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SS는 우리 부부를 이르는 조금은 공적인 호칭이다. 오래 전 [복음과 상황] 편집장이시, 당시 우리 부부의 목자(? 그런게 있다)이기도 하셨던 (채윤이 발음으로) 쉐석 목짠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싸이클럽에서 댓글 농담 따먹기 놀이하다 지어진 이름인데 필명이 되었다. 그 필명으로 쓰던 글이 신혼일기였고 알콩달콩을 빙자한 좌충우돌이었으나 결국 이름에 남은 이미지는 달달함이다. 그리하여 누군가 JP와 SS라고 불러주었을 때, 우린 그에게로 가서 사이좋은 부부의 표상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단지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그 어떤 일에 실패하더라도 서로 사랑하는 일, 한몸 이루라는 사랑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만큼은 지켜내자' 약속하며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 약속 지키려 애쓰던 시간은 고맙게도 좋은 부부관계 이전에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단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보편 사랑을 배우는 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충분히 성장했고 충분히 큰 사랑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랜 친구와 부부관계에 대해 농담처럼 주고 받는 말이다. '우씨, 가만히 두면 그대로 유지나 하고 있지. 가만히 두면 꼭 퇴보하고 문제가 생겨' 부부가 아니라도 관계라는 것이 그렇다. 이만하면 됐지, 하면서 손을 놓으면 어느 새 누런 잎이 생기고 말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만하면 됐다, 는 없다. 중년으로 접어들며 둘 다 배둘레햄이 두꺼워지고 마음의 내장지방도 꽤 쌓여서 덤덤하며 동시에 느긋해졌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그러나 밧뜨, 결혼 20년을 바라보는 중견부부가 되었다고 햇빛과 물과 공기가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생애 전환기를 맞아 다시금 보듬고 잎에 쌓인 먼지를 닦아줘야 하는 시절인지 모르겠다.

 

아빠와 아들이 함께 하기로 한 지리산 산행을 준비하는 것 때문이었던가. 아니 그 전에 자전거 타다 넘어져 다쳐 손가락이 아픈데 따뜻한 걱정을 안 해줘셔였던가. 흠, 분명 뭔가 더 심각한 일이 많았다! 늘 그렇듯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흔들어 놓는다. 그렇다. 그는 나무, 나는 바람. (내가 먼저 시비를 걸고 흔들었다. 뭐) 둘이 합하면 바람 잘 날 없는 나무. 생각보다 불편한 시간이 길었다. 또 늘 그렇듯 '흥, 결코 대화하지 않겠어! 일단 기도를 하지 말아야지. 기도하면 남편을 용서하게 되니까 최대한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해' 마음의 길은 '삐뚤 길'로 달려간다. 각본상 그리 되면 애써 시도하는 대화는 늘 더 큰 상처를 남기고 결렬되고 만다. '당신 꼭 ㅇㅇㅇ 같아' 치명적인 무기도 썼다. 피를 철철 흘리던 남편의 반격도 이어졌다. '꼭 답답하고 말이 안 통하기가 ㅇㅇㅇ 같아' 헉! 중상. 위생병, 위생벼어~엉!!!! 여름 휴가며, 간만의 부부 피정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남편 번호의 애칭을 바꿨다. 애칭에서 이름으로 바꿨다. 그래, 당신은 이제부터 '그냥 김종필이다. 흥, 칫, 피!' 그런데 이게 답이었다. 사랑의 빛을 잃은 깜깜한 동굴 속에 비친 한 줄 가이드 라인이었다. 김종필을 그냥 김종필로 보고 나는 정신실이 되는 것. 기도하지 않겠다 결심해도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가 이기기도 한다. 기도 속에서, 성경말씀 속에서, 슬픔에 지쳐 잠든 꿈 속에서 '김종필을 김종필 되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울린다. 더불어 그를 두고 세속적 욕망과 사랑이 뒤엉켜 버린 내 마음도 조금씩 보인다. 한몸 이룬 우리는 늘 또 분리되어 독립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이며 둘인 그 긴장을 살아야 한다. 그 아슬아슬한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둘이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사랑의 묘미이다. 머리로 알던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몸을 배우기란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차거운 분노로 냉랭했던 서너 주가 지나갔다. 둘이 대화했고, 각자 자신을 돌아보았고, 기다렸고, 아파했다. 그러고 보니 무엇보다 그 사이 좋은 벗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오랜 알아온 부부, 처음으로 만나는 부부, 연배가 높으신 어르신 부부, 생각과 마음이 딱딱 맞는 부부. 각각의 만남이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었고 함께함으로 오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마음으로 흘러 들었다. 휴대폰의 남편 이름을 새로 저장했다. 오글지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였다.  휴가 마지막 날 남편은 혼자 천안의 신대원에 다녀왔다. 3년 동안 행복하게 공부했던 도서관 자리에 앉아 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그리고 구입한 책이라며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책 제목으로 추정해본, 부부가 세트로 앓은 홍역에 대한 남편의 처방은 이것이다. '내 가장 중요한 소명이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며 그것은 좋은 아버지로 사는 일상 속에서 뿌리 내리는 것이다. 삶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심플하게 지금 여기를 살겠다. 자, 이제 그런 의미로 2학기 구역성경 공부 본문인 요한계시록 연구에 매진!'

 

 

 

 

결혼학교 강의 준비로 다시 꺼내 읽는 래리크랩의 <결혼 건축가> 일부분이다. 주례사를 듣는 느낌으로 옮겨 적으며 고해성사를 마친다.

 

"남편과 아내는 결혼을 한사람의 다른 인격을 톡특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섬길 수 있는 기회, 즉 배우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고 중요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더욱 온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서 내가 하나님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야 합니다"

 

 

 

 

 

 

 

 

 

엄마, 나 요즘 들어 아빠가 너무 좋아져. 그런 거 같지 않아?

요즘 아빠한테 짜증도 안 내잖아. 아빠가 말장난해도 짜증 안 내지?

 

그러네.

 

오늘도 아빠랑 영화 봐야~아지.

 

안 돼.

 

왜애? 오늘은 헝거 게임 투 볼 거야.

 

안 돼. 오늘은 엄마랑 아빠랑 놀 거야. 요즘 아빠 퇴근하면 계속 너랑 놀았잖아.

 

두 번밖에 안 놀았다고~오. 캐치볼 한 번 하고, 영화 한 번 보고.

 

당연하지. 아빠가 요즘 일찍 퇴근한 게 딱 두 번인데. 오늘은 엄마가 아빠랑 놀 거야.

 

치사해! 엄마랑 아빠는 매일 매일 같이 놀잖아.

