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월요일,
심학산 둘레길을 걷기 위해 파주로 가는 차 안에서 남편이 물었다.
여보, 내가 좋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성경 전문가가 되겠다며? 하루 성경 12 장씩 읽고 있다며?
그것 말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때는 이 때다, 하면서 (늘 언제나 다다다다 쏟아낼 만전의 준비가 되어 있는) 남편 성격의 취약점에 관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도착하여 밥을 먹고 걸으면서 진지하게 얘기했다. 뾰족한 결론이 나는 얘기도 아니고, 일면 얘기할수록 더 답답해지는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에게 '내 약점을 말해줘'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이 새삼 고마웠다.


아, '우리가 서로'는 아니다. 약점에 대한 지적(질)을 잘 듣는 사람은 애초부터 남편이었고 나는 이 지점에서 상당히 취약했다. 그리고 여전히 취약한 편이다. 전에 교회에서 설교할 일이 많았을 때, 수요예배 설교를 마치고는 늘 그렇게 말했다. '설교에 대해서 논평을 하되 먼저 잘한 점 세 가지 얘기하고 그 다음에 잘못한 거 한 가지 얘기해' 약점에 관해 듣는 것은 언제나 아픈 일이기 때문에 방어할 수 있는 만큼의 바운더리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러한데 나는 열 개를 칭찬하고 한 개를 지적(비슷하게만) 받아도 마음이 상해서 입을 닫곤 했었(한)다.


지지난 주였던가. 남한산성 드라이브를 하면서 나눈 얘기다. 우리 부모님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노부부들은 서로에게 깊은 빡침을 품고 일생을 살아오는 것 같다는 얘길 했다.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깊은 빡침이 노년의 부부생활을 어둡게 하고 그것이 자녀들의 짐이 된다. 그런데 노년의 부부 뿐이랴. 우리 또래의 부부들도 마음 깊은 곳에는 다들 한두 가지 씩 배우자에 대한 깊은 빡침을 품고 있을 것이란 얘길 했다. 남편이 내게 당신도 있냐고 물었고, 나는 빡침이 깊어지기 전에 이미 다 입으로 몸으로 해버리기 때문에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난 얼마나 남편을 들들 볶는 여자인지. 남편에게서 풍기는 신학적, 철학적 풍모는 다 크산티페 같은 내 덕이다. 믿어지지 않을테지만 사실이다. 어쨌든 그러느라 깊어질 빡침이 없는 것 같다고. 그 다음에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의 어떤 면에 대해서 가슴 속에 묻어두고 포기하고픈 힘든 점이 있냐고. 그 순간 밖의 경치를 보라는 둥, 말을 돌렸다. 있는 거다! 분명히 있는 거다! 평소 남편을 못살게 구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당신의 감정을 억압하지 마라. 화가 났으면서 왜 아니라고 하느냐. 화가 나면 화를 내라'이다. (진짜 화내면 그걸로 며칠 갈 거면서) 그런데 그게 남편의 미덕인 것을 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남편이 나를 못 믿는 것이다.  내 말에 말려 '어, 실은 깊은 빡침이 있는데 뭐냐면....' 털어놓으면 여파가 크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굳이 여기까지 상상하진 않았더라도 어쨌든 남편은 지적하는 말을 삼킬 줄 안다. 나 역시 더 묻지 않았다. 있긴 있구나! 만을 캐치했다.


몇 주 전에 함께 유해룡 교수님 강의를 듣고 '나는 내 그림자, 인정하기 싫은 모습을 누구에게 투사하는 것 같애?'라고 남편이 물었었다. 좋은 목회자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게 용기가 필요한 질문이다. 가장 아픈 얘기를 듣겠다는 태도이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픈 얘기는 나의 약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걸 듣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가 죽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이것이 가능한 공동체인 것 같다. 최근 죠이출판사에서 나온 책 <공동체로 산다는 것은>이란 책에 추천사를 썼다. 갑자기 짧은 글을 써내려면 힘이 빡 들어가서 잘 되지 않는다. 때문에 촌스러운 글이 되어 조금 부끄럽긴 하다. 


"애타게 갈망했고, 피눈물 흘리며 몸으로 살았고, 몸서리 치도록 실망했고, 실패감에 주저앉아 오랜 시간을 보냈다. 도망쳐 나와 해방감을 맛보노라면 어느새 목말라 내 발로 걸어 들어가 상처받기를 자처하는 곳이 공동체다. 그렇게 살아왔건만 여전히 공동체는 낯선 땅이다. 실패라 이름했고, 미성숙함이라 이름했던 내 지난날 공동체에 대한 갈망과 투신의 경험에 위로도 되고 이정표도 되어 준 책이다."


뭘 이렇게 공동체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다. 추천사에 쓴 것처럼 내놓을 만한 성공적인 경험을 한 것도 아니면서. 다행히 남편과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이 그나마 희망적이라고 느껴지는 월요일 데이트였다. 어디에 발설하기 어려운 연약함을 입에 올릴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남편과 나의 공동체는 잘 가고 있다는 뜻이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신혼 때나 아니 몇 년 전을 생각해도 내 약점이 드러나고, 드러나면 비난받지 않을까 두려워 미리 방어막을 치고, 한 발 앞서 삐지곤 했었는데 이젠 조금 무장해제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공동체로 산다는 것>의 저자 크리스틴 폴 교수님 말씀처럼 감사, 약속, 진실함, 손대접이라는 덕목이 남편과의 관계에서, 아니 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삶으로 살아지면 좋겠다. 가끔 희망적이라고 느낄 뿐, 막상 닥치면 이내 포기하고 싶은 아프고 힘든 일이겠지만서도.

 



 

 


남편이 풀타임 목회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커피와 사귀게 되었다. 청년부 예배 전에 예배당 입구에서 작은 카페를 시작했고, 핸드드립에 입문했고, 결국 바리스타 공부를 하고 홈로스팅을 하기까지.  그러다 정말 카페를 하면 어떨까 하는 꿈을 꾸며 '카페 나우웬'이란 이름을 지어 놓았다. 바리스타 꿈나무는 월요일마다 남편 손을 잡고 카페 탐방을 다녔다. 'Sabbath diary' 라는 근사한 이름의 시리즈물은 카페 탐방기에서 시작하였다. 어쨌거나 월요일은 나도 남편도 하던 모든 일을 손에서 딱 놓고, 시간을 뚝 끊어내어 서로에게, 그리고 각자 자신에게 내어주는 날이다. 등산을 하거나 느리게 걷거나, 그저 숲에 가서 앉아 있거나 뭘하든 커피는 빠지지 않는다. 결국 커피 한 잔으로 월요일 데이트에 마침표를 찍곤 한다.

 

 


비가 내리던 지난 월요일에는 남산 드라이브를 했다. 동네에서 점심을 먹고(여기서 동네란 명일동, 고덕동, 하남시 창우동, 흑석동 할 때의 동네가 아니다. 동네에서 밥을 먹었다는 건 우리 동네, 즉 홍대에서 밥을 먹었단 얘기. 캬캬) 무작정 남산으로 갔다. 드라이브 코스를 잘 몰라서 발길 아니고 자동차 바퀴길 닿는대로 돌아다녔다. 조수석에 앉아서 차창 밖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마구잡이 사진찍는 놀이가 재미 있었다. 운전자는 그만 좀 하라고 짜증이었지만 아주 그냥 재밌어서 한참을 놀았다. 비에 젖은 남산길을 목적도 없이 돌아댕기는 것이 참 좋았다. 벅스에 접속해서 '비'를 소재로 한 온갖 노래를 다 찾아 들었다. 비처럼 음악처처럼, 겨울비, 혼자 있는 밤 비는 내리고, 비오는 날의 수채화,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빗속의 여인...... 결국 렛잇비까지.


갑자기 딴 얘긴데, 매주 수요일에 꿈 공부를 하러 간다. 공부라고 하지만 꿈을 수단으로 하는 집단상담에 가깝다. 융의 분석심리에 기초해서 꿈을 나누고 대놓고 투사하는 '꿈 작업'이란 것을 한다. 내 연배의 어떤 여자분이 꿈을 내놓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너무 예쁜 프랑스풍의 소품들로 꾸며진 카페 앞에서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고 구경만 하더란다. 이렇게 예쁜 카페를 텅 비워놓고 왜 사람들이 들어가질 않지? 하며 들어가려는데  같이 있던 사람이 다음에 오자고 했단다. 몹시 아쉬웠단다. 여차 여차 자기 집에 갔는데 자기 집이 아파트 옥상에 있고 공사 중인 집이었다.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뱅뱅 돌다가 나무로 된 허술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남편을 만나 짐을 모두 맡기고 혼자 어딜 갔다는 얘기다.  꿈이 나오면 꿈에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얘기했다. 착하고 성실하고 희생적이란다. 게다가 직업이 의사여서 당연 재력이 있다. 어떻게 희생적인가 하면 본인은 골프를 좋아해도 잘 누리지 않고, 아내나 아이들은 하고 싶은 무엇이든 하도록 한단다. (대박!) 나랑 비슷한 연밴데 이미 막내까지 대학에 보냈고, 예쁜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길 좋아한다. 이건 정말 40대 아니 40대 뿐이랴? 모든 여자들의 로망 아닌가. 뙇! 내가 결혼을 통해서 이루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런 건데 말이다. 결혼으로 계급상승의 꿈을 이뤘어야 하는데. 인생 한 방인데! (여보, 보고 있어? 히히) 게다가 이분은 당일 꿈모임 마치고 바로 크로아티아, '꽃보다 누나'에서 나온 그 코스 그대로 여행을 간단다. 완벽하다!


