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  2월 25일     JP  네팔 비젼 트립
2월 21일 -  2월 24일     SS 경기도 기도 트립
2월 28일 -  3월1일       JP  TNT 리더십 캠프
3월 1일                      SS  에니어그램 강의
12월 24일 - 3월 1일     챈&승  간간이 학교 가면서 거의 방학 뒹굴뒹굴







2011년 3월1일이 올까싶었는데...
3월1일은 왔다 가고 있돠.
네팔비젼트립팀 해체식을 겸한 거한 식사와 함께 우리집 비상시국도 해제돠.


이제 다시 일상이다.



원고만 다 써서 넘겼더라면 새학기 3월2일은 얼마나 쌈박하게 맞을 수 있었을까?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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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당하는 것.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줄 아냐고!!!! 라고 시덥잖은 반항을 할 때가 있듯이.
생일은 그냥 별안간 당해서 정신차려 보니 이 땅의 어느 집에 살고 있는 것.

 





어느 나이 많아 늙은 시골 목사님 집의 딸로 태어나 있는 것.
태어나서 정신 차려보니 5주 쯤 되어 있었고, 1969년 4월 7일이었고, 이름은 신실이였던 것.
그리고 자다가도 애가 깽만 하면 일어나서 불 켜고 애를 들여다보고 있더라는 아버지.
꼼꼼하고 기록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딸이었더라는 것.






40여 번이 넘게 생일을 당했고 어느 또 다른 생일이 되었다는 것.
생일인지도 잊어버리고,
생축준비위원장이 되어야 할 남편이 잠시 멀리 가 있는 사이,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오니 나한테 당해서 우리집 딸이 된 김채윤이가 센스도 풍부하게
예쁜 선물과카드를 준비해 놓았더라는 것.
아빠도 없는데 케잌은 됐다 하니 치킨이라도 시키자하여 치킨 놓고 크리스마스 초를 불고 생일 당한 걸
축하했더라는 것.






생일을 당하 듯 시어머니의 며느리가 된 지 12년.
12년 동안 한결같이 오글거리는 편지와 카드를 써서 드리곤 했더니,
시엄마께서도 맘 먹고 오그라드는 편지와 함께 금일봉을 하사하시더라는 것.
이걸 보던 열 두 살 딸은 이러더라는 것.
'엄마는 참 좋겠다. 시어머니를 잘 만나서... 나는 잔소리 하고 일만 시키는 시어머니 만나면 어떡하지?
휴우....' 하더라는 것.






밤 10시가 넘어 집에 축하단이 들이닥쳤다는 것. 그래서 생일을 당하 듯 별안간 축하를 당했다는 것.
이쁜이들이 불꺼진 케잌을 들고 들어와서는 축하한다며 나한테 불좀 빌려달라고 했다는 것.
내 생일 케잌에 내가 불 붙여보기는 처음이었다는 것.ㅋㅋㅋㅋㅋ
이제 사진을 보니 다 목짠데 영애는 어떤 의미로 끼어있냐는 것.
(영애가 글을 읽을 때마다 정줄을 놓고 읽는 것 같아서 이렇게 가끔 환기시켜주기로 했다는 것ㅋㅋ)


오지마라. 오지마라. 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는 것.
이렇게 젊고 이쁜 꽃 같은 애들한테 기습적으로 축하받는 아줌마가 어디 있겠냐는 것.


40여 년 전에 갑자기 무방비 상태로 생일을 당해서 태어났지만,
생각해보니 태어나기를 잘했다는 것.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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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어려서 시골에서 자랄 때 나는 내가 엄청나게 이쁜 줄 알았...ㅋㅋㅋㅋ
아, 진짜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교회 권사님들 모 학교 선생님들 교회 오빠들 '김자옥' 닮았다고..ㅋㅋㅋ
우리 엄마는 이런 얘기를 물어보면,
'이뻐찌이~ 얼라, 얼매나 이뻤으믄 중(스님)이 장(시장)이 가는 길이 목사사택이 들어와서 널 안아보구 갔겄냐'
하신다는...


아니, 한 30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서로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었겠지만 나는 일찍 서울로 전학온 편이라 잊은 친구가 대부분.
어찌어찌 연락이 닿아서 동창회 공고와 졸업앨범, 그리고 연락처가 메일로 온 어제.
주최하는 친구가 '야, 남자 새끼들이 다들 너 나오냐고 묻는다. 너 꼭 나와야한다' 했다. 으쓱으쓱.
친구들 여럿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초등학교 친구들 중에서 니가 제일 궁금했다.
너 이뻤잖아. 몸이 약했었지?
이름도 목소리도 가물가물한 친구들이 추억을 더듬어 찾아주니 반갑기 이를 데 없었다.


