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하고

참하고

조신하고...

 

천상 남자가 깎아 담은 과일

 

만다라 모양이라 더욱 치유적이다.

 

그리고

저 곱디 고운 과일 만다라를 만드는 섬섬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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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때문이야! 종끼아빠!

윤채김!

으, 종끼아빠!

윤채김!

 

아빠와 딸이 사랑과 신뢰와 애정을 확인하는 소리. 하루에 열 번은 맥락 없이 하는 소리. 저녁 안 먹고 늦게 들어온 아빠와 딸이 야식을 두고 마주 앉았다. "윤채김! 너는 왜 니 꺼만 가져와. 아빠도 챙겨줘." "으으... 종끼 아빠...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그리고 뭔가 조화로운 듯 아닌 듯 이어지는 저들의 대화.

 

아빠가 달라스 윌라드 다시 읽거든. 이번이 세 번째야. 아, 아빠는 영어를 못하는 게 너무 한이 돼.

왜애?

유튜브에 달라스 윌라드, 유진 피터슨 영상이 많거든... 잘 들렸으면 좋겠어.

아빠는 우리말도 잘 못 알아듣잖아. 

맞아... ㅠㅠ 그렇지. 그래도 영어 잘하고 싶다.

(엄마 난입) 내가 그 마음 알지. 나 코스타에서 마르바 던이 바로 앞에 계신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고, 심장 뛰고 그러는데...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그 심정 내가 잘 알지.

당신은 표정으로 다 말하잖아. 표정으로 하지 그랬어? 암튼 난 그래서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

뭐라고? 아빠! 영어를 못해서 빨리 죽고 싶다고?????? 

 

 

언어로 막힌 담이 허물어져 모든 영혼과 프리 토킹 하는 천국에 가고 싶다는 뜻인데...

일단 거기 가면 아빠와 딸의 소통부터 막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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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입의 어느 월요일.
이틀 전 토요일에 심방 다녀온 횡성에 가자고 했다.
꼭 걸어보고 싶은 길이 있다고.
무엇을 선택하기가 제일 귀찮은 요즘, 누가 나를 어디든 데리고 갔으면 좋겠는 요즘,
기대도 저항도 없이 따라나섰다.

막국수나 두부냐. 점심을 놓고 고민하다 막국수로 정했다.
JP이 토요일 심방 갔다 먹은 점심은 두부였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고.
아무리 맛있어도 토요일에 먹은 걸 월요일에 또 먹게 하기는 그래서 막국수로 정했다가.
또 먹을 수 있어, 또 먹을 수 있어, 라는 말에 힘입어

과감히 두부로 전향하여 정말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먹고 싶어' 아니고 '먹을 수 있어'가 영 찜찜하긴 했지만)

걷고 싶은 길, 횡성호수길에 도착했는데...
걷고 싶은데,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걸을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비가 쏟아질 것 같았고, 바람은 무지 불었고, 추웠고...
일단 들어가 보자는 말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50m 정도만 걷고
"추워서 못 걷겠어"하고 나올 생각이었다.
당당하게 걸을 것 같은 표정으로 사진은 찍어주었다.

A코스 1시간 30분, B코스 1시간 30분 걸린단다.
바람은 장난 아닌 찬바람이었다.
그 바람을 맞으며 걷자니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얼얼했다.
적당히 뒷걸음질 치려고 했는데,
얼른 도망가서 호수 바라뵈는 카페에 앉아 책 보고 놀 생각에 설렜는데..
뚜벅뚜벅 전진하며 JP가 말했다.
한 시간 삼십 분 알 걸려! A코스 금방 끝날 거야.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었다.
JP의 말이 아니라 눈앞의 풍경들 말이다.
잠바에 달린 모자를 꽉 졸라매 쓰고 나도 전진했다.

돌아갔으면 어쩔 뻔!
이런 식상한 표현은 하고 싶지 않은데...
정말 놓치면 안 되었을 멋진 풍경들이 구비구비 펼쳐졌다.
좌江우山.
이렇듯 신비로운 풍경이라니!

도망갈 마음이 싹 달아난 내 마음을 알아채고 비로소 앉아서 쉴 수도 있게 된 JP.
A코스를 다 걸었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세찬 바람에 적응도 되었다.
가즈아~ B코스.

B코스에서는 더 멋진 장면을 눈에 담았고.
마지막에 빛을 만나고야 말았다.
JP은 빛을 이렇게 담고 저렇게 담으면서 오래도록 서 있었다.

