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대는 설거지로 머무는 곳이다. 언제부턴가 내 자리가 아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1/4만의 내 자리이다. <82년 생 김지영>, 청소년 백수 '꽃친'의 시간, 등의 나비효과이다. 현실적으론 테니스엘보라는 인대염으로 팔을 잘 쓸 수 없게 되면서 지분 분할이 더욱 명확해졌다.

 

고구마에 싹이 나고 잎이 나면 가위바위로, 가 아니고 무조건 쑹덩 잘라서 싱크대 앞에 놓는다. 새생명으로 받들어 키우는데 참 사랑스럽다. 보랏빛 싹이 나고 자고 일어나면 쑥 커져 있다. 아침마다 내게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치는 고마운 선생님, 귀여운 아기이다.

 

싱크대 앞에 서는 시간은 3/4으로 줄었지만 정서적으로 여긴 내 구역이다. 내 구역 안에 생명의 기운을 배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개운죽 한 뿌리, 꽂아놓기만 하면 알아서 잘 자라고. 자그만 다육이 염좌도 알아서 잘 생존하고 있다. 작은 생명들은 내 영혼을 흔든다. 작고 무력한 녀석들은 생존만으로 기쁨이다.

 

 

 

 

내적 여정 세미나를 금, 토 연달아 진행했다. 연구소 일이 많아지기도 하고, 같은 내용을 연달아 다른 그룹과 나눌 때 역동의 차이를 몸으로 경험하는 배움이 크기에 그리 배치했다. 예상했지만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실은 보기보다 강한, 강의에 최적화된 성대와 체력으로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스물한 살 채윤이가 자아에 대한 고민으로 무거운 표정이기에 막판 취소로 자리가 난 내적여정 세미나에 초대했다. 마치고 여러 얘기를 했지만 이 말이 가슴에 남는다. "엄마, 엄마가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줄 몰랐어. 전에 봤던 강의처럼 중간중간 웃기면서 막막 그냥 엄마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줄 알았어. 나는 엄마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상상도 못하겠어." 

 

딸이 그리 말해주니 나를 보는 새로운 눈이 생겼다. 위로도 되고.

 

주일 예배 마치고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에 원고도 뭣도! 모든 '일'에 대한 강박을 뒤로 하고 카페에 가 시간을 보냈다. 이래도 돼. 아무 것 하지 않고, 의무감 없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힘이 생겼다. 생산적인 어떤 일도 하지 않을 자유와 힘. 일정 마치고 집에 들어간 남편이 전화를 해왔다. "어디야?" "스벅" "누구랑 있어?" "나랑" 

 

나랑 함께 있어 주었다.

 

 

 

연구소 내적여정이 잘 되고 있다. 사람이 잘 모이고 있다. 이틀 간 20여 명의 새로운, 익숙한 얼굴을 대한다. 강의가 아닌 영적 안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시간이다. 존재의 집중이 필요한 일이다. 연구원 네 사람과 함께 마음을 담아 준비하고 진행한다. 채윤이 말처럼 돈을 버는 일도 아닌데.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다. 매 세미나마다 그때 그때 다른, 매너리즘 따윈 상상할 수 없는 존재와 존재로 만나는 창의적 시간이다. 

 

신기한 것은 '자라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바로 에너지 충전이 된다.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이다. 싱크대 앞의 고구마 싹이 좋은 이유를 알겠다. 성장이 눈에 보이는 것만큼 나를 흥분시키는 것이 없다. 인상이 어떻든, 미성숙한 모습에 없어 보여도 오가는 대화 속에 성장의 기운이 보이면 사랑, 소망, 믿음이 한꺼번에 용솟음 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공들여 키우는데 자라지는 커녕 시들어버리는 않는 식물,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더는 배울 것 없다는 태도를 견디는 것이 내겐 참 어려운 일이다.

 

강사, 작가, 특히 내적여정 안내자.

참 좋아하는 일인데, 오늘의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일인데, 거침없이 열정을 쏟아 붓는 일인데도 내 영혼의 갈망을 온전히 채우지 않는다. 실은 매우 만족스럽지만 그 만큼의 공허감도 피할 수 없다. 세미나를 마치면 몸이 아니라 영혼의 피로가 공허감의 얼굴로 몰려온다. 좋아하는 일인 만큼, 소중한 일인 만큼 더 잘하고 싶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힘을 많이 쓰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 돌아와 정장 벗고 화장 지운다고 진정한 내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싱크대 앞 일상의 나처럼 거품 없는 나도 없다. 여유 없는 며칠 지내고 선 싱크대 앞의 고구마 싹이 쑥 자라 있는 것이 이렇게 예쁠 수가 없다. 주인 엄마 봐주지 않아도 제 몫의 성장을 일궈가는 녀석. 나의 일상이 너를 닮아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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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 주일. 거실 한 켠에 성탄 트리와 대림초를 준비해놓고 피정에 들어갔다. 첫 번째 대림초를 세 식구에게 부탁했다. "하루 지나고 당신 오면 같이 켜." 하더니 셋이서 불을 밝히고 사진을 보내왔었다. 그렇게 2019년 대림초가 밝혀지고 한 주 한 주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오신 주님, 오시는 주님, 오실 주님.

