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보고 걷는다. 그런 줄 몰랐는데 채윤이가 흉내 내줘서 알았다. 좋은 하늘, 좋은 바람을 누리러 나가서는 고개를 처박고 걷는다. 깨어 있으려 하지만 다시 '생각들'에 잠기면 땅을 보게 된다. 간밤에 꾼 꿈 생각을 하며 걸었다. 나는 또 뭘 그리 포장하고 꾸미고 있는 걸까? 꿈이 건넨 질문에 고심하노라니 땅만 보인다. 고개를 들자! 하고 목에 힘을 딱 주고 바라보니 정자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다. 어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리저리 정신없이 헤매는 원숭이 마음을 멈추자. 고개 들고 찬 공기를, 발밑의 얼음 조각을, 아이들 소리를, 자동차 소리를 보고 듣고 느끼자. 그러자 아주 가까이에 곤줄박이 한 마리가 땅에 강림하여 삑삑거리고 있다. 아주 아주 가까이서. 이 녀석이 사라지자 머리 위에서 또 삐이삐이... (아마도) 박새 한 마리가 가까이서 혼자 놀이를 하고 있다. 아주 가까이서. 모두 같은 말을 한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라고.
현승이는 중동 배낭여행 중이다. 제 몸 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공항 노숙을 불사하고 떠났다. 안전한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스스로 노선을 정하고, 그때그때 저렴한 숙소를 찾는 여행이다. 안식년 '꽃친'을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하면서 짧고 굵은 갈등 속에 선택한 소명고등학교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모든 것이 좋았고, 고등학교 생활에 어려움(현승이 자신의 어려움, 엄마로서 나의 어려움)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어려움과 갈등조차 좋았고 감사하다. 이번 여행 준비하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감사가 두 배, 세 배로 커진다. 감사의 핵심은 사람, 선생님들이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만날 사람, 손!)
저렴한 항공권 덕에 부다페스트에서 긴 경유를 하고, 그 덕에 유명하다는 부다페스트 야경도 보았단다. 이집트로 넘어가 피라미드를 보고, 다합에서 스킨스쿠버를 하고, 무엇보다 밤에 시내산을 올라 시내산 일출을 보았다는데. 남편과 둘이 입을 헤 벌리고 영상과 사진을 보는데 "부럽다, 부럽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요르단으로 건너가 와디 럽(붉은 사막)으로 들어갔다는데, 와! "매드 맥스"에서 그 언니들이 달렸던 길이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남편은 이스라엘,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다녀온 경험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모른다. 그땅, 육화 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걸으셨던 갈릴리 호수 변을, 사도바울이 디뎠던 땅을 걸었다는 경험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듣기 싫을 정도로 그 경험을 말하고 또 말하고, 설교에 인용하고, 말씀 묵상에 인용한다. 직접 가본다는 것을 그런 것이다. 사실 나는 여행을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성지순례를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좋아하지 않거나, 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갈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제치는 "여우의 신포도"인지도 모르겠다만.) 시내산 등반을 하고 일출을 바라보는 아이들 영상을 보면서 정말 가보고 싶다. 모세가 섰던 자리라니,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한 그 산이라니!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모 대상 강의를 하면서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잘해주고 질투한다."는 표현을 하면 대부분은 처음엔 갸우뚱 한다. 좋은 (특히 신앙이 좋은?) 부모일수록 갸우뚱의 각도가 크다. 어떻게 아이를 미워할 수 있지? 그래, 가끔 미울 수가 있다지만 질투를 한다고? 그렇다. 질투다. 나는 아이들을 질투한다. 내가 다 해주고도 질투한다. 내가 못 받아본 것을 주고, 나는 갈 수 없는 곳에 보내놓았기에 질투한다. "엄마빠가 그 정도 해줬으면 감사할 줄 알아야지, 더 잘해야지, 어디서 그런 막 돼먹은 태도야!" 못 누려본 것을 누리게 했으니 부모를 추앙하라! 이런 마음이 얼마나 자주 올라오는지 말이다. 질투와 시기심의 은근한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말이다.
좋은 경험을 했으니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엄마빠 여행 보내줘, 이런 기대나 강요, 농담을 빙자한 허튼 말 따위도 하지 말아야지. 그저 너의 순간을 온전히 누리라고 해야지.
