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루틴이 있는데, 아침 6시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뭘 하는 줄 알아? 커피 물을 끓인대" 정확히 남편이 이 말을 하고 난 후였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커피를 어떻게 내려 드실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 순간 커피 물 끓이려고 물을 받아놓은 주전자에 원두 두 스푼을 갖다 넣었다. "어흑, 나 무슨 짓을 한 거야? 정신 나갔어 정말?!" 이름에 부합하는 짓을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내 이름 정신失. 

다시 생각해 보니 나름 정신에도 길이 있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커피를 어떻게 내려 드실까?' 생각하는 순간 '모카포트'가 떠올랐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라면 모카포트가 아닐까? 바로 이때 모카포트에 커피 분말을 채우는 이미지가 떠올랐고, 나는 눈 앞에 있는 전기 주전자에, 커피 분말 대신 홀빈 원두를 그냥 투입한 것이다. 머릿속 이미지에 충실하게.

 

그랬구나! 정신줄 놓고 사고 치는 일에도 다 사연이 있구나. 어쩌면 그 바로 전의 열띤 토론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예전 젊을 때 친구 집에 놀러갔다 친구 부모님의 대화(말싸움?)를 생생하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귀가 이따 만 하게 커져서 안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끝까지 집중했던 기억. 말복이라 날씨가 덥네, 이렇게 시작하신 것 같다. 말복이 뭐가 덥냐 중복이 더 덥지, 이렇게 받아치셨나? 와아, 말복 중복으로 끝도 없이 논쟁을 하시고 나중에 친구 아버지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시는 거였다. 이렇게 사소한 일로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싸우시다니!!! 두분 서로 많이 사랑하시는구나... 친구랑 그렇게 결론냈다.

 

요즘 나와 남편이 그러고 있다. 일상이다. 교회에 캡슐 커피 기계가 들어온다는 얘기였다. 좋겠다고 하자, 남편이 "나는 그래도 가끔 핸드드립 할 것 같아."라고 말했고 나는 "캡슐 커피도 맛있더라. 나는 돈 생기면 캡슐로 갈아 탈려고." 했다. 남편이 "캡슐 커피도 괜찮긴 한데, 중요한 건 향이 없어." 라길래, "핸드드립 커피도 내릴 때 향이지, 막상 마실 때는 맛이야." "그러니까 그 향 말이야, 핸드드립엔 그 향이 있다고." "아이, 증말! 마실 때는 다 똑같다고오." 막 이렇게 계속 끝도 없이 같은 얘기를 다르게 말하면서 최선을 다해 대화 또는 말싸움을 하고.

 

마주 앉았던 채윤이가 "엄마는 핸드드립 커피로 에니어그램 책도 썼잖아." 쿨럭, 그러네. 핸드드립 커피는 향이 있지. 이렇게 아침부터 정신 에너지를 다 소비하고 난 사달이다. 그러한 논쟁 후에 커피를 내리려고 물을 끓이다가 에라, 원두를 그냥 주전자에 부어 버린 것. 이렇다. 요즘 모닝 커피가 이렇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제일 먼저 커피 물을 끓이고 말씀 묵상을 하고... 그런 고요하고 멋진 루틴을 사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과 사모님은 사소한 일을 말싸움으로 키우고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 이런 엽기적 애정 행각의 맛을 아실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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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yosehiker 2021.05.02 02:05 신고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정확히 제 아내가 저에게 하는 말이네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6시에.... 그러니 당신도 본받아." 어느 글에선가 유진 목사님은 전형적인 아메리칸 커피를 드시다가 세월이 흘러 핸드드립 커피를 드신다는 걸 읽은 기억이 있네요. 이제 두 분 모두 돌아가셨지만요.. ㅠㅠ 사모님이 유진 목사님 돌아가시고 7개월후에 소천하셨다는 기사를 읽고 왠지 마음 한구석이 슬펐어요..

    • BlogIcon larinari 2021.05.02 20:38 신고

      그렇군요! 슬프기도 뭉클하기도 하네요. 그 7개월이 어떠셨을까, 얼마나 그리우셨을까 싶어요.
      남편은 유진 피터슨, 달라스 윌라드,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이분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구글맵에 들어가 살았어요. 유진 목사님의 집 주변을 얼마나 들여다 봤는지, 지형에 대한 번역 오류까지 찾아냈다니까요. ^^ 평생 소원이 미국 여행이고, 눈으로 봤던 그곳을 밟아보는 것인데요. 그 얘기 할 때마다 목사님 생각이 나요. 언젠가 목사님과 남편, 서대표님까지 세 분이 백패킹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저 혼자 꿈을 꿔보고요. 너무 멀리 갔죠? ㅎㅎ

  2. BlogIcon yosehiker 2021.05.06 07:30 신고

    아내와 대화중에 '돈이 많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사모님도 미국에 팍팍 오시라해서 구경도 시켜드리고 그러게요.. ㅎㅎ 이젠 남자들끼리 백패킹말고 부부가 같이 다니며 살아야죠.. 혹시 미국에 오실 기회가 있으면 이리로 오세요. 여기가(서부) 미국에서 젤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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