A, B 코스 다 도는데 두 시간쯤 걸렸을까?
우리가 생각보다 잘 걷는 중년이었다.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생각보다 즐겁게, 더 멀리 걸었다.
후유증은 있었다.
찬바람을 직통으로 맞은 탓인지 JP은 이석증이 재발했고, 감기도 걸렸다.
그래도, 그러나 즐겁게 멀리 걸었으니까.

그 주간에는 연구소 지도자과정 마침 피정이 있었다.
남편이 와서 마침 예배 성찬식을 이끌어 주었다.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자기 안에 고인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누어 주었다.
진심으로 고맙다.
목사인 김종필이 아니라 김종필인 목사라서 고맙고 자랑스럽다.
목회의 찬바람을 맞으며 후유증도 있지만,
후유증에 지지 않고 선善으로 후유증을 이겨나가는 JP라 고맙다.
성찬식 사진처럼 딱 저 정도의 거리를 두고 함께 걷는 인생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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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 피아노, 현승이 기타에 맞춰 노래하는 일이 있었다. 집에서는 가끔 있는 일이다. 둘이서 피아노와 기타로 노는 일이 흔하고, 가끔 거기 끼어 노래를 한다. 전문가 채윤이, 나름대로 실력 있는 현승이가 많은 걸 포기하고 옛날 스타일에 맞춰주는 방식으로. 교회 추수감사 주일 행사에 가족이 함께 노래를 했다. 종필, 나의 기타 맨 종필이 기타를 매는 게 가장 익숙한 그림인데. 아이들이 반주를 하고 우리 둘은 에그 셰이커를 흔들었다. 같이 노래한다 해도 어차피 목소리 크기나 기운으로나 내가 솔로 하는 느낌이 된다.

20년도 더 된 어느 감사주일 전날 밤, 그리고 그 감사주일이 생각난다. 그때도 교회에서 찬양제가 있었고 청년부도 한 팀으로 무대에 서야 했다. 청년부는 토요일에 평택에 있는 집사님 별장에 가서 고기 먹고 놀고 찬양 연습을 하며 거의 밤을 지새웠다. 모닥불 앞에 모여 하염없이 노래하고 수다 떨며 시간 보냈을 텐데. 기타 맨은 김종필이었다. 우리는 사귀는 중이었고, 거의 헤어지는 중이었다. 한 공간에 마주 앉아 있는데 마음의 거리는 천 리 만 리. 그 쓸쓸하고 아픈 공기는 여전히 어렴풋 살아온다. 그 감사주일 행사에서 불렀던 찬양은 지금 불러도 그 느낌을 소환해낸다.  

헤어진 후 가장 아프게 남은 이미지는 평택의 그 밤 기타 맨 그의 모습이었다. 무슨 노래를 시작해도 척척 반주해내는 실력. 오직 기타 소리로 드리우는 무거운 존재감. 과묵한 겸손함이 참 아름다웠는데, 그 사람이 더는 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이었고 슬픔이었다. 곡절 끝에 다시 만나 결혼했으니 "놓치지 않을 거예요!" 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다. 남편과 결혼식 축가에 많이 불려 다녔다. 그게 아니라도 마음 울적한 날에 둘이 앉아 기타 치고 노래하는 날이 많았다. '금영 노래방, 아리랑 반주 기계'라 불리는 기타 맨 김종필이 내 인생의 반주자라 참 좋았다.

채윤이야 이제 전문 음악인이고, 현승이 기타 소리도 꽤 들을 만하다. 세련된 주법과 기술로는 아빠를 능가한지 오래다. 그런데 둘 다 방구석 음악인이라 교회고 어디고 무대에 서는 것엔 질색 팔색이다. 언젠가 둘이 건반과 기타로 놀고 있기에 "엄마빠 추억 담긴 노래다"하고 던져줬다. 며칠 지났는데 현승이가 기타 소리를 똑같이 카피해서 연주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다 추수감사절 가족 찬양까지 하게 되었다. 아빠도 기타를 치네 마네 했는데, 프로듀싱 감각 탁월한 채윤이 지도에 따랐다. 엄마 아빤 에그 셰이커 챡챡!

기타 맨 김종필만으로도 내 인생의 반주자는 충분하고 과분했는데. 반주자가 셋이다. 게다가 셋 모두 실력파. 내가 이렇게나 복이 많다. 2021년 감사주일의 감사. 주님, 제 인생에 반주자를 셋이나 주셨어요. 다시 태어난다면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일상을 뮤지컬로 살게 해주셨네요! 사실 노래 반주만 해주는 게 아니다. 나이 탓인지, 부실한 몸 때문인지 집안의 사건사고가 거의 나로부터 시작된다. 약약약 강! 약약약 강! 이런 식으로 한 번씩 강력사고도 저지른다. 그 구구절절한 사고의 디테일은 차마 글로 내놓을 수가 없다. 반주자 셋이 바로 캐릭터 바꿔 사고처리 요원이 되기도 한다. 내 인생 반주자가 셋, 사고처리 요원이 셋. 고마움도 세 개, 미안함도 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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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길이야?

