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적인 것의 구원
2019년, 팬데믹 직전이었다. 연구소 시작하고 1년을 지내고 송년의 밤을 열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시작한 연구소, 생각보다 더 좋았던 1년을 정리하는 말로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었다. 여성적인 것의 구원. 이걸 내걸었었다. 카를 융과 함께 분석 심리학 작업을 했던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의 책 제목(궁금하면 클릭!)이다. 의미를 설명하기는 참 어렵다. 융 심리학을 '경험의 심리학'이라고 한다. 머리로 아무리 이해해 봐야 체험하지 못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심리학이란 뜻이다. 게다가 '여성적 경험'을 담은 융 심리학 책이니 과연 몇 명의 독자가 제대로 읽어냈을까. 이 직관적인 책을 나 역시 제대로 알아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 깊이 새겨진 이 한 문장의 강렬한 여운만은 진실이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안다.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살고 지향한다. 여성적인 것의 구원을.

체험으로서의 교회, 여성성의 교회
대학원 3학기를 통틀어 이 한 문장을 얻었다. 이 문장을 듣기 위해 잉여에 겨운 석사과정을 했다 해도... 오케이, 인정이다! 잉여라 해도 아깝지 않다. "제도로서의 교회(남성성)와 체험으로서의 교회(여성성)는 동등하고 함께 가야 합니다." 진보적 여성 신학자의 말이 아니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성 목사의 말도 아니다. 보수적이라면 보수적일 교수 신부님의 말이다. 사이버 캠퍼스에 올라온 강의안의 저 문장을 보고 쿵, 하고 마음이 흔들렸다. '동등하고'라는 말에 먼저 울컥했지만, '체험으로서의 교회'라는 말은 내 마음에 아니 내 삶이 이미 충만한 것이어서 익숙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비로소 '언표'된 것이다. <영성신학> 과목이었다. 영성이란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전제, 생명과 체험, 한 학기 내내 이 두 단어의 역동을 생각했다.

이 말 한마디 듣고자 여기까지 왔다. 언제 첫 발을 떼었을까? 서른여덟 즈음 신앙 사춘기가 시작되던 때일까, 중1 여름 수련회 때 "예수님 위해서 살고 싶어요. 선교사 될래요."라고 기도했던 때일까, 중1 겨울 아버지 손을 놓치고 천국에 있는 아버지를 그리느라 시작한 내적 여정일까, "고무신 신고 아장아장 느린 걸음 걸을지라도 해바라기 해 따라가듯 나도 예수님 따라갈 테야" 첫 노래를 부르던 때일까, 안방 벽에 붙어 있던 기도하는 사무엘 그림을 보고 누워있던 떡아기 때일까? 나의 교회 사랑(과 미움 또는 집착)은 언제부터였을까?

어쩌자고 나는 이 말을 이제 와서 듣게 된 것일까? 아니, 내 안에 충만했던 말을 굳이 왜 밖에서 들어 확인해야 하는 것인가? 이 말 한마디 듣자고 나는 이렇듯 먼 길을 돌아온 것인가. 내 몸이 담겼던 교회를 떠나 높고 높은 벽을 넘어, 여기서 들어야 했던 것일까. '선언'은 얼마나 중요한가. '선포하노라!' '죄를 사하노라!' 선포에 담긴 힘이란!

기독교반성폭력센터 후원의 밤에서 토크 콘서트 장면 / 사진 : 뉴스앤조이

제도로서의 교회(남성성)와 체험으로서의 교회(여성성)은 동등하고 함께 가야 합니다.
이 강의안이 사캠에 올라온 때는 연구소 지도자 과정에서 "나의 구원사"를 나누는 목요일이었다. 쉬는 시간에 사캠을 열어 확인했던 것이고, 쿵!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도자 과정 첫 시간의 소개와 나눔 시간에 나는 '교회'를 생각했었다. 이들에게 교회는 뭘까? 공동체는 뭘까? 이렇듯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뭐지? 하나님을 갈망할수록 교회에의 절망은 깊어져야 하는 걸까? 목사님, 사모님, 간사님, 선교사님, 전직 목사의 아내... 이들이 담겼거나 떠나온 교회에는 소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헌데 지도자 과정을 마치며 구원사를 나누고,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을 통해 일구고 싶은 공동체를 그리다 보니 이들은 이미 교회를 살고 있었다! 이들이 있는 곳이 교회였다. 다만 스스로 믿어주지 못할 뿐.