친구들에게 그랬다. 나 동창회 아무래도 못나갈 것 같...
예쁜 초등학교 동창은 그대로 예쁜 추억으로, 로망으로 남겨둬야지 않을까?ㅋㅋㅋㅋ


저 친구들 중에는 대대적으로 나를 왕따시킨 친구도 있었다.
여자애들 중에서 나하고 말 한 마디만 하면 '바로 너도 왕따' 이런 식으로였던 것 같다.
그 중 한 친구는 나를 찾아와서 울면서 '나 너랑 이제 못 놀아. 너랑 놀면 OO가 가만히 안 둔대'
실은 그 왕따의 기억이 내게 한 구석 상처로 남았고, 그 상처가 위축이나 결핍감을 낳아서 그 이후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하나의 걸림돌이 되었던 게 분명하다.
앨범을 받아서 보는데 채윤, 현승이가 '엄마, 그 이모 누구야? 엄마 괴롭혔던 그 이모... 내가 정말
만나서 때려주고 싶어' 아...그런데 뭐라고 불러? 그냥 'ㅇㅇㅇ 이모라고 불러? 아니면 ㅇㅇㅇ 라고?
그냥 지지배라고 할까?'했다.


30년을 거슬러 올라가 기쁨과 아픔이 함께 교차하면서 조금은 여유있는 웃음을 지어봤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이같이 생긴 꽃이여' 하는 싯구가 생각나면서...
아주 조금은 덤덤하게, 또 아주 조금은 여전히 설렘과 두려움으로 흔들리며 중년이 되어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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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4일 제주여행, 이런 식으로 하자면 내년 여름 휴가까지 포스팅 할 수 있을 듯....ㅎㅎㅎ
제주원정대 대장께서 일면 '백쉐프'라 불리는 요리인이시기에 먹는 거 역시 지대로 끝내주는 여행이었습니다. 제주도 여행 가면 이런 걸 먹어줘야 하는구나. 하는 음식여행의 정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갈치회 되겠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 갈치회.
회가 부들부들해서 아이들이 진짜 좋아하더군효. 으아, 쩝쩝쩝....




개인적으로 첫날 점심이었던 회국수에 금메달을 주고 싶습니다.
비비지 말고 촬영을 했어야 하는데 사진은 음식인지 뭔지 싶지만 그 맛은 끝내줍니다.
우리 아버님 엄청 좋아하셨을 맛인데... 2년 전 부모님 뫼시고 제주도 갔을 때 이걸 모르고 왔으니 아버님 생각에 국수가 목에서 넘어가질 않.....아야 하는데 어찌나 술술 잘 넘어가는지.ㅠㅠ 한 접시 추가하고도 다 먹어 치웠다는 것입니다.





자, 해군들 잠깐 저리 비키시고 이번엔 육군입니다.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
캬아, 제대로 하는 집에서 먹어보니 비계까지 쫄깃쫄깃 진짜 맛있드랍니다.



 

갈치회 나와주고 갈치조림 빠지면 섭섭하지요.
애들이 입맛은 제대로 알아가지고, 어른용으로 시킨 이 매운 조림을 어찌나 들이대고 먹는지요. 아흐, 저 국물 싸올껄.... 갈치는 고사하고 저 국물에 밥 비비면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겠다. 츄르르릅....



 

먹을 때마다 분위기는 이런식.
모, 이런 걸 두고 화기애애라고 하던가....ㅎㅎㅎ






이름을 까먹은 어떤 회를 먹고 매운탕 대신 나온 지리.
엄청 커다란 이름을 까먹은 물고기의 회를 뜨기 위해 요리하는데 모두 와서 확인하라고 주방으로 불려갔습니다. 회 뜨기 직전 망치로 물고기를 때려잡는 엄청난 장면을 목격했다는.... 결국 그 장면의 충격으로 회로 나온 그 이름 까먹은 물고기 사진을 찍지를 못했답니다.ㅋ





제주에서의 마지막 식사.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뭔가 도회적인 음식이 그리워졌다는....
그래서 찾아낸 크라제버거! 이런 세상에, 용두암 근처에 바다를 한 눈에 바라보면 크라제버거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지요. 우리가 상상한 것은 다 먹을 수 있는 곳! 으하하하하.



'정신실 또 커피 드립기구 싸 갖고 올 지도 몰라' 했다는 그들 부부의 추측이 맞았습죠. 제주까지 커피와 드리퍼를 싸가지고 갔습니다. 그래서 3박4일 매일 신선한 핸드드립 커피를 뜨겁게 또는 아이스로 마시는 기쁨 또한 장난 아니었습니다.



이건 주로 털보님 눈에만 띄는 장면인데 드디어 저도 건졌습니다.
어느 날 아침 커피를 마시고 났더니 바닥에 '따랑해'가 새겨져 있드라구요.
아흐, 진짜 모두 '따랑해♡






마지막으로 한 상에 다 차려놓고 다시 들여다 봅니다.
밥할 의욕도 밥맛도 없는 이 무더운 날에 그 입맛의 추억을 쩝쩝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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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 3박4일 내내 하늘은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숙소를 드나들며 바라보게 되는 성산일출봉은 그 자태로도시시각각 새로운 신비로움으로 다가왔지만 배경은 역시 하늘이었다.
어느 순간 성산일출봉은 위엄의 자태를 보여주다 보여주다 저렇게 구름띠를 두르고 버티고 있었다.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경관이었다.






유난히 하늘이 맑고 구름이 아름다워 고개만 들면  '아우, 하늘 봐' '엄마, 하늘 봐. 구름 봐' 이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차도 별로 없는 제주도의 도르는 무조건 하늘로 이어지는 듯하다.






생각해보니 비행기를 타고 오가는 길에는 바라보며 경탄하던 구름의 품에 있었었구나.