그런데 꿈 얘길 듣다 웃음이 픽 나왔다. 전전 날에 남산 드라이브 생각이 나서이다.  남산에 근사한 카페가 많다니 커피 한 잔으로 드라이브를 마무리 하기로 했다. 창이 넓은 카페에 가서 비구경 하며 커피 마시면 딱 좋은 날이었으니까.  검색으로 둘이 함께 끌리는 카페를 찾았다. 네비를 찍고 가는 동안 블로거들의 카페 탐방 후기를 읽고 있는데 오메, 커피값이 만 원. 놀라서 고개를 드니 카페 앞에 도착. 일말의 미련없이 '여보,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커피 마시자' 차를 돌렸다. 이 생각이 딱 났다. 그리고 얘기했다. '저는 꿈 아니고 실제상황인데요, 그저께 카페 앞에서 바라보다 왔어요' 하고 그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렇게 투사를 했다 '내 꿈이라면 카페는 잘 꾸며져 있고,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사는 곳은 아니니까 바라보다 돌아와도 괜찮다. 그래봐야 카페고, 정작 사는 곳은 집이니까. 그저께의 제 경험과 더불어 선생님의 꿈이 제게 말하네요' 아, 정말 그렇다.


집단상담의 좋은 점은 괜히 좋거나, 괜히 싫은 사람이 꼭 있게 마련이고 내 안의 무엇이 투사되어 괜한 감정이 드는지를 보면서 알게 되는 내가 있다는 것이다. 꿈 얘길 듣다보니 꽃보다 언니가 좀 얄미워졌다.  너무 부러우니까. 모든 걸 다 갖추고 누리는 여자가 마음공부까지 열심히 하는 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 그리고 크로아티아에 간다니. 부러워서 괜히 싫었던 내 마음이 보여서 속으로 웃음이 났다. 누구에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어떤 사람은 바라만보고 들어가지 못하기도 하는 곳이 고급 레스토랑이고 비싼 카페이다.  꿈에서 집은 보통 '자아'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녀의 꿈에서 집이 아파트 옥상에 있는 공사중이었다. 외적으로 무엇을 누리든지 자아의 모습은 그렇다는 얘기다. 내 꿈에서 집이 나와도 늘 허술하고 누추하고 그렇다. 우리의 내면은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조금씩 누추하고 여전히 지어져가야 하고....  실은 우리가 타인의 삶을 피상적으로 바라볼 때는 예쁘게 꾸며놓은 카페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포장해 보여주려는 것이 보이고, 잠시 바라볼 때는 그 앞에 선 나만 누추한 것 같다. 문제는 카페는 잠시 머물러 커피 한 잔 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집을 카페처럼 꾸밀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카페처럼 늘 환상적일 수 없다. 예외없이 일상이란누추하고 공사중이고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는 그런 나날의 연속이다.


화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이 옆에 없다. 새벽기도에 간 것이고 마치고 바로 회의가 있기 때문에 이미 출근한 것이 된다. 그리고 또 밤 11시가 다 돼야 얼굴을 보게 된다. 화요일 아침이 내겐 월요일 같다. 남편 없이 아이들 각각 학교 보내는 마음이 많이 허전하다. 이렇게 또 일주일을 살아야 하는구나, 싶으면 더욱 그렇다. 월요일에 함께 누린 시간 때문이기도 하고, 진짜 살아내야 할 나날은 주로 화수목금토일이기 때문이다. 머리 쥐어 뜯으며 원고를 쓰고, 채윤이랑 싸우고, 시어머니로 고민하고, 이런 저런 걱정에 휩싸여 두려워 하고..... 산다는 건 이런 것이다. 카페는 사는 곳이 아니다. 지지고 볶고 사는 곳은 집이다. 하루 이틀 청소기 돌리지 않으면 바닥이 버석거리고, 세탁기 돌리는 게 좀 늦으면 샤워하고난 현승이가 수건 없다고 엄마를 고래고래 부르는 그런 곳. 조금만 정줄 놓으면 집구석이 난리가 난다. 카페처럼 그렇게 늘 예쁠 수가 없다.  남의 꿈으로 내게 온 통찰이 크다. 고귀한 시간낭비인 예배, 일부러 일상에서 한 발 물러서는 월요일 안식 데이트, 피정 같은 것들은 내 집 아닌 카페를 누림이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너나 나나 조금씩 여유롭게 보이지만 각자 책임져야 할 일, 풀어야 할 갈등, 보이지 않는 짐을 지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 져줄 수 없는 자기의 몫이 있어서 더 무거운 짐이다. 그걸 묵묵히 잘 지고 가며 마음의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 삶이고, 마음의 여정이고 신앙의 성숙이다.


남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숙대 근처를 지나며 두 마리 참새는 '카페 마다가스카르'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했다. 잠시 들어가서 커피 한 잔 하며 지친 날개를 쉬었다. 그러고보면 나도 커피값이 5000원 이하인 카페는 고민없이 드나드는 편이다. 된장질도 한다면 하는 편이지. 글치. 부러워서 얄미웠던 크로아티아 아줌마에 대한 투사는 거둬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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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녀온
채윤이에게 '설거지 좀 해'
기대도 안 하고 던졌는데
'알았어. 엄마 아프니까 내가 설거지 할게'하며 순순하게 나옵니다.
이거 뭐지?

학교 끝나고, 피아노 연습하고 힘들었을 텐데 괜히 시켰나 싶기도 하고,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속으로 너무 얄미워 했던 것이 급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이 순간 아빠가 퇴근해 들어왔길래,
'채윤이 설거지 하는 거, 가서 칭찬 좀 해줘'했더니,

자, 아빠의 칭찬 들어갑니다.


김채윤, 설거지 해?
왜~애?
너 자발적으로 하는 거야. 엄마가 시켜서 하는 거야?

와~~~~~ 칭찬 끝.


그러고보니 오래 전 일도 생각납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에
어머님이 아침밥을 챙겨주시면 넙죽 받아먹고 출근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어머님의 자부심, 된장찌개가 나왔고.
사실 매우 맛있었습니다.
어머님은 누구보다 아들이 당신 음식 맛있다고 하는 걸 좋아하셨죠.
마주앉은 남편에게 소곤소곤 '찌개 맛있지?' 하니까 '어'
'어머님께 맛있다고 해. 칭찬 좀 해드려'했더니.

자, 아들의 어머니 칭찬하기. 들어갑니다.

어머니,
된장찌개 어머니가 끓이셨어요?
그래, 내가 끓였다.
맛이 왜 이래요?

와~~~~~ 칭찬, 특급 칭찬이다!


(칭찬이랍시고 아무 말이나 막 늘어놓는 당신의 강한 멘탈, 칭찬합니다.
꼼수 또는 서비스정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당신의 뻣뻣한 언어들, 칭찬 말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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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이 개학 전 마지막 월요일이라 어디든 데리고 나가보려 하였다. 체험놀이를 하러 가기엔 늙은 나이, 그렇다고 엄마 아빠 식 데이트 따라가기엔 어린 나이의 현승이는 잠시 고민을 한다. 어디든 데려가겠다고 선택권을 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한강공원에 나가서 축구하는 것만 못 한가보다. 점심도 혼자 먹고 친구들과 놀고 수영 다녀오겠단다. '너도 떠나려느냐? 그래, 가라. 네 친구들에게로' 시원 섭섭하게 현승이 떨궈내고 늦게 포천의 평강식물원으로 향했다. 교회에서 어르신들 나들이 많이 가시는 곳이다. 믿음 좋은 장로님이 정성을 다해 기획해서 꾸며놓은 느낌이 물씬 난다. 시어머님 모시고 가면 딱 좋아하실 분위기라서 '다음번엔 어머니 모시고 오자' 하며 걸었다.



