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와 여기 일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늘 마음이 쓰입니다. 반 기독교 단체로 규정되어 겪는 사법적 다툼 등 물리적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몇 년 전에는 뉴조 사무실 앞에서 음향기기 동원해 시위를 이어가던 집단이 있었는데, 그 악의적 소음을 어떻게 견디며 일하나 싶었었죠.) 소수자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 취재하며 겪는 정서적 부담은 어떻게 해소하고 있는지. 기독교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이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입니다.추천하는 이 책은 <뉴스앤조이>가 교회를 사랑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정을 담아 추천사를 썼는데, 많이 읽히며 좋겠습니다.

 

 추천사

정신실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소장, <신앙 사춘기> 저자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

 

이 책에 기록된 다섯 교회 스물아홉 명의 울분에 찬, 슬픔에 겨운 고백은 교회 분쟁이라는 이름의 교회 사랑 이야기입니다.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라는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증언하는 바입니다. 어딘가로부터 떠나왔다면 어디에 도착했다거나, 최소한 가는 중이라고 해야 할 것을. 어디를 떠나왔는데 그것이 되었다는 게 좀 이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알아듣습니다. 떠나온 교회가 외적 장소이며 동시에 마음의 처소이기에 그렇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구역모임을 하고, 손을 맞잡고 기도하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이 담겨 있는 마음의 처소입니다. 사람들이 담긴 마음의 보고(寶庫)입니다. 그 모든 일로 하나님을 만나기도 했던 마음의 성전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곳을 버리고 다른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습니다.

 

사랑을 떠나 사랑이 되다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말에 담긴 진심을 가늠할 방법은 없지만, 이 책 떠나온 이야기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단이니 뭐니 하는 말로 이분들을 막고 쫓아내는 이들도 ‘교회 사랑’의 발로라고 하니 도대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영성 깊은 정신과 의사 스캇 펙(Morgan Scott Peck)은 사랑이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정신적 영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해 나가는 의지’라고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설레고, 맹목적으로 끌리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마음, 뭔가를 소유해야만 채워지는 욕망이 아닌 ‘의지’가 바로 사랑이라고 합니다. 나와 타인의 성장을 위해 나를 확대하는 의지라고 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말이 좋아 확대지, 나를 찢는 일입니다. 그러니 김영봉 목사님의 책 제목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픕니다.

 

여기 이 교회 사태에 연루된 이들 중 처음부터 투사였던 이는 없습니다. 목회자의 범죄가 드러난 이후 교회에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힘든 상황이 전개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의 비리를 알게 되어 받은 첫 충격은 뒤에 오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목사의 처신, 이를 덮으려는 무지막지한 집단적 저항, 그야말로 교회 사랑의 발로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전쟁이 되고 맙니다. 본의 아니게 이 싸움에 휘말린 이들은 전쟁터를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교회의 분열은 막아야겠기에, 피해자들을 외면할 수 없기에 결국 멈출 수 없는 전쟁이 됩니다. 진실에 눈을 뜬 이들은 오명을 무릅쓰고, 의지를 다하여 자기를 찢으며 길이 없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책은 눈멀었던 옛사랑을 떠나온 이야기입니다. 정직한 절망을 통과하며 교회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끌어안고 큰 사랑을 향해가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떠나 말씀이 되다

 

목사 한 사람의 범죄 또는 성찰 없는 잘못에서 이 아픈 이야기들이 시작한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놀라움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싸움을 부추기고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목사의 ‘말’이라는 사실 역시 모르던 바도 아닌데, 새로운 충격입니다. 길게는 수십 년 짧게는 수 년 동안 목사님의 ‘말씀’을 먹고 살았던 성도들입니다. 이제 목사의 그 ‘말씀’은 분쟁에 기름을 붓고 성도들을 사지로 몹니다. 그러고 보면 그들이 떠나온 곳은 교회이며 동시에 목사의 ‘말’입니다. 이 왜곡된 말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심리적·영성적으로 홀로서기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복(福)과 저주를 무기 삼아 성도를 옭아매는 목사에게 휘둘렸던 삶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 이것이 분쟁에서 얻은 유익이라 한다면 대가가 크기에 더욱 값진 것입니다. 목회자의 범죄가 드러나기 전부터 ‘설교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거나 더는 설교를 들을 수 없어서 예배당을 뛰쳐나가고 싶었다는 인터뷰이가 있었습니다. 잘못된 말을 감지하는 귀가 진실을 보는 눈보다 먼저 열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떠나온 말’들은 왜곡된 신학과 가르침들이지만, 한때의 사랑과 열정을 표상하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그 언어를 버리는 일은 그 시절의 나를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여 어렵고 아픈 일입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들이기에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 죄다 갖다 버리는 것이 능사도 아닙니다. 버릴 말을 버리고 취할 말을 취하는 것은 떠나온 교회 시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화해하는 치유 작업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과거의 사건은 그것을 회상할 때마다 개정판으로 다시 쓰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덧붙이고 싶습니다. 과거의 사건은 ‘다른 환경, 다른 자리’에서 발화되는 그때마다 새롭게 쓰입니다. 혼자 회상만 하거나,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방식으로만 이야기된다면 좋은 개정판이 되기 어렵습니다. 어느 자리에서, 누구의 질문에 응하느냐에 따라 경험은 다르게 진술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이 책에 담긴 인터뷰가 하나의 치유 작업으로 보입니다.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된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회복적 정의’라는 렌즈로 바라보는 기자의 질문이 참 고맙습니다.

 

기사를 떠나 서사가 되다

 

교회 문제로 고통당하는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가 기사화되는 것에 위로받는 것을 봅니다. 육하원칙에 따라 사실관계를 밝히고, 때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의 역할이 본질상 정의를 세우는 일이기에 그렇겠지요. 거기서 한 발 나아가 분쟁을 겪은 교인들의 ‘마음’에 주목한 인터뷰 기사라니. 마음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서사가 기사의 형식을 빌어 여기 우리 들려집니다. 인터뷰에 응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께는 또 하나의 개정판 작업이 되었을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치유의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힘든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고 글로 정리하는 노고가 어땠을까,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저자 구권효 기자에게 감사드립니다. 약자의 고통을 담아낸 정의로운 기사, 회복의 염원을 담아 쓴 정의로운 글이 평화의 기도로 다가옵니다. 분쟁 과정과 소송결과가 아닌, 그것을 겪어낸 개인의 서사가 누군가에게 질문이나 답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실망한 교회를 떠날까 말까 망설이는 분에게, 갑자기 알게 된 목회자의 범죄를 알려야 하나 덮어야 하나 고민하는 분에게, 어떤 식으로든 교회에 관한 고민을 안고 계신 분들께 말이지요. 목회자 한 사람의 거짓말, 횡령, 성폭력, 표절같은 범죄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는 것을 알리는데 이보다 좋은 책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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