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랑 이혼할 거야?

처음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는데, 두 번째라 놀랍지 않았다. 둘째 현승이의 말이다. 좋은 분위기였다. 성탄절로부터 연말연시, 그리고 이어진 특새로 네 식구가 뒹굴며 삼 시 세 끼를 하는 중이었다. 성탄으로 시작한 나날이고, 이사하고 정신 차려보니 집 앞에 이마트 트레이더스였다. 이렇게 많은데 이 가격? 여기에 넋이 나가 연일 먹방이었다. 이러다 파탄 나겠다 싶어서 장보기를 멈추고 냉장고 파먹는 중 묵은지 베이스로 꽤 괜찮은 파스타를 만들었다. 다들 정말 맛있게 먹으며 "찬양하라, 엄마를! 정신실을 찬양하라!" 기분 좋은 집회였다. 나는 자비롭고 겸손하기에 한 마디 했다. "별 거 아냐. 아무거나 넣고 한 거야. 당신도 배워. 당신도 혼자 해 먹을 수 있어. 이제부터 좀 배워야지."


그 말 끝에 채윤이는 "엄마는 왜 아빠가 엄마보다 더 오래 살 거라고 규정해? 엄마가 혼자 남을 수도 있잖아."라고 오버를 했다. 현승이는 열 술을 더 떴다. "엄마, 아빠랑 이혼할 거야?" 혼자 사는 아빠에 대해 채윤과 현승이 생각은 이렇게 다르다. 채윤인 시종일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쿨한 채윤이다. 현승이는 타고나기를 그렇게 태어나서 말과 행동 너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 언젠가부터 잦아진 엄마 아빠의 충돌, 엄마도 이해되고 아빠도 이해되다 엄마한테 화가 나고 아빠로 속상한 현승이는 한 발 더 나간다. 한 발 한 발 나가다 열 발을 나가서 하는 말이 "이혼할 거야?"이다. 작년 가을, 아니다 작년 여름휴가, 아니다 언제부터지? 누나와 아빠, 엄마와 아빠 사이 크고 작은 갈등이 많았다. 페미니즘 때문이기도 하고, 성인이 된 누나가 제 목소리 내는 과정이기도 하고, 갱년기 엄마 아빠의 숨기지 못하는 유치함이기도 했다.


아이들 앞에서 거침없이 갈등을 드러냈다. 인신공격까진 하지 말자 다짐했고, 남편과 내가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남편은 모르겠지만 내게는 분명한 뜻이 있었다. 일단 페미니즘이다. 영 페미니스트 채윤이 앞에서 무뎌진 내 감각이 살아났고, 딸을 더 진화한 페미니스트로 키우기 위해 포기했던 부분에서 다시 날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제 스스로도 꽤 괜찮은 남자 사람 아빠지만 여전히 달라져야 하는 남자 사람 아빠를 마주하며 분열적으로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아빠 앞에 거침없이 맞설 수 있는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채윤이를 위해서 부러 채윤이 편에 섰다. 누구보다 진보한 남편이지만 가부장제 안에서 자란 습성을 고스란히 가진 남편에 대해 함께 분노해줬다. 해줬다, 보다는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앞에서 투닥거릴 일이 더 많아졌다.


실은 더 아픈 뜻이 있다. 남편과 함께 쓴 결혼에 관한 책 제목이 '와우결혼 :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이다. 자신감이 지나쳐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제목은 나름대로 해학을 담은 것이었다. 와서 보라는 것은 우리 부부가 얼마나 행복한지, 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싸우는지'였다. 말하자면 대놓고 부부싸움, 지면에서 하는 부부싸움이었다. 글을 쓰고 책을 낼 때만 해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잘 살고 행복하다는 게 아니라 얼마나 싸우고 있다는 얘기라니까요! 이런 자부심이었다. 세월이 지나 중년이 되고 부부 관계로 어려운 분들을 만나다 보니 이것조차 얼마나 폭력적인 자랑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 이렇게 안 싸워요,나 우리 이렇게 잘 싸워요, 나 결국 우리 부부 잘 났어요, 하는 자랑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우리 같은 부부가 사회와 교회에 끼치는 해악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젊은 부부의 위기 상담을 하면서 확인하는 바, 좋은 부부에 대한 환상이 갈등 해결에 장벽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 부모님은 가정에 대해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교회 목사님 부부, JP&SS 부부, 션-정혜영 부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가정을 꿈꾸고 결혼했고, 기도하면 그런 가정 될 것이라는 '환상'이다. 환상은 현실이 될 수 없다. 환상이 신앙과 만나 신경증이 되는 것을 아프게 지켜보았다. 기도하면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집착이다. 현실 부부 사이에서 직면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기도로 도피하고 말아서 결국 해결점에서는 비켜나고 마는 것을. 책을 쓰고 청년들 앞에서 강의에서 했던 말들을 아프게 되짚어 보게 된다.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건널 수 없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혼을 꿈꾸거나, 심정적으로 이혼의 상태로 사는 이들을 보면서 회개한다. 좋은 부부, 건강한 관계, 행복한 가정 같은 것에 대해 함부로 나불대던 입을. 내 삶은 the way가 아니라 a way라고 힘주어 말했어야 하는데.


이런 성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유치하고 부끄럽지만 그대로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다. 두 아이 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판단능력이 생겼다는 확신도 있다. 코로나로 너무 붙어 있다 보니 제어가 안 되는 것도 있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면도 있다. 싸움이 없는 부부가 아니라 잘 싸우고 잘 성장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는 또 하나의 환상을 만들고 있는지도. 그런데 여하튼 현승이의 질문, "엄마 아빠 이혼할 거야?" 이건 나름대로 심각했다. 현승인 그냥 해본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두렵다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현승이가 아직 어리다는 것. 아니, 부모 앞의 아이들은 평생 어릴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조금 아프고, 조금 미안하고, 조금 막막하다.


월요일에 남편과 강릉에 다녀왔다. 언제나처럼 남편은 내가 가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길, 먹고 싶은 것에 맞춘다. 우리 사이에 그런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남편은 '나'에게 맞추기 때문이다. 정말 별 것 없는 하루였다. 강릉에 갔고, 검색한 순두부 맛집에 갔는데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해서 그냥 차선을 선택했고, 그럭저럭 괜찮았고, 커피도 좋아하지만 기분에 따라 카페를 선택했고, 많이 아쉽지만 우리가 원했던 건 그저 바다를 보며 커피 마시는 거였으니 대충 만족했고. 채윤 현승 기쁘게 해 주려고 회를 포장했고, 저녁으로 집에 와 맛있게 먹었고. 이게 전부다. 이게 일상이다.