 

 

'엄마 오늘 뭐해?'를 심심하면 던져보는 채윤이랑 성탄절 이브에 데이트 했다. 대학생활 1년을 열심히 달려온 채윤이는 기말고사 끝날 날만 기다리고 기다리더니. 엄마랑 같이 맛있는 것 먹고 놀아볼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더니. 뭘 먹어도 뭘 사도 좋은 것이다. 언제 크냐, 언제 크냐 했었는데. 엄마보다 더 커져서. 

 

 

성탄절 아침이 밝았어도 기다린 보람은 딱히 없다. 산타할아버지 오셨다 가지도 않고, 마라나타! 주님이 성탄절 아침에 짜잔 나타나 레미제라블의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푸시는 것도 아니다. 가난한 내 마음에도 그분의 풍성함이나 평화 같은 것은, 사실 먼먼 일이다. 그런데 베란다 앞의 풍경에서 산타의 흔적, 아니 주님 마음이 힐끗 보이는 것 같다. 박효신의 '눈의 꽃'이 생각나는 풍경.

 

 

'크쓰맛쓰에는 추뽀글 크쓰맛쓰에는 사당을 당신가 만나는 그나룰 기오칼께요'  교회 성탄행사에서 행복한 뒤통수를 맞았다. 기쁨도 기대도 없는 덤덤한 성탄절을 은준이, 은하 아기 천사 둘의 노래로 기쁨의 폭탄이 터졌다. 그렇게 시작작된 아기 엄마 아빠들의 노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주님과 만나는 그날을 기억할게요. 힘들어 지칠 때나 가슴 아플 때도 나에겐 주님 밖에 없어요' 일을 하고, 일을 찾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기다리며 지난한 1년 보냈을 젊은 부부의 노래가, 그들 품에 안은 아기들이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빠져서 듣느라 사진을 못 찍었다)

 

 

주일학교(초, 중, 고) 아이들의 성극은 자기극복의 신화였다. 비포 사춘기, 한창 사춘기, 에프터 사춘기로 구성된 주일학교 아이들이 성극을 한다니. 가능할까 싶었는데... 와, 연기력이 또 터졌다. 압권은 목자 셋이었는데 우리집 에프터 사춘기er 현승이도 끼어있다. 얼마 전 목자 배역 맡은 세 명의 이름을 듣고 미리 빵 터졌다. 한창 사춘기 한 명과 주일학교 통틀틀어 가장 내향적인 아이 둘. 아, 진짜 목자 멤버 죽이는 걸! 분장하고 나와 서있는 것 자체로 감동이고 웃음이었다. 난 현승가 수염 붙이고 나와 섰는 그 순간부터 웃음이 터져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현승이 안식년 1년 동안 꾸준히 베이스기타를 배웠다. 기타 잡은 지는 몇 년인데 제 방 침대 위에서만 띵띵거리는 기타인데. 드디어 침대 밖 연주를 들어보았다. 침대에서 나오고, 집안에서 나오고, 제 안에서 나와 드러내고 발휘해주길 오래오래 기다렸다. 사춘기에서 나오면서 현승이 안에서 어른이 나오기 시작하여 새로운 기쁨이다. 아, 현승이 태명이 '기쁨이'였는데. 

 

 

왼팔 오십견 지나가 살만 하더니 오른팔 테니스엘보라는 인대염이 와 다시 약간 무능의 삶이다. 요리칼 제대로 잡아본 지가 언제던가. 세팅 해놓으면 근사하지만 막상 크게 팔 쓸 일 없는 라끌렛으로 성탄절 저녁식사다. 넷이 달려들어 다듬고 씻고 차리면 뚝딱이다. 저녁 언제 먹냐고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기다리느니 달려들어 함께 준비한다. '언제 클래, 언제 클래' 하며 기다렸던 그 '언제'가 왔다. 다 커서 제 몫의 인생을 책임있게 살아가는(살아갈) 아이들과 마주 앉은 성탄절 식탁은 성인 넷이다.

오지 않는 것 같아도 오는 것이, 반드시 오는 것이 그분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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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가 사라진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이 블로그 전 집은 싸이월드 클럽이었지요. 

2006년 6월, 끙끙 며칠  걸려 짐을 옮기고 둥지를 틀었습니다.

12년 살면서 짐은 꽤 늘었지만 여전히 살 만한 공간입니다. 

