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남편은 들꽃과 사랑에 빠졌다.

'갔다 올게' 하고 나가면 한 30분 안에 카톡, 카톡, 카톡, 카카카카..... 카톡.

길가의 흔히 보던 꽃들이 줄줄이 폰으로 들어온다.

입만 열면 새로 발견한 꽃, 그 꽃의 이름을 읊어대며 헤벌쭉 하는 것이

꼭 첫손주를 본 할아버지 같다.


사랑 하라, 에만 골몰하느라 사랑을 그저 '하면' 되는 줄 알지만.

사람은 사랑을 제조할 수가 없는 존재이니 사랑을 한다는 것은 받아서 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주는 사랑에만 골몰하다 보면 말라 비틀어진다.

쥐어 짜내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닌 것이 허다한 이유일 지도.

주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오는 사랑을 받아 담는 것이 더 근본적인 일이다.


올봄, 남편은 길가의 작은 꽃들로부터 오는 사랑으로 촉촉해졌다.

나도 길 위의 작은 꽃들로부터 사랑을 채운다.

'꽃 중의 꽃은 인꽃이여'

아기 하나를 두고 어른들이 죽 둘러 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장면을 해설하는

우리 엄마의 말이다. 나처럼 아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아기들을 '인꽃'이라고 불렀다.


키 큰 나무가 푸르게 둘러 싼 율동공원 산책길에는 심장 뛰게 하는 인꽃이 흔하다.

유모차에 갇혀 형언불가의 멍멍한 표정으로 팔을 흔드는 인꽃,

어구구구구...... 넘어질라, 넘어질라, 아장아장 인꽃,

일상의 근심 걱정 한껏 지고 묵직하게 걷던 발걸음이 1g으로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이 작은 인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 깊은 곳에 고여있던 평화가, 사랑이 풀려나니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어제 산책 마지막 코스에서는 할아버지 품에 안긴 인꽃 한 송이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길 오른쪽으로 공원 매점이 있는데 매점 앞에 풍선과 장난감이 있다는 걸 어제 처음 알았다.

시무룩, 할아버지 품에 안겨 가던 아이가 눈이 커지면서 급해서 말도 못하고 손가락질을 한다.

매점이다. 매점 앞 풍선이다.

꽃을 든 할아버지는 당황.

가자, 가자..... 하며 직진이신데 꽃이 뒤틀린다. 뒤틀려 품을 빠져 나오려 한다.

그 뒤를 걷던 더 연세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껄껄 웃으신다.

"볼 일이 있다잖아요. 꼭 가서 볼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쳐. 껄껄껄"


급하게 생긴 막중한 볼 일을 피하지 못하고

꽃을 운반하던 할아버지는 발길을 돌려 매점으로 가셨다.

공원을 빠져나올  때까지 올라가서 실룩거리는 입꼬리가 제자리를 못 찾는다.

마음이 간질거리는데 웃음을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작은 사람 꽃. 그 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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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년생 김현승이 <82년생 김지영>을 잡더니 거의 앉은 자리에서 읽었다.

독후소감 한 말씀 합쇼 했더니.

"아, 됐어." 하고 돌아서버렸다.

"뭐 이렇게 슬픈 삶이 다 있어!" 혼잣말식 독후소감을 흘리며.


휴일 아침 식사를 하고 00년생 김채윤은 설거지를 한다.

03년생 김현승은 소파에 뒹굴뒹굴.

"현승아, 82년생 김지영은 소설 속에만 있는 게 아니야. 어디에나 있어."

"알아. 그런데 왜? 나 뭐 일 시키게?"

"우리집에도 있어."

"그러니까. 뭐? 엄마도 김지영이라고. 뭐 일 시킬 건데?"

"엄마만이 아니야. 00년생 김채윤이 설거지를 하고 있어."

"어쩌라고! 아, 짜증나. 책 괜히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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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자의 기도


배움을 더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제가 무지하다는 것,
제가 배울 수 있는 영역들이 얼마나 무한한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움이 깊어갈수록 깨우치게 되는 것은
지식이라는 나무의 가지들이 그리도 무성하고
그리도 오묘하게 뻗어 있다는 것이며
일생을 통해 배운다 해도 여전히 초보자라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깨우치고 배워야 하는 분야들을 잘 터득할 수 있도록,
결코 실망하거나 싫증내어 배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배울 수 있다는 것,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배움을 소중히 하고 제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우치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터무니없는 야망을 지니지 않고 다만 근면할 수 있도록
성공이라는 물신을 숭배하지 아니하고,
다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주어진 일들의 바른 순서를 찾으며,
주어진 재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배우는 것보다 무한한 것을 볼 수 있는,
제 개인적인 성공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을 주십시오.

일생을 통해 배움을 멈추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무리 많이 배울지라도
항상 발견해야 하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제가 삶 그 자체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당신이 비추시는 빛을 외면하지 않도록
저를 지혜롭고 강하게 해 주십시오.



2008년 5월에 이 기도문을 블로그에 걸었던 적이 있다. 본격 영성 공부에 발을 들여놓고 어느 강의 시간 시작 기도로 낭송되었던 기도문이다. 꼭 10년이다. 그때는 그 시작이 '본격적' 시작인지 알지 못했고 10년 후인 오늘을 상상하지 못했다. 저 기도문이 예언처럼 나를 이끌어가 '일생 통해 배움을 멈추지 않는 길' 접어든 것이다. 에니어그램 연구소에 발을 들여놓은 그 학기부터 이번 학기까지 무엇이가를 배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책이 그 다음 읽을 책을 끌고 나오듯, 어느 강좌는 그 다음 강좌로 나를 이끌었다. 매 학기 새롭게 열리는 배움의 문은 그분의 이끄심이라 해야 비로소 설명되는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난 10년, 20학기 동안 3학점 짜리 강의를 한 학기도 쉬지 않고 들었다. 총 60 학점을 이수했으니, 아니 한 학기에 두 과목 수강도 했으니 60학점 그 이상. 남편이 '야야, 니네 엄마 박사과정 한다. 박사 공부한다.' 놀리던 것이 장난이 아님이다. 


