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적으로 설정된 한계로 어떤 관계는 더는 깊고 진실한 관계로 나아갈 수 없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신산한 삶을 살아오신 탓에 몸과 마음이 많이 무너지신 시어머님을 돕고 싶어 많은 것을 했다. 한방 양방 가릴 것 없이 어머님이 꽂히신 병원, 상담, 치유 피정 등을 모시고 다녔다. 배우지 못한 결핍감을 안고 살아오신 세월이라 자서전을 내드리면 치유될까 싶어 구술을 기반으로 책을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 거기까지. 거기까지 하고 손을 놓았다. 내가 어떻게 한다고 어머님이 변하시는 것은 아니다! 좌절과 분노도 있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 사회적 간극. 할만큼 했다 생각하고 거리를 둔 지 몇 년이다.


주일 저녁, 나는 강의로 함께 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남편이 어머님께 다녀왔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는데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울컥했다. 어른처럼 큰 몸이 된 아이들. 고목에 매미처럼 손주 어깨에 매달린 어머님이 너무도 작아 보인다. 아이들 어릴 적 풀타임으로 일할 때 먹이고 씻기고 기저귀 갈아 채우며 키우신 할머니 엄마이다. 세월이 이렇듯 존재의 사이즈를 바꿔 놓았다. “어머니, 애들 막 떠났죠? 저는 사진 봤어요.” 정말 오랜만에 어머님과 편안하게 통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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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포스팅이 뜸한 이유는 다른 곳에 차린 살림에 마음을 빼앗기는 탓입니다. 사회적 자아로 사는 페이스북 개인 계정, 영혼을 많이 갈아 넣은 살림집 연구소 페이지 계정 등이지요. 그러나 돌아와 발뻗고 쉴만 한 집은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블로그입니다. 연구소는 따로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검색하고 찾으시는 분들이 찾다찾다 유령 연구소냐, 어딘가에서 봤는데 두 번은 못 찾겠다 하시네요. 연구소는 페이스북에 '상처 입은 치유자들'로 찾으시고, 카카오톡플러스친구에서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로 찾으시면 되겠습니다. 딴집 살림 어떻게 살고 있는지, 최근 소식 알려드릴까요.  



♠ 가고 싶지만 가고 싶지 않은 세미나 ♠

심화2과정 하루 여정 마쳤습니다. 차분하게 반가움 나누며 시작.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한 마디 질문 앞에 누구랄 것 없이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돌아보면 솔직하게 나누는데요. 거의 비슷한 내용.

오늘 여기, 오고 싶지만 오고 싶지 않은 마음. 설레지만 부담되는 곳입니다. 일상에서 쓰는 사회적 얼굴은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있어도 된다는 것을 알기에 편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는 일이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님을 아니까요. 그럼에도 결국 둘러 앉았습니다. 여정을 이끄는 더 역시 세미나 있는 날 아침마다 느끼는 양가감정입니다.

여정의 실전편이라 할 수 있는 내 마음의 ‘생각’과 ‘감정’을 톺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이 아니라 마주 앉아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 들려주는 분들이 가장 투명한 거울인 것은 변함 없습니다. 함께한 벗님들 감사합니다.

영성과정 하나 남겨두고 있습니다. 1단계 들으신 분은 중간과정 못들으셨어도 신청 가능합니다.

[영성단계]

+ 일시 : 7월 13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장소 : 신촌 나음터 (2호선 신촌역),
+ 비용 : 12만원/ 1일
+ 신청 링크 클릭 


♠서로가꿈 : 커플/부부 관계 세미나♠

“평생 사랑하며 살아갈 우리 사이, 잘 가고 있는 걸까?”
정기 건강검진 받듯 잠시 멈춰 점검해보고 싶은 커플, 건강한 관계를 꿈꾸는 커플을 초대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Prepare/Enrich 검사에 기반하여 돌아보는 시간이랍니다. 사랑을 가꾸어 가며 서로의 성장을 지향하기 위해 무엇에 주목해야 할지 짧은 강의와 이야기 나눔을 통해 알아봅니다.

+ 일시 : 2019년 6월 29일(토) 오후 2시-4시
+ 장소 : 마음성장연구소 신촌 나음터 (마포구 서강로 142 서일빌딩 5층)
+ 대상 : 커플(부부) 3~5쌍 선착순 마감
+ 비용 : 총 7만원/커플 (온라인 검사비 2만원 포함)
+ 신청 링크 클릭 

+ PREPARE/ENRICH : 결혼 만족에 대한 10개의 핵심 영역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유일한 검사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커플관계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계를 세워가는데 도움을 줍니다.

