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남편은 들꽃과 사랑에 빠졌다.

'갔다 올게' 하고 나가면 한 30분 안에 카톡, 카톡, 카톡, 카카카카..... 카톡.

길가의 흔히 보던 꽃들이 줄줄이 폰으로 들어온다.

입만 열면 새로 발견한 꽃, 그 꽃의 이름을 읊어대며 헤벌쭉 하는 것이

꼭 첫손주를 본 할아버지 같다.


사랑 하라, 에만 골몰하느라 사랑을 그저 '하면' 되는 줄 알지만.

사람은 사랑을 제조할 수가 없는 존재이니 사랑을 한다는 것은 받아서 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주는 사랑에만 골몰하다 보면 말라 비틀어진다.

쥐어 짜내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닌 것이 허다한 이유일 지도.

주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오는 사랑을 받아 담는 것이 더 근본적인 일이다.


올봄, 남편은 길가의 작은 꽃들로부터 오는 사랑으로 촉촉해졌다.

나도 길 위의 작은 꽃들로부터 사랑을 채운다.

'꽃 중의 꽃은 인꽃이여'

아기 하나를 두고 어른들이 죽 둘러 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장면을 해설하는

우리 엄마의 말이다. 나처럼 아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아기들을 '인꽃'이라고 불렀다.


키 큰 나무가 푸르게 둘러 싼 율동공원 산책길에는 심장 뛰게 하는 인꽃이 흔하다.

유모차에 갇혀 형언불가의 멍멍한 표정으로 팔을 흔드는 인꽃,

어구구구구...... 넘어질라, 넘어질라, 아장아장 인꽃,

일상의 근심 걱정 한껏 지고 묵직하게 걷던 발걸음이 1g으로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이 작은 인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 깊은 곳에 고여있던 평화가, 사랑이 풀려나니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어제 산책 마지막 코스에서는 할아버지 품에 안긴 인꽃 한 송이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길 오른쪽으로 공원 매점이 있는데 매점 앞에 풍선과 장난감이 있다는 걸 어제 처음 알았다.

시무룩, 할아버지 품에 안겨 가던 아이가 눈이 커지면서 급해서 말도 못하고 손가락질을 한다.

매점이다. 매점 앞 풍선이다.

꽃을 든 할아버지는 당황.

가자, 가자..... 하며 직진이신데 꽃이 뒤틀린다. 뒤틀려 품을 빠져 나오려 한다.

그 뒤를 걷던 더 연세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껄껄 웃으신다.

"볼 일이 있다잖아요. 꼭 가서 볼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쳐. 껄껄껄"


급하게 생긴 막중한 볼 일을 피하지 못하고

꽃을 운반하던 할아버지는 발길을 돌려 매점으로 가셨다.

공원을 빠져나올  때까지 올라가서 실룩거리는 입꼬리가 제자리를 못 찾는다.

마음이 간질거리는데 웃음을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작은 사람 꽃. 그 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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