마지막 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바라본 하늘.
길게 누운 우도가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데 그 푸른 빛이 하늘이나 바다나 하나였고,
끝나가는 여행에 대한 아쉬움 가득담은 블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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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있는 폐채석장을 공원으로 만들었다는 포천 아트밸리 찍고 오다.

운악산에서 1박을 하고, 우리 부모님 참말로 좋아하시는 포천이동갈비 먹으러 가는 길에 들렀다. 애들이 지나가다 꽃 한송이를 꺾어도 '자연보호' 운운하는데.... 산에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서는 돌을 채취해 간다? 이 엄청난 자연훼손.






헌데 그런 곳에 빗물이 고여 자연스레 호수가 생기고 또 다시 인공의 힘을 가해서 멋진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한다. 사진 찍어 드리는 거 좋아하시는 어머니.






기냥 한 번 해보는 같은 장소 다른 사진.






임산부 노약자는 타고 내려오기 어려운 후덜덜 계단.



 

이번 휴가로 짱짱한 체력을 입증해 보인 임산부도 노약자도 아닌 김현승 겁없이 후덜덜 계단을 정복하다.






산이 좋고, 나무가 좋고, 자연이 좋다는 짐승남 민들레 홀씨를 불어 날리다.





기본 비율 좋고, 날이 갈수록 길쭉해지는 도심녀(산이 싫고, 조용한 자연이 싫고, 제일 맘에 드는 곳은 명일시장 입구에 사람들 제일 북적거리는 휴대폰 가게라는 도시가 좋다는 ) 챈이 서 있는 포스도 모델포스 아닌감요?






사진 찍히기도 좋아하시고 찍어주기도 좋아하시는 할머니가 찍어주신 가족사진. 같이 여행가면 가족사진 정말 많이 찍어주시는데 네 식구 가운데 제대로 서 있으면 다행. ㅠㅠㅠㅠ


블로그 안해 버릇 하니깐 영 블로그질도 어색하고,
글빨도 안나오고,
사진 몇 장으로 조금씩 복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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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휴가주간은 왔고,
수목금토 본격적인 대박휴가를 앞두고 '십일조 휴가'를 먼저 다녀왔다.
(* 십일조 휴가 - 우리끼리 여행가면 은근 섭섭해 하시며 늘 채윤이 에미의 이벤트를 기다리시는 부모님과 휴가철 마다 함께하는 짧은 여행)


작년 처럼 운 좋게 산림청에서 운영하여 국립유양림 당첨. 포천의 운악산 자연휴양림이시다.






날은 엄청 후텁지근한데 하늘의 구름이 잔뜩 꼈고,
마땅히 물놀이할 장소도 없었다.
그래도 계곡물에 발은 담가야겠기에 김종필 아빠가 지가며너 '계고가~어!' 하고 부르던 계곡으로 내려갔다. 엽기녀의 리얼한 표정을 보시라. 저 표정은 '뼈 속까지 시리다'의 형용사를 표정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그러니까 말하자면 발을 1분 이상 담그고 있는 건 달인 김병만 수준의 끼와 인내를 요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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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슈남 숲의 정기를 받아서 짐승남 되시다!
숲이든 어디든 길에서 뭘 주워오는 게 취미이신 티슈남께서 숲에서 총 같이 생긴 짝대기 하나를 주우시더니 바로 짐승남으로 변신.
아~ 오빠, 멋져요!!



0123




거 이상하네.
운악산의 정기를 받아 티슈남 아들 짐승남 돌변하더니,
까칠남 김종필씨는 바로 이선균으로 변신해서 맥심 커피 CF를 찍으시네 그려.

 




느끼함을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이런 작위적인 표정연기는 진지남 도사님께서 흔히 보여주시는 않는 관계로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한꺼번에 밀려든 짐승남, 느끼남의 매력에 정신 못 차리고 있는 한 송이 이름없는 들꽃.ㅋ



 

사춘기가 오시는 지 가시는 지 암튼 대체로 군중과 떨어져 혼자만의 길을 다니시는 100점녀 김채윤이 숲 속에 설치된 야외 무대에서 약간의 사춘기스러운 감질나는 공연을 보여줬다.






짧은 콘서트는 끝이나고,
김씨네 삼대는 각자 자기의 인생관대로 같이 있으나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신다.
아버님께서 고뇌가 깊으신 모양...... 알고보니 속이 출출하시고 속이 쓰리셔서 저녁 먹기 전에 막걸리 한 잔만! 이런 바램이셨는데 준비물에 막걸리가 빠져있었다는 것이었다.ㅋ
'아, 막걸리를 사러 밖에 나가? 말어?' 이런 깊은 고뇌에 빠지신 것이다.



나이가 먹을수록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없구나 싶다.
헌데 유일하게 기대되고 먹고싶은 것이 바로 산에서 해먹는 바베큐다.
주말에 상공에서 대한민국을 내려다보면 바베큐 굽는 연기로 가득하네 어쩌네, 바베큐용 숯에 발암물질이 어떠네 해도 난 모른다. 어쨌든 맛있따~아.
목살, 오리고기, 등갈비를 함께 구웠는데 아빠는 자꾸만...
'현승아, 목쌀 먹자. 목쌀 꼭꼭 씹어 먹어. 목쌀 씹어 먹으니깐 맛있네' 이랬다는...ㅋㅋㅋ






보시라~아!