 

뭐가 매일 놀아?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엄마 요즘 아빠랑 얘기도 못 했어. 오늘은 엄마가 아빠랑 놀 거야.

 

치사해! 진짜 치사해! 엄마랑 아빠는 평생 같이 놀 거잖아.

나는 조금밖에 못 놀고. 치사해!

 

넌 누나랑 놀아. 아, 누나가 못 놀지.

 

누나는 나랑 놀 시간도 없고. 시간이 있어도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췟!

 

너는 하루 종일 한강에서 놀고 자전거 타고 월드컵 공원 가서 또 놀고 그랬잖아.

 

그래도 아빠랑은 안 놀았잖아. 진짜 치사해. 어른이라고 마음대로 하고.

 

(풉) 우헤헤헤헤..... 놀아라, 놀아. 남자끼리 놀아라. 임뫄!

 

 

 

# 어쩌다 JP 인기가 이렇게 좋아졌지? 우리 집 인기투표 등수 4위였는데.... 뭐지?

  암튼 사진의 느낌을 봐라 임뫄. 아빠가 니꺼냐 내꺼냐?

  나 이거 참. 한 때 딸내미 하고 아빠를 두고 경쟁한 적은 있으나,

  그건 뭐 심리학계에서 인정하는 일렉트라 콤플렉스라고 치자.

  내가 이제 와서 사춘기 앞 둔 너하고 아빠 쟁탈전을 해야 한다 말이냐?

  그것도 임뫄, 진짜 자존심 상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너 한 때 엄마 중독자였었잖아!!!!!!!!!! ㅜㅜㅜㅜㅜㅜ

 

 

 

 

 

 

 

 

 

 

 

 

 

월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한 남편과 드디어 <윈터슬립>을 보았다. 3시간 16분의 런닝타임도 잘 견뎠다. 물도 커피도 마시지 않으니 인터미션이 필요하지 않았다. 끝나고 배가 무지하게 고팠고 식당을 찾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앗, 저기 들어갈 걸, 검색해봐, 뭐 없어, 저긴 비쌀 것 같아, 주차할 곳이 없잖아, 이러다 괜히 서로 감정이 틀어질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골든타임 안에 식당을 정하고 들어가 앉을 수 있었다. 테이블 옆 서랍에서 수저를 꺼내면서 남편이 무심하게 '정신실 뇌관 건드리기' 놀이를 시작했다.

 

- 이제 속셈을 말해 봐. 영화 주인공이 나랑 닮았어?

- 뭐라? 속셈? 속셈이라니!! 난 진짜 영화가 너무 좋아서 같이 보자는 거였어. 당신 내가 그런 뜻으로 영화보자고 했는 줄 알아? 당신을 닮긴 뭘 당신을 닮아. 오히려 나를 닮았지.

- 나는 그런 줄 알았지. 그런데 무슨 당신을 닮아? 어떤 점이 당신을 닮았어?

- 지역신문에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 알량한 글 써놓고 자뻑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 아냐,  당신보단 나랑 비슷하지. 책이나 글에 빠져서 합리적인 척하고. 집세를 받고 이러는 일에서는 다른 사람 시키고 거리두고. 

- 내가 이 영화가 좋다고 한 건 바로 그것 때문이야. 누구라도 주인공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어.

- 하긴, 등장인물 셋이 다 그렇지 않아? 

- 그래. 영화에 제대로 된 사람이 없지? 그래서 현실 같지?

 

(벌컥!)

 

- 그런데 당신 내가 무슨 속셈이 있대. 내가 뭐 당신을 그렇게 통제하고 다루는 사람이야?

물론 지난 번 <Her>를 보고 당신과 닮았다과 많이 쪼았지. 인정해. 

그런데 진짜 이번엔 다른 뜻 없었어. 당신이 갑바도기아 갔다 왔고, 그 배경으로 찍은 좋은 영화를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이렇게 생각했다규! 속셈이라니.... 속셈이라니.....

 

- 그건 농담한 거야. 영화에서 니할이 계속 '속셈을 말해보라'해서 따라한 거야. 밥 먹어. 

 

(그렇게 일단락)

 

다음 날 저녁 남편의 카톡으로 '속셈'과 일대일 대응되는 사건 발생. 어이없음으로 시작하여 삐짐을 경유한 분노가 재점화되었다. 아, 내가 말했던가? 실은 내가 분노중독자라고.

 

 

 

 

뭐라? 걱정 마?

내가 무슨 걱정을 한다고라?

분명 오늘 아침에 당신 아들 현승에게 당신 입으로 니가 약속하셨잖아요?

당신이 강변을 나가거나 안 나가거나 내가 무슨 걱정이래요? 당신 나한테 왜 이래?

나 그렇게 나쁜 여자 아니야. 내가 언제 당신 때렸나, 생각해 보고 있음. 어이 엄슴.

 

내 뇌관을 건드린 '속셈'과 '걱정 마'에 대단한 뜻이 담기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그럴 것이다. 그야말로 속셈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괜시리 제 발 저린 내가 분노의 화살을 남편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럴 땐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윈터슬립>에서 네즐라가 주인공 아이딘에게 쏘아붙인 명대사가 답이다. "오빠 문제가 뭔지 알아? 고통 받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속이는 거야" 내 뜻이 남편 뜻이 되기를, 남편 마음이 내 맘 같기를 바라며 은근히 통제하는 나. 남편 말과 행동 뒤의 동기를 다 아는 것처럼 단정 짓고 비난하는 나. 실은 내가 이러는 줄 알기에 남편이 이렇게 느낄가봐 두려워 늘 선제공격이다. (앗, 고백하고 말았어ㅜㅜ) 영화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의 공통점은 '모두 실제의 자기보다 자기가 더 괜찮은 인간'이라 믿고 싶어 자기 감옥에 갇혔다는 것이다. 물론 특별히 나쁜 사람은 없다. 나도 특별히 나쁘지는 않다. 남편도 속셈을 가지고 말한 게 아니 듯.

 

여기까지 생각이 미쳐서 회개와 근신의 마음이었는데, 때마침 읽은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책의 다음 글귀가 확인사살 해주신다.

 

"만족의 현실주의(Realismus der Bescheidung)가 의미하는 것은 상대에게 쉼 없이 새로운 요구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만족하는 일, 또 그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는 일이다. 이러한 만족은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에 대한 존중, 상대가 주는 가치에 대한 인정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안식을 누리지 못하며, 상대에게도 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에 만족할 때만 우리는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아, 눼에! 신부님, 성령님, 예수님, 하나님. 잘 알아 들었습니다. 깊이 반성할테니 이런 깨달음 제게만 주시지 말고 부디 남편에게도 깊은 깨달음 주옵소서!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Sabbath diary19_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4) 2015.09.01
니꺼 내꺼 내꺼 니꺼  (2) 2015.06.13
Sabbath diary17_좋은 때다  (6) 2015.06.02
남자들의 커피 토이  (2) 2015.05.14
JP&SS Forever  (10) 2015.05.01

 

 

성지순례에서 몸땡이가 돌아온 지는 한참 됐지만

이제야 몸과 마음과 영혼의 여독이 제대로 풀려 일상 순례자의 자리로 돌아온 남편. 

