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여정 기본1단계 세미나를 한 번 더 개설합니다.

집단상담 형태로 진행하고 있어서 한 번에 함께 할 수 있는 분이 적네요. 대기하시는 분들 외에도 문의가 계속 있어서 기본1단계 한 번 더 마련하였습니다. 꼭 필요한 분들과 연결되면 좋겠습니다.

+ 일시 2월 8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 https://bit.ly/2uiqLbL

+ 장소 : 신촌 나음터 (마포구 서강로 142, 서일빌딩 5층)

+ 인원 : 7명 + 비용 : 12만원/ 1일

+ 입금 : 농협 301-0240-4119-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 문의 : 010-4235-8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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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을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씁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며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새해 선물로 받은 시이다. 지나온 1년, 3년, 10년, 30년 더듬어 걸어온 내 등 뒤의 길은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이었다. 가지 말아야 할 길, 걸어서는 안 될 길을 걸어왔다고 나를 탓하고 남을 탓하는 것이 밥 먹고 하는 일이지만. 알고 보면, 그 높은 시선과 깊은 마음의 눈으로 보면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일뿐이었다. 이 시를 보내준 이는 내적 여정 세미나 역사 상 강사인 나를 가장 크게 뒤흔든 수강자였다. 울다, 함께 울다 길을 잃어 강의안 포기하고 속에서 나오는 얘기를 그저 쏟아놓게 한 장본인이다. 그렇게 내적 여정 마지막 세미나를 마치고 가족 여행을 떠난 그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냈더니 '피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는 답이 왔었다. '피'가 상징하는 것들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도울 수 없는 무력감에 마음이 너무 아팠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연구소의 연구원이다. '치유자'는 타고나는 것 아닐까 싶게 성품에 치유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피의 크리스마스'를 메시지에서 확인했을 때, 1년 후 이런 동역의 벗이 될 줄 상상이나 했던가. 그도 나도 우리 모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더듬어 여기까지 왔다. 또 2020년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을 더듬어 가야 할 것이다. 부조리와 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악을 이기게 하는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고, 고립과 상처를 유발하는 이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준 것이 없는데 많은 것을 되돌려주는 사람을 만나고, 많이 애를 써서 가꾸었는데 도리어 헤집고 망치는 이도 피할 수 없다. 나 역시 누군가의 길에 꽃 한 송이가 되기도, 누군가 가꾼 정원을 망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길은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선택한 길임을 안다. 기꺼이 걷는 길이다. 2020년, 기꺼이 걷는 길을 다시 걷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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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찾아서 손에 넣었다! 남편 득템!

 

연말 연시 준비할 일이 많아 가까운 곳에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나섰다. 이천 쌀밥을 운운하며 갔는데 쌀밥도 보리밥도 아닌 인도 커리를 먹고 근처 도자기 파는 곳에 들렀다가 몇 년 찾아 헤맨 바로 그것을 발견했다. 인사동 같은 델 가면 우물, 마중물, 펌프... 하면서 돌아다니곤 했었는데 늘 실패. 도자기 가게 아이쇼핑 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내가 발견했다. "여보, 이거 봐. 당신 이런 거 좋아하잖아." 아이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찾던 거라고!!! 두 번도 망설이지 않고 펌프 모형, 옹기, 물을 올리는 진짜 펌프를 샀다. 

 

이천 아울렛에 가서 엄청 싸게 나온 신발을 보고, 마침 신발이 필요하다며 들었다 놨다 결국 놓는 것으로 끝났다. 사라고, 내가 사주겠다 해도 아직 신을만 하다며 결국 내려놓고 말았다. 신발에 열리지 않는 지갑이 신지도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펌프 모형에는 열린 것이다. 나같으먼 신발을 사겠네! 바보! 놀려보지만. 실리보다 명분을, 실용보다 의미를 사는 남편이 고맙고 좋다.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찾아다니는 열정과 기꺼이 사고마는 낭비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거룩한 낭비'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 중 특기할 만한 인물이다. 생존하고, 결국 생존하여 치유자가 된 사람이기에 그렇다.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문학가, 예술가들이 생생한 작품을 남기고도 스스로 목숨을 거둔 일이 많다. 그 생생한 기록을 읽다보면 일상으로 돌아와 계속 살아남는 것이 차라리 기적처럼 느껴진다. 빅터 플랭클을 오래, 결국 살아남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 자신이 던진 질문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왜 어떤 사람은 결국 살아남는가? 삶의 의미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살아 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 그 의미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이 극한의 사선 앞에서 버티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의미치료'를 창안하였다. 고통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으로 치유 가능하다! 단지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한 치료책만은 아닌 것 같다.

 

일상의 다른 말은 '소소한 행복'이 아니라 '미세 부조리의 축척'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은혜로 덮고, 다 주님의 뜻이 있겠지 싶어 수용하고 살지만 내 뜻대로 되는 일상이 몇 개나 되는가. 부조리한 일상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다른 말로 ‘의미'의 발견이다. 부조리 속에서 조리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견뎌야 하는 이유가 있음을 알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 의미는 보이지 않는 것이고, 이성과 논리로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용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 돈이면 옷과 신발을 사서 멋지게 보이는 게 낫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펌프 장식물을 사서 끼고 있는 것이 무슨 유익이람. 돈도 안 되는 일에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집어 치우라는 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을 위한 희생으로 자기를 소진하지 말라는 조언을 거스르는 바보같음 말이다. 의미를 발견한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의 신앙은 이렇듯 내가 발견한 십자가의 그분, 그 의미에 대한 깊은 헌신이다. 

 

"자기에게 의미가 있다고 확신할 때 인간은 엄청난 힘을 얻는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 상징들이 맡고 있는 일몫이다... 자기 존재에 대단한 의미가 있다는 느낌은, 한 인간을 단순히 소유하고 소비하는 존재로부터 보다 나은 존재로 도약하게 한다. 그런 의미를 느끼지 못할 대 인간은 자신을 비참한 존재로 인식한다. 만일 자신을 떠돌아 다니는 양탄자 직공(천막 만드는 사람)에서 더도 덜도 아닌 존로 인식했다면 사도 바울은 실제로 아무것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그의 삶의 진실은, 자신이 '주의 사자'라고 하는 내적인 확신 가운데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비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의견은 역사의 증언이나 후세의 판단 이전에 이미 퇴색하고 없다. 사도 바울로 하여금 자신을 확실하게 잡아 쥐게 한 신화는, 단순한 직업인 이상의 위대한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신화는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상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

 <인간과 상징> 카를 융

 

의미와 상징은 얼마나 소중한 낭비인가. 인간을 거룩한 존재, 초월하는 존재가 되게 하는. 보이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내적으로 깊이 품기 위한 상징으로서의 의례와 상징물들. 손에 쥔 연기처럼 빠져가는 낭비, 그러나 이 얼마나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인다. 이 부조리한 일상을 믿음으로 견디게 하는 힘은 지금 여기서 발견하는 '의미' 그것이다.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의 낭비는 과연 무엇인가. 

