꿈 일기장.

그리고 누군가 봐줬으면 하는 얘기를 끄적거리는 이 블로그.

세 일기장에 적는 각각의 일기를 합치면 '나'라는 존재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꿈 일기장에 그려진 내가 가장 진실한 나일 것입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꿈에 대한 얘기를 공개적으로 나누는 날입니다.

'한여름 밤의 꿈수다'라 쓰고

'그리스도인의 꿈과 영성생활'이라고 읽는 그런 제목의 강의입니다.



영성생활. 그렇습니다.

제가 하다하다 꿈해몽에 빠져들어서 이상한 길로 빠진 것은 아니고요.

문득 젊은 날에 읽었던 프란시스 쉐퍼의 <진정한 영적생활>이 떠오릅니다.

밑줄 쫙쫙 그으며 감동하며 읽었는데,

진정한 영적생활은 읽고 밑줄 긋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한다는 것, 늘 숙제입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에 이런 말이 나온답니다.

"늦게야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내 안에 이미 임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나 밖에서 임을 찾아 당신의 아리따운 피조물 속으로

더러운 몸을 쑤셔 넣었사오니!

임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임과 같이 아니 있었나이다"



진정한 영적생활을 위해 필요한 '안을 보는 눈'

이미, 벌써부터 내 안에 가장 큰 사랑으로 계시는 분을 느끼는 감각.

에니어그램이 문을 열어주었고 꿈이 함께 걸어가주고 있습니다.



뜨거웠던 여름, 여름 수련회로 주어지는 말씀, 은혜를 받은 분들.

단비처럼 내리는 은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만.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경로로 솟아나는 강같은 평화, 샘솟는 기쁨, 바다같은 사랑.

내 안에서 있는 영성의 샘을 발견하는 일이 중헙니다. 뭣이 중헌디!.



창작활동 하시는 분들.

글을 쓰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강의나 설교를 늘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분들께도 꿈은 좋은 친구가 됩니다.



아직 몇 자리 남아 있으니 공지 포스팅을 찾아 신청하시거나

지나다 들렀다, 현장등록 하셔도 좋습니다.

누구라도 환영입니다.





  

 





어떤 냄새(보다는), 향(이 낫겠네)에 자극되어 끌려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혼신을 다한 수련회를 마치고 봉사자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까지 미션 클리어!

한 남편의 몸이 가렵기 시작, 

회장실인지 화장실인지에서 회장님인지 화장님이 자꾸 부르기 시작.

장염이다.

손가락 하나에는 염증이 생겨서 팅팅 부었다.

남탓 할 줄 모르는 탓이유?

한 번씩 호되게, 총체적으로 몸의 환란을 겪곤한다.

5년여 전에 현승이가 '아빠, 그거 열재앙애이야. 열재앙이야' 하던 일이 생각났다.


흰죽을 먹어야 한대서 흰죽을 끓였다.

엄마한테 배운대로 흰죽을 하얗게 주지 않고 꼭 부추를 넣게 된다.

다 된 흰죽에 쫑쫑 다진 부추를 한줌 넣어 섞는데

쌀이 탄수화물과 부추가 어우러져 어린시절 그 향이 난다.


엄마가 보고싶다.

다시는 주방에 서서 뭔가 만들 수 없는 엄마.

냉장고에서 반찬 그릇 꺼내는 것도 혼자 맡길 수 없는 엄마.


엄마의 요리하는 손을 그렇게 힘을 잃었지만

엄마가 가르쳐준 초록색 흰죽은 내 기억에, 내 레시피에 남아 있다.

아플 때마다 엄마가 해줬던 부추 넣은 흰죽에서 올라오던 뜨거운 향은 치유이다.

전통있는 치유의 음식 초록색 흰죽이 남편 몸과 영혼에 힘을 불어 넣었으면.


엄마 생각,

남편 생각,

내 어릴 적 생각에 자꾸 울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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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란 말 알아?

무슨 뜻인지도 알아? 알지? 조심해.


(다음 날도)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이 말 알지? 무슨 뜻인지 정말 알지? 엄마가 잘해야 돼.

난 이 말이 왜 이렇게 마음에 들지? 히히.


(며칠을 두고 한 번씩 이 레퍼토리를 반복함)



개학을 앞두고 방학 동안 물놀이 한 번 못한 아들 현승이와 데이트 하기로 했다.

맛있는 거 뭘 먹을까? 기분 좋게 내려갔는데 차 앞에 차가 있다.

빌라 주차장에선 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옆집 차니까.