가는 길 차 안에서 강의를 하나 같이 들었다. 최근에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세미나였는데 장신대에서 영성신학을 가르치시는 유해룡 교수님 강의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융 심리학의 마음의 구조 이야기다. (실은 나는 이미 뚜껑을 열어서 들었다) 믿는 바와 사는 바가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었고, 나답게 살고 싶었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고, 복잡하기 그지 없는 내면을 정리하며 살고 싶었던 내가 만난 궁극의 학문이 분석심리학이다. 좋은 것을 좋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것이 당연한데, 그 마음이 충천하여 입만 열면 융 드립으로 남편을 꽤 괴롭혔다. 덕분에 남편이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융' 일지도 모른다. 아, 그렇게 전도할 기회를 아예 잃어버린 것이라 자책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기대없이 '들어볼래?' 제안을 했는데 의외로 재밌게 잘 듣고 간간이 질문도 한다. 예~

 

 
강의하며 '매력있는 사람' 또는 '성숙한 인격'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 역시 오랜시간 고민했던 것이기도 하다. 요즘은 그렇게 정리하고 있다. 성숙한 인격이란 자신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타인에게 말할 여지를 주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사실 우리는 내 약점이나 어두운 부분이 드러내지 않기, 틀어막고 감추고 방어하기 위해 심리적 에너지 대부분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어두운 부분, 의식되지 않은 자아의 부분을 Jung 심리학에서는 '그림자'라고 한다. 무의식 속에 있는 또 다는 '나'이다. 싫고 부적적하다고 느껴져 무의식으로 밀어넣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나'라고 인정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그런데 Jung이 말하는 성숙, 자기실현의 첫 스텝은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해내는 것이다. 말이 쉽지 이것은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모른다. 유해룡 교수님은 강의에서 그러시더군. '내가 죽는 일'이라고.



자신의 그림자를 알아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의식에 있다 하지 않는가. 직접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투사'를 통해서 확인된다. 말하자면 내가 수용할 수 없는 내 모습이라 무의식으로 밀어 넣었는데, 누군가 바로 그 짓을 하고 있으면 꼴보기 싫어 견딜 수 없는 것. 투사현상이다. 내 안에 있는 것이 싫을수록 그 사람을 더욱 비난하는 것이다. 남편이 내게 물었다. "나는 누구한테 그림자 투사를 하는 것 같아?" 아, 우리는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이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그럴 듯한 내 모습이 아니라 내 어둡고 때로 추악하기도한 모습이 어떤 것 같냐고 묻고 있지 않은가?  함께 이렇게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그림자 인식은 물론 내 어두움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반감된다.  그러면 그림자은 나쁜 것인가? 아니다. '큰 나무에 큰 그림자'라 말하는 것처럼 성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필수적인 인간의 조건이다. 그러면 융이 말하는 것처럼 그림자를 인식하고 투사를 거두어들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과연 투사를 다 거두어들일 수나 있는가? 난 사실 요즘 이 문제를 끌어 안고 딜레머에 빠져있다.

 

안식 데이트 이틀 후에 MBTI 연구소에 강의 들으러 다녀왔다. 유해룡 교수님 강의와 상관없이 한참 전에 등록해 놓은 것이다. 굳이 들어야 할 외적인 이유는 없다. 이미 들어야 할 강의를 다듣고 강사 자격을 따서 강의한 지가 몇 년인가. 배우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비용과 시간을 지불한다. 때문에 하루 종일 강의 듣는 일이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정말 재.밌.다. 지적인 호기심만은 아니다. 자라고 싶어서이다. 하루 종일 들은 내용은 지난 수 년간 혼자 피나게 공부했던 것들이라 새로운 것은 없다. 현실적인 목적이 있다면 강의할 때 조금 더 쉽게 전달할 방법이 있을까를 얻고 싶은 것이지만, 간절한 열망은 마음과 영혼이 자라고 싶어서이다.



수 년전 강사 자격을 위해 공부하던 과정 중에도 이 강의를 들었었다. 강사는 그때와 바찬가지로 서강대 교수셨던 김정택 신부님이었다. 전에 이 강의를 들을 때 얼마나 졸았는지 모른다.  MBTI와 사랑에 빠진 듯 헤어나오지 못하던 시절이었음에도 융 심리학 강의는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MBTI와의 관련해서도 의미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긴 대학, 대학원 때는 융을 배우지 않았나? 그때도 융은 융이고 나는 나였지. 몇 년 사이의 변화가 놀랍다. 한 마디도 스쳐지나가지 않고 가슴으로 들어오는 강의였는데 단지 '나의 변화'라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강의 하시는 김정택 신부님의 변화이기도 했다. 수 년전 내가 들었던 중급과정에서 분석심리 강의 이후로 새롭게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그 어렵다는 융분석가 과정을 8년을 하셨다고. 계산해보니 과정 마치고 자격을 받으신 것이 은퇴를 불과 몇 년 앞둔 시기이셨을텐데.


원래 내가 강의 듣고나서 궁금한 걸  묻는 스타일이 아닌데, 일빠로 손들고 질문 했다. 융심리학과 기독교 신학과의 관계였다. 학문적으로, 또 신부님 개인의 고백으로 어떻게 정리하고 계신지 물었다. 혼자 공부하며 오랜 시간 품고 있던 절실한 의문이었다. 두리뭉술하게 답을 주셨다. 두리뭉술해서 오히려 내게는 명확한 답으로 다가왔다. 융 심리학에서 얻는 유익과 한계에 대해서 순간적으로 번쩍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진심으로 고개가 끄덕였졌다. Jung은 '나의 생애는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이다' 라고 말했다며 신부님의 생애는 '하나님이 그 자신을 실현하고 드러낸 역사'라고 말씀하셨다.




그림자를 통합시켜 나가는 것은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이다. 내가 그렇게나 부대끼는 저 사람의 저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그 지점에 비추어진 내 어두움을 봐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단지 인식하고 투사를 거두어들이는 것으로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적어도 내 경험으론 그렇다. 대상으로부터 투사를 거두어들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온전히 거두어들일 수도 없다. 은총의 빛이 비추어져야 한다. '그 생명 빛은 참된 빛이었다. 그분은 생명에 들어가는 사람 누구나 그 빛 속으로 데려가신다(요한 복음 1장, 메시지 성경)' 죄 없으신 예수님, 그림자 없는 빛 그 자체이신 예수님의 사랑이다. 결국엔 그 사랑의 빛이 참된 성숙에 이르게 하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가 닿을 수 없는 자유에 이르게 한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그 사랑의 빛은 실제적이어야 한다. 보통은 상담자가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설령 돈을 위해 하는 상담이라 할지라도 사랑 코스프레는 상담자에게 필수조건이다. 심지어 우리는 사랑 코스프레만으로도 감동을 받고 아픈 상처를 내보이게 된다. 하물며 사랑 그 자체라면! 김영봉 목사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쓴물을 받아 마셔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김정택 신부님의 말씀처럼 내 인생도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역사였다. 그 역사 속에서 그나마 나는 조금씩 자라고 있다. 성장은 눈꼽 만큼인데 상처로부터 흘러나오는 고름과 신음소리는 길었다. 예수님 많이 닮은 남편이 그 쓴물을 받아 마셔주고 인내해줬기에 이 만큼이라도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심리학 좀 안다고, 에니어그램과 융을 좀 배웠다고 가까이 있는 남편을 얼마나 볶아댔는지. 내 속에 있는 어두움 보는 것이 힘겨워질 때면 남편에게 투사하여 '당신 좀 당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라'면서.


책 읽기 딱 좋은 식물원 벤치에 잠깐 앉았는데 남편은 차에서 책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당신 잠깐 책 읽어' 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어주는 그 마음. 강사료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강의 들으러 다니는데 써도 오히려 격려하는 마음. 아내가 살림을 잘 하는 것보다 마음과 생각이 성숙해지는 것을 훨씬 더 가치롭게 여겨주는 태도. 무엇보다 내 그림자와 그것을 방어하기 위한 추한 모습을 가장 많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나가주고, 그로 인해 아파도 포기하지 않는 대화로 이해해주려 하고, 나의 그 많은 약점들에 대해 비밀을 지켜주는 JP. 남편과 함께 융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다니! 이 사람, 나의 융 드립에 질려서 융 드립 커피도 싫어할 지경인데 말이다. 아, 오늘 저녁엔 융 드립 커피 한 잔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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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쯤 두 망아지 떼놓고 우아하게 외식할 수 있을까? 육아의 터널이 영원할 것 같았던 어느 날,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선배 부부들이 말했던 것처럼 '언제 쯤'은 금방 왔다. (금방 올 줄 알았지만, 진짜 금방 올 줄은 몰랐다.) 각각 음악캠프, 농촌캠프 일정이 있는 아이들, 이번 주에는 교회 성경학교에 갔다. (잠깐, 표정관리 좀 하고) 어머,얘들아. 엄마 아빠 둘이만 보내게 생겼네. 어떡하지? 본의 아니게(본의에 부합하게) 룰루랄라 단둘이 보내는 여름 피정.  