 

카를 융의 말처럼 인생에 '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종교이고 종교의 상징일 텐데. 인생을 더 천박하고 일천한 것으로 추락시키는 종교가, 교회가 견딜 수 없는 오늘. '실용'을 팔아 '명분'을 사는, 의미와 상징을 사는, 보이지 않는 가치에 자기를 소비하는 바보 하나를 지켜보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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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 주일. 거실 한 켠에 성탄 트리와 대림초를 준비해놓고 피정에 들어갔다. 첫 번째 대림초를 세 식구에게 부탁했다. "하루 지나고 당신 오면 같이 켜." 하더니 셋이서 불을 밝히고 사진을 보내왔었다. 그렇게 2019년 대림초가 밝혀지고 한 주 한 주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오신 주님, 오시는 주님, 오실 주님.

 

 

'엄마 오늘 뭐해?'를 심심하면 던져보는 채윤이랑 성탄절 이브에 데이트 했다. 대학생활 1년을 열심히 달려온 채윤이는 기말고사 끝날 날만 기다리고 기다리더니. 엄마랑 같이 맛있는 것 먹고 놀아볼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더니. 뭘 먹어도 뭘 사도 좋은 것이다. 언제 크냐, 언제 크냐 했었는데. 엄마보다 더 커져서. 

 

 

성탄절 아침이 밝았어도 기다린 보람은 딱히 없다. 산타할아버지 오셨다 가지도 않고, 마라나타! 주님이 성탄절 아침에 짜잔 나타나 레미제라블의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푸시는 것도 아니다. 가난한 내 마음에도 그분의 풍성함이나 평화 같은 것은, 사실 먼먼 일이다. 그런데 베란다 앞의 풍경에서 산타의 흔적, 아니 주님 마음이 힐끗 보이는 것 같다. 박효신의 '눈의 꽃'이 생각나는 풍경.

 

 

'크쓰맛쓰에는 추뽀글 크쓰맛쓰에는 사당을 당신가 만나는 그나룰 기오칼께요'  교회 성탄행사에서 행복한 뒤통수를 맞았다. 기쁨도 기대도 없는 덤덤한 성탄절을 은준이, 은하 아기 천사 둘의 노래로 기쁨의 폭탄이 터졌다. 그렇게 시작작된 아기 엄마 아빠들의 노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주님과 만나는 그날을 기억할게요. 힘들어 지칠 때나 가슴 아플 때도 나에겐 주님 밖에 없어요' 일을 하고, 일을 찾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기다리며 지난한 1년 보냈을 젊은 부부의 노래가, 그들 품에 안은 아기들이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빠져서 듣느라 사진을 못 찍었다)

 

 

주일학교(초, 중, 고) 아이들의 성극은 자기극복의 신화였다. 비포 사춘기, 한창 사춘기, 에프터 사춘기로 구성된 주일학교 아이들이 성극을 한다니. 가능할까 싶었는데... 와, 연기력이 또 터졌다. 압권은 목자 셋이었는데 우리집 에프터 사춘기er 현승이도 끼어있다. 얼마 전 목자 배역 맡은 세 명의 이름을 듣고 미리 빵 터졌다. 한창 사춘기 한 명과 주일학교 통틀틀어 가장 내향적인 아이 둘. 아, 진짜 목자 멤버 죽이는 걸! 분장하고 나와 서있는 것 자체로 감동이고 웃음이었다. 난 현승가 수염 붙이고 나와 섰는 그 순간부터 웃음이 터져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현승이 안식년 1년 동안 꾸준히 베이스기타를 배웠다. 기타 잡은 지는 몇 년인데 제 방 침대 위에서만 띵띵거리는 기타인데. 드디어 침대 밖 연주를 들어보았다. 침대에서 나오고, 집안에서 나오고, 제 안에서 나와 드러내고 발휘해주길 오래오래 기다렸다. 사춘기에서 나오면서 현승이 안에서 어른이 나오기 시작하여 새로운 기쁨이다. 아, 현승이 태명이 '기쁨이'였는데. 

 

 

왼팔 오십견 지나가 살만 하더니 오른팔 테니스엘보라는 인대염이 와 다시 약간 무능의 삶이다. 요리칼 제대로 잡아본 지가 언제던가. 세팅 해놓으면 근사하지만 막상 크게 팔 쓸 일 없는 라끌렛으로 성탄절 저녁식사다. 넷이 달려들어 다듬고 씻고 차리면 뚝딱이다. 저녁 언제 먹냐고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기다리느니 달려들어 함께 준비한다. '언제 클래, 언제 클래' 하며 기다렸던 그 '언제'가 왔다. 다 커서 제 몫의 인생을 책임있게 살아가는(살아갈) 아이들과 마주 앉은 성탄절 식탁은 성인 넷이다.

오지 않는 것 같아도 오는 것이, 반드시 오는 것이 그분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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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아버지 돌아가신지 38년 되는 날이다. 38년. 38년이라니! 3년도, 8년도 아니고 38년이라니. 하루 전날, 12월15일에 동생 집에서 추도예배를 드렸다. 추도예밴지, 생신예밴지, 명절인지. 아이들은 일 년 중 가장 신나는 날이다. 맛있는 것 먹고, 사촌들과 재밌게 노는 날. 축제 같은 날이다. 남편이 예배 인도를 하고, 내가 기도했다. 툭 나온 첫문장에 이끌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에 이끌려 고향 한산에 다녀왔다.

 

"하나님, 38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날, 그 겨울에는 세 식구가 남아 너무도 추웠습니다." 연이어  마 3:16-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본문으로 남편이 설교를 했다. 주제는 단연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 엄밀하게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사랑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신으로 인간이 된 아들은 사람의 몸을 입고 견뎌야 할 고통을 견뎌냈다. 바로 그 한 마디 때문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38년 전에 아버지를 잃은 동생과 내게 아버지 사랑에 관한 기억을 나눠 달라고 하였다. 사춘기 아들이 둘, 우리 현승이 귀염둥이 막내까지 아들 넷이 조르르 앉아 있었다. 나는 원래가 수도꼭지라 기도할 때부터 '고장'이 났지만. 장군인 동생도 말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아까 누나가 기도할 때 첫 문장이... 아버지 돌아가신 그 겨울이 참 추웠다. 아니,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는 늘 추웠다. 그 전을 생각하면 네 식구가 함께 있고, 한 마디로 따뜻함의 기억이다.'라고 말했다.

 

예배 마치고 밥을 먹으며 동생은 네 식구가 함께 '십계' 영화를 보고 가족탕에 갔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내게는 없는 기억이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그 이전의 기억까지도 다 검은 칠을 해버린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자꾸 '전과 후'라는 말을 했다. 같은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지만, 같은 죽음이지만 동생과 내가 기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구나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내게는 'before' 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인가, 조금 혼란스러웠다.

