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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울었다.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연재 마지막 글을 위해 고른 찬송을 불러보다 조금 울었다. 기타 들고 소리 낮춰 불렀다. 누군가를, [큐티진] 독자를 앞에 세우고 불러주는 노래가 되었다. 누군가, 또는 독자가 구체적인 얼굴이 되었다. 오랜 취업준비생의 날을 보내고 있거나, 직장생활 한다지만 일의 기쁨 같은 건 느껴보지도 못하고 근근이 버티고 사는 무표정한 얼굴. 언제 펴질지 모를 형편으로 기약 없이 결혼을 미루고 있는 커플의 안타까운 얼굴.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연애와 결혼, 원치 않게 길어지는 비혼의 시간에 당황인지 좌절인지 모르는 무력한 얼굴. 오랜 기다림 끝에 결혼했으나 금세 불행의 낭떠러지 앞에 서서 되돌아가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막막한 얼굴. 미성숙한 부모 인생의 짐을 대신 지고 희망조차 품지 못하는 얼굴, 얼굴, 얼굴들. ‘인생역전’의 소망을 노래하며 연재를 끝내려고 선곡했는데 가사 속 쉬운 반전이 현실의 얼굴들과 멀게만 느껴져 눈물이 났다.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바람 분 후에 잔잔하고
소나기 후에 햇빛 나며 수고한 후에 쉼이 있네
연약함 후에 강건하며 애통한 후에 위로 받고
눈물 난 후에 웃음 있고 씨 뿌린 후에 추수하네
괴로움 후에 평안 있고 슬퍼한 후에 기쁨 있고
멀어진 후에 가까우며 고독한 후에 친구 있네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중년이 된 나의 인생 여정에도, 청년들의 시간에도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그분의 선의는 작동할 것이다. 어둠 후에 올 빛, 이 눈물 그친 후에 주실 새로운 웃음, 분명 좋은 것 주시는 분임을 안다. 문제는 빛이 오기까지의 어둠 속에서 어떻게 더듬어 가야 할지. 어둠과 빛, 눈물과 웃음, 괴로움과 평안 사이 우울과 무력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재즈처럼 하나님은>의 작가 도널드 밀러를 좋아한다. 그가 쓴 모든 책을 재미 그 이상의 감동으로 읽었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도 실제로 본 것처럼 생생하게 남은 한 장면이 있다. <천년 동안 백만 마일> 어느 부분에 나왔던 것 같은데 뚱뚱한 몸으로 티브이 앞에 앉아 하염없이 스낵을 먹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다. <재즈처럼 하나님은>이란 책으로 소위 대박이 났지만 그 이후에 낸 책들은 잘 팔리지 않았고, 작가의 말 그대로 ‘다시 정서가 불안해졌고 일상으로 돌아갔’단다. 이후로 도널드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장면이 배경화면으로 깔린다. 최근작 <무기가 되는 스토리>는 기독교 아닌 일반 서적으로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했다니 승승장구 하는 모양이다. 심지어 이 책을 읽으면서도 티브이 앞에서 감자칩 먹는 폐인 모드의 도널드를 상상하며 웃음이 나왔다. 베스트셀러와 베스트셀러 사이, 강연과 강의 사이 혼자 있는 순간 외로움과 공허감에 여전히 잠깐씩 폐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천년 동안 백만 마일>엔 저 찬송의 어두운-후에-빛, 연약함-후에-강건, 고독한-후에-친구가 오는 과정이 장황하게 펼쳐진다. 반전이 오기 전의 그 지난한 시간-오늘 우리의 일상과 같은-을 견디는 비법도 등장한다.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 인물이 무엇인가를 원하여 갈등을 극복하고 그것을 얻어 낸다.’이다. 물론 ‘한 인물’은 도널드 자신이며 그의 열혈 독자인 나, 또 나의 이 글을 읽는 <큐티진>의 독자 여러분이다. 우울하고, 지루하고, 무력하여 맥락 없는 오늘이 기승전결의 큰 이야기 속에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내가, 당신이) 이야기의 ‘승’이나 ‘전’ 쯤에 있다면 숲에서 길을 잃었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며, 비참한 상황으로 설정된다. 어두움, 비바람, 수고, 슬픔, 씨 뿌림, 멀어짐, 고독. 찬송에 등장하는 것들은 이야기의 흔한 소재들이다.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갈등의 소재 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인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을 관찰했다. 무엇이 이들을 살아남게 했는가.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 터무니없는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 이들이라고 하였다. 도널드 밀러 식으로 말하면 소망 없어 보이는 오늘이라는 조각 시간이 맥락 있는 이야기 속에 있다는 의식일 것이다. 가장 크고 확실한 이야기는 십자가와 부활, 죽음 너머의 삶이겠고. 여러분과 내가 오늘을 견디고 사는 이유일 터이다. 이러한 도가 진리이다.