남편이 쉬는 월요일 하루 일정으로 속초, 양양, 강릉에 다녀오는 날이 많다. 그게 그것인 일상이지만 돌아오는 길의 풍경은 늘 새롭게 아름답다. 겨울이면 더욱 그렇다. 가지만 남은 겨울 나무가 석양과 함께 빚어내는 풍경은 예술이다. 이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내 마음의 여정은 더 예술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39년 전 그 겨울 이후, 눈 똑바로 뜨고 겨울나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나다. 수묵화 같은 겨울 산이 아름답다고 말하던 남편에게 화내던 나다. 이젠 안다. 그 아름다움을. 상실이 빚은 풍요의 예술을 나는 안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며 DJ가 되었다. 싱어게인 가수들 한 바퀴 돌고, 그 노래들이 끌고 나오는 추억의 노래를 다시 듣고.... 김정호의 '하얀 나비'가 나는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그 청승맞음이 좋다. 청승 떠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인데 희한하다. 청승으로 시작해서 청승으로 끝나는 이 노래가 좋아서 리메이크하는 모든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다. 오늘은 황치열이다.


내 존재에 깊이 박힌 청승을 안다. 치명적인 상실, 존재에 뿌리 박힌 '잃어버림'에 대한 감각 또는 통증이다. 그것은 내 마음의 텅 빈 공간이다. 아버지 죽음에서 기인한다고 믿었는데 그 이전이다. 그 이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전, 이전이다. 이전의 근원은 아직 잘 모르겠다. 강릉 가던 길인지, 강릉에서 오던 길이지 모르겠다.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생각해보니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늘 무언가 그리웠어. 그리운 그 무엇을 잡으면 놓칠 것 같았고 빼앗길 것 같았고 실제로 경험적으로 그랬어. 그런데 당신 만나고부터 무언가를 그리던 텅 빈 공간이 채워졌어. 물론 그 이후로 외롭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고, 실존적 슬픔이 없어졌다는 뜻도 아닌데, 당신 만나고 무언가 치명적인 그리움이 치유됐어."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 완벽하다는 뜻도 아니고, 더 바랄 게 없다는 뜻도 아닌데 이 사람은 내 청승을 거둬갔다. 청승맞은 노래를 부끄럼 없이 부르고 들을 수 있게 해 줬다.


현승인 늘 엄마 아빠의 대화에 귀가 커진다. 내용엔 관심이 없다. 감정적 대결이 있을까 없을까, 그로 인해 엄마 아빠가 아플까, 이것이 관건이다. 현승이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다. 우리가 요즘 너무 서로를 막대하나, 특히 내가...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어쩔 수 없기도 하고, 부러 그러기도 하고. 분명한 건, 더는 나를 포장할 수 없게 된 갱년기 탓도 있다. 더욱 분명한 건... 이대로 나를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은 이 사람뿐인 걸. 내 인생의 청승을 거둬간 이 사람은 포장을 모르는 사람이다. 책 쓰고 방송에 나가고, 잘 나가는 아내를 포장지로 이용할 줄 모르는 답답한 사람이다. 온 몸이 포장지 투성이인 나는 "니도 좀 포장을 해라고!!!! 세련되게 포장을 해보라고!!!!!" 하며 자해를 하고 몸부림을 하다 제 풀에 포장지가 벗겨져 버리는 형국이다. 이랬든 저랬든,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이런 말은 다시 입에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보여주는 결혼 말고, 다만 아프게 사는 결혼으로 만족해 보려고 한다. "엄마, 아빠랑 이혼할 거야?" 아들에게 이런 말 들으며 꿋꿋하게 잘 살아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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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거 하나 남겨줘. 나 이따 갔다 와서 먹을 거야.

 

온라인 주일 예배 설교하러 가는 목사가 남긴 말이라고 하기엔...... 참으로 사랑스럽다. 목사가 된 후, 한 교회를 책임 맡은 목사가 된 후 토요일 아침부터 주일 예배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가족들 숨도 못 쉬게 하는 사람이다.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존재 자체로 눈치를 보게 하는 것이, 그냥 숨을 못 쉬게 하는 것이, 설교 준비는 '산소'로 하는 건가 싶다. 설교 준비는 광합성하는 식물이 밤을 보내는 메커니즘인가? 집안의 산소란 산소는 다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만 내놓는 존재인가. 설교자는. (그렇다고 설교를 잘하면 말이나 안 하지, 하는 말을 하지 않으련다.) 토요일에 아빠가 사무실에 나가지 않으면 아이들도 긴장이다. 토요일엔 빨래도 안 돌리고(빨래 너는 건 아빠 몫이라) 안방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한다. 공평하게 분배된 설거지도 당연히 열외이다. 때로 (아마 설교가 안 풀리는 날이겠지) 음악을 크게 틀거나 셋이서 재밌는 얘기 하다 낄낄거리는 소리가 안방 문을 타고 넘는 것도 곤란하다. 까다롭다, 정말.  그리고 주일 아침에는 모두 잠든 시간 혼자 일찍 일어나 정장에 풀메이크업을 하고 나간다.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다. 1부, 2부, 3부 통틀어 드리는 온라인 예배 덕에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교회 아기들이 그렇게 선망하는, 제 아빠가 결혼식 가려고 차려입으면 "하아, 아빠 멋있다. 목사님 같아!" 한다는 비주얼로 나가면서 말했다.

 

이거 하나 남겨 놔. 갔다 와서 먹을 거야.

 

