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것이 책 선물인데요.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다면 일단 읽히는 책을 줘야 한다~

,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혼 시즌에 부조금 끼워서 주기 딱 좋은 결혼 책 <와우결혼>.

꽃피는 결혼 시즌에 정장 빼입고 남의 결혼식 다니느라

영혼 탈탈 털린 친구나 후배에게 위로와 소망으로 건네줄 책 <오우연애>입니다.

선물하시면 고맙다, 잘 읽었단 말 꼭 듣습니다!

  

<와우결혼>은 가정의 기초를 놓던 신혼 시절,

매달 남편과 투닥거리며 썼던 '부부가 함께 쓴 신혼일기'입니다.

<오우연애>는 결혼의 과업을 이룬 30대의 내가 20대의 나인 '은혜'에게 들려주는

애정어린 연애상담 이야기입니다.

  

글쓰기에서 원칙이 있다면,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하되 오래오래 되새김질 하여 책 안 읽는 독자들도 읽게 만드는 글을 쓰자! 입니다. 책 덕후들이 모으는 책 말고, 책 안 읽는 애들이 ', 이 책 읽어봐. 앉은 자리에서 다 읽게 돼' 하는 책이요.

 

그래서 선물하기 좋은 책입니다.

제 입으로 이렇게 말하자니

........

이제는 민망스럽지도 않습니다.

뻔뻔해졌거나 당당해졌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내일 대구의 어느 교회에 가서 1교시에는 청년들 대상으로 연애 강의,

2교시에는 신혼부부 대상으로 결혼 강의하거든요.

강의 준비하며 내친김에 자작 뽐뿌질(문법 검사기가 부적절한 표현이라며 '구매 욕구 자극'이라고 수정하랍니다. 캬캬, 바로 이 말입니다.) 한 번 갑니다.

다시 사랑해 주십쇼. 오우연애! 와우결혼!

 

이쯤에서 [와우결혼] 서문 한 조각 읽어볼까요?

 

와서 보라! 는 이 자신감은 출처는 저희들 안에 있지 않음을 밝힙니다. 일단 와서 보시면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 결혼생활은 아니란 것을 금방 아시게 될 것입니다. 싸우고 두려워하고 비난하며 상처받기도 하는 결혼생활이지만 이것이 세워진 주춧돌을 보여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 분의 사랑을 흉내내보는 부부의 사랑만으로도 감히 행복한데, 그 분의 사랑은 어떠할지를 가늠해봅니다. 진짜 사랑이라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그 손가락 같은 결혼을 와서 보십시오.

 

[오우연애]에도 남부럽지 않은 서문 쯤은 있지요. 이것도 한 조각.

 

돌이켜보면 저 역시 연애 문제에 관한 좋은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구도자였습니다. 그래서 펼쳐 든 하늘 아버지의 말씀 성경에선 도통 힌트조차 찾기 어려웠습니다. 수 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하나님 말씀 속에 내 질문에 맞아 떨어지는 모범답안 하나가 없다니요. 이 지점에서 저는 성경이 수많은 사람들의 이...라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창조주께서 주신 인생사용설명서인 성경에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해 명료한 답을 적어 주지 않으시고, 생뚱맞게도 그 많은 사람들의 길고 긴 이야기들을 주신 하늘 아버지의 뜻을 헤아려본 것이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맞닥뜨린 기로에서 뭔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인해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자꾸자꾸 읽다 보면 필연적으로 나를 빗대어 보게 됩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이 질문에 이르러 저는 수많은 이야기에 담긴 그 분의 배려와 사랑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에 제 고민과 갈등을 포개며 하루하루의 산을 넘다 뒤돌아보니 어느 새 저 만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이 책은 이야기를 빙자한 연애 훈수두기입니다. 성경적 데이트와 결혼을 꿈꾸는 은혜 자매의 연애이야기이지요.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은 은혜의 첫사랑부터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를 함께 훔쳐보게 되는 겁니다. 사실 은혜의 이야기는 필자인 저의 이야기이고, 제가 만난 많은 청년들의 이야기입니다. 남의 연애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면서 때로 공감하고 때로 의문을 품으며 여러분만의 연애사를 써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러다보면 여러분만의 답안도 찾아질 것입니다. 조금 먼저 살았다거나, 스스로 만족하는 결혼에 골인했다고 해서 제가 찾은 답이 여러분에게 모범답안이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외롭고 허접한 연애일상에서 이야기 라인을 읽어내는 눈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눈은 소망의 눈이고 믿음의 눈입니다.

  









"내외 간이(간에) 무슨 얘기가 그르케 재밌댜. 아주 그냥 잠도 안 자고 사바사바 뭔 얘기를 그르케 혔사. 내가 가만히 눠서(누워서) 들어봉게 우숴 죽겄네. 그르케 둘이 헐 얘기가 많여?" 전에 우리 엄마 귀가 아직 훤히 밝을 때 며칠 우리 집에서 지내시며 하신 말씀이다. 아닌 게 아니라 둘이 사바사바 할 얘기가 많다. 그러나 늘 그런 건 아니다. 수가 틀리면 같이 서너 시간 붙어 있더라도 말 한 마디 오가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그럴 경우 먼저 입을 닫는 쪽은 늘 우리 엄마의 딸이고, 먼저 말을 시키는 쪽은 엄마의 사위 김서방이다. 


월요일 데이트 이런 저런 계획이 무산되고 드라이브나 가자고 나선 길, 살짝 살얼음이었다. 어디갈까? 정신실 좋아하는 심학산 갈까? 그러든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없어! 음.... 꽃이 예쁘게 핀 데가 어딜까? 아무 데나 가! 아이스를 브레이킹하려고 김서방이 애를 쓴다. 김서방 한 마디에 대답도 한 마디, 살얼음은 잘 깨지지 않는다. 김서방 한 마디에 그의 처가 열 마디 쯤 받아쳐야 사바사바가 되는데 말이다.  뚝뚝 끊기던 말이 따그닥따그닥 달리기 시작한 건 어쩌다 나온 이 한 마디, 아이들 얘기다.


- 그나저나 신앙이든 뭐든 현승이가 더 힘들 수도 있어. 채윤이는 오히려 수월했지.


맞아, 맞아. 내가 얘기 안 했지? 어제 현승이 중등부 예배 안 드리고 나랑 드렸어. 중등부 가기 싫다고.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딱 집어 설명할 이유는 없대. 그냥 중등부가 싫대. 이렇게 저렇게 물어보니까 왜 교회가 학교 같이 하냐고. 이름도 교회 학교가 뭐냐고. 교회는 뭔가 학교랑 달라야지. 틀이 딱 있어서 학교같이 돌아가는 게 싫대. 일단 같이 예배 드렸어. 어른 예배는 좀 낫냐고 했더니, 더 나아서 드리는 게 아니고 이것도 안 하면 엄마가 중등부 안 가는 걸 허락하겠녜. 중등부 예배도, 어른들 예배도 좋은 건 아니라고 해서 하나님도 안 좋냐고 했더니 짜증을 확 내더라. 걱정이야.