하남, 덕소, 하남, 명일동, 합정동, 분당으로 몸이 사는 집은 옮겨 다녔지만

마음은 마음 편히 내 집이려니, 전셋값 올릴 걱정 없이 여기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내내 여기서 살려구요.


전처럼 자주 글을 쓰지 못하지만 휴업은 아닙니다.

신상 입고가 안 될 뿐, 가게는 계속 열려 있습니다.


일상은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내 얘기를 풀어놓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느라 겪어야 하는 불편함과 불이익에도 익숙합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대나무숲'이니까요. 

여전히 하루에도 몇 편 씩 블로그 포스팅을 합니다. 

오직 머릿속 노트북에서요.

일상이 계속되는 한, 블로그에 쓰지 않을 방법이 없지요.

영화 리뷰도, 가족 이야기도, 내적 여정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도.

마음으로 늘 포스팅하고 있어요. 


전과 다르지 않은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가을이 왔고, 남자에게 소국을 조르고, 

꽃을 든 남자가 들어오고,

꽃을 든 남자가 이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싱크대 앞 창가에 생기를 키우는 작은 화병에도 가을 한 줌이 꽂힙니다.


기대했던 앞산의 가을은 생각보다 밋밋합니다.

올봄, 마음을 들뜨게 했던 연초록의 나무들이 미적미적 생기를 잃어갑니다.

붉고 노랗게 아름다움을 뽐내는 화려한 퇴장은 모르는 모양입니다.

단풍이 예쁜 나무들이 아닌가 봐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어요.

화려하게 불태우는 것만이 존재의 의미는 아니니까요.

그저 있음으로 위로와 기쁨을 선사한 자연, 自然의 소임을 다 한 녀석들.

볼품없이 색이 바래고, 잎을 떨구고, 텅 빈 산이 되어도 그저 좋겠습니다.


우짜든지 일상도, 블로그도 영업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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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에 강의가 잡히는 것 흔한 일이 아니다.

포천의 작은 도서관에서 저자 강의로 초대받아 다녀왔다.


월요일 출근길에  외곽순환도로가 시원하게 뚫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막히는 길 예상하고 일찍 출발했더니 길은 물론이고 하늘까지 뚫려 있었다.


초면에 얼굴 맞대고 편안한 일상수다를 떠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수강자 한 분 한 분이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다가왔다.


도서관과 성당, 내가 좋아하는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일찍 도착하여 보니 도서관 뒤에 성당이라 얼른 주차하고 성당 뜰을 걸었다.


미세먼지 많아진 하늘,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흰구름 보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태풍이 지난 후 더욱 파래진 하늘에 흰구름, 그리고 십자가가 맑고 아프게 조화로왔다.


서울, 분당도 잘 모르는 저자를 포천 작은 동네에서 알아봐 주는 것 흔한 일이 아니다.

포천, 철원에서 오신 수강자 독자들이 이미 읽은 책 얘기를 솔깃하며 들어주셨다.


예수님의 상처난 손을 마주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성당 마당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길, 벽화의 커다란 예수님 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예수님의 못 박힌 손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에니메이션풍 벽화 탓인지 못박힌 예수님 손이 정겹게만 느껴졌다.


안팎으로 잠못 이룰 걱정이 많은데 속없이 허허 웃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먹고 사는 일이 달린 선택 앞에서도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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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란히 앉아 커피 마시며 창밖을 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카메라를 들고 일어났다. 안개가 만들어 낸 새 아침의 풍경, 이 좋음이 어떤 형용사로 표현되지 않는다. 최신형 아이폰 카메라에도 담을 수 없다. 순간 온몸으로 누리고 감사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게 느긋한 월요일 아침을 누리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정수기 코디님이 오셨다. 아, 맞다! 어제 문자가 왔었지.


남편도, 느긋하게 아침 먹던 현승이와 조카 우현이도 조용히 빨리빨리 방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코디님께 아침에 커피 드셨어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했더니 반색하신다. 핸드드립 해서 아이스로 드렸는데. 커피향 너무 좋다고 감동하셨다. 커피 드리고 깜빡하고 있던 라디오를 켰다. 나대로 탁자로 와 책을 보고 있었다.


“고객님, 이 커피를 그냥 마시면 안 될 것 같아요. 저 잠깐 앉아서 밖에 풍경을 좀 보면서 마실게요. 비도 오고 음악도 있는데. 잠깐 앉아도 되지요? 이런 순간은 잠시 누리고 싶네요! 화초도 너무 예뻐요. 카페라고 생각하고...” 하셨다. 내 마음이 다 좋아서 “얼마든지요! 뭘 아시네요. 일은 일이고 쉴 기회가 오면 쉬는 거죠!” 했다. 


순간을 누릴 줄 아는 코디님, 참 멋지다. "고객님 일 보세요. 저는 커피 마시고 잠시 누릴게요" 그리고는 말 없이 그저 등을 보이고 앉으셨다. 뒷 모습을 바라보는데 그냥 좋아서 책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사진 한 장 찍어 드릴까요?” 했더니 "좋죠!' ㅎ시며 팔을 번쩍 들어 ‘나 커피 마셔요!’ 하는 포즈까지 하셨다.