심지어 어젯밤에 같은 시간에 들어와 누가 먼저 나가나 확인하고 주차한 것이니까. 

흠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이 없다. 어? 설마.....

슬픈 예감의 엔딩은 틀리는 적이 없는 것이 원래 각본.

가..... 강남에 있는데요. 죄송해요. 어제 미리 얘기도 하셨는데.

하..... 할 수 없네요.

다행히 작은 차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옆차만 빼면 살짝 꺾어 나갈 수가 있다.

저..... 401혼데요. 402호 차가 앞에 있는데 차를 두고 나가셔서요. 혹시....

어..... 저는 출근해서 회산데요.

네..... 네.

아들과의 데이트는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폭염에 뚜벅이 데이트는 거부할 텐데.


엇, 옆동이긴 하지만 왼쪽 차를 빼도 가능하겠다. (작은 차 큰 기쁨!)

사무실 같은 걸로 쓰고 있는 옆동 1층 차인 것 같은데. 현관도 활짝 열려있다.

똑똑똑, 저.... 죄송한데요. 옆동인데요. 차를 빼야 하는데 다들 집에 안 계셔서요.

혹시 차를 좀 움직여주시면 제가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죽으란 법이 없다. 이렇게 해결되어 아들과의 쾌적한 데이트 고고씽.


하려고 차에 딱 타서 기분 좋게 출발하려는데.

엄마, 엄마 왜 그렇게 잘못한 사람처럼 그렇게 말해? 굽신굽신.

화가 잔뜩 난 표정이다. 영락없는 사춘기 표정.

엄마가 뭘? 그냥 친절하게 말한 거지. 너는 소리 지르고 쎄게 말하는 아줌마 싫어하잖아.

그런 게 아니잖아. 엄마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네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냐고!!!!!!

차를 막아놓고 그냥 나간 옆집이 잘못이잖아.

그리고 차좀 빼달라고 하면 되지 왜 잘못한 사람처럼 그렇게 해.

아, 진짜 그러네. 옆동인데 일하고 있는 아저씨한테 폐 끼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니까....

아니다. 실은 굽신거리고 친절하고 약한 척하면 거절하리 못할까봐 그랬나봐.

정말 그러네. 엄마가 과하게 굽신거렸네.



과연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었다. 그리고 생각하니 차를 막고 나간 옆집과 통화할 때 조차도 과하게 친절했다. 친절이 나빠서는 아니다. 친절한 말과 행동만큼 내 마음도 부드럽고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분노를 억누른 친절, 친절로 상대를 통제하여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의도. 이것은 친절하지 않음보다 더 악한 것이 될 수 있다. 속에서부터 엄청난 아하!가 올라왔다. 그렇구나. 내가 여전히 이러고 있구나. 내게 소박하나 절실한 기도제목과 목표가 있다면 '투명한 말'이다. 마음에 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기. 기며 기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말하기. 설령 그렇게 하는 것에 당장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아낼 수 있는 힘 말이다. 때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사랑일 수 있음을 얼마나 지난하게 배웠던가. 물론 말도 행동도 착하고 친절하면 좋겠지. 그러나 친절과 착함 그 자체가 아니라 몸에 밴 친절한 척, 착한 척으로 살고 싶지는 않은데. 너무 오랜 습관이다.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 은근한 자부심도 있었는데. 아들이라는 맑은 거울이 실상을 비춰주었다. 백설공주 계모의 거울 물렀거라. 우리집엔 고성능 요술 거울이 두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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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교구수련회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살인적인 더위가 어제부터 다리 힘이 풀린 것 같습니다. 어제부터 조금 견딜만해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요? 아무튼 아내가 2주간 집을 비워도 그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 하여서 준비한 '하늘가족 7교구' 수련회를 마쳤습니다.


아내로서는 돕지만 '사모'라는 이름으로는 유령처럼 지내기로 한 불문의 약속같은 게 있는데요. '당신 수련회 와서 핸드드립 해라' 하는 말에 오, 그건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조용히 드립만 하면 되니까. 하고 낚였습니다. 덥석 낚싯밥을 무는 게 아닌데! 찬양 인도할 사람이 없어, 공동체 훈련 진행할 사람이 없어. 징징징. 징징징. 결국 카페는 날아가고 찬양인도와 짧은 아이스브레이킹 순서를 맡아 따라갔습니다. 