"보장 못해. 사수할 거면 냉장고에 숨겨 놔." 그 말 듣고 냉장고 안에 고이 숨겨 두고 나갔다. 그렇게 까칠하게 굴며 준비하던 설.교, 예.배.인.도, 하러 나갔다. 유투브 예배 영상 보면서 팬이 된 아가가 가져온 마카롱이다. 그런데 나는 저 말이 더 은혜가 된다. 설교자 남편보다 나이 쉰이 된 남자가 "이거 하나 남겨 줘"라고 하는 마카롱을 들여다보는 게 더 감동이다. 쉰이 된 그 남자는 평생 자기 욕구를 잘 모르고, 욕구를 모르니 표현은 더욱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아니다, 이 사람은 자기 내면을 모를 수 없는 사람이다. 젊은 날부터 밥 먹고 하는 일이 내면 성찰이었다. 자기 안의 있는 욕구 중 맛있는 무엇을 먹고 싶다거나, 더 많이 먹고 싶다거나 하는 것은 (알아도) 그냥 무시해 온 사람이다. "아빠는 그냥 넘길 줄 알아. 아빠가 원하는 것이 있어도, 불편한 것이 있어도 그냥 받아줄 줄 알아" 약간의 존경과 안타까움을 담아 아들 현승이가 말했다. 사실 나는 갈수록 남편이 그냥 넘길 줄 아는 것이 불편하다.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했으면 좋겠다. 오십이나 된 남자에겐 그냥 넘기는 것이 더는 미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넘기고 흘려보낼 수 있는 의지는 젊을 때나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의지가 점점 말을 듣지 않는 생의 오후에는 불편한 것을 느끼고 때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힘이다. 절실한 영성 훈련이다. 그래서 마카롱 하나를 지키려는 그 말이 좋다. 식구들이 다 먹어 치운 후에 "마카롱 어딨어? 내 꺼는?" 하거나. 아니 그 말도 못 하고 삐쳐서 속으로 쌓아두지 않고 그냥 "남겨 둬"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중년 이후의 숙제는 늘 하던 말만 하고, 생각하던 방식대로 생각하는 것에서 단 1mm라도 빗나가는 것이다. 중년 이후 엄마 아빠의 말은 아이들이 백발백중 예측한다. 그것이 위험신호이다. 아이들은 예측하며 동시에 지겨워하고, 지겨움이란 귀를 틀어막는 전자동 귀마개니까. 별 말 아니라도 안해 본 말을 하는 것은 치매 예방에도 좋고 무엇보다 고귀한 영성훈련이 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렇게는 안 한다 하는 것을 해보는 용기는 나이 들어가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아름다움인지. 마카롱 하나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남편의 설교를 더 귀 기울여 듣게 하는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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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우음도 갈대밭 사이를 걸었다. 월요일, 말은 적고, 걸음 수는 많아지는 우리만의 안식일이다. 거의 모든 월요일마다 길든 짧든 시간을 내어 함께 걸었고, 길든 짧든 어딘가를 걸었다. 그런데 어쩐지 아주 오랜만에 ‘안식’을 누리는 느낌이다. 언제 적 Sabbath diary더냐! 얼마 만이더냐! 안팎으로 찍힌 마침표 덕인 것 같다.

밖에 찍힌 마침표는 집이다. 몇 주, 약간의 불안 또는 분노로 붙들고 있던 집 문제가 해결된 후 월요일이다.


안으로 찍힌 마침표는...... 뭐지? 7개월, 아니 6개월, 아니 한 달이 걸렸는데.

지난 2월 어느 월요일의 Sabbath diary(나쁜 딸이 드리는 사랑의 기도)에서 시작한 마음에 마침표를 찍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글’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작은 글이 아니었다. 골절상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했지만 면회가 되지 않는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한 달 지나 믿어지지 않는 엄마와의 이별, 그리고 살자고 시작한 글. 살자고 썼고, 그렇게 시작했지만, 서서히 이성 돌아오자 쓰기 위해 살게 되었다. 계속 쓰기만 할 수 없으니 글을 마쳐야 했다. 9월 16일, 적어도 글로는 탈상을 했다. (탈상(脫喪) 아니, 글로 하는 탈상이 끝나지 않았다. 썼던 모든 글을 다시 읽었고, 그렇게 한 번 더 마침표. 다시 읽었던 모든 글을 다시 또 읽고, 오늘 아침 9시에 ‘최종본’이란 이름으로 다시 떠나보냈다. 또 마침표.

 

 

 

 

온몸으로 찍는 마침표라, 몸이 요동을 쳐 배가 뒤틀리고 토하고 쏟아내곤 했다. 나 같으면 벌써 도망갔을 텐데, 옆에서 온갖 발광을 견뎌준 월요일 안식일 친구, 고맙소.

몇 번 더 마침표가 찍혀야 우리 생의 진정한 마침표가 찍힐지. 그때까지 우리는(아니 나는) 또 얼마나 몸부림을 해댈지. 그러나 결국 찍히고 끝나는 마침표.


 

 

홍옥의 계절이다. 매년 이 즈음 프로필 사진은 한 번씩 홍옥이었다.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홍옥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나곤 한다. 뭘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기억'과 관련이 있다. 내게 홍옥은 엄마다. 홍옥을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함께 있어도 벌써 그리운 야릇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그리움, 또는 두려움. 엄마 돌아가신 후 홍옥을 보면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그리울까. 가불 하여 미리 그리워했던 탓일까, 홍옥 한 입 베어 물며 눈물 뚝뚝 흘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홍옥이 아니어도 자주 운다. 길을 걷다 울고, 운전하다 울고, 자려고 누워서 울고, 책을 읽다 운다. 이런 가을을 한 번, 두 번, 세 번...... 홍옥의 계절을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일지 알 수 없지만 보내고 보내다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알아서 사다주겠지, 하는 생각을 버리니 나이스 한 가을이 되었다. 결혼 초부터 마음으로 바라고 때로 말하고 가끔 삐치던 것은 '알아서 소국 한 다발 사 오는 게 그렇게 어렵냐?"였다. 소국 화분 많이 나왔더라, 하나 사야지. 이런 식으로도 말고. 소국 사 와,라고 하면 "어? 어! 어, 어, 소국! 사다 줄게" 이렇게 되는 것. 차를 타고 과일 가게 앞을 지나다 눈 좋은 채윤이가 홍로와 홍옥을 구별해냈다. 차를 세우긴 늦어 지나쳤는데, 남편에게 주문했다. "사우나 건너편 과일 가게에 홍옥 있어. 홍.옥. 사.와. 소국 철이야. 소.국.도 사.와" 

 

 

노오~란 소국이 소담하게 담긴 노오란 화분, 빠알~간 홍옥을 들고 들어왔다. 거기에 초오~록 바질 화분도 하나. 조화롭도다, 조화롭도다! "이 바질은 화원에서 그냥 준 거야. 사모님 갖다 드리래" 여기서 사모님은 '사장님 사모님'이다. 단골 화원이 있는데, 교회에서도 거래하는 곳이다. 당연히 남편이 목사인 걸 아는데, 종교에 관심 없는 주인이 남편에게 "사장님, 사장님" 한다. 소국과 함께 온 바질만큼이나 신선하다. 그러고 보니 떠오른 기억 하나. 전에 수업 나가던 어린이 집에서 냠냠 선생님(아, 주방 선생님 아니고 냠냠 선생님!)과의 일화다. 함께 점심 먹으며 맛있다 칭찬도 많이 해드리고(실제로 맛있었다) 요리 팁도 얻곤 했다. 어린이집 냠냠 선생님보다는 괄괄한 식당 주인이 더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아, 그래서 아이들 용 국에다 고춧가루 풀어서 얼큰하게 만들어 준다든지 이런 걸 잘하셨던 것 같다. 아니다 다를까, 어린이집 그만두고 식당을 하신다고 마지막 날 인사를 했다. 정이 많이 들었던 터라 아쉬웠는데, 커다란 덩치의 푹신한 가슴으로 나를 퍽 안아주면서 "아놔, 음악 선생님 좋아했는데. 섭섭하네" 하더니. "식당이 이 동네니까 한 번 들러요. 남편 목사 아저씨하고 한 잔 하러 와요." 사장님, 목사 아저씨, 한 잔. 울타리 밖 언어들이 너무나 신선하고 좋다. 