고생한 후에 기쁨 있고 십자가 후에 영광 있고
죽음 온 후에 영생하니 이러한 도가 진리로다
내 맘에 있는 노래의 결국은 이렇듯 예정된 ‘해피엔딩’이다.
<QTzine>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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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피정, 잘 다녀왔습니다.
신앙과 기도의 벽 앞에 섰던 10여 년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전에 했던 기도로는 더는 실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신앙과 삶에서 기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요. 그때 구원처럼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을 만났는데, 정말 정말 모르고 싶었던 나의 이면, '거짓자아'의 실체를 마주하고 다시 털썩!이었습니다.
깊은 기도에의 갈망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습니다. 에니어그램 여정 중에 만난 향심기도(centering prayer)를 마지막 구원줄로 붙들고 10여 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벽인가 했더니 터널이었고, 끝없는 터널인가 했더니 인생 여정에 꼭 지났어야 할 빽빽한 숲길이었습니다.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터널에서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었던 것은 남몰래 드리는 향심기도였고, 과연 이것은 벽에서 터널로, 터널에서 숲으로 이끄는 구원의 줄이었습니다. 예전처럼 청하는 기도, 중보기도 드릴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투명한 마음으로요. 물론 향심기도도 놓치지 않습니다.
10여 년, 이런 저런 기도 피정을 다니면서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앉아 외롭게 기도했습니다. 교회 처음 온 초신자처럼 그렇게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이번에 갔던 향심기도 피정에선 참가자 14명 중에 개신교 신자가 12명(두 분은 목회자). 가톨릭 신자 한 분이 ‘이 분위기 너무 당혹스럽다’며 개신교 신자들의 열심, 놀랍다 하셨습니다. 저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피정 인도하시던 수녀님들도 당황하셨을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10여 년 외로움, 치유의 시간.
피정 기간 붙들고 읽었던 책이 딱 한 챕터가 남아 있었습니다. 집에 오기 전 카페에 들러 마지막 챕터를 읽었습니다. 영성 수련과 관상의 자리는 다름 아닌 ‘일상’입니다. 고루한 반복, 실패, 어려움, 그리고 유혹들이 끝없이 일어나서 아무 진전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 말이지요. 그런 일상에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영성이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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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대학입시가 끝났고,
몇 개월 큰 부담을 안고 쓰던 연재가 끝났고,
연구소 개소 준비로 세무소로 어디로 뛰어다니던 몸과 마음이었으니.
훌쩍 여행 떠나기 딱 좋을 이유가 많습니다.
이 적절한 타이밍에 어쩌자고 기도피정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난 7월에 계획해 놓았던 것인데, 이렇게 맞아 떨어질 줄은 몰랐네요.
여행 대신 마음의 여행을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부터 4박5일 동안 향심기도 피정에 다녀옵니다.
떠나야 할 이유가 열 개라면,
물러나지 못하게 발목 잡는 일상의 이유는 백 개입니다.
무엇보다 연구소 개소 소식을 떠벌여 놓고,
개소식 준비며 해야 할 많은 일들을 뒤로 하고 일주일을 통째로 비워야 하다니요.
이 적절한 타이밍은 여행이 아닌 기도의 타이밍인가 봅니다.
국을 큰 솥단지에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이런저런 메일을 보내고,
카톡, 카톡, 카톡으로 회의를 하고도
마음으론 뭔가 많은 걸 빠트린 것 같은데
일단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전화, 메시지 등 연락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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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과 합격, 두 개의 축하를 담은 투썸 플레이스 케잌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 생일을 맞은 채윤이, 수능 며칠 앞에 수시 합격증을 받았습니다.
동덕여대 19학번이 됩니다.
어른인 척, 고상한 척, 성숙한 척하는 엄마는 특별기도 따위 없다는 식으로
하던 일 하며 정신 없이 다녔는데.