+ 후속 워크샵 “서로가꿈 플러스(+)”도 곧 개설됩니다.😄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카페가 있습니다. 카페로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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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이네 가족이 과테말라에서 날아와 분당까지 와주었다. 남미에서 남서울까지다! 얼굴을 마주하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 반갑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지내고, 행복하여 넉넉해진 세 식구의 마음을 듣는다.  평양면옥을 찍고 바로 옆 카페로 갔는데. 몇 번 찾았던 카페, 그저 커피 참 잘 볶는 집일 뿐이었는데 새로운 장소가 되었다. 카페 벽에 걸린 그림들이 과테말라 식구들 눈엔 익숙한 것들. 과테말라 이야기에 푹 빠지기도록 무엇이 이끌고 등떠밀어 들어간 공간 같았다. 2차도 아쉬워 북카페 같은 우리집 거실로 자리를 옮겨 어른들끼리, 아들들끼리 긴긴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사는 게 원래 그런 것인지. 사람들 만나 나누는 얘기는 힘들고 어려운 얘기가 대부분인데 오랜만에 다른 대화의 즐거움이다. 헤어져 남편과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했다. '부럽다. 부러운데 정말 좋다. 잘 지내시는 얘기 듣기만 해도 내 마음이 좋다.' 누군가 잘 되는 것이 부럽고 그 부러움은 곧장 나의 불행이 되는 것이 흔한 감정의 흐름이다. 그러니 부러우면 지는 것이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다. 뻔한 이 감정 라인을 심리학의 실험 연구가 하릴 없이 증명을 한다. 나와 겹치는 특성이 적은 사람이 잘 되는 일에는 별로 영향받지 않는데, 특성이 겹칠수록 질투로 인한 고통이 크다는 것이다. A그룹, B그룹, 실험군, 대조군... 실험 내용을 늘어놓을 성의는 없다. 


실험 결과도, 보편 진리를 담지한 속담도 설명해내지 못하는 경우는 있는 것이다. 특성과 처지가 우리와 많이 비슷한데, 내 처지와 영 다른 좋은 것을 가진 이 가족이 뼈저리게 부럽지만 그게 그리 고통스럽지 않다. 늘, 누구에게나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질투와 시기심으로 치자면 금메달까진 아니어도 눈감고 동메달 정도는 딸 수 있는 실력이다. 헌데 한결이네 소식은 어쩐지 부럽고도 좋다. 좋고 좋다 슬퍼지기도 하니 그리 깔끔한 감정은 아니지만 참 좋다. 며칠의 시름을 잊을 만큼 과테말라 이야기가 긍정 에너지를 주니 모처럼 '감사하네요!' 내지는 '하나님 은혜'라는 말이 목에 걸리지 않고 나왔다. 카페의 다른 자리에 앉아서, 집에 와서는 방에 박혀서 소리 안나는 얘길 나누는 아들들도 보기 좋고. (아들들 카페 씬은 도촬)


부럽다고 꼭 지는 건 아니다. 부러워서 함께 이기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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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이는 전 종류를 싫어하지만. 딱 한 장 분량의 부추전 반죽을 치워야 하겠고. 아침으로 줄 게 딱히 없기도 하여. 전을 부쳐서 달달한 오리엔탈 드레싱을 뿌리고 포크와 나이프를 함께 내놓으며 "오리엔탈 피자 스테이크야!" 하니 말을 못 하고 처묵처묵 하였다. 



냉장고 앞에만 서면 죄책감이 밀려오는 것은 한 줌 씩 남은 식재료를 두고두고 간직하다 결국 음쓰로 버리고마는 범죄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내탓만은 아니다. 김씨 일가의 짧은 입들 탓이다. 로제 파스타 먹고 싶다고 노래를 하는 채윤이를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냉장고에 남은 로제파스타 소스, 냉동실의 떡볶이 떡, 주말에 먹고 어정쩡하게 남은 통삼겹살을 어떻게 어떻게 대동단결 시켜보았다. "구운 삼겹살을 곁들인 로제 떡볶이야!" 딸아들이 감탄하며 먹었다. 



우린 음식이 아니라 그럴듯하게 지은 '이름'을 먹는 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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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글쓰기 모임에서 “천국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라는 제목으로 편지글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장 많이 담지한 대상이 떠오르겠지요. 수신자의 대부분이 ‘아버지’라는 것이 익숙한 놀라움입니다. 공원 산책을 하다보면 카메라에 담고 싶은 아이와 아빠의 모습이 정말 흔합니다. 목마를 태우고, 자전거 타기를 가르치고, 위태한 걸음마를 호위하며 아이 곁을 지키는 아빠들. 내적 여정이나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는 아빠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며칠 전 십 수 년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책 읽어주는 아빠가 책을 읽어주던 아빠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경험으로 책도 쓰셨고, 개인적으로 많이 배우고 싶은 분입니다. 네 살 아이가 열여덟이 되도록 꾸준히 지속한다는 것이 놀랍고, 다 큰 청소년 아이가 그 시간을 좋아한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더욱 주목하게 되는 것은 ‘책 읽어주는 아빠’의 시작과 끝이 가족, 특히 아이와의 ‘정서적 연대’라는 것이었습니다. 야근, 야근, 야근, 야근....의 나날 끝에 이건 아니구나 하며 시작한 것이 퇴근 후 몇 분이라도 책을 읽어주자는 것이었다고요. 그렇게 십몇 년 지나고 돌아보니 얻은 것이 ‘행복, 좋은 삶, 관계’라는 것입니다.