올 가을 삼원색. 소국, 홍옥, 바질. 바질이 금메달!

 

 

벌써부터 1박2일 하동 여행 계획을 세워뒀다. 숙소도 물론 예약해 두었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장마 속에서 꿈을 꾸었다.  맑은 하늘 투명한 공기의 지리산 자락을 걸어야지, 걷다 지치면 차가운 계곡에 발을 담그고 가만히 물소리를 들어야지, 그러면 어느 여름 지리산 뱀사골에서 실족하여 떠난 고정희 시인과 연결될까. 막연한 계획이었다. 장마로 인해 섬진강이 범람하고 화개장터며 우리가 가려던 곳이 물에 잠겼다.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해복구 상황을 검색하고 또 검색하고. 숙소 취소 기한이 될 때까지 고민하다 이런 때는 그냥 가서 밥이라도 한 끼 사먹는 것이 도와드리는 것이다 싶어 강행하기로 했다. 그저 취소하지 않는 것, 수해복구 현장이라도 보고 오는 것을 목표로 아무 계획 세우지 않았다.

 

 

 

수해에 더하여 코로나 상황이 더 긴박해져서 다시 한 번 취소를 고민해야 했다. 숙소에 콕 박혀 있다 오자, 긴 드라이브라고 생각하자, 하고 출발했다. 이틀 내내 비 예보니 정말 아무 기대할 것이 없었다. 체크인 하고나니 아직은 그저 흐린 하늘. 이 틈에 걸어보자. 쌍계사로 갔다. 덥고 습하고. 장마 때 집에서 상상했던 그런 장면은 없었다. 그나마 한 30분이나 걸었을까. 비가 오기 시작. 비오는데 뛰어봐야 앞쪽에 있는 비를 맞을 뿐! 쫄딱 젖어버렸다. 지나서 생각하면 추억이 되겠지. 저녁 때가 되어 검색해서 찾아간 식당에선 가격에도 맛에도 배신 당하고 찜찜한 기분. 멋진 여행을 기대하지 않았고, 계획을 세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계획과 기대가 없어서 실망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밤은 위급한 상담 전화로 보냈다.

   

 

 

아침 먹고 언제 또 비가 쏟아질지 모르니 숙소 앞 개울가에나 빨리 다녀오자, 하고 나섰다. 그렇게 시작된 길, 결론적으로 상상 그 이상의 산책이 되었다. "저 동네 안으로 들어가 볼까?" 아무 기대 없이 내디딘 발걸음은 검색하다 본 '천년 차밭 길'로 이어졌다. 저 이정표! 지리산에 안긴 동네, 그 동네 마당 앞에 텃밭 같은 작은 차밭은 어디서 본 듯 한, 하지만 상상도 못해본 풍경이었다. 낯선 동네 골목길 걷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텃밭이 차밭인 동네라니. (정말) 천년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차밭 사이를 걷는 아침이라니. 

 

 

 

석류와 호두나무, 감나무, 밤나무, 연근, 도라지꽃까지 만나는 길이었다. 조용한 지리산 아래 마을 길이 우리 여행에 갑자기 끼어들었다. 튀어나왔다. 천 년 동안 그저 거기 있었을 마을이었으니 '갑툭튀'라 할 수는 없는데. 계획 자체가 없었으니 무엇이 튀어나오든 예상 밖의 일, 갑툭튀였을 것이다. 

 

 

체크아웃 시간에 임박하도록 충분히 걷고 누렸다. 그리고 다시 아무 계획 없이, 자동차 굴러가는대로 섬진강을 끼고 달리는 길. 내 남은 생이 지리산 자락 섬진강변 어느 동네와 인연이 닿는 때가 있으면 좋겠다. 마음 깊은 곳의 그리움과 따스함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풍경들로 왈랑왈랑 했다. "이런 동네에 살았으면......"  

 

 

 

고속도로 피하고 국도로. 최대한 지리산 근처를 어슬렁거리기 위해서 무작정 산청 쪽으로 가기로 했다. 아이들 어릴 적 어느 겨울, 함께 했던 여행지였다. 그래서 끌렸을 것이다. 검색해서 나오는 아무 집이나 가보자, 산청의 어느 식당에 갔다. 흑돼지 소라 찜. 오, 가격도 맛도 좋았다. 사리로 스파게티 면과 치즈를 넣게 되는 신박함까지! 새로운 길, 새로운 음식, 안해본 것 좋아하는 JP님은 대만족. "집에서 할 수 있겠네. 애들 한 번 해줘야겠다." 신메뉴를 득한 나는 더욱 만족. 

 

"지리산 근처 어디든 걸을까?" 이 계획 뿐이었고, 다가오는 일들이 그 이상의 계획을 세우지도 못하게 하더니. 결국 좋은 여행이 되었다. 나도 읽고 남편도 읽으며 각각 깊은 통찰을 얻은 리처드 로어 신부님의 책에 그런 말이 나오지. "(진실은 역설적이고 그 진실을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얼마 동안이라도 확고한 결심 없이 살기로 마음 먹는 것이 필요하다"고. 확고한 결심과 계획을 위해 너무 애쓰지 말아야 할 일이다. 계획에 어긋나는 위로와 실망이 얼마나 많았던가. 위로의 공간이라 기대하던 곳에서 상처를 받고, 찌르려고 달려오는 사람인 줄 알고 방어하던 사람의 품에서 위안을 얻고, 메마른 곳이라 여겼던 곳에 샘물을 발견하고...... 계획의 쓸모란, 그저 한 발 내딛게 하고 떠나게 하는 것.  

 

 

 

 

 

 

남편 JP와는 많은 점이 다르고,

그 이상으로 비슷해서 쿵작이 잘 맞는다 싶지만,

JP&SS 부부의 세계, 해가 거듭될수록 같은 점은 뭐고 다른 점은 또 뭐지,

싶은 것이다.