JP가 원하는 쉼은 오직 '걷는 것, 정신실과 느리게 것는 것'이었다. 지인의 '카더라' 소개로 대관령의 국민의 숲에 가기로 했다. 지인은 가보지 않고 소개했고, 나는 검색하여 사진 한 장 딱 보고 결정했다 하하. 이것은 각본없는 런닝맨 또는 대관령판 정글의 법칙이었다. 아직 조성되지 않은 길이었고, 지도는 허술했고 이정표는 숨겨져 있었다. 게다가 명일동 일자산보다 나을 것 없는 길이었다. 대관령 휴게소에 주차를 하고 첫 스텝부터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지난 6월 걸었던 제주도 사려니숲을 그렸던 머릿속에 사사삭 사사삭 검정 크레파스로 덧칠하는 소리.


 


남편은 이번 여행의 제목이 <가리워진 길>이라고 했다.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쌓인 길, 잡힐듯 말듯 멀어져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일단 출발은 했고, 어떻게든 다시 차로 가야하는데 그대로 간다면 길도 없는 숲속에서 날이 저물 것만 같았다. 되돌아가자니 어떻게 온 여행인데, 그 멋대가리 없는 길을 아무 기대없이 다시 걷고 끝난다는 것은 더 싫은 일이었다. 여러 번 기로에 섰다. 몸이 지친 것이 아니라 꿈이 사라져 마음이 지쳐버린 나는 되도 않는 말을 지껄이며 걸었다. 기로에 서면 판단을 멈추고 JP를 바라봤다. 엉성한 지도와 아이폰을 번갈아보던 남편이 '일루 가자' 하면 무기력한 채로 부창부수.

 


가리워진 길 대책없이 대관령 800 펜션마을에 도착했다. 걸으면서 본 가장 멋진 경치였다. 정말 잘 가꿔진 잔디밭에서 아이와 아빠가 놀고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느긋하게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바비큐를 하려는지 장비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주 높은 곳에, 정말 좋은 곳에 있다는 실감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경치와 여기 있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처지에 있는 나를 금방 실감했다. 곧 저녁이 될 것이고, 우리는 이 밤 잘 곳도 정해놓지 않은 상태다. 아니 그것도 배부른 고민, 바로 지금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 상태. 최대의 위기였다. 방법은 차도로 나가서 아스팔트를 걷는 것 뿐이었다. 그래도 뭔 길이 있을 거야. 어, 길인가? 가보면 막다른 길. 그 순간, 남편이 환청을 들었다. 숲을 가리키며 '저기서 아이들 소리가 들려. 여보, 다 온 것 같애. 산으로 가보자' 하며 몇 걸음을 내딛자 숨겨져 있던 이정표가 다시 나왔다.


 


문제는 풀이 무성한, 길이 거의 보이지 않는 오르막 산길이라는 것. 날이 흐려서 숲은 어두웠고 발밑에 무성한 풀 사이로 뱀이 웅크리고 있을 것같아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다. 앞서 가는 남편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려면 거의 뛰어야 했다. 아니, 뛸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길을 못 찾고 날이 어두워지면 정말 무서워서 미쳐버릴 터. 100 미터 21초인 내가 100 미터 단거리를 뛰듯 내달려 산을 올랐다.  이게 뭐야? 느긋하게 걷기 어디갔어? 가만 서있어도 힐링이 되는 키 큰 나무 사이를 손잡고 걸으며 노래하고 도란도란 얘기하기로 했잖아. 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한 발을 무사히 내딛는 것이 다행이었다. 앞에 가던 남편이, '힘들지?' 100 미터 주자 나는 '아니, 무서운 게 힘든 걸 이기고 있어'  

 


결국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었던 김종필 씨 덕분이다. (우리의 곽노현 교육감 아저씨 목소리로 썼는데.... 그렇게들 읽혀지시길. 헤헤) 길다운 길을 만나고 철조망 사이로 양떼목장도 보고, 바운스 바운스하던 심장도 제 박자를 찾으니 카메라 앞에서 웃음이 웃어졌다. 길을 걷는 동안 찍은 몇 장 되지도 않는 사진을 보니 의도한 바도 아닌데 웃음기란 찾을 수가 없었다. 단거리 달리기로 등산했던 구간에서는 아마 호러영화 속 귀신을 본 아이들 표정이었을 것이다. 사진을 비교해 보면서 한참 웃었다.  



하나님 보기시에 좋았더라, 아니고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안됐다 싶으셨는지 아무 준비없던 이후 일정들이 잘 흘러갔다. 성수기라서 숙소 몇 군데 '방 없는데요' 소리를 들어야 했고, 비싼 곳에 갈 수도 없었는데 물회국수 한 그릇 먹고나서 적절한 숙소를 얻어 편히 쉬었다. 대책없이 브런치를 찾아다니다 바닷가 5층에 자리잡은 할리스에서 샌드위치와 경치를 함께 누리는 호사를 누렸다. 강릉, 하면 커핀데 보헤미안이니 테라로사니 하다가 '나 맛있는 커피 찾아다니는 것, 커피를 위해 커피를 마시는 것 별로 재미없어졌어.' 해놓고도 테라로사 공장에 가서 잘 마시고 잘 놀았다.

 

 


'걸으면 해결된다'에 꽂힌 JP님의 금쪽 같은 피정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오대산 전나무숲으로 가자! 굿 쵸이스! '정신실과 느리게 숲길 걷기'는 여기서 다 이루었다. 서늘한 날씨에다 어제의 경험으로 마음의 힘이 다 빠져있어서 할랑할랑 걷기 딱 좋았다. '걷기 딱 좋은 날씨다'를 연발하면서 천년의 숲을 걸었다. 천년의 숲에 서면 호빗족 나나, 내 키 가지고 놀리는 김종필이나 거기서 거기이다. 이 대목에서 결혼 전부터 김종필씨의 노래라 생각하며 불렀던 시인과 촌장의 <나무>를 한 곡 뽑지 않을 수 없다. '저 언덕을 너머 푸른 강가에 젊은 나무 한 그루 있어. 메마른 날이 오래여도 뿌리가 깊어 아무런 걱정 없는 나무...... 밤이면 작고 지친 새들이 가지 사이 사이 잠들고 푸른 잎사귀로 잊혀진 엄마처럼 따뜻하게 곱게 안아주는 나무.....'

 

 

 

 

오싹했던 어제를 떠올리며 '정신실, 무섭다 무섭다 하면서도 안 간다고는 안 하대'라고 했다. '그럼, 난 김종필의 선택을 믿으니까. 김종필은 옳아!' '뭔 소리야?' '당신이 주도하고 주장하지 않아서 그렇지 당신의 선택을 따르면 늘 옳아. 어제 길을 걸으면서도 그랬고 당신하고 살면서도 그랬어. 당신이 멈춰서서 심사숙고한 다음에 한 선택은 언제나 맞았어.' 그렇다. 계획과는 180도로 달라서 당황했던 숲길 걷기였지만 JP의 방향감각과 분석은 탁월했다.(탁월하다) 결혼이라는 각본없는 길을 걸으면서도 그랬다. 신혼초에는 남편을 통제하려 했고, 내가 옳으니 내 말을 따라 빨리 움직이라고 닦달도 많이 했다. 그런데 경험과 경험이 입증하는 것은 달랐다. 크게 숲을 보는 눈을 가진 남편의 판단을 믿으며 내 주장을 조용히 접어도 일이 되었다. 오히려 잘 되었다. 나무 한 그루씩 보는 눈이 발달한 내가 디테일을 채워나갈 때 가리워진 길은 드러났고 길 위에 사랑도 행복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러면서 서로 성장하게 되었다.

