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랑 이혼할 거야?

처음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는데, 두 번째라 놀랍지 않았다. 둘째 현승이의 말이다. 좋은 분위기였다. 성탄절로부터 연말연시, 그리고 이어진 특새로 네 식구가 뒹굴며 삼 시 세 끼를 하는 중이었다. 성탄으로 시작한 나날이고, 이사하고 정신 차려보니 집 앞에 이마트 트레이더스였다. 이렇게 많은데 이 가격? 여기에 넋이 나가 연일 먹방이었다. 이러다 파탄 나겠다 싶어서 장보기를 멈추고 냉장고 파먹는 중 묵은지 베이스로 꽤 괜찮은 파스타를 만들었다. 다들 정말 맛있게 먹으며 "찬양하라, 엄마를! 정신실을 찬양하라!" 기분 좋은 집회였다. 나는 자비롭고 겸손하기에 한 마디 했다. "별 거 아냐. 아무거나 넣고 한 거야. 당신도 배워. 당신도 혼자 해 먹을 수 있어. 이제부터 좀 배워야지."


그 말 끝에 채윤이는 "엄마는 왜 아빠가 엄마보다 더 오래 살 거라고 규정해? 엄마가 혼자 남을 수도 있잖아."라고 오버를 했다. 현승이는 열 술을 더 떴다. "엄마, 아빠랑 이혼할 거야?" 혼자 사는 아빠에 대해 채윤과 현승이 생각은 이렇게 다르다. 채윤인 시종일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쿨한 채윤이다. 현승이는 타고나기를 그렇게 태어나서 말과 행동 너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 언젠가부터 잦아진 엄마 아빠의 충돌, 엄마도 이해되고 아빠도 이해되다 엄마한테 화가 나고 아빠로 속상한 현승이는 한 발 더 나간다. 한 발 한 발 나가다 열 발을 나가서 하는 말이 "이혼할 거야?"이다. 작년 가을, 아니다 작년 여름휴가, 아니다 언제부터지? 누나와 아빠, 엄마와 아빠 사이 크고 작은 갈등이 많았다. 페미니즘 때문이기도 하고, 성인이 된 누나가 제 목소리 내는 과정이기도 하고, 갱년기 엄마 아빠의 숨기지 못하는 유치함이기도 했다.


아이들 앞에서 거침없이 갈등을 드러냈다. 인신공격까진 하지 말자 다짐했고, 남편과 내가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남편은 모르겠지만 내게는 분명한 뜻이 있었다. 일단 페미니즘이다. 영 페미니스트 채윤이 앞에서 무뎌진 내 감각이 살아났고, 딸을 더 진화한 페미니스트로 키우기 위해 포기했던 부분에서 다시 날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제 스스로도 꽤 괜찮은 남자 사람 아빠지만 여전히 달라져야 하는 남자 사람 아빠를 마주하며 분열적으로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아빠 앞에 거침없이 맞설 수 있는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채윤이를 위해서 부러 채윤이 편에 섰다. 누구보다 진보한 남편이지만 가부장제 안에서 자란 습성을 고스란히 가진 남편에 대해 함께 분노해줬다. 해줬다, 보다는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앞에서 투닥거릴 일이 더 많아졌다.


실은 더 아픈 뜻이 있다. 남편과 함께 쓴 결혼에 관한 책 제목이 '와우결혼 :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이다. 자신감이 지나쳐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제목은 나름대로 해학을 담은 것이었다. 와서 보라는 것은 우리 부부가 얼마나 행복한지, 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싸우는지'였다. 말하자면 대놓고 부부싸움, 지면에서 하는 부부싸움이었다. 글을 쓰고 책을 낼 때만 해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잘 살고 행복하다는 게 아니라 얼마나 싸우고 있다는 얘기라니까요! 이런 자부심이었다. 세월이 지나 중년이 되고 부부 관계로 어려운 분들을 만나다 보니 이것조차 얼마나 폭력적인 자랑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 이렇게 안 싸워요,나 우리 이렇게 잘 싸워요, 나 결국 우리 부부 잘 났어요, 하는 자랑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우리 같은 부부가 사회와 교회에 끼치는 해악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젊은 부부의 위기 상담을 하면서 확인하는 바, 좋은 부부에 대한 환상이 갈등 해결에 장벽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 부모님은 가정에 대해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교회 목사님 부부, JP&SS 부부, 션-정혜영 부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가정을 꿈꾸고 결혼했고, 기도하면 그런 가정 될 것이라는 '환상'이다. 환상은 현실이 될 수 없다. 환상이 신앙과 만나 신경증이 되는 것을 아프게 지켜보았다. 기도하면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집착이다. 현실 부부 사이에서 직면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기도로 도피하고 말아서 결국 해결점에서는 비켜나고 마는 것을. 책을 쓰고 청년들 앞에서 강의에서 했던 말들을 아프게 되짚어 보게 된다.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건널 수 없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혼을 꿈꾸거나, 심정적으로 이혼의 상태로 사는 이들을 보면서 회개한다. 좋은 부부, 건강한 관계, 행복한 가정 같은 것에 대해 함부로 나불대던 입을. 내 삶은 the way가 아니라 a way라고 힘주어 말했어야 하는데.


