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당해본 일이라 당황하진 않는다.

사춘기 따위!

초겨울 찬바람에 우르르 낙엽이 쓸려갈 때의 느낌,

어딘가 텅 비어버리는 듯한 상실감을 잘 견뎌내면 되더라.

내 품을 벗어나 하나의 인간이 되겠다 하는 통과의례이려니.

엄마로서는 허전한 마음 자락 잘 붙들어 매고 그저 기다릴 밖에.


그런데 내가 해 아래서 두 아이 사춘기를 겪으며 희한한 일을 보았더라.  

사춘기는 애들이 제 귓구멍을 틀어막으며 오더라.

이어폰으로 귓구멍을 막고는 자동차 뒷좌석에 찌그러지면서,

굳이 식구들 듣는 음악은 싫다면서,

혼자 듣고 싶은 게 따로 있다면서.


뒷좌석 오른쪽 놈 채윤이가 이어폰을 빼고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다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여 잠시 훈풍이 불었는데.

뒷좌석 왼쪽 놈이 머스트해브아이템 이어폰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다.


곽진언의 신보를 듣자고 엄마 아빠 누나 짝짜꿍이 맞았는데.

굳이 혼자 다른 음악을 듣겠다며.....

굳이 혼자 들으시는 노래의 실상을 확인하니 헐이다, 헐.

'저 빳따에 누워어 외로운 물새 될까, 물살의 깊을 속을 항구는 알까'

( '저 바다에 누워' 1987년, 높은음자리, MBC 대학가요제 대상)

그래, 그 뒷좌석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되거라.

뇌가 뒤집힌다는 사춘기 아들놈의 속을 엄마가 알겠느냐.


언젠가 그 귓구녕 다시 뚫릴 날이 있으리.













'기쁨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틀림' 아니라 '다름'임  (8) 2016.07.25
시험 기간의 맛  (2) 2016.06.30
딸기가 있는 열네 살 생축 풍경  (0) 2016.04.29
나 밥 안 먹어  (0) 2016.03.31
사춘기, 패셔니스타의 꿈으로 오다  (10) 2016.01.23




바쁘시죠?

뭐 그렇죠.

강의 많이 하느라 바쁘신 거 아녜요?

강의로 바쁜 적은 없어요.


힘드시죠?

힘들긴요.

글 쓰고 일이 많으시잖아요.

글 쓰느라 (마음이) 힘든 경우는 없어요.


강의보다 강의 사이사이 구역장 업무로 마음이 바쁘구요.

원고 쓰며 아이디어를 쥐어 짠다지만

아이들에게 문제 생겨 해결하는라 고심하는 에너지에 비할 바가 아니죠.


구역 소풍 다녀오는 거사를 치루고,

사고 아닌 사고를 친 중딩 아들 건사하는 일이 겹친 날이었습니다.

강의가 아니라 이런 일정을 두고 바쁘다 하는 것이고,

원고가 아니라 예민한 아들 놈 케어하는 일이 힘들다 하는 것이지요.


바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취침, 기절, 좌절의 증상으로 소파에 고꾸라진 저녁.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신호탄이 되어 꽃을 든 남자, 아니고 제자들 등장했습니다.

고맙다. 고마워.

카네이션 꽃이 아니라 사람 꽃이로구나!


며칠 드글드글 속을 태우며

'어디 한 번 저를 일으켜 보시라구요. 저는 낙심하여 소파를 뚫고 들어갈테니까요.'

기도 시위를 했더니 이렇게 협상을 해주시는군요.

사람을 꽃보다 아름답게 만드신 당신, 좋아효!




 



'꽃보다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국  (0) 2016.08.11
여전히 사람, 은혜 그리고 생명  (0) 2016.07.16
충청도 이모의 김종필 사랑  (2) 2015.12.08
쟤가 나를 싫어해요!  (0) 2015.11.19
말랑말랑함 힘  (2) 2015.11.13




5월1일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올해로 20주년 마이너스 2년이다. 주일 출근하는 남편 홍삼이라도 챙겨주려고 일어나 흐느적거리는 정신줄로 거실에 나갔는데 '이게 뭐야!' 눈이 번쩍. JP♥SS, 하트 풍선과 커플 사진 덕지덕지. 오호, 이게 딸내미 키우는 맛이지! 일 년 백수 채윤이가 가장 바쁜 날이 토,일 주말이다. 토요일 오전에는 고둥부 책모임, 오후부터 밤까지 찬양팀 연습, 마치고는 늘 '쫌만 놀고 갈게' 일정이 빡빡하다. 그리고 들어와 다음 날 주일 아침에는 일주일 중 가장 빠른 기상. 6시 30분에 일어나서 곱게 화장하고 7시 반이면 고등부 찬양팀으로 출근. 이런 연예인 스케쥴 중에 준비해준 서프라이즈라 더 기특하다. 역시 아들놈은 쓸 데가 없군. 그렇게 자상하던 그이가..... 가 아니고 그 아들놈이 입을 싹 씻는다. 아, 무심한 사춘기 아들이 된 덕에 처음으로 아이들만 두고 1박 여행을 다녀왔으니 꼭 안 좋은 것도 아니다. 현승이가 부쩍 '엄마 아빠 데이트 하고 와. 엄마 아빠 어디 가서 맛있는 커피 마시고 와' 하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 말이 자꾸 '귀찮아, 꺼져'로 들린다는. 한때 현승인 이런 아들(클릭) 이었었었었었는데..... 93세 되신 엄마가 입을 열면 하시는 말씀의 93%가 옛날 얘기이다. 엄마를 타박하며 나도 자꾸 옛날 얘길 한다. 낼 모레면 얘기의 50%가 옛날 얘기 될 예정.




부부는 닮는다고 한다. 부부가 닮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고독한 인간 남녀는 늘 동질성을 가진 타자를 찾는단다.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닮은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에 빠질 때 동시에 빠지는 착각이 '어머, 우린 너무 비슷해' 이다. 기질이나 취향에서 동질성을 찾기 어려우면 하다못해 '어머 어머, 세상에 그 남자가 그 음악을 알더라. 그 음악 좋아한다는 남자 처음이야' 이렇게라도 갖다 붙이게 되는 것. 20 년 전 우리도 그렇게 시작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어머어머, 어떻게 이현주 목사님과 손봉호 박사님을 동시에 존경할 수 있어? 똑같애, 나랑 똑같애. 어머머, 시인과 촌장을 좋아한다니! 김현승 시인을 좋아한다니! 내가 미쳐. 이건 운명이야. 그렇게 시작한 운명적인 사랑은...... 개뿔, 한 달 만에 끝나고 말았다. 심지어 당시 처음으로 같이해 본 MBTI 검사에선 넷 중 세 개의 지표가 같았었다. 비슷한 게 아니라 비슷하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나와 비슷하면 안전할 것이라는 착각,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받아줄 것이라는 착각이다.


결혼하고 보니 우린 모든 게 달랐다. (모든 게 닮았다더니! 모든 게 다르다고?) 작심하고 MBTI 공부를 함께 했는데 트루 타입을 찾아보니 네 지표 모두 다름, 정반대 유형이었다. <복음과 상황>에 'JP&SS의 사랑과 책'을 연재하던 시절엔 모든 게 달랐다는 것을 깨알같이 확인하는 나날이었다. 다름을 전제하고 글로 싸운 싸움에 독자들이 편을 나누어 공감하며 '우리 편 이겨라' 응원도 해주었다. 진지남과 익살녀 캐릭터도 그 즈음 확고해졌다. 이 캐릭터로 장사가 잘 되었다. 무엇보다 '다름'을 전제하니 둘 사이에 수월해지는 것이 많았다. '같음'을 전제하고 교제하다 한 달 만에 헤어졌는데 '다름'을 전제하고 살아보니 18년, 20년이 풍요롭다. 요즘 공부하고 있는 철학상담에서 주워들은 것으로 풀어보자. 타자에게서 자기성을 찾고자 하면 공연한 기대만 높아지고 병리적인 집착이 생길 뿐이다. 의지적으로 지향할 것은 자기의 타자성이다. 즉, 나와 달라서 불편한 '그'가 아니라 '그'와 버성기는 나를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 갈등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 '그'라는 거울에 비친 낯선 내 모습을 바라보고 수용하는 과정은 늘 고통이었지만 고통보다 큰 열매가 있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며 사랑의 깊이와 신비를 배워왔다.




짧은 여행 중에 각자의 폰카메라에 남은 사진이 재미있다. 밤 산책을 하며 남편이 찍은 건물 사진과 아침을 먹으며 식당 테이블을 찍은 나의 사진이다. 그림자와 함께 하는 실물 풍경이다. MBTI가 Carl Jung의 심리유형론에서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너는 외향, 나는 내향. 꽝꽝꽝! 흔히 이렇게 이름 붙이는 MBTI와 달리 Jung의 이론은 둘 사이의 통합이다. 즉, 외향형 사람의 무의식에는 내향적 성향이 가라앉아 있고, 마찬가지로 감각형 사람의 무의식에는 직관적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안에 다 있는데 어느 하나를 선호하여 사용하느냐가 성격을 결정한다는 것. Jung 슨상님의 말씀은 우리가 지향할 것은 둘 사이의 통합이다. 통합을 위해 쥐어짜낼 필요는 없다. 즉, 외향형 사람이 내향형 계발을 위해 힘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외향적 성향을 좋아하고 자유롭고 풍성하게 쓰면서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힘들을 믿으면 된다. 그렇게 생의 전반부를 살다보면 중년 이후에 자연스레 내향적 성향이 무의식에서 떠올라온다는 것이다.