이런 길 원했어?

원하던 길이야?

 

세 번을 물었다.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작나무들이 섰는 길을 지나며 한 번, 좁은 오솔길에서 다시 한 번, 산을 내려와서 한 번, 그렇게 세 번을 물었다. "이 정도면 까다로운 정신실이 만족했겠지" 세 번 다 남편 딴에는 흡족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답이 있을 수 없다. '원하던 길'이 애초 있었던가.

 

오늘은 뭐 하고 싶어? 

음, 숲을 조금 걷다가 카페 가서 원고를 쓸까?

 

이게 전부였다. 숲과 카페를 함께 엮었으니까, 식물원 같은 곳을 상상했던 것 같다. 걷고도 싶고, 원고도 써야 하니까. 조금 걷고 원고는 많이 쓰는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 걸었는데 몸은 많이 가벼워지고, 잠깐 앉아서 썼는데 원고는 완성을 해버리는 그런 상상을 했던 것 같기도. 폭풍 검색을 하더니 집 근처 걷기 좋은 숲을 찾아냈고, 언제나처럼 지도를 보며 요기조기 이끌었다. 남편은 늘 선택해 놓고 욕먹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안에서 언제든 눌리길 기다리는 불평불만 버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길이 아니었다, 내가 걷는다고 했지 등산한다 했냐, 그늘이라고 하지 않았냐, 한 시간만 걸을 거였는데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된 거냐... 충만히 장착되어 있다.

 

원하던 길이야?

 

물을 때는 아마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을 때일 것이다. 자신도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원했던 그 길이라는 뜻이다. 걸으면서 나도 가만히 내게 물었다. 원했던 길인가? 원했던 길은 늘 막연하다. 대충 좋을 것이라는 불성실한 상상, 좋아야 한다는 환상을 섞어 그리게 된다. 그리고 기분에 따라 원했던 길이다, 아니다,를 정해버린다. 물론 여기서 끝나지 않고 기분이 좋지 않다면 '남(편) 탓' 하기까지 가야 풀코스다. 산에서 내려와서 주차한 곳까지 땡볕을 걷는 게 고역이었는데, 그 길 중간에 해바라기가 저렇게 그림처럼 피어 있었다. 두어 시간 걸었던 산길의 기억이 싹 지워졌다. 환하게 피어난 해바라기 한 송이로 남은 길이 되었다.

 

원하던 길이야?

열흘 넘게 이 말이 가슴에서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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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결혼 :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이런 책을 공저로 낸 부부이다. 서로 사랑하는데, 각각 괜찮은 사람인데, 이 지점만 가면 같은 패턴으로 맞서다 어설픈 화해, 돌아서서 깊은 좌절로 끝나곤 했었다.

남편은 판단하지 않는 사람,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사람,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자신이 변화되고자 돌아보고 돌아보는 사람...이지만 마음으로 늘 계획표가 있고, 시간이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다. 사랑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지만 끝날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대화가 힘든 사람이다. 그런 남편을 나는 '인색'이라고 부르며 자주 좌절했다.

나는 나름대로 눈치가 있고 웬만큼 낄끼빠빠도 잘 하지만, 뭐 하나에 꽂히면, 특히 부정적 감정에 꽂히면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앞에 앉아 있으면 끝도 없이 말을 하는 지나친 '열정'의 소유자다.

'열정'이라 불리는 끝이 없는 말과 '절제와 인색'이라 불리는 끝을 정한 시간 사이에 교차점을 찾을 수 없었고, 가장 큰 갈등은 늘 여기서 시작했다. 시작은 같지만, 불똥은 어디로든 튈 수 있었다. 육아, 가사 분담, 진로, 시어머니를 비롯한 복잡한 인간관계... 어떤 주제로든 튀어 옮겨 붙어 가끔은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불길이 되기도 했다. 사소한 줄 알면서 쉽게 넘어서 지지 않고 극복되지 않아서 더 깊이 좌절했는지 모른다. 어떤 관계에서든 '선의의 해석'을 하고 보는 남편에겐 사소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남편이 늘 먼저 사과했다. 사소한 생각 하나로 가지를 쳐 최악까지 가곤 하는 나는 그렇지 않았다. 끝까지 들어주지 않고,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을 몰아세웠다. '끝'이 어디인지, 영혼을 담아 듣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오면 "그래서 당신이 안 되는 거야!"라고 했다. 다 큰 애들의 관전평은 '엄마의 가스 라이팅'이었지만, 내 열정은 포기를 몰랐다.