- 채윤이는 교회를 좋아하잖아. 두 녀석이 참 달라.


그럼. 이 나이 아이들은 일단 재미로 교회 다니는 거잖아. 우리도 그랬잖아. 친구가 좋고, 가서 뭔가 재밌고, 그러다 신앙이든 교회 문화든 스르르 젖어드는 거잖아. 채윤이는 딱 그런 거지. 찬양팀 하면서 뭐가 뭔지 아무튼 감정에 젖어보고, 작년에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찬양으로 나름 체험했잖아. 현승이는 그런 게 없어. 시선이 밖으로 가 있어서 외부 영향을 쫙쫙 받는 외향형 채윤이, 자기 안에서 오케이가 떨어져야 움직이는 내향형 현승이. 어쩌면 그렇지? 딱 영화 <늑대아이>의 유키와 아메지? 그 남매와 우리 채윤이 현승이가 똑같애. 현승이는 안 믿어지는 건 안 믿어. 모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 종교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건데, 우리는 하나님 믿으니까 하나님을 진짜 신으로 생각한다는 거야. 죽음을 엄청 두려워하는데 하나님, 천국 이런 것들은 전혀 실재하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나봐. 정말 걱정이야.


- 좋은 거야. 스스로 끝까지 사유해서 하나님이 없다, 까지 다다르면 거기서 새로운 생각이 싹 터.


그렇지? 대부분 철학자들이 그랬더라. 어렸을 적부터 이해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끝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그랬더라고. 톨스토이 같은 작가들도 그렇고. 현승이한테 그 얘기도 해줬어. 하긴 나도 청년들이 질문을 던지지도, 스스로 사유하지도 않으면서 믿는다고 착각하는 게 답답해. 흔들리고 방황하더라도 자기 하나님을 찾아가는 게 필요하지. 그거 안 하면 나처럼 나이 들어서 한 판 뒤집어지는 거야. 아, 그래도 현승이가 저렇게 사춘기 지내다 정말 신앙에서 떠나거나 그러진 않겠지? 요즘 현승이 정말 비기비기 꼴비기야.


- 괜찮아. 현승이가 자연스럽게 보면서 배우는 게 있잖아. 우리를 보고, 집안에 구석구석 상징들이 있잖아.


하긴. 아이들이 말로 하는 걸 배우는 게 아니라 젖어드는 것을 습득하지. 탕자의 그림도 있고.... 아, 영성심리 공부할 때 그랬어. 영성형성에서 아주 중요한 축이 전통이라고. 헨니 나우웬 신부님 글에도 이콘 묵상이 많이 나오잖아. 절기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기도와 간단한 의식들이 어디로 가진 않을 거야. 그치? 결국은 우리가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아. 아이들이 클수록 말로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이 두렵고, 의미없다고 느껴져. 


- 예전(禮典)이란 게 중요한 거야. 형식만 남는 것이 문제지 적절한 의식이 필요해.

현승이 걱정하지 마. 녀석, 씨니컬하다가도 안아주고 부드럽게 대해주면 금방 녹잖아.

그저 사랑해주면 돼.


하긴 그래. 나 요즘 현승이한테 너무 딱딱하게 굴었다. 얄밉기도 하고 이젠 떠나보내야 할 때라는 생각도 들어서 거리두기 했거든. 중학교 가서는 마주하는 시간도 짧아졌고. 까칠하게 나오면 내가 상처받을까봐 먼저 방어한 것도 같애.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부드럽게 대하서 수용해줘야겠다. 맞아, 맞아. 보다 큰 긍정이 필요한데 말이지. 일깨워줘서 고마워. #^#$&@#!#^$%&ㅑㅑㅚㅐㅓㅔㅔㅔㅕㅑㅓㅐㅛㅢㅛㅔㅓ.....@#&........



# 사바사바 회복.

그가 한 문장 던지면 내가 5분 얘기하고, 또 한 마디 하면 백 마디 하고.

이런 게 우리의 사바사바였다.

주제로는 아이들 얘기가 최고다. 끝이 없다.

사진은 채윤이랑 양화대교를 걷다 강변을 내려다보며 얻은 한 컷이다.

"엄마, 저기 할머니 할아버지 봐. 너무 감동이야. 난 저런 장면이 왜 이리 뭉클하지? 나중에 엄마 아빠가 늙어서 저런 모습일 걸 상상하면 더 뭉클하고"

채윤이 엄마 아빠 늙어서 저런 모습일 때, 사바사바 채윤이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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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일 년이라서 월화수목금토일 매일 한가한데도,

그래도 주말을 다르고 싶은 모양입니다.

엄마..... 엄마, 글 쓸 거 있어? 나랑 목욕 갈래? 아니면......

됐거든. 엄마 매일 수영하고 늘 사우나 해. 엄마도 모처럼 쉬는 토요일이라 맘 편히 책 읽고 쉬고 싶어. 너대로 놀아.

딱 잘라 버리는데 쉽게 포기하고 방으로 쑥 들어가버리는 게 더 마음이 쓰입니다.




날씨는 디게 좋고.

채윤아, 엄마랑 한강 갈까?

채윤이야 '엄마랑 놀기'는 늘 목마른 건데 뭐든 콜이지요.

보던 책 딱 접고 일어섰습니다.

한강에 나가 걸으며 멀리 바라봅니다.

건너편 선유도 공원의 연하디 연한 분홍빛, 연두빛이 눈길을 확 사로잡습니다.

너 선유도 공원 가봤어? 정말? 여기서 5 년짼데 한 번도 안 봤어? 갈래?

내친 김에 선유도 공원까지 걷습니다.





너무 예쁘다, 너무 좋다,를 남발하는 채윤이에게

"채윤아, 하나님 창의력 쩔지? 어쩌면 저렇게 꽃마다 잎마다 색깔이 달라?"

"엄마,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래? 엄마는 자주 하는데. 그나저나 저 색깔 좀 봐. 저  버드나무 말야. 수양버들.

수양버들 꿈꾸는 길에 꽃가마 타고 가네..... 이런 노래도 있는데"

(부르지 말 걸. 너무 올드하다)

"저 나무 이름이 버드나무야? 현승이랑 나는 저걸 열쇠나무라고 부르는데. 덕소 할머니 집 가다보면 저 나무가 있는데 어느 때부턴지 열쇠나무라고 불렀어"

"아무튼 엄마는 바로 저 연두색, 딱 이때만 볼 수 있는 저 색깔을 보면 죽을 것 같애.