강의 중 본인의 아버지와 정서적 관계는 물론 아버지의 직업 상 물리적으로도 같이 한 시간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즉 많은 남성들이 그러하듯 좋은 부성은 커녕 부성을 느껴보지도 못했다는 것이지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아빠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부성(父性)을 어떻게 배우고 구현하신 걸까요?

 

심리학에선 어린 시절의 결핍이 어떻게 오늘의 성격적 결함을 낳는지, 자기방어와 신경증을 낳는지 그 설명과 이론이 무수합니다. 그러나 ‘결핍’ 속에서도 건강한 인격으로 꽃피우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은 빈곤합니다. 어떤 결핍이 어떤 심리적 장애를 낳는다는 이론보다 더 신비로운 것은 그 반대인 것 같습니다. 


강사님께 그 부분을 질문했습니다. 흔한 심리학적 원리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여쭈었습니다. 즉 내 아버지와 정서적 관계맺음의 경험 없이 아이와 끈끈한 정서적 유대를 일궈내신 힘이 무엇인지 말이지요.(저는 ‘책 읽어주기’라는 행위보다 선행하는 것이 이이와의 진정한 관계맺음을 향한 내적인 지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했던, 그러나 다시 새로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가족의 고유한 아픔들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수치심이란 말도 쓰셨습니다. 그러다 젊은 날 만난 안전한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한 번도 입에 올리지 못했던 이야기를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사람들에게 내놓은 것이 아니라 신(그분께는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한 발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자신이 가진 경험의 어두운 부분들을 하나님이 수용해주시는 것을 경험했고, 그 경험으로 스스로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수용하니 절로 타자를 수용할 힘이 생겼고, 누구보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상처를 내어놓는 아빠. 내 아버지에게 받고 싶었던 바로 그것을 받지 못해 아픈 상처를 인식하고 내놓을 수 있는 아빠가 흔히 말하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게 된다는 것이군요! 부끄러운 상처를 내어놓는 것은 또 다른 상처를 받겠다는 용기일 수도 있습니다. 멋지게 차려 입은 사람들 앞에서 혼자 옷을 벗는 느낌이랄까요. 치유와 성장의 열쇠는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부성을 경험하지 못해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신비이고, 참된 의미의 기쁜 소식입니다!



라고 페이스북의 연구소 페이지에 글을 썼습니다만.

심리학과 영성 사이에서 치유를 꿈꾸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결핍의 존재이며 동시에 하나님 형상인 우리. 사랑에 목말라 중독에 빠지나 이미 사랑이 부어진 존재로서의 인간. 둘 사이를 오가며 공감과 연민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상처 입은 치유자의 태도인 것은 알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응원해주세요!



아시는 분은 다 아실텐데, <신앙 사춘기> 클라우드 펀딩 목표 달성하여 책이 나왔습니다. 후원하신 분들께 전달 되었고, 어제 날짜로 온라인 서점에도 얼굴을 내밀었고요. 저는 약속 되었던 텀블벅 리워드 강의와 집단상담 소화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출간을 경험하며 또 배웁니다. 하고픈 많은 말이 있지만 한 마디로 하자면 '나 잘난 맛'에 살던 날에의 회개입니다. 한 분 한 분,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분들의 '밀어줌'의 무게가 크게 다가왔습니다. 가까이서 멀리서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신용카드를 긁는 분들을 상상해보며 그렇습니다. 이딴 글이 뭐라고, 이딴 책이 뭐라고, 내가 뭐라고.

 

작은 책 한 권이 지탱하기엔 무거운, 과분한 것 같아 고맙다 못해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리워드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은 참 잘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막연한 독자가 아니라, 얼굴로 다가오는 존재의 만남이라니 말입니다. 글쓰기 강의로 만난 분들을 통해 저의 신앙 사춘기의 시작과 끝을 언어화 할 수 있었습니다. 집단상담을 통해 제가 헤쳐온 숲길이 고유하다는 것을, 때문에 누구에게도 표준으로 제시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어두운 숲에 각자의 길을 내며 걷다 교차하는 순간이었고, 그래서 좋았습니다.

 ​


추천사 써주신 두 분의 글과 존재의 무게는 특히 책이 지탱할 수 없을 만큼 무겁습니다.


추천한다는 자체가 책의 진가와 본질을 훼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감동적인 글 모음이다. 순진하기만 했던 신앙의 유년기를 지나 모순된 교회의 현실에 눈뜨며 겪게 된 격렬한 반항과 회의와 울분으로 점철된 신앙 사춘기를 아프게 지나온 작가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읽는 이의 가슴에 깊은 울림과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진지함과 해학이 적절히 섞여 있어 글 읽는 재미도 크다. 무엇보다 신앙의 회의에 빠져서 혹은 기존 교회에서 상처받고 실망하여 교회를 떠났지만 기독교 신앙 자체는 떠날 수 없어 외롭고 힘겹게 비슷한 여정을 걷는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안겨 주는 길벗 역할을 한다.