얼마 전 남편과 저런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변했다. 진심 어린 문자이다. 남편은 끝까지 충분히 들어주었고, 심지어 따뜻하게 공감해 주었다. 어느 커플에게는 가장 쉬운 일일 텐데 말이다. 우리는 22년이 걸렸다.

22년 포기하지 않고 남편을 압박한 나의 끈질김을 스스로 칭찬한다. 순한데다 성찰적이기까지 한 남편에게 감사한다. 대충 만족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서로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성장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의 아팠던 시간들을 소중히 새긴다. "오늘은 기도하지 않을 거야!" 내게 아픔을 준 남편을 용서하게 될까 두려워 기도하지 않겠다 결심한 '유치한 기도'들이 떠오른다. 유치하여 정직한 기도였다. 실망하지 않기 위해, 좌절하지 않기 위해, 선의의 해석을 위해 혼자 성찰 일기를 쓰고 고통스러워했을 남편만의 정직한 기도 또한 알겠다. 22년 기도의 열매다. 저 문자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아무도 그분께서 원하시는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가 될 수 없듯이 우리 삶 전체도 마찬가지이다. 바울은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줄조차 모른다고 말한다(롬 8:26). 그렇다면 우리는 기도하지 말아야 할까? 절대 아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26절) 하시기 때문이다. 그 성령께서 우리의 모든 대인관계 속으로 들어오신다. 우리가 그분을 모셔들이고 바라보며 계속 최선을 다한다면 말이다. 달라스 윌라드 <마음의 혁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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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일 늦잠 자.
나 내일 학교 가는 날인데, 알아서 아침 먹고 나갈게.
미역국 데워서 밥 말아먹으면 되잖아.
일찍 일어날게.
엄마, 신경 쓰지 말고 늦잠 자. 알았지?”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왔는데 마스크도 벗기 전 내
눈만 보고 (가슴형) 현승이가 말했다. 나도 모르는 내 맘 알아줘 눈물이 난다.

“엄마, 손 씻었어? 빨리 손 씻어. 엄마 손 잡게…
아우, 그냥 씻어! 나갔다 왔으면 손을 먼저 씻어야지.”

마스크 벗고 뭘 좀 먹겠다고 식탁에 앉았는데
(장형, 본능형) 몸으로 사는 채윤이가 말했다.
뽀독뽀독 손을 씻자니 딸내미 사랑이 벌써 몸으로 느껴진다.

“당신 내일 늦잠 자. 울려는 거야, 참는 거야?
에고… 힘든 거다. 힘든 거야... 내일 늦잠 자.”

수요 예배 마치고 늦게 들어온 (머리형) 남편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내 넋두리 들어주곤,
이해한다는 말 대신 늦잠 자라고 한다.

 

----------


내가 너무 갖추고 산다.
이보다 더 갖추고 살 수가 없다.
뭐 부족하다 불평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참으로 갖추고 산다.

주님, 감사합니다!
불평과 자기 연민은 거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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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맡에 놓인 두 권의 책 제목에서 '기쁨'이 교차한다. 기쁘다. 모처럼 남편과 같은 주제의 책을 읽는다. 독서에 관한 한 서로 취향 존중, 개성 인정, 상호 불간섭이라서 더 기쁘다. 나는 박정은 수녀님의 신간 <생의 기쁨>이고, 남편은 짐 와일더의 <기쁨은 여기서 시작된다>이다. 서로 꽂힌 주제라 다 읽고 난 후에 바꿔 읽을 가능성도 높다. 저 두 책 사이에 달라스 윌라드의 <마음의 혁신>을 끼워 넣으면 나름 그와 나의 독서 여정에 맥락이 통한다. 내가 동시에 읽고 있는 책이 짐 와일더의 <달라스 윌라드와의 마지막 영성 수업>이기 때문이다. 지도자 과정에서 여름 방학에 <마음의 혁신> 함께 읽기 중인이라 자연스레 닿은 책이다. 저자인 짐 와일더가 교집합이지만, 결국 달라스 윌라드 슨상님의 가르침에 대한 관심이다. 영성 수련의 종착역 내지는 동력이 '기쁨'이라는 것을 이제 와 새롭게 알아듣게 된다. 거창하게 영성 수련이라기보다는 "마음은 어떻게 변화되나?"라는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이랄까.