20여 년 만의 찬양인도. 20여 년 만의 공동체 게임 인도. 젊은 날 한때 찬양인도와 레크레이션 인도는 교회봉사의 주종목이었는데요. 유령처럼 지내던 여기서 찬양인도를 하게 될 줄이야. 특히 이 교회와서는 불신 남편으로 혼자 신앙생활 하는 여자 모양새로 지내던 5년 만에 처음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사모님' 이란 호칭을 가장 많이 들은 이틀이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에서도 '사모'라는 주제로 글이 하나 있고 블로그에도 몇 번 썼던 것 같습니다. 출판사의 비공식 문건인 것 같은데 저자에 관한 기록 중에 '정신실 사모님은 사모님이라고 불리는 것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메시지가 있는가 봅니다. ^^ 제가 딱히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없는데 출판사 뿐 아니라 강의나 원고로 만나는 분들 중에도 저에 대한 배려로 호칭에 신경 써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글 (사모라는 이름) 때문인가 싶기도 하구요.


몇 년 전에 한참 트위터 하는 재미에 빠졌을 때, 밖에서 청년들을 만났는데 큰 소리로 사모님 사모님 하기에 으슥한 데 끌고 가서  '브께스는 은니르그 블르라' 했다는 얘길 웃자고 썼는데 그것 때문인가요? 호칭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부르느냐, 어떤 마음으로 부르느냐죠. 여기서는 '사모님' 대신 '집사님'으로 불리고 있는데 사모나 집사나 언어 안에 사람을 꾸겨 넣으려는 것은 한 가지로 나쁜 것이고요. 사모든 집사든 형제님이든 자매님이든 마음의 손을 잡고 부르는 말은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올 여름 저는 유난히 청년부보다 장년부 수련회 강의를 많이 하였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전교인 수련회들이었는데요. 지나가는 아가의 이름을 모두 다 알고, 장로님 권사님 건강 상태를 알고, 오래 쌓여온 사랑과 갈등의 결이 있는 공동체. 누구야, 밥 먹었니? 너 엄마가 저쪽에서 찾던데. 집사님, 혼자 오셔서 외로우시겠어요. 장로님, 커피 타다 드릴까요? 이런 지나가는 말들이 참 따뜻하게 들렸습니다. 


대형교회 한계라 어쩔 수 없는데 교구 수련회에 참석하신 분들이 구역 몇 명 외에는 서로들 초면인 경우가 많습니다. 수련회, 하면 공동체의 끈끈함이 프로그램 사이사이의 추억을 짓는 것인데 그 점 참 아쉽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이란 그냥 맞잡는 그 순간 이미 따스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처음 뵙는 분들이지만 마주앉아 식사하며 얘기 나누면 금세 마음이 이어집니다. 혼자 육아하며 우울을 겪었던 이야기, 빵빵 터지는 남편 시리즈, 오래 섬기다 떠나온 교회에 대한 아픔과 회한. 짧은 시간에도 가슴 깊은 곳까지 전해오는 뭉클함입니다.  


남편 밖에 모르는데 얼마나 뻘쭘할까 하고 갔지만 가자마자 처음으로 알아봐주신 권사님께선 책도 이미 읽으셨다며 손잡아 주셨고요.(권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 오랜만에 느낀 교회의 따스함이었습니다. '사모'이기 때문에 누리는 특권에 감사하고 두려웠습니다. 사모라서 더 예쁘게 보시고, 사모라서 처음 보는 젊은 사람에게 금세 무장해제 하고 마음을 열어보이십니다. 목회자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자리가 얼마나 엄중한 자리인지, 얼마나 손쉽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자리인지 잘 알고 있던 사실을 새로움으로 실감합니다. 착한 교우님들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너무 쉽게 목회자에게 투사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목회자의 자리는 너무도 위험합니다. 권력와 특권의식이라는 유혹자가 문지방에 엎드려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패키지로 따라다니는 사모도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습니다. 손과 손을 맞잡고 마음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나누는 사람다운 만남 그 이상을 지어내지 말아야할 일입니다. 


20년 만의 찬양인도였는데 컨셉은 '7080'이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네. 나를 사랑하는 주님 나를 위해 죽으시고..... 그리고 주제는 '집으로, 아버지 집으로' 였습니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그리고 수련회 주제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 였습니다. 이 찬양의 가사는 한 마디 한 마디 제 가슴에 콕콕 박혔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햬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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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에게.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 있고, 오늘도 어딘가에서 그 익숙한 이름으로 불리며 무더운 일상을 살아갈 A. 당신의 이름을 잠시 상상해 봅니다. 생김새와 성품에 걸맞은 이름을 가졌겠지요. 이름 대신 A라 불리고, A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올렸던 당신을 생각하며 저도 제 이름 대신 J라 소개하겠습니다.