좋아서."

(채윤이 쩜쩜쩜)





4월 1일 금요일,

만우절을 기점으로 인근의 꽃들은 동시에 봉우리를 터뜨리기고 약속한 모양.

목련 먼저, 개나리 먼저..... 이런 순서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피기로 한 모양.

그래도 아직은 봉우리가 대세입니다.

그늘이라곤 없는 곳에 서 있는 탓일가? 화알짝 피어서 곧 져버릴 것 같은 목련이 있네요.

"채윤아, 그런데 꽃이 피면 좋은데 왜 활짝 핀 꽃보다 늘 봉우리가 더 예쁜 걸까?"

"아닌데. 나는 어설프게 핀 꽃보다 활짝 핀 꽃이 더 좋은데....."

"아, 그렇구나. 넌 젊어서 그래. 그렇지. 활짝 피어야지....... 으흐흐흐"

"엄마, 나는 자연이 이렇게 좋다는 걸 최근에 알았어.





하긴, 꽃봉우리 같은 채윤이에겐 이제 활짝 피울 일이 남아 있지요.

암요. 그렇고 말고요. 이제야 비로소 생의 봄날을 맞은 건데요.

인생의 정오를 지나고 막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한 엄마 눈에 예쁜 것과는 다르겠네요.

그리 생각해보면 생의 봄날을 사는 아이에게, 가을 또는 겨울을 사는 이에게는

다른 것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나를 앞서 늦가을과 겨울을 사는 분들이 보는 세상을 쉽게 재단할 일이 아닙니다.

모두들 제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충분히 느끼고 살면 족합니다.

생의 봄날을 사는 채윤이가 짧아서 아쉬운 이 볕을 충분히 쪼이고 누렸으면 싶습니다.

그래야 어느 날엔가 활짝, 화~알짝 꽃피우겠지요.














무엇이 됐든 지나치게 애 쓰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

쉴 새 없이 일을 하거나 공부하면 몸이 상하고,

가만히 앉아서도 머리를 끝없이 돌리며 애를 쓰면 마음이 상한다.

힘에 지나치도록, 기름을 짜내듯 내 존재의 진액을 추출해내면

짧은 시간 찬사를 받으며 성취감 느낄 수 있겠으나 몸과 마음을 상하게 된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손내밀어 닿는 곳에서, 내민 손을 잡아주는 사람과 기쁘게 잘 지내는 것이

평범한 사이즈의 마음 그릇을 가진 나의 최선이다.

얼마나 자주 내 그릇에 넘치는 '완벽한 관계'에 매여 살았던가.

지금도 얼마나 자주 그 유혹에 빠져들어 근심하고 실망하고 짜증내고 있는가.

겸손을 가장한 오만함이며.


보잘 것 없고 을씨년스럽기만 한 우리 동네 작은 길가에 벚꽃이 터지던 날.

내민 손 잡아준, 동생같은 집사님(이라 불리는 청년같이 생긴 사모님)들과 놀았다.

음식을 간단하게 하시는데도 뭔가 근사하다는 칭찬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고

레시피 공개를 빙자하여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부끄럽다.

둘이,

다섯이,

넷이,

셋이

멤버 수가 바뀌면서 대화의 깊이도 훅 들어갔다 빠지고,

눈물 짓다 깔깔거리고.

추가 요금 없는 커피 리필은 기본.

하루의 만남이 풍성하기도 하다.


선물받은 것 사진 찍어 올리는 거 민망한 일인데,

일상 노출증 환자로서 참을 수가 없다. 에라~ 공개한다.

남기고 간 선물들을 모아 놓으니 꽃다발 같다.

화룡점정은  아래의 종이 액자이다.

present is present

구역장으로 갈팡질팡 하는 나를 '정리해주는 지혜자' 역할을 하는 집사님 선물인데

어쩌면 이렇게도 오늘을  정리해주는 선물. 

오늘이 선물이고, 선물은 바로 오늘이다.

오늘 여기서 내민 손 잡아주고 계산없는 말을 주고받는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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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아직 애기 얼굴인데 코밑만 시커매진 중학교 1학년 현승이(아, 적응 안돼).

아침에 방에서 나와 제일 먼저 하는 소리다.


나 밥 안 먹어.

나 밥 안 먹어. 배아퍼.

나 밥 안 먹어. 늦었어.


엄마로서는 이 말이 너무 듣기 싫고 아주 얄밉다.


일찍 일어난 새 아니고 일찍 일어난 엄마 아빠가 먼저 식탁에 앉아 있는데

머리에 새집 짓고 나오며 하는 말이 역시 '나 아침 안 먹어'​

고구마 먹던 아빠가 뿜었다.

'나도 어릴 때 일어나서 어머니 얼굴 보자마자 한 말이 저건데.

나 저 마음 알아. 큭큭큭큭'

따라서 웃고나니 나도 그랬던 것 같고 비기비기 꼴비기 싫던 마음이 사라졌다.


학교 가기 싫고 출근하기 싫은 마음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시간도 없다고 느껴지던 무거운 아침에 괜히 해보는 말.

나 밥 안 먹어.

그러면 엄마는 몸이 달아서 김에 밥을 싸서는 화장하는 내 입에 하나 씩 넣어주기도 했다.


아, 이 말은 '오늘 하루가 내게 무거움으로 와, 엄마' 이런 뜻인가보다.

아닌 게 아니라 중학교 가서 현승이가 하는 말들이 이렀다.


엄마, 7교시는 너무 길어. 7교시가 되면 1교시가 어제 일 같아.

엄마,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에 너무 오래 있는 것 같아.

집으로 와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너무 오래 학교에 있어야 해.

엄마, 선생님들이 수업시간 마다 다른 분이 들어오시는데 정말 재밌어.

말하시는 게 어쩌면 다 달라. 뭔가 게속 쓰는 말도 있고 말투도 있고,

어떤 선생님은 수업은 안 하고 계쇽 자기 자랑만 해. 진짜 뭔가 웃겨.

엄마, 우리 나라에 조금 다른 학교는 없어? 뭐랄까, 조금 사람을 생각하는 학교말야.

재미없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얘길 하시는데 7교시까지 듣고 있는 건 너무 이상해.

게다가 교복은 너무 불편하다고. 바지는 까끌까끌하고.

그렇게 불편하게 7교시나 앉아 있는 게 말이 돼?

힘들어. 나 언제까지 이렇게 학교 다녀야 해?


(생각해 보니 현승이 너 초등학교 때도 비슷한 말을 해다잉)

초딩 2주차 때 현승님 말씀(클릭)

(그리고 6개월 쯤 지난 후에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현실을 받아들인 듯)

초딩 1학년의 하루(클릭)

(1학년 겨울방학 즈음에는 말했다.)