- 박영돈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저자


나는 아이러니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좋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삶에서 아이러니를 경험하는 이들의 이야기만을 신뢰한다. 자기 삶에서 모순과 역설을 경험하는 사람만이 단순한?그렇기에, 또 한 번 폭력이 되는? 답을 함부로 남발하거나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정신실 작가의 신앙 사춘기에서 제일 좋았던 것도 이렇게 솔직하고 용감하게 노출하는 자기 속 모순과 갈등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비판은 단순한 냉소에 그치지 않고, ‘신앙 사춘기를 심하게 겪는 이들이 지금의 시간을 부인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대신 새롭게 보고 해석할 수 있는 언어와 공간을 제공한다. 영적 학대, 종교 중독, 교회 언어, 목회자, 기도 등 우리가 매일 한국 교회에서 부딪히는 문제들과 씨름한 이 글은 내게 생생한 교회론’, ‘희망을 주는 성령론이었다

- 신동주 (CBS 기독교방송 프로듀서)




실은 글쓰기 강의에서 시키지 않은 노래를 했습니다. 연재 마치고 만든 노래 '떠나서 다다른 사랑'. 채윤이가 아주 귀찮아 하면서 mr을 만들어 준 덕입니다. 앞부분에 우리 엄마 목소리의 '예수 사랑하심은' 찬송이 있는데 영상에 담기질 못했네. 부끄럽지만 영상 공개합니다. 


[떠나서 다다른 사랑]

                                                 

                                                                                작사 정신실 / 작곡 김종필

(엄마 노래)
예수 사랑허심은 성경이서 배웠네
우리덜은 약허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승경이 쓰셨네 아멘


(딸의 노래)
예수 사랑 그 사랑 나는 엄마에게 들었네
엄마의 눈물 엄마의 걱정 그건 엄마의 기도
예수 사랑 그 사랑 나는 엄마에게 배웠네
엄마의 노래 엄마의 한숨 그건 엄마의 사랑
그 눈물이 나에게 더욱더 큰 슬픔이 되었고
그 걱정은 내게 와 더욱더 옥죄는 두려움 됐네
눈물 어린 찬송 걱정 담긴 기도
나 떠났네 나 버렸네 버거운 그 사랑

날 사랑하심 음음 날 사랑하심 음음
예수 사랑 그 사랑에 나 닿고 말았네





집안 남자 둘 취향에 딱 맞는 음식은 일본식 덮밥류, 라는 것을 결혼 20년 만에 발견하게 되었다.

반찬 많은 것 질색, 양 많은 것도 질색.

기본으로 맛있어야 하고, 스타일도 좀 나야 하고.

절제미를 중시하는 예술가적 삶을 추구하는 두 남자에겐 딱이다.

불고기 부추 덮밥, 연어장 덮밥 같은 것에 미소 된장국이면 반찬도 필요 없다.


텃밭에 키우신 싱싱한 로메인상추 얻은 것이 있어서

로메인상추 본 김에 아보카도 사고, 명란젓 사고, 새싹 등을 사서 [아보카도 명란 덮밥]을 했다.

아,  앞으로 덮밥 위주의 식사를 해야겠다 천명하고 얼마 전부터 일본식 그릇을 사모으는 중이다. 

배보다 큰 배꼽을 운명처럼 달고 사는 맛! 


집안 여자들의 취향은 다양하다.

요즘 채윤이는 마라탕에 빠져서 용돈을 탕진하고 있다.

처음엔 마라탕을 점심으로 먹기 위해 하루 이틀 점심을 굶기도 했다더니,

에라 모르겠다. 통장을 털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세븐일레븐 알바를 하고 있는데, 아직 첫월급도 받지 못한 주제에 백만장자 된 기분으로 

사는 듯.


엊그제는 할아버지 추도식 마치고 누룽지 백숙을 먹으러 갔는데,

어른들로 벗겨내는 닭 껍질을 죄 갖다 먹는 아름다운 식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식성으로 치면 나랑 채윤이는 이렇듯 여자답고 멋지다.

곱창, 막창, 선지해장국, 족발 같은 것들을 특히 좋아하지만 딱히 가리는 것은 없다. 


아보카도 명란 덮밥.

사진 찍어 놓고 보니, 조신하고 단아한 것이 우리집 남자들과 꼭 닮았다.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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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사진에 다 담겼다.

좋은 것들이 다 담겼다.


[냉보이차] 오늘부터 '냉'으로 바꿨는데 지친 몸 다독여줘 좋은 것.