 

추도예배 마친 다음 날, 12월 16일. 남편과 속초 하루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밤새 꾼 꿈의 연장으로 고향의 그 길에 가고 싶어졌다. 아버지 돌아시고, 엄마랑 동생 바로 서울로 이사하고, 혼자 집사님 댁에 남겨져 있던 몇 개월. 슬퍼도 울지도 못하고, 그리워도 맘껏 그리워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지냈던 시간. 학교 가던 그 논길이 생각 났다. 12월 16일, 그곳은 얼마나 추운 걸까? 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말 없이 남편이 동행해주었고, 오가는 근 여섯 시간 운전해주었고, 추웠던 날 나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주었다. 조용히 내 뒤를 따라 걸어주었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혼자인 듯, 그러나 뒤를 따르는 남편 덕에 외롭지 않게 38년 전의 길을 다른 마음으로 걸어보았다. 문제는 오직 '추위'로 기억되는 그 겨울을 느껴고자 세 시간을 달려갔는데... 날이 너무 푹해서, 심지어 올라오는 길에 살짝 차 에어컨을 돌려야 할 정도였다. '추웠던 기억'은 떠나보내라고 더운 입김 불어 넣으시는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산 다녀온 다음 날 남편의 윗입술이 불룩불룩 하더니 툭 터져버렸다.  뭐 힘든 일이 있다고 입술이 터졌어? 월요일 운전이 힘에 부쳤던 것이다. 장거리 운전, 힘들다 힘들다 했었는데. 말없이 김기사 노릇 했지만 몸이 됐구나! 상처의 치유는 누군가 상처로부터 흐르는 피고름을 빨아 먹어주는 심정으로 견뎌줘야만 치유된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찌른다면 다뤄지지 않은 상처들 때문일 텐데. 내 인생 치명적 상처로 가장 많이 찔리고 아팠을 사람이 남편이다. 한산에 다녀온 하루처럼, 함께 하는 세월 내내 내 상처로부터 흐르는 쓴 물을 묵묵히 마셔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산 13년의 행복이 그대로 상실감과 결핍이 되어 38년 째 실락원의 방황이다. 내적 여정을 통해 그 기억을 새롭게 써가며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 만나 제가 누웠던 들것을 들고 제 발로 걸어 나가듯 이제 제대로 털고 일어나려 한다. 더는 그 추위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뜻이고, 자기연민의 늪에서 나오겠다는 뜻이다. 

 

올라오는 길, 겨울도 봄도 아닌 푸근한 날에 갈대밭을 거닐었다. 남편은 신성리 갈대밭이 참 좋았다고 자꾸 얘기한다. 다행이다. 남편에게도 좋았던 곳이 있어서. 아내의 짐을 함께 지고 슬픔에 동참하는 착한 남편에게 그분이 주신 선물인지 모른다. 배우자 선택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기 이성 부모와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데, 13년 딱 함께 살아주고 떠나 그리움만 남긴 아버지이지만 좋은 사람이었던 게 분명하다. 가만한 사람, 가만한 사랑으로 함께 하는 저 사람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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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음터'라 불리는 연구소의 시간 1년, 한 해가 끝나는 12월 송년의 시간이다.

 

기도 중에도 큰 분심이 '번쩍 떠오르는 아이디어'이다. 소장의 '번쩍 아이디어'에 연구원들이 고생이 많다. 번쩍하는 아이디어는 늘 한 사람의 얼굴과 관련된다. 열심히 연결되며 달려왔고, 마지막 남은 영성과정 세미나를 마무리 하면 되는데... 갑자기 송년 리추얼이 '번쩍!' 하고 튀어나왔다.  

 

잊히지 않는 얼굴이 마음에 많이 담겨 있다. 세미나 참석 후 연락이 끊어진 수강자들. 세미나에서 나눈 이야기가 내 마음에 울리고 있고, 기도할 때 떠오르곤 한다. 모를 것이다. 그는. 자신이 내 마음에 담겨 있다는 것을. 세미나에 와서도 함께 나눌 때 외에는 조용히 앉았다 간 분들이 많으니까. 늘 궁금하고, 연구소 강의나 모임 등에 와주기를 기다리게 된다.

 

연구소에서 했던 치유 글쓰기니, 성격유형과 영성 강의니, 나를 찾는 수다 같은 것들은 다 마음에 담긴 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었다. 바로 그 사람이 참석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그 행사의 '유발자'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지나갔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방식이 내게는 참 좋다. 유발자는 모르고, 전혀 새로운 얼굴이 '특별한 수혜자'가 되는 경험을 하고, 만남의 신비에 놀라곤 했으니까.

 

이번 송년회는 하반기 과정에 참여하는 한 분이 '유발자'이다. 한 과정 한 과정 요란하지 않게 오롯이 마음의 길을 따르는 분이다. 직장 일정 때문에 마지막 영성과정에 참여하실 수 없다는 것이 내게 너무 큰 아쉬움이었다. 오롯이 걸어온 반 년의 내적여정에 함께 마침표 잘 찍어드리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을 담고 다니다 '송년회다! 송년회라도 해서 오시게 하자!'

 

송년회 일정 정하고 공지 내보낸 후에 확인 되었다. 직장 행사 일정이 바뀌어서 영성과정 참여하실 수 있게 되었다고!!  이렇게 이 분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시간을 유발하신 것이다 :)

 

'억지로 지는 십자가' 또는 '끌려나와 앉아 은혜 받은 사람들'의 간증이 많지만. 내 인생에도 그런 간증거리는 많지만 남은 인생 '억지로' 하는 일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억지로' 사람을 모으거나, '강권하여' 무엇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래도록 은밀한 영성모임을 이끌며 경험적으로 얻은 확신은 좋은 공동체, 성장하는 개인의 필수요건은 '자발성'과 '투명성'이다. 억지로 하면서 '내가 한 게 얼만데' 자기 의를 쌓고, 그렇게 쌓인 '자기 의'는 생명의 에너지 되기 어렵다. 자발성 없는 곳에 자기개방이 있을 수 없으니 개인도 공동체도 생명의 숨을 쉬기 어렵게 된다.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쁘게 했던 연구소의 작은 일들이 내게, 연구원들의 마음에 생명의 씨앗으로 심겨진 한 해였다. 이 송년회에는 어떤 분들이 올지, 예측불가의 멤버들이 둘러앉아 어떤 생명의 에너지를 나누고 흘려보낼지 상상은 잘 되지 않는다. 내 한 사람의 마음의 자발성과 투명성을 지켜나간다면 무엇이 됐든! 어떠하랴!

 

블로그 벗님들, 함께 해요! 환영합니다!