이런 성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유치하고 부끄럽지만 그대로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다. 두 아이 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판단능력이 생겼다는 확신도 있다. 코로나로 너무 붙어 있다 보니 제어가 안 되는 것도 있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면도 있다. 싸움이 없는 부부가 아니라 잘 싸우고 잘 성장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는 또 하나의 환상을 만들고 있는지도. 그런데 여하튼 현승이의 질문, "엄마 아빠 이혼할 거야?" 이건 나름대로 심각했다. 현승인 그냥 해본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두렵다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현승이가 아직 어리다는 것. 아니, 부모 앞의 아이들은 평생 어릴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조금 아프고, 조금 미안하고, 조금 막막하다.


월요일에 남편과 강릉에 다녀왔다. 언제나처럼 남편은 내가 가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길, 먹고 싶은 것에 맞춘다. 우리 사이에 그런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남편은 '나'에게 맞추기 때문이다. 정말 별 것 없는 하루였다. 강릉에 갔고, 검색한 순두부 맛집에 갔는데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해서 그냥 차선을 선택했고, 그럭저럭 괜찮았고, 커피도 좋아하지만 기분에 따라 카페를 선택했고, 많이 아쉽지만 우리가 원했던 건 그저 바다를 보며 커피 마시는 거였으니 대충 만족했고. 채윤 현승 기쁘게 해 주려고 회를 포장했고, 저녁으로 집에 와 맛있게 먹었고. 이게 전부다. 이게 일상이다.


남편이 쉬는 월요일 하루 일정으로 속초, 양양, 강릉에 다녀오는 날이 많다. 그게 그것인 일상이지만 돌아오는 길의 풍경은 늘 새롭게 아름답다. 겨울이면 더욱 그렇다. 가지만 남은 겨울 나무가 석양과 함께 빚어내는 풍경은 예술이다. 이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내 마음의 여정은 더 예술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39년 전 그 겨울 이후, 눈 똑바로 뜨고 겨울나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나다. 수묵화 같은 겨울 산이 아름답다고 말하던 남편에게 화내던 나다. 이젠 안다. 그 아름다움을. 상실이 빚은 풍요의 예술을 나는 안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며 DJ가 되었다. 싱어게인 가수들 한 바퀴 돌고, 그 노래들이 끌고 나오는 추억의 노래를 다시 듣고.... 김정호의 '하얀 나비'가 나는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그 청승맞음이 좋다. 청승 떠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인데 희한하다. 청승으로 시작해서 청승으로 끝나는 이 노래가 좋아서 리메이크하는 모든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다. 오늘은 황치열이다.


내 존재에 깊이 박힌 청승을 안다. 치명적인 상실, 존재에 뿌리 박힌 '잃어버림'에 대한 감각 또는 통증이다. 그것은 내 마음의 텅 빈 공간이다. 아버지 죽음에서 기인한다고 믿었는데 그 이전이다. 그 이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전, 이전이다. 이전의 근원은 아직 잘 모르겠다. 강릉 가던 길인지, 강릉에서 오던 길이지 모르겠다.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생각해보니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늘 무언가 그리웠어. 그리운 그 무엇을 잡으면 놓칠 것 같았고 빼앗길 것 같았고 실제로 경험적으로 그랬어. 그런데 당신 만나고부터 무언가를 그리던 텅 빈 공간이 채워졌어. 물론 그 이후로 외롭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고, 실존적 슬픔이 없어졌다는 뜻도 아닌데, 당신 만나고 무언가 치명적인 그리움이 치유됐어."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 완벽하다는 뜻도 아니고, 더 바랄 게 없다는 뜻도 아닌데 이 사람은 내 청승을 거둬갔다. 청승맞은 노래를 부끄럼 없이 부르고 들을 수 있게 해 줬다.


현승인 늘 엄마 아빠의 대화에 귀가 커진다. 내용엔 관심이 없다. 감정적 대결이 있을까 없을까, 그로 인해 엄마 아빠가 아플까, 이것이 관건이다. 현승이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다. 우리가 요즘 너무 서로를 막대하나, 특히 내가...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어쩔 수 없기도 하고, 부러 그러기도 하고. 분명한 건, 더는 나를 포장할 수 없게 된 갱년기 탓도 있다. 더욱 분명한 건... 이대로 나를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은 이 사람뿐인 걸. 내 인생의 청승을 거둬간 이 사람은 포장을 모르는 사람이다. 책 쓰고 방송에 나가고, 잘 나가는 아내를 포장지로 이용할 줄 모르는 답답한 사람이다. 온 몸이 포장지 투성이인 나는 "니도 좀 포장을 해라고!!!! 세련되게 포장을 해보라고!!!!!" 하며 자해를 하고 몸부림을 하다 제 풀에 포장지가 벗겨져 버리는 형국이다. 이랬든 저랬든,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이런 말은 다시 입에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보여주는 결혼 말고, 다만 아프게 사는 결혼으로 만족해 보려고 한다. "엄마, 아빠랑 이혼할 거야?" 아들에게 이런 말 들으며 꿋꿋하게 잘 살아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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