세월은 빠르다(클릭)


급결론, 이 또한 지나가리라.

현승아, 1교시가 어제 같이 느껴지는가 하면

교복 입고 입학했던 3월이 그저께 처럼 느껴지는 방학도 올 거야.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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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입냄새, 이 사이에 낀 고추가루를 말해줘야 하는 일, 민망한 일이다. 괜히 혀를 더듬어 내 입속만 단속해보다 '나중에 거울 보면 알겠지' 포기하게 된다. 너 입냄새 구려, 너 음치인 것 알아, 우리 사무실 사람들 모두 너 때문에 힘들어.... 우린 다 아는데 너만 모르는 것 같아. 말하기 어려운 말들이다. 


마가렛트 여사는 음악을 사랑하고 노래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지만 음치이다. 이 사실을 본인만 모른다.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마가렛트 여사는 돈이 무지 많다. 음악 클럽의 후원자이기도 하니 음악을 사랑하는 고고한 클럽 회원들은 박수치며 그녀의 노래에 열광해준다. 그녀의 노래가 시작되면 입냄새 나는 친구 앞에서 숨을 참듯 견디다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참던 숨을 몰아쉬듯 '브라보!'를 외친다. 물론 조롱 섞인 브라보이다. 그러니까 '마가렛트 여사의 감출 수 없는 비밀'이란 마가렛트 여사만 아는 비밀이 아니라 그녀만 모르고 세상은 다 아는 비밀인 셈이다. 이 비밀을 이용해 대놓고 속이고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젊은 기자와 삽화가는 신문에 찬사를 보내는 기사를 쓰고 마가렛트 여사를 이용해먹으며 뒤에서 낄낄거린다. '알면서 속아준다'라는 말이 있는데 사람들은 알면서 속아준다기 보다 모두 한통속 되어 마가렛트 여사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중 가장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속이는 사람은 마가렛트 여사의 비서이며 음악 보좌관 격인 마델보스이다.


채윤이와 함께 조조로, 극장을 전세내어 본 영화이다. 시놉시스와 몇 장면의 사진을 보고 '키키키, 재밌겠다. 볼래' 했던 채윤이는 중간에 몸을 베베 꼬았다.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는 코미딘데 블랙코미디였던 것. 웃픈 영화여서 힘들었던 것. 그런데 실화 바탕의 영화란다. 그렇다. 실화. 실화 바탕이란 사실을 알고 나서 채윤이의 호기심에 다시 발동이 걸렸다. 블랙 코미디는 실화이고 우리들의 실제 이야기는 코미디이다.

사실 내 입냄새를 나만 모르지 내 친구들은 다 맡고 고통스러워 한다. 내 인격의 악취는 나만 모를 뿐 너는 안다. 이것이야말로 실화이다. 내가 누군가를 떠올리며 '걔는 참 이것만 고치면 참 좋을텐데....'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도 나를 떠올리며 명쾌하게 분석할 것이다. 다만 서로들 암묵적으로 참아주는 것이다. '너 입냄새 나' 말을 굳이 말을 해서 내 이미지 구길 필요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 <윈터 슬립>이 생각났다. 주인공 캐릭터가 극단적으로 다른 것은 단지 영화의 쟝르가 다르기 때문일 터. 내게 오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스스로 일궈낸 자아 이미지에 어떻게 무지막지하게 전폭적으로 속고 있는지를 마가렛트 여사가 보여주고, 그 속임수의 속임술이 얼마나 정교한지를 <윈터 슬립>의 아이딘이 보여준다. 우습도록 화려한 마가렛트의 의상과 온화하며 지적이고 선하기까지 한 아이딘의 메마른 웃음과 긴장된 말투가 같은 메타포로 느껴진다. 마가렛트는 어린 아이처럼 있는 그대로 내보이니 블랙코미디가 되고, 아이딘은 온갖 착하고 세련되고 있어보이는 포장지를 많이 달고 있으니 내 실상과 똑같은 리얼리티가 되는 것이다.

'나는 옳고, 나는 착하고, 나는 겸손하고, 나는 답을 알고 있고, 나는 의식있는 합리적인 사람이고....' 이 향연에 숨이 막힌다. '사실 너 입냄새 쩔거든. 입 좀 다물고 있을래'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할 수 없다. 자기 잇사이에 낀 고추가루를 보거나 빼내려면 거울 앞에 서야한다. 자기 인격의 구린내는 '정직한 성찰'이라는 뼈아픈 작업을 통과해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지만 아니다. 말씀을 거울 삼아 자기를 정직하게 비추어 인격의 악취를 인정하고 애통하며 회개하는 사람을 나는 근자에 보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너 입냄새 쩔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성찰'이라는 칼날의 방향은 항상 '나'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 성찰 좀 해'는 성립하지 않는 명령어이다. 거기에 해 줄 말은 오직 하나, '너나 잘 하세요' 두 영화가 내게 불편한 이유는 이것이다.

영화의 마델보스는 '현자'같다. 마가렛트 곁에서 적극적으로 치밀하게 속이는 자이다. 다른 어떤 속이는 자와 다르다. 마델보스는 마가렛트가 노래에 집착하는 이유를 안다. 남편의 애정과 관심이다. 자신의 노랠 들어줄 남편. 마델보스는 또 안다. 남편의 마음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연주회 시간에 늘 늦는 이유가 자동차 고장 때문이 아니라 애인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마가렛트의 노래를 견딜 수 없어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마가렛트가 가장 원하는 남편의 사랑을 얻는 일은 요원하니 대체물이 필요한 것이다. 엄마 찾아 우는 아이에게 막대사탕을 물려주는 격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은 텅 비었지만 단맛에 취해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는 아이처럼 마가렛트는 살아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마델보스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영화 후반 여차저차 하여 남편의 마음이 마가렛트를 향해 돌아서고 있을 때 속이기 놀이를 포기한다. 결국 우리가 붙들고 있는 자아 이미지란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당분간 지켜내는 보호막이기도 하다. 자아 이미지에 오래, 강하게 붙들려 있을수록 악취가 나고 듣기 싫은 괴성을 낼 수 밖에 없겠지만. 악취와 괴성 넘어 상처입기 쉬운 약함을 봐주는 눈,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아, 물론 언제까지 속고 속일 수는 없다. 마델보스는 때가 됐다 여겼고, 남편도 마가렛트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들은 마가렛트는 쇼크로 쓰러지고 만다. (어쩌면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결국은 자기 몫이다. 마델보스의 혜안과 극진한 충성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 에니어그램 공부를 사랑하는 이유는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악취를 가진 존재야.'라는 전제 하에 성격이 가진 미덕과 더불어 악취를 가감없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격적 입냄새를 맡겠노라고 자발적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한 번을 만나도 진실한 만남이 주는 정서적 포만감이 있다. 적어도 강사인 내겐 그렇다. 그러나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세미나 전후로 무게감에 많이 눌린다. 마델보스의 정도의 혜안과 애정을 가지고 세미나를 이끌 수 있으면, 싶다. 영화 얘기하더니 어쩌다 기승전에니어그램? 이해해 주시라. 내일이 올해 첫 세미나라 내 맘이 그렇다.  











