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나루에는 <커피나루>라는 카페가 있었습니다.
주택가 초등학교 앞에 떡허니 자리잡은 커피집입니다.
충무로에 있는 <가배나루>랑 이름이 비슷하고 여기 저기 블로그에서 인기도 많아서 '혹시 분점인가?'하는 생각도 잠시 하게 됐지만 전혀 그렇진 않았습니다.






카페에 앉으면 익숙한 골목이 눈에 들어올 뿐이기에 카페에 앉았다가 보다는 카페와 집의 중간 정도 되는 공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색다른 편안합이 있습니다.






독일식이라는데 KFC나 파파이스에서 파는 비스킷에 딸기쨈을 발라 먹는 것, 아니면 베이글이나 샌드위치가 먹을만해 보였습니다. 조금 지켜보니 장신대 올라가는 길목을 막고 신학생들에게 '브런치를 먹어라'고 꼬시는 거였더군요.ㅎㅎㅎ






특이한 점은 주민으로 뵈는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베이글과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혼자 드셨는데 '오늘은 좀 늦게 나오셨네요' 하고 인사하는 걸 보니 매일 오시는 분 같이 보였습니다. 사실 이 할머니는 우리가 카페를 찾고 있을 때 어느 집 대문을 열고 나오셔서 우리보다 몇 걸음 뒤에 걸어오셨던 분이지요.
또 밖에서도 할아버지 한 분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혼자 드셨어요. 이 할아버니는 주민인지, 아차산을 찾으신 등산객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그 할머니를 뵈니 '동네 카페란게 이런 거구나' 싶습니다.






여긴 테이크아웃을 훨씬 더 많이들 해가는구나 싶네요. 주택가 안의 주택을 개조한 카펜데.... 히야, 대박나셨드라구요. 장사는 목이 좋아야 하는데 이런 데서 카페가 이렇게 될줄이야..... 카페에 앉아서 바로 forest님께 문자를 했지요.
'언니, 1층 전세좀 주세요. 카페하게요.ㅎㅎㅎ' 하구요. 답문 '반갑긴 한데 도대체 장사안목이 있는거유? 이런 곳에 뜬금없는 카페라니' 이러며 홈플러스 근처에 있는 털보님&forest님 댁 1층에 카페를 열었다 닫았다 했습니다.






카페에 앉아 있을 때는 '주택개조'라는 생각만 했는데 나오다 보니깐 이렇더라구요. 그러니깐 커다란 주택의 옆구리 쫌 터서 낸 카페더란 말입니다. 살림집이 바로 여기고... 이거 진짜 괜차~안타!


새로 시작한 일이 있습니다. 거기서 '두렵지는 않나요?' 하는 말에 '두렵긴한데...괜찮아요. 저는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했더니 '그게 에녀그램 7번의 뒷문이죠! 7번들은 뒷문이 없으면 죽죠'라는 말에 공감을 했습니다.
음... 7번들에게 뒷문이란 '언제든 도망갈 구멍이 있어. 힘들어지면 튀면 되는거야. 힘들게 버틸 일은 없는거야. 적당한 순간에 치고 빠지면 돼'
그렇습니다. 그 뒷문으로 나가야 마냐는 다른 문제이지만 7번들은(아니 어쩌면 7번이 아닌 10번, 11번, 165번....등 어떤 사람이라도 ㅋㅋㅋㅋ) 고통스런 현실을 감내하는 방식으로 '뒷문'이라는 '환상'을 붙들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 페에 대한 꿈은 '뒷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카페를 하고 싶은 것 반, 언제든 모든 일은 그만둘 수 있어. 카페를 하면 돼. 라고 나를 달래는 뒷문으로 붙들고 있는 거 반. 카페는 그렇습니다.
그 뒷문을 꼭 열고 나가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뒷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끔 탁한 공기에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 코를 내밀고 호흡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언젠가 뒷문을 열고 나갈 일이 있다면 그게 도망치는 일은 아니었으면 싶습니다. 도망치는 곳에서는 또 뒷문을 달아두게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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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이 운영하는카페래~
라는 정보 하나만을 가지고 이런 저런 경로로 정보를 수집해서 찾아간 충정로에 있는
<가배나루> 또는 <커피나루> 이야기 입니다.





목사님이 운영하신다는데 막상 가보니 목사님이 아니라 도사님이 운영하시는게 아닐까 하는 분위기였어요. 커피 내려주시는 분들이 한결 같이 현승이가 좋아하는 털보아저씨 동생 쯤으로 보이는 분들이었거든요.
환상 속으로 그리기는, 목사님이 클래식컬한 분위기의 완전 금연을 표방하는 클래식컬한 카페를 운영하면서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는 공간으로 쓰지는 않을까? 하는 거였지요. 일단 전~혀, 그런 분위기 아니었구요. 막상 가보니 책에서 봤던 카페네요.