엄마 뱃속부터 인상 쓰고 있었을 것 같은 남편은 물론 프로 불편러인 내게 '기쁨'은 가까운 감정이 아니다. 물론 나는 재밌는 것을 무조건 좋아하는, 농담 따먹기를 목숨 걸고 하는, 웃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다. 이런 이유로 '기쁨'에 대해서 좀 안다고 자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진짜 기쁨을 몰라서 '웃기는 것'에 집착했다는 것을 조금 깨달아간다. 그러나 여전히 웃기고 재밌는 것은 아름답고 좋은 일이다! 남은 생애 기쁨을 더 많이 발견하며 살아야겠다. 남편과 함께 늙어가며 마음을 맞춰, 힘을 모아 발굴해가면 더 좋겠다. 마침, 오늘 아침 연구소 카페에 나누는 읽는 기도는 이현주 목사님의 <하루 기도> 중 이런 내용이다. 이현주 목사님은 또 누구인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남편과 나를 이어준 중매쟁이 아닌가. 기쁨에 꽂힌 8월 어느 날, 그분께로부터 오는 응답으로 듣는다. 관광 비자로 살아야지!

 

어떤 사람이 꿈에 천당엘 갔는데
보는 것마다 신기하고 재미있고 즐거웠답니다.
그런데 그가 죽어 진짜 천당엘 와서 보니
지난번 꿈에 본 천당과 너무도 다른 거예요.
재미도 없고 신기할 것도 없고 별로 즐겁지도 않은 겁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물었지요.
"지난번 꿈에 본 천당과 너무나 다릅니다.
왜 이렇게 달라졌나요?"
천사가 대답하기를,
"여기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이 모두 그대로다.
그런데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지난번에는 관광 비자로 왔던 네가
지금은 이민 비자로 왔기 때문이다."

아, 주님, 이제부터라도 이 세상을
관광객으로다녀가는 비결을 배워야겠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고 즐거울 테니까요.

이현주 <하루 기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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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국민의 숲을 걸었다. 비 예보가 있다. 차에 우산이 없었고, 있다 해도 우산을 들고 들어가진 않았을 것.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것을 땅바닥을 보면 알 수 있다. 해가 들었다 났다 하면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그림자 그림이 예술이었다. 가다 말고 가만히 카메라 드리우고 서있어 보았다. 작품이 나타났다. 1분 25초짜리 영상 안에 하늘, 해, 구름, 나무, 바람이 다 들어있다. 가만히 서 있었는데, 숨만 쉬며 서 있었는데 이렇게 멋진 선물을 받았다.

 

산악인 엄홍길 씨 인터뷰에서 들은 말이다. "산이 받아줘야 한다" 산을 정복하기 보다는 "받아달라, 받아달라"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등반을 한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 산이 받아준다.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산이 받아주고, 숲이 안아주는 느낌. 이래저래 마음을 못 잡고 드라마 정주행으로 다스리고 있는데, 남편이 '어디 하루 가자'는 말을 하루 전에 했다. 강의 중 쉬는 시간에 숙소 예약을 했다. '어디 하루'의 유일한 조건은 숲이었다. 산에 안겨 하룻밤 자고 오는 것.

 

의도한 바는 아닌데, 찍고 찍힌 사진을 보니 숲에 안긴 느낌이 여럿이다. 대관령 어느 목장의 숲길, 국민의 숲, 월정사 전나무 숲에 이렇게 저렇게 스며들었다. 안겼다 해도 좋고 스며들었다는 것도 맞다. 그분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 그분의 품에 안기는 것이 이렇듯 가까운 일이다. 자연 안에서 가만히 숨을 쉬고 있으면 그분에게 스며들거나 그분이 내게 스며드신다. 산에 안겨 하룻밤 보내고 싶었던 것은, 숲에 안기고 싶었던 것은 그분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흰꽃이 고개를 푹 숙이고 피어 있었다. 처음 보는 꽃이다. '함박꽃나무'란다. 이름을 듣고 보니 꽃 모양 생긴 것이 함박꽃 같다. 함박꽃나무, 함박꽃나무. 불러줄 이름 하나를 익혔다. 초록잎에 가려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함박꽃나무의 꽃이다. 저러고 조용히 피어 고요하게 제 시간을 살겠지. 그 숲에 누가 있으나 없으나, 누가 봐주거나 말거나 제 존재를 꽃피우겠지. 숲에 스며 피고 질 함박꽃나무의 꽃. '숲며들다' 숲 안내도에서 스쳐 지나듯 본 말이다. 숲며들다, 숲며들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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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이거 신발이 왤케 귀엽냐.
꼭 신고 도망가게 생겼네.
안 되겠다. 숨켜놔야겠다.