[노트] 팔과 손가락을 통해 내 뇌와 연결되는, 아니 '연결된 것'이 아니라 내 몸 밖의 뇌. 

           공부, 글쓰기, 강의준비. 중요한 것을 함께 하니 좋음 그 자체.

[독서대] 위 책, 책 없이 삶의 낙이 없다.

[돋보기] 낯선 만남이었지만 금세 고맙고 좋은 친구 되었다. 

           흐릿해진 눈에 돋보기 없었으면 어쩔 뻔!

 

등수 매길 필요는 없지만 '더' 좋은 친구는 따로 있다.


[초록이들] 지난 주인가, 집단 여정에서 '요즘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을 나눴다.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쟤네들이다. 아침 저녁으로 한 놈, 한 놈 눈맞추는 재미로 산다.

[앞산] 이건 뭐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올봄, 하루하루 다른 얼굴 보여주며 치유의 숨결 뿜어내는 앞산 아니었으면 아프고 말았을 것.


'좋은 것'의 화룡정점은 보이지 않는다. 


[저녁6시~] 저녁 6시 어간을 사랑한다. 해 넘어가는 빛깔과 공기와 모든 것이 좋다. 

              어스름이 어둠으로 바뀌는 그 시간을 붙들고 붙들고 싶다.


[세음]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 클래식 FM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의 시간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지만 모든 이 시간, 이 공간의 모든 곳을 채우는 것이 음악이다.

         화룡정점은 '세음'이다. 


일상의 여유를 가늠하는 것은 '세음'을 여유있게 들었는가, 이다. 아예 들을 생각도 못했는가, 운전하며 들었는가, 끄트머리만 들었는가. 거실에서 앞산을 바라보며 밤이 천천히 낮을 밀어내는 광경을 지켜보며 듣는다면 최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제대로 된 하루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바쁜 시간이 있어서 텅 빈 시간이 더 빛나는 것이니까. 오늘은 '좋음'의 종합선물 세트를 마음껏 누렸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것 아닌가! 온갖 '좋음'에 플러스 알파다. 사진 몇 장 찍고 '세음'이 끝날 때까지 그냥 차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신앙 사춘기>가 책이 되어 탁자에 쌓여 있어서 그런가. 첫 리워드 행사인 글쓰기 강의를 무사히 마치고 난 안도감인가. 아버님 8주기 추도예배 드리며 마음에 가득 찬 그리움 때문인가. 쌓인 피로로 무거워진 몸, 뻑뻑해진 눈이 책도 보지 말라고 말리고 말린 덕인가. 한껏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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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낳는 일은 '저자 소개' 쓰기로 끝이 난다. 출판사에서 써주는 경우도 있고 내가 직접 쓰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도 뿌리 없는 잡글 작가의 고충이 있다. 나온 책들이 서점에서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꽂히질 못하지 않은가. 그러니 한 번 쓴 저자 소개를 재탕할 수가 없다. 실은 개정판으로 다시 쓰는 '나'라고 생각하면 쓰는 재미도 있다. 『신앙 사춘기』에 들어갈 저자 소개를 썼다. 책에 이대로 나오진 않는다. 일단 구구절절 써봤다. 버리고 덜어내어 더 간단하게 보냈다. 써놓고 보니 개정판 정신실이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아서 마음에 든다. 

 

 

『신앙 사춘기』 저자, 정신실


발달장애 아이들의 비밀 같은 마음에 노래로 노크하는 음악심리치료사로 젊은 날을 살았다. 기꺼이 영향 받고자 하는 말랑한 마음, 천국에 가까운 마음들에 접속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교회의 딸로 자랐다. 천국의 언어가 난무하지만 바로 그 언어에 기대어 그보다 더 완고할 수 없는 심장을 가진 어른들을 보며 혼란스러웠다. 말랑함과 완고함의 분열은 다름 아닌 내 마음이었다.


분열적이고 파편화된 마음을 느낄 때마다 읽고 쓴다. 신앙과 인격의 합일, 천상을 담은 일상을 살고 싶은 높은 꿈을 쓰고 또 쓰다 작가가 되었다. 심리학과 영성, 개신교와 가톨릭을 넘나드는 공부 여정을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리 놓는 자’의 이름으로 늘 새로운 ‘지금 여기’에만 정착하기로 하였다.


뜻과 마음을 같이 하는 벗들과 비영리단체인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를 열었다. 인간의 고통은 수선이 필요한 손상된 자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 진정한 내 자신과의 연결이 끊어진 소외된 자아에서 기인한다는 믿음으로 연구하고 상담하는 치유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일상과 마음의 여정을 그대로 담은 저서들이 있다.