이동현 목사 관련 기사에서 A 님 당사자로 시작해 주변인이 I까지 등장했더군요. 그렇다면 저는 그 다음의 반경에 있는 사람 J, 특히 여성입니다. A로부터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에 J가 있습니다. 심정적인 방어를 풀면 A의 자리에 가 앉을 수도, 모르쇠로 외면하자면 Z에 갈 수도 있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자 사람입니다. '이동현 목사 피해자 A가 드리는 편지'의 수신자 중 한 사람이고, 이 글은 그 편지에 대한 답장입니다.


'유명 청소년 단체 목사의 두 얼굴'로 시작하는 기사엔 처음부터 관심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목회자의 성범죄 하루 이틀 일인가?' 싶었고, 이어지는 기사의 사건 분석과 방향 제시, 성찰, 회개, 회개의 촉구 등은 안 읽어도 알 것 같았습니다. 미안하지만 피로감이었습니다. 피로감. 이 얼마나 객관적이며, 거리감 있고, 연루되지 않아도 되는 속 편한 말입니까. 반응하지 않을 자유를 득하는 합리화의 근거입니까. 그러나 뉴스 목록에 있는


'이동현 목사 피해자 A가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은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A 님의 글을 읽은 다음 날 <뉴스앤조이>로부터 글을 하나 쓰면 어떻겠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사를 제대로 읽지도 않았고, 이런 일에 객관적일 수 없어서 쓸 수 없다"는 말이 툭 하고 나왔습니다. '피로감'이라며 강 건너 불구경할 때는 언제고, 객관적일 수 없어서 쓸 수 없다니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건지, 전화를 끊고 자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A 님 편지의 시작과 끝입니다.


"보복 의도 없이 2007년 있었던 유럽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저와 같이 외로움 속에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아이가 있는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인터뷰 요청에 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혹시라도 과거에 성직자와 성관계를 한 후 '주의 종을 죄에 빠지게 한 내가 죄인'이라는 수치심과 죄책감과 괴로움에 혼자 고문당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지금 혹시라도 목사 이름과 명예에 해를 끼치면 하나님나라에, 하님의 이름에 누가 될까 두려워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알아주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외롭더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의 아픔을 이해합니다."



긴 세월 외로움 속에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웠던 A의 시간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자기 고통에 매몰되어 더 깊은 외로움에 갇히지 않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마음의 힘을 길렀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아픔이 없어서가 아니라, 외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보다 더 아프고 더 외로울 '아이'를 위해 두렵지만 용기를 냈구나 싶었습니다.


아프지만 더 아픈 사람을 위해 손 내미는 사람을 우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부릅니다. 참된 치유와 정화는 더 약한 자의 손을 잡는 연약한 손의 연대에 있다고 믿기에 A의 용기가 고맙습니다. 마음을 담아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글에서 여러 해결책을 제안하셨습니다. 그것들이 어떻게든 교회와 선교 단체 사역 일선에 실질적으로 녹아들기 바랍니다.


그러나 용기 내어 인터뷰에 응하고, 글로 생각을 밝힌 용기 있는 발설 그 자체가 이미 큰 해결을 위한 행동입니다. 저는 여자라서 깊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를요.


늦은 밤 골목길에서 혼자 걷는 여자를 따라 걸어야 했던 남자의 얘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앞선 여자를 안심시키려 빨리 걸어 앞지르려 했답니다. 빨리 걸을수록 여자의 걸음도 빨라지더니 급기야 가방을 안고 뛰더라고요.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만, 기분 나쁘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계단을 오를 때도 앞에 여성이 불편할까 시간만 된다면 기다렸다 오른다고요. 지하철에서 여성 옆에 앉으면 '쩍벌'이 되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쓴다면서 이런 남자의 심정도 알아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름대로 여자 편인데, 심정적으로 페미니스트인데 싸잡아 늑대로 치부되는 심정을 아느냐면서요. 여자들의 과도한 태도는 같은 편이 되고자 하는 남자까지 잃게 만든다고도 했습니다.


여성을 조수석에 태우지 않는 배려, 사진 찍으며 여자의 어깨를 터치하지 않는 매너 손, 단둘이 있게 되면 문을 살짝 열어 두는 센스. 고맙습니다. 여성의 불리한 입장을 헤아리는 것 자체가 남성으로서 기득권을 일정 정도 포기해야 하는 것임을 압니다. 그러니 더욱 고맙습니다.