수시 실기 시험 때마다 간절하게 애타게 기도해 주시는 벗님들이 계셨습니다.
특별기도 하지 않았지만 에미 마음이 어디 편안했을라구요.
중학교 졸업하고 '꽃다운 친구들' 1년 보내 채윤이.
이후로 내내 피아노를 벗삼아 혼자 외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좋은 대학이고 뭐고, 내년엔 꼭 또래 친구들 있는 곳으로 가야 할 텐데,
하는 마음 간절했지요.
입시 치루고, 후유증 겪고, 결과 기다리는 동안 롤러코스트 타는 채윤이 따라
마음이 오락가락 했습니다.
애써 덤덤한 척하는 엄마 대신 더 간절히 기도하고,
더 격렬하게 기뻐해 주시던 벗님들로 인해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기도가 어떻게 사랑이 되는지를 새롭게 배웠습니다.
은혜가 필요했고,
이김이 필요했던 수험생 채윤이는
내 딸, 네 딸 가리지 않는 이모들의 기도로 은혜를 경험했고, 이기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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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여기서 정신실은 한 사람이 아닙니다. 전도서의 지혜자도 인정하신 삼겹줄보다 한 줄이 더 많은 네겹 줄로 짜여진 집입니다. 애써서 엮은 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들, 제 몫의 안녕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안녕에 기여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품고 온 사람 넷이 어쩌다 엮인 것입니다.
김하정
하정 샘과의 만남은 한 25년 전 교회 청년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여성학과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고, 둘 다 막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쩌다 한 학기 차이로 대학원엘 들어갔고, 이 친구는 이후로 상담교사로 10년을 일했습니다. 상담교사를 할 때보다 그것을 박차고 나올 때 상담가로서 가장 많이 성장했습니다. 상담 때려 치고 마을 도서관 활동을 하면서 제대로 자기 마음, 남의 마음을 경험하고 배운 것 같습니다. 어쩌다 작은 오피스텔을 하나 갖게 되었는데, 속 편히 월세나 받아 쓸 일이지. 어쩌자고 “언니, 난 언니를 도울 거야” 하고 연구소 공간으로 내어놓아 이 일을 도모한 장본인입니다.
이수진
나이 먹고 만나서 이런 친구가 될 수 있다니! 이 좋은 친구를 사귀러 저는 미국까지 다녀온 셈입니다. 5년 전, 코스타 참석차 갔던 시카고 어느 대학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대화를 트자마자 바로 사귀기로 했고, 양가 남편들에게 허락받고 여친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살아온 세월, 살고 싶은 삶이 겹치고 통했던 것입니다. 5년의 만남은 길고 긴 수다, 밤늦도록 이어진 카톡 수다로 이어지는 내적 여정의 동반이었습니다. 어쩌자고 이 친구는 자기 아이들 다 키워놓고 ‘꽃친’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아이들 1년의 방학을 책임지는 청소년 안식년 운동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자기만족을 채우는 삶이 아님을, 또 다른 ‘자기’인 타자의 삶에 연루되지 않고 자기를 꽃피우는 길은 없다고 온몸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최은경
수진 샘, 하정 샘의 도움으로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 세미나’를 진행해왔습니다. 여기 참석하신 은경 샘은 1단계부터 영성과정까지 연이어 참석한 첫 그룹의 수강자셨습니다. 다음 해에는 1단계부터 영성과정까지 그대로 재수강을 하셨습니다. 그냥 재수강이 아니라, 마치 처음 듣는 강의처럼 다시 반짝이는 눈빛이었지요. ‘에니어그램이 정말 재미있으신가보다’ 싶었지요. 알고 보니, 이미 다른 곳에서 10여 년 에니어그램을 해오셨고, 심지어 가르치는 분이었습니다. 어쩌자고 이렇듯 낮은 자세로?! 겸손한 배움의 태도에 놀랐습니다. 가르치고 떠벌이기 위한 배움이 아니라 먼저 ‘나’를 알아야겠다는 태도는 바로 내적여정의 방향성입니다. 누구를 치유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겠다는 열망으로 에니어그램 끝에 상담을 공부하게 되셨다구요.
이렇게 저 포함 넷입니다. 사람 마음을 위해서는 심리학이, 치유를 넘어 성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영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희는 체험적으로 압니다. 상담과 영성지도 사이에서 함께 낫고 나아지며 네 사람이 만났습니다. 개인상담은 주로 세 분이, 저는 집단여정을 이끌어가겠습니다.