사랑과 연애에 대한 칼럼모음 오우연애』 『연애의 태도

남편과 함께 쓴 결혼 이야기 와우결혼
육아와 자녀교육의 기쁨과 고뇌를 담은 토닥토닥 성장일기』 『학교의 시계가 멈춰도 아이들은 자란다
마음을 비추는 거울인 오래된 에니어그램을 소개하는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
여성 일상의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낚는 글쓰기의 열매인 나의 성소 싱크대 앞






결혼하고 얼마 안 된 봄 어머님이 쑥개떡을 직접 해주셨다. 내가 얼마나 반색을 했던지 쑥개떡 이름이 바뀌었다. “에미가 좋아하는 쑥떡” 그리고 해마다 이맘 때면 저렇게 쑥개떡을 만드시고 냉동된 반죽을 여러 덩이 주신다. 쑥개떡 반죽은 치댈수록 찰지고 맛있어지는데 이제 치댈 힘이 없다시며. 장정한테 치대라 해서 조금씩 쪄서 먹어라, 하신다.

엄마가 어렸을 적에 해주시던 떡이라 특별히 사랑하는 것이다. 친정 엄마도 한때 ‘신실이가 좋아하는 개떡’이라며 가끔 해주셨는데. 쑥을 구하기도 어려운데다 기력도 없으셨다. 이제 친정 엄마는 쑥개떡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딸이 좋아하는 떡인 것도 잊으셨을 것이다. 아니 당신이 쑥개떡이며 각종 김치며 곱창전골 같은 걸 얼마나 맛있게 만들었는지, 기억 너머의 기억으로 희미해졌을 터.

어제 할머니 댁에서 쑥개떡을 본 딸이 “와, 할머니 쑥떡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이에요.” 하니까 “채윤이가 에미 닮아서 쑥떡을 좋아해” 하며 좋아하시는 어머니. 오늘은 어버이날 챙기러 친정 엄마에게 간다. 어머님이 주신 반죽으로 쑥개떡을 쪄서 가져가려 한다. 어쩐지 엄마는 “나 쑥떡 싫어혀. 치킨이나 사와” 할 것 같지만. 나와 어머니들, 나와 딸을 이어주는 봄날의 쑥개떡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 여자들의 떡.

(떡 가운데 박힌 건 나름 어머님의 아티스트 감각. 땅콩으로 화룡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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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서 공적 마당에 내놓는 것은 꽤 위험한 일입니다. 쓰는 사람은 글에 담은 자기 선의만 생각하거든요. 선의와 함께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로 그 뜻을 독자들이 읽어줄 거라 기대하지만 그렇지가 않더군요. 긴 시간 피 흘리며 배웠습니다. 글이 길 때는 끝까지 읽어주는 독자도 많지 않은데, 필자의 뜻까지 헤아리길 바라는 건 과욕이지요. 제목과 저자의 인상만 보고 쉽게 판단합니다. ‘나만 보기’ 설정의 글이 아닌 다음에야 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하고요.

악플이란 표현도 무게감으로 느껴질 만큼 쉽게 내뱉은 댓글이 가진 폭력성. 글의 맥락과 연관을 찾기 어려운 긴 댓글도 달립니다. 한 번은 기본적 맞춤법도 모르고 공적 글쓰기 하는 사람으로 단정되어 창피를 당한 적도 있습니다. 일단 글이 나가면 댓글이나 반응은 안 보는데 꼭 제보해 주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저는 맷집이 약해서 비난의 그림자만 스쳐도 휘청거리곤 하거든요.

하지만 역지사지로 압니다. 저도 좋은 뜻, 좋은 글을 취향 때문에 패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두 좋다는 글, 사람이 왠지 내겐 거북하여 안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린 페친의 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을 보는지 모릅니다. 타자에 비친 내 마음을 보는 것이지요. 고혜경 박사의 말처럼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는 투사(projection)의 드라마일지 모릅니다.

이 글은 <신앙 사춘기> 연재 초기에 썼던 글입니다. 초고를 어찌어찌 완성해 놓고 매번 미루고 미루다 결국 탈고하지 못하고 연재를 끝냈습니다. 초안으로 치면 5, 6년 전에 잡았던 글입니다. 그나마 이모로 저모로 가장 괜찮은 (건강한 작은 개혁)교회 사모님을 알게 되었는데. 그의 문드러진 마음, 무너진 몸을 보게 된 것이지요. 어찌된 일인지 그때로부터 ‘그것은 알고 싶지 않다’ 시리즈물이 제게 상영되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좋은 교회라는 자부심에 어깨가 올라간 교인들이 있고, 정작 그 교회 목사님과 가족들은 말 못할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한국교회 희망이 되는 것 같은 진보적이고 훌륭한 분 일상의 자기장 안에서 그분의 그림자에 질식하는 분들이었습니다. SNS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데 그분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분들이 자꾸 제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신앙 사춘기’라는 언표로도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었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당장 한 영혼이 말라 비틀어져 가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제 눈앞의 현실이었습니다. 이 글에 담긴 마음은 정말 복잡합니다. 연재를 마치고 책 출간을 위해 추가글을 쓰면서도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글입니다. 이조차도 너무 힘겨워서 포기할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뉴스앤조이에 <신앙 사춘기> 연재 시작하며 ‘찌르고 싸매는 글’을 쓰겠노라, 쓰고 싶다, 했습니다. 한 편 한 편, 정말 그런 마음으로 썼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분노를 통과한 연민’ 없이 찌르지 않으려고 쓰고 덜어내고, 쓰다 멈추어 울기도 했습니다. 매 글마다 각각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썼습니다. 그를 편들기 위해 찔러야 했습니다. 그를 대신해 작정하고 복수의 칼을 휘두르는 뜻도 있었습니다.