헌데 자기편이 되어 주는 사람조차 믿지 못하는 오래된, 아주 오래된 피해자와 약자로서의 여자의 삶이 있습니다. 그 맥락에서 A가 뒤늦게 이 일을 폭로하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짚어 보고 싶습니다. A와 저, 그리고 우리 편이 되어 주는 남자들에게 확인시키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골목길을 앞서 걸어가는 여성이 단지 여자 사람의 몸을 가졌기에 어떤 경험을 끌어안고 평생 살아가는지, 그 여자는 길에서 만난 어떤 여자가 아니라 아내이며 누나이며 여동생이며 엄마일 수 있음을요.


여성의 몸을 가졌다는 것은 그대로 아주 취약한 조건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광고의 배경과 소재가 잘빠진 여성의 몸인 이 시대에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옛날과 지금, 상류계급 여인과 신분이 낮은 여인, 많이 배우고 똑똑한 여자와 그렇지 못한 여자, 나이 많은 여자와 젊은 여자를 막론합니다.


남자들이 사춘기가 되어 남자로서의 자기 몸을 인식하는 것과 달리 많은 여성이 어릴 적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기 몸을 인식합니다. 친척 오빠, 동네 오빠, 교회 오빠. 가까이 있는 친절하며 나쁘지 않은 남자 어른들의 못된 손으로 여자인 자기 몸을 인식합니다. 어리기 때문에 세상을 총체적으로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힘이 없고, 쉽게 도움을 구할 수 없어서 이 폭력적인 경험은 묻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들에게 어린 시절 '성추행의 기억'은 흔한 일입니다. 발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애써 발설한다 해도 도움을 받아야 할 어른에 의해서 다시 묻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 못된 짓이 왜 발설되지 못하는지, 더 큰 어른에 의해 묻히고야 마는지. 이 지점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A를 두 번 울리며 올가미에 가둔 가해자의 말, 이 바로 이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이런 식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네 인생은 망한다."
"너 나랑 이래 놓고 이제 시집 어떻게 갈래."
"네가 입을 뻥긋하면 사탄이 그 말을 이용해서 우리 사역을 망친다. 그러니 고통스러운 걸 참아라. 너 한 명만 참고 견디면 성령을 훼방하지 않게 된다."


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릴 적 교회 전도사님의 못된 손에 걸려든 일이 있습니다. 주일마다 재밌는 설교를 해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담임목사의 딸이어서 우리 아버지와 전도사님의 관계, 은근한 갑을 관계를 충분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엄마에게 알려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엄마가 알면 아버지가 알 것이고 아버지가 알면 이 (천하에 못된 손을 가졌으나) 착한 전도사님이 쫓겨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이분의 (생계) 목숨 줄이 우리 아버지 손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의 모든 상황이 두려웠지만 엄마에게 발설했습니다. 온 집안과 교회가 발칵 뒤집히고 난리가 날 줄 알았던 제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발설은 제게서 끝나고 엄마는 아버지에게조차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 지금 쓰다 보니 제가 모르는 방식의 은밀한 발설과 조처가 있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습니다. 어쨌든 인간의 상처라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대한 기억입니다.

저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내게 일어난 이 어마어마한 일을 듣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 이 기억은 제게 무언의 메시지를 심어 주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여자아이들이 이런 방식으로 일그러진 여자의 몸이 되어 갑니다.


'전도사님이 한 일이 큰 잘못은 아닐지 몰라. 원래 남자는 여자아이를 마음대로 만져도 되는 건가 봐. 그게 잘못이라면 내가 화를 내거나 거절했어야지. 내 잘못이네.'


이후로도 동네 오빠, 교회 오빠에게 몇 차례 더 추행을 경험했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의 저편에 묻어 버렸습니다. 여자의 몸에 대한 내면화된 목소리만 남았습니다.


어른이 되고 관련 공부를 하던 중에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왜 내 말을 듣고도 못 들을 것처럼 가만히 있었느냐고요. 엄마는 별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뜬금없는 고백을 했습니다. "부흥강사 ○○○ 목사 알지?" 하면서요.


예전에는 일 년에 한두 번씩 꼭 부흥회를 했습니다. 부흥회 기간 강사 목사님은 우리 집에서 숙식했고, 우리 집 부엌은 끼니마다 온갖 요리를 만드는 집사님, 권사님들로 북적였습니다. 귀빈 대접이었지요. 저녁 집회를 마친 후 엄마는 저녁 간식을 가지고 강사 ○○○ 목사가 기거하던 방에 들어갔고, 그 (신령한) 목사의 (더러운) 손이 엄마의 몸을 더듬었답니다. 아버지에게 얘기하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답니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나 하나 참고 견디면 모처럼 은혜로운 부흥회를, 교회를, 가정을, 부흥강사의 사역을 지켜 내게 된다. 그렇게 참고 덮어 둔 '나 하나'인 여성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때의 고백 이후로 엄마는 밑도 끝도 없이, 앞뒤 설명도 없이 이 얘기를 꺼내곤 합니다. 연세가 많아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져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는 요즘에도 반복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유명한 부흥강사 ○○○ 목사의 못된 손 이야기입니다.