지난 주에는 4학기 짜리 공부를 하나 마쳤다. 지난 시간 낯선 공간 낯선 문화를 찾아 헤매며 외롭게 배워왔던 것들을 '철학'이라는 실로 한 줄에 꿰는 시간이었다.  2008년 3월, 첫 강의 자기 소개 시간에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저는 가끔 내가 이 나이에 이런 걸 다 깨달아도 되는 걸까? 나는 너무 훌륭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왔습니다.'라고 했다. 선생님 한 분이 그 말에 빵 터졌던 기억도 난다. 농담이었지만 살짝 진심이었다. (자아팽창, 갑 중의 갑었지) 배움을 더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제가 무지하다는 것, 제가 배울 수 있는 영역들이 얼마나 무한한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내 인생 처음으로 이 고백을 하게 되었다. 껌 씹으면서 할 수 있는 고백은 아니었다. 캄캄한 무지의 밤을 여러 날 보내며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하던 막막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 사이 책을 출간하고, 또 출간하고, 여기 저기 얼굴을 알리면서 뭔가 한 방 해보겠다는 남모르는 야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다행히 결코 놓지 않았던 배움의 끈이 나를 잘 붙들어 주었다. '터무니없는 야망을 지니지 않고 다만 근면할 수 있도록, 성공이라는 물신을 숭배하지 아니하고, 다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며 서두르지 않을 수 있었다. 앎의 한계에 부딪히면 또 책을 읽고, 새로운 저자를 만나고, 또 공부하고, 그러다 글을 쓰고, 새로운 강의를 만들어내며 살아 있다고 느꼈다. 배움과 가르침 사이에서 야망이 꿈틀대고, 타인과 비교하며 조바심 내는 순간도 많았지만 갈수록 내 속도와 한계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 시점에 다시 읽어보는 '배우는 자의 기도'는 한 자 한 자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온다. 


# 누구신지 참 기막힌 커리큘럼으로 10년 학사관리 해주셨다.

# 그분 참! 그동안 퍼부은 시간과 돈을 생각해서라도 박사학위 하나 하사 하실 일이지.

# 야망은 없다. 그렇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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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시작마다 '지난 한 주를 지내며 지은 죄를 회개'하는 시간이 있다. 몇 주째 같은 내용의 기도이다. 그 시간, 회개의 자리에서면 비로소 생각나는 죄목이다. 지난 주에는 그 반복 패턴이 인식되어 화들짝 놀랐다. 반복하는 회개가 참 회개인가!  '다시 그러지 않겠습니다. 아니, 이러고도 다시 그럴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기도했다. 남편을 강압하려는 욕구, 남편을 통제하지 못해 안달하던 분노가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음을 인식한다. 맨 앞자리 앉은 남편의 뒷통수를 바라보는 것이 아프고도 슬프다. 기도의 자리에 서서 주님 얼굴 앞에 서면 차거운 분노로 딱딱해진 내 깊은 마음이 드러나고 만다.


매일 아침 남편은 큐티 본문에 따라 짧은 묵상글을 교우들에게 보내곤 한다. 지난 주 어느 날에는 이현주 목사님의 글을 인용하여  '슬프고 착하게 한세상 살다가고 싶다'고 했다. 허세 부릴 줄 모르고, 강압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이미 충분히 착하여 충분히 슬픈 그의 삶이 내겐 너무 아프다. 둘을 알면 하나 정도 안다 하고, 하나를 알면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며 자기를 감추고 또 감추는 이 사람을 자꾸 다그치게 된다. 목회자들 앞에서 '진실한 나'로 사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고 강의한 적이 있으면서 정작 남편의 진실함, 진실함의 댓가로 슬픔 가득한 얼굴을 보는 것은 힘겹다.


교인들은 설교 중 적절한 타이밍에 '아멘'을 외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남편은 설교의 논조를 우~ 몰고 가다 아멘이 나올 클라이막스에 몰고 힘을 탁 꺾어버린다. 분위기로 아멘을 조장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그러는 걸 안다. 토요일 저녁이면 여느 목사가 그렇듯 설교를 놓고 씨름 한다. 밥 먹고 하는 일이 마음 들여다 보는 일이라 아무 말 안 해도 그의 내면의 전쟁터가 보이는 것 같다. 아멘을 조장하지 않지만 깊은 곳의 아멘을 끌어내고자 하는 그의 높은 기준을 나는 안다. 남편은 사람들을 통제하지 않으려 하는데 나는 남편을 통제하려 한다. 치얼업 베이비, 치얼업 베이비. 좀 더 힘을 내!! 응원이 아니라 강압이다. 설교는 물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강압할 줄 모르는 남편에게 '강압하라'고 나는 강압한다.