모처럼 둘이 월요 피정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점심 맛있게 먹고 조수석에 앉아 있으니 잠이 솔솔온다.

'이제 일어나라. 바다도 보이는데'

강화도 뻘 바다에 도착.

 

 

 

 

더럽기로 소문난 동막해수욕장 모래사장에 앉으니,

과연 바닷물은 진흙탕이었더라.

 

 

 

 

맨발로 갯벌에 들어간 저 연인은

나 잡아봐라, 해가며

화보 찍어가며.....

 

어허, 좋은 때다!

 

 

 

야, 햇살은 따겁다만 글드라도 바다에 풍덩할 날씨는 아닌데.

저 젊은이들 패기보소!

 

허허, 참 좋은 때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 하나, 뱃속에 꿈틀꿈틀 아기 하나.

그렇게 데리고 소풍다니던 때가 우리도 있었지.

언제 키우나, 언제 키우나 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할 행복한 순간인 걸 저 젊은 부부는 알랑가 몰라.

 

참, 좋은 때다!

 

 

 

 

두 분 노시는 게 로맨틱하기로는  현재 해변에서 으뜸이십니다.

신발 벗고 갯벌 걸어다니는 거, 그거 사랑 아냐~

화보 촬영은 저 위 젊은이들이 아니라

'당신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흡사 정사장님과 앙대요 여사님 분위기의 이분들이시네.

 

우야튼, 좋은 때이십니다! 

 

 

 

 

저~어 멀리부터 한 몸을 이루어 걸어오시기에,

'저기 봐. 좋은 때다 5 등장!' 하고 봤더니,

오메 죄송합니다. 쟤네들 아니고 저분들이셨음.

 

차~암, 좋은 때이십다!

 

 

 

 

당신 올해 몇이지?

어이구, 몇 년만 있으면 오십이네!

당신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실없는 농담에 묻어 나온다.

마음이 갑자기 막막하고 아득해진다.

 

돌아오는 차 안에선 김동률이 노래를 불러준다. <감사>

 

눈부신 햇살이 오늘도 나를 감싸며

살아있음을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부족한 내 마음이 누구에게 힘이 될줄은

그것만으로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그 누구에게도 내 사람이란게 부끄럽지 않게 날 사랑할게요

단 한 순간에도 나의 사람이란 걸 후회하지 않도록 그댈 사랑할게요

 

이제야 나 태어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요

그대를 만나 죽도록 사랑하는게

누군가 주신 나의 행복이죠

 

 

우리도 참 좋은 때다!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니꺼 내꺼 내꺼 니꺼  (2) 2015.06.13
Sabbath diary18_영화가 나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2) 2015.06.11
남자들의 커피 토이  (2) 2015.05.14
JP&SS Forever  (10) 2015.05.01
피구왕 토킹  (4) 2015.03.27

 

 

 

강의하고 선사받은 커피 드립계의 아이돌 '에어로프레스' 입니다.

오, 다시 한 번 커피의 신세계를 만납니다.

광고에 나와 있는대로 에스프레소와 핸드드립 사이,

그 둘 사이의 화평한 조우입니다.

 

 

 

 

아, 그런데 이게 남자들의 커피 토이라네요.

아닌 게 아니라 에어를 프레스 해야 하는 토이이다 보니까 힘이 필요하네요.

살살 원두를 달래며 물을 따라주는 핸드드립과 달리 프레~~~에쓰 드립입니다.

잘 됐죠.

착한데다 가사에 대한 마음은 충천하지만 주방 관련 업무에 너무 소원해서,

미역국을 고추가루 풀어서 끓인다고 해도 믿는 사람이 남편 김종필 님인데요.

남자의 커피 토이를 집에 들였으니 이 기회에 커피를 빌미 삼아 주방으로 끌어들여야죠. 

저러고 커피도구를 놓고도 일단 생각부터 해야죠.

(물론 그전에 메뉴얼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필수) 

 

 

 

이렇게 모닝커피 내리는 것을 그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 로망이 이루어지려나 봅니다.

아침햇살로 가득 찬 침실.

미인은 잠꾸러기니까 난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여 내 잠을 깨울까 조용종용 움직이며 커피를 내린 그가 커피향으로 나를 깨웁니다.

뚜둡뚭뚜 뚜둡뚭뚜......

(물론 관건은 어떻게 그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게 만드냐는 건데....)

 

 

 

 

며칠 호사를 누렸습니다.

아침 먹고

"여보, 커피 마시자" 이러면 커피가 나오더라구요. 오메.

 

 

 

 

 

며칠 호사를 누렸는데......

커피 내려주던 그 님은 먼 곳에.....

커피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나라 터키에 커피순례....

아니 성지순례, 성지순례 가셨습니다.

 

(내가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 요즘 왜 이리 맛이 없지?)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Sabbath diary18_영화가 나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2) 2015.06.11
Sabbath diary17_좋은 때다  (6) 2015.06.02
JP&SS Forever  (10) 2015.05.01
피구왕 토킹  (4) 2015.03.27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우니  (2) 2015.03.11

 

 

 

 

16년 동안 딸노릇을 연구하신 딸노릇의 달인 '장손 김채윤' 선생의 작품 되겠습니다.

중간고사 기간, 새벽 두 시까지 벼락치기 열공 투혼을 불사하셨던 딸입니다.

시험 마지막날에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축하를 위해 손수 만드셨습니다.

케잌 망가질까봐 홍대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도보 투혼까지!

요즘 하여튼 이래저래 혼을 불사르고 있는 김채윤입니다.

 

 

 

 

 

여자 심장 쫄깃하게 하는 이벤트 같은 것엔소질이 없으신 '선수 김종필' 남편께서는

어쩐 일로 퇴근 길에 꽃다발을 준비하셨습니다.

계단에서 아빠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인터폰 카메라로 동태를 확인하던 '깐돌 김현승' 은

"아빠가 손에 뭘 한 가득 들고 온다. 뭔가 대단한 거 같은데'

쇼핑백에 든 것인 꽃다발인 것을 확인하고 급 표정이 심드렁해지셨습니다.

 

선수 김종필 남편이 꽃다발을 들고 엄마 앞에 와 무릎 꿇더니,

"여보,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하자

딸 김채윤 양은

"어머, 어머 멋져. 나 눈물 날 것 같아" 감동하셨습니다.

