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풀타임 목회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커피와 사귀게 되었다. 청년부 예배 전에 예배당 입구에서 작은 카페를 시작했고, 핸드드립에 입문했고, 결국 바리스타 공부를 하고 홈로스팅을 하기까지.  그러다 정말 카페를 하면 어떨까 하는 꿈을 꾸며 '카페 나우웬'이란 이름을 지어 놓았다. 바리스타 꿈나무는 월요일마다 남편 손을 잡고 카페 탐방을 다녔다. 'Sabbath diary' 라는 근사한 이름의 시리즈물은 카페 탐방기에서 시작하였다. 어쨌거나 월요일은 나도 남편도 하던 모든 일을 손에서 딱 놓고, 시간을 뚝 끊어내어 서로에게, 그리고 각자 자신에게 내어주는 날이다. 등산을 하거나 느리게 걷거나, 그저 숲에 가서 앉아 있거나 뭘하든 커피는 빠지지 않는다. 결국 커피 한 잔으로 월요일 데이트에 마침표를 찍곤 한다.

 

 


비가 내리던 지난 월요일에는 남산 드라이브를 했다. 동네에서 점심을 먹고(여기서 동네란 명일동, 고덕동, 하남시 창우동, 흑석동 할 때의 동네가 아니다. 동네에서 밥을 먹었다는 건 우리 동네, 즉 홍대에서 밥을 먹었단 얘기. 캬캬) 무작정 남산으로 갔다. 드라이브 코스를 잘 몰라서 발길 아니고 자동차 바퀴길 닿는대로 돌아다녔다. 조수석에 앉아서 차창 밖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마구잡이 사진찍는 놀이가 재미 있었다. 운전자는 그만 좀 하라고 짜증이었지만 아주 그냥 재밌어서 한참을 놀았다. 비에 젖은 남산길을 목적도 없이 돌아댕기는 것이 참 좋았다. 벅스에 접속해서 '비'를 소재로 한 온갖 노래를 다 찾아 들었다. 비처럼 음악처처럼, 겨울비, 혼자 있는 밤 비는 내리고, 비오는 날의 수채화,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빗속의 여인...... 결국 렛잇비까지.


갑자기 딴 얘긴데, 매주 수요일에 꿈 공부를 하러 간다. 공부라고 하지만 꿈을 수단으로 하는 집단상담에 가깝다. 융의 분석심리에 기초해서 꿈을 나누고 대놓고 투사하는 '꿈 작업'이란 것을 한다. 내 연배의 어떤 여자분이 꿈을 내놓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너무 예쁜 프랑스풍의 소품들로 꾸며진 카페 앞에서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고 구경만 하더란다. 이렇게 예쁜 카페를 텅 비워놓고 왜 사람들이 들어가질 않지? 하며 들어가려는데  같이 있던 사람이 다음에 오자고 했단다. 몹시 아쉬웠단다. 여차 여차 자기 집에 갔는데 자기 집이 아파트 옥상에 있고 공사 중인 집이었다.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뱅뱅 돌다가 나무로 된 허술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남편을 만나 짐을 모두 맡기고 혼자 어딜 갔다는 얘기다.  꿈이 나오면 꿈에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얘기했다. 착하고 성실하고 희생적이란다. 게다가 직업이 의사여서 당연 재력이 있다. 어떻게 희생적인가 하면 본인은 골프를 좋아해도 잘 누리지 않고, 아내나 아이들은 하고 싶은 무엇이든 하도록 한단다. (대박!) 나랑 비슷한 연밴데 이미 막내까지 대학에 보냈고, 예쁜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길 좋아한다. 이건 정말 40대 아니 40대 뿐이랴? 모든 여자들의 로망 아닌가. 뙇! 내가 결혼을 통해서 이루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런 건데 말이다. 결혼으로 계급상승의 꿈을 이뤘어야 하는데. 인생 한 방인데! (여보, 보고 있어? 히히) 게다가 이분은 당일 꿈모임 마치고 바로 크로아티아, '꽃보다 누나'에서 나온 그 코스 그대로 여행을 간단다. 완벽하다!