그것을 회개한다. 진실해지려는 그를 진실하지 말고 허세를 부리라고 강요하는 내 못된 강압을 회개한다. 지난 주에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 기도했다. 오늘 토요일, 남편이 채윤이에게 '서현역에 가서 책 하나 사다줘' 빌듯이 부탁을 한다. 채윤이는 지금 알바로 바쁜 아이. 설교준비에 필요한 책인가? 싶어 내가 사다주겠노라 했다. 그건 아니고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단다. 어차피 밤새 설교준비 해야 할 텐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 알라딘에 주문해줄게. 했는데 아니란다. 간절함이 마음으로 다가와서 기꺼이 책을 사러 나갔다. 도종환의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않는다>이다. 요즘 도통 책이 읽히질 않는데 이 책은 읽힐 것 같단다. 걸어서 걸어서 서현역에 다녀왔다. 오는 길에 하도 다리가 아파 중간에 마을버스를 탔다. 도대체 무슨 책이야? 책을 펼쳐 서문을 읽었다. 읽다가 눈물이 터져 교회 앞 공원을 울며 걸어왔다.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서문 일부를 한 땀 한 땀 쳐보기로 한다.  남편을 향한 참회록이다. 내일 주일 예배에서 드릴 회개기도를 미리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삶, 나의 시>   도종환


나는 권세 있고 유복하고 많이 배운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선한 심성을 불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마웠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친척 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보고 싶어 편지를 자주 썼습니다. 편지 앞에 계절 인사를 쓰기 위해 바람과 별과 구름과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살폈고, 그래서 자연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난해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참고서 한 권을 사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문제집을 풀고 있을 때 매일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고 싶다고 말하면 보내줄 수 있는지 상의할 부모가 옆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등록금이 면제되는 지방 국립사범대학에 진학했고, 화가가 되고 싶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 좌절이 문학으로 방향을 틀게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내 문학을 밀고 가는 가장 큰 힘은 좌절입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틀 속으로 들어가기보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눈 밖에 나고 미움과 따돌림을 받았지만 도전하고 깨지고 다시 시작하던 열정이 있어서 청춘의 날들을 뜨겁게 보냈습니다.

나는 뛰어난 실력이나 재주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눈에 띄는 특별한 인물이나 앞서가는 사람도 아니어서 나를 눈여겨봐주는 이들도 없었습니다. 이른 봄에 피어 사랑받는 봄꽃은 아니지만, 가을 들판의 구절초처럼 늦게라도 혼자 꽃피고자 했습니다. 늦게 꽃피어도 오래오래 아름답고자 했습니다.

(중략)

아직도 내 시를 제대로 된 문학으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평론가와 문인이 많다는 걸 압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약점과 부족한 점이 내 시에 있다는 걸 나도 압니다. 그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꽃들이 그러하듯 흔들리면서 꽃을 피우는 겁니다. 흔들리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꽃 한 송이를 피우듯 그렇게 살았습니다. 
살면서 수많은 벽을 만났습니다. 어떤 벽도 나보다 강하지 않은 벽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벽에서 살게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고, 벽에서 시작하는 담쟁이. 원망만 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잎을 찾아가 손을 잡고 연대하고 협력하여 마침내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는 담쟁이처럼 살기로 했습니다.
가난과 외로움과 좌절과 절망과 방황과 소외와 고난과 눈물과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내 문학은 시작되었고, 그것들과 함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시인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많은 아픔의 시간을. 거기서 우러난 문학을. 나의 삶, 나의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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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거실 세미나'로 시작한 '정신실의 내적여정 세미나'가 조금씩 꼴을 갖추어가고 있습니다. 엊그제 심화과정을 준비하면서 도반 수진 쌤이랑 '이렇게 준비가 널널해도 되나?' 했습니다. 거실에서 튀어나와서 진행했던 첫 세미나에서는 뭐 빠트린 거 없을까 심장이 두근두근 쫄깃쫄깃 했었지요. 단지 강의만이 아니라 핸드드립 커피며 나름 정성을 다하는 간식이며 이 모든 것에 담긴 환대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진정성이란 상대에게 피력함이 아니라 내게 충분히 그러한 진정성이기에 참 기쁜 일입니다.  


내게 필요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필요한 샘물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욕심 없이, 힘 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대적으로 알릴 방법은 없지만 필요한 분 눈에는 띄게 되어 있나 봅니다. 어디서들 오셨는지 귀인들이 오십니다. 그저께 했던 심화과정 사진을 보니 '먹자 모임'인지, '음식 영성'모임인지 싶네요. 몸과 영혼이 충만해진 만남이었습다. 수강하신 선생님 한 분이 손수샌드위치와 티라미수를 만들어오셨습니다. 감동의 티라미수 맛이었습니다. 입과 몸이 즐거우니 마음이 절로 열려 나눔은 더욱 풍성해졌고요. 


또 다른 도반 하정 쌔매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보물이다'라고 평을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라 했지만 진실하게 자기를 보여주는 말은 보배입니다. 함께 하신 분들의 얘기를 듣는 것으로 큰 배움이 돼서 제가 강의를 하는 건지, 배우러 온 건지 헷갈리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갈수록 이 자리가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배우는 자리가 되네요.


수강 후 남겨주신 후기입니다.

* 감당하기 힘든 내적여정으로 정신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심중을 찌르는 통찰이 있던 것 같습니다. 웃으며 마쳤지만 제 속에 있는 어둠은 오직 나와 신만이 알고 있고 이걸 어떻게 다뤄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부디 길을 찾아가는 중에 좋은 이정표가 나타나길.

* ‘아직도 가야할 길’이란 말이 다시 상기된다. 내 속에 있는 것들에 대해. o, x를 가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것들을 겸손히 들여다볼 용기가 생긴다.
그간의 내 일상에 일어났던 일과 나의 내적 동요, 반응에 대해 의식성찰을 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 거짓자아의 형성을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조각조각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내가 일상이나 관계에서 마주친 갈등, 흔들림, 혼돈의 근원적 원인을 확인할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나눔 속에서 내 혼돈의 실체가 명료해지고 조금 정돈되었습니다. 솔직하고 진솔하게 삶의 경험을 나눠주신 선생님과 함께 영적 여정을 걸어주신 벗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진심으로.