 

일시 : 2019년 12월 22일(일) 오후 5시 ~ 7시

장소 : 마음성장연구소 신촌 나음터 (마포구 서강로 142, 서일빌딩 5층)

인원 : 20명

비용 : 만 원 ~ 삼만 원 (참가자가 선택)

         301-0240-4119-71 NH농협,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신청 :  https://bit.ly/348qtk8   문의 : 010-6209-0635

 

2박3일 피정을 다녀오....지 못가고, 바로 다시 1박2일 피정을 다녀오...지 못하고 바로 강의 들으러 갔다 겨우 집에 돌아'왔다'. 두어 주 전 일이다. 몸과 마음이, 영혼이 물러나라고 소리치는 때가 있다. 아이들 어릴 적에 남편이 내게 기도 시간을 주면서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다고 칭얼대는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얘들아, 엄마는 지금 기도해야 해. 엄마가 기도 안 하면 죽어!" (극약처방 @.@ ) 맞다. 이러다 죽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심술쟁이 하늘 영감님이 극적인 계획을 세워 몰아 넣으셨다.

 

요 몇 달 주제는 '영적 식별'이다. 피정도, 배움도, 삶도. 일주일 앞두고 피정을 결정했고, 등 뒤에 두고 가는 일상과 일의 복잡함은 말할 수가 없었다. 일상과 일의 복잡함이 다 내 마음에 담겼으니 결국 다 끌고 간 셈인가? 완전 기도응답 받고, 은혜 충만, 마음 평안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창의성에는 혀를 내두르며 감동하게 되었다. 같은 말을 같은 방식으로 하는 적이 없으시고, 내가 그리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여러 인물을 동원하셨으니. 창의성에 더불어 성실함까지! 별 다섯 개 만점에 별 오백 개 드린다.

 

소그룹에다 대부분 수녀님인 피정 그룹에 가서 첫 인사 나눌 때는 늘 조금 위축된다. 개신교인이라 하면 교회에서 새 신자 대하 듯 신기해서 하거나 어리게 보면서 까꿍, 하는 느낌도 있고. 낯선 자리에 앉아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며 자기연민에 빠지기도 한다. 과도한 자기연민도 좀 털어버리기로 했다. 경계를 넘어 가톨릭 영성을 배우러 다닌 지가 10년이 넘었고, 많은 신부님 수녀님께 많은 것을 배웠는데. 에니어그램 / 향심기도 / 영적 식별, 이 세 가지가 지금 여기 나의 영성 생활을 구축하는 세 축이 되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세 가지를 결정적으로 가르쳐주신 세 분의 수녀님을 동시에 만났다는 것이다. 영적 스승으로 모시는 세 분 스승님을 누가 한 자리에 불러 모은 것인가! 그 다음 벌어진 일들, 더 놀랍지만 여기까지만 하련다. 돌아보니 긴 시간, 여러 학기 강의 들으며 많은 무릎을 쳤던 신부님들의 강의도 있는데. 꼭 필요한, 아니 내 몸에 꼭 맞는 가르침은 모두 수녀님들 강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이제는 안다. 여성의 영성을 남성에게 배울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정말 어쩌면... 영성은 여성들의 것인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럽지만 확신에 찬, 그러나 지극히 주관적인 확신이기에 살짝 자신이 없으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니 어쩌면 정말 그럴 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11월부터 6주간 ‘영적 식별력을 기르는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는데, 이번 주 마지막 시간이었다. 각자 먹을 것을 조금씩 가져와 나누기로 하여 풍성한 나눔이었다. 여기서도 검은 수도복 입으신 수녀님들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어쩌면 정말 여성들의 영성모임은 그 자체로 영성적이다. 잘난 척이 없고, 뭘 많이 안다는 자랑이 없고, 배제가 없고, 쪼개고 분석하는 지적 허세가 없고, 처음 보는 자매와도 마음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정말이다.. 내적 여정을 비롯 여성들의 집단 여정을 오래 이끌며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바이다. 환대가 있고, 나눔이 있다. 

 


어느 수녀님께서 어느 수녀님의 영명축일과 또 다른 수녀님의 생일 축하를 위해 2단 케이크를 만들어 오셨는데 장식이 모두 생화이다. 다 먹고 나니 어느 새 꽃들은 투명 볼에 띄워져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피어 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남자네!^^)이 말씀하셨다. ‘감정은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기쁘고 슬픈, 화가 나고 섭섭하고, 즐겁고, 외롭고... 이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낄 줄 아는 인류는 ‘여성’이라서 영성은 여성의 것인지 모른다.

 

2박3일 피정을 마치고 집으로 오지 못하고 바로 연구소 1박2일 피정이었다. 2년 동안 꿈집단을 함께한 소중한 벗님들과 마침표 찍는 피정이다. 이 집단 안에서 일어난 말로 다 할 수 없는 치유와 성장의 경험이 연구소 세울 힘이 되어주었다. 2년간의 수많은 에피소드를 담아 ‘여성적인 것의 구원’이란 주제로 나눔과 의례, 먹고 마시는 꿈같은 시간을 가졌다. 강같은 눈물, 폭포 같은 웃음은 기본이다. 여성들의 영성은 이렇다. 작위적 형성(formation)으로 구축하고 쌓지 않아도 그저 삶으로 흐르는 것이 여성들 영성의 형성이다.

 



대림 2주간이 시작된 날, 붉은 꽃 한 송이가 피었다.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라 불리는 녀석이다. 정말 이름이 그렇다. 해마다 이 즈음, 핀다고 하여 그리 불린단다. 우리 집에선 '대림 선인장'이라 부른다. 대림절 끝이 성탄절이니 그 말이 그 말이다. 일 년 내내 시들시들 맥아리 없이 보여 꽃 볼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딱 한 송이가 슬쩍 피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웃음이 난다. 아, 진짜 이 주님.... 진짜.


오실 주님, 

오시는 주님,

오신 주님, 

딱 한 송이면 족하다 하시는 거지요?




2년 전 이때, 크리스마스 선인장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어느 날 화분에서 붉은 꽃이 만발 했는데, 너무 놀라 신비체험인 줄 알았다. 대림절 기간이었다. 추운 거실, 노트북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발견했다. 어머, 어머, 어머, 이게 뭐야! 계절에 맞지 않는 꽃이 만발하니, 영락없이 주님이 주시는 위로의 신비체험인 줄 알았다. 자칭 신비주의자, 타칭 이성주의자 남편이 검색하고 알려주었다.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래!'


오십견으로 팔을 잘 들지 못하던 즈음이다. 다 접었던 음악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했고, 시집살이 하듯 삼시세끼 밥을 했다. 4,5년 일에서 놓여 쓰고 싶은 글이나 쓰고, 젊은 사모님들 집에 불러 책모임 하고, 영성모임 하고, 간간이 강의나 하며 좋은 세월을 지내고 난 뒤였다. 편한 맛을 본 후라 몇 배 더 힘들었다. 하나님, 이 양반이 나를 편하게 두실 리 없지! 내가 편히 지내는 꼴은 못 보신다고! 