안타깝지만 보.시.기.만. 하시라~ㅋ



0123



인크레더블 가족 드디어 국가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초능력 인간으로 변신 중.
이번 주 휴가를 완전히 마치고 돌아오면 기대하시라. 인크레더블 악당 신드롬으로부터 세상을 구해낼 것이다.
뭐래니?ㅋㅋㅋㅋ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이 숲에서 해먹는 목살 바베큐 구이라면...
두번 째로 맛있는 건 바베큐 먹은 다음 날 남은 고기로 끓인 김치찌게!






휴양림을 나오면서 숲해설을 열심히 들은 채윤이 현승이에게 숲해설가님께서 수 하늘소 한 쌍을 분양해 주셨다. 아이구, 이 놈들 지금 베란다에서 어찌나 퍼드덕대는지....



이번 1박2일 여행 중 백미는 저녁 먹고 여자팀 남자팀 나눠서 대결한 '손으로 하는 족구?ㅋ' 였는데 사진이 없다. 이 재밌는 신종 구기종목은 두 아이 일기에나 남겨야 할 모양.


십일조 휴가가 여기서 끝나지 않았지만 내일 새벽 일찌기 대박 휴가를 가야하기에 서둘러 마무리 한다. 휴가 이야기는 투비컨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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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개그인 동생네 부부와 세 조카.
이 녀석들 요즘 모여서 노는 거 보면 완전 정신을 쏙 빼놓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찌나 순한 지 놀다가 잠드는 게 일상이라서
한 번 쯤 모아보고 싶은 사진들이었습니다.
세 아들의 엄마가 교회 홈페이지에 모아서 올린 사진을 그대로 가져왔지요.
아우, 진짜 귀여운 놈들 듁음입니다.

===============================




노리개 물고 칫솔 들고 한쪽다리 올리고 -수현이편


잠자는 형들 사이에서 신생아세현


상자 안에서 놀다 잠들기 -우현이편


큰(?) 일 보고 잠든 우현이


볼 일 보고 곧바로 쓰러져 자는 수현이와 밥먹다 잠 든 우현이


보행기에서 팔베고 잠들기 -우현이편


변기 위에서 잠들기 -우현이편


서랍장 위에서 놀다 잠들기 -우현이편


서랍장 위에서 놀다 잠들기 -수현이편


같은옷 다른느낌- 우현이와 수현이 비슷한 시기에..


혼자 놀다 잠들기 -각각 수현, 우현 14개월즈음


난방효과- 옹기종기 모여자면 따뜻해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막내 세현이부터 아빠까지 모두 잠이 들어있는 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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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의 제자라 하는 저는,
그럴 듯하게 겸손의 모양은 흉내낼 줄 알았지
제게 유익을 끼칠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않은 약자에게는
진심으로 고개 숙일 줄을 모릅니다.



당신이 높은 부엉이 바위에서 추락한 이후 당신의 많은 모습들이 종종 생각나
마음 한구석 찌르르르 아파오며 그리움에 사무치지만....



저 사진에서 모자를 벗고 정중히 고개를 숙인 당신의 모습은 제 자신을 그저 부끄럽게만 합니다. 당신은 제가 본 어떤 지도자보다 겸손하고 정직합니다.


어찌하여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드리겠다는 사람은 예수님의 삶을 닮아 있지 않았고,
어찌하여 당신은 그 반대 입니까?


그대 어디 있나요?






덧붙이는 속에 있는 얘기


오래 쉬고 있어서 걱정끼쳐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게 하는 건 아닌데... 죗옹입니다.
저는 살아 있고,
간만에 포스팅 하려는데 어느 새 1주기네요.

머릿속에 올랐다 내렸다 하는 생각의 조각들은 많지만
잊지 못할 사람에 대한 기억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때입니다.

이 블로그에 오는 사랑하는 청년들.
하늘의 시민인 동시에 이 땅의 시민인 우리의 정체성을 기억하며
6월2일 지방선거에 꼭 투표하기를 마음 다해 부탁합니다.
특새에 참여하는 열심만큼 이 땅의 국민으로 할 일을 다하는 우리가 되길...
그것이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또 다른 귀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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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 포스팅은 써놓은 당사자로서도 볼수록 손발이 말려들어가는 거 인정. 그런 이유로 빨리 첫화면을 바꾸는게 사람된 도리지 싶습니다.ㅋㅋㅋㅋ 이거 싱글들은 싱글들대로 짝이 있으신 분들은 또 그 나름대로 고충이 있거나 느끼한 글이었을 줄 압니다. ㅋㅋ


김훈의 <남한산성>을 끝으로 손에서 소설을 놓은 지 오랜데,
김훈의 <공무도하>를 시작으로 다시 소설을 손에 잡았습니다.
소설가들은 어쩜 그렇게 소설을 써대고 있는지......ㅋㅋㅋ
(아, 김훈의 소설은 어쩜 그렇게 소설이지만 어쩜 그렇게도 내가 사는 삶인지.... 그래서 언제든 손에 들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은 독서를 하게 만듭죠. 제게는요. ㅎㅎㅎ)


(저저번 포스팅의 '사실 싼게 우동' 내지 '신실씨 ***' 내지 '신실쏙 강오동'은
'소설 쓰고 있다'가 정답이었습니다)





진짜 사랑을 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아가페니 에로스니 하고 구별짓는 것은 머리로 아는 사랑일 뿐이고요. 그저 어렴풋이 돌아보면 나를 나되게, 나를 자유롭게, 나를 행복하게 했던 그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었다는 생각을 하지요.
그 사랑의 원형은 하늘이고, 하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 아주 나이브하게, 가장 알아먹기 쉽게 드러난 것이 골고다의 그 사건이라는 정도? 아주 조금씩 그 사랑의 진수를 알아가고 있는 정도지요.