제게는 무력한 아이를 돕지 않은 무지하고 무책임한 엄마가 분명한데, 이 엄마 역시 도움받지 못한 무력한 여자였으니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여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잠재적인 성적 피해자일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한 증언조차 할 수 없도록 길들여집니다. 교회의 여자라면 거기에 성령 훼방죄, 사역자를 시험에 들게 한 죄까지 뒤집어쓰게 되니 이중 삼중의 올가미입니다.


부모에게 학대나 폭력을 당하는 아이는 가해하는 어른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 때문에 가해자의 힘과 권력에 철저하게 굴복하여 자신이 당하는 학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심지어 자기를 학대하는 부모를 좋은 부모로 각색하고 부모의 죄를 자신이 뒤집어쓴다고 합니다. 종교 권력을 가진 목회자나 사역자에게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한 청소년이나 청년들도 비슷합니다. 영적인 권위를 가진, 존경하는 지도자는 부모 그 이상, 하나님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목사님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옷매무시를 고치고, 가장 좋은 과일을 대접하고, 심방 감사 봉투를 챙기는 저희 엄마가 신령한 부흥강사의 범죄를 범죄로 보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이것은 수천 년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살아온 여성의 몸에 새겨진 흔적이고, 거기에 가부장적인 종교의 굴레까지 뒤집어쓴 여자의 자기 인식입니다.


여성이 자기 몸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대상과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아니오'라고 당당히 말하라고 합니다. 수천 년 새겨진 대상으로서의 몸을 지닌 여성이며, 거기에 아담을 유혹하여 실낙원을 유발한 하와의 후예로서 종교적인 굴레까지 뒤집어쓴 교회 여자가 어떻게 주체로 설 수 있겠습니까.


맹목적으로 추앙하던 지도자들에게 이양했던 우리의 힘을 되찾아 올 일입니다. '주의 종'이라 우러르며 이양하고 포기한 우리의 힘을 되돌려 받는 것은 자아 팽창으로 상식적인 판단력마저 잃은 지도자들을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추앙이 후광이 되고 후광이 과도한 권력이 되어 교회와 세상을 더럽히는 지도자가 난무하는 시대. '나 하나 참고 덮어 주자'가 아니라 '나 하나라도 내 발로 서자'할 때, 맹목적인 추앙과 허황된 후광 사이 악순환의 고리에 작은 충격이라도 가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강해지고 온전히 치유되는 날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아직 두렵고 여전히 아프지만 그것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며, 상처 입은 치유자입니다. 무력한 피해자로 남아 있지 않고 치유하고 힘을 기른 A가 되어 다행입니다. '일상을 건강하게 사는' 어른이 되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러도록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강 건너 Z로 살아서 미안합니다.


A가 내민 손을 비슷한 고통으로 외로워하고 있는 교회 동생들이 잡을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꽃뱀, 마귀 사탄이라 불리며 흘린 눈물 위에 연거푸 피눈물 흘리는 자매들이 힘을 얻을 것입니다. 발설하고 도움을 구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손 내밀어 주어 고맙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살다보면 꿈도 못 꾸었던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열일곱 살, 고등학교 1학년 채윤이와 시카고 다운타운을 활보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채윤이는 스타벅스에 들어서면 엄마보다 앞서 주문하는 곳으로 가 용감하게, 되는대로 주문을 합니다. 진동벨이 아니라 주문할 때 물어봤던 이름을 불러 음료를 내주곤 하는데 '애나, 애나!' 하고 불러주는 것이 그렇게 좋다면서요. 코스타 마치고 며칠 여행하는 동안 채윤이 아닌 Anna가 함께 했습니다. Anna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생후 18개월 즈음일까요? 채윤이가 자신을 가리키는 1인칭 (고유)대명사로 고른 것이 '안나'였습니다. 자신을 가리켜 안나, 안나 하니까 모두들 '안나야' 하고 불렀습니다. 채윤이 아빠는 아예 '김채윤, 정안나'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을 적용하기도 했었지요. 여행 셋째 날인가,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채윤이가 그럽니다.