반대유형인 남편이 내게 준 선물이다. 내게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성품들을 잘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처음엔 내게 없다고 느껴져 열등감으로 다가왔으나 어느 새 내가 남편을 배우고 있었다. Jung 식으로 말하면 내 안에 없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남편의 좋은 모습이 더 좋게 보인 것이다. 그런 의미로 반대유형의 짝을 만나 살게 된 것이 큰 유익이다. 두 장의 사진처럼 그림자의 존재를 잘 비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남편과 내가 어떤 점이 비슷하다, 다르다 언표하는 것에 큰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장사 밑천이 떨어진 것 같다. 같은 지점을 찌르고 동시에 찔리는 갈등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굳이 MBTI 식으로 말하자면 논리적 맥락 자체가 중요한 사고형 vs 관계가 중요한 감정형의 대립이거나, 외향 내향 에너지의 차이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 차이가 서로에 대한 신뢰보다 크지 않으니 찌르고 찔려도 이렇다 할 상처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결혼 18주년 선물 치고는 꽤 큰 선물이다.




우리가 함께 산 시간이 길구나, 했는데 얼굴로 먹은 나이가 고스란히 그 시간을 말해주는 것 같다. 5월의 그 싱그러운 신랑 신부는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가! 그런데 이상하다. 나이값 제대로 하는 저 사진의 얼굴이 싫은데 싫지가 않으니.


'김서방, 고마워. 아이구 고마워. 내가 우리 김서방 얼매나 이쁜지 몰라. 우리 까드락시런(까다로운 ㅜㅜ) 신실이랑 살아줘서 고마워.' 우리 엄마 녹음기에 오토리버스로 돌아가는 트랙이다. 워낙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말씀이라 반론이 불가하다. 까드락시런 김서방 맞추는 고충에 대해서 할 말이 백 개지만 참는다. 결혼 18 주년의 감사와 행복은 다 모세 할아버지 버금가게 온유한 JP 덕인 걸로!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모라는 이름2  (0) 2016.08.21
마음  (2) 2016.08.09
Sabbath dairy22_같이 가치와 혼자 가치  (12) 2016.04.19
Sabbath diary21_자식 걱정, 끝나지 않는 대화  (2) 2016.04.06
Sabbath diary20_인생은 찰나다  (2) 2016.03.21




[정신실의 내적 여정 에니어그램 세미나] 2016년 상반기 일정입니다.

 

라캉은 '진리에 신경써라, 그러면 치유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정직한 질문을 던지고 진리를 찾는 열망 안에 있다면 그 여정 자체가 치유입니다. 정신실의 에니어그램 내적여정은 어거스틴의 기도, '주를 알게 하소서, 나를 알게 하소서(Novem te, novem me)'를 따르는 기도의 여정입니다. 에니어그램이라는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오래된 거울 앞에 서보는 것을 시작으로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자'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2016년 상반기 준비된 1단계, 2단계, 심화과정 세미나 일정이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수강하신 분이 2단계를, 1,2단계 수강하신 후에 심화과정 수강하실 수 있습니다.



 [일시]

. 1단계 : 2016년 3월 30일(수) 오전 10시~오후 5시
. 2단계 : 2016년 4월 27일(수) 오전 10시~오루 5시
. 심화과정 : 2016년 5월 25일(수) 오전 10시~오후 5시
[
장소]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5층 대회의실(합정역 7번 출구에서 3분)

[인원] 각 강좌 선착순 15명  

[수강료] 각 강좌 12만 원
[문의] 010-6209-0635   larinari.tistory.com
[신청]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1 신청하러 가기(마감되었습니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2 신청하러 가기 (마감되었습니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심화과정 신청하러 가기(마감되었습니다)



각 과정의 강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강의 내용

1단계

  선물 또는 덫으로서의 성격 :

  에니어그램의 9 유형

 2단계

  적응 또는 방어로서의 성격 :

  에니어그램의 날개와 화살 / 공격, 의존, 움츠리는 유형들 

 심화단계

  습관이 된 정서, 패턴이 된 생각 :

  에니어그램 유형의 어린 시절

 영성단계

  성격 너머, 하나님 형상인 나 :

  에니어그램 유형의 왜곡된 하나님 상






'정신실의 내적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나라 어린이 나라  (10) 2016.05.27
우주가 나서서 도운 강의 준비  (6) 2016.05.24
2016 에니어그램 세미나  (11) 2016.03.09
꽃다운 친구들의 MBTI  (2) 2016.02.16
나의 화두, 나의 썰  (8) 2015.12.11




"엄마, 나 이제부터는 이렇게 하려고.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괜히 신경 쓰지 않으려고. 그런 결심을 했어."


꽃다운 친구들과 강원도 여행을 다녀와서 툭 내뱉은 말입니다. 엄마로서는 깜짝 놀랄말이라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냐 물었더니 다음에 얘기하겠다고 밀린 잠을 자러 들어가더군요.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물어봤습니다. 엄마가 보기에는 참 소중한 깨달음인데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냐고요.


여행 중에 중등부 **샘에게 톡이 왔답니다. **샘은 찬양팀에 함께 하던 청년 쌤인데 채윤이를 동생처럼 친구처럼 대해주는 좋은 쌤이지요. 고등부가 된 지금도 주일마다 찾아가 만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용건없이 톡이 왔는데 그때 깨달음이 왔나봐요. **쌤은 가족 외에 처음으로 이유없이 나를 받아준 사람이라고 합니다. 꽃친 여행에서 친구들과 마음이 편안한 순간에 받은 톡이라 더 의미있었나 봅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감사하며 지내면 되는구나.....


사실 채윤이는 5학년 때 친구들과의 어려웠던 경험으로 관계에 대한 염려가 많았습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친구는 없는지, 자신을 두고 수근거리지는 않을지. 단지 그 경험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조차 대물림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엄마인 제가 내적여정, 심리 영성 공부로 여기까지 온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관계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두려움. 꽃친을 시작하고도 내내 마음에 폭풍이 치는 날이 많았습니다. 여자 꽃친들은 다들 단짝이 생겼는데 자신만 홀로라는 두려움, 꽃치너들이 모두 좋아서 두루두루 친하고 싶은데 막상 다가가지 못하는 수줍음, 어떤 말과 행동으로 친구들의 미움을 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초기에는 이 걱정을 들어주고, 괜찮다 괜찮다 해주는 일이 큰일이었습니다. '꽃친 일 년을 지내며 적어도 이 두려움에 맞설 힘이 생기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주님'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요.


저녁마다 솔직한 일기를 쓰고, 엄마에게 끊임없이 묻고 고백하며 자신의 감정과 정면돌파 하며 생각보다 빠르게 편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채윤이를 지켜보는 엄마 마음이란. 채윤이의 두려움에 곱하기 10, 채윤이의 외로움에 곱하기 100, 채윤이의 걱정에 곱하기 1000이었습니다만. 스스로 겪어내며 배우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지켜보았습니다. 기도하면서요. 2박3일 여행을 마치고 마음의 긴장이 훨씬 더 많이 풀린 채윤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허튼 에너지 쓰지 않겠다'고 하니 할렐루야! 입니다. 마음의 힘이 생긴 것입니다. 혹여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도 괜찮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견뎌낼 힘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카렌 호나이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신경증 환자는 이상엔 맞춘 자아상을 만들어내는데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 한다' 같은 당위입니다. 어디 신경증 환자 뿐이겠습니까. 인간은 모두 정상적 성격발달과 성격장애 그 어디쯤에 있다고 역시 카렌 호나이가 말하고 있으니까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내게 대한 오해를 다 해명할 수는 없지, 이것을 자포자기의 심정이 아니라 아프게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입니다. 치유란 결국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힘이기도 하지요. 채윤이게 그런 힘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단 시간이 있고, 무엇에 쫓기지 않는다는 전제, 가만히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거기다 꽃친이라는 안전한 공동체(이번 꽃친 모임에서 '공동체'라는 말이 마음에 떠올랐다는 고백도 하더군요.)가 이렇게 저렇게 마음의 쿠션을 대주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아직은 미미한 힘이겠으나, 발견되었다는 것이 큰 의미입니다. 엄마도 다시 한 번 새겨야겠습니다. 좋아하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고민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을 붙들고 마음의 에너지를 쓰지 않을 일입니다. 알고보면 이것이 자유입니다. 이 둘 사이를 분별해내는 것이 지혜이고요.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그리스도가 구속한 인간, 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이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제목에 이끌려, 아니 김세윤 박사님 자체에 이끌려 북토크에 갔다. 저자로서 북토크를 당해본 적은 있지만 내 발로 찾아가 본 능동태 북토크는 처음이다.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는 아니다. 사실 청년 때  다니던 교회에서 매주 김세윤 박사님의 성경 강해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청년부 모임을 빠지고 오후 성경공부 가 있곤 했다. 그때 이미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어떻게 보시는지는 충분히 들어 알고 있다. 책 역시 2004년에 나온 <하나님이 만드신 여성>의 개정판이다. 그러니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이끌려 간 것은 제목이 아름다워서, 그리고 김세윤 박사님의 사투리 억양이 듣고 싶어서라 할 밖에.