* 주일마다 만나는 유아유치부 아이들과 좀 더 친해져야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면아이, 성인아이에서 경탄할만한 아이로 나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더 진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의 이상(페르소나)와 그 이면의 이유들을 적으면서 마음이 떨렸고 내 모습의 또 한 부분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저를 돌아보게 되고, 저 자신을 바라보고 이해하기 되어서 기분이 좋고,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가 됩니다. 깊이 공부할수록 혼란과 실망감과 피로함이 느껴지지만 그 과정을 통과하여 참된 기쁨을 느끼고 싶습니다.
좋은 강의 진행해주셔서 감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얘기에 사랑의 마음으로 청취해 주시는 것이 느껴져서 더 감사했습니다.

* “참자아, 페르소나, 그림자”
나는 늘 괜찮지 않았고, 늘 부족하다고 공허하다고 느끼며 살아왔는데.... 나의 생각과 감정, 반응과 행동을 늘 관찰하며 점검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길인가보다. 생각을 관찰하는 것, 이것 또한 균형 잡아가야 할 과제인 듯하다.



세미나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의 등에서 저는 '근심하며 돌아가니라' 이런 글을 읽습니다. '답을 찾으러 왔는데 더 복잡한 질문이 생겼다, 고민의 마침표를 찍으러 왔는데 이제야 뭔가 시작해야 하는 느낌이다.' 이런 말씀을 남기고 떠나니까요. 세미나 마친 다음 날에는 다른 일정이 없으면 거의 하루 내내 수강하신 분들을 마음에 품고 지냅니다. 오늘 아침에는 한 분 한 분 떠올리며 긴 아침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자, 고민하지 마시고 내 말만 들으세요. 제가 다 겪어봐서 압니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서, 이러이러하게 하시라!(안 그러면 다 죽어)"라고 확신을 갖고 끌어당기고 싶지만 그런 건 없습니다. 그저 함께 걸어갈 수 있을 뿐이지요.


저는 6월 한 달 특별한 기도 여정을 시작했는데 오늘 읽은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근심하며 돌아간' 한 분  한 분을 떠올리며 묵직한 마음으로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 같습니다. 나 자신과, 다가오는 사람들과, 내 안에 계신 그분과 만나는 진솔한 만남이 오늘을 사는 이유가 됩니다. 참 좋은 날입니다.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기술은 없으며, 그 까닭은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만남의 주체이시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느님을 자동으로 불러냈다 들여보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기도는 바른 자세를 갖춘다거나 기도하는 데 적합한 장소, 또는 제대로 만트라를 배우는 것과 같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를 마법같이 만드는 것이다. 마법의 요점은 하느님을 조종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좋은 종교가 아니다. 마법과 미신은 우리가 하느님을 부리려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느님은 우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분이라는 점이다.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 토머스 H.그린






집에 대통령 사생팬이 여럿이라.....

열여덟 딸은 아빠 따라 서점 갔다 타임지를 사오고,

아빠는 대통령 블랜딩 원두를 사오고,

엄마는 팬심 가득 담아 커피를 내렸는데.

커피잔 선택은 퍼스트캣 찡찡이 연상시키는 키키 고양이 잔으로 아들의 선택이다.


콜롬비아를 베이스로 블렌딩한 커피 맛은

역시나 구수하고, 중후하고며 어느 한 구석 모나거나 껄끄럽지 않다.


대선 전후로 정치덕후가 된 딸은 청와대 조직도를 외워 줄줄 꿰고 있는 상황이고.

이 딸.

뮤지컬 배우, 재즈피아니스트, 김밥집 사장님 경유해서

'청와대 직원'으로 장래희망이 또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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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회에서 '여성의 일상, 여성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남편,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였습니다.

'하나님께는 사위가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 자리에 계신 분들은 이심전심 알아들으셨지요.


강의 중에 스캇 펙의 말을 인용해서 '하나님께는 손자가 없다'라고 했거든요.

부모의 열심이 아이의 신앙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스스로의 씨름을 통해서라는 것이지요.


영적으로 자라지 않는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중심만 바라보면 내 아이는 하나님 손자, 내 남편은 그분의 사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지요.

남편은 하나님의 사위가 아니라 그분의 적자입니다.

남편이 신앙적으로 자라게 하기 위한 노력들이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성경 좀 읽어라, 이번에 개설되는 제자훈련반에 들어가라, 주일성수 해라.... 하는 대신

'교회 가기 싫어? 그러면 당신은 오늘 편히 쉬어. 나만 다녀올게' 흔쾌히 허락하는 것의 효과가 훨씬 클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남이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인생 길을, 영적인 여정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팝니다]


수년 동안 한 어린이집의 음악수업을 해오고 있다. 음악치료사로서 영유아 음악수업은 같은 요리를 다른 장소에서 하는 것과 같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요리를 어느 상에 올리느냐의 문제이다. 음악교육이라고 하지만 치료사의 정체성을 벗어날 수 없다. 뭔가 조금 다른 아이, 어떤 이유든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아이에게 절로 눈길이 간다. 조금 더 마음 써서 기회를 주고 격려하게 된다. 아이의 문제가 순수하게 아이만의 문제인 경우는 없다. 부모에게 관심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오지랖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여자이기에 때로 부모상담도 했다. 게다가 교사교육도 했다. 교사를 다독여 편안한 정서를 가지게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 몰입할 때 나는 행복하다.


초, 고정수입의 필요를 절감하며 짧고 깊은 고민을 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당당하게 나를 팔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일주일에 하루 어린이집에 상주하면서 부모상담, 교사교육, 아이들의 발달체크를 전담할 테니 강사료 말고 월급을 좀 달라. '나를 사달라'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당당하게 내놓았다. 협상이 타결, 아니 제안이 수용되어 '토닥토닥 상담실'이라는 이름으로 비공식적으로 하던 일을 정식으로 하게 되었다. 어린이집에 전문 상담교사가 비치되는 건 대한민국 최초일 것이다. 어린이집 교사의 학대가 한 번씩 검색창을 휩쓰는데 아이, 교사, 부모를 함께 돌보는 일을 전담하여 적극적 방어를 한다는 의미. 기꺼이 나를 비치시키고, 심지어 고상 이미지 지키느라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 '돈'을 요구하였다.