 

다만 요즘 [우리 부부의 세계]에서는 함께 걷는 것과 나무와 풀을 향한 애정에서 100% 일치이다. 

 

JP 생일을 하루 지낸 월요일,

생일에 못 먹은 미역국을 전문점에 가서 고급스럽게 먹었다.

특별한 계획 없이 차에 탔는데,

늘 그렇듯 졸음이 쏟아지더라.

 

차만 타면 그렇게 잠이 온다.

결혼 생활 21년, 남편과 차 타고 움직인 시간이 어마어마할 텐데,

그중 1/3의 시간을 조수석에 앉아 꿀잠 자며 보냈다.

 

막 떠들다 갑자기 잠들고,

아픈 엄마 보고 오며 엉엉 울다 갑자기 잠들고,

심지어 엄마 장례식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꺼이꺼이 울다 갑자기 곯아 떨어졌다고,

아이들이 놀린다.

 

꿀잠 자고 일어나니 '신구대학교 식물원' 주차장이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계획이었는데 훌륭한 선택이었다.

아주 많은 풀꽃 친구들을 만나고, 키가 큰 나무 아래를 걷는 기쁨!

 

 

 

 

 

 

풀도 보고, 나무도 보고, 뱀까지 보고.

충분히 보고 걸었을 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식물원 카페에 앉아 장대비 내리는 화원을 바라보는 기쁨.

빗소리 들으며 책 읽는 기쁨.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공들여 가꾸던 마당 꽃밭이 있었다.

계절 따라 피던 꽃들, 익숙하여 정겨운 꽃들이 있다.

아버지의 화원을 떠올리게 하는 작약이며 붓꽃이 피고 지고 있었다.

아침 햇살 받으며 꽃밭에 물 주던 아버지를 떠올리는 기쁨, 또는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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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기다렸다. 

정말 많이 기다렸어.

말은 안했지만 내심 진짜 기다렸지.

 

 

 

 

 

 

 

방학도 끝나가니 어디든 바람 쐬러 갈까도 했지만

많이 기다린 눈, 거실 앞 산에 한가득인데 널 두고 어딜 가냐.

 

 

 

 

 

 

 

이 풍경 누려보자고 치루는 비용이 얼만데,

거실 앞 산할아버지가 있잖아!

이걸로 위안 삼아 퉁치는 정서적 비용이 얼만데.

오늘 같은 날은 유리창 앞에 붙어 꼼짝 않고 누려야지. 

 

 

 

 

 

 

 

오징어 반 떡 반

오징어 떡볶이로 점심 하고.

 

 

 

 

 

날씨가 끝내주니

국물도 한 번 끝내주는 걸로.

 

 

 

 

 

미친 듯 쏟아지다 감쪽같이 사라진 너

너가 사라진 자리에는 햇살 금세 한가득

10분 만에 바뀐 그림.

 

 

 

 

 

어어어어, 녹지도 않는 눈꽃송이가!!!!

바질 화분에 함박눈 한 조각 같은 꽃이 피었다.

창밖 풍경에 내 정신을 쏙빼놓더니

그 사이에 살짝 피었니?

진짜 너, 너들, 사랑스런 너들! 

 

 

 

 

 

눈이 오면 애들이 뛰어나가곤 했는데,

애들 크고 애들 크는 사이 늙은 어른이 산보 나가고,

어른 된 아이가 늙은 어른을 찍었다. 

 

 

 

 

 

아파트 화단에 꽃이, 하얀 꽃이, 백철쭉이라는 하얀 꽃이 피었다. 

 

 

 

 

 

거실 밖 설경이 아까워 집구석을 지키던 네 식구

날이 어두워져 창밖에 뵈는 것도 없고
아쉬울 것 없으니 과감히 집을 나왔다.

 

그러고 보니 눈 오는 월요일. 네 식구 뒹굴뒹굴.... 아, 어디서 봤더라....

어머, 어머

10년 전 어느 눈 오는 월요일 추억의 추억.

데쟈뷰 놀월이다!

https://larinari.tistory.com/m/1198

놀월

남들은 놀토를 좋아한다지만 나는 놀월을 기다려요. 놀토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 아니지만 그저 나는 놀월만 기다리고 싶어요. 놀월에 온 가족이 뒹굴며 노는 것은 놀토의 여유보다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나의 행..

larinari.tistory.com

 

 

 

 

여자들의 우정. 계층, 학력, 나이, 직업이 다른 여성들의 서사가 교차하는 윤이형의 소설 『붕대 감기』

성육신에 대한 낯선,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혐오와 폭력의 종교에 맞서는 리처드 로어 신부의 『보편적 그리스도』

 

남자 사람 목사가 읽고 있는 책은 『붕대 감기』

여자 사람 작가가 읽는 책은 『보편적 그리스도』

 

그렇다.

 

 

 

 

 

 

드디어 찾아서 손에 넣었다! 남편 득템!

 

연말 연시 준비할 일이 많아 가까운 곳에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나섰다. 이천 쌀밥을 운운하며 갔는데 쌀밥도 보리밥도 아닌 인도 커리를 먹고 근처 도자기 파는 곳에 들렀다가 몇 년 찾아 헤맨 바로 그것을 발견했다. 인사동 같은 델 가면 우물, 마중물, 펌프... 하면서 돌아다니곤 했었는데 늘 실패. 도자기 가게 아이쇼핑 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내가 발견했다. "여보, 이거 봐. 당신 이런 거 좋아하잖아." 아이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찾던 거라고!!! 두 번도 망설이지 않고 펌프 모형, 옹기, 물을 올리는 진짜 펌프를 샀다. 

 

이천 아울렛에 가서 엄청 싸게 나온 신발을 보고, 마침 신발이 필요하다며 들었다 놨다 결국 놓는 것으로 끝났다. 사라고, 내가 사주겠다 해도 아직 신을만 하다며 결국 내려놓고 말았다. 신발에 열리지 않는 지갑이 신지도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펌프 모형에는 열린 것이다. 나같으먼 신발을 사겠네! 바보! 놀려보지만. 실리보다 명분을, 실용보다 의미를 사는 남편이 고맙고 좋다.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찾아다니는 열정과 기꺼이 사고마는 낭비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거룩한 낭비'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 중 특기할 만한 인물이다. 생존하고, 결국 생존하여 치유자가 된 사람이기에 그렇다.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문학가, 예술가들이 생생한 작품을 남기고도 스스로 목숨을 거둔 일이 많다. 그 생생한 기록을 읽다보면 일상으로 돌아와 계속 살아남는 것이 차라리 기적처럼 느껴진다. 빅터 플랭클을 오래, 결국 살아남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 자신이 던진 질문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왜 어떤 사람은 결국 살아남는가? 삶의 의미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살아 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 그 의미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이 극한의 사선 앞에서 버티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의미치료'를 창안하였다. 고통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으로 치유 가능하다! 단지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한 치료책만은 아닌 것 같다.