주로 만나서 속깊은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20대와 30대 초반에 이르는 파릇파릇한 사람들이다보니 그들의 방황과 함께 '사랑'에 대한 정의가 헷갈리곤 합니다.
그러니까, 소설쓰는 소설가가 이렇게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에 공감이 되더라는거죠.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사랑을 이룬 이들은 어쨌든 서로를 좋은 쪽을 이해한 사람들 이라고, 스무 살의 나는 생각했었다. 결국 내게 주어진 행운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서로의 이해가, 오해였음을 깨닫지 않아도 좋았다는 것...


이 공감백배의 소설 속 소설같은 표현에 결혼 10년이 넘은 아줌마도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잠깐 책에서 눈을 떼고 한 두 번만 깜빡거리며 생각의 끈을 붙잡아보면 '오해'를 오해로 붙들고 싶은 '로맨스'와 사랑을 구별하게 해주는 이보다 좋은 표현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소설 읽는 재미란.....)
이 지점에서 이 모뉨이 지금 뭔 얘기를 하는 거? 라며 모늼에 대한 이해 아닌 오해가 마구 솟구쳐 올라오시는 분들께 두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1.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고미숙, 그린비
2. <로맨틱 러브에 대한 융 심리학적 이해, We>, 로버트 A. 존슨, 고혜경 옮김, 동연


사랑을 지고지순한 로맨스로 승화시켜버리면 결국 상처받는 건 나 자신일 뿐이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쓰고 있네' 라는 표현은 얼마나 좋은 망치 한 방이 되어주는지...
그럼에도 소설가가 쓴 소설은 또 얼마나 좋은 새로운 세상의 호흡을 열어주는지...
하이튼 소설에 푹 빠져 오늘도 잠 안오는 밤, ㅅ ㅅ ㅆ ㄱ ㅇ ㅅ ㄴ 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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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저렇습니다.

주일날 카페를 운영하는 중 허브티에 손맛을 더하고자 티주전자에 손을 푹 담궜다지요.
물론 주전자엔 뜨거운 물이 가득했구요.
생각보다 심하진 않지만 한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통에 원활한 블로그 생활이 어렵습니다. 한 문장 칠려면 오타가 백 번.ㅎㅎㅎㅎ
포스팅할 것들 쌓였는데...






병원 가기 전 통증이 심할 때는 오히려 '얼음찜질 타법'으로 나름 할만 했었는데요.
'붕대타법'은 웬만한 독수리타법보다 오타발생률이 높아 어렵습니다.
애로사항은 있지만 봄이 오고 있으니 맘이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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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생일에 엄마가 좋은 점 열 가지 씩 얘기할 때 아빠가 '음...엄마가 아기들을 예뻐하는 모습이 좋아' 하니깐 채윤이가 '맞아. 엄마는 애기들을 정말 이뻐하고 잘 놀아줘. 세현이랑 통화하고 노래해 주고... 엄마가 고모라서 참 좋아' 라고 맞장구 쳐주었습니다. (완전 기분 좋았음:)

대박 에피소드 쉬지않고 빵빵 터뜨려주는 조카 삼형제 이야기 입니다.
그 집에 가서보면 사진마다 에피소드마다 대박이지만 몇 개만 골라왔습니다.
이 놈들의 엄마빠, 특히 엄마에게 경의와 찬사를 보내며....
수현, 우현, 세현이 엄마 선영이 미니홈피에 올라온 사진과 멘트 그대로.

==============================


에피소드 1 : 난방효과


옹기종기 모여 자면 좀 더 따뜻하답니다^^




에피소드2 : 미개척지



서랍장안, 식탁위, 김치냉장고위, 농속, TV위, 피아노위, 아빠책상위 등 
안 거쳐간 곳 없이 다 점령한 헝아들이지만,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그 곳.
우리 셋째가 개척했습니다.



에피소드 3 : 만원


아빠가 태워주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블록기차.




에피소드 4: 정운형 아들, 정우현 동생. 브라보~




손 못대게 김치냉장고 위에 우유 올려 놨더니만,

엄마가 잠간 설거지 하는 사이에 의자 끌어다 올라가서 사고치고 말았다. 요즘 세현이의 사고는 끝이 없다.

일 끝내고(?) 의자에서 내려오면서도 
기념사진은 잘 찍도록 협조 잘 하는 세현이의 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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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 전에 아니, 1년이 좀 더 됐다.

예배가 시작하는 2시가 되어도 '정말 예배가 있는건가?' 싶게 예배당은 텅텅 비어있었다.