이렇듯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나를 팔아본 경험이 있던가.

셀프 토닥토닥을 무한으로 해주고 싶은 일이다.



[나를 팔지 않습니다]


선교단체 수련회 같은 곳에서는 강의를 녹화하고 녹음하는 경우가 많다. 녹화하되 내부 공유만을 허락하곤 한다. 온라인에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불허이다. 큰 의미를 부여하며 정한 원칙은 아니다. 강의라고 하지만 대체로 적어도 나는 만남, 소통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공간과 시간 안에서만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 소중한 현재성이 사라진 채로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나와 수강자들의 모습이 상상만 해도 싫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원칙인데 이 부분에 대해 말로 설명 하다보면 '결벽증 삐꾸아냐?' 하는 느낌을 스스로 받는다. 사실 나는 묻지 않아도 속에 있는 말을 하는 편. 노출에 대한 부담이 없다. 헌데 그런 방식으로 강의를 소비하고 싶지 않은 걸 어쩌랴. 


이번 출간된 <연애의 태도> 홍보를 위해 출판사에서 여러 작업을 하신다. 작업을 위해서 온라인을 탈탈 털어도 강의 영상을 찾을 수 없다 하셨다. 당연하다. 없으니까. 또 앞으로 홍보작업을 위해서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에 나가면 안 되겠나 하시는데 딱 잘라 거절할 수는 없어서 너저분한 말을 늘어놓다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딱 자르니 못한 것은 단지 미안해서가 아니라 내가 고수하는 원칙이 맞나? 싶어서였다. '방송 출연은 하시겠어요? 인터뷰는요?' 출판사 부장님의 디테일한 질문에 답하면서 '나 판매 원칙'이 명확해졌다. 방송 출연, 여타 인터뷰 등은 다 하겠지만 강의 녹화는 안 하게씀미다! 시대적 요구, 독자들의 필요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이 결벽을 내려놓지 못함에 스스로 답답해졌다.   


집단상담 같은 강의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결국 강의를 하고 있고, 강사로서 더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굳이 지켜야할 순결일까? 그러고 보면 결코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강의 자리들도 있다. 어떤 (부류의 유명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얼씬거리지 않겠다, 이런 은밀한 똥고집도 있다. 이름을 알릴 기회라도! 아니, 이름을 쉽게 알릴 기회일수록! 그렇다고 유명한 사람 되고 싶은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아니 그 욕망이 너무 커 주체할 수 없어서 이렇게 비틀거리는 것이다. 이게 나다. 나의 현주소이다. (그 욕망에 압도되어 유혹에 빠진 적도 있다. 서지 말아야 할 자리에 서서 떠들어댄 날, 돌아와 잠 못 이룬 부끄러운 밤이여!)


강사로 나를 소비하고 싶지는 않다. 한 번도 내 직업을 '강사'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강사, 스타 강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 청년을 만났다. '사모님처럼'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었다. (야, 나는 그런 사람 아니거등!) 그 친구의 꿈을 기꺼이 응원하는 바이지만 내 장래희망 목록에 '강사'는 없었다. 그러나 강의하는 일이 즐겁다. 몹시 즐겁다. 즐거움에 비례하는 부담과 노오오력이 어려울 뿐이지. 즐거운 이유는 그 부담과 노오오력의 고통 때문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체험한 끝에 나만의 답을 찾았고, 그것들을 버무려 누군가와 나누는 기쁨이기에 그렇다. 아,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 소중해서 상품화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 더욱 수동적인 강사가 되겠다.

팔리지 않기 위해서 더욱 몸을 낮추고, 하던 공부와 기도에나 열심을 내야겠다.

팔리지 않겠다. 소비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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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도종환
.


당신 거기서도 보이십니까
산산조각난 당신의 운명을 넘겨받아
치열한 희망으로 바꾸어온 뜨거운 순간들, 순간의 발자욱들이 보이십니까
.
당신 거기서도 들리십니까
송곳에 찔린 듯 아프던 통증의 날들, 그 하루하루를 간절함으로 바꾸어 이겨낸 승리
수만마리 새떼들 날아오르는 날갯짓같은 환호와 함성 들리십니까
당신이 이겼습니다
.
보고싶습니다
당신때문에 오래 아팠습니다
당신 떠나신 뒤로 야만의 세월을 살았습니
어디에도 담아 둘 수 없는 슬픔
어디에도 불 지를 수 없는 분노
촛농처럼 살에 떨어지는 뜨거운 아픔을
노여움대신 열망으로
혐오대신 절박함으로 바꾸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
해마다 오월이 오면 아카시꽃 하얗게 지는 오월이 오면
나뭇잎처럼 떨리며 이면을 드러내는 상처
우리도 벼랑끝에 우리 운명을 세워두고 했다는 걸 당신도 알고 계십니까
.
당신의 운명으로 인해 한순간에 바뀌어버린 우리의 운명
고통스러운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지금 우리역사의 운명을 바꾸고 있습니다
시대의 운명을 바꾸고 있습니다
타오르되 흩어지지않는 촛불처럼
타오르되 성찰하게 하는 촛불처럼
타오르되 순간순간 깨어있고자 했습니다
.
당신의 부재, 당신의 좌절
이제 우리 거기 머물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 당신이 추구하던 의롭고 따뜻하고 외로운 가치
그 이상을 그 너머의 별을 꿈꾸고자 합니다
그 꿈을 지상에서 겁탁의 현실속에서 이루고자 합니다
.
보고싶은 당신
당신의 아리고 아프고 짧은 운명때문에 많은 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보이십니까
당신이 이겼습니다! 당신이 이겼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우리들이 우리들이 이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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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에 한 노래 있어 6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Come home, Come home.