난생 처음 '페이 좀 올려주세요'란 말도 하고, 다시 내 몸보다 큰 키보드 끌고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했다. 삼식이가 된 남편의 삼식을 챙겨야 하는 일이 키보드 무게보다 더 무거웠다. 신앙 사춘기는 끝난 걸로 스스로 정리한 뒤라 마음대로 침 뱉고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안 나는 힘을 내어 무거운 짐 번쩍번쩍 들고 다녔더니 기어코 오십견이 왔다. 등도 못 긁고, 옷 하나 제대로 입지 못하는 중 대림시기가 되었다.


아니, 자기 몸보다 더 크고 무거운 키보드를? 하면, 괜찮아요! 이래 보여도 힘은 쎄요! 번쩍번쩍 들고 다니며 1년, 어깨는 짖눌렸다. 내가 괜찮지 않으면 도미노로 무너질 것들이 많아서(많다 여겨서) 늘 그랬듯 체중에 넘치는 짐을 지고 다녔다. 짐보다 더 무거웠던 건 바닥에 깔린 자존감이었다. 꼭 짐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위축이어서 굽은 어깨 더 굽히고 다닌 1년. 오십견 증상으로 더 짐을 들 수도 없던 대림 시기였다. 그 어간 어느 날, 죽은 것 같은 선인장에서 꽃이 만발했던 것. 누가 뭐라든 나는 아기 예수님 그 분이 피운 위로의 꽃이라고 믿는다. 사실.


상황이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 어쩌면 더 무거운 날들이었다. 그 사이 오십견은 갔고, 최근엔 '테니스 엘보'라는 인대염이 와 있다. 이 역시 키보드 무게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소를 시작했고,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생명의 연대를 맛보며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작년 12월 7일에 이사를 했고, 12월 8일에 연구소 첫 개소식을 했다. 딱 일 년이다. 어느 덧 다시 대림시기이다. 단 한 송이의 대림 꽃이 피었다. 심술쟁이 하늘 영감님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더 불평할 힘도 없어 위로의 붉은 꽃 같은 것은 기대도 안 했는데 말이다. 오십견에 오십 송이라면, 테니스 엘보는 한 송이면 된다는 처방입니꽈? 


오신 주님, 

오시는 주님, 

오실 주님,

딱 한 송이로도 당신 마음 알아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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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깊이 알지 않고는 자신을 깊이 알 수 없고, 자신을 깊이 알지 않고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없다. 


_칼뱅 『기독교 강요』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것이 신앙의 여정이라 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반드시 자기 지식을 변화시킵니다. 지금 우리 기독교 신앙이 처한 위기는 위에 칼뱅이 말한 ‘앎’의 불균형, 즉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과 앎은 차고 넘치는데 자신에 대한 실존적 성찰과 앎의 빈약함인지 모르겠습니다.

라캉은 말했습니다. “진리에나 신경 써라. 치유는 저절로 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내가 누군지 아는 진리. 함께 해보시겠습니까. 치유와 성장의 여정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에니어그램 1단계를 시작하여 내 안의 왜곡된 ‘하나님 상’을 만나는 영성과정까지. 한 달에 하루 씩, 여섯 번 피정 같은 만남입니다. 전에 해보지 않은 질문, 전에 해보지 않은 기도의 여정으로 초대합니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금요반]

+ 일시

기본1단계 : 1월 10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기본2단계 : 2월 21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심화1단계 : 3월 20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심화2단계 : 4월 17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영성1단계 : 5월 15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영성2단계 : 6월 19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 장소 : 하남 나음터 (하남시 아리수로 570 효성해링턴타워 더퍼스트 101-824)
+ 인원 : 7명
+ 비용 : 12만원/ 1일
+ 입금계좌 : 농협 301 - 0240 - 4119 - 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토요반]

+ 일시

기본1단계 : 1월 11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기본2단계 : 2월 22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심화1단계 : 3월 21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심화2단계 : 4월 18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영성1단계 : 5월 16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영성2단계 : 6월 20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 장소 : 신촌 나음터 (마포구 서강로 142, 서일빌딩 5층)
+ 인원 : 10명
+ 비용 : 12만원/ 1일
+ 입금계좌 : 농협 301 - 0240 - 4119 - 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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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엄마, 아빠, 누나 저까지 네 명의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누나는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누나 성격은 저와 정반대로 외향적이고 밝습니다. 저랑 누나는 싸우기도 정말 많이 싸우지만 다른 남매들에 비해 대화도 많이 하고 서로 잘 챙겨주는 남매입니다


아빠는 무겁고 깊은 사람입니다. 저의 고민을 절대로 가볍게 들으시지 않고 항상 의외의 답을 주시는 분입니다. 항상 진지할 것 같은 아빠가 가끔은 유머러스하게 농담도 많이 하시는데 그다지 재밌지는 않습니다


엄마는 세상에서 저랑 가장 웃음코드가 잘 통하는 사람입니다. 집에서 저와 가장 많은 대화를 해주시고 항상 밝은 분위기를 주십니다. 이런 엄마가 한 번 화내면 정말 무섭습니다.


저는 가족이 정말 편하고 식구들이 다 같이 있으면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근데 왜인지 모르게 가끔 식구들을 벗어나면 좀 편해지고 해방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실 이런 느낌은 세상 모든 사람이 느끼는 기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가지 않고 인생의 'pause' 버튼을 누르고 1년을 지냈다. 청소년 갭이어 '꽃다운 친구들'과 함께 일 년의 방학을 가진 현승이가 다음 행보를 정했다. 갭이어 이후 그대로 집에 남아 혼자 검정고시로 고졸 자격을 획득하고, 혼자 입시 준비를 하고 대학생이 된 누나의 길을 따를 자신이 없다고 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했고, 대입 학원에 불과한 분당의 일반 고등학교에 가기는 싫다고 했다. 고민 끝에 누나 채윤이가 툭 던진 '소명중고 있잖아' 라는 말 한 마디가 첫 이정표가 되었다. 온라인 오프라인, 인맥 라인까지 총동원 하여 알아본 학교는 지금으로선 현승에게 딱 맞는 학교이다. 입학전형 마감일을 코 앞에  두고 폭풍 준비에 돌입하여 접수를 마쳤다. 


입학원서 서류에는 현승이가 쓰는 가족소개 란이 있는데. 바로 거기 쓴 짧은 소개 글이다. 몇 문장으로 정리된 아빠, 엄마, 누나의 캐릭터가 흥미롭지만 엄마 눈에 볼드체로 강조되어 들어온 부분은 마지막 단락이다.  "근데 왜인지 모르게 가끔 식구들을 벗어나면 좀 편해지고 해방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가슴이 서늘해지도록 반가운 문장이다.  제대로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으로 읽혀 고맙고 반갑지만, 어쩐지 가슴 한 곳이 텅 비어 찬바람이 휘잉 지나는 느낌이다. 



일기와 시에 비춘 현승이 가족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2011년 일기이니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기이다. 아홉 살! 현승이가 어릴 적에 참 좋아했던 위기철의 소설  아홉 살 인생』도 떠오른다. 아무튼 이렇다.