 


새삼 남편이 훌륭하게 느껴져서 계속 우쭈쭈해줬더니, 아뿔사! 남편의 사기가 너무 충천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끝없는 군대 얘기를 들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사실 재밌고 감동적이었어. 여보. 케케)  집에 돌아와 씻고 편안하게 소파에 앉았을 때 남편이 말했다. '이번 여행의 제목은 가리워진 길이야' 내가 받았다. '이번 여행의 제목은 JP는 옳다야' 가끔 김현식의 '가리워진 길'을 떠올리며 '그대여 힘이 돼 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서 남편의 소명찾기를 돕는 나의 소명에 대해 생각하곤 했었다. 늦게 목회를 선택하고 목사가 된지 3년이 되었나? 여전히 오늘도 남편은 소명을 찾아 고민하고, 나는 나대로 나의 소명을 찾아 고민하다. 그리고 그 고민이 교차하면서 때로 막막하고 무력해지기도 하지만 결국엔 가리워진 길은 어디론가 이어져 있었다. 피할 방법이 없어서 억지로  걸어야 했던 그늘 없는 길에서도 어쨌든 걸으면 해결되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나무처럼 자란다.  이렇듯 함께 걸어가는 길은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하신 결혼의 신비를 캐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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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란 것이 목숨 걸고 지켜야하는 것은 아니다.
취향에 맞는대로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취향에 딱 맞는 것을 발견하거나, 그걸 갖거나, 누리는
예기치 않은 기쁨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런 때는 그저 감사하며 120% 누려야 한다.


 

 



신혼여행을 시작으로 몇 차례 제주여행을 했는데,
아이들 없이 단둘이서 취향에 딱 맞는 여행은 처음이다.
그래서 자체로 안식었다. 



 



정장 입고 제주도는 처음이다.
강의가 있어서 떡 본 김에 제사 지내자는 격의 여행이었다.

공항으로 나를 맞으러 나온 자동차의 주인은 차와 딱 어울리는 예쁜 자매였고,
내 책 세 권을 다 읽어준 독자이기도 했는데 따스하게 맞아주고, 태워주고, 들어주었다.
짧은 만남이 긴 여운을 남겼다.



 


연애 강의를 한 지가 벌써 몇 년인데,
할 때마다 긴장되고, 날이 갈수록 더 큰 부담을 안게 하게 되니,
강의를 마치고 나면 그에 비례하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용두암 근처 카페거리에서 그를 기다리는 시간.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라는 건지, 천천히 가기를 원하는 건지, 그냥 지금 이 순간이 좋은 건지.





여행 가서 먹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취향,
한 끼 잘 먹으면 한 끼 굶는 것으로 위와 영혼의 부담을 이상한 방식으로 줄이는 취향,
밥값은 아끼면서도 커피는 꼭 마셔야 하는 취향.
우리 둘이 통하는 취향이다.

검색해서 찾아간 카페였는데, 좋았다.
(어딘진 안 알랴줌.  
다음에 제주 가면 여기 가서 잠도 잘 건다,
세상에 안 알려졌으면 좋겠는 곳이다)


 

 


여행의 질을 말할 수 없어 높여주는 것은 스마트폰과 자동차 스피커의 접속.
원하는 어떤 음악이라고 들을 수 있는 이것이다.
정엽의 과하지 않은 느끼함이 대화마다 적절하게 백뮤직으로 깔려줬다.
조관우 아저씨는 결국 우리를 '노무현 레퀴엠'으로 끌어 들였다.
아, 진짜.
'저 덜에 퍼러런 솔립펄 보라......'
그분 목소리가 기습적으로 튀어나와서 잠시 침묵.



길이 있고,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아침 신선한 공기에
삼나무 우거진 그늘을 걸을 수도 있지만
바닷가 한적한 길을 뙤약볕 아래서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우리는 그래도 걸을 수 있으면 어디든 좋다!는 취향.
너무 힘들면 다시 돌아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하면서 쉬어도 된다는 취향.

 


 


남자 김종필.



여자 정신실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행복하게 사는 게 무얼까? 우린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우리의 선생님, 참 좋은 우리 선생님 예수님이 사신 방식으로 살면 행복하겠다.
우연히 전태일님, 노무현대통령님을 얘기하다 예수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취향이 잘 맞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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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데이트 시절에 김밥 많이 먹었다.
하남시에 있는 '가야'라는 김밥 집에는 남들 1500원 할 때 1000원 하는 김밥이 있었다.
1000원 짜리 김밥을 먹고 팔당대교 아래 강변을 걸으면서 데이트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도 낭만적이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 서글프기도 했다.
둘 다 학생.
그나마 나는 과외로 돈 좀 버는 대학원생.
그러나 학비까지 벌어야 해서 많이 벌어도 버는 게 아닌 과외선생.

결혼 하고 살림살이가 많이 폈다.
4000원 짜리 김밥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떡볶이와 오뎅까지!

월요일 저녁, 프리미엄 김밥을 사가지고 저~어 높은 옥상으로 소풍이다.

 


 

 

지난 주 월요일에는 서교동의 찰스 김밥.
오늘은 상암동의 김선생 김밥.
왠일인지 근처에 럭셔리한 김밥집들이 많다.
양복 아빠가 반바지 아빠가 되는 월요일 저녁에 2주 연속 옥상 소풍이다.

"내가 합정역에서 아빠 차에 탈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안 좋았거든. 큰 일은 아닌데.... 어떤 일로 내가 분노가 막 일어나고 있었어. 그런데 옥상에 와서 이러고 있으니까 기분이 좋아졌어"

북한군이 그렇게 무서워한다는 중2도 기분이 좋다.
덕분에 모처럼 화기애애 했다.

 

 

배부르게 먹고 아빠 배를 베고 벌러덩 누워 뒹굴거리는 녀석들을 꼬셔서
'커피 준비해 줄 사람?' 어르고 달래서 집으로 내려보냈다.
저녁 바람이 살랑거리는 탓인지,
기분 좋게 둘이 커피를 준비하기 위해 내려갔다.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보니 분위기 맞춰서 새도 날아다니고, 좋다.

 

 

커피 갈고 물 끓이고, 커피잔에 더운 물 부어 컵을 데우고,
드립 직전까지 완벽하게 준비해서 올라오는 준바리스타들.
얘들아, 오늘만 같아라.

 

 

 

뻥 뚫린 공간에서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맛은,
음......
커피를 불리면서 사이사이에 공기를 더 많이 집어 넣는 느낌이랄까?
옥상에서 내린 커피에서는 바람의 맛이 느껴진다.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클래식, 팝, 가요, CCM 쟝르를 넘나들며 감상.
디제이는 영 아티스트 채윤.

 

 

어둠이 내려 앉는다.
저~어기, 메세나 폴리스에 불이 켜졌다.
내려가야 할 시간.
신데렐라 아빠 양복으로 갈아입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알차게 잘 쉬고 잘 놀았다.
아빠, 채윤이, 현승이, 엄마.
빡빡하게 돌아가는 '화수목금토일'이라도 소풍처럼 살자.

 

 

 

 


퇴원한 엄마는 아무래도 병원에 있을 때보다 심심해지니 전화가 잦다. 딸 목소리 듣고 싶어서, 기도제목 부탁할 것이 있어서, 우리 딸이 지혜로웅게 의논 헐라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전화가 잦다. 시어머님도 마음은 엄마랑 비슷하실텐데 딸이 아니라 며느리니까 애써 참으시는 것 같다. 전화 또는 '집에 좀 들러라' 하실 때마다 피치못 할 이유를 대시는 것이 느껴진다. 엄마나 시어머니나 하염없이 얘기를 들어드릴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모두 바쁘다. 그래서 노년은 쓸쓸하다. 알아도 잘 못해드리는 나는 죄책감과 무력감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친정과 시댁을 왔다리 갔다리 한다.


엄마는 내 엄마라서 한 방 웃겨 드리는 것으로 엔돌피 주사 효과를 낼 수가 있다. 어머님은 여러 모로 어렵다. 무엇보다 초반에 내가 너무 열심히 한 탓이다. 며느리 기능에 상담 기능에 운전사 기능까지 하면서 한계를 모르고 열정을 쏟아부었다. 좋은 며느리라는 자의식도 있었지만 정말 그렇게 내가 애쓰면 어머님의 몸과 마음의 병이 나아지실 거라고 굳게 믿었다. 열정(일종의 사랑), 좌절, 다시 찌질한 열정을 오가면서 어머니를 섬기는 일이 내 마음에서 더 복잡해졌다.  그래서 90대 엄마의 쓸쓸함 보다 60대  어머니의 쓸쓸함이 한결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어머니 얘길 많이 들어드리면 좋겠는데 내게 여력이 없다.


몇 가지 경험으로 지적인 어르신들이 노년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어머님은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않으셨지만 읽고 쓰는 것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분이다. 눈이 안 좋으셔서 책을 많이 볼 수 없어 아쉽고, 신경을 많이 쓰시면 머리가 아파지기 때문에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께 자서전 쓰시길 제안했다. 캄캄했던 어린시절에 촛불 하나 켜서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가게 되고, 나름대로 옳다고 믿으며 살아오신 생에 대한 변명도 마음껏 하실 수 있는 장을 마련해드리면 어떨까? 싶어서 살아오신 이야기 쓰실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강화물도 계획했다. 어머님이 쓰시면 즉각 워드작업을 해서 가져다 드리기. 대충 쓰시면 내가 손을 봐서 멋진 글로 만들어 드리기. 매주 쓰시면서 올라온 감정이 있으면 들어 드리기. 다 모아지면 책으로 묶기.