  


집밥의 맛을 아는 사람은 집을 떠나본 사람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출퇴근용 떠남일 수도 있다. 바쁜 일정으로 끼니를 거르거나 계속 매식을 해야 할 때 집에서 밥 먹은 지가 언젠지하며 집밥 생각이 난다. 긴 시간 집을 떠날 수도 있다. 난생 처음 집을 떠나 기숙사나 자취 생활을 시작하며 자주 독립 만세! 룰루랄라!’ 하겠지만 독립 시작, 집밥 그리움도 시작이다. 해외에 혼자 나가 있는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이 더욱 간절한 집바. 집밥에 대한 그리움은 원초적인 감각인 식욕으로 대변되는 존재의 깊은 곳의 그리움이 아닐까.

 

긴 겨울이 끝난 건가, 날이 좀 따뜻하네, 싶으면 어느 새 목련 꽃봉오리가 촛대처럼 올라와 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촛대 끝이 벌어져 있고, 그러기 시작하면 대기표 받고 있던 봄꽃이 일제히 피어나기 시작한다. 생명력 가득한 이 짧은 나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막 피어나기 시작한 개나리의 연호를 받으며 길을 걷고 있었다. 부담 되던 강의와 원고가 끝나 마음은 여유롭고 밀린 잠을 몰아서 잔 덕에 몸은 한껏 가벼웠다. 모처럼 안팎이 모두 평안한 순간이다. 만개 직전의 노란 개나리 길이 예뻐도 너무 예쁘다고 느낀 순간, 가슴 저릿하면 내 속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집에 가고 싶어요. 주님이게 무슨 소리? 집으로 가고 있는 길인데 말이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옛집이 그리운 탓이었을까? 아니다. 옛집이 아니다. 그저, 바로 그 집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다양한 층위의 갈망이 있다. 그 갈망이 우리를 어딘가로 이끌어 간다. 심리영성가들은 그 갈망을 신체적, 심리적, 영적인 욕구로 구분하곤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사랑하는 사람과 몸으로 사랑을 나누고 싶은 것은 신체적 욕구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정서적인 충족감을 갈망하는 심리적 욕구도 있다. 그것이 다는 아니다. 몸도 마음도 다 편한데 뭔가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보다 진실한 것, 보다 깊은 관계에 대한 갈망. 이것은 단지 심리적 욕구 그 이상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존재, 영적인 존재로서의 목마름이다. ‘주님, 집에 가고 싶어요.’ 부족할 것 없는 순간에 밀려오는 그리움, 고독감, 공허감은 나를 영적 목마름으로 이끈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찬송 가사의 죄 있는 자란 회심하기 전, 예수님을 알기 전 사람들만이 아닐 것이다. 매일 매 순간 그분의 사랑을 거부하는 나, 사랑받기를 거부하는 죄인인 나를 부르시는 음성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꽃길을 걷다 한숨처럼 밀려 나온 주님, 집에 가고 싶어요.’오라, 오라하시는 내 안에서 여전히 울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대한 내 영혼의 답가일지 모르겠다. 흔히 영성을 정의하기를 인간 마음속의 진실한 갈망, 즉 하나님을 향한 우리 마음속의 갈망이 이끄는 영혼의 여정이라고 한다. 집밥은 단지 밥이 아니라 엄마와 가족이 있는 따뜻한 곳인 것처럼 집으로 돌아가고픈 목마름은 우리 영혼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이다. 위 찬송가를 영문 가사로 불러보니 후렴의 'home'이 얼마나 큰 따스함으로 다가오는지. Come home, come home. 작은 소리로 여러 번 불러본다.

 

Come home, come home. You who are weary come home.

Earnestly, tenderly Jesus is calling. Calling all sinner, come home

 

집으로 오렴. 내가 여기 있다.” 간절히 오라고 부르시는 음성이 시도 때도 없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건만 피하려고만 하는 우리이다. “예수님, 좀 기다리세요. 자꾸 귀찮게 하지 마시고 주일날 예배 때 만나요. 다음 수련회 저녁 기도회 시간에 만나요. 이 외로움, 분노, 실패감, 지질한 감정들 다 정리 되는대로 당신께 갈게요.” 이러는 대신 3절을 노래하며 바로 지금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다. ‘간절히 오라고 부르실 때에 우리는 지체하랴.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 받고 못 들은 체 하려나주님이 만나자고 하는 곳과 장소는 죽어서 가는 저 천국만이 아니다. 신변 정리 다 하고, 웬만한 죄는 좀 털어내고, 한 듯 안 한 듯 비비크림 발라 영적인 화장을 마친 후가 아니다. 바로 지금 그분을 만나러 내 마음 깊은 곳 갈망의 자리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날이 오랜 후에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두신 영원한 집(4)’에서 두 팔 벌려 영접해주시는 그분과 헤어짐 없는 만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자전거를 탄 풍경 15집 앨범이 나왔....다는 게 아니고,

자전거를 탄 질풍노도의 15세 아들 어쩌구 저쩌구 하는 얘기이다.


질풍노도의 15세가 자전거를 사랑하게 되어 다행이다. 

고마워, 너. 사춘기 아들과 함께 해줘서.


긴 연휴 중, 현승이는 1박2일 춘천 라이딩을 다녀왔다.

교회 자전거팀 집사님들, 전문가급 선생님들, 형아와 동생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좋은 자전거를 사두고 몇 번 타지도 않았던 사촌형이 독일로 공부하러 떠났고,

그 좋은 자전거를 덥석 차지하게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전거를 사랑했고, 마포 한강변을 사랑했던 소년이 있었다.

