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일을 하고 있지만, 나를 나되게 하는 의미 있는 일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새롭게 확인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꿈과 영성생활을 6주에 12주로 늘리고, 새로운 강의안을 만들며 겨울을 보냈다. 고되고 했지만 강의의 첫 번째 수강자가 나였고, 누구보다 나를 붙들어줘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강의가 나를 지켜준 것이 아니라 함께 한 사람들의 자발적 내놓음이 서로를 지켜주는 것 같다.

작년 대림절과 함께 시작하여 사순을 코앞에 두고 마쳐다. 12주, 6명, 11개의 꿈과 일상 안에 생명과 죽음의 신비, 변화와 연결의 체험이 묘하게 교차하였다. 어렵게 생명을 품은 엄마, 시어머니를 천국에 보내드린 며느리, 그리고 젊은 날의 영적 권위자들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떠나보낸 이야기... 그 모든 이야기는 그대로 내 마음과 일상이었고.

오늘 아침, 함께 했던 시간을 돌아보고자 12주 동안 단체 톡방을 처음부터 쭉 읽어보았다. 할 일이 많은 날인데, 이걸 만들며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하고픈 말이 많은데, 이 자발적 이야기들로 충분한 것 같다. 꿈작업을 그렇다. 누군가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취약함을 내어 놓는다. 잘 차려 입은 사람들 앞에서 혼자 발가벗는 느낌이다. 그럴 때 "괜찮아, 나도 그래" 같을 말보다 더 강력한 일이 일어난다. 한 사람 씩 따라서 옷을 벗는다. 모두 민낯이고, 모두 발가벗었기에 누구의 취약함이 더 취약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벗는 한 사람에 중에 내가 있다. 여기가 공동체고, 교회다.

될 수 있는 내가 있고 되어야 할 내가 있다. 카를 융은 우리가 되어야 할 내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했다. 나리는 나리가 되고 참나무는 참나무로 존재를 온전히 꽃피워야 한다는 영성적 의미이다. 될 수 있는 내가 되는 일은 넓고 쉬운 길에 있다. 되어야 할 내가 되는 일은 그 반대이다. 모르는 길을 더듬에 내가 선택해야 하며 그 결과를 책임지며 가는 길이다.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 그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이 함께 하니, 늘 배우게 되고,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어디서들 이렇게 찾아와 연결되는 분들이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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