 


저렇게 혼잣말을 크게 하며 들고 다니더니 소파 뒤에 놓았다. (밖에서 신었던 신발인데...) 소파 밑에 숨기려 했나 봄. 둔한 줄 알았는데 솨롸있네, 김종필. 애들도 다 컸겠다, 날개옷만 찾으면 도망가야지, 하고 있는데. 그걸 눈치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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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대는 파티 본능을 22주년 결혼기념일에 쏟아부었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대놓고 풍선 불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걸 그냥 못 본 척해주기로 하고. 모처럼 설교 없는 주일 전야라는 미명 하에 나는 맛있는 걸 좀 만들고, 그렇게 파티를 했다. 아, 발단은 결혼사진 액자였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꽁꽁 싸매 둔 액자가 나왔는데, 결혼기념일 당일 아침 <탕자의 귀향>이 있던 자리에 한 번 배치해봤다. 모처럼 다들 심심한 터라, 이때다! 싶어 시간과 에너지를 과소비 하게 된 것 같다. 22년 전 사진 앞에 서니 세월이 보인다. 신부와 나를 비교하면 그 세월이 더 잘 보이지만 남편을 희생시키기로. 데코레이션이며 사진이며, 김채윤 감독의 공이 크다. 월요일 아침 "오늘은 뭐하지?" 검색 놀이에 '키조개 삼합'이 걸렸다. 대천해수욕장에 넷이 함께 다녀왔다. 마침 봄방학인 현승이, 곡 작업으로 스트레스가 꽉 찬 채윤이, 월요일엔 일단 놀아야 하는 종필과 신실, 의기투합 했다. 22주년 결혼기념일로 며칠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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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지? 오늘 밤에 아빠가 없네?

(눈빛 초롱초롱)

그러면 오늘 밤에 우리 셋이 파티? 

 

남편 또는 아빠가 1박 2일 콜로키움 참석 차 오랜만에 집을 비운다. 채윤, 현승 두 아이와 각각 나눈 눈빛, 그리고 대화가 어쩌면 그렇게 똑같다. 하아, 이런 본능, 이런 파티 본능. 어릴 적에 엄마가 일주일 씩 기도원 가곤 했는데. 그 주간은 동생이랑 번갈아 가며 격일로 친구 부르고, 합동으로 교회 친구들 불러서 놀고 그랬었지. 김종필 아빠는 가부장적인 아빠도 아니고, 권력 서열로 치면 우리 집에서 그리 높은 편도 아닌데, 아빠가 없는 밤에 왜 셋이 파티를 하고 싶지? 파티를 한다면 더 좋아할 사람이 아빤데... 뭔가 나는 이긴 기분이 들고,  "역시! 아이들이 엄마를 친구로 생각해주는 거야!" 좋아서 코 평수가 넓어졌다 좁아졌다, 했다. 그런 나를 또 알아챈 현승이가 콧구멍에 찬물을 끼얹어 주었다.

 

엄마, 그런데... 넷 중에 누구 하나만 없어도 그런 생각이 들어.

엄마가 어디 가도 우리 셋이 그래.

 

그 말에 기분이 잡치기도 했고, 불금에 채윤이는 작업할 게 많아 늦게 들어온다고 하지, 현승이는 혼자 영화 볼 계획이라고 하지. 떡볶이에 돈까스 올려 셋이 점심으로 먹고 깔끔하게 파티 본능 넣어두기로 했다.

 

혼자 김치찌개에 저녁 먹고 어쩐지 더 쓸쓸한 불금. 

우쒸, 김종필이 보고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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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루틴이 있는데, 아침 6시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뭘 하는 줄 알아? 커피 물을 끓인대" 정확히 남편이 이 말을 하고 난 후였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커피를 어떻게 내려 드실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 순간 커피 물 끓이려고 물을 받아놓은 주전자에 원두 두 스푼을 갖다 넣었다. "어흑, 나 무슨 짓을 한 거야? 정신 나갔어 정말?!" 이름에 부합하는 짓을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내 이름 정신失. 

다시 생각해 보니 나름 정신에도 길이 있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커피를 어떻게 내려 드실까?' 생각하는 순간 '모카포트'가 떠올랐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라면 모카포트가 아닐까? 바로 이때 모카포트에 커피 분말을 채우는 이미지가 떠올랐고, 나는 눈 앞에 있는 전기 주전자에, 커피 분말 대신 홀빈 원두를 그냥 투입한 것이다. 머릿속 이미지에 충실하게.