아빠를 닮아 세상의 모든 오글거리는 것들을 거부하시는 '깐돌 김현승' 아들은

심히 민망해 하며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JP와 SS 사이를 갈라놓겠다는 질투심 발동으로

케잌 위 초콜렛 중 S 하나를 낼름 빼냈습니다.

아직 오이디프스 형님의 영향권 벗어나지 못하셨나봅니다.

 

 

JP&SS Forever!

조폭신실은 영원합니다.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Sabbath diary17_좋은 때다  (6) 2015.06.02
남자들의 커피 토이  (2) 2015.05.14
피구왕 토킹  (4) 2015.03.27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우니  (2) 2015.03.11
나는 접때 여수 밤바다  (6) 2015.03.02

 

 

현승 : 아빠, 나 체육시간에 피구했는데 오늘의 히어로에 뽑혔어.

        체육 선생님이 그 시간에 제일 잘 한 사람 한 명씩 뽑아주시거든.

        나 피구 잘해. 공격은 잘 못하는데 수비는 잘 해.

 

아빠 : 아빠는 공격도 잘 하는데.

 

엄마 : 당신 피구할 때 상대방이 공 갖고 있으면 맨 앞에서 잡으려고 손 뻗치고 있고 그런 애지?

         어우, 나는 그런 애들이 제일 무서워. 아니 공을 피해야지 왜 잡을려고 해. 

         공 딱 잡고 둘러보고 있으면 더 무서워. 어디로 던질지 모르거든.

         여자 애들도 그렇게 잘하는 애들 있어.

 

아빠 : 핸드볼 했잖아. 따~악 잡아서 따~악 던지는 거지.

        

엄마 : 아, 그 공 맞으면 진짜 아프겠다. ㅎㄷㄷ

 

아빠 : 나는 다칠까봐 위로 안 던져. 꼭 다리로 던져.

 

현승 : 아!  맞어, 맞어. 그러면 바닥에 튀면서 두 명도 잡지?  나도 공격 잘하고 싶다. 

 

엄마 : 나도 오래 살아 남아. 무조건 덩치 큰 애들 뒤에서 숨어 있으면 되거든.

 

아빠 : 뒤에 숨어서 오도방정 떨지?

 

엄마 : ㅋㅋㅋㅋㅋㅋ 어, 당신 같은 애들이 공 잡아서 '돌려 돌려' 소리 지르면 무서워서 정신이 혼미해져.

         막 오도방정 떨다가 정신 차려보면 공 들고 있는 상대편 바로 앞에 서 있는 거야.

         던질 필요도 없이 공으로 터치! 하면 치면 죽는 거지.

 

채윤 : 그럴 필요 없는데. 그냥 공 피해다니지 말고 상대편 서 있는 줄 근처에 서 있어.

        그러면 자기 편인 줄 알고 안 죽여.

 

아빠 : ㅋㅋㅋㅋㅋㅋㅋ 김채윤 너는 하여간. 너는 공 맞고 밖에 나갔다가도 쓰윽 다시 들어올 애야.

 

채윤 : 어! 어떻게 알았어? 나 그러는데.

         아니면 맞았어도 그냥 모른 척하고 막 뛰면 애들이 잘 몰라.

 

현승 : 진짜! 누나는 그렇게 맨날 속인다고오~ 보드게임할 때도 맨날 속여서 짜증난다고.

         속일려면 게임을 왜 해?

 

채윤 : 야, 속이는 게 게임의 재미야. 얘는 뭘 몰라.

 

 

@ 가족의 캐릭터가 살아 나피구왕 토킹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들의 커피 토이  (2) 2015.05.14
JP&SS Forever  (10) 2015.05.01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우니  (2) 2015.03.11
나는 접때 여수 밤바다  (6) 2015.03.02
예수원 가는 길, 아픈 바람  (6) 2015.02.23

# 개그 아님

 

나 오늘 당신 출근할 때 같이 나갈 거야. 나 좀 태워 줘.

왜? 어디가?

병워~언. 건강검진 받는다고 했잖아. 몇 번을 얘기 해.

아, 맞다. 미안 미안. 오후라며?

내가 언제?

어제 당신이 그랬잖아. 오후 네 시경에... 네... 내... 아~아, 네 시가 아니고 내시경 한다고? 아~ 미안 미안. 내시경 한다는 거였어. (수습 수습) 수면 내시경 한다고 했지?

 

(진정성 있고 일관성 있는 사오정 귀, 18년을 살아도 안 질리는 이유)

 

 

 

 

# 나름 개그

 

엄마 : 어, 현승아. 대나무다! 아까 전에 입구에서 가지고 놀았던 긴 나무.

         대나무가 여기 있네.

아빠 : 어, 소나무도 있네.

현승 : 아빠, 나 아까 아빠랑 누나 식당에서 기다릴 때 엄청 기다란 나무 봤다.

         그거 가지고 재밌게 놀았어.

아빠 : (진지하게) 그런데 현승아, 대나무랑 소나무랑 있는데~에.....

현승 : 응. 왜애? 대나무가 왜애?

아빠 : 저기 봐. 대나무랑 소나무랑 있는데 왜 대나무가 소나무보다 작아?

현승 : 어?.................. 아잇, 진짜 아빠 짜증 나.

엄마 : 푸헤헤헤헤헤헤...... JP 사랑해!

 

(내겐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운 JP식 개그, 아들은 매 번 빡쳐도)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JP&SS Forever  (10) 2015.05.01
피구왕 토킹  (4) 2015.03.27
나는 접때 여수 밤바다  (6) 2015.03.02
예수원 가는 길, 아픈 바람  (6) 2015.02.23
미안해서 고마움  (2) 2015.02.06

 

 

 

블로그가 조용해서 궁금하셨을 텐데 전화 한 번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노래를 불러드렸을 텐데요.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고백받을 기회를 놓치셨습니다 들. 

 

 

 

 

하긴 전화 안 하시길 다행입니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는 눈을 씻고 봐도 없습디다.

'이 조명'이 크리스마스 명성교회 앞 전깃줄 칭칭 감은 나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우리 싸람 나무에 전기 옷 입히는 거 싫어한다해.

 

 

 

 

다행인 것은 순천 들러 여수로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몰랐는데 '순천은 도시'가 아니랍니다.

'정원'이랍니다. 순천시장님이 여기저기 써 붙여놓으셨던데요.

 

 

 

 

갈대에 취해서 마냥 걷다 보니 9km를 걸었습니다.

사춘기 시작과 끝에 서 있는 아이들이 웬일이니! 그냥 잘 따라다니네요.