마침 내가 읽고 있는 구절은 이랬다.


사랑하는 하느님의 벗이여, 아무쪼록 그대가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의 품안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노력하십시오. 이 사랑을 그대의 근본으로 삼고 팔을 뻗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사랑하십시오.


어제 설교 내용은 '헤세드'였다. 헤세드, 충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랑! 방에 있던 남편이 이 얘기를 듣고 "정신실 설교 제대로 들었네. 헤세드야!"한다. 설교의 감동 때문인지, 창밖의 풍경 때문인지, 순간을 누릴 줄 아는 코디님 내면의 힘 때문인지. 찰나의 사랑이 그분의 현존을 일깨우는 월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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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사진에 다 담겼다.

좋은 것들이 다 담겼다.


[냉보이차] 오늘부터 '냉'으로 바꿨는데 지친 몸 다독여줘 좋은 것.

[노트] 팔과 손가락을 통해 내 뇌와 연결되는, 아니 '연결된 것'이 아니라 내 몸 밖의 뇌. 

           공부, 글쓰기, 강의준비. 중요한 것을 함께 하니 좋음 그 자체.

[독서대] 위 책, 책 없이 삶의 낙이 없다.

[돋보기] 낯선 만남이었지만 금세 고맙고 좋은 친구 되었다. 

           흐릿해진 눈에 돋보기 없었으면 어쩔 뻔!

 

등수 매길 필요는 없지만 '더' 좋은 친구는 따로 있다.


[초록이들] 지난 주인가, 집단 여정에서 '요즘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을 나눴다.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쟤네들이다. 아침 저녁으로 한 놈, 한 놈 눈맞추는 재미로 산다.

[앞산] 이건 뭐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올봄, 하루하루 다른 얼굴 보여주며 치유의 숨결 뿜어내는 앞산 아니었으면 아프고 말았을 것.


'좋은 것'의 화룡정점은 보이지 않는다. 


[저녁6시~] 저녁 6시 어간을 사랑한다. 해 넘어가는 빛깔과 공기와 모든 것이 좋다. 

              어스름이 어둠으로 바뀌는 그 시간을 붙들고 붙들고 싶다.


[세음]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 클래식 FM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의 시간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지만 모든 이 시간, 이 공간의 모든 곳을 채우는 것이 음악이다.

         화룡정점은 '세음'이다. 


일상의 여유를 가늠하는 것은 '세음'을 여유있게 들었는가, 이다. 아예 들을 생각도 못했는가, 운전하며 들었는가, 끄트머리만 들었는가. 거실에서 앞산을 바라보며 밤이 천천히 낮을 밀어내는 광경을 지켜보며 듣는다면 최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제대로 된 하루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바쁜 시간이 있어서 텅 빈 시간이 더 빛나는 것이니까. 오늘은 '좋음'의 종합선물 세트를 마음껏 누렸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것 아닌가! 온갖 '좋음'에 플러스 알파다. 사진 몇 장 찍고 '세음'이 끝날 때까지 그냥 차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신앙 사춘기>가 책이 되어 탁자에 쌓여 있어서 그런가. 첫 리워드 행사인 글쓰기 강의를 무사히 마치고 난 안도감인가. 아버님 8주기 추도예배 드리며 마음에 가득 찬 그리움 때문인가. 쌓인 피로로 무거워진 몸, 뻑뻑해진 눈이 책도 보지 말라고 말리고 말린 덕인가. 한껏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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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블로그 12년 여 만에 방문자 백만 돌파했습니다.

2003년에 쓴 글부터 켜켜이 쌓여 있고요.

블로그 시작은 2007년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싸이월드 클럽에 살았지요.    

이 글은 2747번 째 글입니다.


쓰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쓰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요, 제 인생.


백만 번의 들락거림이 없었다면,

들락거려주는 이가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어찌 됐을까요.


백만 번의 들락거림은 백만 송이 장미로군요!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이 피었으니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향 갈 티켓은 확보 했으니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으로 더 투명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장미 백만 송이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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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친구 천 명이 넘었다. 친구 되자고 먼저 요청한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신앙 사춘기] 연재 때문에 급격하게 늘었고, 그 이후에는 페친이 많은 사람을 페친 삼아 페친을 늘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요청 때문에 친구가 늘었다. 페북에 재입성 했을 때는 나름대로 친구 요청도 봐 가면서 허락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에라 모르겠다 거의 무조건 허락했다. 사실 그 시점부터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나는 틀렸어! 요즘도 계속 친구요청이 들어오는데, 목사님들이 대부분이다. 요청을 받아들이고 한 두 개의 포스팅이 올라오면 팔로잉을 끊는다. 내 인생 가장 훌륭한 목회자라 여기는 내 남편이 설교질 하는 것도 못 봐주는데 모르는 목사님의 설교(질)을 참아주랴. 