 

일상의 다른 말은 '소소한 행복'이 아니라 '미세 부조리의 축척'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은혜로 덮고, 다 주님의 뜻이 있겠지 싶어 수용하고 살지만 내 뜻대로 되는 일상이 몇 개나 되는가. 부조리한 일상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다른 말로 ‘의미'의 발견이다. 부조리 속에서 조리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견뎌야 하는 이유가 있음을 알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 의미는 보이지 않는 것이고, 이성과 논리로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용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 돈이면 옷과 신발을 사서 멋지게 보이는 게 낫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펌프 장식물을 사서 끼고 있는 것이 무슨 유익이람. 돈도 안 되는 일에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집어 치우라는 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을 위한 희생으로 자기를 소진하지 말라는 조언을 거스르는 바보같음 말이다. 의미를 발견한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의 신앙은 이렇듯 내가 발견한 십자가의 그분, 그 의미에 대한 깊은 헌신이다. 

 

"자기에게 의미가 있다고 확신할 때 인간은 엄청난 힘을 얻는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 상징들이 맡고 있는 일몫이다... 자기 존재에 대단한 의미가 있다는 느낌은, 한 인간을 단순히 소유하고 소비하는 존재로부터 보다 나은 존재로 도약하게 한다. 그런 의미를 느끼지 못할 대 인간은 자신을 비참한 존재로 인식한다. 만일 자신을 떠돌아 다니는 양탄자 직공(천막 만드는 사람)에서 더도 덜도 아닌 존로 인식했다면 사도 바울은 실제로 아무것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그의 삶의 진실은, 자신이 '주의 사자'라고 하는 내적인 확신 가운데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비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의견은 역사의 증언이나 후세의 판단 이전에 이미 퇴색하고 없다. 사도 바울로 하여금 자신을 확실하게 잡아 쥐게 한 신화는, 단순한 직업인 이상의 위대한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신화는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상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

 <인간과 상징> 카를 융

 

의미와 상징은 얼마나 소중한 낭비인가. 인간을 거룩한 존재, 초월하는 존재가 되게 하는. 보이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내적으로 깊이 품기 위한 상징으로서의 의례와 상징물들. 손에 쥔 연기처럼 빠져가는 낭비, 그러나 이 얼마나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인다. 이 부조리한 일상을 믿음으로 견디게 하는 힘은 지금 여기서 발견하는 '의미' 그것이다.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의 낭비는 과연 무엇인가. 

 

카를 융의 말처럼 인생에 '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종교이고 종교의 상징일 텐데. 인생을 더 천박하고 일천한 것으로 추락시키는 종교가, 교회가 견딜 수 없는 오늘. '실용'을 팔아 '명분'을 사는, 의미와 상징을 사는, 보이지 않는 가치에 자기를 소비하는 바보 하나를 지켜보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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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아버지 돌아가신지 38년 되는 날이다. 38년. 38년이라니! 3년도, 8년도 아니고 38년이라니. 하루 전날, 12월15일에 동생 집에서 추도예배를 드렸다. 추도예밴지, 생신예밴지, 명절인지. 아이들은 일 년 중 가장 신나는 날이다. 맛있는 것 먹고, 사촌들과 재밌게 노는 날. 축제 같은 날이다. 남편이 예배 인도를 하고, 내가 기도했다. 툭 나온 첫문장에 이끌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에 이끌려 고향 한산에 다녀왔다.

 

"하나님, 38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날, 그 겨울에는 세 식구가 남아 너무도 추웠습니다." 연이어  마 3:16-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본문으로 남편이 설교를 했다. 주제는 단연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 엄밀하게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사랑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신으로 인간이 된 아들은 사람의 몸을 입고 견뎌야 할 고통을 견뎌냈다. 바로 그 한 마디 때문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38년 전에 아버지를 잃은 동생과 내게 아버지 사랑에 관한 기억을 나눠 달라고 하였다. 사춘기 아들이 둘, 우리 현승이 귀염둥이 막내까지 아들 넷이 조르르 앉아 있었다. 나는 원래가 수도꼭지라 기도할 때부터 '고장'이 났지만. 장군인 동생도 말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아까 누나가 기도할 때 첫 문장이... 아버지 돌아가신 그 겨울이 참 추웠다. 아니,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는 늘 추웠다. 그 전을 생각하면 네 식구가 함께 있고, 한 마디로 따뜻함의 기억이다.'라고 말했다.

 

예배 마치고 밥을 먹으며 동생은 네 식구가 함께 '십계' 영화를 보고 가족탕에 갔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내게는 없는 기억이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그 이전의 기억까지도 다 검은 칠을 해버린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자꾸 '전과 후'라는 말을 했다. 같은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지만, 같은 죽음이지만 동생과 내가 기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구나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내게는 'before' 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인가, 조금 혼란스러웠다.

 

추도예배 마친 다음 날, 12월 16일. 남편과 속초 하루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밤새 꾼 꿈의 연장으로 고향의 그 길에 가고 싶어졌다. 아버지 돌아시고, 엄마랑 동생 바로 서울로 이사하고, 혼자 집사님 댁에 남겨져 있던 몇 개월. 슬퍼도 울지도 못하고, 그리워도 맘껏 그리워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지냈던 시간. 학교 가던 그 논길이 생각 났다. 12월 16일, 그곳은 얼마나 추운 걸까? 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말 없이 남편이 동행해주었고, 오가는 근 여섯 시간 운전해주었고, 추웠던 날 나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주었다. 조용히 내 뒤를 따라 걸어주었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혼자인 듯, 그러나 뒤를 따르는 남편 덕에 외롭지 않게 38년 전의 길을 다른 마음으로 걸어보았다. 문제는 오직 '추위'로 기억되는 그 겨울을 느껴고자 세 시간을 달려갔는데... 날이 너무 푹해서, 심지어 올라오는 길에 살짝 차 에어컨을 돌려야 할 정도였다. '추웠던 기억'은 떠나보내라고 더운 입김 불어 넣으시는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산 다녀온 다음 날 남편의 윗입술이 불룩불룩 하더니 툭 터져버렸다.  뭐 힘든 일이 있다고 입술이 터졌어? 월요일 운전이 힘에 부쳤던 것이다. 장거리 운전, 힘들다 힘들다 했었는데. 말없이 김기사 노릇 했지만 몸이 됐구나! 상처의 치유는 누군가 상처로부터 흐르는 피고름을 빨아 먹어주는 심정으로 견뎌줘야만 치유된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찌른다면 다뤄지지 않은 상처들 때문일 텐데. 내 인생 치명적 상처로 가장 많이 찔리고 아팠을 사람이 남편이다. 한산에 다녀온 하루처럼, 함께 하는 세월 내내 내 상처로부터 흐르는 쓴 물을 묵묵히 마셔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산 13년의 행복이 그대로 상실감과 결핍이 되어 38년 째 실락원의 방황이다. 내적 여정을 통해 그 기억을 새롭게 써가며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 만나 제가 누웠던 들것을 들고 제 발로 걸어 나가듯 이제 제대로 털고 일어나려 한다. 더는 그 추위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뜻이고, 자기연민의 늪에서 나오겠다는 뜻이다. 