하지만 나는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현승이가 부럽다. 현승이 인생이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백 번 말해야지.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2022년 송년 글쓰기의 '좋았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순간적으론 그리 강렬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 힘으로 올해를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2021년에는 30여 명의 수강자들과 함께 했었다. 줌을 켜고 그냥 쓰면 된다 여겨 인원이 중요할까 싶었는데. 역시나 작은 그룹이어야겠구나, 싶었다. 예수님의 12 제자가 괜히 12가 아닌 걸 실감한다. 한 분 한 분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고 눈을 맞추려면 12가 적당하다. 2021년에는 연구원과 나까지 포함 12명으로 제한해 버렸다. 대신 이틀에 걸쳐 두 번 진행했다. 대기하며 아쉬워하는 분들을 모두 받아드릴까, 유혹도 있었으나 참길 잘했다.
괜히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 주간 나는 기도 피정을 다녀왔고, 다녀온 당일 밤에 바로였으니 그 여운도 있지 않았을까. 유난히 극적 경험이 없는 기도였지만, 돌아보면 그래서 더 낮아진 마음이 되었었다. 한 주간이 아니다. 그 한 달 전부터 연구소 카페에 <별이 빛난다>라는 대림 묵상집으로 아침마다 묵상 글을 나누었다. 그 여운일지도 모른다. 전에 없던 대림 시기를 보냈다. 그 한 달이 아니다. 한 학기 대학원 공부하며 마음의 부침이 심했었다. 이렇게 흔들리고 저렇게 흔들리고... 경계를 넘어간 자의 아픔을 지질하게 경험했다. 그 여운일지도 모른다.
어쩌다 글로 마음 다스리는 선물을 누린 내 전 생애의 여운일지 모른다. 글쓰기 시작으로 거슬로 올라가면 중학교 1학년 아버지 돌아가신 때였으니, 아버지 상실의 여운인지 모른다. 아버지 추도식이 12월이어서 내게 12월은 모든 상실과 상실로 인한 갈망과 갈망을 따라 만나는 하나님의 계절이다. 화면을 통해 가만히 쓰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따스해지고 눈물이 자꾸 났다. 자신 안에 머물러, 주제에 따라 쓰는 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고마웠다. 일 년 돌아보며 고마운 분들, "별이 되어준 당신"에게 나도 글을 쓰고 메시지도 보내고 했는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글로 함께 보낸 이 분들, 작년 송년 글쓰기에서 보고 일 년 만에 만난 분도 있지만, 이 분들이 내게는 "별이 되어준 당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호모 스크리벤스(라고 한다.), 글 쓰는 인간으로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 송년 글쓰기가 남긴 여운은 감사, 그것이다.
이 여운을 더듬다 생각나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의 서문을 꺼내 읽어본다.
‘너는 항상 행복해보여. 그런 너가 참 부러워’
이 말이 어쩐지 잊히질 않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에게 받은 쪽지에 적혀 있었지요. 당시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아버지를 잃은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사춘기 여자아이였거든요. 친구들 앞에서 찧고 까불며 지었던 웃음은 슬프고 누추한 나를 감추는 위장술이었을 텐데. 친구는 제대로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실은 밤마다 아버지가 그리워 울었습니다. 아버지라는 비빌 언덕이 없어지자 하루아침에 돌변한 세상은 낮도 밤처럼 어두웠고요. 친구가 본 제 모습이 진실이었으면 싶었습니다. 여전히 아버지가 계시고, 가난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항상 행복한’ 나였다면요.