 

그랬구나! 정신줄 놓고 사고 치는 일에도 다 사연이 있구나. 어쩌면 그 바로 전의 열띤 토론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예전 젊을 때 친구 집에 놀러갔다 친구 부모님의 대화(말싸움?)를 생생하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귀가 이따 만 하게 커져서 안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끝까지 집중했던 기억. 말복이라 날씨가 덥네, 이렇게 시작하신 것 같다. 말복이 뭐가 덥냐 중복이 더 덥지, 이렇게 받아치셨나? 와아, 말복 중복으로 끝도 없이 논쟁을 하시고 나중에 친구 아버지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시는 거였다. 이렇게 사소한 일로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싸우시다니!!! 두분 서로 많이 사랑하시는구나... 친구랑 그렇게 결론냈다.

 

요즘 나와 남편이 그러고 있다. 일상이다. 교회에 캡슐 커피 기계가 들어온다는 얘기였다. 좋겠다고 하자, 남편이 "나는 그래도 가끔 핸드드립 할 것 같아."라고 말했고 나는 "캡슐 커피도 맛있더라. 나는 돈 생기면 캡슐로 갈아 탈려고." 했다. 남편이 "캡슐 커피도 괜찮긴 한데, 중요한 건 향이 없어." 라길래, "핸드드립 커피도 내릴 때 향이지, 막상 마실 때는 맛이야." "그러니까 그 향 말이야, 핸드드립엔 그 향이 있다고." "아이, 증말! 마실 때는 다 똑같다고오." 막 이렇게 계속 끝도 없이 같은 얘기를 다르게 말하면서 최선을 다해 대화 또는 말싸움을 하고.

 

마주 앉았던 채윤이가 "엄마는 핸드드립 커피로 에니어그램 책도 썼잖아." 쿨럭, 그러네. 핸드드립 커피는 향이 있지. 이렇게 아침부터 정신 에너지를 다 소비하고 난 사달이다. 그러한 논쟁 후에 커피를 내리려고 물을 끓이다가 에라, 원두를 그냥 주전자에 부어 버린 것. 이렇다. 요즘 모닝 커피가 이렇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제일 먼저 커피 물을 끓이고 말씀 묵상을 하고... 그런 고요하고 멋진 루틴을 사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과 사모님은 사소한 일을 말싸움으로 키우고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 이런 엽기적 애정 행각의 맛을 아실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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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지방 폭설로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됐단다.

3월2일, 학교 다녀본 이에게 새해처럼 다가오는 날을 앞두고 말이다.

바로 딸려나오는 기억이 있다.

2010년 3월1일, 3월2일로 이어지는 밤이었다.

이제 처음 학교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는 현승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날이었다.

남편이 맡고 있던 한영교회 TNT 청년부 목자(리더들) 수련회가 강릉에서 있었다.

2월 28일 - 3월 1일, 1박2일 일정이었다.

1박2일의 일정 내내 빵빵 터지는 즐거움이었지만, 

올라오는 길, 바로 어제처럼 폭설이 내려 꽉막힌 고속도로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우리 차에 탄 애들은 보기 드물게 나랑 개그코트가 맞는 애들이라, 숨을 쉴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고통 속 즐거움이었다.

우리 생애 저런 시원함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화장실 앞에서 찍은 '시원함' 컨셉의 사진이다.

아마 당시 폴더폰 사용 시절이고, 그걸로 찍었던 것 같다.
아침 뉴스를 보다 떠오른 기억, 그래서 뒤져본 기록.

이랬구나... 이렇게 재미난 세월이었구나.

함께 했던 목자들 진심 사랑했고, 너나 없이 뒹굴며 행복했었다.
그것이 교회였는데, 공동체였는데.

아이러니한 건, 신앙생활과 교회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해서 죽을 것 같은 마음이기도 했다.

그 분열을 어떻게 살았지? 진짜 행복했고, 진짜 죽을 것 같았는데......