우리 엄마는 중독이 2가지 있다. 1개는 엄마 핸드폰에 있는 과일 짜르기 게임 중독이고 또 하는 패이스북 중독이다. 매일 식탁에 않으면 패이스북 아니면 과일 자르기 게임을 하한다. 아빠는 자기 중독이다. 아침에 엄마가 깨워도 잘 안 일어난다. 어쩔 때는 내가 학교를 간 다음에 깰 때도 있다. 나는 엄마 중독이다. 매일 엄마를 안은다. 엄마가 좋다. 우리 누나는 춤을 추는 게 중독이다. 매일 우리 방에서 춤을 춘다. 그럴 때 누나를 보면 너무 웃기다. 


덕분에 엄마는 과일 짜르기 앱을 바로 지우고 과일 짜르기 중독에선 벗어났으나 그 이후에도 다양한 중독에 빠져 여전히 허우적대는 중이다. 다른 식구들의 중독은... 흠... 내 알 바 아니다. 



2015년 1월에 쓴 시이니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가족의 캐릭터를 인식하는 눈이 조금 깊어졌달까, 아니면 더욱 주관적이 되었달까.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현승 특유의 반어법을 사용한 돌려까기 기술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돌려까기는 열일곱인 지금의 현승이가 다양한 장면에서 흔히 쓰는 기술이다.) 


우리 아빠는 운동도 잘하고 건강하다.

그래서 이름이 김병약(病弱)

 

우리 엄마는 글쓰는 걸 싫어하고

잠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름이 정원고(原稿)

 

우리 누나는 공부도 잘하고 머리가 좋다.

그래서 이름이 김무식(無識)

 

나는 었떤 일에도 긍정적이다.

그래서 이름이 김절망(絶望)

 

사실 우리집은 거꾸로 가족이야. 

 

* 괄호 안의 한자는 편집자인 엄마가 삽입.


우치다 타츠루의 말처럼 기억은 다른 장소에서 다시 말할 때마다 개정판으로 다시 쓰인다. 아홉 살, 열두 살, 열일곱 살의 눈으로 보는 가족의 모습은 이렇듯 다르다. 한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한 인생이 무르익고 성숙하여 자기만의 빛을 낸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특히 생애 초기, '자아'를 형성한 토양이었던 가족의 이야기 같은 것들은 더더욱 그러할 것. 스무 살, 서른 살, 쉰의 현승이 글에 가족 이야기는 어떻게 그려지고 담길까. 현승이가 자기 자신의 되어 가는 서사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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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테이블에 놓인 핸드북을 보고 현승가 빵 터졌다.  "으헛, 사모대학? 이건 무슨 대학이야?" 지난 학기에 이어 사모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강사로서 가장 복잡한 자리'라고 표현하곤 한다. 꼬맹이 장애 아이부터, 비장애 아이들, 신자와 비신자, 부모와 아이, 청년과 노인, 무신론자와 가톨릭 신자, 또는 불교신자까지. 다양한 분들 앞에 마이크 들고 서는데 사모님들 앞에서 강의는 마음이 복잡한다. 여러 의미로 복잡한다. 얼마나 복잡했으면 엊그제 있었던 이번 학기 2회차 강의는 전날까지도 강의안을 확정하지 못했었다.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나를 주장할 언어를 가진 내게 ‘사모’는 여느 사모님들과 다르다. ‘글쓰기’라는 일종의 권력을 가진 나는, 글은 커녕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사모님들이 호칭되는 ‘사모’와 다르다는 걸 안다. 아프도록 다르다. 나는 '사모'라고 부르며 나를 통제하려는 후배에게 '사모라고 부르지 마라!' 할 수도 있다. '저 분이 책을 낸 작간데 왜 사모라고 부르고 그래요?' 하며 '사모라 부르지 않는 것'으로 자기 주장을 위해 나를 대상화 할 때는 '사모라 불리든 작가라 불리든 부르는 사람과 나와의 관계다. 낄끼빠빠 해라'고 할 수도 있다. 내겐 이제 그런 힘이 생겼다. 


사모님들이 여러 면에서 힘들지만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수자 스탠스가 그러하듯. 목소리는 낼 수 없지만 은근한 주목(이라 쓰고 '감시'라 읽는다.) 엄청나게 받는다. ‘사모’라는 존재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만큼 사모님을 돕는 것도 없다.  사랑해서 결혼한 남자가 목사니, 그의 삶의 동반자로 함께 걸으며 자기 삶을 살도록 신경 꺼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여자가 남편의 직업 때문에 그렇듯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단 말인가.

(자주 했던 얘기지만) 주부수영반에 들었던 적이 있다. 거기선 일반적 호칭이 ‘형님’이고, 1번 형님, 3번 형님 등으로 불린다. (번호는 수영 잘하는 순서, 말하자면 줄번호이다.) 수영 마치고 오래오래 시우나 하고, 맛집 가고 하는 형님들의 에프터엔 나도 함께 하지 못했지만. 유독 혼자 다니는 한 분이 계셨다. 어느 날 2번 정도 되는 형님께서 내게 엄청난 비밀 공유하신단 태도로 귓속말을 주셨다. “야, 저기 지금 나가는 평영 잘하는 여자 있지? 걔 목사 사모래” 헉! 목사 사모가 왜요? 나도 커밍아웃 해야 하나, 잠시 심장이 쫄깃 했다.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까지도 목사 사모에 알 수 없는 무엇을 덧씌우고 바라본다. 그러니 사모님들께 당장 ‘자기 자신이 되세요! 사람들의 기대에 휘둘리지 마세요!’라 말할 수 없다. 마치 그런 주문 같이 느껴져서다. 신혼 초에 시어머니의 과한 요구에 거절하지 못하고 돌아와 괴로워 하는 내게 남편이 하던 말이 있다. “그렇게 싫으면 어머니한테 싫다고 하지 그랬어?” 내가 그 말 할 힘이 있었으면 이제 와 이러겠냐고! (그 힘을 기르기 위해 20년 수련을 해왔다.)

사모님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하는 자체가 사모를 어떤 프레임에 가두는 것이라 여겨 불편하지만 이것조차 힘이 되는 분들이 존재한다. 게다가 이런 곳에 찾아올 수 있은 분은 그나마 여건이 나은 분들이다. 이 지난한 사모의 일상을 한 방에 뚫어줄 무엇을 기대하셨을지 모르나 내겐 그런 것도 없다. 강의란 이름으로 아내, 엄마, 사모로서 흠결 많은 나를 보여 드리는 것. 그나마 목회자 아내로서 형편이 나은 나, 이런 곳을 찾을 수 있는 분들도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일은 아니지 않나 싶다가도 그나마 이렇듯 연결되는 것이 어딘가, 하기도 한다.