이 마지막 글, 탈고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은 복수의 칼날조차 사랑이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순도 100%의 사랑과 연민일 수는 없지만요) 이 글은 맨 처음 글의 초안을 잡게 했던 그분과 그분의 남편 목사님 헌정입니다.



번외 편 <신앙 사춘기> 올린 글을 페이스북에 링크하며 붙인 글이다.

10개월, 아니 5, 6년 묵힌 글인데도 도통 써지질 않았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어도 글이 한 문장도 나오지 않고, 마음에 돌덩이 하나 얹은 느낌으로 살았다.  

그러던 중,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의 다시 쓸 수 있을까』를 집어 들었다.


"평생 쓰던 글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이 한 문장에 끌렸고 첫 페이지의 제목 또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


작은 책을 손에 쥐고 거의 한달음에 다 읽고는 조금 허무해졌다.

알고도 낚이는 법이지만, 예상된 바지만 글빨을 뚫어줄 뾰족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

행간에서 나만의 답을 '자신의 은밀한 결핍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을까.

실은 엉뚱한 통찰이 내게 와 힘이 되었다.


"후지게 쓰는 것보다 아예 쓰지 못하는 것이 나는 가장 두렵다."


세계적인 작가로서는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워 글이 막힐 수 있겠지만,

나는 사실 후진 글이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글의 후짐보다 마음의 후짐이 늘 괴로웠다.

글의 후짐으로 치면 이런 에피소드도 겪는 후진 작가이다.

"밥벌이로써의 글쓰기"를 내놓고 '로서'와 '로써'도 구분 못하는 사람으로 몰린 적이 있다.

더 부담과 상처로 남은, 

<뉴스앤조이>에서 깐깐한 편집자로 소문난 담당 편집 기자님까지 싸잡아 넘겨졌던 것.

(심지어 이분은 내가 처음 보낸 제목을 '로서'로 고쳐 글을 올리셨다.

부러 '로써'로 쓴 것이니 다시 수정해 달라는 요청 드려 '밥벌이 로써'가 된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낯이 뜨겁고, 부끄럽다.

(책 출간 때는 제목의 '로써'에 따옴표를 붙여 강조할 예정이다.

지질한 뒤끝 작렬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이 뒤끝은 평생 갈 예정이다.)


문법과 문장의 후짐은 쉽게 드러나 부끄럼 당하고 무시 당할 수 있으니 다행인지 모른다.

소설도 아니고, 내적 성찰을 담은 에세이를 쓰면서 후진 마음으로 쓴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마음의 후짐이란, 글로 나를 속이는 행위를 말한다. 

투명하지 못한 마음이 후진 것이고, 후진 마음은 후진 글이 아니라 악한 글이 된다.

내 글에 내가 속는 것, 이 얼마나 악하고 두려운 일인가.


그렇다고 내 글이 특별히 투명하다는 뜻은 아니다.

글을 쓰며 그 지점이 늘 부끄럽고 고통스럽단 얘기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저 책이 힘을 주었다.

나같은 무지랭이가 글을 쓰고 책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후지가 쓰더라도 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쓰지 않았으면 인생의 어두운 숲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을까.


글도 사람도 다소 후지지만,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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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일, 결혼 20주년 기념일이다.

결혼식 당일 오전에 도산공원에서 야외촬영을 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사람 뿐이다.

야외촬영에선 저 사진의 철쭉이 진홍빛으로 강하게 남아 있을 뿐.


20년이나 살았다니, 내가 김종필과 20년을 살았다니, 헐헐헐.

자꾸 노래를 부르니 남편이 그런다.

왜애? 억울해? 너무 오래 살았어? 5년만 살려고 했어?

아니, 청년 김종필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그 사람과 20년을 살았다니 말이야.


눈 뜨면 베란다 창에 매달려 있다.

미세먼지 가득한 봄날을 견디게 해준 고마운 풍경이다.

저 풍경이 아니었으면 미세먼지 스트레스에 폐암이 걸렸을지 모른다.


20년 전 5월1일도 저렇듯 푸르렀겠구나.

결혼식 마치고 양평길을 드라이브 했지만 저 빛깔을 본 기억이 없다.

온통 사람이었다.

20년이 지났고, 50 나이를 먹은 덕에 나무 하나하나가 보인다.

지구에 사람만 있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무가 있고, 새가 있고, 들풀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결혼기념일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문득, 남편 김종필이 참 좋고 고마워서 아이들과 있는데 말했다.