이런 계획을 말씀 드렸다. 심드렁한 반응이시다. "어머니 살아오신 인생이 보통 사람들과 견줄 수 없잖아요. 한 번 써보세요. 책 만들어서 제가 작은집이든 어디든 다 돌릴게요" 했더니 "내가 내 얘기를 쓰자면 책 한 권에 못 쓰지. 수십 권은 써야하지" 하시며 다시 심드렁.  "에미가 나 피정 보내줬었잖어. 거기서 별명을 지으라는데 처음엔 혹덩이라고 지었어. 나중에 내가 별명을 바꿨지. 복뎅이라고. 내가 처음에는 혹뎅이로 남의 집 살이 갔지만 하나님 은혜로 복뎅이로 살고 있는데 그런 뜻으로 해서 쓰면 되겠네" 하시며 또 심드렁. ㅎㅎㅎㅎ


"엇! 어머니, 책 제목 정했어요. 제목은 혹댕이에서 복댕이로! 이거예요" 그렇게 던져만 놓았었다. 치유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발성이 필요했기에. 어머님께 떡밥을 두고 온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지난 주에 갔더니 A4  용지도 마련해 놓으시고 연필도 여러 자루 깎아놓으셨다.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하고 계셨다. 자발성 확보! 내일은 아버님 3주기 추도식이다. 그야말로 3년 탈상의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저렇게 준비한 파일을 가져다 드리려고 한다. 과연 지속적으로 쓰실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여러 모로 유익한 일이라 여겨진다. 일단 어머님이 오래 된 상처와 감정들 쏟아놓으실 장이 마련되었고, 나는 나대로 끝없이 말로 들어드리기보다 글로 오가며 한결 쉽게 어머니와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혹덩이에서 복덩이로'
글을 쓰시면서 어머님이 이 말을 진정 가슴으로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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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향
노래에 담긴 깊은 혼, 순수, 열정 이런 것들과 상관없이 홍순관의 음악이 취향에 잘 맞지 않는다. (존중입니다. 취향해 주세요) 노랫말도 좋고 멜로디도 좋고 한 마디로 노래 좋고 노래를 부르는 이의 철핟고 좋은데...... 그냥 스타일이 안 맞는다. 내 충청도 양반 출신이라인지 감정의 과잉이 버겁다. 그나마 좋았었는데 언젠가 라이브를 접하고 더욱 마음이 멀어졌다.


* 콩깍지
그런 홍순관을 내가 좋아하는 줄 알고 있던 적도 있다. 사실 홍순관의 노래를 접하게 된 건 20여 년 전인데, 몸담고 있던 교회 청년부에 홀연히 나타난 찬양 인도자 K 때문이었다. K가 찬양인도를 맡게 되면서 유난히 분위기가 무거워졌는데 북한가요인 '반갑숩네다'를 부르라고 하지 않나. <뜨인돌>인지 <많은 물소리>인지에  나오는 노래들과 홍순관의 노래를 많이 시켰다. K 스타일에 훅 가버린 탓으로 홍순관 노래가 좋아보였고, 그걸 홍순관 노래가 좋은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콩깍지다.


* 지겨움
그 시절 K와 20여 년이 지나서 주고받은 메시지 이다. 그때는 내 취향 아닌 것도 단지 그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껌뻑 죽곤 했었는데.... 와, 그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일 마음을 많은 두는 그것이 내게는 최고의 지겨움이라. 올해 교회 구역공부 교안을 맡고 있는 K. (지적인) 완벽주의자 K는 늘 교안만 생각하는 듯. 그리하여 여호수아만 마음에 품은 듯. 퇴근하고 잠시 커피라도 한 잔 할라치면 마주앉아 스마트폰의 스포츠 영상에 넋을 놓고 있다. "여보, 그런데 오는 채윤이가.... 현승이가.... 어머님과 통화했는데....." 웬만한 걸 던져도 영혼없는 '엉, 그래?" 의 리액션이다. 여기에 갑자기 "여보, 그런데 교안은 잘 돼?"라고 묻자마자 "어, 잘 안돼. 이번 주 본분이 몇 장인데 말야...... 여호수아가........ 블라블라..... 가나안  땅에......블라블라....." 눈에 생기가 돌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수다가 길어진다. 췟, 지겨워.


* 당신도 지겹겠지
"여보, 그런데 오늘 꿈집단에서~어....  며칠 전에 꿈을 나눴는데 대애~박! 어떻게 그런 투사가 되지? 와, 놀랬어. 놀랬어" 내가 제일 재밌는 얘기는 내적인 성찰에 관한 이야기, 꿈, 에니어그램, 이런 것들인데 남편에게 오죽 지겨운 얘기일까? 쯤은 알고 있다. 나도 가끔 얘기 내놓고 벌줌하고, 다시는 니한테 꿈 얘기 하나봐라. 이를 갈며 결심하기도 한다.


* 사랑일 뿐이야
한때는 내 취향 아니어도 그의 취향에 마냥 취하기도 했었는데, 그도 그랬었는데..... 우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의 취향이 지겹고 나의 취향이 그에겐 귓등으로도 안 들리는 얘기다. 사랑이 식었나? 아님, 이건 정~말 신빙성 있는 추측인데. 질투일까? 내 남편의 마음을 앗아간 교안, 여호수아, 회의 /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원고, 에니어그램, 꿈을 서로 질투하는 것일까? 너무 사랑해서? 오메, 그런가 보다. (손해볼 것이 없다. 이걸로 가자) 맞어. 맞어. 맞어. 사랑일 뿐이야!

사줘

* 덧
맨 아래 뜬금포 애교 뿌잉뿌잉은 쓰고 원고 탓임. 애교에 관한 얘기를 쓰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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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같이 하는 걸 좋아하고 연결되기를 갈망하는 내 기질이 우리 부부를 서로에게 깊이 침투하도록 만들었다. 반면 늘 독립적이기를 원하는 남편의 성향은 적당히 거리를 두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우리 부부가 비교적 잘 지내는 비결 중에 하나는 둘이 하나되는 것에 거침없이 투신하고 각각 홀로 가는 것을 두려움 없이 응원할 수 있었던 덕이라 믿는다고 거창하게 깔대기 들이대보지만, 실은 남편 덕이 크다. 나는 결혼 전 살던 방식대로 살았고, 남편은 결혼 전 살던 방식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이를 선택한 셈이니까. 결혼과 동시에 '별걸 다 얘기하는 남자'로 변신하겠노라 결단하고 퇴근하자마자 '오늘 사무실에서....'로 시작하는 (그의 편에서는) 의미없는 '그냥 있었던 일'을 자발적으로 말하는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으니 말이다. (사실 그 당시엔 남편 김종필씨에게 있어서 이것이 얼마나 애를 많이 써서 된 일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살면서 그를 더 알게 될수록 처절한 결단과 노력이었다는 걸 실감한다) 때문에 내가 남편을 먼저 사랑함이 아니요, 그가 나를 먼저 사랑하시고, 그의 사랑은 영원토록 변치 않아서 나를 사~아랑 하시니..... 그는 나보다 말할 수 없이 큰 자이다. (김종필씨, 보고 있나?)