얘네 짜증 내기 시작하면 어르고 달래야 하고,

어르고 달래려면 '참을 인'자를 새겨야 하고,

세 번 정도 썼다 지우고 썼다 지웠는데도 여전히 JR을 그치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이 엄마는 분노 폭발할 테고....

이러면 상황 참 복잡해지는데 말이죠.

 

 

 

 

힘들지만 즐겁게 걷고 걸어서 멋진 풍광 마음에 담았습니다.

 

 

 

 

오, 다리 무지하게 아픈 중에도 모두 밝은 표정.

 

 

 

 

실은 이번 여행, 채윤이 화보촬영 여행이었고요.

세 명의 조연들은 채윤이 스타일 몰아주기 배경 소품으로 참여했습니다. 

 

 

 

 

현승이에게 여행이란, 일단 본질은 조금 비켜가야하구요.

작대기, 돌멩이, 마음에 드는 흙 등을 발견하여 잠시 교감하는 것.

발견하고, 줍고, 파고, 캐내고, 들고 뛰어댕기고.... 여행의 목적입니다.

순천 자연생태공원 입구에 두고 온 엄청나게 긴 대나무는 잘 있을지.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죠.

 

 

 

 

오동도에서는 애들 소음을 잠시 꺼둘 수 있었습니다.

얘네들과 함께 있는 게 꼭 역겨웠던 것은 아닌데 둘이 걷는 걸음걸음에

동백꽃이 놓여있었습니다.

걷다 말고 뭐 하시나요? 

 

 

 

 

예, 예.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이 좋은 여행에 드립 친구들 안 데려갈 수 없었구요.

 

 

 

점핑샷 안 찍을 수 없었구요.

 

 

 

 

마지막은 국내 유일의 해양 케이블카 탑승 영상입니다.

 

나는 접때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아 바다 아아아 하아아아 하하아오오 하 아아아 허오오오 아아아아 허오오
뭐하고 있냐고 나는 접때 여수 밤바다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구왕 토킹  (4) 2015.03.27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우니  (2) 2015.03.11
예수원 가는 길, 아픈 바람  (6) 2015.02.23
미안해서 고마움  (2) 2015.02.06
2014 마무리  (2) 2014.12.31

 

 

 

*

의미를 묻고 또 물어 자신 안에서 충만해지고, 그리하여 의미의 강이 흘러 넘칠 때 비로소 시동을 걸어 악세레이터를 밟는 남자. 일이든 사람이든, 그 무엇에든 의미가 되고 싶어 시간을 많이 들이는 남자. 일 중독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 남자였다. 그 남자가 의미를 곱씹을 새 없이 새벽부터 밤 10시, 11시까지 매일 달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여보, 나 일중독인가봐' 하며 쉼 없이 4년 째 달리고 있다. 그 남자에게 꿀 같은 겨울 피정이 주어졌고, 예수원을 향해 홀로 태백행 고속버스를 탔고 떠났다. 휴대폰 등 세상과 닿는 모든 기기를 잠시 꺼두시고 맡겨두셔야 하는 곳인지라 '안녕'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연락 두절이다. 그 이후 갈비뼈 1번과 2번 사이 어딘가에 묵직한 것이 하나 들어 앉았다.

 

**

사랑하면 무엇이든 '함께' 하는 것인 줄 알았다. 혼자 있고 싶어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욕구를 내비치는 건 분명 나를 싫어한다는 뜻이려니 싶어 견딜 수 없던 적이 있었다. 결혼 후 1년쯤 되었을 때 사람이 자기 생긴 꼴대로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었다. 모처럼 휴가를 낸 남편에게 '혼자 시간 보내고 와'라고 말했다. 그날을 기억한다. 일하고 신혼집에 돌아왔는데 나보다 늦게 나간 남편이 편지를 써 놓았다. 주저리주저리 어쩌구저쩌꾸 하다가 편지 끝에 '형광등을 끄고 스탠드를 켜시오, 오디오를 켜시오.' 이런 주문이 적혀 있었다. 오디오를 켰는데 뙇! 어떤 음악이 나왔고, 엄청 감동이었는데 그 음악이 뭐였더라 생각이 안 난다. 아무튼,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간임을 이해받았다는 것이 참 좋았던 모양이었다.

 

***

살다 보니 뭐든 '함께, 함께, 같이, 같이' 하던 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존재였다. 아이들 어릴 때, 육아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서 분노의 증기가 콧구멍으로 귓구멍으로 눈빛 레이저로 쏟아져 나올라치며 남편이 그랬다. '여보, 내가 애들 볼게. 방에 혼자 들어가서 기도를 하든, 말씀을 보든, 뭐든 해.' 자주는 아니고 몇 번 있었던 일인데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고맙다.  믿기 어렵겠지만, 아직도 서로 좋아하고 약간 설레고 그런 사이이다. 내 패이스대로 무엇이든 같이!를 고집하며 살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진실과 헌신'이 관계 맺음의 모토였는데, 이것을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따로 또 같이-적절한 거리 두기'의 적절함의 질과 양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각자의 영역을 지켜주고, 홀로 있을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나 같은 사람에겐 더욱 어려운 일이었지만, 입에 써서 몸에는 참 좋은 약이 되었다. 

 

****

그런데 갈수록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 뭐더라? 사랑이. 그를 사랑하나? 내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나? 잘 모르겠다. 느끼는 것도,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도 어렵다. 느낌으로 강렬할 때는 차라리 '연민'이다. 가엾게 느껴질 때, 너무너무 가엾게 느껴질 때, 이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을 때 감정이 최고치를 찍는 것 같다. 그럴 땐 일찍 잠든 남편의 가슴에 손을 대고 소리 없는 기도를 한다. 그럴 때는 가슴 부분에 실제 통증이 느껴진다. (아이들에게도 종종 하는 일이고, 종종 느끼는 감정이다) 아, 남편의 사랑을 느끼는 것도 비슷한가 보다. 말치레라고는 모르는 기름기 없는 남편이(말치레라고 해봐야 너~어무 말치레스러워 화를 돋울 뿐이다.) 보기보다 헐랭이이며 허당인 내게 '으이그, 불쌍한 정신실' 할 때, 괜히 마음이 따스해진다. 이럴 때 사랑이라고 느끼나 보다. 우리 사랑, 너무 올드한 건가?