남편이 신대원 다니던 시절. 여성 목사 안수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지켜보던 나는 여러 번 뒷목을 잡았다. 2000년 대에 그런 주제로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다는 것 자체에 이미 가슴이 답답했고, 싸이 클럽에 올라오는 글과 댓글을 읽다보면 정말 털썩!이었다.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다니던 교회가 속한 교단이었고 결국 본인의 선택이긴 했지만 내 바램을 배려해 선택한 신대원이었기에. 10년을 훌쩍 뛰어 넘어 지금 남편이 섬기는 교회에서는 선임 목사님이 여자 분이시다. 물론 교단이 달라졌다. 똑같이 설교하시고 똑같이 교회업무를 보실 뿐 아니라 선임, 보통의 교회로 말하자면 수석 목사님이시다. 아무 문제가 없다. 아마도 남편과 논쟁했던,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 그때 그 신대원 동기분들은 '심방 전도사님'이라 불리는 여성 동역자들과 함께 사역하고 계실 것이다. 여성 안수에 대한 입장은 여전하실까.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 


여성 안수가 논쟁 꺼리가 되는 신학교와 교회, 부끄러웠고 부끄럽다. 당시 늦게 신대원에 가 혼신의 힘을 다해 공부하며 진심 행복해 하던 남편이었다. 1대 17로 싸우는 느낌으로 그 즈음 많이 괴로워했고, 외로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논쟁은 그렇다 치고 클럽에 올라온 글과 댓글 중엔 믿어지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목사가 되겠다고 하시는 예비 목회자들의 여성관이 이럴 수가 있을까.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자와 북어는 삼일에 한 번은 패야 한다'는 식의 말이 스스럼 없이 나왔다. 이런 분들은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다!' 성경의 이름으로 아내를 때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었다. 무엇보다 진보적인 사회의식을 가진 분들이 신학적 담론으로만 가면 급 근엄하게 제사장 제의를 꺼내 입고 전통과 보수를 지키려 하는 것에 더욱 답답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북토크도 이런 말로 시작되었다. '이 책이 나온지가 10년이 넘었는데 그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여전히 이 논쟁이라니요'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여성 안수에 관한 신학적 근거나 논리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깨알같이 필기해 온 주옥같은 내용을 다시 옮겨 적진 않겠다. (도 있고 기사로 정리된 것도 있으니 관심자들은 참고하시기 바람) 


가르침과 삶, 글과 삶이 일치하는가가 관건이다. 설교, 강의, 글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신학자, 또는 목사에게는 더욱 관관건건이 아니겠나.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을 바울신학의 관점에서 논증해내는 것과 남성으로서 여성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북토크를 통해 저자가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을 가늠하는 자리도 아니다. 하지만 텍스트보다 더 중요한 것, 느낄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들에게는 있다. 질문에 대한 답 또는 강연 중에 내게 느낌적인 느낌으로 와닿는 말이 있었다. 구약과 신약을 오가며 논리로 풀어내시던 중, '여자들이 교회에서 잠잠하라' 이 한 문장이 아니라 복음의 정신에 비추어보라!시며 하신 툭 나온 말씀. "생각해보세요. 신학교에서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학위받고 남성은 담임목사가 되어 교황(가톨릭에서는 교황을 두고 우상화 한다고 비판하는데 개신교 안에는 교회마다 교황이 있다는 농담이 있단 얘길 하시며)의 삶을 살아요. 똑같이 노력하고 공부했던 자매는 심방 전도사라는 이름으로 말도 안 되는 처우를 받으며 사역해요. 이게 그리스도의 정신입니까? 이게 복음의 정신이에요?" 순간적으로 신학, 논리를 제치고 저자 안의 뜨거운 가슴이 표출된 것으로 보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진행자는 남성 목사님, 패널로 여성 편집장 한 분이 함께 했다. 진행하시는 남자 목사님은 유능하게 느껴졌다. 이슈를 끌어내기 좋은 질문에 적절한 유머는 물론 타임 키퍼로서의 역할도 잘했다. 그분이 던진 어떤 질문 자체에 남성우월적 가치가 전제되어 있다며 여성 참석자가 질의응답 시간에 지적했다.(여성들에게 리더를 시키면 일을 잘못하는게 현실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김세윤 박사님은 '그렇다! 맞다'고 인정하시며 '미국에서 흑인들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400여 년 노예생활의 결과라는 말이 있다. 때문에 방법은 더 기회를 많이 주는 것 외에 없다. 하물며 여성들은 수천 년 불평등 구조 속에서 살아왔다. 교회 역시 여성을 격려하고 기회를 더 많이 줘야 한다. 현재 우리 상황은 100m 달리기에서 남성은 50m 앞에서 출발하기 시작한 불평등한 게임이다'라고 하셨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질문과 답변 이후로 진행자 남자분이 '질문은 한 분만 더 받겠다. 교수님이 다음 일정 때문에 바쁘시다. 질문하시는 분들은 짧게 간결하게 하라'며 신속한 진행에 박차를 가하셨다. 김세윤 박사님의 반응. "괜찮아요. 질문 더 받아요. 여기까지들 오셨는데 궁금한 거 질문해야지. 자매님들이 좀 더 질문해주세요." 꽤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여성, 특히 여성 목회자분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들이다.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목회자들이다. 이분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책이나 강연 때문이 아니라 말과 말 사이, 강연과 강연 사이 박사님이 '자매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감동을 받았다. 북토크 마치고 따사롭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봄볕을 맞으며 걸었다.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인 나, 여성인 내가 좋다며 약간 춤추듯 걸었다.  

















4월 28일, 충무공 탄신 기념일에 부드러운 남자 티슈공 현승이도 생일인데.

하루 종일 에니어그램 세미나 있다고 분주하던 엄마 기억조차 못하고 있었어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아빠가 '현승아, 생일 축하해' 하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네요.

미역국은 커녕 밥도 없다! 그러나 바뜨 당황하지 않고,

'현승아, 생일 축하해! 축하 파티는 금요일에 하자.

오늘 수요일이고, 내일은 양화진 음악회니까. 금요일에 하는 거야. 금요일이야....'

('나 밥 안 먹어'로 하루를 시작하는 현승이에게 미역국 끓이고 불고기 하고 이런 식탁은 부담일 거야. 암, 그렇고 말고. 가볍게 모닝빵 하나 먹고 가, 이러면 선물이지. 암.)

그렇게 생일은 지나갔네요.


엄마, 내 생일에 애슐리 안 가고 그냥 집에서 엄마가 한상 떡벌어지게 차려주면 안돼?

(떡벌어지게! 어떻게?ㅠㅠ) 어, 되지! 뭘 어떻게 차려줄까?

그냥 내가 평소에 양껏 먹고 싶던 거. LA 갈비를 무제한으로 먹고, 딸기도 무제한으로.... 그리고 또 먹고싶은 게..... 된장찌개. 흰 쌀밥!(읭? 네가 전래동화를 너무 많이 읽었구나!)

코올~~~~!! 흰 쌀밥,  LA 갈비, 된장찌개, 딸기 무제한으로 한한 떡벌어지게 차려줄게.

코스트코에 갔는데 현승이가 제일 좋아하는 치즈케잌 세일도 하니, 어머 이건 사야죠.


식사준비 다 하고 오늘도 늦는 아빠를 기다리는데 오늘의 주인공, 주문이 있네요.

'엄마, 밥 먹고 케잌은 제발 그냥 무난하게 해줘. 그냥 딱 생일축하 노래만 불러줘.

나는 친구가 가족들을 챙겨주는 게 정말 좋은데 반대로 누가 나 챙겨주는 게 싫어.

그러니까 요란하게 하지 말고.... 노래만 불러줘. 엄마 아빠 덕담 같은 거 이런 거 하지마. 나 그런 거 하면 오글거려.'

적극 반영하여, 평범하게 밥먹고 생축 노래만 부르기로.

평범함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늘 하던대로, 잊지않고 밥 먹기 전에 남매 전쟁 한 판.

자리 가지고 한 번 싸우고, 엄마 한 번 폭발하고 요란하지 않은 평범한 저녁식사.

그리고 생일축하 노래.

감상 포인트는 아빠의 구슬픈 기타반주와 '참 좋은 아이였어....'




 

그리고 흥이 나신 아버님의 즉흥노래와 누나의 듀엣이 방언처럼 터집니다.





현승이가 딸기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하는데요.

흔한 에피소드가 있지요.

현승이를 품고 있는 중 제철도 아닌 딸기가 먹고 싶었던 엄마, 또는 뱃속의 현승이.

어느 날 퇴근 길, 엄마 아빠는 현대백화점에 갑니다. 지하 식품매장에서 딸기 발견!