진심 숫자 때문이 아니었다.
뭐랄까 우리 영혼이 내지는 마음이 몸의 어디쯤 있는 지알 수 없다지만,
가슴 언저리에서 통증이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바로 그 부분에 심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쓰리고 아팠다.


그 통증은 어디로부턴지 모르게 내 뼈 속 깊이 파고드는 냉기에서 비롯되었다.
분명 힛터가 돌아갔을 것이고 외투가 부담될 정도의 실내온도 였건만 냉기, 차거운 기운이 휭휭 본당 안을 헤집고 다녔다.


그 즈음 바로 그 가슴 부분에 통증을 느끼며 기도했었다.
'예배로 가는, 예배로 향하는 마음들에 성령의 온기가 덮게 하소서. 청년들이 모일 때 청년다운 열기가 있게 하소서. 주일 2시 예배를 향해가는 그 시간을 데워주소서. 사람들의 체온 만큼이라도 느껴지게 하소서...'


수 주 전에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예배 전에 커피장사를 하다가 문득 1년 전의 기도가 생각나며 돌아본 본당. 앞 쪽 성가대 석에서는 주보를 접고 있는 한 무리, 본당 뒷편의 도서부 모임, 찬양팀 모임, 카페 주변으로 시끌벅적한 비공식 만남들....
바로, 이 곳에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들이 뜨겁게 허그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거다. 기도하고 잊었던 그 단어 '온기, 성령의 온기, 사람들간의 체온' 그걸 눈으로 본 것이다.






한동안 몸과 마음에 부담이 많이 돼서 카페를 그만 둬야지 했었다. 올 초에도 이제 완전히 손 떼고 믿을만한 참한 쭈꾸미(ㅋㅋㅋ)에게 넘겨야지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건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 냉기가 걷히고 온기가 지펴진 저 좋은 곳에서 누리는 한 시간의 기쁨을 포기할 수 없는 일.


수련회 둘째날 저녁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온기 아니라 몸과 마음이 불타버릴 듯한 뜨거움이 함께 하길 기도한다. 그 뜨거움으로 온갖 열등감, 외로움, 패배의식, 세속적 성공주의 다 불살라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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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금요일까지 잠시 자리를 비웁니다.

 
일상의 책임과 즐거움을 내려놓고 기도하러, 기도를 배우러 갔다 오겠습니다.

지금  저의 휴대폰은 액정이 고장난 상태라 문자 내지는 제가 먼저 전화걸기가

안되는 상태입니다.

물론 기도하는 동안 휴대폰 사용을 아예 못하고요.


암튼, 잘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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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에서 오른쪽의 얼굴 크고 훤한 분이 내 동생이다.
지난 3년간 교회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일했는데 사실 엄마한테 말을 못했지만 늘 불안했다.

동생이 하는 일은 싸우는 일이었고 싸움의 대상이 주로

돈, 권력, 명예, 힘 가질 것 다 가진 큰 교회 목사님들이기 때문이다.   

강아지 같은 어린 애가 졸졸이 셋 있는 아빤데 저러다 으슥한 골목길에서 뭔일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다행히 몸 성히 3년의 사역을 정리하게 되었다.

동생을 생각하면 항상 엄마랑 분리되지 않는다.

엄마가 바라는 좀 더 안정적인 길로 왜 가지 않을까?
안전하고 안정된 기회와 길이 없는 것이 아닌데도 

왜 항상 저렇게 가난하고 위태위태한 길을 골라 다닐까? 

그러기로 따지면 나도 엄마한테 할 말이 없다. 
평생 남매를위해서 기도해온 엄마는

'두 남매 새벽별 같이 빛나길' 기도하셨고, 

사실 그 기도는 두 남매가 이 세상에서 높은 길, 성공의 길로 가길 바라는

엄마 나름의 축복기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엄마는 성공한 엄마라는 생각을 늘 한다.

엄마 바램대로, 엄마의 기도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평생 해오던 돈걱정을 아직도 하며 살고 계시지만 말이다.
<뉴스앤조이>에 난 동생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엄마의'새벽별 같이 빛나라'는 기도는

궁극적으로 하늘의 길을 선택하여 걸을 때만 다다른 수 있는 빛이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에서 퍼온 기사이다. 


==================


 

   
 
  ▲ 남오성 목사(좌)와 정운형 목사는 인상이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교회 개혁을 하기에 너무 순해 보인다고 하지만 삶에서 개혁을 해온 경험에서 개혁의 힘이 나온다. ⓒ 뉴스앤조이 김세진  
 
말한 대로 살고 사는 대로 말하는 사람은 신뢰할 수 있다. "말과 삶이 나란히 간다면 그것은 철학의 완성이다"는 베네딕트 수도회 조안 치티스터의 말을 교회 개혁 현장에 적용한다면, 개혁을 외치는 말과 삶이 나란히 가야 그것이 개혁의 완성일 것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전 사무국장 정운형 목사(40)와 현 사무국장 남오성 목사(41)는 한국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시도를 각자의 자리에서 해 왔다. 그렇기에 이들이 한국교회를 향해 외치는 소리는 공허하지 않다.