 

*****

그의 블로그 이름이 'The wounded healer'에서 '아픈 바람'으로 바뀐 지 몇 달이 됐다. 나는 가끔 남편이 우리 시대 목회자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교인들은 뚜렷한 것을 원하고, 강력한 정답을 원한다. 설교 한 방, 설교의 결론으로 낸 적용 한 방이면 생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장담을 해줘야 능력 있는 지도자로 여기는 것 같다. 심지어 청년들은 밟아주고 무시해주는 사역자를 유능한 목회자로 본단다. 나 역시 간간이 청년들을 만나며 피부로 느끼는 점이다. 되든 안되는 확신 있게 말해주고, 으스대는 태도를 보이면 오히려 미더워해주는 것 같다. 작년 겨울 피정 때 남편에게 농담으로 '시대와 불화하는 목회자가 되라'고 했었다. 사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이 시대와 뭔가 늘 서먹하고 어색한 사람이다.   

 

******

남편의 고독한 발걸음이 하루 종일 아픈 바람으로 내 마음을 뒤흔든다. 위에 걸어놓은 나무 사진을 찾으려고 남편 아이패드의 사진첩을 뒤지며 한참 사진 구경을 했다. 그 사람다운 것이 뭔지도 이젠 잘 모르겠지만, 그답지 않은 사진들과 가끔 그다운 사진들을 보며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하던 기도의 마음이 되었다. 자꾸 가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오늘 좀 사랑이 샘솟는 모양이다. 올드한 사랑 말이다.  

 

그리고 아픈 바람, 그의 목소리.

 

http://nouwenjp.tistory.com/62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우니  (2) 2015.03.11
나는 접때 여수 밤바다  (6) 2015.03.02
미안해서 고마움  (2) 2015.02.06
2014 마무리  (2) 2014.12.31
자기를 변호할 권리  (4) 2014.12.20

 

 

 

어제 대전에서 강의가 있었다.

강의 마치고 인사할 틈도 없이 기차로 서울역에 도착하는 시간, 밤 11시.

새벽기도 설교 맡은 전날이라 부담이 있는 남편은 '택시 타고 들어와'라고 했다.

바부팅이.

내가 태우러 나갈게. 이러면,

아닙니다. 서방님. 설교준비 하셔야죠. 소녀 택시를 이용하겠사옵나이다. 이러고,

미리 준비하고 나가면 돼. 밤에 여자 혼자 택시 타는 거 위험해. 이러면,

아니라니까. 걱정말고 설교 준비하고 있어. 택시 타면 금방이야. 이러고,

아.... 진짜. 이 사람 내가 나간다니까. 할 수 없군. 허허허.

이럴 수도 있지않나?

 

암튼, 택시로 들어오려 했다.

올라오는 기차 안, 남편이 그제야 역으로 나오겠다고 마플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제 와서 왜?)

뒤늦은 훈훈한 대화가 오간다.

여보, 11시 도착이지? 내가 나갈게. 도착하면 연락해. 이따 봐.

아니야, 당신 설교 준비해. 나오지 마. 택시 타고 들어갈게.

 

이유는.

'아드님이 택시가 너무 위험하다고 걱정이 심하셔'

(라며 아래의 스티커 추가. 울면 겨자 먹으며 운전하는 아빠의 심정을 잘 담아낸 스티커)

흥4

아빠랑 정말 비슷한데 감정을 느끼고 읽어내는 이 지점에서 살짝 다른 아들.

이런 아들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 식사 준비한 것이 없어서 들어오는 길 씨리얼 한 통 사가지고 왔다.

아침에 도저히 일어나질 못하고 꿈만 꾸며 뒹굴고 있었는데,

꿈결에 남편은 새벽기도 갔다 오고, 

채윤이 일어나 씻고,

엄마, 아침 뭐 먹어?

알았어. 알았어. 내가 먹을게.

채윤이 내가 태워줄게. 그냥 자.

현승이 일어나서, 엄마 언제 일어나? 아침 뭐 먹어?

알았어. 알았어. 내가 먹을게.

나 먹고 준비하고 갈게. 일어나지 마.

남편도 어쩌구 저쩌구하고 사라졌다.

 

평소 그닥 충실한 엄마나 아내도 못 되면서

아침에 식구들 나가는데 얼굴 보지 않으면 짠하고 미안하다.

아침 식사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늦게 일어나 식탁 위에 나뒹구는 빈 우유팩과 씨리얼 부스러기를 한참 쳐다봤다.

미안하기보단 고맙다.

꼼수 모르는 바부팅이 남편이 울며 겨자 먹으며 결국 태우러 나와준 것이 고맙고,

아침에 혼자 챙겨 나간 아이들이 고맙고.

미안해서 고맙다.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접때 여수 밤바다  (6) 2015.03.02
예수원 가는 길, 아픈 바람  (6) 2015.02.23
2014 마무리  (2) 2014.12.31
자기를 변호할 권리  (4) 2014.12.20
Sabbath diary16-2, 아이고 의미 없는 나날들  (0) 2014.10.31

 

 

 

 

 

오늘 어머님 자서전이 인쇄되어 나왔습니다.

저의 2014년은 이렇게 마무리해요.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원 가는 길, 아픈 바람  (6) 2015.02.23
미안해서 고마움  (2) 2015.02.06
자기를 변호할 권리  (4) 2014.12.20
Sabbath diary16-2, 아이고 의미 없는 나날들  (0) 2014.10.31
Sabbath diary16_긴장해 다들  (2) 2014.10.20

 

 

 

 

이런 저런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어머님께 자서전 쓰실 것을 권했었다. 물론 내가 많은 것을 감당하겠다는 전제였다. 이런 저런에 해당하는 것 중 가장 큰 흑심, 아니고 백심은 '자기성찰'의 기회였다. 차분히 생을 돌아보시며 탈고하셨을 땐 치유가 일어나는 (아름다운) 각본이었다. 다 쓰셨고 이제 인쇄를 코 앞에 두고 있지만 각본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허망하고 화가 났었다. 성찰 대신 방어와 변호로 많은 페이지를 채우셨다. 그런 어머니 글을 매만지면서 후회를 거듭했다. 괜한 짓으로 시간만 허비하는구나.

 

사진과 편집을 도와주시던 언니가 '자기가 글을 하나 써야겠다' 하셔서 결국 어머니의 자기변호를 변호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변호를 변호하는 서문을 쓰면서 마음의 길이 조금 트이는 것 같다. '누구든 자신을 변호해야 한다. 자기 외에 그 누구가 자기를 변호해 줄 것인가. 어머님은 변호할 권리가 있다'  실은 나도 내 삶과 생각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쓴다. 포장하는 기술이 발달해서 좀 나아보일지 몰라도 내 블로그 글도 어머님의 글과 다르지 않다. 결국 나의 옳음을 알아달라는 끊임없는 외침이다. 

 

어머님은 어머님 편, 나는 내 편.

우린 모두 자신을 변호할 권리가 있다.

 

 

======================

 

 

<혹덩이에서 복덩이로> 책을 내면서.........