가격을 확인한 엄마는 헉, 뒷걸음칠 쳐 물러났지요.

이때 정답은 남자의 힘으로 제압하여 그 딸기를 사야하는 것인데,

현승이 닮아 요란스러운 걸 싫어하는 아빠는 소심하게 '그래도 사지....' 하며

엄마 뒤를 따라 나왔지요.

그리하여 두고두고 욕을 우려드시고 계시며 앞으로 그럴 예정이랍니다.

이 얘길 들어서인지, 아니면 그때 뱃속에서 느낀 좌절과 결핍감 때문인지

현승인 딸기를 좋아합니다. 자주 먹어도, 많이 먹어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말이죠.






이런 태중 비화를 가진 현승이 생일에 참으로 적절한 노래가 되겠습니다.

감상 포인트는 누나의 목춤, 현승이의 살아 있는 먹방.

현승이 생일에 딸기가 있고,

딸기가 현승이 입 안에 있습니다.

허허.





 

 







 




'기쁨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험 기간의 맛  (2) 2016.06.30
귓구멍을 틀어막더라  (5) 2016.05.17
나 밥 안 먹어  (0) 2016.03.31
사춘기, 패셔니스타의 꿈으로 오다  (10) 2016.01.23
냉장고야, 아들을 부탁해  (2) 2015.12.22




블로그에 쓰다만 글이 하나 있어서 마무리 하고 나가려고 앉았습니다.

까똑!이 울렸고, 열어보니,

친구가 오늘 자 경향신문 기사 한 쪽을 사진 찍어 보내줬습니다.

대통령님 말씀에 받은 은혜가 커 혼자 간직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저도 일하러 나가기 전에 처리할 가사업무를 밀어놓고

대통령님 '오늘의 말씀 묵상'에 집중하였습니다.

한 번 읽고 지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자꾸 읽어보니 아닌 게 아니라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읽고 끝내서는 안 된다. 은혜받고 거기서 끝내서는 안 되지.

내 일상에 적용하여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채윤이에 관해 쓰던 글을 백지화 하고

오늘 받은 은혜를 힘입어 내 삶에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채윤이가 일 년을 쉬기로 한  안식년 체제에서는 뭔가 놀게도 하고 또 쪼기도 하고 뭔가 돼야 되는 일을 이루어내기도 하고, 또 이런 식으로 열일곱 살에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실질적으로 또 애한테 뭔가 도움이 되고 인성이 활성화 되는 데도 좀 힘이 되어주는 부모로서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뜻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꽃다운 친구들'서 만들어준 틀속에서 하는 게 낫지, 더 어려운 것은 또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성적을 막 올려라, 또 뭔가 잠을 줄이더라도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는 이거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학교 내부에서 막 이리 간다고 그러면 또 저리 가야 된다고 그러고, 아이들이 혼란하다고 봅니다. 뭐 하여튼 채윤이는 채윤이대로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줄 것이니 뭔가 엄마는 또 빨리 준비하고 나가서 또 뭔가 오늘도  바쁜 벌꿀처럼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2주기하고도 일주일이 지난 23일 토요일, 팽목항 기도회에 다녀왔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기독인 모임​'이 도모한 긴 하루의 일정이었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준비하여 서울역 앞에서 7시에 버스를 탔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40분. 열 시간 넘게 버스를 탔으니 기도회는 짧고 멀미는 길었다. 사서 고생을 하면서 마음이 편하지도 않았다. 기사를 보는 순간 '어머, 여긴 가야해!' 두 번 생각도 안 하고 신청했지만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툭 올라온다. 가기 전에도 그랬고, 당일도 내내 마음 한 구석 편치 않았다.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은 이거였다. '미안해할 것 없어. 가족 대표로 가는 거잖아. 김종필, 김채윤, 김현승을 대표해서 가는 거야' 그래, 가족 대표다.





# 남편에게 미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이 왠지 늘 미안하다. 남편 두고 혼자 놀러갔다 올때는 덜하다. 이런 일, 팽목에 기도하러 가거나 이런 저런 집회에 혼자 다녀올 때 '그래, 갔다와' 하는 남편 목소리가 참으로 쓸쓸하게 들려 긴 여운으로 마음에 남는다내가 김세윤 교수님의 북토크에 가고, 꿈공부 모임에 가고, 팽목을 다녀온 금토 이틀 남편의 일정은 늘 하는 행정업무 이외에 주례, 심방, 상담, 선교사 묘원 비석 닦기?였던가, 용인 순교자 기념관 청소하기였나? 그러했다. 마음은 거기 있어도 집회 한 번 함께 하지 못하는 물리적인 시간을 산다. 단지 물리적인 시간의 제약만도 아니다. 공인인듯 공인이 아닌듯 공인같은 민간인 목회자로서 경계에 선 긴장이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래, 갔다와' 하는 말에서 많은 것이 느껴진다. 금, 토를 내 좋아서 하는 일로 다니다 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돌아왔다. 주일 새벽 출근 준비하는 남편이 장롱문 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엇, 셔츠 다려놓은 것이 있나?' 잠이 확 달아났다. 자는 척 숨죽이고 있다 실눈 떠보니 양복(이라 쓰고 목사의 작업복이라 읽는다)착용 완료상태다.


미안해, 여보. 내가 당신 대신해서, 대표해서 다녀온 거야. 진실로 그래.


# 채윤 현승에게 미안


현승이는 금요일에 친구 집에서 자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에 학교 농구교실을 가야하는 현승이를 위해 프라이팬에 밥을 볶아놓고 나왔다. 카톡으로 일러둔다는 걸 깜빡 잊었더니 냉장고 뒤져서 먹다 남은 충무김밥을 꺼내 먹었는데 오징어 볶음이 매워서 우유 한 통을 다 마셨다며 전화가 왔다. 점심은 어떻게 하냐며, 김밥을 사먹으려 해도 돈이 없다며, 엄마 어떻게 점심 값도 안 놓고 갔냐며, 게다가 자기 돈 오만 원 짜리가 없어졌다며.... 그, 그 돈 엄마가 빌려왔어. 라면을 끓여 먹든 알아서 하겠단다.  채윤이 기상시간은 10시. '일어났는데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외롭다'다고 가족 톡방에 기상을 알렸다. 하루 세 끼를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 해놓고, 뒤져도 먹을 것 변변히 없는 냉장고를 해놓고 나온 게 됐다.


얘들아, 미안! 대충 먹고 엄마 없는 하루 종일을 지내준 너희 덕에 다녀온 거야.

너희 대표로 말이야.



# 가족의 이름으로 함께 함


팽목이란 말만 들어도 슬픔과 억울함과 분노의 통곡이 들리는 듯한데 차거운 그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려니 감정의 폭풍이 일어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자꾸 식구들에 대한 미안함이라니. 가족의 이름으로! 라는 말이 자꾸 생각났다. 세월호 2주기 어간 가족들 카톡 프로필 사진이 똑같았다. 정작 피켓을 만들고 들었던 현승이는 '이히히히'와 함께 쌩뚱맞은 사진이었지만. '현승아, 너 엄마 아빠 누나 톡에서 피켓 들고 있느라 고생이 많다'하고 농담도 했다.

기도회를 마치고 미수습자 가족 대표인 은화 엄마와 혁규 큰아버님과의 간담회가 있었다. 가족 대표로 간 채윤이 엄마가 미수습자 가족 대표 은화 엄마를 만난다. 얼굴을 마주하고, 육성을 듣고,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것이 만남이다. 그렇게 얼굴을 대하면 이념이고 정치고 명분이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공허한 말인지 느끼게 된다. 몸으로 느끼게 된다. 가족이란 몸을 부대껴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더 이상 세월호 가족은 세월호 유가족이나 미수습자 가족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다. 마음이 그렇게 말했다. 


은화 엄마의 말이다. (뉴스앤조이 기사에서 가져옴)


"유가족들이 아이 찾아서 올라갈 때 우리 보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축하한다고 했습니다. 아빠로서 엄마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갔던 곳이 바로 목항입니다. 저도 정말 유가족이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진실 규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인양이 먼저입니다. 세월호가 물속에 있으면 진실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다섯 살 혁규가 지연이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줬습니다. 그냥 오빠니까 그렇게 한 겁니다. 여야·이념, 그런 정치 논리 다 버리고 일단 사람 찾아야 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원하는 인양은,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와 아홉 명을 다 찾는 것입니다."




가방과 옷, 자동차의 달린 세월호 리본과 뱃지는 늘 외롭다. 운전하고 가다 노란리본 스티커를 붙인 차를 보면 차선을 바꿔 옆으로 가게 된다. 조금 앞질러 가 내 차 뒤 유리에 붙은 리본을 보여주고 싶다. '나도 같은 마음이에요. 힘내요. 우리 잊지 말아요' 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 40인승 버스에 탄 분들의 가방과 옷에는 주렁주렁 노란리본이다. 사실 그것만 봐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함께 한 친구, 우연히 반갑게 만난 장로님 부부, 한 버스에 탄 분들 모두가 가족이다. 존재로 고맙다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가슴열어 그분이 사랑하는 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 더 큰 가족을 일구어 가기 위해 나를 넓히는 일인지 모른다.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 우리의 가족.