 

올라오는 길, 겨울도 봄도 아닌 푸근한 날에 갈대밭을 거닐었다. 남편은 신성리 갈대밭이 참 좋았다고 자꾸 얘기한다. 다행이다. 남편에게도 좋았던 곳이 있어서. 아내의 짐을 함께 지고 슬픔에 동참하는 착한 남편에게 그분이 주신 선물인지 모른다. 배우자 선택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기 이성 부모와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데, 13년 딱 함께 살아주고 떠나 그리움만 남긴 아버지이지만 좋은 사람이었던 게 분명하다. 가만한 사람, 가만한 사랑으로 함께 하는 저 사람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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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의견의 차이 또는 갈등이라 해도 좋을 상황을 인내로 헤쳐 나가는 시간, 숨을 고르며 남편이 자주 하던 말이었다. 다르다고 생각했고, 다름의 간극이 멀어 다시 손을 맞잡을 수 있을까 싶은 시점에서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은 달래고 어르는 말처럼 들렸었다. 달래지고 얼러지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 '같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차분하게 '같은 말을 다르게 하고 있다'고 설득하는 태도 때문에 달래졌던 것 같다. 

요즘 자주 속으로 생각한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하고 있구나!" 남편과는 물론이고 아이들과도 그렇고. 많은 경우 그렇다. 3인칭 시점으로 지켜보는 '말'들은 대부분 같은 마음을 다른 언어로 표하고 있다고 느낀다. 같은 마음이란 '평화와 자유' 같은 것들이다. 화해와 연결, 이해하기 이해받음 같은 것들이다. 문제는 언어가 담은 마음이 아니라 그저 언표만을 듣고 볼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귀와 눈이다. 서로 다른 뜻(마음) 이 아니라 같은 마음 다른 표현이기에 더 어렵구나, 이런 생각도 한다.   

적어도 남편과는 '같은 말을 다르게 하고 있음'에 대해 빨리 감지할 수 있다. 그러자 우리의 차이가 보인다. 그러자 내가 보인다. 더욱 또렷이 보인다. 알고도 모르고 모르지만 알았던 내가 잘 보인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하는 지점은 에너지와 속도의 차이이다. 나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남편은 부러 천천히 뒤처져 숙고한다. 알고보면 같은 결론, 같은 뜻이다. 나는 '계획 세우기'로 뜻을 향해 나아가고, 남편은 명확한 마침표를 위해 뜻을 갈무리 한다.  말을 하다보면 간극이 엄청나지만 뜻이 같고, 바라보고 있는 곳이 일치한다.

안성의 있는 미리내 성지를 걸었다. 같은 뜻으로 걸었다. 뜻을 담은 소리가 달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알아듣는 귀가 생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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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성서한국에서 만난 학생이 하나 있다. 강의 후 개인적인 질문을 해왔는데 바로 다음 강의를 시작해야 해서 답을 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아니, 단지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 두 마디 답이 아니라 잠시라도 대화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미리 잡힌 상담 스케줄이 있었지만 틈새 시간을 빼서 만나자고 했다.

내용은 이렇다. 목사의 딸이다.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여러 이유로 고통스럽다. 교인들 시선이 부담되어 불편하고 싫다, 교회를 떠나고 싶지만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신다. 아니, 그래라 허락하셨다 다시 안 된단 번복하신다고 한다. 목사 딸로 사는 게 부담된다는 그 이상의 마음이 느껴졌다. ‘나답게 진실하게 신앙생활 하고픈 간절함’으로 읽혔다.

부모님이 딸을 설득하며 대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 ‘교회에서 네 등록금을 대는데 네가 다른 교회를 가면 어떡하냐’이다. 이 문장을 들을 때 다리가 풀렸다. 강의에서 이미 말했다. ‘부모를 떠나야’ 자기 발로 서는 신앙, 삶을 살 수 있고 그것은 갈등을 자처하는 일이지만 궁극적으로 더 성숙한 사랑 하게 되는 일이라고. 그 이상의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교회에서 주는 등록금은 아빠 직장의 복지이다. 목회자인 너의 아빠와 교회 사이의 문제다. 그 돈에 대한 채무감은 네 몫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내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목사 딸인 학생에게도 그 부모님에게도 감정이입이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늘 말한다. 아빠가 목사인 교회가 힘들면 언제든 교회 옮겨도 된다. 아이는 대번에 그런다. “엄마 아빠가 입장 곤란해지잖아” 곤란함은 엄마 아빠 몫, 엄밀하게 말하면 목회를 선택한 아빠의 몫이니 그 짐을 너까지 질 필요는 없어” 이렇게 말하지만 마음까지 쿨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학생 부모님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등록금 얘기에서 읽히는 ‘밥벌이로써의 목회’의 무게 또한 공감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에게 하듯 확신을 갖고 말했다.

학생은 부모님을 맞서는 게 두렵다고 했다. 설령 자신의 뜻이 관철된다 해도 부모님이 교회에서 겪어낼 시선이나 여파를 상상하면 두렵다고. 거기까지 얘기하고 헤어졌다. 돌아와서 자주 그 학생을 떠올렸다. 떠오를 때마다 기도의 마음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딱 한 달이 지난 9월 첫날 아침에 기적처럼 학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부모님과 대화를 잘해서 좋은 타협안을 찾았다고. 청년부 예배에는 가지 않고 대예배만 드리기로 했다고. 대화로 얻은 이 결과는 자신의 가족에게 있어 엄청난 도전이고 변화라고! 감동이다.