책상 하나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공간 나음터에서 또 다른 넷, 여덟, 열여섯, 스물넷의 도반을 만나가겠습니다.
사진을 멋지게 찍어볼 계획을 여러 번 세웠지만 일단 포기했습니다. 각자 먹고 사는 일, 배우고 사는 일이 바쁜데 연구소 여는 준비까지 하느라 멋진 사진 찍는 사치는 아직 부리지 못했습니다. 첫날 만나 연구소 청소하고 옆 카페에 가서 찍은 소박한 사진으로 인사 대신합니다. 멋 부릴 일은 많고, 우리에겐 앞으로의 시간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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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에 '정신실의 신앙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열 편의 글을 썼습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인지 글이 내 인생을 쓰는 것인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글로 정리하는 몇 개월이 되었습니다.
또는 10년이 훌쩍 넘는 긴 방황을 글이 나서서 종결시켜 준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글을 기획 했지만, 이런 글이 나올 줄 몰랐고.
힘들고 아플 줄 알았지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어쩌면 열 편 모두 울지 않고 쓴 글이 없습니다.
글이란 게 내놓으면 더는 내 것이 아니라는 것 알았지만,
읽는 이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덧입을 수 있다는 것도,
읽는 이의 태도에 따라 의미 없는 문법의 배열에 그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엄마, 동생까지 동원하여 가족의 흑역사를 까발린 사연팔이 글이라
내놓고도 부끄러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마쳤다는 것이 좋아서 혼자 조금 들뜬 밤입니다.
모처럼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글은 링크를 따라가 읽을 수 있습니다.
목사를 대적한 사람의 말로 : 더 깊은 사랑과 성장을 위하여
영적 학대, 재난이 온다 : 두 살 목사와 열 살 교인
어느 종교 중독자 : 중독과 은혜 사이
목사 혐오와 우상화를 넘어 : 종교 중독, 영적 학대에서 벗어나려면
영적 비신자, 종교적 신자 : 신앙 성숙의 기준
그러면 기도하지 말까 : 영성 생활의 출발점
착한 나쁜 그리스도인 : 생각하지 않는 죄
사모, 아프거나 미치거나 : 이름을 갖지 못한 사람들
밥벌이로써의 목회 : '거룩한 소명'의 뒤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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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 강의 가서 교역자실에서 대기하는 중.
초등부 전도사님과 인사 나누고 있는데 초딩 1학년이 하나 들어왔다.
전도사님, 누구예요?
어, 너 작가 알아? 작가가 뭐 하는 분인 줄 알아?
네, 동화책 쓰는 사람이요.
그래 그래, 이분은 작가님이야. 글을 아주 잘 쓰시는 분이야.
(눼에 눼에 하는 표정).......................
싸인 받을래? 작가님께?
왜요?
유명하신 분이야.
컴퓨터에 이름 써봐도 돼요? 이름이 뭐예요?
정짜, 신짜, 실짜 작가님이야.
컴퓨터에 이름 써볼게요.
그래.
이 초딩님, 달려가더니 검색을 하셨다.
나온다, 나온다, 하셨다.
눈 앞에서 검색당하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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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렁다리일 뿐
무서워 죽는다고 호들갑을 떨고
출렁다리 따위 덤벼, 허세를 부리시니
나는 그저 가만히 흔들흔들 걸려 서있는 출렁다리일 뿐
사람, 신실은 꼭 그러더이다
단 한 번도 실수 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결코 상처 받을 수 없는 존재인 듯
완전무장 하고 환상 속을 살더이다
작은 고통에 세상이 끝나버린 것처럼
살아온 모든 세월이 비극이었다는 듯이
어떤 희망도 품을 수 없는 인간 말종이 되었다는 듯
셀프 내팽개침으로 바닥을 굴러다닙디다
예, 사람 정신실은 그렇습니다만
출렁다리는 출렁다리일 뿐인 줄 이제 다시 알겠습니다
출렁거림, 흔들림, 현기증, 울렁거림,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호흡 크게 들이마셔 쪼그라든 심장 부풀려 단 한 발만 내딛어 보겠습니다
한 발 정도는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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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 했니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이 말은 '너는 엄마를 위해 살아. 엄마의 욕구를 채워야 해'
아이를 잡아두는 올가미가 되겠지만.