‘항상 행복해 보이는 나’와 이른 나이에 생의 무게를 알아버린 ‘실제의 나’ 사이 불화를 중재한 것은 밤마다 쓰는 일기였습니다. 삶의 짐을 글로 옮기고 나면 묘하게도 무게감이 달라집니다. 이 희한한 경험은 저로 하여금 일상쓰기를 멈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경험에 세월이 더해지니 순환 고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루의 번뇌는 글이 되고, 써놓은 글은 하루를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이 되는 것입니다. 나선형 선순환의 고리는 어느 한 지점을 향하는 것 같더군요. 어머나, 그 지점은 영원에 잇댄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로 빛이 들어올 틈 없는 일상의 숲에서 만나는 빈터였습니다. 거기로 갑자기 들이치는 천상의 빛이었습니다. 내 일상보다 더 큰 실재를 향해 눈이 열리고 사유의 지평이 열리는 공간이었습니다. 설거지감이 쌓인 싱크대 앞에서도 순간이동으로 다다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직업을 가지고 아내이며 엄마로 사는 것, 딸이며 며느리이며 동시에 이 시대 부끄러운 이름 목회자의 아내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나날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입니다. 그 짐 모두 사라지고 ‘항상 행복한’ 날이 있으려나요. 다행히도 저의 선생님, 상담자, 구세주 그분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저를 부르셨어요. 쉬운 멍에, 가벼운 짐을 함께 메고 같이 지고 가자고요. 수고하고 무거운 제 일상의 짐, 그분께 나아갈 필요충분조건이 된다니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길 바랄 게 아니더군요. 자, 이제 저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보따리 일상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겠습니다. 무거운 짐이 쉽고 가벼워지는 신공을 보실 수도 있어요. 비밀인데요. 제게는 오랜 시간 갈고 닦은 기예가 있답니다. 일단 저의 성소() 싱크대 앞으로 오세요. 거기서 뵈어요!
설날이 주일 예배는 빈자리가 많았다. 아름다운 일이다. 예배 시작 인사처럼, 노인들만 계시던 시골의 어느 작은 교회의 주일예배가 꽉 차서 풍성할 것이니까. J&W 목사님 부부가 기습적으로 우리 교회에 예배에 함께 했다. 교인이 주로 젊은 사람들이어서 설날 예배를 아예 흩어지는 예배로 정했다고. 형님네 찾아온 동생 가족이다. 내적여정과 오랜 꿈여정으로 W 선생님과 함께 하고, 작년에는 남편 J 목사님까지 내적여정, 꿈여정의 벗이 되었다. 이 만남은 남편에까지 닿아 JP과 함께 <마음의 혁신> 책모임도 하시고, 신소희 수녀님의 기도 강의를 함께 들으며 여정의 동반자가 되었다. 내적여정 동생 가족과 예배 마치고 명절 식사로 파스타를 먹었다. 설날 한 나절 짧은 만남이었다. 어쩐지 진짜 가족을 만난 명절인 듯 마음의 여운이 길다. 보이지 않는 갈등을 감추고 그럴듯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포장된, 흔히 떠올리는 정상 가족, 정상 명절의 모습은 아니지만. 아니어서 더욱 찐인!
종갓집 며느리 우리 어머니는 '명절 루틴'으로 평생 고생을 하셨다. 명절이면 어마어마한 식구가 모이고, 어마어마한 음식을 해야 하고... 한 번쯤 안 모여도 될 텐데, 꼬박꼬박 모여서, 하던 걸 해야 하는 명절 루틴이 어머니께는 고통이었다. 그런 명절이 끝난 지 10 년이 넘었다. 어머니의 며느리인 나의 명절은 '루틴이 없는 것'이 고통이다. 이렇게 모일지, 저렇게 모일지, 누가 모일지, 어디서 모일지... 명절 루틴을 가질 수 없는 아픈 여러 이유가 어머니의 '명절 루틴'에 닿아 있고, 어머니의 전 인생에 닿아 있고, 어머니가 일군 가족의 이야기이고 그것은 남편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우리 아이들의 인생과 닿게 되니 아플 뿐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니 그 불행의 이유를 명절마다 확인할 뿐이다.
"엄마, 괜찮아? 이따 저녁 준비하는 거랑... 마음이 괜찮아?"
"응, 괜찮은데... 왜?"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야."
안 괜찮을 수 있는 상황인 걸 아는 채윤이의 걱정이 고맙고, 또 안 괜찮지 않은 내 마음이라 나도 다행이다. 내 시작은 '안 괜찮았'으나, 나중은 심히 '괜찮은' 명절이 되어 다행이다. 힘 들이지 않은, 루틴 없는 명절음식은 국적불명이 되고 말았다. 감자 토마토 치즈 구워 먹는 라끌렛 팬에 명절 덕에 생긴 재료를 더했다. 보기 드문 아름다운 사진이 나왔다. 우리가 뭘라고... 목사라고, 선생이라고 명절을 챙겨준 손길에 감사할 뿐이다. 편하게 준비했는데 식탁은 이렇듯 풍성하고 아름답고 말았다.