누가 정해준 답이 아니라 학생 자신이 맞서서 얻은 결과, 얼마나 소중한가. 헤어질 때 그 불안한 표정 잊을 수 없다. 그 불안과 두려움에 머물러 대면할 수 있어서 얻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목사님 또한 큰 용기를 내신 것일 터. 학생의 말대로 그 결과를 얻기까지의 대화는 가족에게는 큰 도전이며 변화였음을 알겠다. 학생은 물론 그 아버지 목사님, 가족에게 마음의 응원을 보내게 된다.

(‘아이가 견뎌야 할 가장 큰 짐은 바로 부모의 무의식적인 삶이다’라는 제임스 홀리스의 말에 아프게 동의한다. 청년들 만나 상담하다보면 그들이 끙끙거리며 지고 있는 짐은 대부분 부모가 자기도 모르게 지운 집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물며 목사의 딸, 후보자의 딸이라는 이름을 달고 대놓고 부모의 짐을 지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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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일, 결혼 20주년 기념일이다.

결혼식 당일 오전에 도산공원에서 야외촬영을 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사람 뿐이다.

야외촬영에선 저 사진의 철쭉이 진홍빛으로 강하게 남아 있을 뿐.


20년이나 살았다니, 내가 김종필과 20년을 살았다니, 헐헐헐.

자꾸 노래를 부르니 남편이 그런다.

왜애? 억울해? 너무 오래 살았어? 5년만 살려고 했어?

아니, 청년 김종필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그 사람과 20년을 살았다니 말이야.


눈 뜨면 베란다 창에 매달려 있다.

미세먼지 가득한 봄날을 견디게 해준 고마운 풍경이다.

저 풍경이 아니었으면 미세먼지 스트레스에 폐암이 걸렸을지 모른다.


20년 전 5월1일도 저렇듯 푸르렀겠구나.

결혼식 마치고 양평길을 드라이브 했지만 저 빛깔을 본 기억이 없다.

온통 사람이었다.

20년이 지났고, 50 나이를 먹은 덕에 나무 하나하나가 보인다.

지구에 사람만 있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무가 있고, 새가 있고, 들풀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결혼기념일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문득, 남편 김종필이 참 좋고 고마워서 아이들과 있는데 말했다.

엄마는 엄마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알았어. 뭔 줄 알아?

아빠를 만나기 위해서였어. 아빠를 만나러 이 세상에 태어났어.

사춘기 현승이는 비위가 안 좋은지 슬며시 자리를 떴다.


그가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모습을 본다.

무력하게 지켜본다.

저 사람만의 사막 필살기를 지켜보며 내가 배웠고 성장했다. 

그것이 처음부터 좋아 보이진 않았었다.

좋거나 나빠 보이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그가 존재하는 방식, 그가 인생의 사막과 강을 마주하는 방식에 이제 난 입을 닫는다.

깊이 존경한다.


사춘기 아들도, 블로그 독자도 느끼해 속이 울렁거리겠지만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 

저 사람을 만나 인생 30대 이후를 함께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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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고 양치질을 하려다 덩그러니 꽂힌 그의 칫솔과 눈이 맞았다.

헤 벌어진 모양이 그의 늘어진 런닝셔츠 같았다.

울컥 뜨거움이 밀려 올라왔다.


칫솔 떨어진 거 체크하고 사다 놓을 줄은 알아도 쉽게 바꿔 쓸 줄은 모르는 사람.

사다놓기 무섭게 새 것 좋아하는 두 여인이 바꾸고 또 바꾸는 사이

여전히 헤 벌어진 채로 꽂혀 있는 그의 칫솔.


새 칫솔을 하나 뜯어 꽂아 놓았다.

새 칫솔도 어쩐지 헤 벌어진 낡은 칫솔처럼 보이니 이건 무슨 조화냐.

허세를 모르는 주인을 벌써 닮은 것이냐.


그가 내게 주는 사랑은 날마다 새로운데, 

그의 칫솔은 새 것을 꺼내 놓아도 낡아 측은하니 양치질 하는 손이 느려지고 느려진다.

그의 오늘이, 그의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길 기도하다 내 이가 다 닳겠네.

아직 쓰지 않은 그의 새 칫솔을 오래 들여다 보며, 오래 양치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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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셨던 오빠가 앞산을 보시며 

"상록수가 좀 있어야 겨울에도 푸르른데, 상록수가 하나도 없구나." 하셨었다. 

아, 그렇구나. 산의 갈색이 유난하다 싶었더니.


겨울산, 겨울나무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겨울나무를 보면 주문을 걸며 눈을 흐리게 떴다. 

어서 봄이 와라. 어서 봄이 와서 푸르러져라. 금방 봄이 올 거야. 봄이 올 거야.


오빠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내게 상록수가 필요하지 않다.

이 쓸쓸하고 슬픈 겨울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오지 않은 봄을 가불하여 환상으로 도피하지 않고 그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겨울산의 겨울이 참 길구나 싶었다. 

작년 12월 17일에 이사 왔는데, 길가에 개나리가 피었는데 산은 아직도 겨울산이다.

겨울이 참 길구나! 그래도 산이 있고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있으니 춥지 않다. 슬프지도 않다.


남편은 "산 색이 달라졌어. 안 보여? 얘들아, 안 보이니? 보라색으로 바뀐 거야."

혼자 UFO를 본 것처럼 흥분하고 그러는데, 애들은 물론이고 솔직히 나도 감흥이 없다.

도대체 뭐가 달라져다고? 


봄은 왔지만 바람은 찬 월요일에 앞산에 올랐다.

따뜻하게 입고 노부부처럼 말 없이 1열종대로 걸어 산에 올랐다.

손톱만 한 연두색 초가 미약하게 봄을 밝힌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다음 주가 되면 일제히 봉우리를 터트리겠네!

진달래도 분홍빛 초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칙칙하다.  


종필 님의 마음을 뺏은 보라빛의 실체 확인!

고개들어 본 높은 가지에도 아기 같은 새순이 가득하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대놓고 초록은 민망하다며 겨울산 품은 갈색으로.


찬바람 쌩쌩 봄의 산을 올랐다 내려간다.

이쯤엔 시나 노래가 하나 튀어나와야 제격이지.


산 밑으로 마을로 내려가자 

내 사람들이 또 거기에 있다.

맨발로 맨발로 내려가자 

내 그리스도가 또 거기에 있다.  


홍순관 <산 밑으로>


내려오는 길목엔 쓰러져 누운 큰 나무 한 그루. 에고, 어쩌다!

그 옆엔 쓰러지는 나무에 치어 덩달아 화를 입은 작은 나무 한 그루. 에고, 너는 또 무슨 죄냐!


산 밑으로 마을로 내려가자 

내 사람들이 또 거기에 있다.

맨발로 맨발로 내려가자 

내 그리스도가 또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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