마포 한강과 자전거 타던 친구를 두고 떠나게 되었다. 안녕, 또 만나.  


상실감으로 텅 빈 가슴을 형아가 남기고 간 좋은 자전거가 채워주었다.

그래, 난 좋은 자전거가 생겼어. 슬퍼하지 말자.


분당에 둥지를 튼 첫날부터 자탄풍이었다.

자전거를 탄 질풍노도의 소년은 하루 한 두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다.


소년이 '엄마, 나 자전거 타고 올게' 하고 바람처럼 나가버리면

엄마의 마음엔 휘잉 찬바람이 불었다.


엄마는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길을 아이는 달리고 있을 터이다.

뻥 뚫린 마음에 새동네의 새바람이 통과하며 휘익휘익 소리를 낼까.


마포 강변에 두고 온 친구들을 그리며 더욱 세차게 페달을 밟을까.

엄마를, 아빠를 원망하다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이 바람에 흩어질까.


자탄풍 15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제멋대로 흘러가는 소설 한 편이다.

우이쒸, 이젠 자전거만 봐도 슬프고 죄책감이 들어.


아이에겐 엄마가 모르는 낯선 길이 있고

정면으로 마주한 바람이 있다.


춘천에서 자전거를 타고 분당까지 오는 길엔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이었고

황사 바람이 쌩쌩 불었다.고.했.다.


바람을 맞은 것은 자전거를 탄 아이이다.

엄마가 집에 죽치고 앉아 맞은 바람이란 오래 전부터 불던 고물상의 가위소리 같은 바람이었다.


아이는 바람을 몸으로 맞았고

엄마는 제 속에서 왔다리 갔다리 울려대는 가위소리에 오라가락 했다.


소년에겐 좋은 자전거가 있고

자전거를 타는 집사님, 선생님, 형아들이 있다.


엄마란는 제 속의 고물상이나 제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자전거를 타는 질풍노도의 열다섯 살 소년은 웬만한 바람 따위는 '질풍'으로 제압하고 있는 중이니.


아들의 네가지 없는 말과 행동에 '한 대 때릴까' 분노가 타오른다.

'노도'를 품은 열다섯 아들을 이겨 먹을 방법은 없다. 어른이 되는 필수 코스니 말이다.


아직 한창 티슈남이었을 적에 자동차 안에서 함께 들었던 노래를 듣는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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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 내적여정 [심화과정] 안내입니다.

'어린아이의 기억은 눈 온 길에 난 자동차 바퀴자국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동차 여러 대가 다닌 눈길에는 바퀴의 길이 생깁니다.
다음에 오는 차는 어쩔 수 없이 골이 생긴 그 위를 달리게 됩니다....
성격이 형성된 생애 초기에 패턴화 된 나의 사고와 감정의 습관을
돌아보는 것이 심화과정의 내용입니다.

강의와 함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다양한 나눔을 합니다.
작년에 하루 과정으로 진행된 심화과정을 1,2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래 참고 하셔서 신청해주세요.

심화과정 들으셨던 분들 재수강 가능합니다.(재수강료 3만원)
에니어그램 세미나 1단계 수강하셨다면 심화과정 신청 가능합니다.
심화과정 먼저 들으시고 다음 기회에 2단계 들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일시]
. 심화과정 1 : 2017년 5월 31일(수) 오전 10시~오후 5시
. 심화과정 2 : 2017년 6월 28일(수) 오전 10시~오후 5시

[장소]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5층 세미나실 (합정역 7번 출구에서 3분)

[인원] 각 강좌 선착순 10명
[수강료] 각 강좌 12만
[문의] 010-4235-8020  larinari.tistory.com
[신청]
. 심화1과정 신청 :http://bit.ly/2lJjdFL
. 심화2과정 신청 :http://bit.ly/2qQYZ2B





책이 나왔습니다.

지난 책 <토닥토닥 성장일기>는 최순실의 농단으로 빛을 볼 새가 없었습니다.

출간되자마자 터진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민국 전체와 함께 먹혀버렸지요.

의도한 것도 아닌데, 심지어 이번에 출판사도 달라졌는데 시의적절한 출간 일정이 되었습니다.

그 뜨거웠던 광장의 촛불 잔치, 가슴 떨리던 탄핵 인용, 그리고 장미 대선입니다.

이 설레는 날에 새로운 책을 소개할 수 있다는 것에 개인적으로 위안이 넘칩니다.


QTzine에 연재했던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가 단행본의 옷을 입고 나온 것입니다.

글 전반에서 연애의 기술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태도 점검을 촉구한다는 의미에서

<연애의 태도>라 이름 붙였습니다. 

저를 소개할 때 '연애 강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연애 강의도 합니다.'라고 하지요.

그것이 제게는 중요한 차이입니다. 


연애로 낚아서 사랑에의 갈망을 일깨우고, 

사랑받고자 애쓰는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하여

자기로 충분하기까지 성장하도록 부추기고,

결국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더 큰 사랑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제 인생이 나아갈 방향이고, 제가 하는 모든 강의와 글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나이 오십에 하는 연애 강의 자체가 썩 재밌지는 않지만 소중합니다.


책이 가볍습니다. (사실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ㅎㅎㅎ)

할인하여 만 원 이하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딱 그렇습니다.

청년들끼리 선물하고 자녀들에게 선물하시기도 좋아요. 

성원 부탁드립니다. 


알라딘에 있는 <연애의 태도>

예스24에 있는 <연애의 태도>

인터파크에 있는 <연애의 태도>    

갓피플닷컴에 있는 <연애의 태도>







아이들 다 키워 시집 장가 보낸 중 늙은 부부처럼 등산을 간다.