쑥국 끓여보고,

냉이 된장국도 끓이고.

식탁 위에 봄을 자꾸 올려 놓아보는데

아이들 눈에 그저 된장국일 뿐.

다시 돌아온 계절을 함께 느껴줄 중년 남자 사람은 집밥 먹을 일이 없다.


처음으로 마늘대를 사봤다.

봄나물 근처를 서성이다 발견했다.

어렸을 적에 엄마가 초고추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쳐줬었는데.

아이들 반찬으로는 좀 아니지만 일단 한 번 사보자.

아, 엄마 생각난다.

엄마가 해주던 반찬들 많이 생각난다.


꽃다운 백수 채윤이와 둘이 점심 먹는데 일단 샀으니 이단은 무쳐보자.

삼단은... 백수 채윤아 함 먹어 보자.

이게 뭐야?

파를 이렇게 그냥 먹어?

으흐......음. 딜리셔스~(데인저러스 아니고)

엄마, 너무 맛있어.

(밥 한 공기 먹고 거침없이 반 공기 더 먹고)

역시 내 딸 금사월 아니고 김채윤.


나도 맛있다.

봄의 맛이고 우리 엄마의 맛이다.

[삶의 막막함 가운데 찾아오시는 주님의 손길이

삶의 답답함 가운데 빛이 되시는 주님의 말씀이

내게 봄과 같아서 내게 생명을 주고

내게 신선한 바람 불어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하네]

봄바람과 함께 혀끝에 자꾸 맴도는 노래다.


삶을 둘러싼 막막함의 안개가 그리 쉽게 걷히지 않겠으나,

여전히 삶은 막막하고 답답하고 부조리한 것이 기본설정이겠으나

다시 찾아온 따스한 생명의 바람에 담긴 그분의 편지를 읽는다.

이 하루를, 이 봄을, 이 한 해를 견뎌보겠다.

여전히 견디고 있는 자들과 연대하여 소망을 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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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데이트, 우린 서로 다른 곳을 꿈꾸었다.

SS : 되도록 멀리 멀리 가고 싶어. 서울에서 가장 먼 곳. (3시간 이상 걸리는 곳만 검색)

JP : 가까운데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싶다.

SS : 되도록 멀리 가고 싶다니까.

JP : 영화 보자. 광화문 가서 영화 보고 동대문 구경 가자. 시내 들어가자.

SS : (특새도 있고 운전하기 힘들겄제) 광화문 콜! 영화 콜!




룰루랄라 버스 정류장 가는 길, 집 옆에 국수집 앞을 지나치는 찰나, 우린 배고팠다.

SS : 우와, 멸치국물 냄새 끝내주네. 맛있겠다.

JP : 여기서 먹고 갈까?

SS : 그럴까? 아!!!!!! 망원동에 이북식 만두집. 거기 가자. 가보고 싶었는데.

JP : 그래, 걸어가자.





만두전골을 먹고 나와 영화관을 광화문에서 상암동으로 바꾸자는 찰나,
우린 맛있는 커피가 땡겼다.
킵해뒀던 정보를 꺼내서 망원동 커피 맛있다는 집 위치를 보니 되돌아 가는 길이다.
JP : 나 따라와. 이쪽으로 가면 카페가 있을 거야.
SS, 따라간다. 있겠지. 맛있는 커피집.
서교동인지 망원동인지 성산동인지 골목을 걷고 걷던 찰나,
JP : 엇, 저기가  성미산긴가보다. 오, 이 건물은 공동주택인가봐. 동네 느낌 좋네.
SS : 성미산 가자, 성미산! 
한 번 가자, 한 번 가자, 하던 성미산을 이렇게 해서 와보네.
하는 찰나, 노란색 꽃망울 터뜨릴 준비를 거의 마친 개나리가 눈에 들어온다.
목련도 마찬가지 일발장전, 터뜨리기 일보직전이다.
겨울이 가고 꽃 피는 봄이다. 다시 봄이 오니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 인생도 그러할 것이다.
춥고 마음 시린 나날이 끝도 없을 것 같지만, 봄은 온다. 온다구.




짧은 산책 끝에 전망대에 올라 지도를 보는 찰나, JP는 연남동을 선택했다.  

연남동 가자, 가서 맛있는 커피 마시자.

합정동, 망원동, 성산동, 서교동, 연남동. 좋네!

총선을 앞두고 마포구 땅밟기 기도하는 셈 치자고.

정청래 의원 얘기를 하며 손 꼭 잡고 걷는다.

그 찰나, 눈앞에 나타난 벽화는 연남동스럽지 아니한가.




연남동 동진시장 도착.

카페 리브로는 물론 커피 상점 이심도 문을 닫았다.

는 것을 확인한 찰나, JP는 이심 앞에 철퍼덕 앉아 검색질을 했다.

그리고 찾은 모카포트 전문 카페 '사이'

편한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 하니 졸음이 솔솔.....

오는 찰나, 

JP : 갈 때는 홍대 쪽으로 가자. 홍대 앞에 가서 정신실 뭐 하나 사줄게. 

글치, 젊은이들이 투표 많이 해야 하니 홍대 앞도 좀 밟아줘야지. 가자 가자.

홍대 앞 길거리 마켓을 지난다.

뭘 사지? 뭘 살까? SS 눈 돌아가며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하는 찰나,

JP 휴대폰이 울린다. 구역성경공부에 관해 질문 있으신 집사님.

통화가 안 끝난다. 맘에 드는 옷도 있고 모자도 같이 보고 싶은데 안 끝난다.

쇼핑 의욕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다 1% 남은 찰나, 통화가 끝난다.

그냥 걸어. 걷자. 계속 걷자고.  


 



다리는 물론 신발에 자꾸 닿는 오른쪽 새끼 발가락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찰나,

합정역에 새로 생긴 알라딘 중고서점 앞에 도착.

참새 둘이 신장개업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으리.

한 바퀴 돌고 마음에 드는 책 하나 씩 골라 계산하려는 찰나,

지난 주 월요일 일산 알라딘에 책 팔러 갔던 생각난다. 그때 번 돈으로 계산.

기분 좋게 서점을 나서는 찰나, '목사님!' 하는 소리.