'리멤버 04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개팅 아니면 광장  (2) 2016.11.26
백만 개의 촛불, 백만 개의 우주  (0) 2016.11.13
[봉선화기도] 노란 건반 위를 걷는 붉은 기도  (0) 2016.03.16
봉선화기도 304  (0) 2016.02.27
2015, 다시 대림절에  (0) 2015.12.16


나.자.연 나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29



바야흐로 결혼의 계절입니다. 5월의 신부가 된 친구의 SNS는 웨딩드레스 사진, 한복 사진, 쪽빛 바다배경의 신혼여행 사진으로 슬라이드쇼를 하죠. ‘부럽지? 너는 부러워해야만 해사진이 말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합디다. 부럽다고 하기에는 조금 복잡한 감정이죠? 청년부 예배에 결혼 인사 하러 나온 커플, 막 교제를 시작하여 좋아죽겠음을 감추지 못하는 커플도 마찬가지. 단지 부러워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혼자라서 그렇습니다. 쿨하게 축하하지 못하는 자신을 너무 지질하게 여기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이렇게 언표함이 더 싫을지 모르겠으나 외로움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한 줄기 차가운 바람, 부러움이나 질투심 이전의 감정이겠지요.

 

예배와 소그룹 모임, 뒤풀이로 저녁 먹고 카페에서 신나게 수다 떠는 것으로 마무리한 주일 저녁은 어떻습니까. ‘안녕, 한 주간 잘 지내인사하고 돌아서서 터덜터덜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순간, 다시 마음을 스치는 한 줄기 차가운 바람 휘잉. 예배와 조모임과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았는데, 참 좋았는데 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허무감이 밀려올까요? 이 역시 외로움입니다.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고 피곤한 몸으로 퇴근하는 저녁과 확연하게 다른 쓸쓸함 말입니다. 외로움이란 것이 혼자라는 느낌이니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홀로 물러날 때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느껴지겠지요. 무엇보다 외로움은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느낌인데 주일에 교회 사람들을 만나 마음을 나누고 받아들여진 경험은 더 깊은 사랑에의 욕구를 일깨울 것입니다. 오직 한 사람과 나누는 깊은 친밀함에 대한 갈망이,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혀 쓸쓸함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너무나 흘러간 옛 노래라 민망합니다만 젊었을 적 노래방 가서 자주 불렀는데요. ‘이별은 두렵지 않아. 눈물을 참을 수 있어. 하지만 홀로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혼자가 된다는 것, 게다가 여러 커플 사이에서 혼자 있게 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외로움이 두 배 세 배로 밀려오지요. 그런데 애인이 생기면 외롭지 않을까요? 결혼하면 이 외로움이 사라질까요? 우리가 인간이라면 외롭지 않을 방도가 없습니다. 굳이 니체나 키르케고르 같은 철학자를 불러낼 필요도 없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인지는 모르겠지만 외로우니까 인간인 것은 맞습니다. , 전혀 외롭지 않은 사람도 있다구요? ‘외로워의 변주 버전이 많습니다. 제게는 여러분들의 이런 말들이 외로워로 들립니다. 꿀꿀해, 심심해, 무기력해, 재미없어, 짜증나, 다 싫어, 빡쳐..... 심지어 사모님, 공동체가 뭐예요?’ 이런 뜬금포 역시 여러 번의 변태를 거친 변종 외로워요입니다. 외로움은 기본설정입니다.

 

그래도 애인이 있거나 결혼한 친구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구요? 정말 그럴까요? 싱글의 외로움은 떳떳하기라도 하지요. 연애하는데 외로우면 호소할 곳도 없습니다. 도대체 연락이 안 되는 남친. ‘어디야? 어디? 지금 어디?’ 메시지 폭탄을 보내건만 확인조차 하지 않고, 휴일인데 만나지도 못하고, 기념일인데 챙겨주지도 않을 때의 외로움 말입니다. 남친의 말투나 연락횟수에 민감해지지만, 집착으로 비칠까 표현도 못 하고 혼자 울며 밤을 지내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혼이라고 외로움의 안전지대는 아니겠구나, 유추 되지요? ‘오빠를 위한 건강식 밥상(하트하트)’ 새댁 친구가 SNS에 올린 사진을 보면 꿀이 뚝뚝 떨어지죠? 마음은 천리만리 멀어지고 대화는 단절되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나날도 많습니다. 눈도 맞추지 않고,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식탁에 마주 앉는 날을 사진 찍어 자랑할 수는 없거든요.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 함께 있는데도 외롭다니.

 

언젠가 말했듯 사랑과 행복으로의 초대로서 결혼은 아직 유효합니다. 연애도 시작만 된다면 당분간 핑크빛 하트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일 것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외로움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외로운 나는 뭔가 부족한 거야라고 느낄 때 싱글인 자신을 결핍된 존재로 규정하게 됩니다. 단지 결혼하지 않은 상태(비혼)가 아니라 아직 결혼을 못 하고 있는(미혼)것이라 여길 때, 결핍감을 채울 유일한 방법은 오직 연애와 결혼 외에는 없습니다. 애인이 생기고 결혼하게 되면 이런 꿀꿀함, 쓸쓸함 따위 내게서 떠나가고 말 것이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연애 망상입니다. 연애와 결혼을 막다른 길로 몰고 갈 망상입니다. 함께함이 좋고 충만한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불어 여전히 외롭고 혼자인 것이 연애이고 결혼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외로운 싱글은 외로운 커플이 되고 행복한 싱글은 행복한 기혼자가 됩니다. 외롭지 않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가올 사랑이 모두 잿빛이려니 할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는 외로움을 외로움이라 이름 붙이고요. ‘나의 외로움 네가 채워줘가 아니라 너의 외로움 내가 채워줄게라며 서로에게 다가갈 때 사랑의 신비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환상적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신비를 꿈꿔봅시다.







명일동에 있는 털보부인이 혹 시간 되면 가보라고 포스터를 하나 날려주셨는데.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작가와의 만남이다. 

어머, 은유 작가! 잉, 양화진 청소년 학교, 우리 교회 고등부네.

학교 안 다니는 대신 고등부 찬양팀 반주에 올인하고 있는 채윤이,

바로 그 채윤이가 좋아하는 고등부 행사를 명일동 ok 언니에게 전해 듣다니. 하하.

은유 작가의 강의는 팟캐 벙커1 강의로 들었었다.

피아노 연습이랑 친구 약속도 있다며 빼는 채윤이에게 살짝 압력을 넣었다.

아빠는 '채윤아, 경험해. 뭐든 기회가 되는대로 경험하기. 경험주의자가 되기!'

바람을 잡고. 




다녀와서는 나쁘지 않았다며,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단다.

털보부인께서는 강의 안내를 해주시더니 페북에 올라온 사진도 보내주셨다.

그리고 냉큼 책을 선물해주셨다.

그리하여 채윤이가 엄마가 속으로 읽어야지 하고 있던 책을 먼저 손에 넣는,

이제 독서에 관해서도 엄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청소년이 되었다.

(언제 다 읽을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강의 들으러 갔다가 고등부 독서 동아리 '북앤톡'에 가입하고 왔다고.

여기서 나눌 책이라며 세월호 2주기에 맞춰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주문하여 읽고 있다.


김포에서 '서당'을 열고 아이들 글쓰기를 가르치는 외삼촌에게도 간다.

훈장님이며 삼촌은 책읽기는 물론 글쓰기에 토론까지 가르쳐준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오는 차 안에서

"아, 오늘 토론 시간에 엄청 깨졌어. 다음 번에 제대로 준비해서 다 발라버릴 거야"

이런 전투의지 좋아! 하하.


꽃친에서는 지속적인 일기쓰기를 격려하며 가끔 보여주는 일기를 써서 나누나보다.

세월호 2주기를 보내는 생각과 느낌을 적은 글을 끙끙거리며 썼다.

보여주는 일기로 썼으니 엄마 아빠 다 돌려서 보여주는데,

오, 김채윤! 글 쓰는 여자!


태어난지 사흘 만에 집에 왔는데 집이라고 생긴 게 온통 책으로 둘러 싸였더라는,

기동력 생기고 제일 먼저 해본 놀이가 책꽂이 1층의 <인물과 사상> 죄 꺼내기였던,

환경적으로 책과 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채윤이였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들려면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하던데.

채윤이는 일찍이 책 읽기에 멀미난 케이스.

책 읽는데 귀찮게 한다고 구박하고 짜증내는 엄마 탓인줄 알고 있다.


엄마는 그랬지만 엄마보다 좋은 어른들이 계셔서 책 멀미 극복하고 있다.

털보부인, 꽃친 샘들, 외삼촌.

아흐, 이런 키미테 같은 고마운 어른들.







지난 주 채윤이는 꽃다운 친구함께  2박3일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소중한 추억의 구슬을 하나를 만들어온 듯하다. 꽃친들 먹거리를 실어 나르는 것을 핑계 삼아 월요일 저녁을 함께 보내고 왔다. 꽃친들은 아침 일찍 itx 타고 출발하여 남이섬으로, 레일바이크 체험으로 신나게 하루를 놀고. 우리 부부는 느긋하게 출발하여 숙소인 '강원도 숲체험장'에  먼저 도착했다.