며칠씩 아이들 데리고 자동차 여행 다니기도 이제 쉽지 않다.

전문 운전꾼이며 짐꾼인 아빠 일정에 맞춰 체험학습 내고(말하자면 학교 째고) 다닐 적이 좋았지.

청소년 백수인 채윤이는 모르겠지만, 중학생 현승이가 있는 한 어려운 일이다.

시험도 마치고 단기방학으로 일주일을 내리 쉬지만 '성수기에는 꼼짝하지 않기'가 가훈 수준이니까.


날씨 좋(지만 미세먼지 가득)은 5월, 결혼기념일 이틀 지난 날에 18년 차 중 늙은 부부는 등산을 한다.

산이 가까이 있으니 우리는 오른다.

집 가까이에 있는, 조금 긴 코스의 영장산 도전.

휴일에도 호젓한 등산길이라 더욱 좋았다.


송충이가 자꾸 머리 위로 떨어져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산길이기도 했다.

제비꽃(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닌 것 같다) 딱 한 송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피어 있다.

어쩌면 햇살이 딱 이 작은 꽃을 비춘단 말인가.

제비꽃은 나다.


고3 때 담임 선생님이 영어 선생님에 총각 선생님에 낭만적인 선생님이었다.

영어를 좋아하고 낭만을 동경하고 기타 잘 치는 남자를 무조건 좋아했던 내가,

고3 팍팍한 삶에 생기가 필요했던 내가 선생님을 안 좋아할 방법이 없었다.

가끔 기타를 들고 나타나 노래를 불러주셨다.

'바람이 불어 눈을 뜨면 텅 빈 내 가슴에 사랑이 솟네

누구라도 곁에 있으면 사랑해줄 텐데 내 사랑이여'


나는 늘 선생님 곁에 있었는데 왜, 왜 사랑해주지 않으시냐고요?

선생님의 이상형은 코스모스 같은 여자였다.

우리 반에 정말로 하늘하늘한 코스모스 같은 친구가 있었다.

얼굴이 하얗고, 목이 길고, 키가 크고, 하늘하늘했다.

담임 선생님이 그 애를 제일 예뻐하시는 것이 기정사실이었다. 


친한 친구가 내게 그렇게 말해줬다.

너는 안 돼. 너는 코스모스가 될 수 없어.

앉은뱅이 꽃이야. 알지?

'보랏빛 고운 빛 우리 집 문패 꽃, 꽃 중에 작은 꽃 앉은뱅이랍니다.'

유치원 다닐 때 불렀던 노래. 왠지 그때부터 이 이 노래가 내 노래 같았었다. 우쒸.


작고 귀엽고 웃긴 애를 좋아하시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코스모스는 어렵다! 포기!

선생님 흉내 내고, 놀리고, 골탕 먹이기 작당하는 캐릭터로 잡았다.

꽃 중의 작은 꽃 앉은뱅이 꽃이니까.


오늘 만난 제비꽃은 아니지만 제비꽃 같은 보라 꽃은 작지만 고상해 보였다.

결코 코스모스에 밀리지 않을 자태이다.

조명발인가?

홀로 피어나 스포트라이트 받는 자태가 고고하며 심지어 의연해 보이기도.

제 모습대로 피어나 자기답게 서 있으니 말이다.


세 시간 힘겹게 산에 오른 의미가 충분하다.

저 작은 꽃 한 송이를 만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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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고,

우리 중딩 시험 끝난 날이 생일이고.

축하 파티에도, 선물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그냥 없는 것처럼 지나가는 것에 제일 좋은 선물이겠으나.

케잌도 하나 생기고, 네 식구 모였는데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생일축하 세러모니 합니다.  


착한 애도, 감성 풍부한 애도, 시(詩)심 충만한 애도 사춘기를 합니다.

한창 놀던 시절에 누나가 여동생 버전으로 지어준 이름

미은이 가 있고,

역시 그 시절에 누나가 질투와 얄미움 듬뿍 담아 불러줬던

김현망, 김형팡, 김덕삼. 이런 이름도 있었습니다.

중2 사춘기를 지나는 요즘에 아빠가 그에게 다가가 이름을 불러줍니다.

승.

야, 왜 이렇게 욱해? 욱하지 말고 얘기해.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자꾸 '욱'을 하기 때문에 세 식구는 이 눈치를 많이 봅니다

일례로, 시험이 끝난 날, 생일 당일이었습니다.

저녁은 아빠 스케쥴과 누나의 알바 스케쥴로 함께 식사할 날이 없어서

점심을 같이 하기로 합니다.

이게 무척 잘못된 결정이었는데 일단 등교할 때 미리 알려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현승이 등교 이후에 아빠 시간 된다는 것을 알고 엄마가 갑자기 결정한 일이었다는 것.

또 하나의 잘못. 이것은 님 앞에서는 대역죄에 해당하는데

학교 앞에 가서 기다리다 서프라이즈로 차에 태우는 스케쥴이 된 것입니다.


이 상황을 선생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실지 알기에, 그분이 대노하실 것을 알기에

세 식구는 이미 엄청 쫄아있었습니다.

주차를 보이는 곳에 하면 안 돼. 누가 나가서 현승이를 부르면 제일 안 쪽팔려 할까?

엄마는 안 돼. 그렇다고 아빠도.... 그래, 채윤이가 가. 헌데 절대 호들갑 떨면 안 돼.

조용히 현승이 눈에 띄기만 하고 아는 척은 하지 말고, 차로 유인해.


이렇게 신중하게 접근했지만 선생께서 그냥 지나치실리 없습니다.

꽤나 하셔고, 대역죄인들은 눈치 보며 처묵처묵 했습니다.

이렇게 그분의 탄신일이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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