이름만 알던 자매님 한 분을 만나 시인 정지용 님 앞에 서서 수다수다.

그리고 메세나폴리스 찍고 컴백홈.


목적이 이끄는 삶이 아니고

찰나가 이끄는 하루 데이트를 마치고 정산 해보니.

오늘 찰나의 총합은 17,576 걸음, 12.34 km.

긴 도보여정, 계획대로 된 건 하나도 없다.

인생이 이런 거지. 하하.






선한목자교회 코이노리 카페에서 '나자연' 토크쇼를 합니다.

블로그 대문에 거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요.

20대는 안 받음. 연령제한 있는 강의랍니다.

큐티진에 '유브갓메일_목적이 이끄는 연애'라는 이름으로 연재된 글이

단행본 [오우연애]가 된 것 아시나요?

'목적이 이끄는 연애'가 저의 첫 번째 연애 칼럼이 아닌 것도 아실랑가?

'브리짓 자매의 미혼 일기'라는 꼭지로 짧게 연재했던 글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한 번 봐야겠습니다.)

제목을 무척이나 애정했습니다.

나이 든 교회 언니의 넋두리 컨셉의 글이었죠.

사실 제 관심은 브리짓 자매님들.

토크쇼를 기획하는 자매님과 마음이 딱 맞아서 기분 좋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연애서적 밑줄 치며 읽고, 배우자기도 열심히 하면 사랑이 올 것 같았는데....

그렇게 20대를 보내고,

친구들은 하나 둘 유부가 되고,

청년부 수련회, 단기선교, 특새..... 도 다 식상해진,

연애강의도, 배우자기도도 다 소용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들 만납니다.

유토피아적 연애 망상을 걷어내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강의 준비가 아니라 창의적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안팎으로 갑갑한 일, 갑갑한 뉴스로 마음의 봄은 언제 오나? 싶은데

봄봄, 연애연애스러운 포스터에 토요일 아침 산뜻산뜻하네요.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28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이상형 말해봐.’ 찾아줄 능력도 없으면서 자꾸 묻게 됩니다. 당장 찾아 대령할 수는 없어도 이쪽저쪽 가늠해볼 기준은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요.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은 정말 가지가지 천차만별입니다. 키나 외모를 정확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긴 말이 필요 없고 필이 딱 오면 된다 하기도 하죠. 듣다보면 이런 너무 디테일하거나 막연한 검색조건으로 하나라도 걸리겠나 싶지만, 그러니까 이상형인게지요. 이상형의 배우자를 그려보는 것은 장차 내가 만들 가정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것과 다르지 않고, 가정에 대한 청사진은 내일에 대한 꿈이기도 하니 참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네가 결혼을 못하는 거야. 아무리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배우자 기도를 해봐라, 이상형은 이상일 뿐 결혼하면 다 똑같다.’ 현실의 결혼을 살아본 선배의 말에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실이 되면 현실을 살더라도 꿈은 꿔야지요.

 

이상형에는 자기만의 고유한 욕구가 담기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표방하는 것과 진짜 욕구가 같은가 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5:37)’라고 하셨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를 거룩함으로 포장하는 바리새인들의 을 꾸짖으심 입니다. 심리학적으로 건강한 사람 역시 자신의 진짜 감정과 욕구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느끼는 것과 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냐는 것이지요. 이상형 목록에 담긴 욕구가 정직하여 투명한 것이 중요합니다. ‘일 순위는 당연히 신앙입니다, 믿음입니다, 선교에 대한 비전입니다.’ 등으로 시작하는 답을 줄줄 읊지만 막상 소개팅 타진을 해보면 다르다는 것이죠. 본의 아니게 허위진술이 드러나게 됩니다. 알고 보니 믿음이라고 했던 것은 경제적인 능력이었고, (feel)이 꽂히는 유일한 이유는 외모였던 것입니다. 경제력과 외모를 따지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 아닙니다. 누군들 가난을 보장한 결혼을 하고 싶겠습니까, 누군들 예쁘거나 잘생긴 배우자를 마다하겠습니다. 정직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믿음 좋은 교회 언니들의 이상형 목록에서 아파트 평수가 거론되면 안 되는 것인가요? 오직 남자의 경제력만 보는 세속적인 잣대라면 문제일 수 있겠지요. 설령 유일한 잣대라 해도 그 동기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사람과 그것을 거룩하고 고상한 것으로 포장하는 태도는 천지차이인 것입니다. 그 표리부동이 문제인데 대부부 의도적인 것 같진 않습니다. 자신의 말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타인을 속이기보다는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 열심히 소개팅을 해도 만남이 성사되기 쉽지 않습니다. ‘나는 남자의 경제력이 중요하다.’ 라고 진정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인식하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결혼을 빨리 할 확률도, 무엇보다 성숙해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소개팅 주선해준다는 말에 반색을 했다가 상대방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없던 출장이 잡히고, 중요한 진급 시험이 생기는 경우들 말예요. 정직하게 저는 여자의 외모가 참 중요한데 제가 생각하는 만큼 예쁘질 않아요. 죄송하고 민망하지만 극복이 안 되네요. 죄송합니다.’라고 주선하는 선배에게 말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물론 기억해야죠. 신앙도 좋고 스펙도 되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기까지 한 남자는 거의 없습니다. 외모도 되고 마음도 착해서 우리 엄마에게 딸 같은 며느리 되어줄 여자 또한 없구요. 두 개를 다 가지는 건 없습니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기에 내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바로 그 이상형 목록을 아.. .은 이상이 현실 되게 하는 첫걸음입니다.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연애와 결혼(뿐 아니라 인생이 그렇죠.)에 짬짜면이란 없습니다. 자장면을 선택한 자, 자장면 맛에 만족하며 충분히 누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그러려면 애초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자장면인가 짬뽕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일이고, 나 자신이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좋은 배우자기도란 정직한 기도 속에서 목록을 수정해가며 하나님 안에서 나를 알아가는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에릭 프롬(Erich Fromm)의 말처럼 사랑의 성공과 실패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니 질문을 좀 바꿔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상형이 어떻게 돼? 대상을 묻는 것보다 나의 사랑능력은 몇 레벨일까?’ 더 쉽게 바꿔볼까요? 이상형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감내할 수 있을지, 즉 무엇을 가장 못 견디는지 알고 있나요? 대화가 통하는 것도 중요하고, 부부가 함께 신앙의 동역자가 되는 것 역시 바라는 바이고, 우리 엄마와 가족을 좋아하는 여자였으면 좋겠는데. 그 중에서 어떤 조건이 결여되었을 때 나는 가장 힘들까요? 또는 경제적 결핍감을 견디는 것이 어려운가요, 신앙적인 소통 없는 관계가 더 힘겨운가요? 내가 못 견디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이상형을 아는 것보다 더 유익한 앎일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랑을 성공하게 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나, 나 자신의 사랑하는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형이 어떻게 돼? 참 좋은 질문입니다. 누가 물어주지 않아도 이런 의미를 담아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볼만 하지요.