숲체험장은 또 뭔가 싶었는데. 신혼 초에 우리가 많이도 다녔던 국립 휴양림 같은 곳었다. 아, 그러고 보면 우리 채윤이 태교를 거의 휴양림에서 했었다. 기타 하나 들고 휴양림에 가서 자고 피톤치트 많이 나온다는 오전에는 숲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그랬다. (우왕, 태교 잘했다.) 무슨 데쟈뷰처럼 아기를 가진 젊은 부부 하나가 손잡고 우리 곁을 지나간다.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언제 우리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다. 

   






'어이구, 좋다!' 숙소 거실에 대자로 누운 남편을 두고 '쑥 캐러 걸 거야' 하고 나왔다. 양지 음지를 오가며 아직 어린 쑥을 캐는데 아, 기분 최고! 봄볕 아래 이 고요한 기쁨을, 향긋한 생명력을 채취하는 풍성함을 뭐라 표현할까? 빽빽한 일상의 숲속 빈터에 비치는 햇살 한줌 같은 시간이다. 남편이 나와 합류했다. 서울(가까운 하남) 촌놈이라 쑥과 냉이 생김새 향, 쓰임새를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는데 역시 학구열 높은 착한 학생이다. 게다가 성실하기까지 하다. 조금 건드려보다 자리 옮기고 금세 또 다른 곳을 찾아 일어나는 나와는 달리 성실하다. 한곳에 딱 앉으면 그 주변을 쑥을 다 접수하여 쑥대밭 만들어놓고야 자리를 뜬다.


길다란 몸을 구부정하게 접어 쑥을 캐는 남편을 바라보노라니 뜬금없이 '사랑받는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허용하고 게다가 함.께. 해주는 것'이 내가 가진 '사랑받음'에 대한 정의 중 하나. 그래서 신혼 때 남편이 놀리곤 했다. '같이? 같이 할까? 빨래 같이 갤까? 장보러 같이 갈까? 같이 먹을까?' ('같이 가치'라는 말이 만들어지기 전 나는 이미 살았었다고) 문제는 김종필에게는 '혼자, 조용히'가 중요한 가치였다는 것. 몸은 물론 정신적 영적인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서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걷고, 책 보고, 글쓰는 시간이 필요한 남자.


같이 가치 vs 혼자 가치

교차점 없을 듯한 가치의 대결이 상생의 가치가 된 것은 그가 자기 경계를 먼저 허물었기 때문이다. '같이 있기' 위해서 혼자의 가치를 기꺼이, 자발적으로 먼저 포기해주었다. 한쪽에서 무기를 내려놓으면 마주 선 이도 자연스레 무장해제 하게 된다. 관계, 사랑하는 관계의 신비이다. 그가 '같이 가치'를 기꺼이 수용해주고 수 년이 지나자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혼자 가치'를 보는 눈이 생겼고, 누릴 힘이 생겼다. 아니었음 여전히 삐지고 수십 미터 장벽을 쌓았다 허물었다 하고 있을 터.






아이들과 샘들, 함께했던 부모님들이 속속 도착하자 시끌벅적해졌다. 푼수 부부 컨셉으로 시끌벅적에 아재 개그, 막던져 개그를 보태며 둘이 좋아라 킥킥거린다. 어머, 아이들 사이 우리 채윤이가 집에서 보는 모습과 거의 다르지 않다. 이게 웬일! 친구들 쌤들 성대모사를 하고 흥분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일곱 살 채윤이가 돌아오는 것 같다. 한참 고기를 굽고 있는 아빠에게 와서 채윤이가 살짝 그랬단다. '아빠, 오늘 함께 와줘서 너무 고마워' 채윤이가 얼마나 좋았을지 짐작이 된다. 엄마 닮아 '함께 같이'가 좋은 아이가 아닌가. 다녀와서는 '엄마, 나 아빠가 너무 좋았어. 황당 퀴즈 ***가 퀴즈를 내면 맞히는 사람이 없거든. 그런데 아빠가 딱 맞히고 게다가 더 황당한 얘기로 ***를 당황시켰어. 하하하하. 아빠가 고기 구으면서 ***이랑 오래 얘기하는 게 참 좋았어'


언젠가 깊은 기도와 성찰 끝에 남편이 했던 얘기다. '나는 성경 말씀 중 오 리를 가자하는데 십 리를 같이 가 주라는 말씀이 제일 어려워. 오 리가 다 뭐야. 나는 조금 같이 가면서 가는 방법 알려주고 혼자 가라고 하고 싶은데.' 이런 자기인식의 힘이 컸다. 시간, 의미 있는 시간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남편이 아내와의 하릴 없는 수다에 기꺼이 시간을 허비해주기로 작정한 것을 안다. 새벽부터 밤 10시 11시까지 쉴 새 없이 심방하고 일하고 들어오는 화수목금토일을 사는 남편이 월요일마저도 아내와 같이 놀기, 채윤이 노는 곳에 따라가 주는 것이다. 십 리를 함께 가주는 마음임을 안다.


그러니

이 아빠, 이 남편 찬양 받기 합당하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종필은 짱, 종필은 짱~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  (2) 2016.08.09
JP&SS 결혼 17주년  (7) 2016.05.09
Sabbath diary21_자식 걱정, 끝나지 않는 대화  (2) 2016.04.06
Sabbath diary20_인생은 찰나다  (2) 2016.03.21
사진과 시간  (6) 2016.03.01





[쥴리엣 비노쉬 분의 안나는 장성한 아들을 잃었고 막 장례식을 마쳤다. 집안dml 창문이란 창문에는 검은 천이 드리워진다. 빛이라고 없다. 캄캄하다. 안나에겐 표정이라곤 없다. 깜깜한 공간에 전화벨이 쩌렁쩌렁 울린다. 죽은 아들의 여자 친구 잔이다. 천진난만하게도 안나의 죽은 아들을 만나러 오겠다는 것이다. 안나는 그러라고 한다. 마치 아들이 집에 같이 있는 것처럼. 잔이 온다. 공항씬에서 엄청난 미쟝센을 흩뿌리며 온다. 남친 집에 도착했는데 그리운 남친은 없고 뭔가 음울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남친의 엄마, 어두운 기운만 만연하다. 남친과 헤어지나 마나 하는 기로에 서서, 이 남친을 놓치고 싶지 않아 모든 걸 내려놓고 찾아온 잔은 이래저래 불안하다. 그리운 남친은 부활절이면 돌아온단다. 아, 안심이다.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야. 부활절이면 돌아온다니까. '부활절에 돌아온단다.' 잔의 남자친구가 부활절이 온다면 안나의 아들은 언제? 


영화 첫장면은 피에타 이미지이다. 부활로 가는 길의 시작은 성금요일이다. 주님의 보혈, 주님의 보혈, 보혈의 잔, 구원의 잔.... 그런 것이 아니다. 십자가에서 주검으로 내려온 아들을 안은 마리아. 단지 마리아가 아니라 당신의 아들을 제물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하나님 어머니)의 마음이다. 제 몸으로 품어 살을 찢는 고통으로 내놓은 생명을 받아들었던 그날, 그 경이의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끝도 없을 것 같은 출산의 고통 끝에 '응애응애' 존재를 드러내는 생명, 그 생명을 처음 가슴에 품었던 기억. 바로 그 품으로 싸늘하게 식은 몸을 끌어안아야 하다니. 믿을 수 있는 일인가?


2년 전, 고난주간에 세월호와 함께 꽃다운 아들 딸들이 침몰했다. 그 주간 끝 부활주일, 그리고 일 년이 지난 부활주일, 심지어 2년이 지난 올봄에도 세월호는 여전히 차디찬 바닷속에, 아이들의 죽음 역시 진실의 빛을 보지 못하고 갇혀있다. 피에타. 아들의 주검을 안아보는, 그 고통을 가슴에 안아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엄마들이 있다. '응? 너의 남자친구? 부활절에 돌아와'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상실감 앞에서 작동하는 심리적 방어기제 '부정'일뿐.....]



여기까지 썼다.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을 보고 리뷰 쓰기를 시작한지 두어 달. 저녁마다 블로그를 열어 완성해보려 했지만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두 달 동안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한 게 저거다. 미완으로 마무리 하려고 한다. 쓰고 싶은 말이 참 많다. 영화 보고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은 사무실 책상에 포스터를 붙여놓고 있다. 죽었다 부활절에 살아난 아들은 단 하나. 마리아의 아들 예수님 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의 엄마 안나처럼 아들을 잃은, 자기 생명의 한 기둥이 무너져버린 엄마들은 모두 부활절을 기다린다. 아들 딸이 살아 돌아오리라 믿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분만의 죽음과 부활이 아닌 것을 알기에 부여잡는 것이다. 그것은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이 참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이 영원히 가라앉는다는 소망 아닐까.