"엄마, 난 미국이 너무 잘 맞아. 마음에 들어. 나도 모르게 자유로워지고, 내 속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아. 이제껏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온 것 같아."


아닌 게 아니라 수많은 영어 사람들 속 채윤이는 전혀 이물스럽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사람이 적은 길에 접어 들어도 금세 쫄아서 '야, 빨리 와' 웬만하면 '가지 마. 가지 마' 하는 엄마와 달리 어디든 가보고, 아무 데나 들이대 보려는 채윤이는 현지인 같았지요. 성문종합영어 몇 번을 본 엄마보다 알고 있는 영어 단어가 어쩌면 100개도 안 될 채윤이가 더 거침없고 당당합니다. 여기서  Anna 말고 채윤이의 영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채윤이는 유난한 언어감각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듣기와 말하기 발달이 빨라서 일찍이 대화가 되는 아이였지요. 영어 따위는 마음만 먹으면 금방 입이 터질 것 같은 아이였습니다. 그땐 그랬지요. 영어공부에 성대모사를 도입하여 신나게 놀고 있는 한때 채윤이. 영상 하나 봐야겠습니다. 


채윤 열공 잉글리쉬


코스타 기간 동안 Youth Kosta에 참석했던 채윤이는 극한 이방인 체험이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선생님들 마저 우리 말이 되는 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워낙 적응력이 뛰어난 아이라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습니다. Youth Kosta에 하루 풀참하고 돌아온 밤 11시.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엎드려 엉엉 울었습니다. 들리는 말이 '지저스' 밖에 없다고요. 다들 통하는 말 나만 못 알아들어 바보가 되는 느낌, 그 느낌 아니까.ㅜㅜ 자체 조를 만들어서 함께 했던 꽃친의 황쌤과 은율언니와 넷이서 머리를 맞대고 격려를 받기도 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석했습니다. 중간에 하루 전체집회를 참석하고는 찬양과 말씀에 대박 은혜를 받기도 했구요. 일단 말이 들리니 은혜가 안 될리가요. 여기서 다시 Anna 말고 채윤이가 영어를 포기한 얘기도 함 보죠.


채윤 영어 접은 이야기


이렇듯 영어든 공부든 목숨걸지 않고 키우는 이 바닥 부모들에겐 그런 인생각본이 있던데요. 돈은 없지만 아빠가 모든 걸 접고 급 유학을 떠난다. 몇 년 유학생활을 통해서 가난체험 등으로 개고생을 하지만 아무튼 끝내고 돌아온다. 애들은 영어를 막 잘한다. 채윤이 엄마 아빠는 학원도 안 보내고 공부도 막막 시키지 않는 주제에 이런 인생 시나리오도 없었습니다. 중학교 가서 중간 기말 시험 때마다 어떻게 어떻게 본문 달달 외워서 영어시험 친 것이 전부. 이런 채윤이라서 도대체 영어말이 들리지 않고 표지판이 뭐라는지 읽히지 않지만 거침없고 당당한 Anna가 건재함을 확인했으니 다행입니다. 이렇게 귀환한, 아는 영단어 몇 개 되지도 않는 Anna, 재즈 피아노 하는 Anna의 내일이 사뭇 궁금해집니다.


"엄마 엄마, 내가 한국에서 재즈를 공부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아. 여기서 보니까 휘튼 식당에서 접시 들고 걸어가는 흑인들은 걷는 그 자체가 스웩이야. 걷는 것만으로도 스웩인데 나는 그걸 연습해서 배우려고 하는데.... 그게 말이 돼? 나 미국으로 대학 올 거야. 미국, 완전히 내 스타일이야."








때 이른 소국이 거실에 한가득이다.

가을이란 계절이 존재하기나 할까,

이제 지구에서 가을이란 계절은 사라졌다는 듯,

여름보다 뜨거운 날인데 말이다.

가을이란 때가 있을 것 같지도 않건만

'때 이른'이란 웬 말인가.


그래도 때 이른 소국이다.

내가 소국 좋아하는 걸 알고 가끔씩 내게 이걸 안기는,

내게는 영원히 초등학교 4학년 같은데 두 딸의 엄마가 된 J와 H가 왔다.

기도의 용사 H, 찬양의 천사 J라 부르면 딱 좋을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었다.

여름보다 뜨거운 날에 여름 휴가를 받고는 하루를 내어 찾아와줬다.

두 딸과 함께 넷이 있는 그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낯설고 신기한 일이었다.


돌쟁이, 그리고 삼십몇 개월 아가들 뫼시고 하는 대화란.