 

천성적으로 삐딱해서 그렇다. 말하는 것, 대화 참 좋아하는데 가르치는 태도는 못 들어주겠다. 겁이 많아서 싸우지는 못하니까, 피하고 본다. 일단 피하고 영영 보지 않기로 하는 편이다. 정보와 배움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SNS이고, 거의 유일한 것이 페북이니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배워도 누구에게 배울지, 어떤 매체를 배울지는 '내그 결쯩은드!!!!' 천성적으로 삐뚜룸하니까. 페이스북은 뉴스를 보고, 뉴스에 대한 논평을 보고, 정치인들의 실시간 행보를 보고, 지원하는 단체들과 연결되는 공간이다. 아, 무엇보다 새책 정보를 얻는 곳이다.

 

구독자로서는 그런 자세를 갖고 있고, 발행자로서는 일에 대한 '홍보 게시판'이 우선적인 쓰임새이다. 순간적인 현시욕이 솟구칠 때가 있는데 그 찰나의 욕구를 풀어 놓는 곳이기도 하다. 모든 글은 '전체 공개'이다. 십수 년 블로그에 별별 일상을 다 공개해왔는데 새삼스레 '친구 공개'로 낯 가릴 게 무엇인가. 처음 블로글 할 때와 여러 형편이 달라져 가릴 것 가리기도 해야 하는 처지가 됐지만 천성과 관성은 어쩔 수 없다. 조금 숨기고 싶지만 숨기지 못한다. 여러 모로 불리한 것을 알지만 하던 짓을 멈추지 못한다. 옛 애인이 들어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헉, 했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의 지질한 일상을 나불나불 떠드는 것을 참지 못한다.

 

남편이 '당신 블로그에 쓴 글들 페북에도 올려'라는 이례적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개인적으로는 기분 좋은 반응이다. 별다른 설명 하지 않아도 담긴 뜻을 안다. 답신으로 '페친이 1000명, 불특정다수, 일기 공개 불가'라고 보냈다. 남편 역시 알아 들었다.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놓고 깨달았다. 나는 틀렸어! 페북에서 난 틀렸으니 당신들 행복해! 내가 모르는 천 명이 내 찰나적 일기를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이 불편한 일이다. 순간적으로 뭘 쓰고 싶다가도 페친 천 명을 생각하면 이내 접게 된다. 정말 난 틀렸어! 당신들이라도 행복하라구! 나 역시 모르거나 관심 없는 페친 사람의 찰나적 일기를 보지 않기 위해 언팔을 한다. (진짜로 존중하기에 언팔하는 거임) 

 

블로그만이 안전한 곳이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러니 블로그에 오시는 블친들의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린다. 페북에서는 '좋아요' 받는 맛이 삼삼한데. 블로그에서는 무슨 칭찬 받는 재미가 없다. 블로그에 공감 하트 누르는 기능 있는 거 아시나 모르겠는데. 그런 게 있다. 댓글은 못 쓰더라도 그거라도 하나 씩 눌러주시기 바란다. 천성적으로 악질이라 인성이 삐뚜룸하면서 동시에 칭찬에는 무척 연연하는 편이다. 공감 하트 하나에도 기분이 업되고 날아가고 그렇다. 부탁 드린다. 애정 어린 블친의 하트 하나, 모르는 페친의 좋아요 천 개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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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 강의 가서 교역자실에서 대기하는 중.

초등부 전도사님과 인사 나누고 있는데 초딩 1학년이 하나 들어왔다.


전도사님, 누구예요?

어, 너 작가 알아? 작가가 뭐 하는 분인 줄 알아?

네, 동화책 쓰는 사람이요.

그래 그래, 이분은 작가님이야. 글을 아주 잘 쓰시는 분이야.

(눼에 눼에 하는 표정).......................

싸인 받을래? 작가님께?

왜요?

유명하신 분이야.

컴퓨터에 이름 써봐도 돼요? 이름이 뭐예요?

정짜, 신짜, 실짜 작가님이야.

컴퓨터에 이름 써볼게요.

그래.


이 초딩님, 달려가더니 검색을 하셨다.

나온다, 나온다, 하셨다.