 

 

내 얘길 다 하려면 책을 열 권을 써도 모자란다.” 황혼의 어르신들께 자주 듣는 말입니다. 어느 인생인들 책 열 권 분량의 사연이 없을까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륜이 쌓인다는 것은 인생의 이야기 분량이 쌓여간다는 뜻일 겁니다.

 

저의 어머니도 당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열 권, 스무 권으로 다 담아내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몇 날 몇 일 밤을 지새워도 끝나지 않을 어머님 70 평생의 이야기를 이 작은 책 하나에 담았습니다. 어머님이 쓰셨습니다.

 

열 권 분량의 사연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70을 바라보시는 어머님은 결국 이렇게 인생을 써내셨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고백처럼 평생 배우지 못한 한을 아프게 품고 살아오신 분입니다. 결국 이렇게 써내신 어머니께 박수를 드립니다. 어머님이기에 가능하신 일이었습니다.

 

상담을 하고 나면 이렇게라도 털어놓으니 후련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혼자 붙들고 아파하던 것을 어디에든 쏟아내기만 해도 견딜만해지고 가벼워집니다. 이 작은 책은 어머님의 털어놓음입니다. 어린 시절을 혹덩이로 기억하시는 어머니는 오랜 세월 마음의 병을 앓아오셨고 두통과 불면증으로 고생하셨습니다. 부디 이 털어놓음으로 인해 남은 인생에 더 밝은 이야기들이 쌓여 가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일을 함께 경험하신 분들은 어머님과 다른 기억을 가지고 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저장하는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 이야기가 지어져가는 것일 겁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면아이 치유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어린 시절의 치유는 다름 아닌 기억의 치유라고 합니다. 각자 기억이 다르고, 어머니의 기억 또한 세상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머님의 내면아이 치유, 기억의 치유를 위한 아픈 고백임을 기억해주시고, 따스하게 바라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표지사진을 찍던 날 어머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눈은 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났고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이셨습니다. 발그레 상기된 볼하며, 20여 년 가까이 어머님을 곁에서 뵈며 그렇게 예쁜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스스로 혹덩이라 여기며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님이, 오직 당신만을 사랑스럽게 따스하게 바라봐주는 눈길을 얼마나 얼마나 바라셨을까 싶어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험한 세월을 약하디 약한 몸으로 견뎌 오신 것은 분명 어머니 마음속엔 사랑의 눈길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의 다른 이름은 믿음일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의 눈길을 거두지 않으시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 사랑에 대한 믿음 하나로 혹덩이 어머님이 복덩이가 되셨습니다.

 

어머님 남은 생애, 그 따스한 주님의 눈길을 더 많이 느끼고 발견해가시며 행복한 황혼을 보내시길 기도드립니다. 외롭고 고독한 시간에 더욱 주님을 붙드시는 믿음의 길은 사랑의 길임을 믿습니다. 혹덩이 어머님, 복덩이 어머님을 사랑합니다.

 

막내 며느리, 정신실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안해서 고마움  (2) 2015.02.06
2014 마무리  (2) 2014.12.31
Sabbath diary16-2, 아이고 의미 없는 나날들  (0) 2014.10.31
Sabbath diary16_긴장해 다들  (2) 2014.10.20
Sabbath diary15_공동체  (8) 2014.10.08

 

 

 

 

전 주 월요일, 전주 한옥마을에 가기로 되어 있는 아침이었다.

아침 식탁에 앉으며 차려놓은 식사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아, 행복하다. 현승아, 아빠는 정말 행복해.'

마음에 없는 괜한 말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 말했다면 이 아침 남편은 정말 행복한 것이다.

남편이 그러한 것처럼 나 또한 그러하다.

남편이 쉬는 날이라 좋고, 하루 남편과 데이트할 일이 기대되고, 

그저 오늘이 행복하다.

그러나 '행복하다' 말하는 남편의 말 뒤에

찬바람이 휭 하고 불어 낙엽이 우르르 쓸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행복이 온전한 행복이 아님을 알기에 내 마음이 쓸쓸하다.

순도 100%의 행복이 아니면 행복하다 말할 수 없다는, 그런 뜻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채윤이 먹은 그릇을 닦고 있는데 마주앉은

남편과 현승이의 대화가 무르익다 전도서에 멈췄다.

아빠가 아이폰으로 성경 앱을 열어 보여주면 전도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현승아, 전도서를 쓴 사람이 다 누려보고 고민도 해보니까 헛되다고 느껴진대.

결론은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사는 게 최고라는 거야. 아빠는 엄마랑 더욱 행복하게 살 거야."

'네 헛된 평생의 모든 곧 하나님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사랑하는 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조금 전 행복하다는 남편의 말끝에 뒹굴던 낙엽은 바로 이 허무감이었다.

전도서 전반에 깔린 허무주의.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다시 말하면 '아이고 의미 없다.'

의미 없음을 못 견디는 남편, 공허감을 몹시 싫어하는 남편이 '행복'과 타협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가장 못 견디는 것을 넘어서 견디고 오히려 즐거워하고 있다.

그 선상에서 나온 전도서의 말씀을 빌려서 나온 남편의 속내.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찌어다'

이 모든 헛된 날에 그의 아내와 나의 남편은 월요일마다 희희낙락하며 지내고 있다. 

화수목금토일, 대체로 희희낙락 버티고 있다.

 

 

전주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죽는다면 가장 아쉬운 것이 뭐야? 꼭 해보고 싶거나 이뤄보고 싶은 일?"

시원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그 질문을 나 스스로 해보고 남편에게 답을 했다.

"나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만 아니라면 그다지 아쉬운 게 없는 듯해.

대체로 만족한다는 뜻이기도 해."

남편이 아마도 세월호 여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그런 것도 같다.

나는(우리는) 4월 16일 이전처럼 살거나 신앙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러나, 그런데,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멈춰 서서 조금만 생각에 잠겨도

금세 '아이고 의미 없다' 소리가 튀어나오는 요즘이지만 즐겁게 살려고 한다.

행복하게 살되,

이웃과 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엄마나 아내로서의 나와 그냥 나,

이 모든 것을 분리시키지 않고 살려고 한다.

에고머니, 분리시키지 않으려 하니 다시 '헛되고 헛되어, 아이고 의미없다'로 환원하네.

그래, 이 헛된 날을 헛된 줄 알고 즐겁게 살자.