세월호 2주기를 맞는, 하늘이 어두운 토요일이다. 아직 세월호는 성금요일이다. 사흘 동안 지옥으로 내려가신 아들을 고통스럽게 끌어안고 있는 그 시간일 뿐이다. 영화가 건넨 많은 질문에 대해 생각의 길은 열어놓되 글은 뚝 잘라 여기서 멈추겠다. 대신 '예은이가 불러주고 진은영 시인이 받아 썼다'는 시를 읽는다.  



<그날 이후>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갈 때 핸드폰 충전 안 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다 어울리는 우리 엄마에게 검은 셔츠를 계속 입게 해서 미안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포근한 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 사이에서 햇빛이 따듯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 해가 저물어

엄마 아빠가 기억의 두 기둥 사이에 매달아놓은 해먹이 있어
그 해먹에 누워 또 한숨을 자고 나면
여전히 나는 볼이 통통하고 얌전한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아이
제일 큰 슬픔의 대가족들 사이에서도 힘을 내는 씩씩한 엄마 아빠의 아이

아빠, 여기에는 친구들도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어
"쌍꺼풀 없이 고요하게 둥그레지는 눈매가 넌 참 예뻐"
"너는 어쩌면 그리 목소리가 곱니,
어쩌면 생머리가 물 위의 별빛처럼 그리 빛나니"

아빠! 엄마! 벚꽃 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소년과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들과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내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 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가도 슬퍼하지마
아빠, 새벽 세 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하은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쌍둥이 하은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게 될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중에서






선거를 앞두고 혼자만의 특별기도 기간이었다. 설거지하며, 운전하며, 운동하며, 침대 누우면 잠들 때까지 '이 땅을 긍휼히 여기소서' 시시각각 기도가 올라왔다. 이 부조리한 나라, 이토록 추악한 조국 교회에 그분의 시선이 머물까? 과연 그러할까? 자주 생각한다. 실은 그분을 믿는 만큼 더 자주 상심하게 된다. 선이 이기고 약한 자가 우뚝 서고, 우는 자가 눈물을 그치게 되는 일이 있었던가? 동화 속 이야기도 아닌데 왜 강하고 착한 사람은 없고, 착한데 잘 되는 사람 찾기 어려운 걸까? 상심하지 않기 위해 기도했나 보다. 어떤 결과를 보더라도 그 12월의 멘붕을 다시 겪을 수는 없다, 마음 단단히 먹자, 하는 기도. 아니, 그것만은 아니다. 부조리하고 추악한 나라와 교회의 궁극적 통치자가 그분인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 할지라도 사실 나는 믿는다. 그래서 더욱 절절한 기도였다.


남편 퇴근하고 돌아오면 잠시 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 남편이 그날그날 판세를 읽어 분석해주고 나는 주로 한숨 내쉬거나 분통 터뜨리며 감정을 쏟아 놓는다. 실은 그 시간마저도 기도이다. 냉정과 열정, 두 개의 마음이 바라는 건 결국 하나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공의가 하수처럼' 흐르는 세상. 그것을 꿈꾸는 기도이다. 


우리 동네 국회의원 정청래가 컷오프되었을 때는 사실 눈물이 났다. 나는 정치적인 사람이 제일 싫다. 정치인도 마찬가지. 정치적인 정치인이 싫다. 언어에 이중 메시지를 담은 사람과 대화하는 건 짜증 나는 일이다. 뒤에 뭔가가 잔뜩 있는 것 같지만 당장 하는 말과 처신이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 이런저런 팟캐스트를 들어봐도 정청래 컷오프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정치 무관심자가 되자, 결심했다. 작심삼일. 무관심은 무슨! 정치는 일상과 가장 가짜이 닿은 세계인데 어찌 무관심이 가능하리. 마음을 추슬렀다. 다시 기도했다. '하나님, 정청래 컷오프라니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 손혜원이 안 되면 저 정말 또 며칠 못 일어나요. 손혜원 부탁드립니다. 하나님, 밀어주세요'


컷오프된 분들이 정청래를 중심으로 탈당하지 않고 유세단을 짰단다. '더컷유세단'이라 지은 이름을 손혜원 님이 '더컸유세단'으로 다시 작명했다고. 임영수 목사님 계신 양평의 '모새골_모든 것을 새롭게' 역시 카피라이터 손혜원 (이제는 의원님이다!!!!)의 작품인 걸 아시는지. 더컸유세단을 보며 희망의 불씨를 마음에 담았다. 반장 선거에 나가 떨어져도 그 상실감이 한참 가더라. 많은 국민(당원?)의 사심없는 지지를 받는 좋은 사람들이 컷오프를 당하고 얼마나 상심이 컸을까. 그리하여 다들 당을 뛰쳐나가지 않던가. 헌데 유세단을 구성하여 내 자리를 꿰찬 사람의 손을 들어주고 춤을 추며 응원을 할 수 있다니. 감동, 감동, 감동이다.


이기심 vs 이기심, 움켜쥠 vs 움켜쥠, 나만 옳다 vs 나만 옳다. 끝없는 갈등이 양산되고 양산될수밖에 없는 정치판의 기저이다. 어디 정치판뿐인가. 갈등하는 교회도, 갈등하는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리고, 두 대를 맞다니! 재빠르게 네 대 때리고. 컷오프라니! 욕하고 탈당하기. 다들 (해봐서 잘) 아는 갈등대응 방식이다. 헌데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한 대 맞았는데 '아야, 에잇..... 공평하게 양쪽 다 때려줘. 왼쪽도 한 대 더 때려' 한다면. 컷오프 됐는데 '어디 나 퇴출시키고 그 자리 지키나 보자'하지 않고 그 자리 지키도록 돕는 것 말이다. 이것은 정말 감동 아닌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설령 멀리 내다보는 고레벨의 정치 안목이라 해도 당장 이러기는 쉽지 않다. 높이 산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자신들이 상처 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가시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다. 자기도 모르게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언제든 찌를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희생자, 피해자로 규정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더컷'은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더컸'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권리 당위를 깨고 나온 사람들. 짤렸지만, 짤려서 상처받고 아프지만 그 자리에서 뒹굴지 않고 한 뼘 더 크기로 선택한 것이다. 크기로(자라기로) 선택하다니? 키 크는 것이 내가 크기로 결정한다고 해서 되는 일인가? 성경에도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라 하지 않는가. 아니다. 마음의 문제에선 가능하다. 상처라는 악의 순환고리를 끊고 궁극의 긍정을 지향하기로 한 사람들, '상처 입은 치유자'라 불러도 좋으리. 자신의 상처를 다 치유한 후 작위처럼 수여받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나는 아프지만 거기 뭉개고 앉아 있지는 않겠다는 의지. 거창하지도 않은 그 자.발.적. 의지 하나면 족하다. '더컷'과 '더컸'은 결국 '시옷' 하나 차이이다. 


이렇게 쉬운 것을 하지 못하고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상처 입은 자신을 방어하고, 방어하기 위해 잔인하게 공격하는 일을 얼마나 자주 보게 되는가. 아니, 얼마나 자주 그러고 사는가. 선거를 위해 기도했다. 아니, 선거 이후의 나를 위해 기도했다. 믿음과 소망, 사랑이 뿌리째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설령 선거에 이기더라도 여전히 세상은 부조리할 테니) 개표 결과로 일단 기쁘지만 생각이 자꾸져 먹구름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느낌. 웃음 끝이 자꾸 쳐지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 그래도 좋을 걸 생각하자! 정말 되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안 된 것을 보면 다시 입꼬리 승천. '거봐, 하나님 살아 계시쥐?! 음하하하.' 무엇보다 손혜원을 우리 동네 국회의원으로 가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잖아. 박주민 변호사 당선은.... 정말 이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이 난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꽃은 '더컸유세단!'. 내겐 그렇다.  


총선을 위한 나만의 특별기도회, 기도 응답이 풍성하다.













# 출간작업 

# 벚꽃과 그리움 

# 술과 신앙

# 죽음과 천국

# 너나 잘하세요

# 아버지와 아들


이런 키워드가 전에 쓴 글을 하나 불러냈다.


사진의 아버님이 생일 맞은 현승이를 위해 기도문을 적어 읽고 계신다. 문득 의문이 든다. 아버님은 당신을 '신앙인'으로 규정하신 적이 있으실까? 교회에 안 빠지고 나가셨지만, 삶의 기쁨과 슬픔 앞에 가끔 기도할 줄 아셨지만 '믿음'에 관한 한 어떤 자의식도 없으셨던 듯. 믿음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많아도 성경을 한 번 안 읽는며 어머님께 핀잔은 많이 들으셨다. 그런 아버님이 사랑하는 손주 생일에 손수 써서 준비하셨던 기도문, 식상한 표현 뿐이어서 신선했던 그 기도가 문득 뭉클하게 그립다.


전에 크로스로에 연재했었고, 일정은 멀리 있지만 책으로 나올 글이다.

 


[아버님의 소주잔]


설거지를 하려고보니 그릇 사이로 소주잔 하나가 뒹굴고 있다. 배시시 웃음이 샌다. 큰 녀석이 그릇장 안쪽에 있던 걸 꺼내서 물 컵으로 사용하고 휙 던져 놓은 것일 터이다. 보수 기독교 골수분자의 집에 웬 소주잔? 이것은 정통 보수 기독교 골수분자인 며느리가 단 한 분, 시아버님을 위해서 마련한 아버님 전용 소주잔이다.