  





<봉선화기도 304>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손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기도 손을 촬영하는 작업에 다녀왔습니다. 꽃다운 친구 김채윤이 함께 했습니다. 304 개의 기도손으로 참여하며 작은 기도문구 하나를 남기게 됩니다. 채윤이는 '노란 건반 위를 걷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양손 중지 전체에 붉은 물을 들이고 다니는 일이 피아노 치는 채윤이에게는 더 무게감 있는 일이겠습니다. 붉은 손가락으로 피아노 칠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는지 '건반 위를 걷는 기도'라고 처음에 적었습니다. 꽃다운 언니 오빠들이 잠겨버린 진도 앞바다를 건반 삼아 꽃다운 친구 채윤이의 붉은 손가락이 춤추듯 오가며 연주할 것입니다. 슬픔일지, 분노일지, 두려움의 춤일지 알 수 없습니다. 채윤이의 음악 속에 오래오래 이 언니들과 오빠들이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잘 걷던 공교육의 길에서 멈춰선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채윤이의 음악 안에는, 삶에는, 우리의 삶에는 많은 '남'들이 '나'로 존재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음악이고 인간다운 삶입니다. 많은 '남'을 '나'로 수용하기에 내 마음이 너무 협소하다면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힘없고, 약하고, 낮은 이들이 늘 가장 가까운 이웃이어야합니다.  봉숭아물이 다 져버린다해도 채윤이 마음에 들인 봉숭아물은 내내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남겨진 자로서 살것입니다. 생명과 사랑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질 때마다 저 역시 마음의 손가락에 들인 붉은 봉숭아물을 꺼내보곤 하겠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책꽂이에 있는 여러 권의 세월호 관련 책을 꺼내 보았습니다. <남겨진 자들의 신학 : 세월호의 기억과 분노 그리고 그 이후>라는 책을 봅니다. 세월호 이후 남겨진 자로서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나침반이 되어주셨던 김기석 목사님의 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남겨진 자로서의 삶이 구호나 운동이 아니며, 끝도 없는 슬픔에 젖어있는 감상주의는 더더욱 아닙니다다. 적어도 제게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닿습니다. 목사님의 글이 제 마음을 붉게 물들입니다.


"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속에 아이들의 숨결이 깃들어 있음을 느끼고 싶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유가족들에게 감히 그 아이들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다는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이 위로의 메시지는 결코 이 시대의 어둠을 향한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것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부패한 사슬을 묵인하는 거짓 용서와 혼동돼서도 절대로 안 된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우리 곁에 함께 살아 있음을 느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어둠의 세력과 부패한 무리들을 물리치고 이 세상 모든 아이가 구김살 없이 활짝 웃을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다짐이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온 세상에 가득하니 그것은 곧 생명의 영이요, 기운이다. 영원하신 하나님 품에 안긴 아이들의 영혼은 이제 이 세상에 충만한 생명으로 돌아와 풀과 꽃과 나비와 새들의 생명 속에서 다시 살아나니, 이들 뭇 생명 속에서 하나님의 영을 만나고 동시에 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하자. 그리고 이 뭇 생명을 공경함으로써 이 세상에 남은 우리가 아이들을 못다 산 삶을 살려내고, 하나님의 영을 모시자. 그리고 나아가 이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반생명적인 제대와 탐욕을 악으로 규정하고 맞서 싸워 아이들의 생명을 지켜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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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목소리)

엄마, 이거 사진 찍어. 사진 찍어서 엄마 미니홈피에 올려.

엄마, 내가 만든 거야. 사진 찍어서 미니홈피에 올려서 삼촌 보라고 해.


(열일곱 살 목소리)

엄마, 왜 내가 만든 거에 관심이 없어.

나 장래희망이 바뀔 수도 있다고.

나 재즈피아니스트 안되면 플로리스트 할 거야.

빨리 사진 찍어서 엄마 블로그에 올려.

집에 가서 물에 꽂으라고 했단말야.

사진 찍고 포장지 다 벗겨서 물에 꽂아야 돼.


여섯 살에서 열일곱 되기까지에는 중간에 그런 시절도 있었다.

사진 한 장 찍혀주는데 그렇게나 비싸게 굴고.

내 얘기를 왜 사람들이 보게 하냐! 왜 엄마 마음대로 내 얘기를 블로그에 올리냐!

안 올린다 하면서 올릴 거 다 안다!

엄마 진짜 짜증난다!


오늘은 꽃다운 열일곱 채윤이가 꽃다운 친구들과 꽃시장에 다녀왔다.

화이트데이 기념으로 꽃다발 만들기를 했단다.

사진 몇 장으로 연속으로 찍으서

'자, 꽃다발 몰아주기!' 하니 바로 안 그대로 예쁜 꽃 더 예뻐 보이게 몰아줬다.


중학교 시절 언제였던가,

현승이가 '엄마, 누나가 너무 불쌍해. 매일 매일 웃지도 않고, 말도 잘 안하고.....'

걱정하던 날도 있었다.

일 년짜리 방학 효과로 표정이 살아나고 있다.

여자 짐캐리 정신실 엄마의 딸, 엄마보다 레벨업되어 나온 딸의 표정이 살아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사진은 뽀너스.

표정 카피는 기본, 감상 포인트는 눈동자 위치.













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괜찮아요, 아 정말 괜찮아요, 하는데 벌개진 얼굴, 떨리는 목소리가 다른 말을 한다.

괜찮지 않아요.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는데

그 사람을 피해 돌아서 가고 있다면, 그 사람 곁에 앉고자 하지 않는다면

몸이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들어볼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사람 곁에는 자꾸 가까이 가고 싶은 법이다.


'어디 암자에 들어가서 몇 달 동안 책만 읽었으면 좋겠다....'

소파와 책과 셋이 한 덩어리가 되어 겨울을 지냈다.

느느니 번뇌요, 느느니 자의식이다.


오늘 교회 주방봉사가 있었다,

무엇이든 순간에 몰입하는 편이라 열심히, 신나게 주방일을 했다.

그렇다, 신나게 했다.

종이 박스 또는 거대한 파란비닐에 들어 있던 어마무시한 식재료들이

두 시간 반만에 근대국과 고추장 불고기와 숙주나물과 달래 간장을 입은 두부가 되다니!

요리는 정말 엄청난 창작활동이다.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주방용 장화를 신고 일을 했다는 것이다.