정운형 목사는 나름대로 안정적인 중형 교회의 부목사 자리에서 나와 3년 동안 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있다가 다시 작은 교회의 부목사로 돌아갔다. 남오성 목사는 세습하라는 교회에서 굳이 나와 교회 개혁의 최전선에 있는 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왔다. 권력과 자본이 집중된 교회와 교권을 감시하고 자정하라고 외치는 일은 거친 일에는 틀림없다. 남오성 목사 스스로 개혁연대를 '특공대', '총알받이'라고 부른다. 알면서도 무슨 이득을 보자고 특공대에 자원했을까.

부흥하는 교회에서 떠나고, 세습 유혹 떨치고

정운형 목사는 안정적인 중형 교회의 부목사 자리를 내놓고 나왔다. 교회 회복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담임목사의 전횡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많은데, 정 목사가 맡은 부서는 사람이 많아졌다. 오래 고민하다가 "교회가 엉망인데 혼자 사역을 잘하고 있는 게 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담임목사는 "개척을 시켜주겠다"며 붙잡았지만 뿌리치고 나왔다. 사임한 후에도 오랜 시간을 기도한 뒤 담임목사를 찾아가 충언하기도 했다.

그렇게 교회를 나온 후 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가자 정 목사의 어머니는 좋아하지 않으셨다. 중대형 교회에서 안정적으로 사역하기 원하는 어머니의 바람과 다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께 "교회의 허물은 내 아픔과 같고, 그 기도 제목은 곧 어머니의 기도 제목"이라고 설득했다.

남오성 목사는 교회를 세습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기까지 갈등이 심했다. 교회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세습해도 문제되지 않을 것 같았다. 더구나 최근에 교회는 남 목사로 인해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남 목사는 개인 구원에 집중하던 교인들의 시각을 사회 참여로 확장시키기 위해 애썼고, 담임목사인 아버지를 계속 설득했다. 목사 아들이라는 이유로 교인들이 남 목사를 잘 따랐다. 남선교회가 장애인을 찾아가고, 청년회가 외국인 노동자를 섬기고,  고난 받은 이들을 위한 성탄 모임 등에 함께하는 것은 이전에 없던 일이었다.

지금 교회를 떠나면 그마나 있었던 개혁의 움직임이 도루묵이 될 것 같아서 갈등했다. 반면 마음 한구석엔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를 물려받으면 최소한 평생 굶지 않고 애들 대학 등록금 걱정은 안 하고 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민이 깊어져 주변에 신뢰할 수 있는 분에게 조언을 구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도 물었다. 어떤 사람은 가지 말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그런 세습이라면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러 어찌하든 좋다고도 했다.

동일한 처지였던 김장생 박사를 만났는데, "남 목사가 교회를 물려받는 게 이 교회에는 유익할 수 있지만 하나님나라에는 유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타격이 있지만 하나님나라를 세워가는 것에는 세습을 안 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남 목사는 망설임 없이 세습을 포기했다.

독단적인 목사, 가식적인 교수가 바로 나

정운형 목사와 남오성 목사가 교회 개혁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생뚱맞은 일이 아니다. 그들 삶의 연장선인 셈이다. 본인이 살았던 대로 한국교회에 말하기 위해서고, 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기도 하다. 하지만 조심스럽기도 하다. 나날이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게 되기 때문이다.


 

   
  ▲ 개혁연대 7,000인 찾기 프로젝트 전국 투어하면서 지방의 분쟁 교회를 찾아 예배하고 모임하던 사진. 사무실 직원들이 한사코 사양해도 지방에 있는 개혁연대 회원들은 멀리 찾아 왔다며 밥을 사려고 했다. ⓒ 뉴스앤조이 김세진  
 
정운형 목사는 교회 문제를 상담하면서 자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어 힘들었다. 독단적, 파행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숨겨진 모습이 드러난 것 같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고 거듭 채찍질하면서 성찰하려 애썼다.

남오성 목사도 웨신에서 교수로 있을 때, 허위와 가식이 가득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교수가 되니 사람들이 엄청난 권위를 실어줬다. 같은 말을 해도 이전과 다르게 주의 깊게 경청하고 모두 꾸벅 인사했다. 연봉도 괜찮았고 사회의 존경을 받는 자리였다. 어느새 즐기고 있는 자신을 봤다. 그런 부족함을 인지하고 있기에 교만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에서 추방당하고, 교수직에서 물러났지만

정운형 목사와 남오성 목사가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사역하다가 한계에 부딪혔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 목사나 남 목사는 이를 실패라고 생각하기보다 사명이 거기까지려니 생각했다.

정운형 목사는 탈북자를 돕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추방당하면서 깊은 좌절을 경험했다.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부터 탈북자 사역에 관심이 있었기에 교인들과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행을 결심했다. 정 목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20여 명이 함께 모이던 가정 교회가 공안의 단속에 걸렸다. 중국에서는 외국인이 내국인을 대상으로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이 위법이다. 같이 일하던 중국인 전도사가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틀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따귀를 맞고 협박을 당하기도 했지만 동료 선교사의 이름을 대지는 않았다.

조사 끝에 바로 추방을 당해 공항으로 가는데, 마음이 허탈했다. 1년의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절한 무기력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중국에 가서 탈북자들을 돕겠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무언가를 하실 것이다 하는 마음은 어쩌면 자신에 대한 기대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력하게 쫓겨나면서 마음이 어찌나 절박했던지, 공항까지 동행한 공안에게 마지막으로 전도했다.