우리 집 주방 창문에 대고 '니가 없으면 어쩔 뻔 했니' 하는 것은 정말 어쩔 뻔 했냐는 말이다.
다행이다 고맙다는 뜻이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주방 창문으로 가 밖을 내다본다.
바로 보이는 저 나무를 본다.
나무에 걸린 바람을 보고, 빛깔을 보며 날씨를 가늠한다.
계절을 확인한다. 깜짝 놀랐다. 단풍이 와 있었다.
# 빛으로 가는 길은 그림자에
건물에 부딪힌 아침 햇살이 단풍 든 나무 아래 검은 단풍을 들였다.
그림자가 만드는 그림은 어쩌면 이렇게 늘 멋진가.
단풍든 나무와 불곡산 스카이 라인이 만든 그림에 그림자가 깔렸다.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만드는 찰나의 장면. 찰나라 더 가슴 설렌다.
사진으로 보는 그림자는 이렇듯 멋지고 낭만적일 뿐이지만
내 실존의 그림자는 어둡고 두렵기만 하다.
# 벚꽃이 너무 예뻐요, 외로워요
너무 예쁜 벚꽃 길을 보고 속에서 저절로 나온 말이 '너무 예뻐다. 외롭다' 했다는 제자가 있었는데.
주방 창문 너머 아침 풍경이 너무 예뻐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어제 못한 설거지를 하는데 '주님!' 하고 부르고 눈물이 났다.
어렵게 원고 마감을 하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연이은 강의를 하고.
채윤이는 입시를 치루고, 외롭게 연습을 하고, 수시 입시를 모두 마쳤다.
남편은 올 가을 꼭 비염을 치료하고 말겠다며 한약을 먹고 혼자 음식조절을 하고.
현승이는 고등학교 입시설명회에 꽂혀서 다른 세상 사람이다.
# 남의 일에 장담하고, 내 일에는 흔들리다
중학교 졸업하고 가진 안식년, 꽃친부터 시작해서 3년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외로울지 새삼스레 가엾다.
검정고시에, 매일 연습실 출근하는 피아노 연습, 대입 전형과정까지 혼자서 했다.
그 외로웠을 시간이 크게 밀려오며 가엾고 미안하다.
어제 강의에서 뵌 자매님이 자신의 성향 때문에 아이를 망칠까 걱정이라며,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 아닌 질문을 하셨다.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 드렸다.
"사람들이 저를 관계 전문가, 육아 전문가라 부르더라고요.
제 강의 좋아서 지난 주 들으시고 오늘 남편과 함께 또 오셨죠?
믿을만 한 전문가 제가 장담을 할게요. 결코 아이를 잘못 키우지 않으실 거예요.
오늘, 이 좋은 토요일 오전 두분이 함께 아이를 위해 고민하는 이 시간에 앉아 계신 것 만으로
이미 좋은 엄마 아빠세요.
결국 잘 키우게 되실 거예요. 걱정하시는 것처럼 사춘기에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여러 어려움이 있겠으나 결국 잘 키우실 거예요. 제가 장담 할게요." 라고.
내게 들려줘야 할 말이다.
창문 너머 빛과 그림자를 품은 나무를 보며 기도한다.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23
주일 예배 순서에 참회의 기도 시간이 있다. 솔직히 맹숭맹숭한 마음으로 눈만 감고 있는 날이 많다. 말로는 수백 수천 번 인정하고 고백했지만 실은 좀 무덤덤한 정체성이 ‘죄인인 나’이다. 익숙해서 무감각해진 것일까. 아니면 무감각 그 자체가 죄인지 모를 일이다. 투명하게 나의 ‘죄’를 느끼자면 어디 한 순간이라도 견딜 수 있겠는가.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옵기는 나의 몸과 나의 맘을 깨끗하게 하옵소서
(찬송가 274장 1절)
전도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말 중 하나가 ‘죄인’이라는 얘길 들었다. 비신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불편해 하는 말이다. 뭘 그렇게 대단한 잘못을 했다고 죄인, 죄인 하느냐는 것. 비신자만 그럴까. 우리도 불편하다. ‘내가 행한 것이 죄뿐이라!’ (하도 들어서)머리로는 인정, 가슴으로는? 글쎄다. 나름대로 큐티 하고, 말씀에 귀 기울이며, 기도도 하고, 미운 사람 품으려 애쓰면 살고 있는데 행한 모든 것이 죄라니 좀 심하지 않은가.