눈 앞에서 검색당하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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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렁다리일 뿐

무서워 죽는다고 호들갑을 떨고

출렁다리 따위 덤벼, 허세를 부리시니

나는 그저 가만히 흔들흔들 걸려 서있는 출렁다리일 뿐


사람, 신실은 꼭 그러더이다

단 한 번도 실수 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결코 상처 받을 수 없는 존재인 듯

완전무장 하고 환상 속을 살더이다


작은 고통에 세상이 끝나버린 것처럼

살아온 모든 세월이 비극이었다는 듯이

어떤 희망도 품을 수 없는 인간 말종이 되었다는 듯

셀프 내팽개침으로 바닥을 굴러다닙디다


예, 사람 정신실은 그렇습니다만

출렁다리는 출렁다리일 뿐인 줄 이제 다시 알겠습니다

출렁거림, 흔들림, 현기증, 울렁거림,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호흡 크게 들이마셔 쪼그라든 심장 부풀려 단 한 발만 내딛어 보겠습니다

한 발 정도는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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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 했니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이 말은 '너는 엄마를 위해 살아. 엄마의 욕구를 채워야 해'

아이를 잡아두는 올가미가 되겠지만.

우리 집 주방 창문에 대고 '니가 없으면 어쩔 뻔 했니' 하는 것은 정말 어쩔 뻔 했냐는 말이다.

다행이다 고맙다는 뜻이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주방 창문으로 가 밖을 내다본다. 

바로 보이는 저 나무를 본다. 

나무에 걸린 바람을 보고, 빛깔을 보며 날씨를 가늠한다.

계절을 확인한다. 깜짝 놀랐다. 단풍이 와 있었다.


# 빛으로 가는 길은 그림자에


건물에 부딪힌 아침 햇살이 단풍 든 나무 아래 검은 단풍을 들였다. 

그림자가 만드는 그림은 어쩌면 이렇게 늘 멋진가.

단풍든 나무와 불곡산 스카이 라인이 만든 그림에 그림자가 깔렸다.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만드는 찰나의 장면. 찰나라 더 가슴 설렌다.

사진으로 보는 그림자는 이렇듯 멋지고 낭만적일 뿐이지만

내 실존의 그림자는 어둡고 두렵기만 하다.


# 벚꽃이 너무 예뻐요, 외로워요


너무 예쁜 벚꽃 길을 보고 속에서 저절로 나온 말이 '너무 예뻐다. 외롭다' 했다는 제자가 있었는데.

주방 창문 너머 아침 풍경이 너무 예뻐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어제 못한 설거지를 하는데 '주님!' 하고 부르고 눈물이 났다.

어렵게 원고 마감을 하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연이은 강의를 하고.

채윤이는 입시를 치루고, 외롭게 연습을 하고, 수시 입시를 모두 마쳤다.

남편은 올 가을 꼭 비염을 치료하고 말겠다며 한약을 먹고 혼자 음식조절을 하고.

현승이는 고등학교 입시설명회에 꽂혀서 다른 세상 사람이다.


# 남의 일에 장담하고, 내 일에는 흔들리다


중학교 졸업하고 가진 안식년, 꽃친부터 시작해서 3년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외로울지 새삼스레 가엾다.

검정고시에, 매일 연습실 출근하는 피아노 연습, 대입 전형과정까지 혼자서 했다.

그 외로웠을 시간이 크게 밀려오며 가엾고 미안하다.

어제 강의에서 뵌 자매님이 자신의 성향 때문에 아이를 망칠까 걱정이라며,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 아닌 질문을 하셨다.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 드렸다. 

"사람들이 저를 관계 전문가, 육아 전문가라 부르더라고요. 

제 강의 좋아서 지난 주 들으시고 오늘 남편과 함께 또 오셨죠?

믿을만 한 전문가 제가 장담을 할게요. 결코 아이를 잘못 키우지 않으실 거예요.

오늘, 이 좋은 토요일 오전 두분이 함께 아이를 위해 고민하는 이 시간에 앉아 계신 것 만으로 

이미 좋은 엄마 아빠세요. 

결국 잘 키우게 되실 거예요. 걱정하시는 것처럼 사춘기에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여러 어려움이 있겠으나 결국 잘 키우실 거예요. 제가 장담 할게요." 라고.


내게 들려줘야 할 말이다.

창문 너머 빛과 그림자를 품은 나무를 보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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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오후


<뉴조> 원고 마감해야 하는 날이다. 하지 못했다. 엊그제 월요일에 대충 마무리 했는데,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니 이건 아니었다. 버리기로 했다. 이틀 남았고 화요일엔 하루 종일, 수요일 오전까지 일정이 있으니 틀렸다! 포기하기로 했....... 다가 사시 써지면 써야지 했다. 어제와 오늘 오전의 소임을 마치고 카페에 앉아 오후 내내 글을 썼다. 써질 것도 같다. 웬만하면 쓰다가 딴짓(인터넷 뉴스 구경)도 많이 하는데 것도 잘 안 되더라.

 

#2 오늘 저녁

수험생도 있고, 한참 키 크는 아이도 있어서 저녁은 챙겨야 하겠기에 짐 싸들고 집으로 왔다. 생선이 구워지는 동안 뉴스를 보았다. 이재명 지사와 김정숙 여사에 대한 강용석의 개소리를 보았다. 하필. 두 아이 마주보고 앉아 수다 떨며 길어지는 식사 시간 동안 페북에 짧은 저녁기도를 써 올렸다. 강용석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이미지 관리 위해 자체 검열했지만 마음으로는 쌍욕을 했다.