당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정 목사는 중국에서의 시간을 통해 교회 개혁적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에서 초대 교회 형태의 '날복음'을 접했는데 그에 비해 한심하기 그지없는 한국교회의 상황을 봤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은 당장 생존하는 문제로 고민하며 "하루라도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하며 살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교회 건축과 직분자 임직식에서 돈 내는 것 때문에 싸우는 모습이 너무나 한심해 보였다. 그 경험을 하니 개혁의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개혁 운동을 시작했다.

남오성 목사는 사실 교수가 되기엔 조금 부족한 스펙이었다. 박사 과정을 공부하다가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할 수 없이 휴학하고 귀국했기 때문이다. 남 목사는 웨신에서 교수와 기획처장 제의를 받았다. 근본주의였던 웨신을 개혁적으로 바꾸는 일을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남 목사가 개혁을 위한 실질적인 일의 진행을 맡았다. 웨신이 개혁연대, 성서한국, 성토모 등과 제휴를 맺고 '기독교 경제학과 사회 윤리' 같은 과목을 개설한 것도 남 목사가 있을 때 일이다.

남 목사는 지난 2월, 3년여 일했던 웨신 교수 자리에서 물러났다. 모두가 선망하는 교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었지만 남 목사는 홀가분하다고 했다. 교수라는 옷이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 옷을 입으면 뒷목이 당기는 듯 불편했다. 학교에서 나오면서 "하나님이 가식적인 것을 털어버리라고 좋은 자리 주셨나 보다" 하고 마음을 먹었다.


 

   
 
  ▲ 남오성 사무국장이 '사랑의교회 건축, 어떻게 볼 것인가' 포럼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 뉴스앤조이 유연석  
 

웨신에서의 경험은 남 목사를 교회 개혁의 현장과 연결해 주었고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게 해 주었다. 연봉이 괜찮고 존경받는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은 일종의 자기 싸움이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이 개혁 운동의 교두보가 되었다.

교수 자리에서 나왔다고 남 목사가 신학 교육을 통한 교회 개혁 운동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웨신에 있을 때도 활동가였고 지금도 활동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개혁연대에서도 특히 교육 사업에 힘을 쏟을 생각이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교육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인들과 함께 교회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내 좌표가 어느 위치에 있고 내 임무와 교회 임무는 무엇인지를 아는 역사의식이 있으면 문제를 달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 목사는 지금 한국교회가 중세 시대와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둠이 깊기에 희망도 있다. 남 목사는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이 있다"는 말을 인용했다.

교회 분쟁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지만 현장에 있기에 감사

이제 인수인계한 지 한 달여 지났는데 정 목사는 아직 교회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담했던 교회의 이야기가 아직 머릿속에 꽉 차 있다. 잘 때도 밥 먹을 때도 교회 문제에 관한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왜곡된 구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 것이 사무국장의 일이다. 하지만 안 좋은 사건을 주의 깊게 들으니 감정이 이입되어 덩달아 힘들다. 그들 문제는 대부분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힘을 얻기도 하지만 힘에 부칠 때도 있다.

어느 날은 너무 지쳐 상담하기 싫은 마음이 생겼다. 힘든 마음을 안고 강남제일교회가 여는 '양들을 위한 음악회'에 참석했다. 분쟁을 겪고 있는 강남제일교회가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다른 교회 교인들을 초대해 위로하는 자리였다. 음악회에 참석한 교인들이 "땅 끝에서 주님을 뵈오리" 찬양하는데 눈물이 났다. 교회에서 불의가 이기는 것 같아도 감춰진 것들이 밝히 드러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교인들이 선지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보았다. 교인들은 불의에 동조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무국장으로서는 일을 잘하기 위해 학자의 혀, 듣는 귀, 철면피 같은 얼굴을 달라고 기도했다. 개혁연대에 부임하기 전, 금식 기도를 하면서 마음에 이사야 50장에 나오는 고난 받는 종의 기도를 하라는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도는 곧 하나님의 정의를 잘 설명하고 잘 듣고 어떤 상황에서도 견디는 힘을 달라는 기도였다. 개혁연대 협동 사무국장으로 있는 지금도 그 기도를 하고 있다.

정 목사는 이제 뜨인돌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시작한다.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정 목사에 대한 기대감을 내보이지만 부담스럽다. 그동안 개혁 운동을 하면서 했던 비판의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댈 생각을 하니 두렵다. 개혁 운동의 기운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긴장감 있게 매사에 임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단순히 목사라는 이유로 교인들이 교역자를 우대하는 것을 지혜롭게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목사와 교인이 하나님 앞에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남 목사는 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오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아침에 즐겁게 출근할 수 있을까'와 '저녁에 보람찬 마음으로 퇴근할 수 있을까'였다. 지난 한 달여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없어졌고, 분쟁 교회 상담이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어렵고 답답한 얘기를 참고 오래 들어주는 것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 목사는 이제 더 이상 <뉴스앤조이>에 실린 교회 문제 기사를 읽고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만 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힘이 난다. 눈물 흘리고 답답해하는 대신 직접 개혁 운동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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