빠르게 전을 부쳤다. 호박전, 동태전, 육전을 남편, 채윤, 나 셋이 달려들어 빠르게 부쳤다. 어제 아침 현관문을 여는데 앞집에서 고소한 기름 냄새가 흘러나왔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동안 잠시 혼자 명절을 느꼈다. 어머니의 명절을 느꼈고, 우리 엄마의 명절을 느꼈고, 엄마랑 같이 전 부치던 기억에 닿았다. 루틴도 전통도 사라졌지만 몸의 기억이 만들어낸 명절 음식이 되었다. 하길 잘했다. 팬에 데워 먹으니 따뜻한 게 맛있고, 라끌렛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 이토록 마음에 드는 꼭지 이름, 으로 두 달에 한 번 글을 쓴다.
주일 예배를 축으로 일주일이 돌고, 내적여정과 대학원 학기를 따라서 반년이 돌고, 지도자과정으로 일 년이 굴러가고... 크로노스의 시간을 의미 시간으로 구획 짓는 일들이다. 그중 특별한 주기가 두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원고 마감의 시간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 즈음 며칠은 수도자 같은 마음이 된다. 일단 원고를 위해 두어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책을 읽고, 북마크 포스트잇을 붙이고, 메모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낸다. 중요한 글을 위해서 사전에 조금 읽지 않으면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효율을 고려하면 굳이 새로 읽지 않아도 된다. 이미 쓰고자 하는 내용이며 구조는 나와 있어서, 사실 쓰자면 그냥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쓰기 위해서는 읽기 의례를 통과해야만 한다. 주제에 닿고 마음에 드는 신간을 찾아 읽노라면 주객이 전도되기도 한다. 쓰기 위해 읽는 것인데,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원고는 까맣게 잊고 빠져들기도 한다. 2년 여 기고글을 쓰면서 중년, 노년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기획 단계에서 이미 나온 틀이 있고 쓸 말도 내 안에 다 있는데 말이다. 쓰기 전에 읽기, 최 신간 찾아 읽기에의 집착으로 이미 나온 틀이 세분화되고 약간의 깊이까지 생겼다. 원고 쓰고 돈 벌고, 공부하고, 이 모든 과정이 즐겁(기만한 것은 아니지만)고... 일석 몇 조인지 모르겠다.
원고 마감 즈음이 되면 남편을 위시하여 아이들까지 조심 모드를 자처해준다. 그러니 나는 더욱 수도자 코스프레를 하게 된다. 코스프레는 아니다. 정말 마음이 차분해지고, 오직 원고 주제만 생각한다. 책을 읽고, 해 질 녘엔 산책을 하고, 글이 써지면 새벽까지 앉아 있고, 오늘 글렀다 싶으면 어느 때보다 일찍 잠에 든다.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무덤덤해지면서 일상에서 한 발 물러선다. 그렇다고 글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 몇 개씩 블로그 포스팅을 한다든가(요 며칠 그랬다.), 연구소의 자잘한 일을 몰아서 하기도 한다. 연구소 단톡에 한 마디 올라오면 득달같이 답톡을 보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응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음만은 한 방향을 향하는 수도자의 그것이다. 이런 시간이 고통스러운데 즐겁다. 전에는 탈고하는 그 순간을 즐겼다면, 갈수록 이 고통스러운 과정으로서의 시간이 소중하고 좋다. 심지어 아깝다. 고통스러운데 아깝다. 작년 연말에 했던 송년 글쓰기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에 "글쓰는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이렇게 소개하는 게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글을 쓰는 내가 참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을 쓸 때 가장 나답다 여겨지며,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삶의 모든 시름을 글로 다스린다. 쓰기 위해 읽고, 읽다 보니 또 쓰고 싶어지고... 끝나지 않을 탈고와 알라딘 주문 넣기와 독서를 오가는 시간을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