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까지 줌 글쓰기를 하고 5시에 상을 차려 마주 앉았다. 그 한 시간 안에는 집 앞 마트에 달려갔다 온 시간도 포함이다. 5시간 정도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머리도 몸도 마음도 영혼까지 가벼워졌다. 트리에 불이 반짝이고 대림초가 켜지고 캐럴이 흐르고 이 얘기 저 얘기 막힘없는 이야기, 또 이야기.

 

장비 빨에 힘입어 그야말로 '뚝딱' 준비한 상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몇 달에 한 번씩 만나 식사하는 사이이지만, 어쩐지 이번엔 좀 잘 대접해 드리고 싶었다. 언젠가 윤선이가 내게 심어놓은 말이 있다. “나는 은혜는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입은 모든 은혜를 잊지 않아야겠지만, 어떤 은혜들은 더욱 의식적으로 잊지 않고 자꾸 표현하며 살려고 한다. 그리고 기쁨과 감사의 식사에는 골든 타임이 있으니까. 빈틈없는 12월 일정 중 휴강으로 생긴 틈에 빠르게 만남을 성사시켰다. 아니면 해를 넘기게 생겼으니. 

같은 식사지만 이번에는 그런 의미로  "대접" 마인드를 많이 갈아넣은 식사였는데, 결국 또 우리가 좋고 말았다. JP(제이피 아니고 종필로 읽어야 함)이 정의한 '좋음'의 이유는 이것이다. "보기 드물게 질문하고 들어주시는 분들!"이라서. 맞다. 나도 남편도 강의와 설교로 마이크 꽤나 잡고 흔들지만, 더 많은 시간을 '듣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이분들을 만나면 우리 이야기를 하염없이 하게 된다. 그렇구나. 질문을 해주시는구나! 묻고 걱정해주고 이끌어주는 선배가 있어서 참 좋다. 결국 그래서 우리가 좋았다.

 

며칠 조금 야릇한 황폐함으로 지냈다. "내 열정이 부끄럽다, 부끄러운 나의 열정...이었다." 좋은 걸 좋아하고, 가끔 계산을 잊고 좋은 것과 좋은 사람에 투신하고, 좋은 마음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마는 내 열정이 부끄러웠다. (아, 싫은 걸 싫어하고, 싫은 건 멀리하곤 하는데... 이제 그것엔 크게 부끄러움이 없다! 새로운 발견!) "내 열정"이 부끄럽다고 말하면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아니니까. '열정'이라고 퉁친 말 뒤에 숨은 지질한 감정들은 모르니까. 

 

내가 좋은 것이구나! 열정을 쏟아내는 대상이 아니라 결국 내가 좋은 것이다. 발에 모터 달고 1시간 만에 준비한 열정의 식탁으로 내가 좋았던 것이다.  지난 주일 설교 본문은 전도서였다. 요약하면 이렇다. 헛되고 헛되고 헛된 세상을 살면서 먹고, 즐기고, 수고하는 것을 누리라! 오늘이라는 선물을 누리라!였다. 순간을 누리는 열정은 나를 따를 자가 없지. 부끄럽지만 부끄러워하지 않겠다. 실은 부끄럽다기보다는 슬펐던 것 같은데, 슬픔도 어제의 것으로 흘려보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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