엄마는 엄마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알았어. 뭔 줄 알아?

아빠를 만나기 위해서였어. 아빠를 만나러 이 세상에 태어났어.

사춘기 현승이는 비위가 안 좋은지 슬며시 자리를 떴다.


그가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모습을 본다.

무력하게 지켜본다.

저 사람만의 사막 필살기를 지켜보며 내가 배웠고 성장했다. 

그것이 처음부터 좋아 보이진 않았었다.

좋거나 나빠 보이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그가 존재하는 방식, 그가 인생의 사막과 강을 마주하는 방식에 이제 난 입을 닫는다.

깊이 존경한다.


사춘기 아들도, 블로그 독자도 느끼해 속이 울렁거리겠지만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 

저 사람을 만나 인생 30대 이후를 함께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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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뉴스앤조이>에 연재했던 ‘신앙 사춘기’가 단행본으로 나오......면 좋겠습니다. 

책이 나오려면 함께 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글을 좀 더 썼고 매만졌습니다. 

텀블벅 펀딩으로 출간하게 됩니다. 텀블벅은 쉽게 말하면 선구매를 통해 출간 비용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고요. 

자세한 사연은 맨 아래 링크 따라가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신앙 사춘기 : 신앙의 숲에서 길 잃은 그리스도인들에



흔히 책과 함께 리워드 굿즈가 따라 붙는데요. 

경험상 고심하여 제작해도 굿즈는 그저 받을 때 신선함 뿐인 것 같아 저 자신을 굿즈 삼기로 했습니다. 

신앙 사춘기를 통과하는 분들과 소그룹으로, 글쓰기 강의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으로요.

‘정신실과 함께 하는 디톡스톡은 다섯 분 모셔서 교회, 신앙, 일상의 이야기 나누는 집단상담입니다. ‘신앙 사춘기’라 이름을 붙일 때 명료함이 주는 위안이 있습니다. 그리 이름 붙이고 다리 덜덜 떨며 껌 짝짝 씹으며 교회를 미워하는 그 두려운 얘기 나눠 보려고요.

글쓰기 대중 강연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직 쓰고 읽는 것으로(사실 기도도 치열하게 했습니다) 신앙 사춘기의 어두운 숲을 통과해 왔는데요. ‘자기를 지키는 글쓰기, 하나님을 만나는 글쓰기’ 여정을 나눌 것입니다. 표지에서 보시는 것처럼, 한 사람의 존재에서 나오는 빛으로 어두운 숲을 가로지릅니다. 그 빛을 존재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발화하고, 쓰는 것이지요.

솔직히 원고 싸들고 다이아반지 끼워줄 것 같은 부자 출판사를 찾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 덴 물론 없습니다) 뉴스앤조이 대표님과 기자 님들이 일하고 살아가는 마음과 현실을 알기에 무엇이든 함께 하고 싶고,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거짓 뉴스와 그 유포자들의 대책 없는 폭력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뉴스앤조이>를 응원하시는 분들, 제 책이 아니라 뉴조를 위해 펀딩에 함께 해주세요. 단지 돈이 아니라 함께 하는 마음, 연대가 필요하니까요.


아래 링크에 가시면 다양한 밀어주기가 가능합니다. 

책 한 권, 또는 노트 포함 책 한 권 사주기.

책과 집단상담, 책과 글쓰기 강연 사주기.

책을 5권, 10권 통 크게 사주기.

사지 않고 그저 1000원 정도 밀어주기도 있네요.

좀 밀어주시겠어요?

[신앙 사춘기] 출간 밀어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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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뜨면 베란다 창에 붙어서 봄의 깊이를 재본다.

앞산의 나무에서 봄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앞산을 향하여 목 빼고 기다리는 봄의 흔적이란 연두빛이다.

진하지 연하지도 않은, 명도와 채도가 내 눈맛에 딱 맞는 연두가 있다.

생각보다 더디고 더디고 더디다.

 

4월8일 아침.

하늘과 맞닿은 쪽만 보느라 아래 편에 무심했다.

화알짝! 진달래의 연분홍이, 활짝 피어 땅을 물들이고 있었다.

어머, 어머, 어머! 맞아, 연두만 봄색이 아니지.

이번 생일에 뭐 사줄게, 뭐 사 줄게, 하는 말에 손꼽아 생일만 기다리고 있는데

서프라이즈 선물을 미리 받은 느낌이다.

선물은 서프라이즈지!

 

4월14일 아침.

이 빡센 한 주가 지나가기는 할까? 갔다.

주일 아침, 비가 쏟아질 듯 무거운 하늘.

연분홍 서프라이즈 위안 삼아 더디 오는 연두를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입안이 헐고 눈에서 열기가 가시지 않아 떠지지 않는 흐릿한 눈으로 앞산을 본다.

어머, 그새 얼굴을 바꾸고 섰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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