맹숭맹숭하던 주일 참회의 기도시간이 뜨거워지는 때가 있다. 남편과 관계가 틀어져 말을 안 하고 있거나, 예배 가기 직전 아이들을 윽박지르던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을 때이다. 뒤틀려 무거운 마음으로 예배에 가 앉으면 오히려 일단은 심사가 더 뒤틀리는 것 같다. 누가 됐든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죄다 고발하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솔직히 그의 죄가 밝혀지는 순간 나의 치부까지 드러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다른 일로 화가 났던 걸 괜히 아이들에게 쏟아냈다는 자각이 생기면 비로소 뒤틀린 것들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만만한 아이들, 착한 남편에게 내 감정의 배설물을 쏟아놓고 말았구나! 그럴 때 꽉 쥔 주먹이 풀리고 가슴이 저릿하며 참회의 기도가 절로 나온다.
내 어둔 눈 밝히시니 참 기쁘고 고마우나 그보다 더 원하오니 정결한 맘 주옵소서(2절)
정결한 맘 그 속에서 신령한 빛 비치오니 이러한 맘 나 얻으며 눈까지도 밝으리라(3절)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냐는 태도에서 한 발만 이탈하면 작은 빛이 새어드는 것 같다. 죄가 보이기 시작한다. 빛 하나 들어올 틈 없이 온통 나의 의와 옳음으로 가득한 캄캄한 마음의 숲에 말이다. 그 작은 빛 한 줄기로 여기저기 내 마음을 조망한다. 그 신령한 빛이 닿는 지점마다 죄의 흔적으로 처참할 줄 알았건만. 어, 빛이 닿는 지점마다 즉시로 말끔해진다. 나 행한 것 죄 뿐인데! 죄로 가득했던 마음이라 차마 내보이기 싫어 꼭꼭 닫고 있었는데, 다 어디로 갔지? 눈물로 드린 참회의 기도는 알 수 없는 말끔함으로 끝이 난다. 죄의 고백과 끝은 용서로 주시는 정결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스캇 펙의 <주와 함께 가는 여행>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필리핀의 한 마을에 어린 소녀가 예수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소문은 마닐라의 추기경에게도 들려졌다. 추기경은 한 신부를 보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아보도록 조치했다. 세 번의 조사에서 그 신부는 도저히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다고 느낀 나머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사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고 실망한 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다. 네가 다음번에 예수님과 대화할 때 나의 마지막 고해성사가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보도록 해라.” 어린 소녀는 그 말에 동의했다. 한 주 뒤 그녀는 다시 소환되었고, 신부는 곧바로 물었다. “그래, 사랑하는 딸아, 지난주에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느냐?” “예, 신부님”하고 어린 소녀는 대답했다. “그래, 네가 지난주에 예수님과 대화할 때, 나의 마지막 고해성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여쭈어 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예, 신부님 저는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래.”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신부는 따져 물었다. “나의 마지막 고해성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예수님께 물었을 때, 주님이 뭐라고 대답하시던?” 어린 소녀는 즉시 대답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잊어버렸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늘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우리 마음에 순도 100% 정결함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시시각각 찾아드는 자기중심성의 악함을 다 버릴 수 있겠는가. 내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 마음의 정결함이다. 지고의 마음수련 같은 것들로도 가질 수 없는 것이 깨끗한 마음이다. 회개하는 자의 죄를 잊어버리시는 분, 도말해주시는 분의 신비하도록 놀라운 사랑 아니면 안 된다. 그저 우리는 무너지는 자존심을 부여안고 죄인 된 나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할 뿐이다. 인정하고 회개할 뿐이다. 그리고 얻는 것은 용서와 정결함, 무엇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신비의 체험이다.
<QTzine>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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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오후
<뉴조> 원고 마감해야 하는 날이다. 하지 못했다. 엊그제 월요일에 대충 마무리 했는데,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니 이건 아니었다. 버리기로 했다. 이틀 남았고 화요일엔 하루 종일, 수요일 오전까지 일정이 있으니 틀렸다! 포기하기로 했....... 다가 사시 써지면 써야지 했다. 어제와 오늘 오전의 소임을 마치고 카페에 앉아 오후 내내 글을 썼다. 써질 것도 같다. 웬만하면 쓰다가 딴짓(인터넷 뉴스 구경)도 많이 하는데 것도 잘 안 되더라.