주방용 장화가 중요하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고.

주방용 장화 하나가 내 속에서 끌어낸 식당 아줌마 본능이라니!

100인분 밥솥, 국솥을 닦는 일은 허리가 끊어질 듯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힘이 났다. 마법의 장화를 신었으니까.


집에 와선 잠시 쉴 새도 없이 장을 보러 코스트코에 다녀왔다.

주일 저녁에 식사 손님이 있는데 내일은 강의 하나와 어머니 칠순잔치,

주일에는 구역모임(나 구역장 하는 여자!)으로 준비할 시간이 없다.

장을 보고 와서는 바로 새우를 손질하고, 양념장을 끓여서 '간장 새우'를 만들었다.


저녁엔 수영을 다녀왔다. 쉬지 않고 자유형 40개를 돌았다.

아,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세월호 이후로 밥맛이 아니라 수영맛을 잃었었다. (주부수영 끊은 사연)

지난 2월 말 팽목에 다녀온 이후 세월호 2주기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아야지 싶었다.

일단 잃었던 수영맛을 되찾고 힘을 내기로 했다.

3월부터 시작했는데 열심히 하고 있다.


어푸어푸, 수영을 하며 생각하니 오늘은 책을 한 줄도, 단 한 줄도 읽지 않은 날이다.

오직 몸을 열심히 가동시켜 하루를 살았다.

그러고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다'는 자괴감이 크지 않다는 것에 방점.

앞으로 더욱 많은 날을 몸으로 때우려한다.

내가 가진 가장 정직한 도구는 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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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실의 내적 여정 에니어그램 세미나]가 열립니다.

 

라캉은 '진리에 신경써라, 그러면 치유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정직한 질문을 던지고 진리를 찾는 열망 안에 있다면 그 여정 자체가 치유입니다. 정신실의 에니어그램 내적여정은 어거스틴의 기도, '주를 알게 하소서, 나를 알게 하소서(Novem te, novem me)'를 따르는 기도의 여정입니다. 에니어그램이라는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오래된 거울 앞에 서보는 것을 시작으로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자'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2016년 상반기 준비된 1단계, 2단계, 심화과정 세미나 일정이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수강하신 분이 2단계를, 1,2단계 수강하신 후에 심화과정 수강하실 수 있습니다.



 [일시]

. 1단계 : 2016년 3월 30일(수) 오전 10시~오후 5시
. 2단계 : 2016년 4월 27일(수) 오전 10시~오루 5시
. 심화과정 : 2016년 5월 25일(수) 오전 10시~오후 5시
[
장소]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5층 대회의실(합정역 7번 출구에서 3분)

[인원] 각 강좌 선착순 15명  

[수강료] 각 강좌 12만 원
[문의] 010-6209-0635   larinari.tistory.com
[신청]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1 신청하러 가기(마감되었습니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2 신청하러 가기 (마감되었습니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심화과정 신청하러 가기(마감되었습니다)



각 과정의 강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강의 내용

1단계

  선물 또는 덫으로서의 성격 :

  에니어그램의 9 유형

 2단계

  적응 또는 방어로서의 성격 :

  에니어그램의 날개와 화살 / 공격, 의존, 움츠리는 유형들 

 심화단계

  습관이 된 정서, 패턴이 된 생각 :

  에니어그램 유형의 어린 시절

 영성단계

  성격 너머, 하나님 형상인 나 :

  에니어그램 유형의 왜곡된 하나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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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혼자 드리는 주일 예배였는데 나란히 함께 앉을 벗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본당사수를 했습니다. 좁고 옹색한 본당의 벽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나님 그분의 품을 떠올리고 그 근처에 가까이 가면 가슴 한 구석이 늘 띵하게 아픕니다.

예배의 자리에 가면 아픔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나란히 앉은 벗의 고통까지 내게로 와 모양을 바꾸어 냉소가 됩니다.

'하나님, 저 삐졌다구요.' 이렇게 예배가 시작됩니다.

마음이 나긋나긋해지지가 않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부르는 찬송.

'다찬양 하여라 전능왕 창조의 주께 내 영아 주찬양 평강과 구원의 주님....'

찬송마저 저와 주님 사이를 우주만큼이나 갈라놓는군요.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당신 제겐 너무 먼 거 아시죠?

평강과 구원의 하나님이라니요! 지금 제 옆의 이 아이를 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시죠?


어느 새 나는  2절을 부르고 있습니다.

'성도들아 주님의 뜻 안에서 네 소원 다 이루리라'

소원을 다 이루어주신다고요? 냉소의 클라이막스에서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언제요? 언제 성도들의 소원을 다 이루어주실 건데요?

눈물이 터진 이상 본심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고통 중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평화와 구원이 옵니까.


연일 들려오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아픔에

마음이 주저앉고 또 주저앉습니다.

기도했더니 어쩌면 그렇게 딱딱 인도하셨다, 감사하니 감사한 일만 생기더라.

빠르고 강한 기도응답을 간증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아요.

저 자신을 더욱 거지같이 느끼게 할 뿐이에요.

흥하고 잘 되고, 더욱 편해지는 이들의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을 느끼는 내 친구들은,

나는, 무엇입니까. 누구입니까.

확신에 차 흔들림 없이 당신을 전하는 이들 앞에서 더욱 작아지는 제 마음은요.

그리고 저는 일렁이는 슬픔과 분노없이 뉴스를 볼 수 없어요. 

제 안팎은 왜 이렇죠? 하나님.  


월요일 아침 [메시지]로 읽는 열왕기하의 마지막은 더욱 캄캄합니다.

유다는 멸망하고 맙니다.

솔로몬 때에 그 찬란했던 영광이 무너지는데 이보다 더 처참할 순 없군요.

그렇군요. 열왕기서의 마지막 장을 읽고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짓밟혀 무너진 성전의 폐허 속에서 희망의 단서 하나라도 찾아볼 요량이었는지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유진 피터슨의 열왕기서 서문을 찬찬히 읽어봅니다.


열왕기서를 읽는 유익은 실로 엄청나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통치는 힘 있고 경건한 사람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된다고 생각했던 억측이 무너지면서, 그분의 주권을 한층 깊이 이해하고 경험하게 된다. 온갖 유토피아적 계획이나 망상들의 현혹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에 따라, 아무리 문제 많고 죄 많은 지도자들(왕들)이 우리 사회와 교회를 농단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가 무효화될 수는 없으며, 그 어떤 현실과 상황 속에서도 (은밀히) 행사되는 하나님의 주권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음껏 즐거워할 수 있다'니! 지금 제게 가당치도 않지만, 단서를 찾았습니다. 단서를 찾았기에 키보드 두드릴 힘이 나서 이 아침, 타닥타닥 몇 자 남기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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