몇 마디 나누다 뚝뚝 끊어지는 건 기본. (쉬쉬, 쉬 마려워!)

언제던가, 이들과 공동체, 소명..... 이런 주제로 끝도 없는 얘길 나눴던 건.

이 와중에 젊은 부부들 목장모임에서 목자로 이끄는 J&H이다.

그네들 또래의 근황도 한 가지인데.

"청년 때는 결혼, 진로 같은 절실한 것들로 얘기 나누고 기도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결혼하고 직장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직장에선 힘들고요.

아이들 태어나 정신없고..... 모여도 제대로 고민을 나누거나 하지 못해요"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결혼하고, 직장을 정하면 인생의 고민이 다 해결될 것으로 꿈꾸던 시절도.

외식 한 번 우아하게 해봤으면, 하면서 두 아이 쫓아다니던 시절도.

그래도 그 시절 내내 부부 모임에서 책읽기 모임을 멈추지 않았고,

부부 됨, 부모 됨을 고민하고 배우는 것을 쉬지 않았던 것 같다.

갓난쟁인 현승이 맡겨놓고 어린 채윤이 손잡고 광화문에 집회에도 다니고.


이 시절은 그냥 버티는 거야.

버텨내는 거야.

하면서 말이다.

돌이켜보면 기특한 우리의 젊은 날이다.


경황이 없어서 말은 못해줬지만 이들도 잘 버텨내길 바랄 뿐이다.

생전 안 해본 엄마 아빠 노릇에 코가 석자라도 '나 됨'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몰아치는 일상 가운데에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됨의 끈을 아예 놓지는 말고.

내 가족이 소중한 만큼 약한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고이 가꿔가면서.

육아의 터널을 빠져 나왔을 때 텅 비어있지 않기를.

기도한다.


때 이른 소국에 눈을 맞추며

그들의 40대를 위해 한 발 앞선 기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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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주문 안 해?

아, 그러게. 날도 덥고 자꾸 까먹네.


월요일, 나는 우리 교회 고등부 수련회 강의로 아침 일찍부터 집을 비웠다.

이런 저런 일처리를 하고, 수련회 준비를 하며 남편 혼자 낮시간을 보냈다.

'놀월'을 각자 보내고 늦은 오후에 집에서 합류.

저녁을 먹고 정리하며 커피를 묻기에 아, 커피가 떨어졌구나 했다.


아침에 나서며 차에서 마실 커피를 내렸다.

원두가 얼마 남지 않았었으니 혼자 집에 있으며

남은 커피를 다 마셨겠구나, 어쩌면 모자랐겠구나 싶었다.


오늘도 안팎으로 보일러 빵빵하게 돌린 날씨로 시작한다.

아침 먹고 설거지 하고 청소기 한 번 돌리니 아이스커피 생각만 간절하다.

세수하고 커피 한 잔 타서 앉으면 딱인데....

커피가 없지. 흠. 커피가 없어. 쩝쩝. 허전하다. 허전하다. 허전하다.


아련한 마음으로 커피장을 바라보는데 밀폐용기에 커피알이 보인다.

헛것이 다 보이네! 아니다. 헛것이 아니다.

아이스 한 잔 내릴 원두가 남아있다!!!!!!!


그러니까 어제 남편이 '커피 주문 안 해?' 라 했을 때 다 떨어졌단 얘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물을 때는 분명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단 얘기였을 텐데.

낮에 다 털어 마시고 없어서 아쉽단 말인 줄 알았는데. 커피가 있다!


그 어느 시점보다 아침 커피의 결핍감이 가장 크다.

내가 혼자 마신다면 저녁 커피를 굶고 다음 날 아침 커피를 살린다.

어제 집에 혼자 있으면서, 아니 함께 있던 저녁에도 간절했을 커피.

앞뒤 재지 않고 다 털어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

내일 나는 출근하여 사무실에서 마실 수 있지만 정신실이 집에 있는 날이네.

라는 자각도 없이 그저 그 커피를 남겨두었을 것이다.

뭔가에 이끌려 커피 본능을 참았을 JP.


아침 커피를 지켜준 남편의 마음은 찜통 더위 따위 초월하는 따스함이다.

생색 낼 줄도 모르는 이 사람은 새벽 KTX를 타고 장례예배 인도하러 가버리고 없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지켜낸 커피를 경건하게 갈아 내린다.

얼음 꽉꽉 채워서 내린 아이스 핸드드립 커피가 시원한데 따스하다.

남편을 위해 착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푹푹 찌는 따스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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