주일 예배가 끝나면 갑툭튀!
어디선가 나타나 가슴을 파고들며 안기는 녀석이 있다.
어, 방금 안아줬는데!
옷 갈아 입고 다시 나타나 안기는
것 같은데 쌍둥이 형제다.
나의 주일을 주일 되게 하는, 기쁨과 평화를 가지고 달려드는 아이들이다.
어제 주일 예배 마치고 "큰엄마!" 하고 안긴다.
(진짜 큰엄마임)
그런데, 채윤이 누나 피아노 망쳤어요?
왜애?
망친 거 같은데요.
(채윤이 누나 입시 중인 것을 알고, 아마 누나에게 먼저 묻고 이런 답을 들었던 듯)
아니야, 채윤이 누나 망치지 않았어.
정말요? 그러면 이겼어요?!!!!!!
천사의 입에서 천상의 메시지가 나왔다.
붙고 떨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험을 이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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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수시 실기를 치루고 있는 채윤이 말했다. "나 이번 주일에 분*우*교회 예배 갈 거야" (집에서 가까운 대형교회이다) 내가 "큭큭, 왜애? 은혜가 필요해? 은혜 받으러?" 했더니 표정은 딱 '인정!'인데 바로 아빠 눈치를 보면서 "아니이, 그게 아니고. 그냥 뭐.....어버버버" 그러라고 했다. 아빠 또한 그러라고 했다. 사실 채윤인 아빠 설교에 매주 은혜 받는 드문 교인 중 하나다. 어느 날은 1부 예배를 드리고 나서 문자를 보내왔다. ‘엄마, 2부 때 설교 녹음 좀 해줘’ 설교가 좋아서 두고두고 다시 듣겠다는 것.
몇 주 전 흩어지는 예배로 드리는 주일이 있었다. 남매 둘이 분*우*교회에 다녀왔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둘 다 예배가 좋았다며 약간 흥분해서 설교에 대한 일종의 나눔 같은 걸 했다. 채윤인 몰라도 중3 현승은 사춘기 끝이라 시니컬하고 나이에 맞지 않게 철학적이기도 하다. 오글거리는 것은 딱 질색. 그런 아이가 감정적으로 조금씩 넘치는, 그래서 부담 되는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예배와 설교가 좋았다니! 그렇구나. 아이들 마음에 다가가는 설교가 이렇게 있구나.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갈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좋고 나쁜 설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맞는 설교자가 있다. 물론 설교라는 이름으로 쇼를 하거나 설교의 권위와 자아를 구분하지 못하여 호통이나 치며 힘을 행사하는 명백한 나쁜 설교가 있다. 이름만 설교지 설교 아닌 것, 설교일 수 없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설교를 듣는 나를 아는 것이 설교자 만큼이나 중요하다. 내가 은혜 받는 설교, 좋아하는 설교자 만큼 내 신앙의 현주소를 드러내주는 것도 없다. 내가 끌리는 설교, 설교의 취향은 어쩌면 내 신앙의 지향이다.
사진은 은혜가 필요한, 삼선 쓰레빠 신은 수험생과 그 엄마가
잠시 공원에서
황금 잉어빵 먹으며
노닥거리는 장면의 한 귀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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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이 돌아가셨고, 장례식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혼란 그 자체이다.
짧았던 우리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내 안에서는 더 크고,
훨씬 더 긴 세월, 서로 알 수 없는 시간 속의 서로는 잘 모른다.
무슨 직함을 가지고 있는지, 아이는 어느 대학을 다니고 있는지,
고3 아이의 엄마는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가 속닥속닥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면
괴리가 함께 흘러들어와 자리 잡고 앉는다.
내 마음 속 고운 추억으로 간직된 착하고 좋은 사촌들.
어쩐지 지금은 낯설기만 한 것은
그들이 나에게 먼 것인지,
내가 그들로부터 이탈해 온 것인지 알 수 없다.
슬픔에 겨워 우시던 외숙모가 곁에 있던 어느 분에게 나를 소개하며 말씀하셨다.
"얘가 정목사님 딸이에요. 얘가 아주 유명해서, 얘가 웃음치료산데, 아주 유명해서 테레비에도 나오고,
미국도 갔다 오고, 책도 쓰고 아주 유명해요."
'웃음치료사'의 힘이 막강하다.
심각했던 나를 웃게 했다. 치료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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