 




딱 점심시간에 도착을 했더니 주변의 종근당 직원들인지, 회사원 것두 여직원들이 홀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아, 너무 시끄러워서 실망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층은 조용하다 싶어 올라가보니 흡연석이라서 너구리를 잡고 있었구요. 어쩔 수 없이 바리스타님들 일하는 것이 한 눈에 뵈는 자리에 마주하고 앉았는데.... 이것이 행운일 줄이야.
기냥 바로 코 앞에서 드립을 해주시네요. 홀을 가득 메우신 회사원들께서는 거의 에스프레소 관계된 커피를 드셔서 바쁘신 중에도 핸드드립 하신 핸드가 남아있으셨던 거지요.






핸드드립 커피를 종이컵에 마시다뉘.... 이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 지난 번 강릉의 하슬러 카페에 갔을 때는 다시 들고 가서 '잔에 주세요' 해서 마셨었는데요. 워낙 바빠 보이고 커피햐이며 때깔이 너무 좋아서 그런 저런 컴플레인을 할 새가 없었습니다.
하~ 커피맛 예술! 예술! 예술!
가만보니 커피만 예술이 아니라 바뤼스타님들이 모두 알티스트 같이 생기셨어요. 이 분들이 커피를 가지고 예술을 하시는구나..... 하고 종이컵에 담긴 코스타리카를 마시고 있는데 '아, 테이크 아웃이 아니셨어요. 그러면 잔에 드릴껄. 이따 한 잔 더 드세요' 하시는데 '이거 리필을 해준다는 건지, 리필은 그냥 에스쁘레소 뽑아서 아메리카노로 주시겠지?' 했어요.






종근당 여직원들 죄 빠져나가시고 조용해졌을 때 한 잔 더 드릴까요? 하시면서 처음과 똑같이 어마어마한 양의 원두를 한 잔 분량으로 담으시고 드립을 해주셨습니다. 우와, 진짜 이렇게 원두를 소비하면 원가나 나오려나? 싶은 마음에 살짝 미안해졌습니다. <설득의 심리학>에 따르면 사람을 이렇게 미안하게 만드는 건 결국 다음에 또 오게 하고, 블로그에 포스팅을 해도 이렇게 긍정적인 글을 쓰게 만드는 거지요. ㅎㅎㅎ








사실 카페의 분위기나 의자(난 왜 이리 의자에 집착하지?) 등이 제 분위기는 아니지만, 알트에 가까운 커피맛과 첫잔과 다름없는 정성의 리필커피에 감동받아 나왔습니다. 처음에 가지고 갔던 환상은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잊었고요. 너무 시끄럽고(이건 손님 탓이니깐), 조금 산만한 분위기, 그리고 정리는 잘 안된 주방....ㅋㅋㅋㅋ 이런 것도 다 오케, 오케이, 오케!






'내 비록 커피 그 이상의 카페를 꿈꾸지만 됐다. 됐어. 이 정도의 커피맛이면 난 반드시 또 오고야 만다' 라며 나왔습니다.  테라스에 놓인 의자에 '마음을 여는 가배나루 커피공장' 이 문구를 보면서 '맞아. 내 맘을 열었어. 커피 맛있고, 인심 넉넉한데 맘이 열리지. 열리고 말고..... 좀 지저분하면 어때?(아래 사진에서 제 뒤에 있는 가방들이 바뤼스타님 가방들. 기냥 대충 가방 떤져 놓고 커피 내리고 그래도 누가 뭐라지 않고...ㅋㅋㅋ) 커피가 맛있는데...'했지요.






커피도 커피고, 함께 결정해야할 일도 있어서 맘 먹고 집을 나선건데 커피에 취하신 건지 제이퓌께서 도통 혼수상태를 면하지 못하시네요. 조금 아쉽게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충정로에서 광화문까지 걸으면서 약간 정신줄 정비하시고, 서울광장과 광화문 광장을 지나며 '우리 마음의 대통령'과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립더군요.ㅜㅜ


집에 와서 검색을 해보니 가배나루가 더 맘에 들어졌습니다. 이번에도 또 검색을 해서 들어간 곳이 박원순님의 블로그였어요.ㅋㅋㅋ 박원순님이 직접 인터뷰를 하셨더라구요. 그러니까 소문이 그냥 소문은 아니었어요. 사장님(본인은 사장이라고 불리기를 싫어하시더군요)이 신학을 하신 분이 맞고요. 이 분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철학이 있는 분이셨어요. 분점을 내지 않는 이유, 1년이면 전직원이 한 번씩 베낭 메고 해외로 여행을 나가는 이유, 아낌없이 퍼주는 이유.... 들을 읽으면서 내가 감동한 것이 단지 커피 때문만은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카페라면 맛있는 커피를 팔아야 하고,
맛있는 커피에 마음을 담다보면 말로 하지 못하는 커피 내리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든 전해지게 되어있다니까요.


또 가야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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