저 강의안이 올라오고, 다음 주 강의를 기대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지고 결국 종강 날의 주제가 되고 말았다. 종강 수업이 있던 날은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글쓰기" 종강 날이기도 했다. 줌으로 했던 모임이었는데 "얼굴 보고 싶어요, 안아주고 싶어요" 하는 마음들이 모아져 마지막 모임을 대면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눈이 많이 왔다. 과연 다들 올까? 싶었다. 대부분 지방에 계셨으니... ktx 타고, 고속버스타고 속속 모여들었다. 풀참 대면 모임이 되었다! 손에 손에 들고 온 것들을 풀어놓으니 먹을 것은 또 얼마나 풍성한지. 색색이 따뜻한 선물까지... 여성적인 것들을 모으면 이렇다. 늘 이렇다. 이러고 보면, '여성적인 것 구원'이 아니라 '여성적인 것 구원'이다. 이날의 주제는 '하나님의 어머니 되심'이었다. 짧은 강의 후에 "하나님 어머니께"라는 글을 쓰도록 했는데, 내내 창 밖으론 하염없이 눈이 쏟아졌다. 글을 쓰고 낭독하는 사이 눈물도 쏟아졌다. 너나 할 것 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넓은 창을 마주한 내 자리에선 하염없이 펑펑 쏟아지는 눈이 꿈속처럼 느껴졌다. 아, 우리들의 하염없는... 그 무엇...

글쓰기 모임 마치고 눈길을 뚫고 학교에 갔다. 강의는 한 학기 내내 그랬던 것처럼 내게는 뜨겁고 다른 학생들은 어땠는지는 모르겠고. 내게는 강의 시간이 너무 짧고 다른 학생들은 빨리 집에 가야하고. "제도로서의 교회(남성성)와 체험으로서의 교회(여성성)은 동등하고 함께 가야 합니다." 이 문장에 대한 설명을 어찌해주실지, 나는 기대에 찼고. 교수님은 어쩌자고 당신이 써서 올린 이 문장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안 하시고. 그렇게 그냥 강의가 끝났다.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언표함, 선언으로 족했다. 체험으로서의 교회, 여성성으로서의 교회는 교수님보다 내게 더 가까운 앎일지 모른다. 하나님 사랑에의 참여로서 영성을 공부하시며 그것을 살아내며 알아듣고 선언해주신 것으로 족하고 감사할 뿐. 낮에 눈 펑펑, 눈물 펑펑, 하나님 어머니 펑펑... 그 체험이면 족하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일주일 후 <기독교반성폭력센터> 후원의 밤 모임에 참석했다. 마이크가 주어져 떠어들댈 기회가 생겼다. 이날 주제가 "안부_ 안전한 교회를 부탁해"였다. 누구든 안전한 사람, 안전한 장소에선 자신을 드러낸다. 자기 생각을 감정을 드러낸다.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는 보호본능으로 갑옷을 입고 포장지를 두른다. 교회는 안전한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곳인가, 드러내고 싶은 곳인가. 포장지 두르라 권하는 곳은 아닌가. 누구에게 교회의 안전을 부탁할 수 있을까. 내가 안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안전한 사람이 하나라도 더 생기는 방법 밖에 없다. 우리가 안전지대가 되자는 얘기를 했다. 체험으로서의 교회, 여성성의 교회 얘기도 했다. 교회를 체험한, 체험으로서의 교회인 여성들이 각자 누군가의 안전이 되어 주어야 할 것 같다. 누구보다 내가.


이틀 후에는 연구소에서 또 다른 소소한 모임을 가졌다. 지도자 과정 마치고 대학원에 간 선생님들의 수다 모임이다. 한 학기 공부한 것도 나누고, 어려움도 나누는 종강파티! 여기 또 하나의 체험적 교회가 섰다. 안전한 여자들이 모이면 거기는 체험적 교회가 된다. 좋은 것은 오래 간직하고, 재현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좋은 것은 재현되지 않는다. 영적 경험은 카피되지 않는다. 체험적 교회는 한 번 서고 사라지는 것이다. 좋은 것들을 복사해서 재현하고 제도화하려는 제도적 교회가 매력이 없는 이유이다. 선생님 한 분이 사 오신 케이크 위에 "Love the moment"이라 적혀 있었다. 그렇다. 정녕 그렇다. 순간 체험하고 사랑하고 향유하는 것이 전부이다. 우리 여성들이 그걸 잘해서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순간의 기쁨과 경이로 만족하고,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 진실했던 지난 1년에 후회 없다. 진실하게 몰입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돌아서서 종종 부끄럽기도 했지만, 뜨악하는 반응에 괜히 했다 싶었던 적이 없지 않았지만 후회는 없다. 순간, 향유의 순간, 여성적인 것들의 구원이 있는 사랑의 순간이 나의 교회이다. 우리의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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