조하문이 부릅니다. '눈 오는 밤'


그 시절의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얼 할까

우리들의 얘길 할까
누구를 만나든지 자랑하고 싶은
우리들의 친구 이야기들

 

 

 

 

노라조서 곰합따

삼일절 끼고 1박2일 목자 엠튀를 갔따왔따. 나는 특강이라는 명목으로 망아지 두 마리와 함께 따라 붙었따. 버버벅 특강 후에 대박 솔직한 나눔의 밤을 보냈따. 밤사이 눈 섞인 비가 내렸따. 그래

larinari.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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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일렁임 없이 잘 지내보려고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어머니 탓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럭저럭 괜찮은 남편이 최선을 다했지만 질곡의 설이 되고 말았다. 종갓집으로서 작은 어머니들, 며느리들까지 모여 송편 한 말, 10여 종이 넘는 전을 부치던 명절이었다. 지긋지긋했는데, 아버님 돌아가신 이후로 오히려 그 시절이 그리워질 정도로 한가하고 무료한 명절이 되었다. 음식 준비보다 더 나를 옥죄던 관계가 허망하게 사라지고 말았고, 최근 몇 년의 명절은 그야말로 '연휴'였다.

몇 년 그렇게 종가집 명절 포스는 온 데 간데없는 명절이었다. 방역 지침 등으로 꼼짝 못 하겠으나, 어머니 모시고 집에 와 하루 지내면 어떨까 하는 연락을 남편이 했다. "설 지내는 얘기를 왜 너랑 하냐? 그건 여자들끼리 할 얘기다. 에미랑 얘기해야겠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가부장제 드라마 대사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폭풍이 한 차례 지나고 결국 오셨다. 점심만 하고 가시겠다는 걸, 저녁까지 드시자고. 점심과 저녁 사이 아이들과 의논하여 윷놀이 계획도 짜고 했는데. 탄천을 걷고 트레이더스 가서 장보는 것으로 오후 시간 잘 보냈다. 집에 와 보이차로 몸과 마음을 데우고 소화시킨 후에 저녁 식사를 하고 가셨다.


점심은 월남쌈, 저녁은 연어회가 되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 가족은 물론 어머니는 더더욱 식사량이 적다. 떡 벌어지게 차린 상에 부담부터 느끼게 된다. 맛있는 걸 한 종류만, 적당하게 먹는 것이 행복이다. 취향을 저격하여 심플하여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식사는 만족스러웠을망정 여러 모로 불편한 만남이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무엇보다 남편은 남편대로. 과정에서 내가 받은 상처가 많지만 남편에 비하면 가볍고, 단순하다. 아니, 남편에 비하면 무겁고 복잡하다. 무겁고 복잡한 사연을 가부장제 며느리의 삶으로 서사를 풀면 많은 것이 설명된다. 명절 증후군을 앓는 어머니는 명절만 되면 심장이 뛰고 없던 신체 증상이 발발한다. 칼부림하는 시동생도 없고, 형제간 따돌림은 옛날 얘기가 됐음에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그저 지나면 문제 될 것은 없는 명절이다. 위기의 가정 아이들이, 학대 속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평안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과 같다. 결국 문제를 일으키시고, 화를 내시고, 서러워하신 후에, 후회하시고, 후회를 자기 의로 승화하여 "나는 자비하다, 나는 좋은 시에미다, 나는 좋은 핼미다...."로 결론을 내신다. 처음부터 마지마까지 "나는 자비하다."로 가시면 참 좋을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명절 56년이다. 종갓집 며느리 56년이다.

어머니와의 관계에 공을 많이 들였다.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로 시작했지만 외롭고 슬픈 어머니의 인생을 알면서 깊은 연민을 품게 되었다. 적당히 연민했으면 좋았을 걸. 마음과 몸의 병을 내 사랑으로 고칠 수 있다는, 고쳐야겠다는 열정으로 지나치게 공을 들였다. 이젠 그러지 못한다. 그러느라 망가진 나의 일부분을 추스르기도 벅차다. 세상 누구보다 따뜻했던 막내 며느리를 추억하며 슬펐다, 분노했다 하시는 어머니가 새롭게 안타깝다. 그러면 다시 어머니를 고치고 싶은 쓸데없는 열정이 휘몰아치며, 결국은 좌절과 슬픔과 분노다. 거실에 장미 한 단이 꽂힌 화병이 놓여있다. 얼마 전 남편이 사 온 건데,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가는데 어쩐지 치우기가 싫다. 심지어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모습이 싫지 않다. 늙어가는 내 모습 같기도 하고. 화병이 놓인 탁자 옆 거실에 어머님이 누우셨다. 시들어가는 인생을, 거스를 수 없는 실존의 퇴락을 어찌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어머니 모시고 오던 날 아침 식사하며 심장이 마구 뛰었다. 자꾸 팔목에 불끈불끈 힘이 들어가며 주먹을 꽉 쥐게 되었다. "여보, 전장에 나가는 느낌이야."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여러 의미의 전쟁을 그럭저럭 잘 치뤘다. 나도 어머니도 시드는 장미꽃 같은 인생과 더 잘 화해하며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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