사모대학 강의 다음 날엔 사모인 친구를 만나러 다녀왔다. 주어진 몇 시간, 시간 가는 것 아까워 마음 졸이며 수다를 떤다. 명목은 김치 가지러. 젊어서부터 사모란 이름으로 제 교회에 엄마 노릇에 지친 친구의 김치를 나는 또 얻어다 먹는다. 김치는 맛있다. (그 맛있는 김치에 먹으려고 일찍부터 무국을 끓여 놓고 가는 부지런한 나) 가족들도 M이모 김치야? 와와!! 겨우내 김치찜 하고 김치찌개 끓일 때마다 친구를 생각하고, 친구의 삶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올라오는 길에 우리들의 20대를 얘기했다. 고속도로 옆 산들은 안개에 휩싸여 묘한 분위기였다. "우리의 20대 안개 속 같았어" 그렇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 같았지. 보이지 않는 한 발 앞이 나름 희망이기도 했는데. 제각각  이런 모양의 구부러진 길을 걷고 있다. M과 나, 그리고 사모가 된 두 언니들 생각에 늘 부채감 지고 있는 H. 우리의 노년이 지금보다 자유롭고 평화롭기를 마음으로 빌며 운전했다. 이번 주 만난 사모님들의 나름대로 구부러진(曲) 길 위에도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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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Jung은 '동시성'이라 하고 우리 동네에너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한다. 도모한 일이 흘러가다 누군가의 도모를 만나 내 통제 밖의 일이 되는 것. 그리고 일을 도모한 각각의 사람에겐 계획과 다른 생의 선물이나 배움을 얻게 되는 것. 말을 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전처럼 '거침없이 블로깅!' 생활이었다면 신비주의자의 블로그가 되었을 것이다. 연구소를 통해 본격적으로 치유와 성장의 동반자로 많은 이들과 연결되면서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10월 마지막주에 단회 글쓰기 강의를 했다. [나찾수다:나를 찾는 수다]라는 이름으로 비정기적 사려 깊은 수다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갑작스레 결정되고 진행되었다. 내적여정이든 강의든 많은 10여 명 정도의 신청을 받는다. 공지를 올리자 금세 마감이 된다. 강의는 거의 재능기부이고, 주최하는 연구소 입장에선 비효율적인 프로그램들이다. 그래서 그래야 할 이유가 100개이기에 기쁘게 고집하는 방식이다. 공지 올리면 금방 마감이 되는 인기에 연연하는 나로서는 기분은 참 좋다.

 

그렇게 기분좋게 마감이 된 후 연구소 카페로 쪽지가 하나 날아왔다다. 미국 뉴저지 사시는 독자였다. 언니와 함께 십몇 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신다며, 연구소의 에니어그램 강의 듣는 것이 한국 가면 꼭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라고 했다. 에니어그램 세미나 일정은 맞지 않아 포기하였는데 마침 나찾수다와 시간이 맞는다며 꼭 참석하고 싶다고. 고국 떠난지 20년 넘었는데 처음으로 방문하는 엄마 같은 큰언니께 선물로 선사하고 싶다고. 


이런 부분에서 원칙을 지키는 편이지만 뒷구멍 자리를 만들었다. 이미 내 글쓰기 강의 들으신 믿을만 한 벗에게 자진 취소를 종용했고, 기꺼이 취소당해주었다.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몰랐다. 누구에겐 가까이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 두 분께는 여행 속 특별한 경험이 되셨으니. 물론 내게도 마찬가지이다. 마침 연구소에서 급하게 글쓰기 강의를 계획했고, 마침 두분이 한국 여행을 오셨고, 마침 강의 안내를 보시고, 마침 용기를 내어 쪽지를 보내셔서 성사된 '동시성'이 만든 만남이다.


신비하게 교차된 만남을 한 번으로 흘려 보낼 수가 없어서 여행 일정을 여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느슨하게 즐기는 여행이라니 차로 어디든 좀 모시고 가고 싶었다. 서울 외곽 드라이브 데이트 신청을 했고 성사되었다. 양평이냐, 양수리냐, 남한산성이냐.... 식사도 경치도 놓칠 수 없다, 고민했다. 언니께서 좋아하시는 메뉴를 고려하여 당첨된 곳이 남한산성. 


정말 멋진 고국의 가을 하늘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주 그냥 미세먼지가 뿌옇다. 속상해도 너무 속상해서 나도 모르게 '아이고, 파란 하늘에 단풍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말끝마다 후렴구로 반복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남한산성 도착하여 식사 하고 나왔는데 하늘이 저렇다. '사모님이 하도 파란 하늘 아쉬워 하시니 하나님이 저리 해주셨나봐요' 라고 하신다. 나도 그렇다고 믿는다.


 

큰언니께서 두부 좋아하신다 하여 손두부집에 갔는데 성공! 두부찜은 물론 들기름에 구워져 나온 두부 스테이크를 맛있게 드셨다. 여행 최고의 메뉴라고 하시니, 보람이 돋아서 어깨도 치솟고 기분도 막막 좋아졌다. 식사하고 커피 마시는 동안 길지 않은 시간 두 분의 인생, 생의 이면을 듣는 영광을. 두분은 나의 일상 하루에 함께 하신 것을, 나는 두분의 의미있는 여행에 동참한 것을 서로 감사감사 하였다.

 

<커피 에니어그램>을 보시고 커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뉴욕 커피 맛집을 찾아 원두를 사오시고, 쿠키를 사오신 마음과 정성. 어쩌다 작가 되어 써서 내놓은 글에 부끄러움도 많지만, 쓰길 얼마나 잘했나. 글쓰기 강의 하길 잘했고, 두분을 초대한 것은 또 얼마나 잘한 일인가. 나는 좋은 사람이기도 나쁜 사람이기도, 따뜻한 사람이기도 차거운 사람이기도 하지만. 나를 좋은 사람 만들어 주는 이 만남이 얼마나 고마운가. Juug의 동시성 또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나를 잠시 좋은 사람 만들고, 좋은 사람과의 만남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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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막 떤댕님, 바깐놀이 가치 가자.


예쁜미소반 음악치료가 끝나고 "바깥놀이 가자"라는 담임샘의 말에 H이가 대뜸 초대했다. 평소 그리 살갑지도 않으면서. 음악치료 시간에는 부끄러워 제대로 뭘 하지도 않으면서. 넷 중에 나이도, 발달도 제일 앞섰지만 어쩐지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않으면서. 악기 챙겨 나오는 으막 떤댕님 바짓가랭이를 뭉클하게 잡는다. 악기를 싣고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데 바깥놀이 가는 시크한 네 친구. 인사한다.


안녀엉, 안녕! 다음 시간에 만나아~ 안녕.