한 달 쯤 전에 남편을 향한 나의 마음이 급속도로 얼어붙어서 '이거 해동이 되기는 할까?'하며 지내던 시간이 있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깜짝 선물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두어 달 남편이 정신력을 다 쏟아 준비하던 소임을 마치고 난 후이기도 했다. 남편 쪽에서 보면 '이 여자 또 왜 이래? 약 먹을 때가 됐나?' 정도였을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정말 깊은 빡침과 좌절의 시간이었다. 기도하고 나면 남편과 화해하게 될까봐 일부러 며칠 기도도 미루고 있었다. 사실 그때 내가 남편에게 하고 싶은 유일한 말은 '당신의 감정을 돌아 봐. 내가 보기엔 아무렇지 않지 않아' 였다. 남편은 '감정을 돌아봤다. 화가 났다. 그런데 내가 삭힐 수 있는 정도다. 그러면 삭히면 되는 것 아닌가. 갈등을 일이키면서 감정을 다 표현해야 하나?' 이거였다. 이 지점에서 그다지 만족할 만한 합의점이 찾아지지 않았고, 왠지 나의 빡침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융(Carl Jung)이 그려준 마음의 지도가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 다음으로 좋다. 어릴 때 이해도 못하고 읽었던 내용들이 중년의 고개를 넘으면서는 글자 한 한 한 자 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어 목디스크가 올 지경이다. 어찌 어찌 알게 된 저자에 꽂혀서 이 분이 지은 모든 책을 찾아 읽다 <우울한 남자의 아니마, 화내는 여자의 아니무스>를 만나게 되었다. 융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런데 오랜 세월에 걸쳐 남성과 여성에 대해 고정관념을 형성해 온 사회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성별에 따른 역할을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남자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여성성을 억압하고 여자들은 자신 안의 남성성을 억압하게 된다. 물론 인간으로서 성숙해진다는 것은(융의 표현대로라면 '개성화') 남성은 자신 안의 여성성을, 여성은 자신 안의 남성성을 통합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을 아니마, 여성 안에 있는 남성성을 아니무스라고 한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포함해서 무의식의 그림자를 인식하는 것은 인격의 성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강의에 참고하려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아니마 아니무스 어제 오늘 들었던 얘기도 하니고.... 그런데 이게 왠 일! 우울한 남자 김종필의 내면, 화내는 여자 정신실의 내면이 깨알 정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 안의 아니마를 만나지 않으려는 남자는 부정적 아니마 에 사로잡혀 우울한 감정 속으로 끌려 들어가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남자다운 대범함은 사라지고 소심하고 방어적이 되어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오히려 마치 토라진 여자처럼 성마르고 야박한 태도로 비아냥 거리거나 딴청을 피운다. 내면의 아니무스를 무시하는 여성 역시 마찬가진다. 자신 안의 남성성을 지속적으로 무시해왔던 여성은 아니무스가 부정적인 모습으로 외면화 된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섣부를 단정을 내리거나 상투적인 구호를 외치며 비판적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울한 남자, 화내는 여자 탄생! 우울한 남자는 토라진 여자처럼 행동하고 공격적인 모습을 띠는 화내는 여자의 눈치를 슬금슬금 본다. 아, 부끄러워. 단적으로 이것이 한 달여 간의 우리 모습이었다. 융 할아버지의 처방은 단순하다. 자신 안의 여성성, 남성성을 제대로 봐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성은 자기 안에 있는 여성성을 폄하하지 말고 애써 통합시켜야 한다. 그저 자신 안에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 그리고 표현하면 된다고 본다. 여성도 마찬가지. 파괴적인 아니무스를 물리치기 위해 여자는 자신의 영혼을 더 강한 정신으로 채우고 진정한 사랑에 문을 열어야 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우울한 김종필은 자신의 감정(특히 부정적인 감정)속으로 삼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적절히 표현을 (쫌) 하고, 화내는 정신실은 (제발 쫌) 남편 들어올 시간만 바라보며 의존하기를 멈추고 강한 정신으로 내면을 채워야 한다는 말씀.

 


 

오래만의 (놀월) 안식일 일기이다. 사실 여느 부부가 누리지 못하는 친밀한 관계, 질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는다. 월요일이면 걷기 좋은 길, 좋은 카페를 찾아서 이야기도 나누고 각자 책을 보기도 하며 연인들 데이트 코스를 누빈다. 어제 월요일에 '당신은 월요일 이렇게 보내는 게 좋아? 나한테 맞춰서 애쓰는 거지?' 하니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어!'했다. 이 간 큰 남자! 그그렇지만 괜찮다. 나는 이대로 쭉 갈 거니까. 이 남자가 되도록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힘 쓸 것이다. 열심히 내달리지만 순간순간 멈춰서도록 발을 걸어 넘어뜨릴 것이고, 꿍꿍 속으로 참고 있지 못하도록 찌르고 또 찌를 것이다. 나? 나도 역시 내 안의 힘을 믿고 더욱 씩씩해질 것이다. 사실 답은 간단하다.

"밖을 바라보는 자, 꿈을 꾸고 
안을 돌아보는 자, 깨어난다"

융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피차에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각각 성장할 것이다. 굳이 아니마, 아니무스를 운운할 필요도 없다. 각자 잘 성장해갈 때 둘의 하나됨 역시 더욱 온전해질 것이다. 목적 없는, 방향 없는 성장이 아니라 각자 안에서 살아 계시는 성령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다. 신혼 초, 갈등이 있을 때마다 어떤 경우에도 대화를 포기하지 않고 갈등의 끝을 만지기로 결심하고 살아온 시간이 (적어도)나에겐 커다란 인격적 변화를 맛보게 하였다. 그리고 그 노력으로 이제껏 비교적 잘 사랑하며, 각자의 의식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잘 살아온 것 같다. 지금은 또 다른 전환점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부부의 사랑이 더욱 온전해지기 위해서 각자 안의 그림자를 더 정직하게 들여다돠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빡침은 깊은 성찰로의 초대장이라 받아들이려 한다. 밖을 바라보면서 허황된 꿈을 꾸는 중년이 아니라 안을 돌아보며 더욱 깊이 깨어나는 오늘을 살아야, 우리의 노년이 더욱 로맨틱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우아한 말로, 좋게 얘기할 때 우리 서방님이 잘 알아들으셨으면 한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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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쇠는 남편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또 겹쳤다. 결혼 15주년, 그리고 남편의 생일. 그간 한 푼 두 푼 모은 원고료를 털어서 기타를 선물했다. 무슨 날, 무슨 날 챙기지 못한다고 타박만 했지 정작 무심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큰 맘 먹고 한참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실은 남편이 기윤실을 그만두고 퇴직금의 반을 털어(기타가 얼마나 비쌌길래? 퇴직금이 얼마나 적었길래?) 기타를 장만했었다. 내가 음악치료를 프리로 전환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남편의 기타를 들고 다니게 됐었는데...... 그런데...... 치료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기타가 갈수록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에잇, 기타소리가 왜 이래?' 할 때마다 미안해서 오그라들고 했다. 그래! 결혼 15 주년, 내가 좋은 기타 쏜다.



눈 감고 전방 위 25도 정도로 고개를 들고, '내 주의 은혜 강가로' 기타 반주를 하는 모습. 아, 미간에 힘이 들어가 약간 찌푸린 표정은 필수 옵션이다. 이것이 김종필이란 사람이 내 인생에 들어온 첫 장면이다. 청년 시절 김종필을 생각하면 기타를 빼놓고 떠올려지는 장면이 별로 없다. 그리고 물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마법의 보자기를 뒤집어 쓰게 된 것이다. 기타 메고 다니던 김종필은 매우 내향적이고, 시니컬하고, 우수에 젖어 있는 듯 하고, 칙칙하고, 생의 의미와 신앙의 깊은 고뇌로 미간에 힘이 들어가 있는 범접하기 어려운 청년이었다. 시를 쓰고 노래를 짓고, 기타 반주를 하고.



악처(또는 구원자)를 만난 탓(덕)에 이전의 고뇌하던 인생에서 일상을 몸으로 살아내는 생활인이 되어야 했다. 책과 기타 대신 손에는 아이 우유병 닦는 솔을 들었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짧다할 수 없는 결혼 15년. 불을 켜서 비로소 등경 위에 두는 자리로 옮겨온 남편의 여정이 아니었나싶다. 등불을 밝혀 자꾸만 그릇으로 덮어두려 했던 남편, 아니 기름도 심지도 다 준비되었는데 불을 켜지 않으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결혼 6년 차에 신대원에 들어간 이후로 남편은 정말 자기의 빛을 밝히고 태우고 등경 위에 두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감사하다.



그러다보니 남편도 어느덧 중년이다. 이 교회로 옮겨온 지 3년 째인데, 정말 열심히 배우고 쉴 틈 없이 일하고 있다. 그런 남편에게 문득 그의 20대를 떠올리게 하고 싶어졌다. 아직 어떤 역할의 옷도 입지 않았던 그때, 그때의 자신을 가끔씩 돌이켜보면 어떨까 싶어서인 것 같다. 나와 정식으로 교제한 이후로 그는 단 한 곡의 노래도 짓지 못했다. 시평론 하시는 김동원 선생님은 시가 나오기 어려울 거라고 평하신다. 시인은 배가 고프고 사랑이 고파야하는데 JP는 배가 불렀단 말씀. ㅎㅎㅎㅎ 100% 공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그 시절 감성을 가끔씩 꺼내보며 할 수 있다면 다시 노래도 지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목사, 팀장, 이런 역할에 충실하되 언제든 그 역할로부터 자신을 분리해낼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거금을 투자해서 뽀대나는 기타를 선물로 안긴 것에 대한 변이다. 서프라이즈로 선사하고 싶었고, 또 도움을 받을 분이 딱 옆에 계셨었는데..... 전문가께서 기타는 칠 사람이 직접 잡아봐야한다 하셨다. 친절한 전문가께서 좋은 기타샵 소개 해주시고 미리 가 몇 개를 봐두시고,  내가 남편을 뫼시고 샵에 갔다. 네 대의 기타를 놓고 신중하게 고르는데.... 제일 마음에 든다며 고른 기타 소리를 듣고 웃음이 빵 터졌다. 기타 소리가 어쩌면 그렇게도 김종필스러운지..... 무겁고, 담백하고, 징징거리지 않는 진중함. ㅎㅎㅎ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다른 기타를 선택했다. 화려하고 찰랑거리는 소리의 기타였다. 처음엔 그래서 싫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선택하겠단다. 이제껏 좋아하던 소리 대신 새로운 소리에 마음을 열겠다는 뜻이었다. 이 말이 참 반갑게 느껴진다. 저녁에 남편이 기타치는 일이 많아졌다. 가끔 남편 옆에 나도 기타를 들고 앉아 배우기도 하고 어설픈 실력으로 함께 연주하고 노래도 한다. 우리의 나머지 나날들이 따로 또 같이 착한 발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역할, 명성, 힘, 지위,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등에 마음을 빼앗겨 '진정한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우리 자신의 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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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은 결혼 15주년 기념일이다.
오늘처럼 햇살이 맑고 투명한 날이었다.
기온은 오늘보다 낮았었을 것이다.
결혼식과 짧은 피로연을 마치고 양평 힐하우스로 가던 그 드라이브길을 잊지 못한다.
내 인생 가장 행복한 한 장면 탑 파이브 안에 드는 장면이다.