 

나는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대학(그것도 걸걸한 여대)도 다니고 사회생활도 했기 때문에 술자리, 술문화가 전혀 낯설지 않지만 결혼하기 전까지 집안에서의 음주행위는 상상도 못하고 자랐다. 신혼 초에 시댁에서 잔치가 있어서 처음으로 설거지 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설거지 그릇 중에 소주잔이 여러 개 있었는데 살짝 손이 떨리는 거였다. ‘, 내가 술잔 설거지를 하다니. 우리 엄마 알면 뭐라 하실까?’ 이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문화충격이었다.

 

겉으로는 술도 같이 한 잔 안 마셔주는 아들 소용없다며 호기로우셨지만 아버님도 늘 아들 며느리 눈치를 보셨다. 착하고 소심하신 아버님은 같이 식사를 하러 나가서 한 잔 생각이 나셔도 냉큼 주문을 하지 못하셨다. 어느 날 부턴가 식당에 가면 쭈뼛거리시는 아버님에 앞서 먼저 소주 한 병 주문을 했다. 착하고 소심하신 아버님의 약주사랑이 참 곱게 느껴졌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평소 말이 없으신 분이 약주 한 잔 하시면 유쾌해지시기 때문이었다.

 

식당에서 뿐 아니라 아버님 생신을 우리 집에서 차려야 하는 날에 장을 보면서 과감하게 소주 몇 병을 카트에 담았다. 상을 받으시고 뭔가 허전하다 싶으셨던 그 순간에 냉장고에서 나온 초록색 병에 아니, 이걸 샀어?”하면서 좋아하시던 아버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집에 소주잔이 없어서 머그컵에 소주를 따라 드셨고, 그 이후 언젠가 아버님만을 위한 소주잔을 갖춰 놓게 되었다.

 

그 힘들다는 워킹 맘으로 두 아이 양육하기가 아버님의 도움으로 참 수월하였다. 아이를 좋아하실 뿐 아니라 여성보다 더 섬세하고 살뜰하게 보살피시는 아버님으로 인해서 참 팔자 좋게 일하고 양육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자라서 어느 정도 독립이 되었을 때도 전화만 하면 언제든지 집으로 오셔서 유치원 마친 아이를 맞아주시고 간식을 챙겨주시기도 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 씩 집에 오셔서 방과 후의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기간이 있었다. 막내아들이 늦깎이 목회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기도 했다. 일을 하고 밤에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면 검정 비닐봉지로 꽁꽁 싸인 병이 하나 들어 있다. 낮 시간에 아이들과 떡볶이 간식 사다 드시며 한 잔 걸치시고 남은 막걸리였다. 행여 목회자 아들 집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가 누가 될까봐 어찌나 꽁꽁 싸매두셨는지…….

 

무엇을 드셔도 척척 소화시키신다고 자랑이시던 아버님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50여일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가신 지 1년이다. 아버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받아 들이시기에는, 남은 우리들이 떠나 보내드릴 준비를 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당황해하며 혼란스러워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수십 년 교회를 다니셨지만 예수님을 향해서 살가운 표현 한 번 입 밖으로 내지 않으셨다. 믿음 좋은 아내와 자녀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가신다는 식으로 주일마다 꼬박꼬박 예배는 빠지지 않으셨다. 교회 일에 열심인 어머님을 향해 내가 수염 영감탱이 예수한테 마누라를 뺏겼어. 아니 영감탱이가 아니지하셨다. 늦게 신학교에 가서 열정을 다해 공부하는 아들이 좋은 성적에 장학금을 받아오자 못내 아쉽다는 듯 이제라도 그 머리로 공무원 시험 봐라시며 먹고 살 걱정을 하시기도 하였다.

 

그런 아버님을 바라보며 아버님과 함께한 마지막 50일 동안 내가 한 짓이 무엇이었던가. 믿음 없으신 아버님이 입술로 고백하시도록 해야 한다며 속으로 얼마나 안달복달 했던지. 맘먹고 사영리를 들고 아버님과 독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주변에서는 그런 얘기 할 수 있는 건 그래도 막내며느리가 제격이라며 기도하며 서둘러라하는 사랑어린 재촉도 있었다. 새벽기도에 가면 내 불안에 겨워 이 땅을 떠나시는 아버님이 당신의 품에 눈뜨게 해달라며 빗물 같은 눈물을 쏟아내곤 하였다.

 

설상가상 아버님께서는 심방오신 분들과 예배드리는 걸 거부하셨다. 마지막 호스피스 입원 중에 간호를 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병문안을 오셨다. 간단히 예배드리려 하는데 고개를 돌리신다. 싫어하시는 것이 역력한데 그 자리에 계시도록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버님, 한 바퀴 돌까요?’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기도하시는 분들을 뒤로하고 나오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한편으론 불안의 솜방망질이던지. 믿음, 구원, 믿음, 입으로 시인, 구원, , 혼란스럽다.

 

남겨진 시간이 얼마만큼 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아버님이 하늘나라로 가시던 날 우연인지 (그 분이 계획하신 필연인지) 연거푸 세 번 씩이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미 의식을 많이 잃으신 아버님께서는 그저 모든 것을 보호자의 판단에 내어맡기고 누워계실 뿐이었다. 마지막 예배는 막내 아들이 함께 한 자리였고 예배를 마치고 찬양 한 번 더 부르자는 목사님의 제안이 있었다. ‘죄인들을 위하여 주님 찾아 오셨네를 부르는 중 예수 안에 생명 있네.’ 후렴을 부르는 순간 우리 착한 아버님, 이 세상을 붙들었던 손을 가만히 내려놓고 하늘 아버지의 손을 잡으셨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것처럼 이 땅에서의 마지막 50일 동안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큰 육체적 고통도 없이 그렇게 지내시다 하늘 그 곳으로 돌아가셨다.

 

돌이켜보면 아버님의 마지막 50일은 한 없이 고요하였는데, 내 마음은 양철지붕에 소나기 떨어지듯 요란했다. 그 요란한 양철지붕 아래에는 나는 믿음이 있고, 아버님은 믿음이 없다는 일말의 의문도 없는 전제가 숨어있다. 도대체 그 근거 없는 판단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이란 말인가?

 

아버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신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일하는 엄마였던 내게 든든히 기댈 언덕이셨던 아버님께서 떠나신 자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아버님께서 돌봐주시던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볼만큼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아버님께서 내게 무엇보다 큰 숙제와 더불어 엄청난 선물을 남기고 가신 탓이다. ‘너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는 한 마디를 마음 깊은 곳에 넣어주시고 가신 탓이다. 마지막 50아버님 믿음의 고백, 입술의 고백이러면서 안달복달 하던 내 마음의 깊은 동기가 진정 천국에 대한 소망이었는지, 믿음의 기도였는지를 처음부터 되짚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님의 믿음이 아니라 내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하는 영원의 원점 같은 곳으로 돌아와 섰다.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하던 기간과 신종플루 걸렸던 주간 외에는 주일에 빠져본 적이 없다?(이걸 가지고 주일 성수했다며), 청년 때부터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하고 많은 교회봉사를 했다? 미운 사람이 생겨도 하나님, 원수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하면서 예수님 코스프레를 좀 하고 산다? 그런 것들에 근거한 나는 믿음 있는 사람라는 확신에 겨워 살아온 날들에 씌운 거품을 비로소 확인한다.

 

소주잔을 보면 한 잔 하신 아버님께서 흥에 겨워 부르시던 뽕짝 멜로디가 생각난다. 또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라 하시며 부르시던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소심하게 흥얼거리시던 허밍 같은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지막 50일을 걱정 대신 사랑으로 더 잘 떠나 보내드릴 걸하는 후회 같은 건 넣어두려 한다. 터무니없는 자기의의 발로로 발을 동동 구르며 보냈을지언정 아버님과 하늘 아버지 사이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 같은 사랑의 교제가 있었을 터이니. 또한 다른 사람들의 믿음 없음에 관한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과대 포장된 내 믿음의 자가 평가서나 돌아볼 일이다. 다만, ‘거기서 해처럼 밝게 빛나실아버님이 오늘 더욱 그리운 것이다. 소주잔을 닦다 그 투명한 유리에 어른거리는 아버님의 모습이, 생색내지 않으셔서 더 따스했던 그 사랑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다.

 

입으로는 하늘소망을 그럴 듯하게 노래하면서도 마음으론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곳이 천국이다. 이 땅에서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하시던 손주의 작은 손을 놓자마자, 바로 그 순간 영원한 하늘 아버지의 손을 잡으셨다 생각하니 천국은 얼마나 가까운 곳인지. 우리네 삶과 얼마나 가깝게 붙어있는 곳인지. 아버님과 함께 한 13년 동안 내가 필요한 것을 그렇게 주시기만 하시더니 떠나시면서 가장 귀한 선물을 남겨두고 가셨다. 깨끗하게 닦아놓은 소주잔에 남겨두신 사랑과 선물이 어른거린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