오늘도 행복해 하셨습니다. ^-^


치료 마치고, 다음 일정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예쁜미소반 담임샘, 특수교사인 뮨진샘에게서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왔다. 아닌 게 아니라 행복했지. 임상 뛸 나이도 경력도 아닌데, 뮨진의 아이들이라 간다. 치료사와 특수교사가 신뢰 속 빠른 감각으로 손발이 착착 맞아서 치료할 맛이 난다. 20여 년 전, 처음 음악치료를 할 때는 수치와 기록에 목숨을 걸었었다. 이제는 치료 시간 30분의 행복에만 마음을 쏟는다. 그 때는 의욕 넘치는 젊은 엄마처럼 치료 했다면 요즘은 손주 보는 할머니 마음 같다. 특수교사로 준비하고, 되고, 성장하는 뮨진을 알고, 그의 아이들이라서일까. 그저 할머니 나이가 되어가기 때문일까. 손주 돌보는 할머니처럼 어깨, 허리, 목 안 아픈 데가 없지만 '오늘도 행복'했던 것은 맞다.





치료를 마치면 '수업'이 있다. 어린이집에 음악수업을 하러 간다. 젊을 때는 치료와 교육의 목표가 달랐고, 욕심도 달랐고, 접근도 달랐는데 갈수록 그 차이를 모르겠다. 장애/비장애, 교육/치료의 차이가 뭐란 말인가. 굿바이송을 부르려 치면,


끝났어요? 다 끝났어요? 음막션샘미 집에 갈 거예요? 가지 마요.


아우성이다. 악기 정리하는데 터프한 남자 아이 S가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내 목을 꼬옥 끌어 안더니 볼에 쪼옥 뽀뽀를 한다. 귀에 대고 한 마디 "사랑해요" 그걸 본 사랑쟁이들이 가만 있을 리 없지. 우르르 몰려 나와 둘러싸고 안고 뽀뽀한다. 이렇듯 사랑받는 사람, 음막션샘미! 이러니, 내가 나르시시즘, 자아팽창 병, 병세가 나아지질 않지.  


류 근 시인이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 어머님 강인옥 여사님 장례식 사진에 붙인 글에 영국의 시인 존 키츠의 묘비병을 인용했다. 


여기, 이름을 물 위에 새긴 사람 잠들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름을 물 위에 새기고 사라지는 존재들이다. 이름 뿐이랴. 우리가 하고 있는 많은 것들은 물 위에 새긴 것처럼 흘러가고 사라지고 만다. 20여 년 아이들과 함께 수많은 노래를 불러왔다. 얼마나 많은 노래들이 공기 중에 흩어지고 말았는지. 음악치료 프로그레스 노트나 치료평가서에 다 담을 수 없는 이야기와 행복감은 산과 같다. 그러나 다 흩어지고 흘러가고 말았다. 아이들은 으막션샘미를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참 좋구나, 그래서 참 좋구나 싶다. 흘러가고 흘러가는 아이들 마음에 불렀던 노래, 다 흩어졌어도 '나는 오늘도 행복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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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의견의 차이 또는 갈등이라 해도 좋을 상황을 인내로 헤쳐 나가는 시간, 숨을 고르며 남편이 자주 하던 말이었다. 다르다고 생각했고, 다름의 간극이 멀어 다시 손을 맞잡을 수 있을까 싶은 시점에서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은 달래고 어르는 말처럼 들렸었다. 달래지고 얼러지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 '같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차분하게 '같은 말을 다르게 하고 있다'고 설득하는 태도 때문에 달래졌던 것 같다. 

요즘 자주 속으로 생각한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하고 있구나!" 남편과는 물론이고 아이들과도 그렇고. 많은 경우 그렇다. 3인칭 시점으로 지켜보는 '말'들은 대부분 같은 마음을 다른 언어로 표하고 있다고 느낀다. 같은 마음이란 '평화와 자유' 같은 것들이다. 화해와 연결, 이해하기 이해받음 같은 것들이다. 문제는 언어가 담은 마음이 아니라 그저 언표만을 듣고 볼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귀와 눈이다. 서로 다른 뜻(마음) 이 아니라 같은 마음 다른 표현이기에 더 어렵구나, 이런 생각도 한다.   

적어도 남편과는 '같은 말을 다르게 하고 있음'에 대해 빨리 감지할 수 있다. 그러자 우리의 차이가 보인다. 그러자 내가 보인다. 더욱 또렷이 보인다. 알고도 모르고 모르지만 알았던 내가 잘 보인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하는 지점은 에너지와 속도의 차이이다. 나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남편은 부러 천천히 뒤처져 숙고한다. 알고보면 같은 결론, 같은 뜻이다. 나는 '계획 세우기'로 뜻을 향해 나아가고, 남편은 명확한 마침표를 위해 뜻을 갈무리 한다.  말을 하다보면 간극이 엄청나지만 뜻이 같고, 바라보고 있는 곳이 일치한다.

안성의 있는 미리내 성지를 걸었다. 같은 뜻으로 걸었다. 뜻을 담은 소리가 달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알아듣는 귀가 생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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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가 사라진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이 블로그 전 집은 싸이월드 클럽이었지요. 

2006년 6월, 끙끙 며칠  걸려 짐을 옮기고 둥지를 틀었습니다.

12년 살면서 짐은 꽤 늘었지만 여전히 살 만한 공간입니다. 

하남, 덕소, 하남, 명일동, 합정동, 분당으로 몸이 사는 집은 옮겨 다녔지만

마음은 마음 편히 내 집이려니, 전셋값 올릴 걱정 없이 여기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내내 여기서 살려구요.


전처럼 자주 글을 쓰지 못하지만 휴업은 아닙니다.

신상 입고가 안 될 뿐, 가게는 계속 열려 있습니다.


일상은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내 얘기를 풀어놓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느라 겪어야 하는 불편함과 불이익에도 익숙합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대나무숲'이니까요. 

여전히 하루에도 몇 편 씩 블로그 포스팅을 합니다. 

오직 머릿속 노트북에서요.

일상이 계속되는 한, 블로그에 쓰지 않을 방법이 없지요.

영화 리뷰도, 가족 이야기도, 내적 여정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도.

마음으로 늘 포스팅하고 있어요. 


전과 다르지 않은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가을이 왔고, 남자에게 소국을 조르고, 

꽃을 든 남자가 들어오고,

꽃을 든 남자가 이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싱크대 앞 창가에 생기를 키우는 작은 화병에도 가을 한 줌이 꽂힙니다.


기대했던 앞산의 가을은 생각보다 밋밋합니다.

올봄, 마음을 들뜨게 했던 연초록의 나무들이 미적미적 생기를 잃어갑니다.

붉고 노랗게 아름다움을 뽐내는 화려한 퇴장은 모르는 모양입니다.

단풍이 예쁜 나무들이 아닌가 봐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어요.

화려하게 불태우는 것만이 존재의 의미는 아니니까요.

그저 있음으로 위로와 기쁨을 선사한 자연, 自然의 소임을 다 한 녀석들.

볼품없이 색이 바래고, 잎을 떨구고, 텅 빈 산이 되어도 그저 좋겠습니다.


우짜든지 일상도, 블로그도 영업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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