그런데 꿈 얘길 듣다 웃음이 픽 나왔다. 전전 날에 남산 드라이브 생각이 나서이다.  남산에 근사한 카페가 많다니 커피 한 잔으로 드라이브를 마무리 하기로 했다. 창이 넓은 카페에 가서 비구경 하며 커피 마시면 딱 좋은 날이었으니까.  검색으로 둘이 함께 끌리는 카페를 찾았다. 네비를 찍고 가는 동안 블로거들의 카페 탐방 후기를 읽고 있는데 오메, 커피값이 만 원. 놀라서 고개를 드니 카페 앞에 도착. 일말의 미련없이 '여보,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커피 마시자' 차를 돌렸다. 이 생각이 딱 났다. 그리고 얘기했다. '저는 꿈 아니고 실제상황인데요, 그저께 카페 앞에서 바라보다 왔어요' 하고 그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렇게 투사를 했다 '내 꿈이라면 카페는 잘 꾸며져 있고,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사는 곳은 아니니까 바라보다 돌아와도 괜찮다. 그래봐야 카페고, 정작 사는 곳은 집이니까. 그저께의 제 경험과 더불어 선생님의 꿈이 제게 말하네요' 아, 정말 그렇다.


집단상담의 좋은 점은 괜히 좋거나, 괜히 싫은 사람이 꼭 있게 마련이고 내 안의 무엇이 투사되어 괜한 감정이 드는지를 보면서 알게 되는 내가 있다는 것이다. 꿈 얘길 듣다보니 꽃보다 언니가 좀 얄미워졌다.  너무 부러우니까. 모든 걸 다 갖추고 누리는 여자가 마음공부까지 열심히 하는 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 그리고 크로아티아에 간다니. 부러워서 괜히 싫었던 내 마음이 보여서 속으로 웃음이 났다. 누구에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어떤 사람은 바라만보고 들어가지 못하기도 하는 곳이 고급 레스토랑이고 비싼 카페이다.  꿈에서 집은 보통 '자아'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녀의 꿈에서 집이 아파트 옥상에 있는 공사중이었다. 외적으로 무엇을 누리든지 자아의 모습은 그렇다는 얘기다. 내 꿈에서 집이 나와도 늘 허술하고 누추하고 그렇다. 우리의 내면은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조금씩 누추하고 여전히 지어져가야 하고....  실은 우리가 타인의 삶을 피상적으로 바라볼 때는 예쁘게 꾸며놓은 카페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포장해 보여주려는 것이 보이고, 잠시 바라볼 때는 그 앞에 선 나만 누추한 것 같다. 문제는 카페는 잠시 머물러 커피 한 잔 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집을 카페처럼 꾸밀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카페처럼 늘 환상적일 수 없다. 예외없이 일상이란누추하고 공사중이고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는 그런 나날의 연속이다.


화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이 옆에 없다. 새벽기도에 간 것이고 마치고 바로 회의가 있기 때문에 이미 출근한 것이 된다. 그리고 또 밤 11시가 다 돼야 얼굴을 보게 된다. 화요일 아침이 내겐 월요일 같다. 남편 없이 아이들 각각 학교 보내는 마음이 많이 허전하다. 이렇게 또 일주일을 살아야 하는구나, 싶으면 더욱 그렇다. 월요일에 함께 누린 시간 때문이기도 하고, 진짜 살아내야 할 나날은 주로 화수목금토일이기 때문이다. 머리 쥐어 뜯으며 원고를 쓰고, 채윤이랑 싸우고, 시어머니로 고민하고, 이런 저런 걱정에 휩싸여 두려워 하고..... 산다는 건 이런 것이다. 카페는 사는 곳이 아니다. 지지고 볶고 사는 곳은 집이다. 하루 이틀 청소기 돌리지 않으면 바닥이 버석거리고, 세탁기 돌리는 게 좀 늦으면 샤워하고난 현승이가 수건 없다고 엄마를 고래고래 부르는 그런 곳. 조금만 정줄 놓으면 집구석이 난리가 난다. 카페처럼 그렇게 늘 예쁠 수가 없다.  남의 꿈으로 내게 온 통찰이 크다. 고귀한 시간낭비인 예배, 일부러 일상에서 한 발 물러서는 월요일 안식 데이트, 피정 같은 것들은 내 집 아닌 카페를 누림이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너나 나나 조금씩 여유롭게 보이지만 각자 책임져야 할 일, 풀어야 할 갈등, 보이지 않는 짐을 지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 져줄 수 없는 자기의 몫이 있어서 더 무거운 짐이다. 그걸 묵묵히 잘 지고 가며 마음의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 삶이고, 마음의 여정이고 신앙의 성숙이다.


남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숙대 근처를 지나며 두 마리 참새는 '카페 마다가스카르'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했다. 잠시 들어가서 커피 한 잔 하며 지친 날개를 쉬었다. 그러고보면 나도 커피값이 5000원 이하인 카페는 고민없이 드나드는 편이다. 된장질도 한다면 하는 편이지. 글치. 부러워서 얄미웠던 크로아티아 아줌마에 대한 투사는 거둬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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