그러자.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 마무리  (2) 2014.12.31
자기를 변호할 권리  (4) 2014.12.20
Sabbath diary16_긴장해 다들  (2) 2014.10.20
Sabbath diary15_공동체  (8) 2014.10.08
Sabbath diary14_카페는 사는 곳이 아니다  (4) 2014.10.05

 

 

오랜만에 네 식구 마주앉아 초를 켜고 마음을 나누고 기도를 했다. 세상을 향한 채윤이 눈빛이 씨니컬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의 가지지 못한 시간이었다. 진정한 대화, (하나님과의 진정한 대화로서의) 기도, 사귐,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귐으로서의) 예배 등은 강요하지 말자는 소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새 채윤이 눈빛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면서 어른스러워지고 있다. 가끔 대화하면서 '이 정도였어? 이렇게 큰 거야?' 하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어제 패밀리 데이는 다시 한 번 김채윤의 놀람 교향곡이었다.  요즘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기도제목으로 내놓는데 정직하고 진실하여 감동이 되었다. 아빠에 대해 묻어두었던 감정을 표현하면서 눈물까지 보여서 엄마까지 따라 울게 만들었다. '우리 채윤이 다 컸구나'라고 응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랑 단둘이선 별 얘기를 다 하면서도 네 식구 모인 자리에서 진지해지면 (강풀 작가처럼) 갑자기 똥이 마려워지고 엉덩이가 간지러워지는 현승이조차도 누나의 눈물에 말려 어른같이 마음을 나누었다.

 

 

 

 

월요일이었고 전 주에는 노회가 있어 데이트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전 주에 놀지 못한 것까지 놀아야 해서 멀리 전주 한옥마을에 다녀왔다. 가서 밥 먹고, 슬슬 걸어다니면서 주전부리나 하고 온 것이 전부이다. 젊은 커플들이 대부분이더만. 걔네들처럼 살랑거리는 설렘이 있는 것도 아닌 아줌마 아저씨는 줄서서 만두 사고, 문꼬치 사서 길에 선 채로 가방에 소스 묻혀가면서 추접스럽게 먹어대다 왔다.  전주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비오는 고속도로를 7 시간 정도 달리던 자동차 안이었다. 음악 들으면서 이 얘기, 저 얘기, 요 얘기, 조 얘기까지 하다가 지난 주일 설교 본문에서 나온 '분향단'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 얘기 끝에 '오늘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기도의 불을 밝혀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가진 시간이었다. 

 

채윤이가 보여준 모습은 아마도 한 2주 전에 있었던 '짜증나 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러 번 아빠가 신사적으로 경고에도 했음에도 아빠 면전에서 '짜증나'를 외친 것이다. 이 일로 현승이의 기네스북, '엄마 나는 태어나서 아빠가 화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의 기록이 깨진고 말았다. 방에 들어가 둘이 한참을 얘기하고 나왔다. 평소 채윤이가 아무리 까칠하게 굴어도 잘 받아주던 아빠가 속내를 드러냈던 모양인데 이 일로 충격도 받고 자기를 돌아보기도 한 것 같다. 채윤이가 3학년 때 했던 표현대로 '작은 일을 크게 몰고 가고, 작은 일에 깊게 화를 내는' 엄마와 달리 연료통이 커서 몇 년치 화를 장전했다가 한 번에 쏴준 아빠 덕이다. 물론 그간 쌓은 착하고 친절하고 넉넉하게 받아주기 공덕이 아니었음 몇 년 쌓은 화를 폭발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으랴. 그야말로 모두 다치기 딱 좋은 폭발이 몇 년 묵힌 분노의 활화산이겄제. 엄마인 나는 아빠의 역할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김채윤, 긴장 좀 타겠지)

 

 

 

 

남편은 요즘 서태지의 신보 '크리스말로우'에 꽂혀서 '긴장해 다들, 긴장해 다들' 입에 붙이고 다닌다. 아이들과 내가 지겹다고 그만 좀 하라고 놀려도 헤헤거리면서 '긴장해 다들.... 이게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 부르게 돼' 한다. 궁서체로 물었다. '서태지 컴백이 좋아? 당신 서태지 좋아했었어?' 자기가 서태지와 동갑이란다. 조용필이 가왕이라면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인데 바로 그 서태지가 자기 동갑이란다. 평소 자신의 성품대로 요란하지 않지만 깊이 있게 중년맞이 성장통을 앓는 남편에게 의미있게 다가가나 보다. 느낌을 알겠고 또 모르겠다. 어쨌든 남편의 이 요란스럽지 않은, 절제된 삶의 태도를 사랑한다. 남편이 좋아하니 나도 좋다. 서태지 컴백, 긴장해 다들...... 나도 좋다. 전주 갔다 오는 길에는 서태지 노래를 들었다. 가사를 곱씹으며서 들었다. 남편이 신대원에 가던 때 긴 글을 써서 당시 운영하던 싸이 클럽에 올렸었다. 정혜신 박사가 박찬욱 감독에게 썼던 표현 'low self-estee의 미덕'이란 표현을 빌어다 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이 가진 미덕 중 하나는 '으스대지 않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점, 존경하고 신뢰한다.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내 순서가 되었을 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내 자아상이랄까, 이런 게 있다. 난 체구가 작고 체구처럼 마음도 좁기 때문에 누군가를 품을 넉넉한 품이 없다. 말하자면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재롱 부리고고 익살이나 떨어 주목 받고픈 어린 아이인 것이다. 엄마이긴 하지만 흔히 말하는 거룩한 모성을 가진,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누이는 희생적인 어머니, 쓴 것 먹고 단 것 토해 먹이는 엄마로 인식해 본 적이 없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따까리 하는 것에 자주 뿔따구가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한 엄마이다. 엄마로서 이러하니 아내로서는 더 말 할 것이 없다. 최근에야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기댈 언덕과 안길 품이 되고 싶다는 진정한 마음이 든다. '나 좀 봐 줘, 나 좀 돌봐 줘'가 아니라 진심 돌보는 존재가 되어 주고 싶다. 이제껏 피나게 열심히 해왔던 돌보는 사람 코스프레 말고. 이것 역시 다  남편이 쌓은 공덕의 효능이다. 으르렁 모녀, 투닥투닥 남매, 애증의 모자 포함한 네 식구가 한껏 마음 열어 대화할 수 있는 것도, 한 데 손을 포갤 수 있는 것도 으스대지 않는 조용한 리더십의 가장 덕분이다. 그러니 이 가장이 요즘 '긴장해 다들, 긴장해 대들' 노래하는 소리를 예사로 들을 일이 아니다. 서태지를 응원하고 서태지 동갑내기 우리 가장을 응원한다.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를 변호할 권리  (4) 2014.12.20
Sabbath diary16-2, 아이고 의미 없는 나날들  (0) 2014.10.31
Sabbath diary15_공동체  (8) 2014.10.08
Sabbath diary14_카페는 사는 곳이 아니다  (4) 2014.10.05
특급 칭찬  (2) 2014.09.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