#3 오늘 오전

이우교회 온 첫 봄부터 '이우영성 세미나'라는 이름으로 내적여정 그룹을 시작했다. 방학으로 쉬는 기간이 더 길었지만 4학기의 여정이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긴 여정을 마무리 하는 한 마디는 중년 이후의 영적 여정, 깊은 상처 이후의 신앙 여정은 '내어맡김의 영성'이다. 잘 알아들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어맡기기 위해서는 매일 매순간 나의 현재를 알아차려야 한다고 했다. 대단한 알아차림이 아니라 지금 현재 나의 정직한 감정이다. 

#4 어제 저녁

어제는 오전 강의와 오후 집단여정으로 꽉 찬 하루였다. 벅찬 시간이었다. 벅차야 얼마나 벅차겠나 싶지만 요란을 떨 수 없을 만큼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만남들이었다. 몸은 피곤했다. 티맵의 지도가 거의 빨간색이었던 길을 헤치고 운전을 해 집에 도착. 집 앞에 주차를 하고 끙끙 짐을 내리는데 '아줌마!' 라고 어떤 아저씨가 신경질적으로 불렀다. 사람이 다니는 길에 딱 붙여 주차하면 어떡하냐고 화를 냈다. 그런 길인줄 알기에 늘 신경 쓰면 대고 있다고 말했다. 밤 늦게 쓰레기 치우는 차가 들어오는데 바짝 대지 않으면 그 차를 돌릴 수 없다(고 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저렇게 비어 있는 곳에 대지. 매번 이딴 식으로 대냐고 나무랐다. 저렇게 비어 있는 곳은 어차피 나보다 큰 차가 댈 것이고, 이 공간에는 내 차를 대야 그나마 보행자나 쓰레기차에 무리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더 신경 쓸게요, 라고 말하고 들어왔다.

#5 다시 오늘 오전
 
영성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대단한 환상이 아니다. (사소한 일상의)체험, (소화 되지 않는 자잘한 일과 감정에 대한)성찰, 그리고 신비이다. 이 세 단어를 내적여정 세미나를 통해 알려 드리고 싶었다. '알아차림'에 대한 질문에 어제 저녁 주차 사건을 얘기하게 되었다. 그 얘길 왜 했을까? 내 상태가 어떤지 알아차리고 있었고, 그 아저씨가 스스로 타인을 배려하고 공중도덕 지키는 자의식 충만하여 나를 가르쳤지만 나는 알아차렸다.  에고, 그 도덕성 개나 주세요. 모르는 아줌마 불러 세워 가르치는 아저씨랑 사는 아줌마랑 아이들이 불쌍하네요. 어제 저녁 내 몸이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채윤이 입시와 써야 할 글로 얼마나 눌려 있었는지 나는 알았다. 들어오는 길에 친절한 동네 사람을 만나 거네는 말 한 마디로 위로를 얻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대체로 괜찮았다. 아마 오늘 오전 그 얘기를 고 싶었던 모양이다.

#7 다시 오늘 저녁

강용석이 이재명을 조롱하고 김정숙 여사를 폄하하는 것이 웃기지도 않다. 그 뉴스에 신경질을 쓰는 것조차 아깝지만 그래도 분노가 치미니 쓰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강용석, 너 같은 저급한 도덕성으로 이재명의 모멸감이 보이겠느냐. 스스로 제 몸을 드러내어 신체 검증 받는 마음을 알겠느냐. 너의 그 저급한 입에 당장 불이 내렸으면 좋겠구나. 여성의 몸이라면 날씬하고 팽팽해야 한다는 악한 눈에 뚱뚱하고 주름진 여자 몸의 아름다움이 보이겠느냐. 헬스 트레이너를 비서관으로 두고, 얼굴을 잡아 당기고 집어 넣어 만든 박근혜에게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너의 눈. 그대로 두는 것보다 더 큰 벌이 어디 있겠느냐.

#8 어제와 오늘과 내일

어제 저녁 그 아저씨와 싸우지 못한 것이 잠깐 후회가 된다. 뚱뚱한 몸, 주름진 얼굴, 흰머리를 조롱하는 말들에 즉각 대처하지 못하는 내가 바보같다. 스스로 가장 도덕적이라 여기며 주저없이 타자를 가르치고 판단하고 폄하하고 혐오하는 나르시스트들에게 분노의 불이 타오른다. 타오르는 불을 모아모아 오늘 강용석에게 쏟아 붓는다. 이렇게 끝낼 것이다. 사로잡히지 않겠다. 이젠 밤이니, 아까 그 저녁의 감정들에 계속 붙들려 있지 않겠다. 여기서 끝내겠다. 그리고 될 지는 모르겠으나 원고에 매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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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즈음에 섬광처럼 나타났다 없어지는 홍옥이려니.