기념일, 생일 같은 것들을 피차에 꼼꼼하게 챙기는 편이 아니다.
대체로 둘 다 덤덤하게 몇 년 지내다가, 
한 번씩  내게서 여성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해에는 괜한 트집과 삐짐으로 남편 목을 조른다. 남편은 단지 男편된 죄로 엄청 미안해 하면서
꽃다발에 화장품 같은 선물을 뒤늦게 안기기도 했었다.


두어 달 [육아]책 원고를 정리해서 5월 1일에 넘겼다.
막바지에는 세월호와 함께 하는 작업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고 좀 보다 뉴스보다 한바탕 울고, 흐릿해진 눈으로 다시 원고 보고......
현승이를 낳고 채윤이가 사춘기로 떠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엮는데,
이 녀석들 이렇게 귀여웠구나! 싶어 미소 짓다가,
진도항에서 피눈물 흘리는 엄마들도 다들 이렇게 키웠을텐데,
그렇게 키우기까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울고 웃는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을텐데,
생각의 끝이 자꾸 여기로 가서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세월호 여파인지,
15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무게감과 진지함인지,
결혼 기념일이 차분한 특별함으로 마음에 새겨진다.
남편 생일까지 겹쳐서 오래 준비한 야심찬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마음은 무섭도록 덤덤하니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웃음기 없는 15주년 기념일이 지나갈 뻔 했는데,
티슈남 현승이가 재롱둥이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어제 학교 가면서 돈통(용돈을 깨알같이 모으는 통인데, 집안에서 현금보유율 가장 높은 부자다) 을 뒤적거리며 돈을 챙겨나가는 것 같았다.
저녁에 만났는데 방에서 뭘 하나 숨겨서 나오는데 저처럼 작고 귀여운 케잌이었다.
제과점에 갔는데 돈이 부족한 것 같아서 보다가 집에 다시 와서 돈을 가져갔단다.
다시 갔는데 주인 아줌마가 어떻에 알아채고 '너 돈 부족해서 다시 갔다왔니?' 웃으면서 피자빵을 챙겨줬는데 피자빵이 진짜 맛있다고 했다.
덕분에 웃었고, 덕분에 잠시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았다.




10여 년, 육아기를 정리해서 책이 나올 예정이다.
책을 한 권 내는 것의 무게를 이제야 깨달아가는 중이다.
어떤 책이든 내놓은 것은, 책임감이고 부끄러움이고, 무엇보다 위험함이라는 것을.


다만 결혼 15주년,

신혼의 알콩달콩함도 지나고,
육아를 위한 전쟁같은 시간도 지나고,
소명을 찾기 위해서 터널과 오솔길과 징검다리 없는 개울을 건너는 시간도 지나면서
인생의 한 챕터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책을 내는 저자로서 지극히 이기적인 의미부여라 민망한 마음 없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그랬다.
우리 인생에 훅 들어왔다 하나 씩 훅 빠져 나가는 아이들을 더욱 떠나보낼 준비,
더욱 신뢰하여 고마움 가득 안고 살아갈 머지 않은 미래, 노년을 살아갈 준비,
그런 준비를 해야할 때가 오는구나.
이렇게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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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단지 명석함이나
해박한 상식이나
능란한 처세술이 아닌
지혜를 원합니다


지혜

당신으로부터 오는 지혜
첫 자리에 놓아야 할 것을 첫 자리에 놓는
참으로 지닐 만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싸울 수 있는
나날이 겪어야 하는 사소한 일들에 매이지 않고
저 너머를 응시하는
분별있는 정신과 솔직한 마음


제 정신의 범위와

제 마음의 끝없는 지평선이 닿는 것이 어디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당신이 저를 지으셨기에

은연 중에
제가 찾고 있는 분은 당신
저를 가르치고 이끌 수 있는 이는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의 빛으로

제 정신과 마음을 밝혀주십시오
바르게 보고
현명하게 판단하며
분별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오만함과

완고한 마음을 지니지 않게 해 주시고
감추어진 위험으로부터
음모를 꾸미는 적으로부터
저 자신의 미망으로부터
저를 보호해 주십시오
진리에 눈뜨게 해 주시십시오
충고를 쾌히 받아들이며
잘못을 고쳐나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주십시오


저 자신의 열정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 주시고

아첨이나 거짓에 놀아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바로 여기

지금 이 시간에
당신의 무한한 지혜가 저를 휘감아
지혜와 굳셈을 지닌 자 되게 해 주십시오


제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제가 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여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십시오

 


몇 년째 사순절 기간마다 남다른 마음의 여정을 걷게 되는,  
다시 신비의 사순절을 사는 남편 김종필을 응원하며 지은 시가 아니고  베낀 시.
이 몇 년째 사순절 여정의 끝에선
죽음 너머의 생명,
어두움 너머의 빛을 가슴으로 만났습니다.
당신이 그러했고, 그런 당신을 지켜보며 나 역시 그러햇습니다.


당신 자신의 열정의 노예가 아니라
당신 안에 이미 빛과 지혜로 살아계신 그분 앞에 무력해짐으로 얻는 참된 지혜
그 지혜를 발견해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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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뫄,
짖꾸져.
김팀장님.


"여보,
나 부활주일까지 집에 없다고 생각해.
나 천안 신대원에 있다고 생각해.
알았지?"


주말부부의 삶을 방불케 하는 중년부부의 애정 확인법.
이런 고품격 초딩 문자놀이면 난 남편의 애정이 온몸으로 와닿더만....
어머, 로맨틱해! 김팀장님, 매력 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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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어머님 생신이 있다.
지난 토요일 저녁 앞당겨 가족들이 모여 식사하고 축하해드렸다.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어머니 생신날에 낮에 가서 점심 사드리고 함께 시간 보내고 올까 봐.
했더니,
채윤, 현승 둘이 입을 모아서 저녁에 다 같이 가서 케이크를 다시 한 번 하잖다.
생신날에 혼자 계시면 얼마나 쓸쓸하시겠느냐면서 다같이 가야 한단다.
아빠가 시간도 안 되고, 평일이라 학교 갔다 오면 늦는다고 했더니
그래도 갈 수 있다며 이러쿵저러쿵 같이 가야 할 이유를 댔다.
아빠가 바쁘면 아빠 빼놓고 셋이서만 가자면서 결정적으로 현승이가.


엄마, 한 번 생각을 해봐.
엄마가 이다음에 늙은 다음을 생각해 보라구.
자, 엄마가 늙었어. 그리고 아빠는 죽고 엄마가 혼자 있어.
그리고 생일날이 됐어.
혼자 쓸쓸하게 있어야 돼.
그런데 내 색시가 애들을 데리고 축하하러 왔어.
좋겠어, 안 좋겠어.

(음..... 좋겠어. 좋겠네. 뭐)


이런 아이들에게 고맙다.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 하라는 게 부모 마음이고,
나는 옆걸음질 쳐도 너는 앞을 향해 걸으라는 엄마 게의 마음도 같은 것이다.
고부관계의 어려움은 차치하고라도
상처 많은 세월을 살아오신 탓에 잘 섬기고 들어드리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어머님을,
내게는 맑고 투명한 마음으로 진심을 전하기가 어려운 어머님을,
아이들이 이렇게 천진하게 사랑하고 있으니 고맙다.
나는 바담풍 하는데 바람풍 해주는 느낌이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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