가슴 시리도록 하늘이 맑고, 바람이 서늘한 이 즈음에 딱 맞는 사과향은 홍옥이려니.

젊고(실은 철 들고 엄마가 젊어 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건강했던 엄마를 불러내는 홍옥이려니.  


망원시장 멀어지니 이제 홍옥도 못 먹어보네

라고 오늘 아침인가 어제 아침에 남편에게 말했는데,

글쎄 바로 이 저녁에 망원시장 홍옥을 득하여 먹게 되었다.




벌써 몇 달 전 약속된 강의가 있었다.

그땐 그저 다이어리에 적어 넣었는데, 닥쳐 보니 추석 전야이다.

장도 보고, 준비를 해야 하지만 명절 기분에 강의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한산해진 서울 길 통과해 가 은평구에 있는 교회에서 강의를 했다.

돌아오는 길, 네비 따라 운전하다 보니 어머어머 월드컵 경기장.

수영 하고 집에 가던 길 그대로다.

충동적으로 망원지구 한강공원으로 빠졌다.

마음의 네비게이션이 이끄는대로 갔더니 여기는 망원시장.

주차할 곳 없겠지, 없으면 그냥 가고, 역시 없네, 그냥 가서 동네에서 장 봐야지,

하는 순간 모닝만을 위해 준비된 차 0.8대를 주차할 수 있는 자리 발견!


그래서 추석 장을 망원시장에서 봤다!!!!!

발 디딜 틈 없는 시장에 들어서니 

전 부치는 냄새, 족발 삶는 냄새, 떡볶이 냄새, 닭 튀기는 냄새가 시끌시끌 하다.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양팔에 빠져라 검은 봉다리 들고 차에 실었는데

마음의 네비게이션이 집을 향해 출발을 안 한다.

더 살 것은 없지만 망원시장 길 건너 월드컵시장에 가보기로 한다.

정장에 하이힐 신고 하릴 없이 시장구경.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과일가게 앞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볼품 없는 사과를 발견.

갯수가 적은 것 하며, 크기가 작은 것 하며, 뭔가 없어 보이는 품새가 딱 홍옥이다.

박근혜가 마트에서 감자 냄새 맡던 폼으로 향을 딱 맡아보니, 

어머나,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리움의 향기, 홍옥이 맞습니다! 


망원시장 멀어지니 이제 홍옥도 못 먹어보네

누군가 이 말을 새겨 듣고 

홍옥을 그 자리에 가져다 놓고, 나를 데려다 그 앞에 세워 놓은 것 아닌가 싶음. 





손가락마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 씩 걸고

지갑 들고, 휴대폰 들고, 차키 들고 정신 없이 다니던 중에

누군가 내 카메라를 눌러 신나는 내 걸음을 찍어 폰에 남겨 놓았다.

오늘 이벤트를 도모한 이, 대체 누굽니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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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모아 현금처럼 쓰고,

흩어진 포인트 모아서 한 방에 제대로 쓰고,

이벤트 응모하여 공짜 여행, 선물 받아 누리고,

시간 맞춰 앉아 클릭클릭 하여 저가 항공권 잡는 거.


이런 거 아주 못 하는 거.

주유를 하며, 장을 보며, 뭔가 계속 적립하고 있긴 하지만 이걸 언제 써먹는 지도 모르는 거.

이런 거 알뜰쌀뜰 챙기고 누리는 사람들 부럽지만 나는 틀렸으니, 여러분 많이 누리세요.


헌데 내게도 이런 일이 생겼답니다. 

응모한 기억조차 없는데, 누구에게 왜 주는지도 모르겠는데 티스토리에서 선물을 받았습니다.

뭐가 당첨이 되었다며 예쁜 노트, TISTORY 새겨진 볼펜(이 볼펜은 심지어 원래 좋아하는 펜), 스티커가 왔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거 생활 11년.

브런치니 뭐니 새 아파트들이 떴다 사라지고 떴다 사라지는 세월 동안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콕 박혀 죽순이로 살았습니다.

좋아서 쓰고, 괴로워서 쓰고, 자랑하고자 쓰고, 위로 받고자 쓴 세월이 11년.

싸이 클럽 시절까지 합하면 더 긴 세월이겠군요.


그 사이 블로그에서 잉태되어 나온 책인 여섯 권.

글을 쓰기 참 잘했습니다.

나를 위해 한 가장 잘한 일이 글쓰기입니다.

손일기 37년, 인터넷 글쓰기 15년, 블로그 활동 11년.


애써 계산하며 쌓은 포인트는 아니지만 그 포인트로 얻은 선물이라 해두겠습니다.

티스토리,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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